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부에서 하늘로 승천하지 못한 청룡은 여의주를 못 얻어 승천하지 못하고 수원화성 장안문안 광교호수 물속으로 잠기게 되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백년대계는 세게로 뻗어가는 시운으로 비젼은 밝은데 나 하나 "성실 인내 노력"하고 긍정적으로 열시미 띈다면 제2의 인생이 밝아지지 않겠느냐며 나 자신을 격려하며 마음을 다지게 되었다
▣▣▣▣▣▣ 내 인생의 파노라마 ▣▣▣▣▣▣ [제2-2-1부;1989년 2월~2006년 6월(15년 6월;전역후 인생/화성소개 와 BR편)]
충남 연기군 보통리 군인 아파트에서 어린자식 둘을 이끌고 수원시 장안구 우만동으로 둥지를 옮겼지요 (1989년 1월 말경)
필자는 수원으로 이사하기 한달전에 대전 병원에서 국군수도병원으로 전원한바 의무병과이면서
양이(兩耳)고막이 뚫어질 정도로 사격을 했나?하고 의심스러우셨겠지만 이는 사실입니다 특과는 자기 전공 자기병과 임무만
<2훈 지구병원 등록과장시 법당앞에서>
전적으로 수행하는것이 아니라 당시에는 병 기본공통과목과 병과 고유업무등을 차상급부대에서 성과 측정하기 때문입니다
전투병과는(보,포,기)그 병과 고유 업무와 그 훈련만 하니 쉽지요
필자는 보병생활 18개월후 의정으로 전과되어 근무하기에 보병을 잘 알고 기본지식이 해박하니 지휘관들이
<2훈 지구병원 본부중대원들과>
제게 그 임무를 주는것이지요 실례로 제2훈련소 지구병원에 본부중대장 시절에는 2훈련소에서
분기별 성과 측정을 하는데 그 결과 성적이 50% 이하로
나오자 불합격이 되니 병원장은 경고! 간부들은 1개월 영내대기를
시키니 지휘관들은 열 받지요 하여 당시엔 모든 부대가 다 같은 입장이였지요
기본임무는 소홀하더라도 필히 부대가 70%이내 합격 하여야만 했지요
그러니 신경을 안 쓸수가 없었지요 이러한 여건과 배경속에 담당장교는 에를 들어 사격연습을 하려면
의무부대는 당시 병사들 편제화기가 칼빈소총이 였는데, 칼빈은 1인당 실탄이 년/6발이 주어짐니다 특히 사격은 많이 쏴봐야
영점을 잡고 사격술을 향상 시킬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접부대로 가서 사정하고 협조하여 연습용 실탄을 수만발씩 빌려다가
병력을 반으로 나누어 A조는 교육, B조는 기본업무 그 다음날엔 교대해서 이런식으로 지속하니
보병이나 다름 없었지요 중요과목은 정신교육과목,사격,구보지요
또한 실예로 소령때 3군수 의무근무대장 시절에는
부대가 전부 특과로서 전투부대를 지원하는 임무인데 이 가운데에도 타 병과 놔두고 하필이면 의무근무대장으로
하여금 간부 사격교관과 동원예비군 대대장을
지명하니 참으로 상급자에게 밉보였는지 무슨 기구한
팔자인지 운명인지... 어딜가나 제게 그런 임무가 주어지니 참말로 환장 하겠습니다
내 기본임무는 대충하고 그런 잡무는 떠 맡겨지고 공적은 다 자기들이 챙기고 이 몸은 자기 본분을 다 하면서도 키타일로 고생과 수고로움이 끊임이 없으니
아마도 전생에 어떠한 업보영향으로 기인된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것은 조부가 갑부이면서 인색하게 하여 민심을 못얻고 그로 인해 1개 면땅을 날렸다는 애길 간접적으로 들었던 터인지라~
그 업보는 영향이 자손들에게 3대를 끼친다 합니다
하여 막차에 진급도 못 하고 전역명령은 자동으로 내려오고 하니 규정상 전역후 6개월까진 진료가 허용되므로 수도병원으로 입원한 것이지요
<이럴땐 정조대왕과 막걸리를 한말정도 마시지요>
이제 이해가 되시나요? 필자는 ENT 치료를 종결후 6월 중순에 퇴원 수원역을
경유하여 이사 온 수원으로 영구 귀가하였지요 먼저 팔달산 서장대에 올라 정조대왕의 넋을
