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장 수도꼭지
1986년 말에 오스트레일리아에 도착하여 보니 여러 가지가 달라져 있었다.
가장 두드러진 일은 5월에 데이빗이 마지막으로 연주한 다음 리카도는 문을
닫았고 크리스는 다른 사업을 벌이고 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살던 곳의 집세
가 많이 올라 차라리 집을 사는 것이 더 합리적인 것 같았다.
그리하여 1987년 1월에 나는 마이클 패리에게 전화를 걸어, 집 계약금을 낼
만한 돈이 데이빗 앞으로 남아 있는지를 물었다. 마이클은 그 전 해에 전국
순회공연이 순조로웠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나는 얼른 신문을 뒤져, 낡은 가건물이 들어서 있는 '개발구역'을 판다는
광고를 찾아냈다. 과거에 집을 많이 사고 판 경험이 있었으므로 나는 그 곳
이 대단히 가치가 있는 곳이라 판단했고, 이내 그 곳은 우리 소유가 되었다.
계약을 마무리지으면서 중개인에게 우리가 곧바로 이사를 들어갈 것이라고 했
더니, 그는 놀란 듯이 나를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설마 거기서 사시겠다
는 말씀은 아니겠죠?"
그러나 나는 쓰러지기 직전의 집을 아늑한 보금자리로 바꾸는 일에서 가장
창의적인 보람을 느꼈으므로, 낡은 카펫은 얼른 걷어치우고 바닥은 왁스로 닦
아 내고 집에는 페인트를 새로 칠하고 방 몇 개에는 벽지를 새로 입혔다. 부
지가 꽤 컸으므로 우리는 절반을 팔아서 투자자금을 마련했고, 나머지 땅에는
언제나 좋은 친구인 피터 브래클리의 도움으로 종료나무, 고사리, 장미와 진
달래를 심었다. 데이빗은 난생 처음으로 스스로를 자랑스런 집주인으로 부를
수 있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1994년에 와서야 나는 데이빗에게는 돈을
벌고 있다는 생각도 없고 부동산 소유주라는 생각은 더더구나 이해하지 못한
다는 것을 알았다.
스완 강은 이제 사실상 뒷문 바로 밖에 있는데 이 점이 데이빗에게는 너무
나도 유혹적이었다. 다행히도 저 드넓은 강에서도 - 어떤 곳에서는 폭이 1킬
로미터가 넘는 곳도 있었으니 - 특히 우리 집 부근이 교통량이 비교적 적었
다. 데이빗 말고는 그 강에서 수영하려는 사람이 없겠지만, 나는 그가 수영
을 한다 해도 안전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따금씩 노나 요트를 아슬
아슬하게 피한 일이 있었다. 그는 늘 안경을 낀 채로 수영하면서, 머리를 물
위로 높이 든 채 '교통'울 관찰했다. 유럽 여행길에서 얻은 취미였다.
'교통'은 거리를 따라 움직이는 차량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멀찍이
안전한 거리만큼 떨어져서 관찰하는 데이빗의 입장에서는 오가는 사람들, 활
주로의 비행기, 여객선과 화물선, 날아가는 새 등이 모두 '교통'이었다. 유
럽의 고속도로를 달릴 때 데이빗은 자동차 안이라는 작은 공간 안에서 바깥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한동안 그러고 난 뒤 그는 그것이 정신집중에 도움이 된
다는 것을 알았다. 바깥에서 흘러가는 '교통'의 패턴과 속도에 나타나는 일
정한 규칙이 일종의 최면효과를 일으켜, 그의 머리 속에서 빠르게 두서없이
흘러가는 '생각의 교통'을 정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피아노 앞에 있지 않을 때에는 '교통'을 지켜보는 것이 일과가 되었
다. 이는 또한 그가 제일 좋아하는 화제가 되어, 들어주는 사람만 있으면
'파리의 교통'이나 '런던 트라팔가의 교통'에 대해 재잘거리는 것이었다. 저
혀 낯모르는 사람에게도 마치 다른 사람들이 날씨를 화제로 꺼내듯 혼잣말처
럼 '교통' 이야기를 시작하곤 했다. 물론 이같은 행동을 사람들은 대부분 전
혀 의미 없는 소리로 들었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래서 사람들은 오랫동안 그의 이런 행동을 단지 데이빗의 수많은 기벽 가운대
하나인 것으로 접어 두고 지나갔다. 그러나 그는 전체적으로 조금씩 조리 있
게 변해 갔고, 어느 날 그것이 진짜 중요한 이유를 밝히게 된다.
