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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프로복싱의 시작, 그 키워드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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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40여년이 흐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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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선수와 선배와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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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실망이라고 말하기도 실망스런 상황들
당시 상당히 추웠던 걸로 기억합니다. 2007년말, 30대 중반을 향해가던 노장 최요삼 선수는 WBO 인터콘티넨탈 챔피언 1차 방어전에서 마지막 라운드에 맞은 펀치에 다운당했지만, 일어나서 종소리를 들으며 판정에서 승리합니다. 하지만 그 직후 몸에 힘이 풀리며 쓰러졌고 그대로 병원으로 후송됩니다. 이후 며칠간 최요삼 선수의 의식회복 여부가 뉴스에서 오르내렸습니다. 사실 복싱이 뉴스에서 자주 나오던 때가 아니었지만 드문 사건이라 꽤 많이 나왔었죠. 끝내 돌아가셨다는 말을 전 직장동료들이랑 같이 있었을 때 들었는데 다들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납니다. 날씨도 엄청 추웠었고요.
최요삼 선수의 마지막 시합장면
당시 전 세계챔피언들이 티비에 나와서 한마디씩 했던 걸 본 기억이 납니다. 몇몇 분은 불같이 화를 내기도 했고요. 뭣 때문에 저리 화를 낼까, 안타까워서 그럴까 생각했는데 그 이유 중엔 이런 것도 있었습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3001781
“건보금은 프로권투 선수들의 경기가 치러질 때마다 대전료(파이트머니)에서 1%씩 떼서 모아온 돈으로 1950년대부터 적립됐다. 경기 중 부상한 선수들의 병원 진료와 치료비로 쓰인다. 최근 프로권투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아 대전료도 많이 줄었다. 과거 억대에 이르던 대전료가 지금은 세계챔피언 타이틀전도 2000만~3000만원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KBC 정관 제32조 3호에는 ‘건보금은 용도 이외에는 사용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당시 복싱협회였던 한국권투위원회(KBC)는 이런 불의의 상황이 생겼을 때 병원비 등을 충당하기 위해 선수들에게서 무려 1950년대부터 대전료의 1%씩을 건보금으로 수십년간 걷어왔습니다. 그런데 1400만원 정도 남아있다는 이야기.
많이들 다쳐서 많이 써서 없는가.. 아닙니다. 기사를 한번 읽어보시길 바라지만, 요약하자면 건보금은 협회 정관에 부상선수치료 목적으로만 쓰이도록 되어있고 모든 선수들 대전료에서 조금씩 받아 적립하는 형식입니다. 그런데 그 금액이 어느순간 뭉텅이로 빼나가며 사라진 정황을 알게 됐고 의심되는 인물을 검찰에 고소했다고 합니다. 그와 별도로, KBC 회장선출을 두고 소송전이 벌어졌는데 KBC가 소송에서 지며 상대방에게 물어줘야할 비용 일부를 건보금에서 꺼내썼다는 말도 있습니다. 원래 그럼 안되는데 말이죠.
결국 이 돈들, 지금까지 왜 없어졌고, 누가 쓴건지 정확히 밝혀진게 없는 걸로 압니다. 그냥 없어지고 끝났어요. 혹시 누군가 처벌받았다는 소식을 아시는 분은 답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그냥 흐지부지 끝났다고 들었습니다.
당시 저 정도로 허술하게 운영됐다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놀랐죠. KBC가 내부적으로 문제가 많다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게 된 계기입니다. 하지만.. 건보금은 선수들을 위한 복지 차원에서 마련된 것이고 KBC가 만약 본연의 역할만 잘 하고 있었다면 그 문제는 분리해 생각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KBC의 본래 역할이 뭘까요?
* KBC 역대 회장들. 한창 시기엔 국회의원들도 많이 맡았다.
