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고 돌입한 경계 태세
가슴 조이며 기다렸던 시간만큼 며느리 목소리에 나는 대뜸 "병원이라니, 누가 아픈데?" 연이은 질문에 예측도 없었던 올리브의 응급상황이라고 했다. 소화력이 약한 탓인지, 아침에 먹인 음식으로 꼼짝하지 않고 누워있었던 올리브를 이제나저제나 하는 심 정으로 정상적인 활동을 기다렸지만, 온 식구들 걱정이 무색하도록 어떤 차도도 보이지 않는 상태가 종일 지속됨에 아무래도 집 에서 밤을 넘기기가 불안해 응급실로 온 가족이 향했고 이틀간 입원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소견에 올리브를 그곳에 두고 곧 집으 로 온다는 설명이었다. 상황 파악 후 사람이 아니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내심 올리브가 걱정되었다. 난 그날 올리브 건강 의 심각성은 전혀 몰랐지만 생사의 고비를 넘나드는 작은 생명체에 대한 연민과 동시에 생명의 엄중함을 몸소 체험한다.
그 순간 그동안 우려하고 고민했던 내 모든 안위의 문제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올리브의 무사 귀환만을 바라는 태세 전환에 스스 로 놀라며 자정이 가까워 현관문이 열리고 집 안으로 들어오는 아들에게 올리브의 상태를 묻는다.입원 후 우선은 지켜봐야 하고 내일 다시 병원에 가봐야 한다며 식구들 표정이 몹시 가라앉아 있었다. 다행히 방학이라 손주들의 늦은 취침도 개의치 않았지만 저 가족의 표정을 보니 고작 이틀의 동거였지만, 이미 올리브는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되어 있었다. 나는 홀로 내 방에서 조용히 생 각에 잠긴다. 비록, 떠돌이 작은 야생의 생명체도 이미 인간의 손에 보살핌을 받게 되면 생명의 엄중함을 곱씹지 않을 수 없다는 진실을 알게 된다.
그날 내가 올리브의 긴급한 소리를 듣지 않았다면 그의 생명은 어떻게 되었으며 야생이었던 한 생명체를 두고 한 가족이 한 마음 으로 결집하여 걱정하는 진풍경은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과 한공간의 동거를 몹시도 싫어하여 우려하고 거부했던 내 무거운 마음 에 올리브의 재입원이 오히려 가족이란 이름으로 진심으로 수용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음 날 아침 아들 가족 모두가 올리브의 생 존을 확인하러 병원으로 향하고 수의사의 소견에 응급 상황은 해제되었지만, 하루 더 입원이 필요하고 곧 회복할 것이라는 희망 적 이야기와 직접 대면함에 생명의 위험 상황을 올리브가 잘 극복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한다.사실 올리브에 대한 내 입장을 표방 하지 않았지만 내심 작은 생명의 생존 여부를 몹시 걱정하던 중이었다.
무 보험 적용으로 동물 병원의 입원비는 대단했고 구조한지 오일도 안 되어 생명을 구조하는 비용은 만만치 않았지만 그의 무사 귀환에 나의 모든 불편함이 말끔히 공중분해 되는 순간이었다. 그날 밤 아들 가족이 한 사람씩 집을 나간 것은 올리브 병원행을 내가 반대할까 봐 택한 방법이었다고 한다. 동물과 동거를 극도로 싫어함과 첫날부터 발생한 그리고 또 발생할 적잖은 진료비를 빌미로 삼아 포기하라는 강한 내 의지를 보일까 우려해서 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행한 방법이었다고 이실직고했다. 그 이야기에 나는 어이없다는 웃음을 지으며 실내에 동물과 동거는 반대했지만, 그의 생명이 일각에 달렸다면 생명 유지 차원에서 내 마음을 다해 최선을 다할 건 너희들도 잘 알 터라며 면박을 주긴 했지만 그들의 심정을 이해 못 하는 바도 아니었다.
