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어제 닭도리탕을 먹었던 집의 건너편 식당에서 아침을 먹는다. 옆에 앉은 추임새님은 원주에 사시는데 어제 저녁에 서울에서 모임을 갖고 밤새 길을 달려 오늘 새벽에 도착했다고 하신다. 아, 그 열정! 반찬이 맛있다. 아침을 잘 안 먹는데 공기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운다. 이곳에는 탄산수가 지하수로 올라오는 모양이다. 어제 식당과 마찬가지로 쇠맛이 느껴지는 탄산수가 마당에 있어서 한 모금 마시고 소나무를 보러 서벽리 숲으로 간다. 트럭 뒤에 올라타 마치 퍼레이드이 주인공처럼 환호를 지르며 숲으로 간다. 온몸을 훑고 지나가는 신선한 바람. 맑은 하늘. 잡힐 것 같은 나뭇가지. 길가의 산딸기. 우리는 어린아이마냥 즐거웠다. 숲 가까이 갔을 때 잘 생긴 나무에 노란 페인트로 줄을 긋고 숫자를 적어 놓은 것을 보았다. 무슨 표시일까 궁금했는데 나중에 서벽리 총무님이 설명을 하시면서 그 나무는 문화재 복원에 쓰일 나무라고 알려 주셨다. 산길을 걸어가면서 총무님의 설명을 듣는다. 소나무는 거의 두세 그루씩 짝을 지어 서있는데 이는 뿌리끼리 서로 연결되어 서로 도움을 주고받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용한 날 11시쯤 소나무에 청진기를 되면 물관으로 물이 올라가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단다. 색이 붉어 적송이라 하기도 하고, 금송이라 하기도 하고, 또 미인송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우리 소나무들이 일본인 학자가 먼저 학계에 소개하는 바람에 일본 소나무로 외국인들에게 알려져 있다니 아쉽다. 몇 해 전 안면도에 갔을 때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숲이 너무 아름다워서 잠시 세우고 본 적이 있다. 그 때 본 소나무와 비슷한 것 같아서 총무님께 안면도에 있는 소나무와 이와 같은 거냐고 여쭤 보았더니 그렇다고 하신다. 적송이라 하기보다 미인송이라고 부르는 것이 이 소나무에 더 합당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소나무는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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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리 탑
탑을 보러 간다더니 웬걸, 춘양중학교와 춘양상업고등학교 앞에 버스가 선다. 탑이 학교에 있나? 탑이 학교 운동장 옆에 있었다. 2개의 탑으로 이때까지 내가 보았던 탑들에 비해 크기는 그렇게 크지 않아 아담하게 느껴졌다. 길눈이 라피오님의 설명이 참 재미있다. 어떻게 저렇게 설명을 잘 하실까? 어떻게 저렇게 아는 것이 많을까? 감탄 또 감탄이다. 학교 다닐 때 “선생님들께서 배워서 남주냐, 열심히 해라.” 하셨는데 이제 그 말을 바꾸셔야 할 것 같다. “배워서 남 주도록 열심히 해라” 아는 것이 없는 나는 남에게 도움이 못된다. 분야는 다르지만 모란 동네님의 들깨로 음식을 만드는 법도 가르쳐 주셨는데 나에게 매우 유용하게 쓰일 것 같다. 이 나이 되도록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사람들의 나이는 괜히 먹는 것이 아니다.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살아온 만큼의 경륜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정말 아는 것이 없다. 라피오님의 설명을 들어보면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좋은 곳으로 가기를 원하는 것 같다. 죽어서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한 발원으로 탑을 만들고, 증명서(?)까지 탑속에 넣었다니 신기하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나는 라피오님의 ‘공부하세요’ 라는 말이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카메라의 밧데리가 다 되어서 서북리탑부터는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 역시 여분의 밧데리를 준비해 오는 것이었는데..... 이미 후회해도 버스는 떠났고 다음 버스도 오지 않으리. 다음부터는 잘 챙겨야지.
