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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壬寅年 *정착과 부흥의 해* 5月 ☞가족과 이웃 구령의 달☜ ※보고서를 정직하고 투명하게 기록하여 각 카페에 입력해 놓으면, 6월 30일 복사해갑니다
막4:26-41절) 믿음의 세계
만약 큰 힘이 있고, 많은 군사와 무기를 가진 사람과 믿음이나 신념을 가진 사람과 싸운다면, 누가 이길까? 누가 생각해도 세력이 크고, 많은 군사력을 거느린 사람이 이길 것입니다. 물론 짧은 기간 동안에는 분명히 세력이 큰 사람이 이기겠지만, 긴 시간을 두고 보면,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히려 신념(信念)을 가진 사람이 이길 때가 더 많습니다.
만약 인간에게 미래를 아는 능력이 있다면, 어떻게 될까? 미래의 이익을 최대로 올리는 쪽을 향해 과감하게 투자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주가(株價)가 많이 오르는 주식을 힘이 닿는 대로 사놓을 것이고, 또 경마를 하는 사람은 우승할 말에 자신의 전 재산을 걸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미래를 안다는 것은 공정하지 않은 게임입니다.
우리가 미래를 알고 살아간다는 것은 마치 학생들이 정답을 알고 시험지를 푸는 것과 같기 때문에 일종의 부정행위입니다. 학생들이 정답을 미리 알고 시험을 푼다면, 백점 맞지 않을 학생은 없을 것이며, 합격하지 않을 학생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아무도 미래를 모르는 상태에서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미래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숙제(宿題)입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곧 믿음입니다.
우리는 미래를 알지 못하지만, 무엇이가를 믿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결국 이 믿음을 가지고 미래의 불확실성을 이기고, 눈앞의 장애를 이기고,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믿는 자들에게는 그 이상의 것이 있습니다. 곧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통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Ⅰ.믿음의 본질
사람들은 신앙이 있든 없든 무엇인가를 믿는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은 그 믿는 것이 다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믿음을 가지고 있기는 한데, 눈에 보이는 것을 믿습니다.
우선 나와 친한 사람은 나를 배신하지 않고 지켜 줄 것이라는 것과, 내가 눈으로 보는 이 자연은 계속 이런 상태로 유지될 것이라는 것, 즉 내가 가지고 있는 지위나 학벌이나 재산은 나를 계속 지켜 주고, 유익하게 할 것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여기에 비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존재(存在)를 믿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보고 계시며,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를 지켜 주시기도하고, 도와주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나가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도 믿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져오신 하나님의 나라는 믿음의 세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믿을 때, 굉장히 불리한 것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일단 우리가 믿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믿기 때문에 일단은 믿는 대상이 확실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 때문에 믿음의 대상이 모호하고 불확실하며, 그 결과는 장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의 가장 큰 숙제는 어떻게 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것과 같이 믿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능력을 눈에 보이는 것처럼 현실로 끌어 올 수 있느냐? 는 이것입니다. 우리가 구약 성경에서 모세나 엘리야나 엘리사를 보면, 하나님의 능력을 마치 자신의 것처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해서 응답받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모세나 엘리야나 엘리사의 경우에는 기도도 하지 않고, 마치 자신이 하나님인 것처럼, 직접 병(病)에게 명령을 내리기도 하고, 기적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 안에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으로 성장하고, 하나님의 능력에 충만하게 되면, 우리도 이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여 주신 분이 곧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에게는 기적과 능력이 차고 넘쳐흘렀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가지지 않으셨지만, 순수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병(病)을 고치기도 하고, 죽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이런 놀라운 믿음의 세계로 인도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믿음에서 자라야 하며, 성령 충만해야 하는지를 오늘 깊이 생각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정말 무한한 능력과 축복의 세계가 우리에게 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믿음을 가져야만 현실의 모든 시험을 이기고,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눈에 보이는 이 세계만 전부라고 고집한다면, 이 세계가 무너지면, 우리는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자연에 이변(異變)이 생기거나, 사회에 큰 사건이 터지거나, 내 주위 사람들이 나를 버리면, 나는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주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보면, 결과만 믿는 것이 이기는 것 같고, 승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길게 내다보면, 결과만 움켜쥐고 사는 것은 더 이상 발전이 없고, 더 큰 것을 가지지 못해서 결국 주저앉고 말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기업가들 중에서도 먼 경기 변동을 예측하지 못하고,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해서 성공하는 사람들은 오래가지 않아서 주저앉고 마는 것입니다.