복싱협회(커미션)은 시합이 부정부패없이 공정하고 안전하게 치러질 수 있도록 승인하고 관리감독하는게 그 주역할입니다. 국가에 따라 다르지만 한 재단에서 나서서 하는 경우도 있고(일본 JBC) 정부에서 나서서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미국, 필리핀) 우리나라는 한국권투위원회(KBC)라는 곳에서 그 역할을 맡아왔습니다. KBC는 우리나라 프로복싱 초창기부터 있었던 단체입니다만 엄밀히 말하면 정부기관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권력자의 막강한 힘을 바탕으로 정부주도 프로복싱 부흥기를 맞이할 때부터 KBC는 함께 해왔고(초대챔피언 김기수 선수의 타이틀전 때도 KBC가 있었음) 사단법인이지만 그런 국가가 인정한 기관이었기에 덩달아 KBC의 지위도 막강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가 고도의 경제성장을 빠르게 해오면서 정경유착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했듯, KBC 역시 정말 여러 가지 문제를 가지게 됩니다. 투명하지 못한 회계처리 및 건보료 사태는 2007년에서야 드러난 그 일부죠. 가장 큰 문제는 앞서 공정한 시합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고 심판교육을 통해 공정한 시합이 진행되도록 만들어야 함이 그 목적인데 어느 지역 가면 누가 이기고, 저 지역 가면 누가 이기고 등등 그게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mZeVfS1Tgk
* 백종권 VS 라크바 심. 부산에서 열린 세계타이틀전. 엄청 맞은 백종권 선수가 이긴 판정
2000년대까지도.. 아니 지금까지도 시합 판정들 보면 비슷합니다. 정말 하던대로만 계속 해온거죠. 어떻게 생각해보면.. 이런 모습을 보이는 단일 협회에 의존하라고 하는 것도 무리죠. 갈라져나올 수 밖에 없었을지 모르겠습니다.(근데 갈려져 나온 협회들도 똑같이 하고 있다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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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프로모터와 협회(커미션)의 관계에 대해 이 기회에 설명하겠습니다. 지금 복싱을 보시는 분들보다 격투기 보시는 분들이 훨씬 많고 아무래도 한국의 격투기 문화에 익숙하신 분들은 생소하게 느끼실거라 설명이 필요할 듯 해서요.
로드FC를 예로 들어볼게요. 현재 한국을 대표한다는 로드FC는 특정협회 소속이나 협회(커미션)가 아니라 그냥 로드FC라는 프로모션 단체(대회사)입니다. 그걸 협회라고 부르진 않아요. 하지만 그냥 로드FC에서 특정협회의 관리감독을 받지 않고 시합열고 아 이정도면 프로데뷔해도 되겠다 하면 그냥 데뷔시키고 챔피언 벨트 주고 다 합니다. 우리나라 격투기는 이게 너무 익숙하기에 이상하다는걸 느낀 적이 없겠지만 엄밀히 따지고 들면 문제삼을 부분이 있습니다. 가장 큰 것은 시합을 열었을 때 판정에 대한 권한문제입니다. 로드FC가 판정을 멋대로 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여기의 심판들이 어디 다른 곳에 소속된게 아니라 대회사에서 고용합니다. 그리고 대회사에서 심판에게 돈을 지급하죠.
https://www.youtube.com/watch?v=2W-5L5fHpCA&t=15s
* 데니스강 VS 위승배. 로블로성 공격이었지만 심판에 의해 TKO(?) 결론이 났다. 이미 심판판정이 내려졌는데 대표가 위승배 선수 은퇴시합이라고 이대로 끝낼 수 없다며 다시 경기를 진행시켜버렸다. 그러려니 할 수도 있지만 이거 사실 대회사가 심판의 영역을 침범한 거라고 볼 수도 있다. 프로복싱에선 이렇게 대놓고 대회사에서 결과를 번복시키진 못한다.
경기에 대해 공정해야 할 심판들인데 대회사로부터 고용이 되고 그 대회사(프로모터)의 영향 아래 있는게 과연 공정할 것인가?
이렇게 대회사를 관리감독하는 단일 협회(커미션)이 없는 경우, 차라리 현재 우리나라처럼 대회사가 여러곳이어서 서로 경쟁하는 구도가 사실 훨씬 발전적일 수 있습니다.(로드,더블지,AFC,블랙컴벳 등) 저기가 불공정하다고 소문나면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으니 자체적으로 정화가 되니까요.
