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요약
"꿈은 은폐되고 왜곡된 소망이 드러나는 곳이다.
그러므로 꿈의 해석을 통해 무의식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유대인으로 태어나 생리학을 공부하고
종합병원에서 일한 후 파리로 유학을 떠나 최면술을 배웠다.
당시 프로이트는 '안나'라는 이름의 히스테리 환자를 치료하면서 온갖 고난을 겪었다.
프로이트는 이 환자가 가진 히스테리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나에게 최면을 걸자 안나는 자신의 히스테리가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스스로 대답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프로이트는 인간에게 무의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정신분석을 과학적으로 체계화한다. 특히 프로이트는 인간의 '성'을 중심으로 정신분석을 연구했다.
억압된 것의 회귀
인간이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그로 인한 심리적인 억압이 누적된다.
그리고 이렇게 지속적으로 쌓인 심리적 억압은 반복적으로 회귀하며 인간의 무의식에 쌓인다.
이렇게 무의식 속에 쌓인 억압은 강력한 정신적 외상, 즉 트라우마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억압은 꿈의 세계에서 나타나 현실세계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꿈의 세계와 현실세계의 관계는 바로 무의식과 의식의 관계에 상응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견해는 곧 꿈과 현실의 관계가 불연속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꿈과 현실의 연속성을 증명하여 자신의 견해의 한계를 보완하고자 했다.
꿈과 무의식
프로이트는 히스테리 환자인 안나를 분석하고 연구하며 무의식의 존재를 확신한다.
나아가 무의식이 인간에게 꿈의 형태로 발현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무의식은 인간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을까?
프로이트에 따르면 꿈은 현재몽과 잠재몽으로 나뉜다.
현재몽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느끼는 어렴풋한 꿈의 내용이지만,
잠재몽은 현재몽의 형태로 왜곡된 인간의 욕망, 즉 무의식이 발현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인간의 욕망이 왜곡된 형태로 나타나는 이유는
그 욕망이 현실에서는 윤리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꿈에서는 다르다.
꿈속에서는 사회적, 윤리적 제한이 없으므로 무분별한 욕망이 무한히 드러날 수 있는 것이다.
리비도, 이드, 에고, 슈퍼에고
프로이트에 따르면, 리비도는 일반적으로 '성본능' 또는 '성충동'으로 번역된다.
이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의미의 성욕을 포괄하는 넓은 개념이다.
그리고 이러한 리비도는 성장과정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서서히 발달한다.
이드는 '욕망'을 말한다.
이드는 인간의 정신의 기저에 있는 원시적인 요소로서 쾌락에 지배되어
욕구충족을 목적으로 하는 본능적 에너지이다. 또한 이드는 리비도의 저장고 역할을 수행한다.
에고는 '자아'를 의미한다.
에고는 일종의 사회적 성격을 의미한다.
인간은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규범과 지식 등을 습득한다.
이러한 에고는 이드가 함부로 방출되지 않도록 억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욕구의 발현을 일방적으로 억제하면 스트레스가 누적되고,
더 이상 억제할 수 없는 순간이 다가오면 이드는 폭발할 수밖에 없다.
슈퍼에고는 '초자아'이다.
슈퍼에고는 인격의 사회적 가치, 양심, 이상 등을 의미한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이러한 슈퍼에고가 일종의 판단기준으로 확립된다.
이상의 개념을 예시로 정리하면,
피자를 보고 침이 고이는 것이 이드,
살이 찔 것을 우려해 피자를 먹지 않고 참는 것이 에고,
군살이 없고 탄탄한 몸매를 이상적으로 보는 사회적 시선이 슈퍼에고인 것이다.
무의식 속 분열
프로이트는 무의식 내에서 분열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이 분열은 억압된 욕망인 이드와 초자아인 슈퍼에고 사이에서 발생한다.
즉, 욕망은 우리가 내면화한 사회적, 윤리적 기준에 따라 억압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두 개념 사이에 바로 에고가 존재한다.
이렇게 인간은 이드와 슈퍼에고 그리고 에고까지 모인 복합적인 주체로 살아가는 것이다.
꿈의 해석 by 지그문트 프로이트
꿈-해석 : 이론적 힘과 그 가치
꿈-이론은 꿈에 대한 연구 자체에만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무의식적 정신생활을 깊숙이 파고드는 지름길로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이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꿈은 인류가 지구상에 존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모습을 드러낸, 인류사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갖는 것이다.