기리면서 겉으로만 막연하게 알았던 화성역사를 상세히 알고나니 정조대왕은 멋지고 훌륭한 군왕이란걸 알았지요 퇴직후에 스스로 나 자신을 자원화성홍보대사 라고 소개합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세종다음으로 정조대왕을 존경하게 되었지요 이때에 행궁,성곽,박물관, 융 건능등을 한 바퀴 돌아 보았지요 그리고는 구휼 직업전선 일로 전념하게 됨니다
<서장대에서 전망하는 필자>
정년 퇴직후에는 취미로 카메라를 들고서 자주가서 살다시피 하였지요 하여
전역후에는 자영업 2년 그리고
BR에서 13년 6월로 제 2 인생 직업을 마감 하고 정년퇴직을 하였지요
<저 멀리 광교산 형제봉(톱니모양),종루봉,시루봉,송신탑등>
수원 화성 팔달산에 올라 저 멀리 광교산과 시내를 돌아보며 풍수를 살펴보니 성곽도시라 4대문과 성벽등 앞뒤로 건축 고도제한이 있어 건물밀도가 낮아 공기가 청정하였고 대신 옆으로 바닥으로 발전하는 도시로 연립주택이 발달하였으나 그런대로 순수하고 수려하여 명당이였다 도시는 너무 커도 너무작아도 안된다는 신념이 있었다 그런곳이 좋다오
<정조대왕 운봉>
여기서 수원화성을 간단히 소개하고 넘어가지요 역사과목을 좋와하는 필자는 유서깊은 용의 도시 효의 도시
역사의 고장이 좋왔다요 경찰형님도 수원에 사시고 큰 고모님, 조모님의 고향이라 친근감이
있기도 하였지요
팔달산 서장대 아래 위치 한 화성행궁은 1794년 1월에 착공하여 1796년 2년 9월만에 완공하였다
이렇게 공기를 획기적으로 단축할수 있었던 것은 인력이 강제징집이 아니라 노임을 지불하는
임금지급제 였기 때문이지요
거기다 도급제로 하니 속도가 더 붙지요 지금 화성 주요건물에 노역자 임금 지급기록이 세겨져 있고요 또한 화성의궤에 기록되어 있어 세계문화유산 등재시 기록문서가 잘 보존된 결정적 증거라 그 역할을 했다 합니다
<신풍루 마당 무예24기 공연;매일-평일/11;00~11;30, 15;00~15;30, 주말/14;00~14;30>
<무예24기 공연후 장용영 무사들과 인증하다>
<동일포루에서 성벽따라 바라 본 성곽과 동문 창룡문 그리고 광교산>
정조는 선친의 원침을 양주 배봉산에서 화산 융능으로 옮기고 13차레나 한양에서 행차 거동 참배하였으며 화성축성시 병행하여 확장하고 당시 봉수당,복내당
<수원화성문화제 기간 태평무>
유여택,신풍루,남북군영, 우화관, 득중정등 600여칸으로 우리나라 행궁 6곳중 가장크고 아름다우며 정궁 형태로 건립되었지요
화성행궁내 화령전 운한각에 모셔진 조선 제22대 무장복장 정조대왕 초상화는 정조가 운명전에 세자 순조에게 평소에 유언한 첩지였으니 정조대왕은 죽어서도 나라를 수호한다는 의지와 신념이 있었지요
수원화성은 1997년 12월 6일 이태리 나폴리에서 열린 제21차 세계유산위원 총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도시라 필자는 매우 만족하였었고
<광교공원에 세워진 고려를 구한 강감찬장군의 동상>
수원은 효의 고장이요 정조대왕의 한이 서린 지역에다 화성 용주사는 친부 사도세자의 넋을 기리는 사찰이고요 조계종 경기 도찰사이기도 하지만 효 교육을 모토로 수양하는 도량입니다요
또한 융 건능을 옆에 두고 있으면서 제사를 극진히 모시고 관리하고 있지요
<용주사 대웅전과 좌로 관음전 우로는 증무소>
용주사 이름은 정조가 용주사 낙성식 하루 전날 행차후 침소에 들었을때 꿈에 용이 여의주를 물고 하늘로 승천하는 꿈을 꾸었다고 해서 명명된 사찰명입니다
<사도세자 →추후 장헌세자 →추후 장헌황제로 추대되었지요/융능>
또한 화성은 팔달산을 중심으로 4대문, 장대1, 공심돈2
<화서문과 서북공심돈과 성곽>