닭실마을
봉성돼지숯불단지에서 숯불돼지고기로 점심을 맛있게 먹고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4대 길지라는 닭실마을로 향한다. 버스에서 내려 마을로 들어가니 집들이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다. 그 마을에서 안쪽에 권충재 선생의 집이 있다. 이곳에 충재박물관도 있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솟을 대문이 매우 정겹다. 대문 위쪽과 아래쪽에 굴곡을 그대로 살린 나무가 걸쳐져 있다. 이걸 뭐라고 하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을 오른쪽을로 두고 들어 가니 사랑채 인듯한 곳이 나온다. 넓은 마루에 걸터 앉아 있다보니 눕고 싶어져 벌렁 누웠더니 모란 동네님이 내 배위를 덮친다.(허걱) 윤이님도 연달아 내 옆에 누우시고 셋이서 깔깔거리며 사진을 찍었다. 사랑채(정말인지 아닌지 모름. 내 생각에) 바로 뒤에 석천정이 있다. 그야말로 돌 위에 세운 정자 같다. 석천정 주위로 둥글게 물이 흐르는데 인공으로 만들어진 듯싶다. 나중에 보니 마을 수로에서 물을 끌어 오고 있었다. 조그마한 돌다리를 건너 석천정으로 들어서니 몇 백 년 된 듯싶은 대추나무가 거의 비스듬하게 쓰러져 물위를 지나 사랑채공간과 연결되어 있다시피 한다. 아,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정자는 꽤 넓다. 정자를 한바퀴 돌고 박물관으로 간다. 안이 너무 덥고 눈이 맵다. 도저히 설명을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어 밖으로 나온다. 정자로 돌아가 일행을 기다리는데 선경이 따로 없다. 멀리 산과 길이 다 보인다. 두 번의 사화로 시골로 내려오게 된 이 집 주인은 이렇게 정자에서 길을 내다보며 누구를 기다렸을까? 혹시 다시 서울로 오라는 왕명을 기다렸을까? 아니면 함께 학문을 논하고 풍류를 즐길 수 있는 반가운 친구를 기다렸을까? 산이 보이고 길이 보이는 이곳에서 그는 어떤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았을까?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나이 지긋한 부부가 카메라 타이머를 조정해 놓고 나란히 앉아 사진을 찍는다. 내가 바라마지 않는 노년의 부부 모습이다. 저렇게 늙어갈 수 있다면 좋으리. 나도 모르게 말을 붙이게 된다. 어제 저녁에 서울에서 내려 왔고 영주를 거쳐 오늘 여기에 오게 되었단다. 보기 참 좋다는 내 말에 이렇게 다닌 지 꽤 오래 되었다고 하니 더욱 부럽다.
닭실마을을 나오는데 나들이 갔다 오심직한 두 할머니께서 학생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하신다. 학생이라는 말에 너무 좋아서 “네 서울에서 왔어요.” 간드러진 내 말에 쿠크다스님과 나는 한바탕 웃고 말았다. 지나간 청춘은 다시 오지 않는 법이어늘......
닭이 많아서 닭실인지 닭모양으로 생겨서 닭실인지 하는데 라피오님이 이 마을의 안산은 수탉형상을 배산은 암탉형상을 하고 있어서 닭실마을이라고 한다고 알려주신다.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금계포란형의 길지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마을에 닭이 많기는 많다. 새로 만든 듯싶은 가로등에는 모두 닭이 한 마리씩 올라 앉아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꼬꼬댁!
북지리 마애불
마애불을 보러 간다. 고부조로 된 마애불이다. 크기도 크다. 비스듬히 등을 굽히고 앉아 계신다. 라피오님의 설명에 따르면 불교도 유행이 있는 모양이다. 중국에서 석굴에 부처를 모시는 것이 유행했고, 그 유행이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처럼 석굴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이 되지 않았기에 이렇게 바위에다가 불상을 새겼다고 한다. 초기 불교 양식이라고 하는데 불교양식의 구별하는 방법은 부처의 손 모양을 보면 알 수 있단다. 봉화가 불교가 들어오는 길목에 있었기에 우리나라 불교사에서는 이 지역이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여겨진다는 것 까지 기억이 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마애불 앞에서 빌고 또 빌었을까? 나는 또 무엇을 빌어야 하나?
부석사
드디어 부석사다. 10여 년 전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 있다. 이런 게 있었나 싶다. 날이 너무 덥다. 윤이님이 아이스크림을 쏘아서 그나마 즐겁게 걸어 올라 간다. 걸어 올라 가는 길왼편에 밀밭이 있다. 어릴 때 밀밭을 본 이후로는 처음이다. 밀이 저렇게 예뻤나? 당간지주를 지나고 일주문을 지나 라피오님의 설명을 듣고 다시 출발! 햇볕은 쨍쨍, 땀은 송송이다. 햇빛 알러지 때문에 무척 신경이 쓰인다. 드디어 무량수전 앞! 아아, 안양루와 함께 어울린 먼 산능선 능선들을 바라보니 정말 말로 표현이 된다. 10여 년 전에도 이미 잊어 버렸지만 갈길을 재촉하는 남편에게 눈을 흘기며 오랜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는데 충분히 내가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된다. 이 풍경을 두고 어찌 발길을 돌릴 수 있으랴! 절에 가보면 항상 느끼지만 절의 위치는 늘 좋은 자리에 자리 잡고 있다. 부석사 또한 예외가 아닌 것 같다. 안양루에서 김삿갓으로 알려진 김병연의 한시를 발견한다. 전에 보지 못했던 것이다. 사람의 시각은 얼마나 한정되어 있는가? 분명 10년 전에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화유산답사의 눈으로 보니 보인다. 옆에 해석되어 있는 것을 보니 ‘부석사가 좋다는 말은 일찍부터 들었지만 오지 못하다가 백발이 성성하게 늙어서야 와 보니 정말 좋다. 언제 다시 올 수 있겠는가 이미 늙은 몸이거늘’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어쩜 내 마음이 이와 같을까? 다시 10년 후에 다시 올 수 있을까? 다시 와서 이 눈맛을 즐길 수 있을런가? 그 옛날의 부석사도 좋았지만 라피오님의 설명으로 아는 즐거움(곧 잊어버리겠지만)까지 더해져서 더욱 좋았다. 기쁨 두 배!