따라서 꿈에 대한 연구도 아리스토텔레스에서부터 시작하여 프로이트 이전 19세기 말까지
근 2천 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때까지 꿈의 실체 대부분이 어둠에 가리워진 채 수수께끼 같은 면모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많은 부분들이 설명을 요구하고 있었다.
꿈 연구에 박차를 가하도록 결정적인 동기를 제공한 것은 정신분석 치료를 받는 환자들이었다.
프로이트가 자유롭게 연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머리에 떠오르는 것을 남김없이 이야기하라고 당부하자,
환자들은 자연스럽게 꿈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 결과 프로이트는 병적 관념에서 거꾸로 기억을 더듬어 추적할 수 있는 심리적 고리 속에
꿈을 배열할 수 있다는 인식에 이르렀고, 꿈을 증상처럼 다루어 근간을 이루는 심리적 내용,
즉 무의식적 요소를 자유 연상 법칙에 의해 추적하게 되었다.
꿈을 꾼 사람의 자유 연상에 의지하는 이러한 꿈-해석 방법은 프로이트에 의해 최초로 시도되었으며,
꿈-해석 최초의 학문적 방법이라 일컬을 수 있다. 그리하여 프로이트는 1895년 7월 24일
자신이 직접 꾼 <이르마의 주사 꿈>을, 이 방법을 이용해 완전히 해석하고
은폐된 소원 성취 기능을 인식하는 데 성공한다.
여기에서 시작한 인식의 흐름은 결국 꿈의 해석의 가장 중요한 내용을 이루는 심리적인 일차 과정,
무의식적인 논리의 발견이라는 천재적인 업적을 낳는다.
프로이트의 꿈 연구는, 꿈에는 의미가 있으며 모종의 심리학적 원칙에 의해서
꿈꾸는 사람의 깨어 있는 삶의 맥락 속에 끼워 넣을 수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부조리하고 생소해 보이기만 하는 꿈을 학문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꿈의 해석은 무의미하게 보이는 꿈을, 이해할 수 있는 삶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꿈을 해석하는 데는 꿈이 어떤 식으로든 다른 사물의 기호나 대체물, 증후의 성격을 지니며
배후에 숨어 있는 진술 또한 연상의 고리를 통해 역추적하여 얻어 낼 수 있다는 전제 조건이 수반된다.
이렇게 가정하면 대체하는 것과 대체되는 것, 기억에 남아 있는 꿈과 연상을 통해 찾아낸 다름
깨어 있는 동안의 삶의 언어로 번역해 낸 꿈-사고의 분리가 불가피해진다.
프로이트는 전자를 외현적 꿈-내용, 후자를 잠재적 꿈-사고라 부른다.
꿈의 의미, 꿈꾸는 사람의 평소 정신생활과 꿈의 관계는 오로지 잠재적 꿈-사고에 의해서만 판단할 수 있다.
따라서 꿈을 해석하는 사람은 외현적 내용에만 머무르지 말고, 숨어 있는 잠재적 꿈-사고로 뚫고 들어가야 한다.
꿈-내용과 꿈-사고를 개념적으로 분리한 프로이트의 이론은 꿈 연구에 대한 새롭고 본질적인 최초의 기여이며,
그의 꿈에 대한 구상은 이러한 이원론에서 출발한다.
꿈-분석의 방법을 이용하여 외현적인 꿈-내용에서 잠재적인 꿈-사고로 추적해 가다 보면,
꿈꾸는 사람의 내부와 외부 세계에서 꿈을 자극하는 여러 가지 꿈-재료를 파악하게 된다.
그러한 중요한 것들로 프로이트는 외부에서 받는 감각 자극이나 신체 자극,
대부분 낮의 생활에서 유래하는 최근의 인상,
외현적 내용에서 빈번히 알아볼 수 없도록 왜곡되는 어린 시절의 인상이나 체험을 꼽는다.
여기에서 결정적인 것은 꿈-분석이 항상 하나 이상의 소원에 부딪히며, 이것을 철저하게 분석해 보면
항상 억압된 유아기 소원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여러 가지 꿈-출처 가운데,
대개는 억압된 이러한 유아기 소원이 꿈-사고 안에서 실제적인 꿈-자극 인자의 역할을 한다.
또한 프로이트가 성인들 대부분의 꿈에서 꿈을 자극하는 인자가 성적인 것이라는 견해를 내세웠지만,
일부에서 생각했듯이 항상 그렇다고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프로이트는 잠재적인 꿈-사고가 외현적인 꿈-내용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꿈-작업이라 부른다.
