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명성을 이어온 KBS2 연예정보 프로그램 [연예가중계]에서 16년째 한결같이 연예 소식을 전하는 리포터가 있다. 얼굴보다 목소리가 익숙한 사람, 이름보다 ‘짠돌이’ ‘재테크왕’으로 더 유명한 김생민이 그 주인공. 남을 빛나게 해주는 것에 익숙한 그지만 오늘만큼은 그와 그의 가족이 ‘주연’을 맡았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벽화는 동양화를 전공한 아내 유지희씨가 그린 것. 전체적인 거실 분위기는 믹스앤매치 기법이 강조되었다. 가구는 전반적으로 모던한 디자인을 선택한 데 반해 패브릭은 퍼플과 블루 등의 파격적인 컬러를 선택해 포인트를 줬다. 모던한 블랙 소파 꼬모빌리디자인, 화이트 소파테이블 꼬모까사, 의자 커버링 한일소파.
아이들을 생각해 한동안 거실에서 TV를 없앴다가 직업이 직업인지라 새로운 보금자리에선 TV를 다시 부활시켰다. 천연 무늬목에 다크그레이 하이글로시로 도장한 TV장은 라하비 퍼니쳐.
이미지 목록 출입문을 열면 유지희씨의 동양화가 먼저 반긴다. 오리엔탈 감성과도 잘 어울리는 모던한 콘솔 꼬모까사, 현관의 앤티크한 거울 안나프레즈. | 베란다에 장식장을 놓고 아이들 사진과 오브제를 디스플레이해 특별한 갤러리를 만들었다. 유러피언 감성의 장식장 꼬모까사. |
올 3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첫째 태린이를 생각해 이사를 더 이상 늦출 수 없었다. 소문난 효자답게 결혼 직후엔 부모님집에서 살다가 태린이가 태어난 후에 새로운 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그리고 막내 규하까지 네 식구로 늘어나자 아이들 대학까지 보낼 수 있는 최적의 장소를 물색하다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결정한 것. 대한민국의 모든 부모가 그러하듯 자녀에게 좋은 교육 여건을 제공하고 싶은 욕심에 소위 말하는 ‘강남 8학군’에 입성했다. 김생민은 “부모는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일축했다. “아버지가 저한테 그러셨던 것처럼 저 역시 가능하다면 아이에게 최고의 환경을 제공해주고 싶어요.”
오랜 저축 습관과 재테크에 대한 혜안 덕분에 좋은 곳에 집을 마련했지만 이미 많은 돈을 지출한 탓에 인테리어는 간소화할 수밖에 없었다. 인테리어를 담당한 ‘꾸밈 by 조희선’의 임종수 디자이너는 가족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해 각 공간의 강약을 조절하는 것으로 주어진 예산을 활용했다. 가장 힘을 준 곳은 주방으로, ‘가족실’ 같은 분위기를 원해 쿠킹과 다이닝을 한 곳에서 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ㄱ’ 자형에서 ‘ㄷ’ 자형으로 부엌의 레이아웃을 바꾸고 개수대와 조리대를 대면형으로 설치해 아내는 가족을 바라보며 음식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외 다른 곳은 구조 변경 없이 마감재와 가구, 조명, 패브릭 등을 이용해 스타일의 변화를 주는 ‘홈드레싱’ 형태로 진행되었다.
아내 유지희씨는 연애할 때 김생민의 노래 실력에 반했다고 한다. 특히 뮤지컬 [지킬앤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을 기가 막히게 부른다고.
김생민이 개그맨으로 데뷔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애초부터 대한민국을 웃음바다로 만들겠다는 거창한 포부는 없었다. “고등학생 때 편의점을 지나가는데 당시 유명했던 여배우 CF 출연료가 3억이라는 기사를 봤어요. 연예인이 돼서 CF를 찍으면 떼돈을 벌겠구나 생각했던 거죠.” 그래서 서울예대 연극과에 지원했지만 현실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디션에 수없이 떨어지며 연기는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운 좋게 개그맨 시험에 붙었지만 카메라 울렁증 때문에 어렵게 온 기회마저 놓쳤다. 창창한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좌절감이었을 텐데 그는 넉살 좋게 웃었다. “그게 제 장점인데, 상황이 나빠져도 삐치지 않아요. 주전투수가 안 되면 외야수가 되고 그것도 안 되면 후보가 되자는 주의거든요.” 또 심부름과 인사는 누구보다 잘할 자신이 있었다. 그의 성실함을 일찍이 알아본 작가들이 아침 방송 프로그램에 소개해줬고, 누구를 웃겨야 한다는 부담도 없고 연기가 아닌 팩트를 전달하는 역할이라 무리 없이 해낼 수 있었다. 이에 탄력 받아 1996년 [시네마데이트]리포터 공개 오디션에 합격했고, 같은 해에 [연예가중계]에, 그 이듬해엔 [출발 비디오 여행]에 리포터로 데뷔해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귀에 잔잔하게 감기는, 리포터와 잘 어울리는 편안한 음성을 지녔다고 생각했는데, 한때 그는 자신의 목소리가 콤플렉스였다고 했다. 성실한 캐릭터인 그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 방송을 15년쯤 했을 때 비로소 깨달은 바가 있었다. “참 당연한 진리인데, 사람마다 목소리는 다 다른 거잖아요. 나도 다른 사람과 다른 목소리를 가졌을 뿐이고. 그렇게 생각하니 세상에 안 좋은 목소리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이후 자신감이 붙어 목소리에 힘이 생겼다.
