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도 살인사건>은 기존 장르 영화들과 어떤 화법상의 차이점을 가지고 있나. 김한민 감독에게 ‘보고 싶은 장르 영화’의 해법에 대해 들었다.
<극락도 살인사건>(이하 <극락도>)의 도입부는 낚시꾼들의 매운탕 냄비 속으로 굴러 떨어진 신원불명 사체의 머리를 비추며 시작된다. 마치 그 갑작스런 이미지처럼, 이 영화는 장르 영화 시장이 협소하다고 일컬어지는 한국에서 영화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그 영화를 지켜보는 관객들 앞에 느닷없이 내던져진 ‘실험체’에 가까워 보인다. <극락도>의 실험은 스릴러 장르, 혹은 공포 장르라는 형식과 문법의 강박관념에서 탈피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맥락 속에서 힘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다. “장르 영화, 특히 스릴러와 공포영화가 한국에서 흥행하기란 도박에 가까운 일”이라는 편견을 둘러싼 이 실험은 놀랍게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 개봉 첫 주말 동안 무려 66만 명의 관객들이 극락도에서 방황하다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관객점유율 40%에 육박했던 초반의 기세는 “무섭고 재밌다”는 입소문을 탄 이후 2주 연속으로 주요 온라인 예매사이트 예매율 1위를 기록하면서 그 힘을 더해가는 중이다. 영화의 흥미로운 모양새와 완성도, 그리고 시장에서의 호재를 감안하면 <극락도>는 <장화, 홍련> 이후 수년간 공공연하게 이어진 스릴러-공포 장르 부흥의 노력 가운데 가장 의미심장한 결실을 거둘 만한 후발주자로 보인다. 과연 관객들은 이 영화의 어떤 지점에 열광하고 있는 것일까. <극락도>는 기존 장르 영화들과 어떤 화법상의 차이점을 가지고 있나. 그 비밀에 가장 가까이 닿아 있을 김한민 감독과의 대화를 통해 ‘보고 싶은 장르 영화’의 해법에 대해 들어봤다.
상실돼가는 영화의 재미 찾기
첫 주 흥행성적이 좋아 기쁘겠다. 예매율을 보면 당분간 인기가 이어질 것 같은데.
<극락도>는 99년부터 매년 한 편씩 엎어져가면서 7전 8기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만든 영화다. 장률 감독의 영화만 두 편을 제작했던 두엔터테인먼트와의 개인적 인연이 없었다면 이것도 만들기 힘들었을 거다. 두엔터테인먼트 최두영 대표님이 전에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색보정 기사로 일하면서 내 단편영화 <그렇게 김순임은 강두식을 만났다>의 색보정을 하셨다. 그때 인연으로 여기까지 왔다. 쉽지 않게 완성한 작품인데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접점을 찾은 것 같아 내심 기뻐하는 중이다.
지금 시점에서 관객이 장르 영화에 바라고 요구하는 바가 <극락도>에서 어떤 식으로 녹아든 건지가 궁금하다. 장르 영화를 만드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일종의 ‘비결’ 같은 해법이 될 수 있을 텐데.
그런 게 있다면 그야말로 맛의 비밀 같은 건데, 알려줄쏘냐.(웃음) 농담이고, 사실 영화를 만든 사람이라고 그런 걸 알 턱이 없다. 그저 운이 좋다고 느낄 뿐이지. 또 각각의 영화들이 워낙 케이스 바이 케이스니까 하나의 정형화된 법칙이 나오기도 힘들지 않을까. 하지만 이 정도는 말할 수 있겠네. 스릴러나 호러 어느 한쪽의 장르코드를 따라가거나 그에 휘둘리지 않도록 애썼다. 내가 의식적으로 주력한 건 오로지 ‘토종성’이라 부를 만한 뉘앙스의 구축이었고, 그게 대중과 소통할 수 있었던 주 요인이 아니었나 파악하고 있다.
토종성이라 함은 어떤 건가.