꿈-작업은 꿈-형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줄 뿐 아니라,
직접 관찰할 수 없는 꿈-형성시의 심리적 과정들을 밝혀낼 수 있는 수단이 된다.
외현적 꿈-내용에서 연상을 통해 잠재적 꿈-사고를 추적하는 꿈-분석은
논리적으로 꿈-작업과는 정반대의 길을 밟는다.
프로이트는 수수께끼 같은 꿈의 특성,
즉 우리를 의아하게 하는 꿈-내용과 파격적인 형식을 꿈-왜곡과 검열을 토대로 설명한다.
우리의 정신 기관에는 두 개의 심리적 심급이 있어 한 심급에서 유래하는 꿈-사고를
두 번째 심급에서 검열하는데, 두 번째 심급은 꿈이 자신의 요구를 총족시키지 못하는 경우
충족될 때까지 꿈-내용을 왜곡하고 수정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 번째 심급을 통과해서 만들어진 꿈-내용은
내용과 형식 면에서 즉시 알아볼 수 없게 왜곡되어 있다. 이러한 가정은 아주 설득력 있는 것이었으며,
인류가 깊이 사고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다방변으로 해결하고자 노력했지만 끝내 해명하지 못했던
가장 난해하고 심층적인 문제, 곧 꿈의 왜곡과 부조리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했다.
프로이트의 꿈-이론은 본질적으로 두 개의 심리적 심급 사이에서 일어나는 억압과 저항,
두 꿈 차원의 연상에 의한 상호 관련, 꿈-검열과 꿈-왜곡이라는 가정에 토대를 두고 있다.
꿈-왜곡은 꿈-검열의 결과이며, 무의식적 사고 안에서 강도의 전위, 의미의 압축,
모순되는 사실의 병족, 삶과 죽음에 대한 표상의 부재 등을 통해 일어난다.
이러한 특징은 꿈-작업뿐 아니라 무엇보다도 또한 모든 정신 장애의 증상 형성,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착오, 예술, 신비, 종교의 생성 조건 역시 지배한다.
이러한 발견이 인류학, 정신 의학과 모든 정신과학을 변화시키고,
정신병의 합리적인 진료 방법을 만들어낸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꿈을 검열에 의해 왜곡된 사고 내용의 결과로 보는 논제 이외에
프로이트 꿈-이론의 핵심을 이루는 또 다른 새로운 중요한 것으로 소원 성취 기능이 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꿈의 본질은 소원 성취이다.
과거에서 비롯되거나 꿈꾸기 전날의 낮에서 유래한 하나 이상의 소원들이 꿈에서 성취되는 것으로 묘사되며,
그 근저를 쫓아가 보면 억압된 유아기 소원이 숨어 있다.
그러나 이 소원들은 외현적 꿈-내용에서 알아볼 수 없도록 위장되어 있기 때문에 분석을 통해 밝혀내야 한다.
이러한 소원 성취 이론은 격렬한 반대를 불러일으켰으며, 특히 불안-꿈을 근거로 심하게 반박되었다.
그러나 외현적 꿈-내용과 잠재적 꿈-왜곡의 사실에 주목하여,
억압된 소원이 꿈꾸는 사람의 깨어 있는 동안의 자아에는
결코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논거와 꿈-왜곡의 사실에 주목하면 이러한 반론을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또한 프로이트는 억압된 소원 충동이 밤에 꿈을 통해 힘을 발휘하는 과정을
정신 기관 안에서의 일차 과정과 이차 과정을 통해 해명한다.
일차 과정에만 귀속되어 이차 과정의 가공을 받지 못한 심리적 내용들이 정신 기관 안에 존재하는데,
이러한 표상들은 표출되는 경우 불쾌감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에 억압된다.
여기에서는 무엇보다도 훗날 성취되는 경우 불쾌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유아기 소원 충동이 문제된다.
전체적으로 보아 <꿈-과정의 심리학>은 인간의 무의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보고하여,
무의식적 과정의 일반적인 이론을 내세우려는 완벽하게 성공하지 않은 프로이트 최초의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행위와 그 토대를 이루는 원동력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시각을 열면서
인간의 정신생활을 깊이 파헤치고자 시도했다는 데 무시할 수 없는 의의가 있다.
정신기관의 구조와 작업 방식에 대한 가정을 토대로 해서 꿈을 사고 과정으로 이해하게 되면,
당시 불완전한 상태였던 신경증 이론과의 연계가 가능해진다.
꿈-이론과 신경증 이론은 상호 보완하는 가운데 변증법적으로 발전하면서, 꿈과 신경증 증상이
생성 기제에서뿐만 아니라 심리적 기능에서도 본질적으로 일치한다는 놀라운 인식을 가져왔다.