요즘 신문을 보면 두바이나 아이슬란드의 실패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아이슬란드는 아주 가난한 나라였고, 주로 바다에서 대구 잡이로 생계를 이어나가는 어업(漁業) 위주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외국에서 싼 이자의 외화를 끌어들여 빚으로 엄청난 호텔을 짓고,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금융산업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리하여 한해 국민 소득이 4만 달러를 넘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외국이자가 올라가니까 부도가 나서 나라는 빚더미가 되고, 결국 나라가 망해 버린 것입니다. 또 두바이도 석유가 나지 않는 중동의 한 토후 국가인데, 넘쳐나는 중동의 돈을 빌려서 인공 섬을 만들어 관광지를 개발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기름 값이 폭락하니까 외국 자본은 모두 빠져 나가고, 외국인들이 버린 차들만 공항에 수천 대가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이나 국가가 남의 돈, 즉 빚으로 흥청망청 쓰는 것은 결코 성공이 요래갈 수 없습니다. 이것은 먼 것을 보지 못한 탓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결과로 나타나게 될까?
Ⅱ.믿음의 특성
예수님은 놀랍게도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식물이 자라는 것으로 설명하셨습니다. 즉 하나님 나라의 원리는 동물의 세계가 아니라, 식물의 세계인 것입니다.
4:26-28절)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우리가 흔히 동물의 세계를 보면, 역동적이고, 철저하게 강한 자가 살아나는 세계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동물의 세계 프로를 보면서 감동하게 되는 것은 동물들은 오직 생존이라는 하나의 본능을 위해 처절하게 투쟁하고, 또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비해 식물의 세계는 너무나도 그 움직임이 정적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식물이 자라는 것이나 생활하는 것이 너무나도 천천히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는 거의 보지 못합니다. 단지 그 결과만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예를 들어서 농부가 씨를 땅에 뿌렸을 때, 우리는 씨에서 싹이 터지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그런데 씨를 뿌린 후에 하루 이틀 지나고 보면, 싹이 터져 있는 것입니다. 또 우리는 줄기가 자라는 과정도 볼 수 없습니다. 줄기는 너무나도 천천히 자라기 때문에 우리 눈으로는 그 변화를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루 이틀 지나고 보면 줄기는 이미 많이 자라 있습니다. 이것은 꽃이 피거나 열매를 맺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어느 날 갑자기 꽃봉오리가 생기게 됩니다. 그것이 참으로 신기합니다. 그러다가 다음날에 보면, 꽃이 활짝 피어 있고, 그 다음에는 열매도 그런 식으로 맺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믿음이 생기고,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것도 이런 식물이 자라는 것과 같은 과정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우리 믿음의 세계는 동물적 과정이 아니라, 식물적 과정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눈으로 보는 것은 모두 동물적 과정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부지런히 활동해서 먹을 것을 구합니다. 직장인은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해서 일합니다.
어느 때는 아주 먼 거리를 출장을 가서 일거리를 따오기도 합니다. 또 어느 때는 경쟁자들과 치열하게 싸워서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사회에서 성공하는 사람들은 가장 동물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동물적 본성은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동물은 이미 있는 것을 빼앗거나 이 세상에 있는 것을 모아서 자신의 것을 만들 뿐입니다.
예를 들어서 다람쥐는 부지런히 도토리를 모읍니다. 사람도 부지런히 일해서 부(富)를 모읍니다. 결국 부(富)를 많이 모으는데 성공한 사람이 부자(富者)가 되는 것입니다. 또 지식(知識)을 모으는데, 성공한 사람이 학자(學者)가 되는 것입니다.
동물의 세계의 특징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모으거나 경쟁자를 물리치고, 먹이를 차지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비해서 식물의 세계는 순수한 창조의 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식물 중에서 다른 식물이나 동물을 해치는 것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 까지나 예외적인 것입니다.
