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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행복한 삶이 부엇인지 생각해보는 순간들이 있었다.
내가 인간으로 태어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시간과 또 수많은 삶의 조각들이 연결되어 오늘날을 이루고, 나는 그안에서 나를 발견하면서 새로운 나를 만들어 가면서 지금까지 잘 살았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나는 오늘 또 한번의 새로운 경험으로 온몸에 전율이 이루어 지는 것들 느끼며, 아직도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나이드신 어르신들을 보고 배운다. 그래도 열심히 살며 도전하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것에 동의하며, 새롭게 인생을 배워나갈 것이다.
우리는 4월27일 아침 일찍 서울을 출발해서 대구로 향했다.
내가 요즘 관심을 갖고 진리 탐구를 위해 노력하던 한국불교대학에서, 삼사순례라는 수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는 특히 3월에 윤달이 있어 기도하기 아주 좋은 때라는 것이며, 불교에서 말하는 인과응보의 전생의 업장소멸을 위한 기도와, 다음생에 내가 태어날 때 좋은 몸을 받기위해, 전생과 이생에서 내가 쌓은 나쁜 업을 삭히기 위한 생전예수재<예수시왕생칠재>를 꼭 하면 좋다는 윤달이기도 하다. 간략하게 " 예수재" 라 하기도 한다.
예수재는 사후에 갚아야 할 빛과 과보를 미리 갚아 생전에 사후의 복전을 일굼을 말한다. 즉 살아있는 현재의 내가 나를 위해 지내는 재 라는 것이다.
예수재는 불교 수행의 근본 성격을 성실히 반영하고 있다. 죽음을 맞기전 살아 생전에 미리 참회의 공덕으로 업장을 소멸하고, 지계와 보시로 내생의 복덕을 기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달은 19년에 7번 있다는데, 윤달은 '군달"이나 "공달'이며 '여벌달' 또는 '덤달'이라고도 한다. 윤달에는 어떤 일을 해도 해가 없는 달이기에, 집을 새로 짓거나 묘지를 이장하거나 수의를 짓거나, 혹은 시체를 거꾸로 세워도 탈이 없다는 것이다. 동서남북 사방을 다스리는 신들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관장하는데. 윤달은 이 어느 계절에도 속하지 않기에 그 신들에 의해 잘잘 못을 간섭받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나를 위해 좋은 일을 해주며, 나를 위해 노력하는 착하고 아름다운 좋은 인연을 만난 경험도 꽤 많다. 백이면 팔십프로 이상은 그렇다. 그런데 약 일프로정도의 사람들이 나를 위해 배려하지 않으며, 또한 나와의 나쁜 인연을 만들어가면서, 배신과 악업을 쌓아가는 것을 바라보며 마음이 몹시 아프다. 평생 그런 짓들을 하는 사람들에게 시달리며 악순환의 고리가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래서 인과응보의 법칙을 생각하게 되었으며, 불교에 대한 관심이 생겨 자세히 알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들이 나에게 베풀어준 악업을 내가 좋지 않게 보려고 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아마 어쩌면 내가 전생에 그들에게 했던 나쁜 일들이, 지금 이생에서 나에게 업보로 돌아온 것이라 짐작이 가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부처님 말씀에 선악의 과보는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과 같다. 삼세의 인과가 순환하여 빈 틈이 없으니 이 생을 헛되이 보내면 나중에 후회해도 따를 길이 없다....대반열반경후분
선악의 과보가 함께 서로 좇아오는 것은 소리가 메아리를 일으키는 것과 같고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과 같아서 변할 수 있는 자가 없으며, 또한 쇠사슬과도 같아 끊을 수가 없으니 경솔하게 엽을 지어 무거운 고통을 스스로 불러들이지 말아야 한다.....대살차니건자소설경
남을 공격하면 공격을 당하고, 원망하면 원망을 받고, 욕하면 욕을 듣고, 성내면 성냄을 받게 된다....법구경
분명 자업자득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들에게 전생이나 과거에 어떤 일들을 해서, 아마 좋지 않은 인연을 만들어 내가 지금 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여나 해서, 그들을 미워 할 수가 없다. 아니 미워하지 않으려고 한다. 내가 불교에 관심을 갖고 진리를 탐구한다는 자체가~ 부처님처럼 마음을 잘 다스려 또 다른 업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그러니 앞으로 나를 해하고자 하는 분들은 분명 나중에 업을 받을 것이 분명하니, 여기서 정리를 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는 생각이다.