하여튼 스완 강에서 수영을 즐기는 데이빗에게는 그 곳이 세상에서 제일 조
건이 좋은 곳이었다. 그는 물 속에 있을 수 있었고, 강과 바닷가에서 오가는
'교통'을 모두 관찰할 수 있어다. 단 한가지 더바랄 만한 것이 있다면 그것
은 물 위에 떠 있는 피아노였을 것이다. 불가능하고도 해괴해 보이는 이같은
생각이 어느 날 거의 현길로 다가왔다. 퍼스 근처에서 요트 정박장을 새로
만들었을 때 개장식 축하연주를 부탁 받은 것이다.
개장식은 저녁 텔레비전 방송에 나올 예정이었지만, 촬영은 이른 아침에 해
두어야 했다. 계획은 방파제 끝에 그랜드 피아노를 올려 놓고 핼리콥터에서
연주장면과 방파제 자체를 많이 촬영하는 것이었다. 데이빗은 라흐마니노프
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광시곡>에서 낭만적인 18번째 변주를 연주하기로
동의했다. 녹화가 시작되기 전에 나는 데이빗에게 그만 하라는 신호를 보낼
때까지 18번째 변주곡을 계속 되풀이해서 치라고 했다. 텔레비전 촬영팀이
여러 각도에서 녹화를 많이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날은 몹시도 덥고 바람이 많이 불었지만, 모두들 아랑곳하지 않고 촬영
에 나섰다. 데이빗은 연주를 시작했고, 촬영팀은 녹화를 시작했다. 모든 것
이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갑자기 한 줄기 광풍이 불
어 피아노 덮개가 떨어져 나갔다. 덮개는 공중으로 떠올라 잠시 머무는가 싶
더니 요란하게 물을 튀기면서 바다에 떨어졌다. 데이빗은 마치 아무 일도 없
는 것처럼 전혀 박자를 놓치지 않고 연주를 계속했다. 카메라 촬영팀은 데이
빗의 그같은 집중력이 도대체 가능하기나 한 일인지 감탄하면서 다들 놀라워
했다.
서핑을 즐기던 사람들이 피아노 덮개를 뭍으로 끌고 올라왔는데, 촬영팀은
덮개가 공중을 멋지게 날아가던 때에 애석하게도 헬리콥터가 회전하고 있었으
므로 그 장면을 찍지 못해 너무나도 안타까워했다. 나중에 데이빗에게 기분
이 어땠는지, 덮개가 날아갈 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물었더니 그는 약간 어리
둥절한 듯이 말했다. "왜들 그걸로 그렇게 법석을 떠는 거죠?" 데이빗이 말
했다. "난 겁나지 않았어요. 그냥 연주를 계속했죠. 그게 오늘 맡은 사명
이었으니까요. 그게 내가 맡은 임무고 그래서 그냥 연주만 했어요. 내쪽으
로 날아와서 나를 두동강이 내지 않은 게 천만 다행이에요." 데이빗은 쿡쿡
웃더니, 이번 사건이 사실은 "너무너무 재미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피아노, 물, 게다가 헬리콥터까지 - 모두가 '교통'이었
으니까!
이 사건이 있는 며칠 뒤 우리는 에스더 프리드만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몹시 흥분해 있었다. 본 지역 음악계에서 영향력이 큰 폴 박사라는
사람과 만났다고 했다. 에스더는 그가 데이빗의 독주회를 주선하는 데에 크
게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했는데, 과연 그는 자기 집에서 음악의 밤을 열어서
데이빗을 고전음악계 사람들에게 소개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의했다. 에스더는
우리가 다음 달에 독일의 쾰른에 와서 이번 음악의 밤에 참석할 수 있는지를
물었다.
