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 오동공원 자락길

[자비화]

코로나로 인해 답사는 쉬고 있다. 올해에는 학생들과 강릉 지역에서 허균과 허난설헌을 주제로 답사할 예정이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취소됐다. 대신 집사람과 집에서 가까운 데크 로드를 검색하여 힘들지 않게 바람이나 쐬며 기분 전환하고 있다. 그동안 다녀온 길들을 중심으로 ‘기분 좋은 산책길’이라는 테마로 글을 연재할 생각이다.

토요일(2020. 9. 12), 아침부터 이슬비가 온다. 올해에는 코로나에 비가 연속이다. 비가 억수 같지 않아 집에서 가까운 데크길을 검색해 봤다. 성북구에 있는 오동공원이 차로 20분 정도된다. 산은 ‘장위동 돌산’ 또는 ‘월곡산’이라 불리는데, 서울숭인초등학교나 월곡인조잔디축구장으로 가야 산책길 데크로 곧장 올라갈 수 있다. 주차장은 따로 없고 인근 도로가 주차장에 주차해야 하나 지정 주차구역이다. 자락길을 걷고 내려와 월곡인조잔디축구장을 한바퀴 돌 때 주차장이 보였다. 거기에 주차하고 축구장 쪽 계단을 올라오면 될 것 같다.

월곡인조잔디축구장 왼편으로 데크 계단을 올라서면 오동공원 자락길이 나온다. 경사가 급하나 계단을 편하게 만들어 놓아 별로 힘들지 않다. 계단 끝에 올라서면 그야말로 정상까지 평지나 다름없다. 계단을 다 올라서니 백일홍 옆에 나무 그네가 하나 있다. 평소 같으면 집사람과 앉아서 몇 번 구르고 갔겠지만 이슬비가 오는 관계로 패스했다. 자락길 시작점 맞은편에 화장실이 있다. 오동공원에서 유일한 화장실이다.

해치상 같은 바위

자락길 시작길 안내표지판부터 정상까지 거의 데크길로 연결되어 있다. 데크길이 꺾어지기 전에 바위를 하나 만나는데 마치 옆모습이 해치 닮아 카메라에 담아봤다. 데크길은 지그재그로 각도를 심하게 틀어 놓여 있어 어린아이들이나 노인들, 심지어 보행약자들도 쉽게 오를 수 있다. 숲은 넓지 않지만 가는 길에서 보이는 것은 모두 울창한 나무들뿐이다. 서울 성북동의 한 작은 산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저 멀린 남산 N서울타워가 보인다

월곡정

채 30분도 걷지 않은 거 같은데 정상 애기능터에 도착했다. 팔각정 아래에 비를 피해 사람들이 앉아서 전망을 구경하고 있다. 팔각정 이름은 ‘월곡정(月谷亭)’이다. 정상은 넓고 큰 평평한 바위다. 바라보이는 전망이 너무나 좋다. 바위 바로 앞에는 동덕여대가 있고 멀리 좌로부터 용마산, 천장산, 구룡산, 청계산, 우면산, 관악산, N서울타워, 개운산 등이 눈에 들어온다. 이처럼 이곳은 경관이 수려해 TV 드라마나 영화촬영지로도 인기가 좋다고 한다.

바위이야기 빗돌

팔각정 앞에 ‘바위 이야기, 월곡동 돌산, 그 곳에 가면’이라는 글이 가슴을 울린다.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을까? 흔히들 말하는 억겁의 시간 동안 나는 이 자리 ‘월곡산’ 끝자락에 있었다. 너무 오래된 희미한 기억들을 제외하면 ‘역사’라 말하는 찰나의 순간 속에서 나를 세상에 알린 건, 어린 나이에 세상을 저버린 고종의 큰아들 완화군(1868~1880)을 내 안에 품으면서이다.

조선 시대 후기의 슬픈 기억을 간직한 내게 사람들은 ‘애기능터’라는 이름을 붙이고 관심을 가져 주었다.

한동안 품었던 완왕을 서오릉으로 보내고, 난 새로운 삶을 준비했다. 사람들은 소나무 숲이 우거지고 풍치가 뛰어난 내게 1966년 근린공원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붙여 주었고, 도심 속의 시원한 그늘과 서울의 전경을 감상하는 장소로 사랑받는 내게 ‘서울시 선정 우수 조망 명소’라는 별명과 함께 ‘월곡정’이라는 팔각 왕관도 씌워 주었다.

처음에 어색하고, 무겁기만 하던 단순한 왕관은 요즘 들어 나의 작은 즐거움이 되었다. 때를 가리는 건 아니지만, 특히나 바람이 선선해질 즘 왕관 한쪽의 ‘북 카페’에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엄마의 목소리, 배를 깔고 엎드려 책을 읽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난 울긋불긋 단풍 옷을 입기도 한다.

