온라인 세상이 열리고, 9.11테러가 발생하고, 그리고, 전사적인 경비절감 차원에서 Video Conference 와 전화회의가 보편화된 이래 한동안 뜸했던 해외 출장을 오랜만에 가게 되었다. 미국은 더 오래되어, 10년짜리 비자 갱신한 96년도 이래 처음이니 8년만의 방문인 셈이다.
미국 방문 시는 늘 본사가 있는 뉴욕주 시라큐스(지금은 코네티컷주 화밍턴으로 옮겼다: 오늘 가는곳)로 갔었기에 한국에서는 제일 먼 거리인데, 옛날에 앵커리지 경유 할 때는 스무 시간이 넘게 걸렸던 것이 논스톱으로 가면서 열 여섯 시간으로 좀 줄었어도, 여전히 머나먼 비행길이다. 담배 피던 시절, 미국에 다녀올 때면 맨 뒤쪽 흡연석에 탔다가 완전히 굴뚝에서 스무 시간을 고생 했던 일, 다음부터는 금연석에 앉아서 눈치보면서 담배 피웠던 일, 그러다가, 전좌석 금연석이 되어 열 여섯 시간동안 담배 참느라 고생했던 일들이 미국 행 비행기의 추억이다.
옛날엔 해외 출장 시는 의례 대한항공이 우선이고, 좌석이 없으면 아시아나 항공편으로 예약해 주었는데, 이제는 가장 저렴한 가격을 제시하는 비행사로 예약을 하는 바람에 여러 번 갈아타는 번거러움을 감수 하는 가장 싼 노스웨스트 항공편으로 동경에서 갈아타고, 미국 미네아폴리스에서 다시 최종 목적지인 하트포드행으로 갈아타는 코스로 예약이 되었다. 견적 리스트를 보니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백오십 만원 대인데, 제일 싼 노스웨스트는 백만원 대였다. 웬만하면 친구네 비행기를 타련만, 가격차가 너무 커서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본사 교육 센타에서 있는 전세계 캐리어의 지역 개발본부 대표들이 모여서 받는 교육코스에 참석하는 출장길, 서울에서 10시40분 비행기를 타기위해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 서둘러 인천공항에 갔다. 며칠의 꽃샘추위가 물러가고, 화사한 봄 햇살에 아침 안개가 옅게 깔린 영종도의 바다가 쪽빛으로 빛나며 해외로 나가는 이들을 환송하고, 해외에서 들어오는 이들을 맞이한다. 웅장한 규모의 인천공항은 역동적이다. 이제는 보편화된 세계화의 상징과도 같은 인천공항은 세계적인 시설과 운영으로 정평이 나있고, 그에 버금가게 많은 세계인들이 드나드는 우리의 관문이다.
중간에 한자리 차지하고 있는 노스웨스트 카운터에서 두 번 갈아 타는 티켓을 모두 끊고 짐을 부치고 나니 서울에서 도쿄까지는 비즈니스석으로 승급 해 주었다며 친절하게 안내를 해준다. 제일 싼 비행기표로 조금은 호강하며 가게 된 셈이다. 대한항공으로 갈 때면 가끔 병권이 덕에 싼 표로 좋은 좌석에 앉아서 가는 영광을 갖기도 하였는데, 여러 번 갈아타는 게 측은해서 그랬는지, 아님, 왕복 여섯장의 티켓이 모두 노스웨스트라서 기특해서 그런지 하여간 기분 좋게 탑승을 하는데, 입구부터 검색이 심하다.
일부러 잡동사니는 모두 큰 가방에 넣어 별도로 부치고, 간편하게 노트북만 달랑 들고 타는데도, 웃옷 벗고, 주머니 모두 털고, 신발까지 벗고 별도 검색 대를 통과하라고 한다. 9.11 테러이후 강화된 보안검색 때문이려니 하고 이해하고 통과를 하였는데, 탑승 전에 또 한번 한다. 이번엔 선별 검사를 하는데, 비즈니스석으로 보무도 당당하게 들어가는데 별도로 불러 세우더니, 가방 속 검사하고, 웃옷 벗고, 구두 벗고는 발 밑, 구두 속, 혁대 속, 샅샅이 검색을 한다. 흐미, 내가 테러리스트처럼 보였나 보다.
