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병이 이 편지를 꼭 올려달랍니다.
아직 화생방 훈련의 흥분이 가시지 않은 모양입니다.
하지만, 어린 훈련병은 최루가스 가지고 엄살 부리지만
뭐 제가 보기엔, 가스실 들어간 정도는 아니겠지만
우리 386 세대 부모들은 청춘시절 거리에서
최루가스와 더불어 일상을 보내서 뭐 별로 감흥이..
준재가 이번 주로 훈련이 끝나고 모레 수료식을 합니다.
훈련소 뛰쳐나올 줄 알았더니 뭔 일인지 포상을 받는다고 부모친지들도 부르네요.
하여, 교사생활 처음으로 이틀 연달아 연가를 내고,
-어찌 어찌 수업을 당기고 미루고 하여 내일 강원도로 갑니다.
참 아들이 대단키는 대단합니다.ㅋㅋ
(다음부턴 이등병의 편지를 기대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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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어머니
저번 주말에 작업하다가 볼펜을 주워서 어떤 특권을 누리는 기쁨으로 빨간 펜으로 써 봅니다.
근데 아무래도 어머니께 혼날 것 같아 그냥 쓰던 거로 쓰렵니다. 오늘 보내는 편지는 꼭 카페에 올려주세요. 사랑방, 학부모 카페, 우리 학년 카페... 왜냐면 오늘 했던 훈련이 그동안 했던 것 중에서 가장 할 말이 많은 훈련이었기 때문입니다. 입대하기 전부터 가장 피하고 싶었던 훈련, 화생방!!!
CS 탄이라고 부르는 최루가스 수류탄을 밀폐된 공간에서 터뜨리고 방독면 착용훈련과 정말 쓰잘데기 없는 군인정신을 기르기 위한 최루가스 마셔보기 훈련. 이 두 가지를 다 합쳐서 채 1분 안 되는 시간이지만 지옥을 경험했다는 표현에서 가감할 것이 없었습니다.
지옥 그 자체... 일단 제가 지급받은 방독면이 불량이라 가스실에 들어갔을 때부터 위험한 매운 맛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30초쯤 지나자 방독면을 벗어! 라는 소대장님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근데 그 과정이 정말 아비규환이라 뭐가 뭔지 구분이 안 가는 상황 속에 벗어야 될 상황인 것 같아 벗었습니다. 그보다 방독면을 쓰나 안 쓰나 다를 바 없을 것 같아 과감히 벗었습니다. 눈물이 저절로 펑펑 흐르더니 코 끝이 찡 해지며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아니 왔습니다. 지금 하도 정신 없는 와중에 편지를 쓰고 있어서 말투가 좀 오락가락합니다. 아무튼 눈물 콧물을 질질 흘리며 숨을 한 번 들이켰습니다. 미세한 바늘 수천개가 폐를 깊숙히 찔러대며 구토감이 올라왔습니다. 시야는 쏟아지는 집중호우로(눈물) 가시거리 1미터 이내로 좁혀졌습니다. 숨을 다시 한번 더 들이키려고 시도했는데 갑자기 기도가 컥 막혀왔습니다. 태극기 휘날리며에서 지병으로 숨을 못 쉬어 죽을 뻔했던 원빈이 된 기분으로 데굴데굴 굴렀습니다. 머리 속을 지나가는 수많은 장면들... 인생의 마지막이 이런 것인가 했습니다. 근데 그게 저만 그런게 아니라 주위 전우들이 하나같이 관등성명을 외치며 "숨이 막힙니다!" "죽겠습니다!" 를 외쳤습니다. 저도 본능이 이끄는대로 입구로 달려가 교관을 붙들고선 "70번 훈련병 신준재입니다! 숨이.. 숨이 안 쉬어집니다..! 우~웩" 그래도 교관으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는 변함없이 "참아!! 안 죽어!!"