인간으로 태어나 본인에게 해를 주는 사람을 바라보면서, 용서를 한다는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내가 잘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나라는 인간을 볼 때 ~~ 맨날 해꼬지해도 가만 있으니 또 한번 해보자...라고 생각 한다면 큰 오산이다. 나에게 해꼬지 한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생길까봐서, 걱정이 되니..단지 행복을 빌어주기 위해서 참으려고 하는 것이다.
아~ 자 사람은 분명 바보거나 어쩌면 좀 모자라는 사람이 아닐까 하며, 뒤돌아서서 손가락 질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나는 절대 바보도 아니며, 그렇다고 멍청하거나 스스로 자신의 이득을 위한 일들을 포기해서도 아니다. 그 사람들의 인과응보에 대해 걱정이 되는 부분이 있어서다.
단지 불교에서 말하는 업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사과를 하고 싶다. 설사 내가 알게 모르게 잘못을 저질러 마음에 상처를 주었거나, 아니면 나로인해 어떤 피해를 입었거나, 아니면 나로인한 어려움을 당해 좋지 않은 일을 겪은 분들을 위해 매일 기도드리며 사죄 할 생각이다.
나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면 이제부터 모두 잊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또한 나를 해꼬지해서 잠간동안 기분은 좋아지더라도, 인과응보의 업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이제부터 하지 말았으면 하고 바란다. 그들도 언젠가는 반드시 업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업을 받는 것을 분명 보고 느끼고 있다. 나에게 어떤 식으로든지 해를 주던 사람들이 소식이 없어 물어보면, 아프거나 어떤 나쁜일이 생겨 괴로움에 빠져 있는 사람도 있었다. 꼭 그렇게 인정할 수 있는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이 행한 업보가 쌓여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는 말에수궁이 간다. 그런 것이 바로 인과 응보다. 인과응보는 느리게 오랜세월 후에 받는 수도 있지만, 그자리에서 당장 받는 수가 있다하니 될 수 있으면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나는 요즘 설장구를 하면서 많은 회의를 느끼며, 왜 설장구를 해야하는지에 물음에 깊이 생각해본다. 그렇게 내가 설장구 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내가 왜 하필 이것을 하면서 업을 쌓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있어서다. 그 사람들은 내가 설장구의 길을 가는 것을 왜 막으려고 노력하는 것인지, 그것이 아무래도 정말 이상하다. 전생에 내가 그들이 원하는 것을 못하게 방해라도 한 것인지....
그러나 현생의 운명은 이미 그렇게 결정되어 있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해야하며 또한 지금까지 살아오며 노력하던 것에 대한 정답이다. 열심히 하는 방법은, 모두 새롭게 각자 개척해 나가야하며, 또한 나름대로 정답은 없으니 열심히 노력해서 모두 성공하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작금의 심정이다. 나는 나혼자 잘되고 싶지도 않으며, 또한 누군가 잘한다면 반드시 밀어주고 이끌어 줄 것이다. 나는 과거나 지금이나 인재를 키워 잘 되게 하려고 노력하던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의 개인적인 명예와 실리에 크게 좌우되지 않을 것이다. 항상 인재를 좋아하고 사랑하며 키워준 스승을 배신하지 않고 의리만 지켜준다면, 누구든지 환영한다.
나는 내가 설장구를 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쳐도...누군가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나를 설장구를 해야하는 운명으로 만들어버린 것에 순종해야 할 팔자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나 역시 의아해 하며 그것이 알고 싶어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아무리 도망가려고 해도 어떤 운명이 절대 놓아주지를 않아, 지금까지 이렇게 설장구의 맥을 지키고 있을 수 밖에 없다. 누군가 나를 방해 한다해도~ 잘못하면 반드시 본인이 해를 입을 것이 분명한 일이다....그것은 운명의 불가사의한 힘이 작용하고 있었기에 말해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본다면 ....