이별
생각보다 빨리 서울에 도착했다. 계획에는 10시 30분으로 되어있어서 만약 지하철이 끊기면 일산 촌사람이 어떻게 집에를 가나 걱정을 했는데 일찍 도착해서 너무 너무 다행이었다. 우연히 우일신님이 일산에 사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같이 가게 되어서 더욱더 안심. 서울로 나들이가 별로 없는 나는 서울만 나오면 겁먹은 어린애가 되어서 늘 식구들이 걱정을 한다. 답사 내내 거의 같이 붙어있었던 윤이님, 카타리나님, 모란 동네님, 곰상님과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헤어져서 섭섭하다. 우일신님을 따라 서둘러 3호선을 타니 의외로 아는 얼굴들이 많다. 우일신님, 쿠크다스님, 갤러리임님, 발해를 꿈꾸며님, 봄뜰님 아딧줄님, 하사다님..... 봄뜰님, 아딧줄님, 하사다님은 갈아타시는 것 같고, 나머지 분들은 끝까지 3호선을 고수했다. 그 중에서는 나는 끝까지 갔다. 혼자 압구정역으로 갈 때는 시간이 많이 걸렸는데(전철 타는 시간만 1시간 10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금방 일산에 도착한 것 같다. 역시 길을 짧게 만드는 방법은 이야기인 것이여!
첫댓글 좋은 사람들과의 수다는 거리를 짧게 만드죠? 다음 답사에서도 또 뵈요...
넵, 백설공주님. 읽어 주셔서 감사해요. 사실 남의 글을 읽는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지요.
아니~~답사 여러번 간 저보다 더 많은 닉네임을 적으시다니...분발해야지...ㅜ.ㅜ;; 만나서 반가웠습니다..심우님의 밝게 웃으시던 모습 ..참 보기좋았습니다..
봄뜰님, 만산고택 대문 앞에서 찍어 주신 사진이 아주 잘 나왔어요. 언니도 잘 계시죠? 너무 미인이시라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 지 잘 몰랐어요. 제가 웃기는 잘 웃지요. 덕분에 주름살만 늘어가는데 좋게 봐 주시니 감쏴!
답사후기 1.2탄 흥미있게 잘 읽었습니다....감기 기운이 있으시다고 한 것 같은데9몸은 좀 어떠신지요?),,많은 것을 보시구 느끼신것 같아요.어쩜 제가 놓친 부분까지 다 세세히 읽을 수 있었습니다...다음 기회에 또 뵈어요~~
고맙습니다. 많이 좋아져서 답사 후기까지 올릴 수 있었어요. 빛나는 눈빛의 재스민21c님 다음에 뵈어요.
심우 학생~ 방학도 했으니 답사에 더욱 매진하셔야죠? ㅋㅋ
코크다스님의 후기도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어쩔수 없이 저와 거의 끝까지 가야 했지요? 다음에 뵈어요.
ㅋㅋ 일산.. 한번 모여야겠지요?
넵, 참고로 저는 맥주를 무지 좋아합니다.
처음 뵈었는데 웃는 인상이 참 좋으시다 했더니 글에서는 문학소녀같은 느낌이 팍팍 듭니다. 다음에 뵐 때도 밝게 인사 나누시자구요~~^^
추임새님의 열정!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연애할 때 빼곤 그런 열정이 있었나 싶네요. 무섭게 생겨서(?) 웃는 걸로 커버하려고 합니다. 하하하.
제 2 에 라피오님 인것 같네요 ~~~^^
엥! 라피오님이 화내셔요. 모란동네님, 산을 좋아하는 사람을 옆에 둔 까닭에 저도 산을 참 좋아합니다. 사진이 별로 없어서 안타까워요. 잘 지내시고 답사 때 또 뵈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