어떤 전우는 교관의 손 위에 침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가스실의 문이 열렸고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기어나갔지만 여전히 숨이 안 쉬어졌습니다. 내가 엄살이 아니라 정말 문제가 있는 것이구나, 빨리 조치를 취해야겠구나 라고 생각하며 힘들게 숨을 쉬려고 하는데 조교의 불같은 재촉이 떨어졌습니다
"야!!! 빨리 안 일어나?! 빨리 뛰어 올라가!! " 이 놈이 드디어 가혹행위를 시작하는가 싶었는데 제 옆에도 서너명이 널부러져서 호흡인지 구토인지 알 수 없는 행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군대에선 고통조차도 통일되는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숨 쉬는 것도 편하게 못하며 지옥의 화생방을 끝마쳤습니다. (11/12~11/13)
(11/17)
저 위에 있는 페이지 표시란에 쓰여있는 날짜가 신경쓰이시죠? 현 페이지를 쓰기 시작한 날의 날짜를 써 놓은 것입니다. 이미 화생방교육한 지 5일이 지났습니다. 고통스럽기는 화생방이 최고였지만 그 사이에도 잊을 수 없는 훈련은 계속되었습니다. 특히 어제가 그동안의 교육 중에 가장 하드코어했습니다. 오전 중에 15키로의 주간 행군, 오후에는 숙영지 편성 및 숙영 준비 (텐트치기) 저녁 먹은 후에는 약간의 각개전투 그리고 숙영... 영하 3도의 추위에서 천막 텐트치고 바닥은 비닐, 박스깔고, 훈련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침낭 속에서 덜덜... 그나마도 중간에 깨서 한 시간 불침번 근무... 아침에 일어나니까 코가 조그마한 얼음덩어리가 되어 있더군요. 각개전투의 지랄같음도 만만치 않습니다. 땅바닥을 다양한 포즈로 기어다니는데 웬놈의 돌멩이는 지천에 깔렸는지... 다음 주 화요일엔 종합 각개전투와 야간행군이 있습니다. 각개전투 교관님은 제일 빡센 분이시고 야간행군은 20키로의 군장을 메고 밤을 꼬박 새서 20키로미터의 산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소자는 비만소대의 에이스! (혼자만의 생각일지 모르나)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무사히 훈련병 교육을 수료하겠습니다. 여기도 다음 주 금요일이면 떠나게 되어 자대배치받은 3포병 여단으로 가게 됩니다. 여기 양구에서 차 타고 2시간 정도가면 (조금 더 북쪽) 현리라는 곳이 나옵니다. 아직 한번도 안 가 봐서 저도 어떻게 생겼는지는 잘 모릅니다, 다만 양구랑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자대 배치되면 전화도 드리고 주소도 가르쳐 드릴테니 조만간 면회오실 준비나 해 두세요 ㅋㅋㅋ
스스로 존재하기 위한 인간이 되기 위해 열심히 살겠습니다. 입대한 지 한달이 갓 지난 시점에서 판단해 본 군대는 이렇습니다. 어딜 가나 싫은 인간은 있습니다. 그 집단 속에서 편하고 힘들고는 그 싫어하는 인간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느냐입니다. 이미 한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기에 똑 같은 짓을 반복할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그 대상들을 관찰하고 실험해보는 마인드를 갖고 행동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꼭 싫지만은 않더군요. 재밌기도 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인내심은 군대생활에서 필수항목입니다. 열받는 일이 있으면 일단 참습니다. 자신을 차갑게 만듭니다. 그 상태로 순간의 감정을 봉인시켰다가 이렇게 편지를 쓸 때처럼 개인정비 시간이면 다시 끄집어내봅니다. 그리고는 이성적, 감성적 양면을 골고루 따져보며 제가 대처할 방법을 단기적, 장기적으로 나누어 생각해 봅니다. 개인정비란 말이 썩 잘 어울립니다. 그럼 항상 건강하세요.
2007년 11월 18일 아들 준재 올림
첫댓글 준재의 글은 어찌 이리도 생생한지...... 참 잘 읽었습니다. 저도 훈련병한테 한번이라도 더 편지를 보냈어야 하는데 날짜를 흘려보내고 마는군요. 늘 밉기만 한 것 같아도 이틀이나 휴가를 내서 기어이 만나고픈 사랑하는 아들, 꼬~옥 안아 주세요.
준재는 역시..엄마를 많이 닮았나봐요~멋지네요!
멋진 훈련병 신준재 화이팅!
준재에게 - 체루가스의 아픔을 느껴보는 '특권' - 그거 아무나 느끼는 거 아니다 - 특히 요즘엔 - 그리고 미운 놈 한테 감정 동결했다가 이런 공간에서 녹여낸다고 했는데 - 그거 잘 해야 해 - 안 그러면 감정의 뒤틀림(왜곡)도 생기거든 - 하여간 준재는 준재야 - 준재 어머니 면회 잘 다녀오시길 바랍니다 - 이미 갔다 왔나? - 하여간 우리 아들 같기도 하고 ... 흑흑 - 한결이도 곧 가고파하는데 우얄꼬? - 나도 겨울에 훈련 받아 봐서 아는데 손등이 왜 그리도 시린지 미친다 미쳐 - 훈련 끝냈다니 축하하구 - 우리 부모들 담에 같이 면회 함 갑시다. 한결 빠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