내가 설장구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려고 하면 ...갑자기 손목이 아프거나 또는다른 일이 생겨 그 일을 못하게 되어, 설장구를 반드시 하게 된다. 설장구 때문에 싫증이 나서 그만두고 싶어서 다른 일을 추진하면 ....그 일이 망가져서 마지막에 설장구를 할 일 하나만 남는 것이다. 어떤 일을 하려고 해도 반드시 마지막에 설장구 만 남아 하는 수없이 하게 되니...정말 이상해서 할 말이 없다. 몸이 아파 팔이 아파 또는어딘가 아프다가도, 설장구를 하면 씻은 듯이 나아 버리니 매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스승님이 고인이 되어 비어 있던 연구소에 나는 가고 싶지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와서 그곳에서 스승님을 이어 설장구를 전수하길 바라고 바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나는 개인 적인 사정으로 인해, 스승님의 연구소에 가지 않으려고 별 짓을 다해 노력했는데...
또 다른 사람들이 내가 설장구 하는 것을 방해를 해서, 나의 개인 연구소마다 동네 사람들이나 건물주인에게 쫒겨나다보니...다섯번이나 연구소를 옮겨 다니다 지쳐 나자빠졌다. 경제적인 사정과 정신적인 혼란 속에서, 동서남북 사방팔방을 혜매며 찾아봐도, 갈곳이 그곳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 기가막힐 정도다. 누구인지 보이지 않은 어떤 힘이 판을 짜놓고 나를 몰아쳐서, 그곳으로 데리고 가는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설장구를 못하게 하려고 해꼬지를 한다는 것이, 어떤 차원에서 설장구를 해야만 하는 운명으로 만들어 준 것이 되어 버렸다는 말이 옳다.
어쩔 수 없이 스승님의 연구소에 갈 수 밖에 없었다. 가엾은 나는....
결국은 나의 인생의 마지막에 스승님의 연구소에서 지금 설장구를 강습하고 있는 것이, 나의 운명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사람의 운명은 반드시 이유가 있어 보인다.
나는 설장구를 사랑하기 때문에 후회나 연민은 없다.
그러나 반 강제적으로 그렇게 만들어진 운명이 탐탁하지 않다는 것이다.
나를 그렇게 끌고가는 운명의 주체는 무엇인지...
팔자는 무엇이지...
그런 것이 과연 있는 것인지...
나는 그것이 의문스럽다.
그래서 삼사순례에 동참해서 원인과 결과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우리는 대구 한국불교대학 큰절에 들려 불교에 관한 많은 자료와, 세계 각국에 계신 부처님들의 모습과 또는 새로운 불교 자료들을 공부하고나서, 엄청난 자료들의 규모에 혀를 내둘렀다. 또한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눈으로 확인하며 감격한 순간에 머루르지 않고,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볼 수 있는 인연에 감사드린다. 나는 마음을 달래며 조용하고 차분하게 기도드리며, 나의 업보를 소멸해주십사 빌고 또 빌었다. 왜냐하면 한국불교대학에서 한가지 소원을 빌면 꼭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어서다.
우리는 공양을 하고나서 다시 차를 타고 팔공산에 계시는 갓바위 부처님을 찾아 가고 있다. 한참을 이리저리 돌고돌아 입구에서 버스에서 내렸다. 나는 함께 간 김선생님과 함게 서서히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꽤 많이 간다. 우리차에서 40명씩 두차가 갔는데 다른 곳에서도 관광객이 많이 와서 산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길은 올라가기 좋게 잘 다듬어져 있다. 부처님이 태어난 사월 초팔일이 머지 않아 그런지, 길가에 등을 달아놓은 것이 수천개는 되는 것 같다. 밤이면 불이 켜져 멋지게 길을 밝혀 줄 것이다. 큰 길이라 버스가 더 올라가도 되련만, 아마 힘들게 고행을 시켜 인생의 참맛을 얻어가라는 멧세지로 들린다.
오랜만에 산을 올라가니 다리가 후들후들하다. 길가에는 울굿불굿 사람들의 옷들이 화려하고 아름답다. 등산복을 입은 사람이 거의 태반이며 모두 모자를 쓰고 선그라스를 쓴 사람도 있다. 나는 등산복을 입지 않고 그냥 일반 옷을 입었다. 나는 외모에 그렇게 신경을 쓰지 않은 편이다. 나는 편한 것이 좋다. 왜냐하면 그동안 해보고 싶은 것들은 대충 흉내 내봐서 그런지 별로 관심이 없어 진 탓도 있다. 과거 무대에서 너무도 화려함의 극치를 알다보니 마음이 식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초월해버린 인생이 되었다는 것이 더 맞는 이야기다. 겨울에도 맨발로 여름 신발을 신고 집 앞을 나간 적이 있을 정도로 무감각하다. 누가 보면 아마 정신이 나간 사람이거나 이상한 사람이라 생각할 지도 모른다. 나는 항상 자유롭게 편하게 살아왔다. 그러나 체면을 차릴 장소가 있으면, 반드시 진정한 나의 참다운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철저한 프로다.
