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EU, 중국산 전기차 견제 본격화… 한국 업계 영향은?
선거 앞둔 미국, 양당 모두 중국 전기차에 비우호적
최대 시장인 EU도 전기차서 중국 의존도 탈피 노력
제네바모터쇼에서 비야디 신형 전기차가 선을 보이고 있는 모습. [사진=AP/뉴시스]
최근 미국과 유럽연합(EU)에서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견제 조치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 2월 말 미국 의회에는 중국 제조사의 자동차에 최대 125%의 관세를 부과하는 ‘미국 자동차 노동자를 중국으로부터 보호하는 법안’이 발의됐고,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중국산 자동차에 대한 잠재적 안보 위협 조사를 상무부에 지시했다.
●미, 중국의 멕시코 통한 우회수출 전략 무력화 = 미국 전기자동차 수입시장에서 중국은 아직 미미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시장에서 EU로부터의 자동차 수입이 약 74억 달러에 달했고 한국으로부터의 수입이 44억2000만 달러, 멕시코로부터의 수입이 37억4000만 달러,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이 21억1000만 달러로 그 뒤를 이었다. 그러나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은 3억7000만 달러로 멕시코발 수입의 1할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현지 시장 관계자들은 값싼 중국산 전기자동차가 시장을 순식간에 잠식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중국의 전기차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와 보조금, 공급망 장악은 대당 2만 달러 남짓의 소비자 판매 가격을 가능케 하는 경쟁력을 이뤄냈다. 미국을 대표하는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가장 싼 모델도 이보다 두 배는 더 비싸다.
중국의 대표적인 전기차 업체 비야디는 지난 2월 28일 멕시코에서 현지 생산을 위한 공장 건설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비야디가 멕시코에서 파는 돌핀 미니 전기자동차는 2만1000달러 정도에 팔리고 있는데, 멕시코 생산 전기차는 미국에 비교적 낮은 관세로 수입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이는 당국의 경계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미국이 중국산 자동차의 수입을 막기 위해 가장 먼저 세우는 장벽이 바로 관세다. 조시 홀리(공화·미주리) 상원의원이 지난 2월 28일 발의한 ‘미국 자동차 노동자를 중국으로부터 보호하는 법안’은 생산지에 관계없이 중국 생산업체의 자동차에 대한 관세를 현재의 27.5%에서 125%로 올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설령 멕시코에 공장을 세우더라도 중국 업체의 자동차라면 고율의 관세를 적용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홀리 의원은 “중국은 오늘날 세계 자동차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특히 전기차와 그 부품이 그렇다”며 “조 바이든의 급진적인 기후 의제와 전기차 (육성) 지령은 미국이 중국 자동차산업에 더욱 의존하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선거를 앞두고 표를 의식한 바이든 대통령은 미 자동차 노동자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전기차 보급 목표 달성 일정을 늦추고 있다. 여당인 민주당과 야당인 공화당이 모두 중국산 전기차 견제에 적극적인 셈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2월 29일 중국산 차량 수입에 대해 미국의 안보 위험을 초래하는지와 ‘커넥티드’ 자동차 기술 관련 우려로 이에 규제를 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조사를 상무부에 지시했다.
보도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이에 관해 “중국은 불공정 행위 등을 통해 자동차 시장의 미래를 지배하려고 한다”며 “중국의 정책이 시행되면 우리 시장은 그들의 차량으로 넘쳐날 것이고 이는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면서 이를 지켜만 보고 있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아울러 “중국은 자국 시장에 진출한 미국과 외국산 자동차를 규제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중국산 커넥디트 자동차를 허용하는 것이 타당하겠느냐”고 지적했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 장관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당국은 중국 자동차가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잠재적으로 우리의 사생활과 국가 안보를 위협하기 전에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별도로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산 차량에 새로운 관세를 부과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으며, 관리들은 멕시코에서 중국산 전기차 수입을 제한해야 한다는 새로운 압력에 직면해 있다고 로이터는 보도했다.
●중국 전기차 최대시장 EU도 ‘보조금 규제’ 나서 = 한편, 미국과 달리 유럽은 중국 전기자동차 수출금액에서 과반을 차지하는 최대 시장이다. 그 중에서도 EU의 비중은 압도적이다. 지난해 4분기 기준 EU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의 비중은 9.3%에 달했다. 그러나 EU는 이를 줄이기 위해 꾸준한 노력을 가하고 있다.
지난해 가을 EU가 중국산 전기자동차 보조금과 관련해 무역구제조치 조사를 시작한 것도 그 일환이다. 지난 2월 EU 최대 자동차 제조업체인 스텔란티스와 메르세데스 벤츠가 44억 유로 규모의 전기차 생산기지를 설립할 예정이라고 밝힌 가운데 이 또한 유럽의 중국산 전기차 의존도를 줄일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EU의 탈탄소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중국산 정도로 값싼 전기차의 보급이 필수적이다. 게다가 중국이 유럽시장으로의 원활한 자동차 수출을 위해 전용 로로선을 준비하고 있는 점도 중국산 자동차의 EU 내 경쟁력을 높이는 요인이 될 전망이다.
●한국산 반사이익 가능성은… “도리어 유탄 맞을 수도” = 만일 정책 입안자들의 노력으로 인해 가격 경쟁력으로 승부하는 중국산 전기차의 미국·유럽 시장 진출에 제동이 걸릴 경우, 현대자동차·기아 등 한국 업체들이 반사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 전기차는 미국 시장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혜택에서 배제되고 현지 전기차 수요가 감소 추세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총 7772대(현대차 3844대·기아 3928대)가 팔리며 52.7%의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3월 1일 현대차 미국법인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 판매 대수는 전년 대비 6% 증가한 6만341대로, 2월 기준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여기에는 전기차 등 친환경차의 판매량이 7% 증가하는 등 견인에 앞장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주요 차종 중에서는 투싼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가 280%, 투싼 하이브리드(HEV)가 29%, 코나 일렉트릭(EV)이 15% 각각 증가했다. 투싼은 8%, 팰리세이드는 16% 판매량이 늘었다.
현대차 미국법인의 랜디 파커 최고경영자(CEO)는 “전기차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 판매 실적이 지난해보다 큰 폭으로 증가하는 등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며 “이 모델들이 인정받은 것에 자부심을 느끼며 앞으로도 다양한 제품을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국전문가포럼 오피니언 기고문에서 구기보 숭실대 교수는 “우리나라 전기차 및 배터리 기업들은 유럽이나 일본차에 비해 경쟁력이 뒤지지 않지만 중국 기업에 비해 가격경쟁력에서 열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며 우리 기업들이 미국 정부의 대중국 견제로 인해 미국 전기차 및 배터리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전기차 수출시장의 전망은 밝지 않다. 정원석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전세계적인 고금리 기조 속에 북미, 유럽 전기차 수요 둔화세가 뚜렷하고, 11월 예정인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유력 후보인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친환경 규제 완화로 미국 전기차 시장 성장 속도가 예상보다 느려질 수 있다”며 “시장에 대한 불확실성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아울러 미국과 유럽이 중국산을 시장에서 쫓아내려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안보가 아닌 자국 업체들에 대한 보호일 수도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이들 시장에서 중국산 제품을 겨냥한 조치의 유탄이 언제든지 한국 수출에도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