봉돈2, 수문 2, 암문3, 각루4, 포루5, 치6, 노대2등등 성 둘레는 5.6km이며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성곽이라 하여
세계적으로 성곽의 꽃이라 부름니다 화성은 세계문화유산으로 (1997년12월 6일)등재된 유적지이지요 또한 수원은
<수원화성 북문 장안문>
경기도 도청 소재지이기도 하며 인구가 2014년 5월말 기준(통계청) 전국 특별,직할,도합하여 6번째요 일반시중에서는 1위이지요
일반시 중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116만 6천3백여명
<수원화성의 수두문격 북문 장안문은 백성들이 평안하라는 뜻으로 장안문이라 정조대왕이 명명하였고요>
<장안문 천정 수호신 청룡과 황룡>
<서쪽에서 본 장안문>
<북동쪽에서 본 장안문>
<동쪽에서 본 장안문>
<장안문 좌우에 배치된 대포/북동적대,북서적대>
<장안문 좌우에 적대가 설치되어 있고 문앞 반구형 옹성과 좌우 성곽연결은 전국과 서울 숭례문에도 없는구조입니다>
<서북각루 앞 화서공원을 통과 팔달산으로 올라가는 화성열차>
<주말에는 화성열차가 2대씩 붙어다니지요~ 왜그럴까요? 단체와 팀들 때문이지요 요즘은 신축성있게 운영하데요> <수원시 화성 사통팔달 남문 팔달문>
<팔달문 우둔살 부용 처마 단청 ; 2013년도 보수완료>
<수원화성 서문 방어형 화서문과 서북공심돈>
<수원화성 동문 방어형 창룡문>
<공중에서 본 반구 방어형 화서문(=창룡문)>
<연무대/동장대;장수의 작전지휘소>
<수원화성 연무대 편의시설>
<연무대는 군사조련장이다 위 사진은 국궁사선>
<북동적대에서 동북포루까지 조망 ; 북동포루-화홍문-방화수류정-동북포루>
<북수문/화홍문;7개 수로를 통해 물을 유입합니다>
<남수문/수로 9개로 90년만에 이 공사도 화성의퀘를 보고 그대로 복원하였지요;2012년 6월 9일>
<용연과 방화수류정 또는 동북각루는 성밖 전방감시와 북수문 수로 감시로 침투하는 적을 감시하기도 하지만 여유로운 평시에는 정자역할을 하였지요>
<방화수류정 /동북각루>
<동북포루는 포를 설치하고 적을 감시 방어하는곳>
<종로사거리 여민각; 타종으로 백성에게 나라의 행사를 알리는 역할>
<수원화성의 역사박물관>
<전 평시 신호체계 ; 봉돈>
<서북각루>
<방화수류정에서 바라 본 북문 장안문>
<용연과 방화수류정,화홍문과 팔달산 서장대 야경>
<북수문 화홍문과 방화수류정 야경>
<팔달시장의 먹거리 지동시장>
<수원화성탐방소개는 이정도로 하고 정조는 실제평민으로 돌아 갑니다>
<수원화성문화제에 마니 마니 구경오세요;10/8~10/12>
<1988년 12월 15일 대전병원은 ENT수술장비가 없어 필자는 도리없이 국군수도 병원으로 전원(88년12월16일~89년 6월15일까지)치료후 퇴원하였지요>
<수도병원에서 필자는 규정에 의하여 전 공상자는 전역후 6개월까지도 입원 가료가 허용됨을 활용한 것이지요 그러나 급료는 나오지 않지요>
<광교산아래 광교 저수지>
<이러한 배경의 유서깊은 역사적인 고장이요 효의 고장 수원으로
둥지를 틀었을때 광교산 정기아래 수원천이 흘러내려오며 시내 가운데로 흐르는 수원천으로 공기는 좋고 운치도 있고 물도 맑고 좋은데
수원 깍쟁이들이라 예로부터 기러기도 "이크 수원이다"하며 돌아갔다는 일화도 있지만 인심이 만만치 않다하니 가게를 운영
한다는게 여간 힘들고 고단한게 아니였다 매일같이 봉고차를 운전하며 날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도매장에 가서 물건을 구입해야 하고 도매는 서울 가락동 시장과 수원 인계시장으로
다니며 구입하고 한달에 하루도 못 쉬니 이것도 적응하기 엄청 어려운데다 령관장교 출신이 갑자기
이러한 장사를 한다는것이 첨부터 적응하기가 심리적인 갈등으로 무척이나 힘들고 어려웠었다 뒷집에 형수님과
