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4월 편) (22.04.24)
1. 벚꽃과 할머니
벚꽃이 만개한 4월 초. 와이프와 석촌호수를 걸었다. 오후 반차를 쓰고 나온 노력을 비웃듯 호수를 둘러싼 길은 꽃 반 사람 반이었다. 꽃이 뭐라고. 하얀 벚꽃이 뭐 대단하다고 바쁘다 바뻐 현대사회에 사람들을 이리로 불렀는지. 길어야 2주, 비라도 오면 일주일 활짝 폈다 질 텐데 인산화해 속에서 셀카봉을 들게 하고, 생판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치명적인 표정을 짓게 하는 건지. 얄미운 벚꽃이지만 그냥 지나칠 수는 없기에 나도 연신 카메라 버튼을 눌렀다.
일년 치 벚꽃과 사람을 다 보고 돌아오는 길. 나름 동네에서 벚꽃 예쁜 단지로 유명한 우리 아파트도 하얀 꽃잎들로 가득했다. 멀리서 지팡이 두 개를 힘겹게 짚으시며 내려오던 할머니 한 분이 벚나무 아래 멈춰서 허리를 젖히고 꽃을 바라 보신다.
‘꽃이 예뻐서 보시는 건가’
할머니는 주섬주섬 핸드폰을 꺼내시더니 꽃 나무를 사진에 담는다. 한 장, 두 장, 세 장. 석촌호수 인스타 릴스 영상 찍던 학생들 못지 않게 신중히 사진을 찍으시던 할머니는 세 네 장쯤에서 만족한 듯 다시 지팡이를 잡고 길을 갔다.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께 봄 기운을 전달하려 했을까, 만개한 벚꽃 사진 가족 단톡방에 올려 어린 손주에게 보여주려 했을까. 아니면 그저 아름다워 간직하려고. 지팡이를 짚으며 가던 길도 멈추게 한 것은 봄의 아름다움이었을까. 아름다움은 무엇이기에 힘겹게 가던 인생 길도 멈추게 할까. 아름다움이 어떻기에 사람 많은 줄 알면서 석촌호수로 발을 이끌었을까. 답 없는 질문에 나는 그저 꽃을 찍는 할머니의 모습을 멀리서 사진으로 담았다.
다음 날 인천에 사시는 친할머니와도 벚꽃을 보러 갔다. 10여년 전 뇌졸중으로 쓰러지신 이후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위해 드라이브 스루 꽃놀이를 준비했다. 석촌호수가 사람 반 꽃 반이라면 월미도와 자유공원은 자동차 반 꽃 반이었다. 도로에서 차만 보다 가겠다 싶어 한적한 길로 차를 돌렸고, 다행히 그 길에도 벚꽃은 있었다. 할머니가 충분히 꽃을 보실 수 있게 천천히 도로를 달리던 중 할머니는 나지막이 말햤다.
"꽃이 참 예쁘네"
평소 낭만과는 거리가 있는 할머니의 생경한 한마디에 뒷자리를 돌아봤다. 할머니는 차창 너머 보이는 벚꽃을 놓칠새 라 눈에 담고 계셨다. 우리 할머니도 벚꽃을 좋아하셨구나. 90세가 훌쩍 넘은 할머니에게 아흔 번째의 벚꽃놀이도 아름답고 설레는 일이었다. 아흔 번째라고 아름다운 것이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름다움은 항상 새롭다. 그 새로움이 석촌호수로 이끌고, 가던 길을 멈춰서게도 하고, 아흔 번 반복되는 인생도 살아가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2. 임원 워크샵
연산홍이 울긋불긋 절정을 이룬 4월 어느 날 회사 전 임원이 참석하는 경영전략 워크샵 지원 차 연수원에 갔다. 오후 일정은 그린미팅(이라 적고 골프라 읽는다)이고, 저녁은 만찬 이후 커뮤니케이션 행사(라 적고 뒤풀이라 읽는 술자리)라 사실상 워크샵 다운 시간은 오전 세미나가 유일했다. 본부와 연구소, TF 각 조직장이자 임원들이 돌아가면서 올해 중점 실행 아이템 경과사항과 앞으로의 계획을 발표하는 시간. 워크샵 노트를 작성하기 위해 녹음기를 켜고 귀를 기울이며 노트북 키보드를 연신 두드린다. 비장했던 워크샵은 점차 자기 조직 자랑대회 겸 사장님 눈치보기 경연장으로 변해간다.