벚꽃이나 매화 꽃이 어제밤 내린 비에 꽃잎이 떨어져 길에 가득하다. 우리는 꽃길을 걸으며 조용히 명상하듯이 걸어 올라간다. 산에 오르니 산 꼭대기에서 들려오는 염불소리가 요란하게 크게 들린다. 숨이 콱콱 막힌다. 그동안 내가 페할량이 줄어든 것 같다. 벌써 십분의 일도 오르지 못했는데 심장에 약간 답답함이 있다. 이래서 어찌 되겠나 싶다. 다리도 아프다. 벌써 종아리 근육이 댕기는 느낌이다.
길가에 피어있는 작은 꽃들이 수줍어 고개를 숙이고 보일 듯 말 듯이 말을 걸어온다. 노랗고 하얀 색의 꽃잎이 바람에 흔들리며, 사람들의 행렬를 지켜보며, 얼굴을 내밀고 봐달라 애원하는 모습이예쁘다. 누군가 작은 꽃의 비밀을 알고 싶어 카메라를 들이댄다. 찰칵~나는 한편의 꽃의 전설을 생각하며, 내년에도 올곶게 피어나 아름다운 산 모퉁이에서 향기있는 꽃의 전설이 되리라 응원하며~~~길을 재촉한다.
자세히 살펴보니 젊은 사람들보다 나이드신 분들이 더 많다. 불교는 아무래도 나이가 지긋한 어른들이 많이 믿고 의지하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아무래도 이것은 많이 생각해볼 문제다. 나이드신 분들이 돌아가시면 젊은 사람들이 많이 믿어야 대대손손 이어갈 터인데, 젊은 사람이 거의 없어 보인다. 할머니 한분이 어찌나 빠른 걸음으로 걸어 올라가신지 무척이나 놀랍다.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고픈 심정에, 부처님의 가피를 생각하며, 땀을 뻘뻘 흘리며, 정성들여 올라가는 성의가 어찌나 감동스러운지, 눈물이 날 지경이다.
나랑 같이 가신분도 나이가 칠십인데 평생 처음으로 팔공산에 가보는 것이라 한다. 인연이 되어야 갈 수 있다는데 나 역시 평생에 처음 가보는 것이며, 꼭 한번은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역시 한국불교대학은 나와 전생에 인연이 있었던 모양이다. 우연히 이렇게 좋은 인연을 만들어 주다니 ....감개무량하다.
땀을 흘리며 걸어올라가던 김선생님은, 판소리를 무척 잘하시는 선생님이다. 목소리가 어찌나 맑고 청아한지 참으로 아까운 목소리다.
험한길을 걸어가다보니 후회도 된다. 다시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인간은 왜 이렇게 고통이 따라야 무엇을 얻을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쉬운 것이 하나도 없다. 쉬엄쉬엄 올라 겨우 꼭대기에 올라가니 벌써 사람들이 많이 엎드려 기도를 하는 사람 앉아 구경을 하는 사람으로 빼곡하다. 사방을 둘러보니 하늘은 푸르고 부처님이 갓을 쓴채 나를 내려다보고 계신다.
인자한 미소가 어찌나 감사한지 나도모르게 엎드려 기도를 하며 소원을 빌어보며 눈을 감는다. 나는 이곳에 누구를 위해 올라 옸을까 생각해보니 뜨악하다. 내 몸 혼자 이곳에 왔으나 가족들이 눈에 밟힌다. 갓바위 부처님은 한가지 소원만 들어주신다는데, 나는 그 많은 소원중에 무엇을 말해야 할까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몸이 아픈 배우자가 건강하게 해주십사 빌고 싶은 마음이 제일 큰 일중에 하나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녀들이 공부를 잘하게 해달라며 빌고 싶은 부모로서의 심정도 있다. 개인적인 이기심으로 보면, 또 한편으로 내 자신을 위한 기도가 절실한 요즘의 상태를 무시하기 어렵다. 나 하나가 잘 풀려도 가족의 모든 면이 좋아지는 것은 당연한 현실이다. 나는 나의 설장구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고 싶은 유혹을 물리치기 어렵다. 아무래도 고민이다. 이렇게 우유부단해서 아무 소원도 말하지 못할 것 같은 심정이 든다. 이 좋은 기회를 망설이다 기회를 잃을지도 모른다.
