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장 '피아니스트'와 '괴물'
우리는 앨리스 여사의 90번째 생일에 맞춰 오스트레일리아로 돌아와, 특별
한 생일선물을 궁리했다. 의논한 끝에 데이빗과 나는 여사가 평생토록 제일
사랑한 것이 연주였으므로 그것을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자는 것으로
결정을 보았다. 연주회를 열어 주자는 것이었다. 연주회를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한다는 것은 힘에 부칠수도 있으므로 우리는 여사를 데이빗의 연주회에
특별손님으로 모시기로 했다.
여사를 만나 이 이야기를 꺼냈더니 여사는 정말로 좋은 생각이라고 하면서
곧바로 곡목을 고르기 시작했다. 마이클이 바쁘게 움직여 홍보한 덧분에 연
주회 입장권은 - 이번에도 옥타곤 극장에서 열었는데 - 금방 매진되었다.
이번 연주회는 거기 모인 사림들 모두에게 아주 감동적인 것이었고, 앨리스
여사는 스카를라티와 리스트의 곡을 연주한 뒤 학생들과 친구와 팬들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았다. 여사는 훌륭하게 연주를 해냈고 데이빗은 여사의 기억력
에 놀랐다. 전체적으로 볼 때 여사에게해 드린 선물은 대성공이었다. 그러
나 단 한 가지 흠이 있었다.
연주회 마지막을 장식하기 위해 퍼스의 작곡가 매리 엔델이 특별히 곡을 썼
고 데이빗은 그 곡을 앙코르에서 초연하기로 했다. 그러나 연습할 시간이 거
의 없었으므로 곡을 외우지는 못했다. 나는 데이빗이 무대 위로 걸어 나가는
뒷모습과 매리를 번갈아 쳐다보며 그가 잘 기억하기만을 바랬다.
메리의 작품은 대단히 좋았고 데이빗은 이 작품을 아름답게 연주하기 시작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문득 나는 이제껏 한 번도 들어 본 일이 없는 곡
을 데이빗이 연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메리의 얼굴에는 두려움과
난감한 기색이 떠올라 있었다.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 흐르더니 곡은 원래대
로 돌아와 제대로 끝을 맺았다.
청중들 가운데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것 같았
고, 사람들은 이 작품을 좋아했다. 메리는 그처럼 가망이 없어 보이는 상황
에서 데이빗이 어떻게 빠져 나올 수 있었는지를 무엇보다도 알고 싶어했다.
데이빗은 약간 겸연쩍은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 "글쎄요, 내가 엉뚱하게
나가고 있다는 걸 알았죠. 그래서 올바른 곳으로 얼른 되돌아왔어요."
그 연주회가 있은 뒤 브라이언 리나커가 우리에게 지방 순회공연을 제의했
다. 처음에 데이빗은 주로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의 남서부 지역에서만 연주
했지만 그 뒤에 멀리 북서부 지방까지 영역을 넓혀, 지구상에서 가장 외진 곳
에 속하는 것으로 치는 여러 마을 주민에게 쇼팽과, 드뷔시, 멘델스존, 슈베
르트, 그리그, 거쉰 등을 들려 주었다.
이런 작디작은 마을 청중들은 무척 고마워하면서 - 일단 그런 지역으로 순
회공연을 오는 피아니스트가 별로 없었으니까 - 데이빗에게 그같은 마음을 전
했다. 피아노를 구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지만 우리는 포트 헤들랜드에서 연
주하고, 브룸에서는 독주회를 두 차례 열었고 다음에는 더비로 갔다. 더비에
서는 고맙게도 그 곳 수녀들이 수녀회의 야마하 직립형을 쓰게 해 주었다.
킴벌리 고원지대에 있는 쿠누누라의 아가일 다이아먼드 광산촌에는 당시 인
구가 1천2백 명 정도 였는데, 그 곳에는 연주회장도 피아노도 없었다. 친절
한 그 곳 은행장 한 사람이 자기 피아노를 쓰게해 주었는데, 커다란 실내경기
장 안에 자그마한 직립형 피아노가 서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우리는 약간 실망
했다.
연주회에는 주민 1/4 이상이 참석했고 - 나는 쿠누누라에서 연주한 피아니
스트는 데이빗이 처음이라고 확신한다 - 데이빗은 그들을 실망시킬 수 없었
다. 언제나 도전에 응하는 자세가 되어 있는 데이빗인 만큼 그는 그 작은 악
기를 달래고 어루만져 미묘한 표현까지 이끌어 내는 작업을 시작했다. 청중
에게 자신의 음악을 전달하는 데에 성공한 데이빗은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
가 여지껏 받은 기립박수 중에서도 가장 따뜻한 것이었다.
