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무 삼십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오시네, 해는 시든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한 빗소리
빈 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기형도의 시 <엄마 생각>이다. 누구에게나 돌이겨보면 가슴한켠이 아려오는 추억이 있다. 부모님에 대한 추억일 수도 있고, 친구들에 대한 기억일 수 있다. 때론 나쁜 기억도 있지만 아련하고 애틋한 기억도 있다. 신기한건 그때는 죽을 듯이 힘들고 괴로운 일들이어도 돌이켜보면 추억이 된다는 것이다. 아픈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아물고 새살이 돋는 것처럼 시간은 결국 약이다. 옛날에 엄마가 말씀하셨다. 나이 들면 추억을 하나하나씩 되새기는 재미로 살아간다고.
나는 어느 새 그때 엄마 나이가 되버렸다. 그리고 난 엄마의 말이 무슨 의미였는지 알게 됐다.
엄마는 가끔씩 장농속에서 접착지가 끈적끈적 붙은 앨범을 꺼내놓고 시간을 보내곤 했다. 사진을 보는 엄마는 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가끔은 사진속 누군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된 지금, 나도 옛날 사진을 들춰보는 일이 많아졌다. 하지만 엄마와 다른 점이라면 누런 앨범이 아닌 최신 노트북으로 사진을 본다는 것이다. 어릴 적 사진까지 전부 디지털인화를 해놓았기 때문에 엄마처럼 장농에서 무겁게 앨범을 꺼낼일이 없다.
그래서 엄마 사진도 전부다 파일로 저장해 드렸지만 엄마는 말씀하셨다. "사진은 컴퓨터로 보면 재미없어."
한때 1998, 1997, 1994 등 세대 감성을 건드린 드라마가 대유행했었다. 드라마속 내용 보다 드라마속 등장하는 소품들에 동요했고, 그 시절만의 감성에 열광했다. 그때의 물건들과 그때의 감성은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화양연화를 연상시켰다.
화본역 주변 거리 풍경
작은 간이역, 화본역
영화 <리틀포레스트>가 아니었으면 그저 조용한 시골 마을이라고 생각했을 작은 도시 군위에 그 시절 감성을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 바로 화본역과 추억박물관이다.
젊은 세대에게는 낯선 시대에 대한 신선함을 주고, 나이가 든 세대에게는 추억과 향수를 느끼게 할 수 있는 곳이다.
고속열차가 생기면서 전국의 작은 기차역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옛날에는 서울에서 부산에 가려면 일일이 역 이름도 외우기 힘들정도로 수십개의 역을 지나쳐야 했다. 자연히 열차 속도는 느려졌다. 장거리 여행이다보니 중간중간 오래 머무는 기차역이 있기도 했다. 고속버스의 휴게소같은 공간이다. 이 역에 도착하면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기차에서 쏟아져 나온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바로 국수집. 짧은 시간동안 국수 한그릇을 먹어야 하니 면발을 씹는다기 보다 그냥 훌훌 삼켜켜버린 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지만, 국수 타임은 그 시절 기차여행의 가장 큰 재미였다.
간이역인 화본역에 도착하면 그 시절 추억이 자동재생된다. 화본역은 지금도 기차가 다니는 역이지만, 오히려 기차 탑승객보다 여행자들이 더 많다. 화본역 내부를 보려면 천원의 입장권을 사야 한다. 요즘은 어플로 좌석까지 미리 예약할 수 있지만 그 시절에는 기차표 하나 사려면 매표소에서 긴 줄을 서야했다. 운이 나쁘면 내 바로 앞에서 만석이 돼 입석표를 사야하기도 했고, 더 운이 나쁘면 입석표마저 못사 돌아올때도 있었다.
화본역에서 옛날 추억에 잠기다보니 어느 새 출출해진다. 그러면 꼭 먹어야 할 음식이 바로 국수다. 옛날에는 기차역 주변에 국숫집이 많았다. 국수는 빠른 시간내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그당시 씹지도 않고 넘기던 두툼한 면발이 아닌 잔치국수지만, 화본국수는 줄을 서서 먹어야 할 맛집으로 소문나있다. 점심때가 훌쩍 지났는데도 국숫집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사장이자 주방장은 일일이 직접 국수를 들고 손님앞에 내놓는다. 그 정성이 대단하다. 화본국수의 특징은 날계란에 있다. 국수 위에 올려진 계란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달라진다.
계란을 조금씩 국물에 풀어 먹으니 그 맛이 개운하다.
화본역 별미 '화본국수'
추억박물관, 엄마아빠 어렸을 적에
화본국수까지 먹은 뒤에는 화본역 앞에 있는 <엄마아빠 어렸을 적에> 박물관을 가보면 좋다.
옛날 중학교를 개조해 만든 추억박물관인데, 2천원이라는 입장료가 아깝지 않을 만큼 볼거리가 많다.
나무로 만든 낮은 책걸상이 놓여진 교실. X세대인 나에게도 낯선 물건들이 제법 보였지만, 마루바닥과 책걸상만큼은 기억이 선명하다. 국민학교 시절 일주일에 하루는 대청소날이었다. 선생님은 왁스와 걸레를 주셨고, 우리는 일제히 엉덩이를 든채 줄을 서서 걸레를 잡고 마루를 닦았다. 몇번 왔다갔다하면 금새 마루바닥은 반짝반짝 윤이 난다. 그제서야 선생님은 수고했다며 우리를 집에 보내주셨다. 요즘같으면 학부모들이 가만있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아! 교실 앞에 있는 오르간도 기억이 난다. 교실 마다 늘 오르간이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선생님들은 다들 오르간연주를 잘 하셨다. 난 태어날때부터 타고난 음치여서 음악 수업을 가장 싫어했다. 음악시간만 되면 난 금붕어처럼 입만 뻥긋댔다. 한번 목소리를 낸 적이 있었는데, 선생님이 갑자기 연주를 멈추더니 이 불협화음이 어디서 나는것이냐며 호통을 쳤다. 범인으로 날 지목할까봐 조마조마 했다. 그 뒤부터 난 다시 금붕어가 됐다. 오르간은 나에게는 안좋은 추억의 물건이다.
다른 박물관과 달리 이곳에서 가장 신나하는 건 부모들이었다. 엄마아빠들은 교실에 있는 사소한 물건 하나하나도 유심히 보며 옛날 이야기를 쏟아냈다. 아이들이 듣건 말건 엄마, 아빠들은 아이들처럼 즐거워하며 '그 시절 나는 말야~'라는 이야기를 쏟아냈다. 역시 추억은 만국 공통어이다.
화본을 벗어나니 다시 2022년이다. 그러나 난 여전히 그 시절이 그립다.
핸드폰도 없고, 인터넷도 안되던 답답한 시대였지만 돌아갈 수 없기에 더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