* 판정에 열받은 UFC의 데이나 화이트
미국에서 열리는 UFC의 경우, 심판들은 대회사가 고용하는게 아니라 미국 각 주의 주체육위 소속으로 파견됩니다. 가끔 백사장이 열받아서 뻐킹뻑뻑 이러며 인터뷰 같은 곳에서(심판들 면전에선 못 하고) 욕하는거 많이 보셨을건데 이런 맥락이 있습니다. 심판 판정은 대회사(프로모터)의 권한이 아니기에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UFC는 이렇게 그 지역 주체육위의 승인이 없으면 대회 못 열어요. 복싱도 마찬가지. 복싱은 협회의 승인 아래 공인된 심판들이 배치되고 타이틀전을 하려면 세계기구들(협회들)에 챔피언전이라는걸 승인받는 인정료를 지급합니다. 협회에서 인정을 해주지 않으면 타이틀전을 할 수가 없습니다.
* 카넬로 뒤에 있는 사람이 세계 4대 복싱협회 중 하나인 WBC의 회장 마우리시오 술레이만
보통 세계협회에서 누구 VS 누구라는 지명이 떨어지면, 가장 높은 값을 부르는 프로모터가 그 시합의 주최권을 따갑니다. 그 가격엔 미리 정해져있는 인정료 및 심판비용이 포함되어 있긴 하나 이는 협회에 지급하는 돈이지 심판에게 직접 지급하는 돈이 아닙니다. 심판비는 협회가 심판에게 지급하고 협회는 판정을 포함 해당시합을 관리감독하는 기능을 합니다.
공정성을 위한 조치라고 볼 수가 있지만 사실 세계협회들도 지금 보면 전부 편파판정 얘기 많이 나옵니다. 어쩌면 세계협회의 관리감독을 받는다고 하지만 편파를 노리는 입장에선 그냥 장애물이 하나 더 생긴 것일 뿐, 부패로 인한 공정함의 상실은 마찬가지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나라가서 시합하면 편파로 지고, 그래서 또 어디로 가면 그거 분풀이하듯 편파해서 이기고.. 어쨌든 구조는 이렇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WLvcvzlB_Y&t=908s
* 미카엘라 메이어와 마이바 하마우두체의 세계타이틀전. 접전이었는데 심판 한명은 10라운드 전체를 메이어에게 줬다.이런거 보면 협회 프로모션 분리가 의미가 과연 있나 싶기도..
저는 ‘아.. 프로복싱은 스포츠가 아니구나’라고 느낀 때가 몇 번 있는데 시합 재밌게 본 후 판정보다가 현타 올 때가 그런 때입니다. 땅덩어리 좁은 나라인데 서울가서 시합하면 누가 이기고 부산가서 시합하면 누가 이기고.. 외국선수 불러오면 이기고 외국 나가면 이겨놓고도 지고.. 그런 역사 상당히 오래됐습니다. 70년대엔 물론이고, 2000년대 들어서도 그렇습니다. 이 기조가 정말 너무나도 오랫동안, 시대가 변하고 시대정신이 달라졌음에도 그대로 이어져옵니다. 지금 세대는 이전세대보다 공정함에 대한 민감도가 커졌는데 그에 대한 고려보다는 그냥 알력관계에 따라 심판들은 판정을 내립니다.
자 이제.. 찢어진 협회들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해볼게요.
무능에 분노했거나 불만인 사람들을 중심으로 많은 협회가 생깁니다. KPBF가 먼저 생겼지만 당시 반향은 크지 않았습니다. 가장 크게 갈라져 나온 것은 홍수환 회장 취임 후 KBC 내부에서 반대파와 찬성파 둘로 갈라지며 회장선임 절차 적법성으로 소송전이 벌어졌는데 여기서 회장 행보에 실망한 사람들이 무더기로 갈라져 KBF가 탄생합니다. 이후 복싱M이 생기고 가장 최근엔 KABC라는 협회도 갑자기 생깁니다. 여기까지만 들으셔도 복잡하실텐데 구체적인거 굳이 아실 필요 사실 없습니다. 다음의 영상을 봐보실게요.
https://www.youtube.com/watch?v=JU_zg2xMkUU&t=44s
이 연자분은 복싱 해설위원으로도 자주 TV에 출연하시는 황현철 대표입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현재 우리나라 프로복싱 협회는 단일이 아니라 몇 개씩이나 되게 갈라져 있고, 그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프로모터의 역할을 협회들이 어느정도씩 하고 있어서 협회로써의 공정성이 없다는 내용이죠. 황현철 대표님이 대표를 맡고 있는 복싱매니지먼트 코리아는 일단 어떻게든 시합을 많이 여는걸 목적으로 하는 일종의 프로모션 단체라 본래라면 심판 구성 및 타이틀전을 해도 인정받기 힘들지만, 협회가 여러개로 쪼개져 있어 실제로 협회들이 프로모터의 역할을 하고 있는등 공정한 역할을 못 하는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그 지위를 인정받고 있다고 하십니다. ‘공정성을 위한 복싱 협회와 프로모터의 분리’라는 측면에서 많은 부분들을 고려한 깔끔한 설명입니다.