꿈은 병적인 증상이 아니라 건강한 사람들에게서 매일 일어날 수 있는 정상적인 정신생활의 현상이었다.
따라서 프로이트는 신경증의 증상 형성이 정상적인 심리적 사건과 질적으로 판이한
낯설고 병적인 과정이 아니라 건강한 사람들에게도 매일 일어나는
심리적 활동의 병리적 대비물이라는 확신을 갖기에 이르렀다.
다만 정상적인 사람들의 경우에는 일상생활에서 뚜렷한 결과를 남기지 않을 뿐이다.
꿈과 신경증 증상 모두에서 원동력을 이루는 것은 대부분 유아기 성적 체험에서 유래하는 무의식적 소원이다.
이 소원에 저항하고 소원을 은폐시켜 실현시키는 과정에서 꿈과 신경증 증상이 형성되며,
이 과정의 극단적인 실패가 병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이로서 정신 장애의 수수께끼를 정상적인 심리적 과정인 꿈과 연계시켜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그러므로, 꿈-해석의 결정적인 기능과 의의는 우리를 정신생활의 무의식적인 것으로 인도하여,
무의식적 병적 표상들이 표출되는 과정들을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데 있다.
꿈의 해석은 무의식적인 유아기 꿈과 정열을 인식하고 무의식적 사고 법칙을 연구하여
인류의 자기 인식을 무의식의 차원에까지 확대시켰으며, 무의식적 사고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인류의 정신병과 신경증의 생성 근거를 밝혀낼 수 있는 길을 인류사 최초로 열어 놓은 것이다.
정신분석학은 단순히 정신 병리학의 보조 수단이 아니라
정상적인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근본적이고 새로운 심리학의 토대로서 자리를 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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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장. 꿈 문제에 관한 학문적 문헌
3. 꿈ㅡ자극과 꿈ㅡ출처
꿈 출처를 다 열거하면 결국 네 종류로 나뉘고, 이것들은 꿈의 분류에도 활용된다.
(1) 외적(객관적) 감각 자극
우리는 감각 기관에 가해지는 자극을 완벽하게 멀리할 수도, 감각 기관의 예민함을 완전히 중지시킬 수도 없다.
비교적 강한 자극을 받으면 언제든지 깨어난다는 사실은, <정신은 자는 동안에도 신체밖의 세계와
부단히 결합을 유지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자는 동안 우리가 받는 감각 자극은 충분히 꿈-출처가 될 수 있다.
수면 상태에 수반되거나 때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불가피한 자극에서부터
잠을 깨우기에 적절하거나 깨울 수 밖에 없는 우연한 자극에 이르기까지 자극의 양상은 아주 다양하다.
아주 강한 빛이 눈을 부시게 할 수도 있고, 시끄러운 소음을 들을 수도 있으며,
냄새나는 물질이 코 점막을 자극할 수도 있다. 잘 때 우리는 부지중에 몸을 움직이다
신체 한 부분을 노출시켜 춥다는 느낌을 받거나,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몸이 눌리고 압박받는다고 느끼기도 한다.
(2) 내적(주관적) 감각 자극
입면환각은 잠이 드는 단계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규칙적으로 나타나는 변화무쌍한 형상들이다.
(입면환각 : 깨어있는 상태와 수면의 중간 단계에서 일어나는 환각. 일반적으로 잠이 들려고 할 때
기하학적 도형이나 물건, 그날 있었던 일이나 소리 등이 잠시 환각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종종 아주 생생할 때도 있으며, 눈을 뜬 후 한동안 계속되기도 한다.
유난히 이런 형상들이 심하게 나타났던 모리는 그것들을 상세하게 밝히려고 노력했으며,
꿈-형상들의 관계, 아니 일치를 주장했다.
(3) 내적, 기관 신체 자극
꿈-출처를 신체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찾으려면,
건강할 때는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의식되지 않는 거의 모든 내부 기관이 자극을 받거나 병이 드는 경우
대개 고통스러운 느낌의 근원이 된다는 시실을 상기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심화된 내부 기관 장애가 꿈의 자극 인자로 작용하는 것은 분명하다.
악몽을 자주 꾸는 것은 일반적으로 심장이나 폐 질환을 암시한다.
보통 심장병 환자들의 꿈은 아주 짧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으로 끝난다.
폐질환 환자들은 숨이 막히거나 궁지에 몰려 도망치는 꿈을 꾸고,
그중 눈에 띄게 많은 사람들이 악몽에 시달린다.