"올 한 해 수고 많으셨습니다. 22년은 올해 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일하고 실질적인 성과 창출을 내는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물론, 내년에 안 계실 분들도 몇 분 계시겠지만…"
작년 하반기 워크샵 때 사장의 농담 반 서늘한 진담 반 발언 이후 실제로 연말 조직개편 때 칼바람이 불었다. 과거에 없었던 파격적인 임원 해고와 신규 임원 인사가 났다. 설마 주인 없는 회사 월급 사장이 여러 명 자르겠어 라고 생각했던 모두의 예상을 엎고 신임 사장은 인사권을 휘두르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 때부터였다. 임원이 회의 때 마다 사장의 표정과 말 한마디에 오감을 곤두세웠던 것이.
“올해 금융위원회 데이터 전문기관 라이선스는 경쟁률이 4:1 수준이라 솔직히 만만치 않습니다. 하지만 작년에도 과기부 라이선스를 딴 제가 반드시 획득하겠습니다. 많이들 도와주셔야 합니다...”
평소 눈치 없이 자기자랑이 심해 사장에게 ‘찍혔던’ A전무는 내가 얼마나 어려운 일을 잘 해낼 것인지에 대해 말하곤 이내 사장의 눈치를 살핀다. A전무의 거친 발언과 사장의 불안한 눈빛. 그걸 지켜보는 나는 그야말로 전쟁 같았다. 행정고시를 패스하고 공공기관에서 과장으로 일하면서 미국 변호사 자격증과 박사학위를 딴 A전무의 화려한 스팩이 민망하게도 그는 흔들리는 사장의 눈빛을 확인하곤 고개를 숙이며 앉았다. 그런 A전무를 보며 엷은 미소를 띄는 경쟁 조직의 B상무.
별 시덥지 않는 회의록을 놓칠새 라 타이핑하며 문득 생각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직장인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월급쟁이는 무슨 동력으로 사는가. 두 시간 반의 워크샵 동안 내가 얻은 답은 권력과 인정 그리고 불안이다. 50, 60살 먹은 아저씨들이 모여 어떻게든 자리를 지키기 위해, 한 계단 더 올라가려고 소리 없는 전쟁을 벌이고, 즉결 심판을 받는 모습은 조금 짠했다. 허나 그것이 그들을 살아가게 하는 이유이자 동력이 아닐까. 같은 월급쟁이로서 나 역시 무탈한 워크샵 진행을 위해 온 신경을 임원들에게 쏟았고, 무사히 내 자리를 당분간 지켜냈다.
3. 투병 후 만난 선배
백혈병으로 1년 반 휴직 후 복직한 회사 선배와 점심을 먹었다. 선배는 병을 진단 받기 수개월 전부터 있었던 전조 증상들과 의사와 독대하며 처음 병 선고 받았을 때의 기분. 그리고 가족에게 병을 알렸을 때의 감정과 힘겨웠던 투병 생활에 대해 담담히 이야기 했다.
“제일 힘들었을 때가 언제인지 알아? 항암치료 받을 때? 완치될 거라 희망이 없어 보일 때? 아내에게, 딸에게 백혈병임을 이야기 했을 때? 아니야. 가장 힘들었던 건 부모님께 얘기할 때였어.”
아내에게 이야기 할 때는 오히려 비장한 마음이었단다. 놀라지 말라고. 너무 많이 울지도 말라고. 네가 울면 안 된다고. 네가 우리 집 가장 역할을 해야 할 수도 있다고. 그리곤, 같이 한참 동안 부둥켜 안았단다. 그런데 부모님께는 도저히 아프다고 말을 못하겠더라고. 당신들이 낳은 자식이 아프다고 부모 앞에서 말하려는데 차마 입이 안 떨어지더란다.
짧은 점심 시간 대화의 결론은 보험이었다. 그나마 탄탄하게 들은 보장 보험으로 경제적 타격도 덜했다고. 너도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보험 들어 놓으라고. 그래야 정말 큰 일이 생겼을 때 가족들이 덜 힘들 수 있으니 미리 많이 들어 놓으라고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었다. 선배는 생각지 않은 투병 생활을 통해 삶의 가치관도 목적도 변한 듯 했다. 투병 생활도 가족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고.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현실적인 위기감과 두려움에 남겨질 가족들을 위해 살겠다 다짐했다고.
죽을 고비를 넘기거나 죽음의 문턱에 서 본적이 없는 내가 인생의 목적이 가족이 된 선배를 모두 이해할 수는 없었다. 혈육의 가족이 삶의 동력이자 목적인 삶. 나를 잃어버리는 경험을 이미 한 사람들은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한 삶을 살게 되는 걸까. 가족의 힘으로 살아가는 삶. 그 삶을 사는 선배는 비장해 보였고 어른 같았다.
첫댓글 질문을 던지며 이야기를 하나 하나 푸는 방식 재밌었어요. 이 질문을 하다보면 그레이가 무엇으로 사는지 나름의 이야기가 생기겠죠. 글을 읽으면 필자가 관조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그레이가 전면으로 나오는 글이 궁금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