이웃옆집 우유가게 대리점 사장이 많이 도와줬다 그리고 사회에 나와서 먹구살아 가는데 직업에 무슨 귀천이 있느냐 하며
다짐하지만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요 이론과 실제는 다르기 때문이다 일케 자신을 다그치며 환경에 적응하여 오던중
수원은 연립주택단지 마다 슈퍼가 50m마다 있고 생기니 나눠먹기요 경쟁이 심하니 제살 깍아먹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출혈경쟁도 해야했다 이 시기부터 대형매장 이마트등 유통업체들이 생기기 시작하니 갈수록 태산이였다 2년차 부터는 시장환경 여건이 급변하는데다 노력에 비해 수입은 적고 몸은 고달펐다 빨리 넘기는게 상책이라 판단되었지요
이러한 차제에 대책을 강구하던 필자에게 군 복무(9사단 백마 의무중대장)시절 내 덕분에 약제면허증을 획득한 약제사병이 서울에서 약국을 크게 운영하면서 성공했다며 내게 가게운영에 대해 상세이 묻으니 그럼 취업이 낫겠다면서 취업을 알선합니다>
<그러며 자기가 아는 3개회사를 추천해준다 그것이 자기가 내게 보은하는 길이라며 3곳을 추천하면서 업체을 선택하라네요 하여 필자가 3곳중 BR을 선택하여 취업이 연결된 것이지요. 살다보니 이런일도 생기네요~그래서 댓가 없는 선행은 후에 보은으로 돌아 온다는 진리를 깨달았지요 그래서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생긴것입니다>
<2년만에 슈퍼를 넘기고 안산공장으로 출근하는 필자/원래 령관급이면 차장으로 직급을 줘야 하는데(사 규정)어디 개인회사가 그러한가요? 얼마나 타이트하고 빡빡한지 3개월 줄다리기 면접끝에 필자가 양보하고 말았지요;1991년 1월 1일부 발령>
<근무중 공장관리과 직원들 ; 일반관리,서무/경리/원가담당/원부자재/공무>
<영업부 판매세일등 신제품 런칭시나 프로모션시에는 공장장 이하 전 간부가 부족공수를 메우지요>
<제품수출용 컨테이너 선적을 끝내고는 회식도 하지요;안산/군포공장>
분기별 목표달성 축하행사에 참여하며 생각하니 BR맨은 팔방미인이라야 합디다 성실,인내,노력등의 사훈과 근무근태 예능 잡기 음주 가무 등등을 다 잘해야 견디겠더라고요
그 후에 생산본부에 근무하면서 변산반도,보령,대천, 설악산,태백산,오대산,야유회등을 정기적으로 매년 다녀오기도 했지요>
어느때 태백산 야유회때는 여직원들이 야자타임을 제안하여 부여받은 과제를 수행하는 장면(홀쭉이와;안과장)/(뚱뚱이;관리과장)을 연출합니다 이미지 포즈 ㅋㅋㅋ
93년도에는 사 목표 달성시 교육문화회관에서 축하 파티때 가수 주현미씨도 만나 악수도 목표 돌파 기념축하 샴페인도 대표로 터트리고 노래도 한 곡조 부르고 일도 열시미 하고 잼있고 화끈하게 놀았지요
<회식시 열창하는 필자는 노래를 꼭 시키네요~ 우측에는 생산과장이 반주를 맞춰주고요>
<노래를 많이 알고 좋와하니 다행이지 원! 클 날뻔했다요~ 몬하면 짤리거든요ㅋㅋ>
<본사 회식시 생산본부장과 공장직원들>
<필자는 1994년 2월 1일부로 사 조직개편에 의하여 안산 공장에서 군포공장장으로 승진 발령을 받었네요>
<군포공장장으로 본사 회식시 영업/마케팅 본부 유 전무님과 경리부장,환경사업부장,품질관리과장등과 건배하는 장면>
<군포공장장 재직시 대표이사로 부터 사 단합대회시 우수부서로 금일봉도 하사 받었고요>
시상식에서 직원들과 함께 대표이사에게 답사한후 직원들과 함께 한 곡조도 불렀는데 군에서도 그랬지만 회사에서도 1등만 했지요