나는 마이클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 일로 지구 반대쪽으로 여행을 가는 것이
어떤 효과가 있을지를 물었고, 한동안 의논한 끝에 우리는 한번 참석해서 어
떻게 되는지를 보는 것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마이클은 우리와 함께 가
겠다면서, 이번 기회에 유럽 사람들을 좀 사귀어 두어야겠다고 했다. 우리는
비행기편을 예약했고, 따뜻한 옷은 모조리 챙겨 - 퍼스는 한창 무더운 여름이
었으니 기분이 어색했다 - 두 번째 유럽 여행길에 올랐다.
에스더는 우리를 자기 집으로 반갑게 맞아들였고 이번 계획에 대해 자세하
게 설명해 주었다. 개인 저택에서 16명 정도가 참석한 가운데 비공개 연주회
를 여는데, 연주가 끝난 다음에는 공식적인 만찬이 있을 계정이었다. 이틀을
연이어 그같은 행사를 열기로 했다.
우리는 쾰른에 도착했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데이빗은 러시아풍 셔츠
차림이었고 - 데이빗이 러시아풍 셔츠를 공식 연주복처럼 입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 된 일이었다 - 손님들은 모두들 그의 연주를 기다리고 있었다. 넓
다란 응접실에는 연주회용 뵈젠도르퍼 그랜드 피아노가 놓여 있었고, 식당에
는 멋진 도자기 접시와 꽃과 촛불이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보자
마자 데이빗이 그 처럼 격식을 갖춘 식사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주회가 있고 나면 특히 더 흥분해 있기 때문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것이다.
데이빗이 등장했고, 청중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뒤 리스트의 <발라드> 2번
B단조를 시작으로 <라 캄파넬라>, <헝가리안 광시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 날 저녁 노래를 흥얼거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나는 눈을 감고 데이
빗이 조용히 있기만을 빌었다. 제발 제발 제발 노래를 흥얼거리지 말라고 온
정신을 기울여 텔레파시를 보냈지만 그는 내 생각을 읽은 기색이 전혀 없었
다.
잠시 휴식시간이 되었다. 쉬는 시간에 나는 데이빗에게 노래를 부르는 일
이 절대로 있어서는 안된다며 상당히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쉬는 시간이 끝
난 다음 그는 <열정 소나타>를 연주했는데, 이번에는 흥얼거리는 소리가 훨씬
줄어들었다. 폴 박사는 감명을 받은 것 같았다. 행사가 끝난 다음 뒤 그는
마이클과 나에게 자기가 들어 본 베토벤 곡중에 최고였다고 말했다. 우리는
앞으로 있을 독주회 생각에 잔뜩 가슴이 부풀었다.
나중에 에스더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우리가 폴 박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
는 동안, 그 자리에 있던 리스트의 증손녀가 에스더에게 다가와서 말하기를
데이빗은 리스트의 작품에 너무나도 근접해 있어서 증조할아버지인 리스트의
화신이라고 해도 될 정도라 했다 한다.
그러나 독주회가 끝난 뒤 식탁에서 데이빗이 어떻게 나올까 하는 걱정은 현
실로 나타났다. 얼굴에는 피아노로 되돌아가고 싶은 표정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게다가 데이빗의 포옹과 끊임없이 늘어 놓는 이야기를 그다지 편안
하게 생각하지 않는 손님들도 있었다. 저녁이 깊어 갈수록 앞으로 독주회를
계속 열게 될 가능성이 멀어져만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결국에는 그렇게
되고 말았다.
에스더는 독주회 결과가 그렇게 되자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데이빗
을 위해 이번 기회를 마련하느라 애를 많이 썼으므로 실망은 더욱 컸다. 그
렇지만 우리는 그 같은 실망을 앞으로도 많이 겼을 것이므로 받아들이는 법도
배워야 했다. 하여튼 일단 이번 일에서 데이빗이 연주 동안 노래를 부르지
않도록 하는 일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은 분명해졌다.