순수한 의미의 식물은 뿌리에서 수분을 흡수하고, 잎에서 태양 볕을 흡수해서 광합성(光合成)을 통해 당분을 만들어 냅니다. 일단 식물은 남의 것을 빼앗거나, 차지하는 과정이 아니라, 순수하게 새로 만들어 내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이 식물 자체가 자라는 것입니다. 식물은 작은 씨로 되어 있습니다. 이 씨를 땅에 심었을 때, 수분과 온도가 맞으면, 자라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자라면서 끊임없이 하는 것은 뿌리에서 수분을 빨아들이고, 잎에서 태양열을 흡수해서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우리 믿음의 세계의 아주 중요한 특징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이 어떻게 해서 생기는지를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인간에게 정상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원래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곧 우리 마음 밭에 씨가 떨어진 것입니다. 어느 정도 지난 후에 보면 우리 안에 믿음이 생겨서 자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에게 믿음이 생기게 되는지,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을 믿게 되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믿음의 세계는 결코 동물의 세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다른 사람의 믿음을 빼앗아 믿음이 더 커지는 것이 아닙니다. 또 우리는 다른 사람과 경쟁해서 이겨야 최고의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능력을 먹고 자라는 영적인 식물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있는 복(福)을 많이 모으는 것이 결코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 비결을 터득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일단 우리는 자라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자마자 능력의 종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 *우리는 은혜를 받았다고 당장 모세나 엘리야나 엘리사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자라는 새로운 믿음의 사람이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식물에게 가장 큰 사명은 자리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믿는 사람에게 가장 큰 일은 믿음이 자라는 이것입니다. 우리가 *자라는 것은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것이고, 우리의 속사람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더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꽃이 피는 것입니다. 식물에게 꽃은 너무나도 신기한 것입니다. 그 딱딱하고 무표정한 나무에서 어떻게 그렇게 섬세하고 가냘프고 아름다운 꽃이 필 수 있을까?
이 세상에서 식물의 꽃이 없었다면, 너무나도 칙칙하고 멋이 없는 곳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결국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꽃입니다. 들에 핀 꽃이고, 나무에 핀 꽂이고, 꽃병에 꽂힌 꽃입니다. 이것이 곧 *그리스도인에게 어느 순간 나타나는 영적 대부흥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부어져 넘쳐날 때, 우리는 이 세상에 굉장히 아름다운 자들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완전히 이 세상이 놀라고 흠모할 수밖에 없는 꽃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닙니다. 우리는 결국 너무나도 맛이 있는 열매까지 맺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있는 축복을 움켜쥐는 것이 진정한 축복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서 하나님이 비상식량으로 주신 것입니다. 인간에게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은 *내면적으로 사람이 변해서 꽂이 피고,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최고의 돈벌이는 우리의 속사람이 정금으로, 그리고 보석(寶石)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과정을 보지 못합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분명히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다음절에서 무엇인가 우리가 알 수 없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4:29절)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곡식 열매가 익으면, 농부가 낫을 대어 추수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대개 성경에서 낫을 댄다는 것은 심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각자의 인생을 열매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기준은 동물적인 것이 아니라, 식물적인 것이 됩니다. 즉 얼마나 이 세상에서 남의 것을 많이 빼앗아 부자가 되고, 이 세상에 있는 것을 얼마나 긁어모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느냐? 는 것으로 보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자신이 변화되었고, 다른 사람을 복되게 했느냐? 는 것으로 판단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꼭 변화되어야 하고, 영적인 복(福)을 받아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15:5절)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하셨고,
또
요15:2절)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 있으면, 변화되고, 열매를 많이 맺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어느 수액을 많이 빨아들이느냐? 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의 수액을 많이 빨아들이면, 잘 자라게 되고, 광합성도 잘 되어 열매를 많이 맺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의 수액을 많이 받아들이면, 식물이 병들게 되고, 결국 말라서 죽게 되는 것입니다.
Ⅲ.믿음의 능력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과 완전히 별개의 세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 속에 있으면서 세상과 함께 많은 것을 주고받게 됩니다. 이것이 곧 겨자씨 비유입니다.