많은 고민끝에...부처님은 나의 마음을 미리 잘 알아 대책을 세워 주실 것이라 생각하며, 마지막으로 한가지 소원을 정했다. 누구 한 사람의 소원만 이루진다면 불공평하니, 가족모두에게 복을 똑 같이 나누어 주십사 간절히 기도를 드리기로 결정했다. 설사 안들어주신다해도 나 혼자만의 복을 빌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야 사랑하는 내 가족에게 떳떳하게 돌아갈 것이기에 말이다.
나는 오체투지로 땅바닥에 엎드려 두손과 두발의 팔굼치와 무릎과 이마를 땅에 대고, 온 마음을 다해 수없이 절을하며 마음 속으로 빌었다. 땀이 비오듯 쏟아지며 마음속에서 기쁨이 솟아오른다. 이것이 행복의 시작이 아닌지 내 마음이 갑자기 편해진 것이다. 소원이 아직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좋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팔공산 갓바위 부처님의 은덕이 꼭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불전함에 지전을 쑤셔넣고 우리는 그곳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반대편으로 내려오는 길은 깎아지른 절벽위에 만들어진 험악한 길이다. 올라올 때보다 더 내려가기 어려운 길이다. 내려다보니 무서울 정도다. 나는 그런대로 괜찮은데 나이드신 김선생님이 걱정이다. 그래도 어찌나 건강하신지, 젊은 사람 못지 않게 조심조심 잘 내려오신다. 참 마음이 곱고 편한 분이다. 어려서 판소리를 공부하고 싶어 하였으나, 집안에서 반대가 심해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을 공부하신 분이다. 그러다보니 사십대에 판소리를 시작해서, 지금은 벌써 수 십년을 공부 했으니 상당히 잘 하신다. 목소리가 천성적으로 타고나서 참 좋다. 명창들에게 배웠으니 제대로 판소리를 공부한 것이다. 나이가 많아 몹시 아까운 인재다.
우리는 어렵게 길을 내려오면서 쉬엄쉬엄 다른 절에 들려 참배도 하고, 어제밤에 내린 비에 떨어진 벗꽃 길을 걸으며, 아직도 소담하게 피어있는 도화꽃을 바라본다. 어찌나 예쁜지 수줍어 하는 모습이 마치 젊은날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이제 인생의 뒤안길에 선 인간들이 삶의 마지막을 정리해가는 모습이 이런 모습이 될 줄이야 상상하지 못했지만, 나는 이제부터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 장담한다.
내가 만약 설장구를 하지 않았다면 이런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설장구를 하다보니 이런 일이 생기는 것도 또한 운명일 것이다. 내가 갓바위 부처님께 나의 설장구를 위해 독단의 기도를 하지 않은 것은, 나 역시 평범한 보통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설장구는 나의 혼이며 나의 사랑이며 또한 나의 분신이다. 설장구는 나의 꿈이며 나의 생명이다. 설장구를 위해 지금까지 혼신을 다했으니 여한은 없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설장구를 하지 않았으며,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서 즐기며 공부하였으니, 비록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발버둥치지 않더라도,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 이것으로 족하다. 내가 만들어가고 있는 나의 설장구 나라에서, 익어 있는 열매를 맛보게 될 날이 있을 것을 고대하며....반드시 아름다운 끝을 보고싶다.
우리는 한국불교대학의 분교인 팔공산도량에서 백옥부처님을 뵙고 기도드리며ㅡ 행복에 잠시 빠져본다. 삼세불 부처님께 기도하고 약사불께 기도드리며, 행복한 순간에 도취되어 평상에 앉아 그윽하게 팔봉산의 좋은 기운을 온 몸으로 받아 들이며 편안한 마음을 스스로 느낀다. 이런 순간들이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는 사실이 놀랍다. 앞날에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는 희망이 이렇게 마음을 행복하게 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다니다 보니 절마다 모시는 부처님이 각각 달라 약간 당황스럽다. 한국 불교대학 회주 우학 큰 스님의 법문을 들어보니 이제서야 겨우 이해가 된다. 법문을 옮기자면 본래 원 부처님은 한분이시다. 그분의 이름은 비로자나불 이라고 한다. 부처님이 너무 높은 곳에 계시다보니 인간들이 너무 어려워서 가깝게 하지 못하니, 부처님께서는 또 다른 여러가지 형태의 모습의로 나투하시며... 인간에게 가장 친근한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이 보살님 이라고 하신다.