하루 이틀 뒤, 마이클은 샤워를 하러 욕실에 들어갔는데 - 데이빗이 나올
때까지 꽤 오랫동안 기다렸다 - 옷을 벗고 수도꼭지로 손을 뻗었다가 거기 꼭
지가 없는 것을 알았다. 샤워 꼭지도 마찬가지였다. 떨어져 나온 정도가 아
니라 부품 상태로 분해되어 오렌지 껍질과 함께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벽에
박힌 수도관에서 물이 마구 쏟아지고 있었다. 마이클은 에스더를 더 이상 걱
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샤워하러 들어갔던 마이클이 혼자서 조용히 상황을 수습하자니 거의 한 시
간이나 걸렸다. 그는 작은 가위와 빗을 이용해서 샤워기를 겨우겨우 도로 조
립했다. 에스더에세는 그 날 있었던 자그마한 홍수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필시 에스더는 데이빗의 메니저도 데이빗 만큼이나 결벽증이 있는
괴짜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다음 주에 잘츠부르크에 도착했을 때 마이클은 또다시 데이빗이 욕실에
다 벌여 놓은 사건을 수습해야 했다. 우리는 도시 한가운데에 있는 낡은 기
숙사식 여관에서 묵기로 되어 있었다. 우리 방은 2층에 있었고 길다란 복도
한쪽 끝에 공동으로 쓰는 욕실이 있었다.
폭설을 뚫고 달려왔기 때문에 우리는 모두 춥고 지치고 배가 고팠다. 그러
나 데이빗은 우리와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가려 하지 않고, 혼자 방에 남아 비
스킷과 치즈를 먹겠다고 했다. 마이클과 나는 아래층으로 내려가고, 데이빗
은 혼자 남아 바닥에 엎드려 나름대로의 팔굽혀펴기를 하면서 읽을거리를 읽
었다.
비수기여서 손님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여관은 전체적으로 아주 조용했다.
포도주 몇 잔과 음식을 배불리 먹고 나니 마이클과 나는 피로가 나른하게 몰
려오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방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계단으로 다가가는데
계단이 이상할 정도로 젖어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나는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어 얼른 올라가 보았다. 세상에,. 복도 저쪽에서 물이 줄기차게 흘러오고
있었고, 욕실에서는 즐거운 노랫소리가 불안한 음정으로 퍼져나오고 있었다.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욕실에 달려들어가니 데이빗은 샤워실 하수구명을 마개와 비누로 막아 놓고
랄랄라 흥겹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물이 샤워실 턱을 넘쳐흐르고 있었다.
마이클과 나는 얼른 수도꼭지를 잠그고 수건을 집어든 다음 물을 닦아 내는
대장정에 올랐다. 여관 주인이 이 사건을 알면 정말로 곤란한 처지가 될 판
이었다. 방세를 특별히 싸게 흥정한 것이 바로 조금 전 일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복도를 오가면서 닦고 짜기를 반복했다. 데이빗은 주위를 맴돌면서
웃음띤 얼굴로 계속 말했다. "아, 미안해요, 달링. 미안해요."
몇 해 뒤 마이클은 이렇게 말했다. "장난꾸러기의 뒤치닥거리를 하느라 한
두 시간을 보내고 나면 그 사람이 아무리 거장이라 해도 존경의 눈길을 보내
기가 쉽지 않죠." 나도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이었다. 하여튼 잘츠부르크에
서 그 사건이 있은 뒤로 나는 앞으로는 데이빗이 욕실에 있을 때에는 더욱 신
경을 많이 써야겠다고 생각했고 - 욕실에 있는 남자를 여자가 신경 쓴다는 것
은 쉬운 일이 아니다 - 그처럼 커다란 물난리는 그 뒤로 또 한 번 더 있었
다. 우리가 머물던 어느 집 꼭대기층에서 데이빗이 '홍수'를 일으켰는데, 목
재 바닥으로 스며들어 아래층에까지 물이 넘쳐 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친구들 집에서 데이빗이 일으킨 그 나머지 '홍수'에서는 이에 비해 그다지
큰 피해가 없었지만, 데이빗은 새로운 말썽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손가락 힘
이 어느 정도인지를 잊어버리고 수도꼭지를 너무나 세게 잠근 나머지 손잡이
가 튕겨 달아나는 것이다. 집에서는 꼭지에 대한 감각이 익숙했기 때문에 수
난을 겪는 것은 주로 호텔이나 친구네 집 꼭지였다. 최근에 우리는 별장을
빌려 가족휴가를 보낸 적이 있는데, 거기서 내 아들 스콧이 꼭지를 고친 다음
에 데이빗에게 이렇게 권했다. 어디를 가든지 미용사나 트레이너를 데리고
다니는 연주자들처럼, 데이빗에게는 전속 수도 배관공이 따라 다니는게 어떻
겠냐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