조금은 민망하기도 하고, 내심 불쾌해 하면서 비행기에 들어서니, 여승무원이 둘이나 다가와서 웃옷 받아 걸어주고 음료수 대령하고 난리다. 좌석도 얼마나 크고 넓은지 다리를 곧게 뻗어도 앞 좌석에 닿지를 않는다. 간혹 대한항공 비즈니스석을 타 봤어도, 이렇게 넓은 것 같지는 않았다. 점심 메뉴도 흔한 기내식이지만, 품위 있고, 양도 많고, 서비스가 남 달랐다. 이렇게 그냥 북태평양을 지나면 좋으련만….
김포공항에서 출발 할 때와는 달리, 인천에서 떠서 서울 하늘 중심부로 지나가는데,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63빌딩에, 얼마전까지 살던 사당동 집뿐만 아니라, 김포에서 강남, 그리고 남산너머 상계동까지 거대한 서울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올림픽경기장 옆, 새집도 보이더니 이내 미사리 거쳐 양평으로 해서 태백산맥을 훌쩍 넘어 동해안이 보인다.
그러고는 끝없는 구름바다가 동해를 건너 일본 열도까지 지붕처럼 펼쳐있고, 또 일본 서해안 선이 보이면서 구름이 걷힌다. 일본도 열도라 폭이 좁아서 십여 분만에 본토를 가로 지르더니 동경만을 지나 크게 한바퀴 돌면서 서서히 내려 앉는다. 가까이 보는 일본 동경근교는 마치 손님 맞이 준비가 끝난 집처럼 모든 게 반듯하다. 논이고 밭이고 자로 잰 듯 반듯하고, 하나같이 잘 정리가 되어 씨라도 뿌리려는지, 아님 벌써 뿌렸는지 봄맞이 준비가 잘 되어 있다.
동경에서 내려 또 검색하고, 두어 시간을 기다렸다가 미네아폴리스 행 비행기로 갈아타는데, 흐미, 입구부터 분위기가 다르다. 전좌석 만석으로 바글바글 대는데, 좌석은 고속버스 일반좌석 수준으로 비좁고 앞뒤 간격도 좁다. 다행이 좌,우에 비교적 마른 일본 사람들이 타서 불편함은 적었으나, 도처에 앉아있는 살찐 미국인들 옆에서 앉았더라면…..
동경에서 열 시간의 비행이 얼마나 길고 지루한지, 오후 3시 다되어 출발을 하여 태양을 거슬러 동쪽으로 가니 곧 저녁이 오고 짧은(?) 밤을 상공에서 보내야 하는데, 미국 도착하면 오후이니 깊은 잠을 자면 현지에서 잠을 못자면서 시차적응에 대단히 어렵기에 선잠을 자며 주는 대로 두 끼와 간식을 꾸역꾸역 먹으면서 그렇게 열 시간을 보냈다. 그러고서 미국에 도착을 하였는데, 하늘에서 보니 여기저기 눈이 아직 남아있고, 내려서 지상 터미날로 가는데 연결통로가 꽁꽁 얼었다. 흐미, 한국보다도 훨씬 춥다.
미국에 들어왔으니 일단 거창한 입국 심사가 기다린다. 역시 9.11테러와 이라크 전쟁이후 나날이 강화되는 보안 검색대에서 길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데,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대개 처음 오는 한국 사람들은 하나같이 양손 지문 찍고, 정면 사진을 찍는다. 강대국의 텃세려나, 자기집 찾아오는 손님을 범죄자 취급을 하다니…..
뭐 하러 왔냐?
업무차 왔다.
무슨 업무인데?
나 캐리어 직원인데, 너, 캐리어 알아? 에어컨 만드는 회사말여
아, 잘 알지…
나 그 회사 한국지사에 근무하는데, 본사에 일 있어 가는 길이야.
얼마나 있을 건대?
일주일이다.
가는 비행기표는 끊어왔냐?
그래, 볼래? (짜식이 거들떠 보지도 않으면서…)
오랜만에 왔네?
그려,97년에 오고 첨이니 한 7년 된 것 같어….
그러게…일 잘 보고 가!
입국신고서 밑을 쫙 찟더니 여권에 한쪽 붙이고 도장을 여기저기 꽝꽝 찍더니 가랜다…
짜식들, 왜 나는 지문 찍으라고 안 하냐?