부처란 말은 범어로<산스크리트어~인도의 고대 언어 중의 하나> 붓다 <buddha>이며 음사로는 불타 가 되고....눈을 반짝 뜨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무엇에 눈을 뜬 것인가? 그것은 바로 진리이다. 부처님은 진리에 눈을 떠 진리와 한몸이 된 것이다. 결국 인격적인 여러 부처님은 진리에서 온 것이다.
부처님이란...이미 본래로 밝고 바르게 깨달아 만중생을 언제나 깨닫도록 인도하시는 각행이 원만하신 진리 당체가 되는 것이다.
부처님은 깨달음의 세계 즉 진리의 몸이기 때문에, 모양과 빛깔이 따로 없으며, 오시는 곳도 가시는 곳도 없다. 진리의 성품인 만유제법의 본체이시므로 부처님은 진실원만과 보편, 무한, 창조의 특성을 그대로 같추고 있다.
부처님은 허공처럼 산소처럼 존재하시는 분이다. 온 우주의 원동력이고 생명력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이 세상 어느 곳이든지 구석구석 안 계시는 곳이 없으며, 우리의 마음이 청정하고 깨끗하고 진실하면 부처님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이란 이미 본래로 깨달아서, 우리 중생을 끝없는 대자비심으로 이끌어 주시는 희망이며 광명이신 진리당체이다. 부처님의 몸은 청정한 진리의 몸이다.
부처님은 본래 우주에 꽉 차 계시지만 <진리>....법신불 이다.
그러나 미혹한 중생들이 이를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해 헤매므로 몸을 나투어<나타내어> 열심히 수행하는 공덕을 지으시며, 행의 과보로 구족하신 모습을 보이시어<보신불> 중생들의 살아갈 방향괴 귀의처를 알리셨다. 또한 갖가지 근기에 맞추어 방편으로 때로는 벌레의 몸으로 때로는 보살의 몸으로, 그 법신의 부처님을 나타내시니<화신불>...이는 만중생을 향한 끝없는 자비심 때문이다.
온 우주를 두루하는 진리의 부처님은 하나기 때문에. 부처님은 시간을 초월하여 상황을 초월해 우리 중생을 구제하신다. 때로는 아미타불 때로는 약사여래불 때로는 석가모니불, 때로는 관세음보살 등 수많은 불보살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신다. 그러나 부처님은 본래 딱 한 분이시다. 그이름은 비로자나불<법신불>이시다.
삼신불 에 대해 이야기하자면....삼신불의 관계가 마치 달과 달빛 그리고 달 그림자와 같다고 하여 "일월삼신" 이라고도 한다. 즉 법신은 달, 보신은 달에서 생겨 일체를 두루 비추는 달빛, 화신은 물에 비친 달 그림자에 비유한 것이다.
법신....진리의 부처님....청정법신 비로자나불 부처님이시다. 모든 부처님은 비로자나 부처님으로
부터 존재하신다.
보신....법신을 인으로 삼아 그 원과 행의 과보로 나타난 몸을 보신이라 한다.
48대원을 성취하여 극락세게를 이룩한 아미타 부처님을 말하며 이를 독립시켜 인격화하
부를 때...."원만보신노사나불" 이라고 한다.
화신....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갖가지 근거에 맞추어 방편으로 오신 부처님을 말한다.
<과거칠불.석가모니불.미륵불>등이 이에 속한다.
과거칠불....비바시불.시기불.비사부불.구류손불.구나함모니불.가섭불.석가모니불.
이 칠불상은 장아함대본경에 나타나는데, 이는 법의 진리성, 부처님의 영원성을
증명하는 일이다.
미래불.....석가모니 부처님의 뒤를 이어 중생을 구제할 미래의 부처님이 곧 미륵 부처님이시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56억7000만년을 지나 다시 사바세계에 출현하여 용화
세계를 건설하고 중생을 교화 제도하신다. 미륵 부처님이 도솔천에서 이 세상에 하생하
여 성불할 떼 세상은 즐거움에 가득차고 재난은 없으며 서로 공경하여 평화롭게 살아간
다. 미륵 부처님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제도하지 못한 중생들을 3회에 걸쳐 용화법회에
서 제도하시는데 불교를 믿는 우리들은 여기 이 작은 인연이 미륵부처님을 친견하는 씨
앗이 될 것이다.