그날 다 저녁에 슬그머니 말없이 현관문을 빠져나갔던 그들의 속내가 올리브에 대한 그들의 마음이 간절히 피력된 부분임에 완 강했던 내 생각도 자연히 접게 되었다.아들네 가족에 올리브는 그들의 기쁨이고 행복이라고 비유할 만큼 절대적인 존재가 되어 있었다. 나 역시 그를 진심으로 아끼지만 표현은 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특히 재라의 소원은 할미가 올리브 등을 한 번만이라도 쓰다듬어주는 것이라고 채근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하고 있다. 난 어떤 동물이든 우리 집 식구가 되어버리 면 누구보다 측은지심으로 그를 책임지지만 손자 말대로 난 그들을 만지지는 못했다.딱히 이유가 존재하는 건 아니다. 올리브도 이 늙은이가 한 식구라는 것은 인지하지만, 그도 나를 보면 웅크리고 경계하고 도망가듯이 나 역시 그가 내 쪽으로 오면 몸을 피 한다. 우린 서로를 보면 놀란 듯 기피하고 도망가나, 아침 시간 모두 출타 후 안방에서 올리브 울음소리가 들리면 그 소리가 애처 로워 살짝 문을 열고(혹시 놀랄까 봐) 좀 기다리면 언니 오빠가 온다고 조용히 말해주면 어느새 몸을 숨기고 소리를 내지 않는다.
오후가 되어 재라의 귀가 소리엔 귀신같이 감지하고 제법 큰 소리로 나름대로 반가움의 신호를 보낸다.재라 녀석은 언제나 급한 마음에 신발 한쪽은 거실에 한쪽은 신은 채로 뛰어들다가 매번 혼나지만, 올리브에 대한 사랑은 여전히 바빠서 자빠지고 엎어진 다. 그러나 올리브의 진짜 사랑은 예라도 재라도 아닌 아이들 엄마이다.며느리의 조용한 성품으로 올리브의 모든 것을 챙겨주고 부드럽게 돌보는 손길을 그녀가 충분히 느끼기 때문이다. 오히려 올리브가 가장 기피하는 대상은, 넘치는 사랑의 주인공인 재라 이다. 너무 거친 손길이 부담스러운지 오히려 역효과를 초래한다.안방 파우더 룸이 올리브의 공간이지만 잠잘 때는 며느리 침대 발 아래서 잔다고 한다. 이 집에선 어딘들 금지구역은 없지만 오로지 한 곳인 내 방에만은 절대 금지구역이다.
어느덧 7, 8개월이 지날 동안 올리브가 필요한 모든 예방 접종은 빠뜨리지 않았지만 한 가지 걱정은 성묘가 되면 치러야 할 생리 적 현상을 두고 아들 내외와 고심한 적이 있었다.아들 내외가 올리브의 중성화 수술이 필요하다고 거론했지만 난 왠지 애처로워 그냥 더 두고 보자는 의견으로 말꼬리를 흐렸지만 사실 어떤 마땅한 대책도 없었다.어느새 성묘가 된 올리브의 울음소리가 예사 롭지 않았던 어느날 밤이 우리 모두가 힘겨웠던 시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아침 아들이 제 짝을 찾는 울음소리라고 했 다. 그 소리가 너무 고통스러워 그러면 짝짓기할 상대를 찾아야 하지 않냐며 아들을 다그치니 문제점의 해소로서는 그것이 가장 바람직한 해법이지만 올리브의 아기까진 다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 또 아들의 생각이었다.그러면 방법은 하나인데 나 역시 뭔가 순리를 역행하는 거같아 마음 내키지 않던 터여서 병원 말은 끝내 내지 않고 침묵으로 하룻밤을 더 일관하는데 사납게 울어대는 소리와 농도가 더 탁하고 간격이 잦아지는 올리브의 소리가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올리브의 본능에도 심각한 상처를 주는 듯하 여 참으로 고통스럽던 밤이었다.
마침, 토요일이라 눈 뜨자마자 결심한 아들은 올리브와 병원으로 향하고, 몇 시간 후 목에 깔때기 목걸이 착용하고 집으로 온 그 녀의 모습에서 애처로움과 가여움을 금할 수 없었다.차라리 야생으로 두었다면 순리대로 살았을 텐데 하는 자책과 또 한편으론 그랬다면 올리브의 생존이 지금까지 가능했을까, 하는 스스로 위안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일반 주택이었다면 이 모든 난제는 갈등과 고민없는 공존의 조건이었련만 불식간 터져 나오는 무거운 한숨은 본능을 제거할 수밖에 없는 환경적 조건에 내 능력의 한계를 탓할 뿐이었다. 그리고 이주 후 아들이 다시 찾은 병원에서 수술 자리도 아주 깨끗하게 잘 아물었다는 얘기와 얼마간의 복용할 약을 받아 왔다.