4:30-32절)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우리는 사실 겨자씨를 흔히 보게 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집에서 잘 키우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마치 어떤 식물의 성장과정을 화면으로 보여주듯이 생생하게 설명해 주십니다. 겨자씨는 식물 중에서 아주 작은 씨입니다. 아마 다른 어떤 씨보다도 작은 좁살만한 씨인 것 같습니다. 일단 땅에 심어서 자라게 되면, 다른 어떤 식물보다 빨리 자라게 되는데, 나중에는 다른 일년생 식물들보다 훨씬 더 자라서 거의 나무같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아주 작게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믿는 사람도 별로 없고, 나타나는 결과도 대단하지 않습니다. 일단 자라기 시작하면, 급성장을 하는데, 다른 어떤 나무보다도 크게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두 가지가 일치되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는 모든 인간들에게는 공통된 필요가 있습니다. 그 하나가 자기 안에 있는 내면의 모순을 극복하고 진정한 자아를 되찾고자하는 욕망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죄 때문인지를 잘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들었을 때는 그 사람 속 깊은 곳에서 자아(自我)를 되찾는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결국 *죄의 짐을 벗고 진정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회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은 이런 사람에게 *하늘의 신령한 복(福)을 부어 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을 찾은 것과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福)주시는 것이 맞아떨어지면서 엄청난 축복의 부흥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되었을 때, *세상의 모든 새가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게 된다고 하셨고. 결국 세상 속에 하나님의 복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에스겔이 환상가운데 보았던 것처럼,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내린 생수가 죽음의 바다로 흘러가 죽은 바다가 다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진정으로 복(福)을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복(福)이 세상으로 흘러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세상으로 흘러가지 않으면, 세상은 너무나 살벌한 곳이 되고, 범죄가 급증하게 되며, 경제적으로도 크게 어렵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세상은 처음 설계될 때, 인간의 죄가 어느 수준 이상을 올라가면 자동적으로 재앙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잘 살아도 *죄가 넘치는 한 절대로 행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을 완전히 복음화하지 못하지만, *죄의 수위를 떨어뜨려 주어도 세상에는 끔찍한 살인이나 재난이 줄어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결국 그 나라를 지키는 것은 군인이나 경찰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즉 *영적 부흥이 일어나면, 전쟁이나 지진이나 전염병 같은 재난이 현저하게 줄어들게 되지만,반대로 *부흥의 불씨가 꺼지게 되면, 물질적으로는 잘 살게 되는데, 정신병이나 자살이나 크고 작은 재난이 계속 터지게 되는 것입니다.
Ⅳ.믿음의 기적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은 단순한 신념(信念)이 아닙니다. 실제로 이 세상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는 것입니다.
4:35-37절)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예수님은 힘써 설교하고, 너무나도 피곤하니까 제자들에게 건너편으로 가자하고, 아마 그대로 배에서 쓰러져 주무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너무나 지치셔서 잠시라도 배에서 내려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거나 대화할 수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주무시는 그대로 노를 저어 호수 건너편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도저히 예측할 수 없었던 광풍(狂風)이 불어 닥치면서 거센 물결이 배를 쳐서 배에 물이 가득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제 배는 곧 침몰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얼마나 피곤하셨든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배 고물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갈릴리 호수는 수면이 지면보다 상당히 낮아서 한 번씩 기류(氣流)의 변화가 생기면, 호수가 물이 끓듯이 끓는 일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이때 *광풍과 물결에 한번 걸려들면, 배는 침몰하고, 사람들은 죽게 된다고 합니다.
호수가 미치고, 바람이 미친 것은 온 천지를 만드신 주인이 거기에 계신데도 모르고 밀어닥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때 제자들은 당연히 자신들이 어부요, 갈릴리에서 오래 배를 몰았기 때문에 자기 힘을 다해 배를 피신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마 배 안에 물이 많이 들어와서 거의 침몰하게 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배를 몰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주무시고 계신 예수님이 눈에 들어왔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제자들은 마지막 수단으로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선생님이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 제자들은 처음에 예수님을 한 인간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저렇게 피곤해 골아 떨어져 주무시는 분은 인간이지, 신(神)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121:4절)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 하시리 로다."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목수(木手)이고 또 한 인간이셨습니다. 거기다가 배 위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어부요, 갈릴리에서는 경험이 많은 자들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면, 제자들이 한 행동은 너무나도 타당한 것이었습니다.