미륵부처님이 출현하는 세계는 중생들의 수많은 공덕과 부단한 정전으로 건설되고 전
개된다고 경전은 말하고 있다.
미래불을 모신 법당을...비로전.대광명전.대적광전.화어전.이라한다.
아미타부처님....아미타불이란 ....영원한 수명...무량한광명...을 보장해주는 부처님이시다.
내가 성불했을 때 내가 교화하는 세계는...지옥, 아귀.축생이 하나도 없기를 원합
니다. 이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언제까지 성불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미타불이 모셔진 법당을...무량수전.극락전.아미터전. 이라고 한다.>
약사여래부처님...약사여래부처님은 질병을 치료해주고 재화를 소멸시키고 바른 법을 가르쳐 깨
달음의 세게에 들게하리라는 서원을 세워 동방정유리 세계를 건설하였다.
<약사여래 부처님은 약합을 들고 약그릇을 손에 들고 계신다.>
약사여래를 모신 법당을 ....약사전.만월전.유리광전>이라고 한다.
우리 중생은 업장이 두텁고 삼독에 지든 탓에 부처님을 가까이 못하고 두렵게 생각한다. 그래서 이것을 아시고 좀더 친근감 있는 모습으로 우리 곁에 오셨으니 그분이 수많은 보살님이다.
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
관세음보살은 세상의 일체 음성을 관하시어 이고득락케 하는 자비의 화신이며 현세
구제자이시다.
<갖가지 고뇌를 받는 무량백천만억의 중생이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듣고 일심으로
칭명하면 관세음보살은 즉시 그 음성을 관하여 모두를 구제한다.>
<관세음보살님은 왼손에는 연꽃봉오리를 오른손에는 불사의 감로수 병을 들고 계
신다.>
관세음보살을 모신 법당을...관음전.원통전...이라 한다.
대세지보살....용기...대세지보살은 한번 발을 디디면 삼천대천세계와 마군의 집이 이동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대세지보살은 보관에 보배병을 이고 있으며 관세음보살과 함께 아
미타불을 협시하는 보살이다.
문수보살.....보현보살
문수보살은 "문수사리"라고 표기하며 석가모니 불의 왼쪽에 위치하며 지헤를 상징한
다. 오른쪽에는 지혜의 칼을 쥐고 왼쪽에는 푸른 연꽃을 지닌 경우가 많다.대좌는 연
화대나 청사자를 이용하기도 한다.
보현보살....보현보살은 "대행원"의 상징으로 주로 석가모니 불의 오른쪽에 모셔진다.
보현보살은 연화대위에 합장한 모습으로 나타나며 손에는 연꽃을 들고 코끼리를 타고
있다.
지장보살....지장보살은 육도윤회를 끝없이 방황하는 중생을 구제하고 나아가 지옥에서 허덕이는
중생을 인도하여 극락세계로 이끌어 주시는 보살이다. 지옥 문전에서 대비의 눈물로
교화한다. 머리를 깎은 민머리 또는 머리에 두건을 쓴 모습에 가사를 입고 연꽃을 들
거나 오른손에 보배구슬을 들고 있기도 한다. 석장을 짚은 모습과 동자를 안은 모습
있다. 지장보살은 "대원본존"이라고도 한다.
지옥중생을 다 구할 때까지 성불하지 않겠다. 함이 지장보살의 서원이다.
일광보살....약사여래의 좌우 협시보살이다. 이들 보살은 법계를 두루 비치어 생사의 어둠을 파괴
한다는 뜻을 갖고 있다. 세상의 혼탁함을 보고 보리심을 내어 병고의 중생을 구제하
기를 원하여 아버지는 의왕인 약사여래불이 되고 아들 둘은 두 보살이 되었다.
일광보살은 연꽃을 쥐거나 태양을 갖고 있기도 하고 월광보살은 초생달형의 달을 갖
기도 하며 만월형의 달을 앞가슴에 지니기도 한다.