순회공연에서 돌아온 뒤 우리는 그랜드 피아노를 구입하기 위해 특별히 구
성된 위원회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기금을 모으기 시작했다는 내용이었다.
이같은 열성과 노력이 마침내 결실을 맺었고, 한 해 뒤 데이빗은 다시 쿠누누
라로 가서 새 야마하 그랜드 피아노로 개시연주회를 열게 되었다.
이런 지방 순회공연과 또 크리스티 코크번이 많이 주선해 준 텔레비전 출연
덕분에 낯설고도 요술 같은 현상이 생겨났다. 전혀 뜻밖의 사람들이 데이빗
을 알아보고 말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하도 작아서 다니는 길이 하나뿐인
마을의 우체국 직원, 고속도로 주유소에 멈춘 트럭 운전기사, 외딴 어촌 잡화
상에 들어온 노인 등 많은 사람들이 데이빗을 보면 마치 가까운 친구인 것처
럼 금방 말을 걸기 시작했다. 이들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그를 '피아니스
트'라 불렀는데 - '데이빗'으로 부르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 오스트레일리
아 사람들 특유의 편안하고도 간결한 투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아! 바로
그 피아니스트로군요! 잘 지냈어요? 피아노 계속 치세요!" 그러면 데이빗은
너무나 좋아했다.
데이빗이 연주를 할 때면 - 실황공연이든 방송이든 - 자신의 아주 많은 부
분을 청중들과 함께 나누기 때문에 벽이 없어 보이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
래서 사람들이 데이빗을 친슨하게 느끼는 것이 아닐까.
물론 이따금씩 사람들이 데이빗에게 욕을 하거나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불행한 경우도 있었다. 그 때까지는 그런 반응을 상쇄시킬만한 것을 데이빗
이 경험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사람들의 호감과 따스한 태도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예의 없는 몇 가지 말은 훨씬 더 받아넘기기가 쉬워졌다. 특히 내가 그
랬다.
오스트레일리아 북서부 지방 순회공연을 마치고 나니 다시 포이트뱅거를 만
나고 시옹의 상급 음악 세미나에 참가할 때가 되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짐
을 꾸려 유럽으로 출발했다. 세미나는 이번에도 성공이었다. 과정이 끝나
갈 무렵 시옹 음악원 관계자 한 사람이 포이트뱅거를 찾아와, 이브리 지틀리
가 맡고 있는 바이올린 학생들의 연주를 위해 반주를 맡아 줄 사람이 있겠느
냐고 물었다. 포이트뱅거는 데이빗이 초견 연주(악보를 보고 즉시 연주하는
것)에 뛰어나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데이빗에게 해 보겠느냐고 물
었다. 데이빗은 기꺼이 해 주겠다고 했다.
그 날 이브리 반에 나온 학생들은 열네 명쯤 되었다. 학생들은 한 사람씩
나와서 소나타를 연주했는데, 데이빗은 이들에게 피아노 반주만 해 준 것이
아니라 목소리 반주까지도 해 주었다. 세 번째 학생이 모차르트의 소나타 연
주를 마쳤을 때 이브리는 피아노 곁으로 다가가 데이빗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
으면서 말했다. "이 분은 음악의 화신이야."
그런 다음 이브리는 학생들에게 연주하는 동안 노래를 부르라고 했다. 그
들에게는 분명 특별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는 음악적 영혼의 진정한 표현
이기 때문이라며 데이빗이 연주를 하는 동안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고 했다. 비록 나는 거기에 반대하지 않았지만, 그 뒤 청중들은 대체로
목소리보다는 피아노 소리를 더 듣고 싶어한다는 점을 데이빗에게 강조해 두
어야만 했다. 데이빗은 이번 일에서 너무나도 신나 했다. 나는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이 계속 문제로 남아 있겠구나 싶었다.
오스트레일리아로 돌아오기 전에 데이빗과 나는 파리에 가서 친척의 결혼식
에 참석해야 했다. 우리는 가까스로 값싼 비행기표를 구했지만, 개트웍으로
가서 비행기를 타야 했다. 이 공항에는 이제껏 한번도 가 본 일이 없었는데,
거기 도착하니 아주 기분이 좋지 않은 곳이었다.
사람들이 마치 가축 때처럼 이리저리 몰려다니고 있었다. 좁은 까닭에 서
로 몸을 바짝 비비면서 탑승구를 찾아 헤매는 것이었다. 의자는 앉을 곳이
없고 식당에도 사람들이 가득했다. 사방이 너무나 막혀 있는 느낌이었다.