미네아폴리스에서 세시간을 기다린 후 목적지인 화밍턴 인근에 있는 하트포드 공항으로 또 3시간여를 날아가는데, 국내선이라고 겨우 비스켓하나 덜렁 주더니 샌드위치를 10불이나 받으면서 장사를 하고 있다. 역시 싸구려 비행이라 어쩔 수 없다 하며, 이제는 속도 느글거리며 배도 안 고프던 차에 잘 되었다 하고 가는데 쏟아지는 졸음을 감당할 수 가 없다. 시계를 보니 한국의 새벽이었다.
봄바람 불겠지 하며 속옷도 안 입고, 웃옷도 얇은 잠바 하나 가져왔는데, 미국 북동부에 있는 하트포드에는 매서운 바람이 불고, 군데군데 눈이 쌓여있다. 아직 봄은 멀었나 보다. 택시를 타고 화밍턴이란 곳엘 가는데, 파키스탄에서 이민 온 65살 난 노인네가 운전을 한다. 자식얘기, 미국생활얘기로 30여분을 재미있게 왔는데, 미국에서는 늙어서 돈 없으면 지붕 있는 집에서 살 수 없다며, 마누라도, 자식도 모두 소용없다고 한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시계를 보니 한국시간 아침 8시20분이다. 흐미, 오산에서 매일 아침 어부인께 안부전화 드리는 시간이다. 그 시간이면, 애들 모두 학교 가고 아침 먹고 차 한잔 할 시간이다. 서울 집에서 아침 7시에 출발을 했으니 만 25시간만에 목적지에 도착한 셈이다... 전화를 거니, 어부인 목소리가 지구 반 바퀴를 돌아 그렇게 반갑게 들려올 수가 없다. 역시 사람은 가끔씩 멀리 떨어질 필요가 있다.
여기에도 내가 오길 손꼽아 기다리는 친구가 있으니, 또 전화를 걸자마자 호들갑을 떤다. 이렇게 머나먼 이국 땅에도 잘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게 또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른다. 로비에서 기다리는데, 이런, 이태리에 있는 개발팀담당 임원을 비롯하여 줄줄이 아는 사람들이 왜 그리 많은지,,,,저녁을 같이하자는 제안을 뿌리치고 몰래 친구랑 만나서 시내에 분위기 좋다는 음식점에 가서 둘이서 저녁을 먹는데, 한참 정신없이 먹고 얘기하다 눈을 돌려보니, 조금 떨어진 곳에 아까 그 인사들이 앉아서 또 저녁을 먹는다….세상이 좁다더니, 지구가 좁구나…
그렇게 길고 긴 미국여행의 하루가 갔다. 이제는 시차적응과 싸워야 할 때이다….
내일 교육 받으면서 졸면 안 될 텐데……
첫댓글 그려~화이팅~!~!..모쪼록 건강허시게나...풍상.
진짜로 청산유수여.난 1년 산 이부근 풍경묘사도 저렇게 세심하고 박진감있게 못혀.그러니까 초우는 캐리어 한국대표로 간거구먼.시차적응 ,여권,미네아 폴리스...멋있네,부럽고..
그러게나.. 내가 외국여행을 간 기분이네..ㅎㅎ 역시 화려한 외모 풍부한 말발에.. 늘씬한 허리에..ㅋㅋ 대단해요`~ 일 잘 보고 온나.. 건강하게...^^
재밌다...내눈도 두눈인데 어쩜 시시콜콜 빠트리지않고 그림같이 잘도 보네..안경바꿔쓰면 나도 잘보일까?.ㅎㅎㅎ
건강 신경쓰고 많이 느끼고 배우고 오시게나!
검색대를 지날 때의 광경이그려지는데 증말 복잡하구만.국제화 새대에 따라가는 것이 단순히 의식의 변화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혔는디 그러기 전에 우선 평화가 있어야것어.
국제신사 우리의 카페대장께서 약간의 불편은 겪으셨지만 실력으로 승부를 내시고 계시다니 반갑습니다.대장뒤엔 언제나 우리들이 있습니다.
아따 사형 표현 딱여...국제신사...재주는 드러난당게.
너무 거창하게 그러지 마시오....시차 적응을 못해서 무척 힘드네...걱정과 격려해주는 친구들 모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