토종성이라는 것과 같은 의미로 난 ‘극락도스러운’이라는 표현을 더 잘 쓴다. 정의내리기 쉽지 않은 일종의 공기와 같은 건데, 거칠게나마 문자로 정리하자면 해학과 풍자, 살가운 지방색, 그리고 어딘지 모를 부조화에서 만들어지는 그로테스크함일 것이다. 내 고향 순천에서의 유년 시절을 떠올려보면 잔치를 하든 초상이 나든 사람들이 많이 몰려든다. 그 가지각색 다양한 마을 어른들의 모습을 좀 멀찍이 떨어져서 바라보면 완전 한 편의 촌극, 캐릭터 코미디다. 그들의 사투리와 몸가짐, 태도 등에서 해학이 자연스레 묻어나는 거다. 어떤 지방을 가든 그 지방과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꼭 하나씩 있다는 점에서 부조화도 우리 문화 속의 익숙한 코드다. 물론 이건 우리의 근현대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극락도>만 봐도 그 섬마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흰색 보건소 건물이 멀뚱히 서 있지 않나. 이런 부자연스러운 이미지들이 한국 고유 귀신의 이미지와 결합됐을 때 비로소 ‘극락도스러운’ 그로테스크함이 만들어지는 거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다른 시대나 공간이 아닌 꼭 1986년 극락도에서 했어야 하는 이유도 모두 거기서 나오는 건가? 아니면 다른 필연적인 이유가 있는 건가?
물론 ‘극락도스러움’을 표현하고 싶은 미학적 목적에서 선택한 것이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1986년이라는 시대. 획일적이고 권위적이며 동시에 폭력적인데 속으로는 더 무책임하고 방만한 시기 아니었나. 정권의 비정통성 때문에 미국을 위시로 한 강대국들에 무조건적인 러브콜을 보내던 시기이기도 했고. 그런 때라면 <극락도>의 강력한 스포일러라고 할 수 있는 ‘어떤 음모’의 동기들이 충분히 있을 법한 시대인 셈이다. 섬이라는 공간 자체가 밀실 추리극을 하기에 용이한 점도 있지만, 앞서 말한 그런 동기상의 문제의식과 결합돼 더 훌륭한 살인의 무대가 되는 거라고.
<극락도>는 스릴러와 공포 장르 사이에 묘하게 걸쳐 있다. 특정 장르 영화 마니아인가?
아니다. 추리소설도 거의 읽지 않았고 그저 남들이 다 보는 거, 이를 테면 뤼팽이나 홈즈 시리즈, 아가사 크리스티 소설 정도 봤다. 하지만 난 장르 영화 만드는 게 좋다. 처음에는 말랑말랑한 코미디나 멜로가 더 좋았는데 2003년에 단편 <갈치괴담>을 만들어 나름의 성과를 얻으면서 강력한 재미를 느꼈다. 그런 재미를 관객과 함께 공유할 수 있다면 분명 보람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 참에 바로 <극락도>의 시나리오를 쓰게 됐다.
소재를 실제 경험에서 찾았다고 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중학교 때 들은 이야기인데, 어떤 섬에서 주민들이 갑자기 증발해버렸다는 내용의 괴담이었다. 사실 ‘어떤 갇힌 공간이 있는데 그 안의 사람들이 이유를 알 수 없이 모두 사라져버렸다’는 이야기는 사람들이 좋아하고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같은 소설이 지속적으로 인기를 얻는 이유도 바로 거기 있을 거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 배경과 상황에 대해 알고 싶어지는 것. 이거야말로 영화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전반에 예전 TV 드라마 <수사반장>이나 <형사>의 납량특집 에피소드 같은 느낌도 있었다.
좀 전에 말한 토속성과 연관된 기시감일 거다. 시각적인 부분에서도 조금 옛날 영화 같은 느낌이 들도록 유도했다. 눈치 챘겠지만, 일부로 장면 아래 위를 길게 잡아 늘여놓았다. 처음에는 그저 올드한 분위기를 주려는 것뿐이었는데 나중에 관객들을 대상으로 모니터링해봤더니 놀랍게도 드라마의 템포나 몰입도를 높여주는 효과까지 가져오더라. 앞으로도 계속 실험해보고 싶은 부분이다.
단순히 상업적 전략 때문에 ‘오래된 느낌 주기’라는 데 천착한 건 아닐 텐데.
그렇다. 예전에는 극장을 갈 때 설렘이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영화라는 매체 자체의 재미를 느끼기 힘들다. 내가 극장을 처음 방문했을 때 느꼈던 충격과 공포를 재현해보고 싶었다.
충격과 공포라니? 공포영화를 봤나?