나의 하루는 고즈넉한 일상의 반복이다. 이른 아침, 밤새 앉은 이슬을 털어내며 기지개를 켤 즘이면 한 무리의 사내들이 내게로 온다. 서로 인사를 나무며 내 이마 위에 둥글게 모여 체조로 건강한 아침을 시작한다. 멀리 보이는 용마, 개운이, 천장이, 청계, 관악이, 구룡이, 우면이 등 오랜 시간 나와 함께한 친구들과도 아침 인사를 나누다 보면 분주한 하루를 시작하는 도시의 아침 경관이 보인다.

한바탕 도시의 북적임이 잦아들 즘이면 낯익은 얼굴이 하나둘 왕관 아래 그늘에 자리 잡아 세상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하고, 월곡산 둘레길을 탐방하려는 탐험가들이 잠시 내 곁에 머물며 서울 경치를 감상한다. 그렇게 짧은 오전 시간이 지나면 소나무, 참나무, 진달래 그리고 작은 야생화와 같은 숲속 친구들과 함께 따듯한 햇살을 맞으며 한가로운 낮 시간의 여유를 즐겨본다.

아이들이 올 시간이다. 숙자, 영식이, 말숙이... 어린 시절 내 품에서 뛰어 놓던 아이들이 허리는 꾸부정하게, 무릎을 토닥이며 날 찾아온다. 내 이마에 줄지어 자라는 풀처럼 주름살 진 얼굴의 그 아이들을 위해 난 낮 동안 따듯한 햇살에 데워 놓은 자리 한 켠을 준비한다. 넓고 평평한 내 왼쪽 볼에서는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간식을 먹고 이야기 나누고, 편안하게 누워 본다. 약간 볼록한 오른쪽 볼에 걸터 앉은 아이들은 내 콧등에 등을 기대고 먼 산을 바라보며 명상에 잠기기도 한다. 오른쪽 볼 아래로 ‘데크로드’라는 나뭇길을 따라 내려간 아이들은 숲으로 둘러싸인 너른 터에서 올록볼록한 내 입술을 보며 또 다른 풍경 속에서 명상을 즐기기도 한다.

도시의 열기가 식어가는 저녁 시간이면 난 또 다른 아이들을 맞을 준비를 한다. 화려한 도시의 불빛이 수놓은 경관을 담으러 사진기를 들고 찾는 아이들, 퇴근 후 가족과 함께 산책을 나온 아이들, 드라마 주인공처럼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 그렇게 오늘도 하루의 켜가 쌓인다.

또 다른 영겁의 시간이 흐르고, 찰나의 순간에 세상은 변하겠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또 하루의 켜를 위해 오늘도 난 월곡산의 한 자락에 서 있다.”(원본 그대로 인용했음)

애기능터

북한산

바위를 의인화하여 쓴 글이다. 그 글 왼편에 ‘애기능 터’ 빗돌이 있다. “조선조 고종의 장자였던 완왕이 12세 때 조졸(어려서 죽음)하여 묻혔던 자리”라고 씌어 있다. 완왕은 고종이 귀인 이씨에게서 얻은 자식이다. 명성황후의 아들 순종보다 6살이 많다. 그는 살아생전에 완화군이라 불렸으며 1897년 대한제국(황제국)이 선포되면서 완왕이라 높여 불렸다. 왜 고종은 일찍 죽은 장자를 이곳에 묻었을까. N서울타워가 있는 곳이 남산이고 그 너머가 경복궁이다. 부모를 그리워하는 어린 자식을 위한 배려였을지도 모르겠다. 정말 바위는 아낌없이 방문객들에게 모든 걸 내주는 것 같다. 그 모든 것이 바위에서 바라보는 강북의 전망이다. 반대편에서는 불암산, 수락산은 물론 북한산과 도봉산도 보인다.

왔던 길로 다시 걸었다. 되돌아오는 길이 시시할 것 같았는데, 전혀 다른 풍경이다. 갈 때 보이지 않았던 삼림욕을 할 수 있는 벤치가 군데군데에 있다. 외길로 향나무가 멋드러진 길도 보인다.

솟대

솟대도 몇 마리 있다. 솟대는 삼한시대의 소도에서 유래했지만 안내 표지판에는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 축하할 일을 기념하는 뜻으로 세우는 상징물”이라 써 있다.

오동근린공원 들꽃향기원

데크 계단으로 내려가기 직전, ‘오동근린공원 들꽃향기원 조성’ 현수막이 붙어 있다. 2020년 11월 8일이 완공이라 하니 내년 봄이나 여름에는 더 많은 사람들의 방문을 받을 것 같다.

주차 시설이 아쉽지만 애기능터 전망이 너무 좋아 맑은 날 다시 올 것 같다.

[출처] 기분 좋은 산책길1 – 서울 성북구 오동공원 자락길|작성자 빛과소금

[무심결]

글솜씨 굿 ㅎ

[자비화]

역사선생님이시랍니다. 역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