이제 생후 일 년이 된 올리브는 흔하디흔한 길냥이 자손으로 소박하고 평범한 외모로 몸값이 금값인 고급하고 귀티 나는 고유한 매력은 찾을 순 없지만 고양이 특유의 날렵함과 유연성으로 제법 그 아우라가 느껴진다. 또한 여성성으로 매우 얌전하고 새침하 여 도도하기까지 한 올리브의 표정에서 오로지 홀로 동물인 고독감도 엿볼 수 있다.무엇보다도 실내에서 한 마리 고양이 키우는 일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해준 장본인이기도 하다.처음 고양이를 본 순간 한 공간에서 펼쳐질 난제로(생리적 뒤치다꺼리,짐승 털의 알레르기와 냄새) 걱정과 우려로 고심했던 일들은 고양이 스스로 다듬고 해치우고 게다가 아들 가족이 처 음 내게 약속했던 그들의 의지처럼 성심껏 정성껏 돌봄으로 불편한 점은 발생하지 않았다. 다만 거의 24시간을 함께하는 나와의 관계에서 상호 존재의 존중은 법도 없이 유지되데 피차 경계 태세는 늦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걸 늘 지켜 본 아들이 답답하고 갑갑한지 어느 날 거실에서 고양이를 우리 둘 사이에 두고 고양이의 습성을 이야기하며 더럽지 도 전염될 어떤 질병도 없으니 편안한 마음과 사랑의 감정으로 단 한 번이라도 애정 어린 손길을 보여주라고 간곡히 부탁함에 차 마 거절할 수 없어 슬쩍 만진 털의 느낌은 매우 윤기 있고 매끄럽고 괜찮은 촉감이었다.그러나 동물이라는 찝찝한 느낌을 한순간 도 떨칠 수 없어 얼른 비누 세정 후 다시 앉아 난 안 되겠다는 눈빛으로 아들을 쳐다보니 아들 역시 제 어미가 납득할 수없다는 표 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제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 후 좀 더 많은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손주들의 열망에 올리브와 함께한 거실에 서 두렵고 거시기가 머시기해서 긴장은 되었지만,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내가 먼저 올리브에게 쓸 적 손을 내밀자, 경계심이 가득 했던 올리브도 조심스럽게 다가와 내 손끝에 그의 코로 살짝 냄새를 맡는 듯하더니 내게 두 번의 윙크를 껌뻑껌뻑인다. 그때 손주 들의 환성이 터지고 재라가 큰 소리로 "할머니 올리브가 할머니께 윙크했어요. 그건 좋아하고 친구니까 하는 거예요. 이제 할머니 도 올리브 친구예요. 무서워하지 마세요. 그리고 할머니, 할머닌 동물 털 알레르긴 없잖아요. 제가 다 알아요. 아빠가 말했어요."라 며 할매의 거짓말을 저는 다 안다는 듯이 아주 의기양양하게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는 통에 한바탕 웃은 날이 얼마 되지 않았다.
불과 삼 주도 되지 않았지만 이제 나와 올리브의 사이는 두려움과 경계와 찝찝함의 관계가 아닌 한 번씩 편안한 자세로 누운 올리 브를 보면 곁에 가서 등을 쓰다듬고 살짝 엉덩이를 토닥여 주는 관계로 발전했다. 한마디로 놀라운 전환이고 발전이다. 우린 서로 의 동거에서 불편했던 시간을 잘 극복하고 아이들처럼 허물없는 관계로 진입했지만 그래도 내 방만큼은 아직도 철저히 금지구역 이다. 사람 외 동물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공간임에 내가 부재 시엔 반드시 방문을 잠가 버린다. 함께 뒹굴고 한 침대에서 잠을 잘 비위는 못됨에 아니, 어쩌면 그 수위까진 영원불변일지라도 그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의 색깔은 더 짙고 안정된 색감이다. 이달 중순이 지나면 어림잡아 올리브의 탄생 일 주년이 된다.
서로의 경계심과 기피증을 종식하는 데는 거의 일 년이 걸린 시간이었다. 우리 아들 가족만 행복했던 올리브와의 동거가 그 무리 에 나도 함께한다는 이 변화가 싫지만은 않듯이, 전화위복이 된 그 모든 우려 속의 과정이 실로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나보다 더 오래 살 올리브의 한 생이 우리와 함께 평안하길 바라고, 그녀를 내게 보내 준 그날의 인연에 정녕 감사하는 마음이다.
이제 나를 보고도 무장 해제된 아랑곳 않는 팔자 늘어진 자세
Aegean Breeze(에게해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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