나는 앞으로는 이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되도록 돈을 좀 더 들여서
좋은 표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데이빗도 이 곳을 좋아하지 않는 눈치가 분명했는데, 사실 이 곳을 좋아할
만한 사람이 있을지 조차 의심스러웠다. 데이빗의 눈빛에 두려움이 나타나는
것이 보였고 마음의 동요가 커지는 것이 몸짓에 나타났다. 그가 손을 떨기
시작하자 나는 몹시 걱정이 되었다.
화장실로 가면서 우리는 청소원을 지나쳤는데, 청소원은 더러운 접시를 가
득 담은 수레를 밀며 인파 틈에서 애쓰고 있었다. 우리가 그 곁을 지나치는
바로 그 순간에 청소원은 몇 걸음도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 때문에 짜증을 내
면서 이렇게 말했다. "에이, 정말 신경질 나!" 그리고는 사건이 벌어졌다.
데이빗은 귀가 찢어질 듯한 소리를 지르고, 팔을 마구 휘저으면서 내 쪽으
로 바짝 붙어 섰다. 완전히 겁에 질린 표정으로 계속 비명을 지르면서 발버
둥쳤다. 나는 뜻밖의 상황에 너무나도 놀랐지만 당황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데이빗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이제껏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군중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데이빗의 고통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팔로 그를 껴안으며 그가 팔을 마구 휘두르는 것을 제지하려 했다.
그리고는 말했다. 빠른 속도로. 아무 일도 없다, 말뿐인데 뭘그러느냐, 청
소원은 당신을 겁주자고 한 말이 아니다, 내가 곁에 있으니까 안전하다. 그러
나 데이빗은 계속해서 비명을 지르면서 울었다. 낯설고도 가슴아픈 소리였
다.
주위에서 우리를 이상하게 보기 시작하자 이내 경찰이 우리를 에워쌌다.
다행히도 데이빗은 그 때쯤 진정하기 시작했다. 경찰 한 사람이 데이빗이 마
약에 취해 있는지를 캐물었다.
내가 상황을 설명하자 경찰은 충분히 이해했지만, 데이빗과 나는 모두 그가
이처럼 심하게 반응한 데에 대해 큰 충격을 받았고 까닭도 알지 못해 더욱 답
답했다. '미친'이라든가 '정신병원', '얼간이', '정신병자' 같은 말을 들으
면 데이빗은 병원에 있던 기억이 되살아 겁을 먹곤 했지만 이렇게나 두렵고
고통스러운 정도는 아니었다.
경찰이 물러간 뒤 처음부터 상항을 지켜보았던 상냥해 보이는 중년 여자 한
사람이 혹시 도와줄 만한 일이 있겠는지 물었다. 나는 데이빗이 이제 가라앉
아서 괜찮다고 하면서 고맙다고 말했다. 낯선 사람 얼굴에서 친절을 보니 그
염려하는 마음과 돕고자 하는 태도에 적잖은 안심과 위로를 느꼈다.
그 다음 한 줄 동안은 모든 것이 괜찮아 보였다. 데이빗은 오스트레일리아
로 돌아갔을 무렵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렇지만 얼마
안 가 그는 낮동안 보통 때보다 조금 더 불안해 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고
밤에는 좀 더 뒤척거렸다. 하루하루 지나갈 때마다 나는 데이빗의 증세가 그
저 기분이 극단적으로 바뀌어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가 점점 더 힘들어졌
다.
어느날 우리는 저녁 식사 초대를 받고 브래클리 부부 집으로 갔는데, 데이
빗은 기분이 보통 때보다 약간 더 동요되어 있는 상태였다. 식사를 마친 뒤
모두가 거실로 자리를 옮겼는데, 데이빗은 이상하게 불편해 하면서 안절부절
못하는 것 같았다. 피터 브래클리는 소파에서 데이빗 곁자리에 앉아 그 집
고양이 밍커를 안아올렸다. 고양이를 쓰다듬고 토닥거리면서 피터는 장난스
럽게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밍커는 스컹크, 밍커는 스컹크."
그 순간 데이빗의 행동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는 펄쩍 일어서더니 극도로
흥분항 상태가 되어, 보통 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앞뒤 없는 말을 지껄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그대로 뒤로 드러누웠는데, 너무나 세차게 누운 통에 소
파가 뒤로 넘어갔다. 데이빗은 팔을 마구 내젓고 고개를 뒤흔들었다. 얼굴
에는 겁에 질린 표정이 나타나있었다.
나는 재빨리 다가가 그를 단단히 붙들면서 발작을 멈추려 했다. 너무나도
겁나는 상황인 데다가 어쩌면 좋을지,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를 아는 사람이
우리 가운데에는 아무도 없었다. 잠시 뒤 - 우리가 느끼기에는 영겁 같았지
만 - 데이빗은 다시 몸가짐을 가다듬었다.