내가 극장에서 최초로 본 영화가 <신상>이라는 인도영화였다. 코끼리의 비극적인 애환을 다룬, 뭐 이렇게 말하니 좀 웃긴데 어쨌든 심각한 영화였다. 내가 극장 안으로 딱 들어갔을 때 마침 수십 마리의 거대한 코끼리들이 관객을 향해 맹렬히 뛰어오는 장면이 상영되고 있었는데, 그때의 시각적 충격과 청각적 공포를 잊을 수가 없다. 너무 놀라서 그 길로 극장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물론 금방 다시 잡혀 들어갔지만.(웃음) 한마디로 충격과 공포란 서스펜스인 동시에 쇼크고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흥분이다. 아마도 그때 그 시각적, 청각적 즐거움을 관객과 공유하고 싶다는 욕망이 장르 영화를 만들게 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게 아닐까 싶다.
단순히 오래된 느낌을 준다고 그런 식의 서스펜스가 구축되는 건 아니지 않나.
‘극락도스러움’을 만들어나가는 방법론의 일부인 거다. 당신도 아까 <수사반장> 에피소드를 언급하지 않았나. 그게 지금 보면 과연 그렇게 재미있을까? 그렇지 않을걸. 흥분, 설렘 같은 감정들로 얼룩져 있는 예전 기억의 이미지를 떼어와 <극락도> 이야기의 맥락 위에 펼쳐놓은 거다. 극의 맥락과 동떨어지게, 혹은 당신이 아까 질문한 그런 시간대와 장소와 이야기 사이의 필연성 없이 이미지와 느낌만 나열되는 식이었다면 분명히 실패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규칙이나 문법에 함몰되지 말 것
그 ‘맥락’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이 영화와 기존 다른 장르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은 결국 ‘이 장르는 이렇게 구성되고 만들어져야 한다'는 강박 없이 그저 이야기의 맥락을 최우선시하고 있다는 점인 것 같다. 다른 영화라면 깜짝 쇼라고 비판 받을 만한 부분들도 이 영화 속에선 이야기의 진행과 연결되면서 매우 효과적으로 다가온다.
아까 말했듯이 특정 장르 영화를 즐기는 마니아도 아니고, 특별히 공포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것도 아니다. 열녀의 괴기스런 이미지라던가, 춘배가 “너희 눈에는 저년이 보이지 않는단 말이냐”라고 악 지르는 장면들이 각기 따로 놀지 않고 극의 맥락에 부합되는 건, 관객을 놀라게 하기 위해 그걸 찍은 게 아니라 극의 진행을 위해 꼭 필요한 ‘이야기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공포라는 감정 자체를 위해 열녀라는 귀신을 등장시킨 게 아니다. 극락도라는 섬 자체에 이미 열녀에 관련한 전설이 있었고 그것이 마을의 욕망과 결합돼 집착이라는 거대한 주제로 치닫는 거다. 공포영화에 등장하는 장르적 아이콘들을 드러낸다거나 전략적으로 배치하고자 하는 의도는 애초 없었다. 우리 영화가 15세 관람가다. 그만큼 잔혹한 장면도 없는데 관객들이 상당히 무서워한다. 특정 이미지나 효과를 통해 어떤 감정을 유도한 게 아니라는 걸 확인받는 거 같아 기쁘다.
그게 참 재밌다. 관객은 애초 추리극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뭔가 이성적인 추론의 재미를 기대하고 극장을 찾는다. 그런데 오히려 이성과 무관한 감각적 공포를 경험하면서 패닉에 빠진다. 이건 장르 문법 내에서의 전복적 사고와는 또 다른 유희다. <극락도>는 아예 장르 자체를 두고 혼돈을 야기하지 않나.
모두들 그런 장르에 대한 선입견과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본다. 장르의 관습과 법칙이라는 게 결국 어떤 재미를 추구하다보니 점층적으로 쌓이게 된 데이터인 건데, 오히려 “재미는 있지만 추리극으로서의 마무리가 아쉽다” 혹은 “재미는 있지만 공포극으로서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반응을 보이는 건 어불성설이다. 중요한 건 이야기 자체다. “우리 영화는 무슨 무슨 장르에요”라는 문구에 부합하려고 영화 만드는 게 아니잖아. 아까 ‘보고 싶은 장르 영화를 만드는 비법’을 찾아보자고 했지? 아마 이게 가장 근접한 해답이 아닐까 싶다. 장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 논하는 사람들은 모두 장르에서 멀어져야 한다.
