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대학수학능력시험장 현수막이 걸린 교문을 지나 학교건물 뒤편에 주차를 했다. 가느다란 빛줄기가 새어 나오는 숙직실로 향해 출근 인사를 한 후 수능 시험지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수험생과 감독관이 고사장에 입실하기 전 밀봉된 시험지 박스를 열어 매 교시 문제지와 답안지 봉투 매수를 확인했다.
감독관에게 응시원서철, 응시현황표, 결시자현황표, 문제지 봉투, 답안지 봉투를 챙겨주고 시험시간에는 다음 교시 과목 문제지 봉투를 준비했다. 쉬는 시간이 되면 각 고사실에서 나오는 회수용 문제지와 답안지를 확인하여 날인한 후 박스에 넣어 테이핑 포장했다.
수능시험이 완전히 종료되면 모든 답안지 박스를 경찰호송 차량으로 넘기는 것이 나의 마지막 임무이자 수능 시험장 본부 요원의 역할이었다. 동시에 수능 시험장 행정실 직원이었던 나는 감독관 등 수능 당일 관계자들의 조식과 석식을 학교 급식소에서 제공해 주기 위해 급식 식재료 납품 계약을 체결하였다. 그리고 수능 시험 종료 후 감독관 수당을 현장에서 바로 지급하기 위해 하루 전날 은행에서 현금을 인출해 봉투마다 이름과 금액이 정확한지 여러 번 확인하여 준비했다.
마지막 교시 선택과목 시험이 끝난 후 모든 수험생들이 퇴실하고 고사장 정리가 마무리되는 시점이 어둑어둑해진 저녁 7시 무렵이었으니 새벽부터 14시간 동안 행여 실수로 민원이 생기지는 않을까 하는 긴장감의 연속으로 수험생들과 함께 호흡했던 기억이 이십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이러한 초임 시절 5년간의 고등학교 근무 경력 덕분에 당시의 수능 긴장감이 아직도 이어져 해마다 수능일을 가장 먼저 다이어리에 기록하는 습관이 남아있다. 근무하던 초등학교 운동회가 수능일과 겹치는 것을 발견하고는 운동회의 음향 사운드가 인근 고등학교에 피해가 갈 것을 우려해 운동회를 다른 날로 미루자 했고, 중학교 학사일정 계획 중에 기말고사 기간이 재량휴업일인 수능일과 겹친 것을 발견하여 시험일이 조정되도록 한 것도 나의 수능일 기록 습관 덕이다.
비행기 이착륙도 막아 하늘길도 막힌다는 올해의 수능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주관하는 한국의 대학입학 자격검사로 1994학년도부터 시행되어 온 시험이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내용과 수준에 맞는 출제로 학교교육의 정상화에 기여하고 개별교과의 특성을 바탕으로 신뢰도와 타당도를 갖추어 선발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하는 목적을 지니며 암기위주의 시험을 지양하고 고도의 정신능력을 측정하여 중등교육의 질적 수준을 높이고자 시행되었다. 올해는 전례없는 코로나 방역에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하는 코로나 수능이다.
이에 수능 감독관도 지난해보다 31% 늘어난 12만 9천명으로 역대 최다 인원이다. 특별고사장 감독관은 고글과 방호복을 착용한다. 수험생은 체온 측정, 마스크 착용, 손소독제 사용 후 시험장 입장이 가능하다. 시험장 방역 지침에 따라 수험생 중 무증상자는 일반 시험실에서 응시가 가능하고 시험 당일 발열 등 유증상자는 별도 시험실에서 분리 응시하며 자가격리자는 별도의 시험장에서 응시하며 확진자는 격리중인 병원이나 생활치료센터에서 응시하게 된다.
시험 도중에 기침 발열 등 유증상이 발생하는 경우 별도 시험실로 이동조치 가능하다. 울산에서는 29개 시험장에서 437개 일반 시험실과 83개 별도 시험실이 마련되어 있고 병원시험장은 코로나 확진자 수험생을 위한 울산대학교병원과 수술 입원 등 응급환자를 위한 동천동강병원이 준비되어 있다.
올해 수능 원서 접수자는 작년보다 5만 5천여명이 감소한 49만 3천433명이다. 지원자는 재학생 70.2%, 졸업생 27%, 검정고시 등 2.8% 비율을 차지했다. 수험생은 8시 10분까지 입실하여 감독관으로부터 검은색 컴퓨터용 사인펜 및 샤프를 지급받는다. 신분증 확인과 점심시간 빼고는 항상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며 비말차단 책상 가림막으로 좁아진 책상 공간에도 적응해야 한다.
점심 개인 도시락과 음용수를 준비하여 시험실 내에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식사를 해야 한다. 한국사 영역을 응시하지 않으면 수능 응시 자체가 무효처리 되고 성적 통지표 전체가 제공되지 않음을 유의하여 반드시 4교시 한국사 영역에 응시하여야 한다. 수능 일주일 전 전국의 고교가 원격수업으로 전환된다.
수능 전후로 치러지는 논술과 실기평가는 대학에 따라 확진자가 응시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수험생들 사이에는 코로나로 확진되면 면접 응시 불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수능을 치르는 자녀를 둔 학부모는 재택근무를 실시해 수험생 가족의 안전을 배려하고 안전한 수능 응시를 지원하는 방안을 내놓은 지자체도 있다. 우리 모두 수험생의 부모 마음이 되어 수능 방역에 적극 동참하자. 우리 자녀들이 안전하게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함께 응원해 주자. 코로나 속에서 안간힘으로 버텨온 시간이 헛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