바바라와 피터와 나는 속소무책 그 자체였고, 피터는 고양이를 두고 아무
뜻없이 한 말 때문에 데이빗이 발작한 것 같아 너무나도 미안해했다. 어떻게
보면 그 사건은 개트윅에서 있었던 일과 비슷했지만, 이번에 계기가 된 듯란
'스컹크'는 사실 아무 의미 없는 말 같아 보였다. 그런데 왜 그런 발작을 일
으켰을까?
집으로 돌아온 뒤 데이빗은 피터가 한 말에서 갑자기 '학교에서 아주 더러
웠던' 일이 생각났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고양이를 '스컹크라고 부른 것을
듣는 순간 데이빗은 다섯 살 어린아이로 되돌아 간 것이었다. 그 때 그 학교
에서 대변을 참지 못한 일이 있었는데, 창피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여 달아
나 숨어 버렸다. 급우들을 보기도 부끄럽고 그들의 놀림감도 되기 싫었던 것
이다.
그렇지만 사건의 원인이 오로지 이것뿐이라고는 믿을 수 없었다. 데이빗은
전에도 그 시절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는데, 당시의 기억에
대해 이런 식으로 반응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그 일이 이제 와서 왜 그토록
스트레스를 주는 걸까?
그 날 밤 데이빗은 너무나 슬퍼하면서 자신을 두려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에
사로잡혔다. 그는 계속 자신이 '괴물'로 변해 버렸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
신의 참 모습을 영영 되찾을 수 없게 되지 않으까 겁을 먹고 있었다. 사랑하
는 사람이 자신의 감정을 마구 뒤흔들면서 스스로를 고문하는 모습을 보니 나
는 견딜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바바라의 어머니 릭스 위버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진정
으로 비범한 사람인 릭스는 스위스의 융 연구소에서 공부한 최초의 오스트레
일리아 사람이었고 실제로 융을 만나기도 했다. 오스트레일리아로 돌아온 뒤
릭스는 융 협회를 창설했고, 팔순이지만 아직도 융 방식의 정신분석으로 그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릭스는 딸 집에서 살고 있었으며 데이빗을 잘 알
았다. 간밤에 릭스가 외출에서 돌아온 뒤 데이빗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곧
바로 도와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 뒤로 두 주 동안 릭스는 '괴물'에 대해
데이빗과 대화를 나누었다.
릭스는 데이빗에게 커다란 스케치북을 사 주라고 했고, 데이빗은 날마다 릭
스를 찾아가서 '괴물'을 그렸다. 처음에 데이빗이 그린 그림은 마구잡이인
데다가 발작적이었다. 나선, 톱니모양 등 불규칙하여, 그가 마음속에서 겪는
고통을 놀랄 정도로 뚜렷하게 나타내 보여주었다. 그러나 상담이 지속되면서
선이 다소 대칭 모양이 되어 불안감이 많이 가시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
다. 두 주가 지나 데이빗이 꽤 평이하고 분명한 동그라미를 그리기 시작했을
때 럭스는 동그라미 둘레로 울타리를 그려 넣으라고 했다. 울타리에 갇혀버
린 '괴물'은 그 뒤로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마지막 상담이 있은 뒤 럭스와 나는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릭스는
우리가 유럽에 있을 적에 데이빗이 혼자서 약을 끊어 버렸다는 사실을 알려주
었다. 개트윅에서 있었던 불행한 일은 약을 끊은 뒤 나타난 첫 증세라는 것
이다. 데이빗은 필시 사는 것이 즐겁다 또 너무나 만족스러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는 '약'은 이제 필요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렇지만 나도 의사도
그의 자기판단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 두려워 - 당연히 동의하지 않았겠지만 -
약을 몰래 버린 것이다.
나는 놀랐다. 데이빗이 약을 그토록 절박하게 찾아 헤매던 그 밤 이후로
나는 데이빗이 약에 특히 의존하고 있고 늘 기꺼이 먹는 것으로 생각했다.
우리가 함께 지내기 시작한 것이 이제 3년째였지만, 실제로 약을 먹는지를 지
켜보는 일은커녕 약 먹을 시간이라고 알려주는 일도 필요치 않았다. 이제 나
는 앞으로는 이 문제에 관한 한 더 이상 데이빗을 믿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
을 알았다.
릭스는 데이빗이 어떤 일이 있어도 항상 약을 챙겨 먹을 것과 가끔 정신과
의사를 만나 보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데이빗을
정기 환자로 받아 장기간 진찰하면서 지켜보는 일은 릭스 자신의 나이 때문에
직접 할 수 없었고, 그래서 적당한 사람을 찾아 주겠다고 했다. 결국 릭스는
데이빗에게 가장 환벽한 의사를 찾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