이미지 목록 식구는 단출하지만 손님 초대가 잦은 편이라 최대 8명까지 앉을 수 있는 큼지막한 식탁을 놓았다. 주방은 모던한 블랙 컬러에 조명과 체어의 크리스털 소재로 포인트를 주었다. 화려한 크리스털 펜던트 조명 쓰리아이전기, 투명한 디자인 체어 오아이, 캔들을 켜놓은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LED 캔들라이트 필립스 조명, 주방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화이트 모던 한식기 행남자기. | 도우미 없이 직접 살림을 꾸리는 유지희씨의 부엌 세간들. 매일 아침 남편과 아이들은 제철 과일로 착즙한 신선한 주스를, 자신은 커피를 내려 마신다. 커피머신 필립스 더파드식스, 원액기 휴롬, 냄비와 볼을 분리해 샐러드 볼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산뜻한 컬러의 양수냄비 쿤리콘, 미니멀한 디자인의 후드 하츠, 화이트 대리석과 블랙 우드가 모던한 싱크대 사월나무. |
처음 만났을 때부터 김생민은 미래의 아내가 될 여자에게 돈 얘기를 꺼냈다. “자신은 밖에서 돈을 벌 테니까 저보고 가정을 지키라고 했어요. 뭐 이런 사람이 있나 싶었죠.” ‘작업’의 방법도 특이했다. 정작 당사자에게 연락 한 번 안 하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자신의 여자처럼 말하고 다녔다고. 아내 유지희씨가 당시 김생민이 지분을 가지고 있었던 레스토랑의 벽화를 그려주면서 두 사람의 본격적인 만남은 시작되었다. 만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로맨틱하지 않아서 그렇지 자상한 사람이라는 것도, 자신한테만 인색한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제가 치아에 콤플렉스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치과에 데리고 가더니 치아 교정을 시켜주는 거예요. 사실 그땐 결혼 이야기도 없었는데, 한두 푼이 아닌 돈을 주저 않고 지불하는 거 보고 놀랐어요.”
그렇다고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 김생민은 고정 스케줄만 8개 정도로 돈 버느라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기념일에 못 보는 것은 기본이고 2주에 한 번 보거나 심지어 20일간 못 본 적도 있었다. 자신을 너무 소홀히 하는 모습을 보고 결혼하면 마음고생 좀 하겠구나 싶었다고. 그렇다면 어떤 점이 돌아섰던 유지희씨의 마음을 다시 움직였을까? “어느 날 오빠가 저에게 묻는 거예요. 오늘 밤 함께 도망가자고 했을 때, 제가 모든 걸 다 버리고 따라올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인 남자가 되는 것이 먼저인지, 아니면 저와 미래 가족의 행복을 위해 돈을 버는 게 먼저인지 헷갈린다고요. 그때 이 사람이 나를 많이 좋아하는구나 느꼈어요. 믿어도 될 것 같다는 확신도 들었고요.” 일반인보다 더 일반인 같은 남편이 불만인 적은 없는지 물었다. “김생민이란 사람이 유명인보다는 제 남편으로 또 아이들의 아빠로 남았으면 해서 현재에 아주 만족하고 있어요. 근데 가끔 속상한 상황이 생길 때도 있어요. 한번은 동엽 오빠 부부와 함께 외출한 적이 있는데 사람들이 동엽 오빠만 알아보며 사진 찍자고 하는 거예요. 혹시 오빠가 상처받았을까 봐 그게 좀 마음 아프더라고요.”