< 위의 글은 한국불교대학 회주 우학스님의 법문에서 모셔옴>
<표현이 잘 못된 부분은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부처님이 열반해서 돌아가시자, 부처님의 제자들이 부처님의 살아생전의 모습을 그리워하여, 그 모습 그대로 형상을 만들어 모셔놓고, 살아 생전에 하던대로 정성을 다해 모시게 되었다. 부처님의 형상은 비록 여러가지의 재료로 만들어져 있으나, 사람들이 믿는 것은 부처님의 형상이 아니라
부처님이 살아생전에 가르치던 진리 자체며, 그것을 본받고 깨우치기 위해 정성을 들이며 기도하는 것이다.
다른 종교를 믿는 분들이 부처님의 모습의 형상을 우상이라고 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왜냐하면 진리가 바로 부처님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산소처럼 허공에도 계시고 온 우주안에 계신다. 그 진리의 모습을 나타태는 것이 살아생전 부처님의 모습이기 때문에, 진리를 향해 정성을 다해 모시며 기도하는 것이 진리자체다.
<위의 글은 개인적으로 느낀 것을 적은 것이니 ...생각이 다른 분은 개의치 않게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한국불교대학 팔공산 도량의 주지스님께서 주신 수박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약사여래 부처님께 기도하고 사진을 찍고 해우소에 가서 일을 보고, 우리 도량의 주지스님 대공스님에게 먼저 내려가노라 인사를 했다. 스님께서는 아직 젊은신 분인데 어찌나 도가 높던지 대단히 존경스러운 분이다. 시일이 짧아 아직 친분이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배움이 가득한 도량이다.
나는 내려오면서 보은사 대웅전에 들려 부처님께 기도하고 산신각에 들려 기도를 했다. 기도를 한다는 것이 이렇게 좋은 것인 줄 몰랐다. 열심히 걸어 주차장에 도착하니 버스가 두대 나란히 있다. 문을 열어보니 문이 열리지 않아 자세히 보니 모두 차를 타고 앉아 있는 것이 보인다. 운전사가 없어 문을 열어주지 못한다해서, 우리는 멀리 가서 조용한 의자에 앉아 있기로 했다. 사과장수에게 사과를 한 보따리 사서 의자에 앉아 먹으려고 하는데, 우리 옆자리 앉았던 법우께서 버스에서 내려와서 손짓하며, 우리를 성급하게 부른다.
우리는 빨리 차를 타러 온다고 부랴부랴 왔었는데, 우리 두 사람이 어쩌나 보자 하며,,, 일부러 문을 열어주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줄도 모르고 우리는 아직 시간이 되지 않아 그런 줄만 알았다. 두 사람이 산에서 내려오지 않아서 사람을 기다리느라 버스가 떠나지 못한 것이라 했는데, 그 두 사람이 우리 자신인 것을 모르고 있었다니, 정말 재미있는 현상이다. 우리는 두 사람이 올 때까지 버스 밖에서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으니... 참으로 어리석은 코메디의 주인공이 되었다. 주지스님을 비롯해서 법우님들께 미안한 마음으로 살짝 미소지으며 차에 올라, 비어있는 우리 자리에 앉아 반성하며 많은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다른 일도 아니고 산에서 내려오던 길 옆의 어느 절에 들렸다 오느라 그리하였으니, 이해하여 주시리라 믿으며....우리가 절에 다니면서 부처님을 믿는 일이, 해탈하는 것도 중요하며, 봉사하는 것도매우 중요하지만, 누군가의 허물을 탓하지 않는 것도 인과관계에 있어 상당히 중요함을 생각하게 하는 하루다.
서울로 돌아오며.., 삼사순례가 사람의 행복에 깊이 관여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된 것이다.
버스가 네시간을 달려 서울에 도착하니 밤 9시가 되었다. 야광이 반짝이는 서울 도심에서 우리는 서로 인사를 하며 헤어졌다. 집에 도착하니 9시 반이다. 몸은 피곤해서 죽을 지경이지만 얻은 것이 많다. 우리 한국불교대학의 회주스님 우일 큰 스님을 뵙지 못한 것이 못내 섭섭하다. 그러나 언제나 카페 인드라망에 들어가면 큰 스님과 또 여러가지 많은 정보를 알 수 있어 다행이다. 오늘은 내인생에서 대단히 행복한 날이다. 관세음보살~!~~~
2012.4,27 글 박은숙 <한국불교대학 삼사순례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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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다문천님 감사드립니다()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