보직받은 군포공장 조직은 수유기 생산팀과 배송팀,그리고 창고팀으로 편성되어 있었고 필자는 보직과 동시에 고질병인 창고 전산오류 문제를 전산실과 함께 1년간 원인규명 해결하였고 배송비를 년/3억씩 10년간 절감하였고 직원들 일부를 일용직으로 전환하여 원가를 절약하니 그 공로를 인정 받았음인지 1995년 11월 모병사원으로 선발되어 유럽연수교육으로 선발 독일과 영국을 5박6일 다녀왔지요 연수는 수유기 원자재사인 독일 마파사사 수유기라인 현장을 견학하고 독일관광후 영국으로 이동하여 관광을 두루하며 다녀왔지요 사진은 /독일 제벤시 마파사 현관앞에서;일행 14명과
독일에서는 유명한 교회와 호수가,함브르크시청 방문, 도크강에서의 뱃노리후 함브르크항에서 수백명 수용하는 스칸나비아 크루즈 호화여객선을 타고 22시간을 영국으로 갔고 항구에서 런던으로 오는 전철은 특등석을 타고 런던으로 온후 지하철로 이동하는데 특이한 점은 런던 지하도는 지하 수백 미터라서 엘레베이타를 타고 1~2번을 교대하며 오르고 내린다 그리고 철도네일 침목마다 작은마우스가 한마리씩 살아서 있는 광경은 징그럽기까지 한데 이는 승객들이 먹이를 주기 때문이람니다
빨간 2층버스를 타고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궁전 버킹엄궁으로 갔던바 이곳에서 근위대 교대식이 유명한데 이날은 여왕이 출타중이라서 아깝게도 교대식을 보지못해 못내 아쉬웠는데 영국왕실운영 사업은 모두 빨간색입니다
<템즈강 런던 브릿지를 배경으로>
<국회의사당을 배경으로/독일 마파 사 칼라한 부사장과 함께>
<런던 교외에 있는 웬저성 성벽에서>
영국에서 가장 인상적인것은 대영박물관이다 영국은 해가지지 않는 나라로 이집트 박물관이 가장 크더라고요 우리나라는 삼성에서 겨우 층간 계단에 진열대 몇개가 있을 뿐이였었고 일체 촬영금지라 사진을 못 남긴바 아쉽고 강국은 이렇게 긍지를 자랑하는걸 알았을때 우리도 똘똘뭉쳐 초강국이 되야한다며 귀국했지요
<귀국후 군포공장 순찰시 배송과장과 경비반장과 인증>
<제29회 상공의 날 상공회의소장 표창도 받고>
<렉 창고에 신형 렉크포크가 들어오자 포크 조정법을 배우기도>
<렉 창고 창고직원과 인증>
<배송과장 한과장과 안면도 꽃박람회장 야유회도 갔었고>
<안면도 꽃 박람회장에서 직원들과>
BR연구소장 김 상무님과 외국인 바이어와 인증사진도 이때 필자는 (주)메디앙스 군포공장장 보직과 보령제약 일반관리팀장을 겸무했지요 공무원이나 군 업무와는 강도가 다르다요 얼마나 시집살이가 센지~ 6시출근 9시퇴근 공휴일도 없이 출근해야 했지요
총사회 일원인 안사장(당시;환경사업부장)당시 필자와 사무실에서 업무협조를 하는 장면
<안양여중 정문>
군포공장장 재직시 신제품 런칭 홍보를 위해 안양 여중고 정문에서 켐페인을 전개하고있는 필자
군포공장에서 10년 6개월을 근무하니 화무는 십일홍이요 일출이 있으면 일몰이 있네요 즉 인연이 다하면 멀어지고 사라질 운명이 되었는지
<나의 12년차 애마는 지금도 잘 나가고 있지요>
회사가 경영이 어려워지자 필자와의 인연은 옛인연으로 변화되어 권유성 퇴직을 요구하네요
BR! 백마사단에서 생긴 선업으로 생긴 인연으로 이만큼 생존하고 열시미 살아 온덕에 수원에다 아파트 사고 잘 살고 있지요 BR과 인연은 여기까지 인가 봅니다
그리하여 13년 6개월로 제2인생 직업을 마감하고 지금은 전업 주부로 건강관리를 하면서 행복하게 잘 산답니다
이상으로 제2-2-1부 전역후 화성소개와 BR편을 간단히 마침니다
다음은 제2-2-2부로 대미를 장식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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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운봉님의 삶 ㅡㅡㅡㅡㅡ
감명깊게 보구갑니다....
아구야 럽사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