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이민 2기 200. 슬픈 이별
우리 카비테 공소에서는 수요일마다 시간 여유가 되는 사람들 몇 명이 모여 미사를 드린다.
보통 미사와 다른 것은 탁자에 둘러앉아 묵상과 이야기 나눔을 하는 것이다. 마음 속에 있는 사연이나 깨달은 점,느낀 점들을 서로 나누고 듣다 보면 또 다른 차원의 깊은 성찰이 되고, 그 때문에 가끔은 힐링되는 감동을 느낄 수도 있다.
8월 19일.수요일. 미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누군가의 휴대폰이 울린다. 그 휴대폰으로 미사 끝에 우리가 들은 소식은 너무도 슬프고 충격이었다.
불과 몇 개월 전, 우리 성당엔 낯 선 얼굴이 보였다.
아무도 성가 반주를 하는 사람이 없어 그냥 육성으로만 부르던 이 작은 공소에 성가 반주를 하는 교우 글라라가 온 것이다.
검소하고 수줍아하는 그녀가 온 후로 우리는 반주가 있는 우아한 성가를 부를 수가 있어서 고맙고 좋았다.
그리고 8월 16일. 우리는 공소창립 5주년을 기념하며 봉고차 네 대에 모든 교우들이 나눠 타고 프에르토아즐의 리조트로 피정을 떠났다.
나를 비롯한 늙은 여자들은 글라라의 차를 타게 되었고, 남편이 탄 봉고차는 운전을 해 주겠다고 선뜻 나선 글라라 남편이 몰았다고 한다.
아름다운 바닷가 리조트에서 미사 후 게임을 하고 상품을 타고 친목을 다졌다.
내가 글라라와 가까이서 만나고 함께 먹고 웃고 이야기 한 건 그 날이 처음이었다.
그녀는 우리를 형님이라 부르며 나의 구닥다리 유머에도 너무 잘 웃어서 한껏 가까워졌다. 수요미사에도 나오고 싶다고 한다.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수요일. 우리에게 전해진 소식은 그 부부가 자택에서 피살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가슴을 떨며 아니기를 바랐으나 점점 사실로 확인되는 구체적 소식이 들려왔다
그로부터 모든 교우들의 일사분란한 봉사가 시작되었다.
몇 분은 사건 현장으로 찾아가고, 아직 유족이 도착하지 않은 상태에서 검시, 부검 현장을 지켜주고, 입관을 하고 밤 늦은 시간에 공소로 옮겨오고 그 시각까지 몇몇 분은 기다리며 기도를 했다.
새벽 두시경에 도착한다는 유가족을 맞으러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폭우를 뚫고 수사님은 밴을 가지고 공항으로 나가셨다.
교우들은 서로가 카톡을 주고받으며 내 일처럼 밤늦도록 때로는 새벽까지 분주했다.
슬픔은 하늘에 닿도록 크지만 그 와중에도 꽃으로 싸인 품위있는 관이 준비되었고 엄숙한 빈소가 마련되어 고인을 기리게 되었다.
금요일 오전엔 퀘죤 성당 신부님과 교우들이, 그리고 오후엔 마닐라 본당 신부님과 레지오 단원들이 미사와 연도를 올렸다.
그리고 8월 22일 8시. 공소 신부님이 집전하며 장례 미사를 드리고 관이 성당을 떠났다.
유족들이 쓰러질듯 우는 동안 우리도 모두 눈이 붓도록 울었다.
그 분들은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싶다며, 필요한 곳에 도움을 드리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그리고 정말 검소하고 베풀며 사신 착한 분이셨다고 들려온다. 또 앞으로도 정말 좋은 일을 많이 하실 분들이셨다.
필리핀에서 가끔씩 총격사건 소식을 듣긴 했지만 아는 분을 이렇게 아쉽게 보내며 너무 큰 슬픔과 충격으로 마음을 추스리기 힘들다.
아마 꽤 외딴 곳에 살고 계셨던 듯하다. 면식범일 거라는 한국뉴스도 나온다.
아! 쉬임 없이 비는 왜 그리도 줄기차게 내리는지... 마음 가다듬고 두손 모아 경건함과 사랑을 담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 뿐이다.
첫댓글 ...................................
총기가 흔하고 보니 ….헌법에 자기방위를 위해
무기소지가 합법화 되다보니 .……
억울하게 죽는 것을 방지도 하지만 .………
총기 사고도 보통일이 아니구먼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