믿음이라고 해서 물결이 몰아치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도만 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은 최선을 다했지만, 자신들의 목숨을 건질 수 없었습니다. 이때 그들의 눈에 잠시 주무시고 계신 예수님이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아주 잠깐이지만, 예수님은 누구시며, 자신들은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는 예수님에게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결코 죽지 않으신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과연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서 죽지 않으신다면, 이 순간 몇 명을 구출할 수 있을까? 한 손에 한명씩 잡는다면, 두 명은 구출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4:39절)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예수님은 그 자리에서 *마치 바람이 귀가 있고, 호수가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꾸짖으셨습니다. 그랬더니, 그 즉시 *미친 것처럼 날뛰던 바람과 호수가 잔잔해졌습니다. 그리고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이렇게 책망하셨습니다.
4:40절)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이 부족하다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어떻게 하는 것이 믿음이 있는 것일까? 제자들이 과연 그 순간에 예수님처럼 일어서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었다면, 믿음이 있는 것일까? 그렇게 했더라면, 바람과 바다가 제자들의 말에 순종했을까?
예수님이 제자들을 책망하신 것은 바람과 바다를 보고 너무나 두려워해서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무서운 순간에도 생각했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에게는 주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너무나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는 말았어야 합니다. 그들이 *현실 앞에서 너무나 두려워했을 때, 제자들의 믿음은 얼어버려 작동이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물론 제자들은 거기서 죽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믿음을 작동시켜야 했습니다. 그 믿음이 무엇입니까? 그 *다급한 순간에도 계속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즉 *그들은 무서운 파도나 바람을 보지 말고, 손에는 노를 가지고 저으면서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의 이름을 불렀어야만 합니다.
제자들은 너무나 무서워서 예수님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도 순간적으로 한 사람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다른 길이 보이지 않았을 때, 예수님을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자라면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과 내가 따로 따로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예수님 안에 있게 됩니다. 즉 *나는 예수님의 눈으로 모든 것을 보게 되고, 예수님은 내 손과 발과 입을 통해 일하시게 됩니다.
내 속에 예수님이 충만하게 거하실 때, 즉 *내가 성령 충만하고, 능력 충만 할 때, 저절로 기도가 나오고, 능력이 나오게 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책망하신 것은 믿음이 완전히 없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자신들을 따로 따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파도와 물결을 먼저 보았고, 또 *자신들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생각과 맞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아버지의 눈으로 보셨고, 아버지의 능력이 자신을 통해서 나타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앞에서 늘 자신을 비웠고, 부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늘 아버지의 영(靈)으로 충만하셨습니다. 그래서 두렵지 않았고, 언제나 능력이 나타날 수 있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기적들을 볼 때, 예수님만 하실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즉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것이나, 물 위를 걷는 것이나, 성난 바람과 물결을 꾸짖는 것은 모두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아무리 기도하고, 소리를 쳐도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계속 자라서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에 가까워지고, 성령으로 충만할 때, 하나님의 능력은 나타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로 가면서 큰 폭풍을 만났지만, 예수님은 한 사람도 죽지 않았다고 말씀해 주셨고, 그는 죄수의 신분이었지만, 순간순간 지도력을 발휘해서 배는 파선했으나 한 사람도 죽지 않게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도 믿음과 지혜가 필요한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많은 우리나라 사람이나 세계 사람들은 유라 굴로 광풍을 만난 것처럼, 소리를 치면서 절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이 말씀은 온 천지를 창조하신 그 생명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너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주님을 붙잡아야 하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우리가 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면 인간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면서 모두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기적을 불러일으킬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함께 있는 가족과 이웃을 살릴 능력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5월은 *이웃과 가족 구령의 달*입니다.
그러므로 구호로 그치지 말고, 주님을 먼저 보십시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십시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의 기적의 능력이 나타날 것입니다.아-멘
*주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16:31절)
찬송가 542장 *구주 예수 의지함이*
▣새벽 마다 합심하여 기도할 제목
요14:13절)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약속하신
주님!Ⅰ.열방에서 많은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소서.
Ⅱ.동탄에 성경연구원 금년 내 설립할 동역자를 보내주소서.
Ⅲ.신실하고 충성된 후임자와 일꾼들을 보내 주옵소서. 아-멘
나의 생명이신 주님! 내게 맡겨주신 보물과 저를 주님 뜻대로 사용되길 원합니다. 아-멘
후원계좌 NH콕뱅크 302-8772-0191-01(헌금 내용)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리라.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 도 있느니라(마태복음6:20-21절)◑
대한 예수교 장로회(합동)교회갱신 성경연구원
정 의 영 목사 ☎ 010-8772-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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