하지만 앞서 설명드린대로 협회가 KBC(한국권투위원회) 하나였을 때도 공정성 시비는 항상 있어왔습니다. 공정성에 문제가 있는건 협회가 하나던 그때나 여러개인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제 생각엔 만약 이런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면 그냥 자진해서 공정하게 판정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됩니다. 지금의 협회는 일종의 격투기판 프로모션 단체들이랑 비슷합니다. 로드FC 하나만 있는것보다 AFC, 더블지 등 프로모션 단체 여러개 있는게 국내 한정 훨씬 활력이 돌 수 있으므로 협회 여러개 나뉘어져 있는건 뒤집어 생각하면 나쁜게 아니에요. 경쟁이 되는데다 일단 시합이 2000년대에 비해선 작은거라도 많이 열리고 있으니까요. 어차피 복싱의 새로운 소비자층에 포함시킬 수 있는 사람들엔 종합 및 입식격투기 팬층이 있고 이분들 사실 이런 공정성을 위한 프로모터-커미션 관계 같은거 잘 모를거에요. 아마 지금 이글 보시고 아 저게 이런거구나 하고 처음 느끼신 분들도 많을 걸요? 그렇담 오히려 공정하지 못한 판단을 하는 심판진을 협회 차원에서 가려낼 수 있으니 자정작용을 하기엔 지금이 더욱 좋은 조건이지 않을까요?
그러나.. 아쉽게도 그 심판이 그 심판이고.. 대회 때마다 반복되는 어이없는 판정들은 아직 그런 자정작용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걸 말해주는 듯 합니다. 지금도 여전히, 과거에 해왔던 대로 그냥 해오고 있습니다.
다음 글은 이제 복싱 ‘시장’ 입장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시장, 마케팅, 소비자...
* 요런 포스터들 얘기도 좀 해보고..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다음 글로 뵐게요.
첫댓글 집에가서 권투 정독 할것.
감사합니다.
우리나라는 협회가 문제
협회만이 아니라 다문제
정래혁 ㅋ
친구가 나오네
이게 나라냐
?
정독할것
요즘 프로복싱이 바뀌면 좋을 거 같은 게 협회 도움을 받지 않는 대회사가 따로 만들어져서 진행이 됐으면 좋겠네요.
뭐 여러가지 문제들이 있겠지만 지금 시대엔 충분히 인재들만 있으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네요.
잘봤습니다
잘보았습니다
미국의 경우 복싱 경기, 격투기 대회있으면 주체육위원회가 1) 프로모터 라이선스 2) 심판 라이선스 3) 선수 라이선스를 발급해요. 대전료 떼어먹혔단 뉴스가 미국에서 잘 나오지 않는게 1) 때문에 그렇습니다. 프로모터는 대전료를 지불할 수 있는 재정상태를 증명해야 하고, 통장에 현금으로 얼마, 선수대전료로 가지고 있는 거 보여줘야 됩니다. 판정 이야기는 종합격투기쪽에서도 계속 나올 건데, 맨날 데이너 화이트가 열받아 하는 것도 2) 때문입니다. 주체육협회에서 파견하는 것이니 편파판정의 가능성은 좀 줄어듭니다만, 오랜 시간 복싱만 했던 양반들이 많아서 복싱룰로 종합격투기를 판정해버리는 기량미달의 문제가 생깁니다.
좀 다른 얘기인데 로드는 심판진이랑 완전히 분리가 되어있다고 하더군요.
근데 자기들이 돈 주고 불러오는건 또 맞음;;
잘봤습니다.
잘봤습니다 1,2,3,4 한번에 보느랴 이제 댓글을 답니다 글을 보면 상황에 답답하네여.. 일본과 비교하면 어떤지도 궁금하네여
포스터에 돌아가신 한충형님이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