이미지 목록 옐로 책장과 스카이블루 컬러 벽지, 트라이앵글 패턴의 커튼이 조화를 이룬 아기자기한 느낌의 공부방 겸용 서재. 책 내용이 재미있는지 아니면 아빠가 읽어주는 것이 좋은지 태린이 얼굴에 미소가 떠날 줄 모른다. 북유럽 감성의 책장•책상•의자 모두 두닷, 스카이블루 벽지 개나리벽지, 공간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커튼 루미오. | 아이 방 베란다에 만든 놀이공간. 공간박스 밴키즈. |
김생민은 부모님이 미국으로 이민 가기 전에 했던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라는 한마디가 귓가에 맴돈다고 했다. 드라마처럼 악재는 같은 시기에 찾아왔다. 아버지가 다니는 중소기업이 부도가 났고, 할머니가 풍을 맞아 쓰러지고, 큰누나가 대입을 앞두고 있었다. 당시 아버지는 택시 운전을 시작하며 묵묵히 가장의 역할을 해내셨다. 아이들이 눈에 띄게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어린 시절의 아버지 모습과 자신이 오버랩되는 것은 당연지사. 당시 아버지가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에게 물고기를 주는 대신 물고기 잡는 법만 알려줄 것이라고 했다. 또 자신의 육아 철학을 ‘수비형 축구’라고 표현했다. 아이들 스스로 필요로 하기 전까지 미리 사주진 않겠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살 수 있는, 준비가 된 아빠가 되는 것.
그렇다면 아내는 남편을 어떤 아빠라고 생각할까?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편이에요. 일이 바빠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는 않지만 일 끝나면 곧장 집으로 와서 최선을 다해 아이들과 놀아주죠. 놀이터에도 같이 가고 점프도 하고, 남편이 주로 활동적인 것을 좋아해서 둘째 규하는 엄마보다 아빠와 노는 것을 더 좋아해요.” 육아에 적극적인 데 반해 교육은 아내의 영역이라며 슬쩍 떠밀었다. “7살짜리와 28개월의 아기를 데리고 교육에 대해 말하는 것은 좀 웃기잖아요. 사실 아내가 교육 쪽에 관심이 많아서 어디서 좋은 정보를 많이 듣고 오더라고요. 워낙 알아서 잘 하니까 저까지 안 보태도 되겠구나 싶어요.” 그리고 또 하나, 자녀들 각자의 운명이 절대적으로 있다고 믿기 때문이기도 하다. 공무원이 되길 바라셨던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그렇게 반대하던 방송일을 21년째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미지 목록 첫째 태린이와 막내 규하의 침실. 아이들이 뛰어도 안심인 침대 밴키즈. | 숙면에 필요한 것을 제외한 모든 장식적인 요소를 배제한 아늑한 느낌의 안방. 아이들과 한 방에서 자다가 이사하면서 드디어 부부만의 공간이 생겼다. 침대 두닷, 차분한 느낌의 베딩 잇츠디자인, 협탁 스탠드 필립스 조명. |
꿈이 뭐냐고 물었다. 예상했듯이 거창한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방송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 유난히 운전대가 가볍고 행복하다는 생각이 드는 날이 있어요. 앞으로 그런 기분을 자주 느꼈으면 좋겠어요.” 이권 개입보다는 시청자들이 정말로 궁금해하는 소식을 전하고, 홍보 목적이 아닌 진짜 재미있는 영화를 소개하고 싶다는 의미일 터.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와서 후회는 없다고 했다. 딱 한 가지만 빼고. “27살 한창 피부가 보송보송할 때 제대로 한 번 찔러보지 못한 게 좀 아쉬워요. [개그콘서트] 같은 무대에 서서 안 웃겨도 자신 있게 빵 한 번 터뜨려볼걸 하는 그런 후회가 남아요.”
경쟁이 치열한 연예계 생리를 짐작하기에 [연예가중계] 16년, [출발 비디오 여행] 15년, [동물농장] 13년의 이력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참는 것이 익숙해져 감정이 없어졌다는 그. 어느 지점에서 화를 내고 자신이 무엇을 주장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타협한 것은 아니다. ‘정직’ ‘성실’ ‘진심’ 이런 단어야말로 지금의 김생민을 만든 근간이다. “인생은 마라톤 같은 거잖아요. 지금 누가 앞서고 누가 뒤처지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지금처럼 힘 조절을 잘하면 막판 스퍼트를 발휘할 수도 있고. 저도 제 인생에 한 번쯤은 점프할 기회가 있다고 믿어요. 그때가 올 때까지 늘 그랬던 것처럼 묵묵하게 제 인생을 사는 거죠.” 죽는 날까지 자신의 인생에 충실할 사람, 그의 막판 스퍼트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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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2014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