열녀는 <망령의 웨딩드레스> 이후 가장 효과적으로 구축된 토종 귀신의 이미지라는 생각이다. 그녀는 피도 안 흘리고 관절도 안 꺾고 기어 다니지도 않지만 충분히 공포스럽다.
우리 열녀는 만날 밥만 찾지(웃음).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무서울까, 그런 거 고민 안 했다. 처음에 이 영화에는 열녀 귀신이라는 존재가 없었다. 단지 열녀 전설만 있고, 그것을 둘러싼 김노인과 이장집의 암투, 음모가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열녀라는 존재가 직접 마을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게 인물들 사이의 불신과 갈등을 조장하는 데 더 효과적일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열녀 귀신은 그렇게 만들어진 거다. 비주얼을 구축하는 데 별 어려움도 없었다. 영화 속에선 설명이 빠졌지만, 그녀는 청상과부로 살기 싫어 섬에서 도망치다가 김노인의 음모로 인해 동굴에 갇혀 굶어죽은 귀신이다. 그녀가 얼마나 기분이 나쁘고 한이 많고, 가장 결정적으론, 배가 고프겠어?(웃음) 그러니까 눈이 휑하고, 만날 “배고파!”라고 외치는 거다.
영화를 끌고 가는 힘 중 하나는 연극적 요소들이다. 나중에 연극으로 만들어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특히 이장집에서 서로 다른 욕망들이 충돌하면서 어이없는 살인으로 이어지는 시퀀스는 압권이다.
연극적이라는 게 덜 세련되거나 영화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태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상황에 따라선 오히려 관객들에게 굉장한 집중력을 선사한다. 물론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이 전제되지 않으면 그저 엉성할 뿐이겠지만. 이장집에서의 격돌 시퀀스는 모든 동선이 철저하게 계산됐고 수차례의 리허설 끝에 얻어진 결과다. 그럼에도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 같은 생생함이 느껴지는 건 아마도 ‘소동극’으로서의 느낌 때문일 것 같다. 실제 우리 주변에서 비극적 상황이 얼마나 어이없는 동기에서 비롯되는지 감안한다면, 이것이야말로 현실적인 풍경인 셈이다.
당신 말대로 박해일, 박솔미, 성지루, 최주봉 등 탄탄한 연기력의 배우들은 영화의 최대 장점이다. 이렇게 많은 조연을 쓰려면 개런티도 꽤 들었을 것 같다. 통상 저예산으로 찍는 공포 장르로서는 제작비 부담이 됐을 성 싶은데.
<극락도>의 순 제작비는 33억이다. 인지도와 연기력을 동시에 갖고 있는 배우들이 대거 참여함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로 끊을 수 있었던 건, 배우들이 자발적으로 출연료를 적게 받았기 때문이다. 처음에 박해일이 참여하면서 성지루, 박원상, 최주봉, 안내상 등 줄줄이 “아, 아무개가 했어? 그럼 나도 하지”라는 식으로 캐스팅됐다. 모두들 시나리오를 보더니 몸값을 줄여서라도 영화에 참여하겠다는 뜻에 동참해줬다. 제작사 두엔터테인먼트도 나와 인연이 있던 곳이라 큰 간섭 없이 평화로운 동의와 합의아래 작업이 진행됐다. 참 복 받은 신인감독 아닌가?
도대체 그 섬의 모두들 다 어디 간 건가? 끝까지 설명이 안 되니 이거 참 찝찝해서.
설명이 불필요하다고 봤다. 내가 그 반전의 지점에서 어느 한 가지 선택을 강요해버리면 그 순간 <극락도>는 스릴러영화, 혹은 공포영화 어느 한쪽으로 규정되고 만다. 그래서 그냥 묘한 뉘앙스만 남기고 끝낸 거다. 그냥 괴담처럼. 세상에 해답 있는 괴담은 없잖아. 딱 한 가지 심어놓은 단서가 있긴 하다. 마지막 시퀀스에서 범인의 표정이 클로즈업 될 때 점층적으로 증폭되는 음향효과가 있는데, 잘 들어보면 그 속에서 열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말을 잘 들어보라. 거기에 답이 있다(웃음).
첫댓글 훈훈하네요^^ 박해일씨가 먼저 개런티를 낮쳤다는게.. 요즘 연예계가 돈때문에 말이많은데..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