많은 연구가들은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1851년 주장한 사상에서 결정적 영향을 받았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우리의 지성이 외부에서 주어지는 인상들을 시간과 공간,
인과 관계의 형식으로 개조함으로써, 우리 안에 세계상이 형성된다.
기관 내부, 교감 신경에서 오는 자극은 낮에는 기껏해야 무의식적 영향을 우리 기분에 미칠 뿐이다.
그러나 낮 동안 받은 인상의 압도적인 작용이 멈추는 밤이 되면,
내부에서 밀고 나오는 인상들이 주의를 끌게 된다.
낮에는 소음 때문에 듣지 못했던 졸졸 거리는 샘물 소리가 밤에는 잘 들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지성이 특유의 기능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러한 자극에 반응할 것인가?
즉 지성은 시간과 공간을 채우고 인과율에 따라 움직이는 형태들로 자극을 개조한다.
그 결과 꿈이 생겨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주 유사한 내용을 되풀이해서 꾸기 때문에
<전형적>이라고 표현되는 여러 가지 꿈-형태에 대한 해석은 상당히 일치하고 있다.
익히 알려진 예로는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 이가 빠지는 꿈, 하늘을 나는 꿈,
또는 벌거벗거나 옷을 제대로 못 입어 당황하는 꿈 등이 있다.
마지막 꿈은 이불을 차내어 몸이 노출되었다는 것을 자면서 감지하는 경우 일어난다.
이가 빠지는 꿈은 치아 자극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치아가 병적으로 자극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늘을 나는 꿈은 흉부의 촉각이 무의식 상태에 이르렀을 때, 상하로 움직이는 폐엽에서 시작된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은 피부 압박을 의식하지 않고 있다가, 팔이 밑으로 떨어지거나
오그렸던 다리를 갑자기 쭉 펴는 순간 피부 압박을 다시 의식하게 되는 것이 그 동기이다.
즉 의식되는 과정이 떨어지는 꿈으로서 심리적으로 구체화된다.
(4) 심리적 자극원
깨어있는 삶에서 유래하여 자는 동안에도 계속되는 관심사는 꿈과 삶을 이어주는 심리적 유대일 뿐만 아니라,
잠자는 동안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 ㅡ잠잘 때 영향을 미치는 자극 ㅡ과 더불어
꿈-형상의 유래를 해명하기에 충분하고 과소평가할 수 없는 또 하나의 출처를 제시한다.
내적, 외적 수면 자극과 더불어 깨어 있는 동안의 관심사가 꿈-원인을 충분히 밝혀낼 수 있다면,
우리는 모든 꿈-요소들이 어디서 유래했는지 만족스럽게 해명할 수 있을 것이다.
4. 왜 잠에서 깨어난 후 꿈을 망각하는가?
우리는 깨어 있을 때 감각하고 지각한 것들을 즉시 잊어버리는 경우가 수없이 많다.
그것들이 너무 미미하거나 그것과 결부된 정신 자극이 아주 미약하기 때문이다.
많은 꿈-형상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강렬한 형상들은 세세히 기억에 남는 반면 아주 미미한 것들은 잊힌다.
더욱이 한번 일어난 것은 깨어나서 쉽게 잊히고, 여러 번 지각할 수 있었던 것은 보다 잘 기억된다.
그러나 꿈-형상들은 대부분 일회적 체험이다.
꿈을 망각하는 세 번째 원인이 훨씬 더 중요하다.
감각이나 표상, 사고 등이 어느 정도 확실하게 기억되기 위해서는
고립되지 않고 서로 결합하여 무리를 이루어야 한다.
<적절한 순서대로 잘 배열되어 낱말들끼리 서로 도우면, 전체는 쉽게 기억에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는다.
서로 모순되는 것은 무질서하게 혼란된 것과 마찬가지로 일반적으로 기억하기 어렵고 기억할 수도 없다>
꿈은 대부분의 경우 질서가 결여되어 있으며 이해하기 어렵다.
5. 꿈의 심리학적 특수성
우리는 잠이 들면서부터 정신 활동, 다시 말해 생각의 흐름을 마음대로 주도하는 능력을 포기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수면 상태가 정신 활동까지 포함할지 모른다는 추측이 당연히 떠오를 수 있다.
정신 활동 중에는 완전히 중단되는 것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남아 있는 정신 활동이 방해받지 않고 계속 활동하는가,
또 그런 상황에서 과연 정상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수면 상태에서의 심리적 기능 저하를 통해
꿈의 고유한 특성을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견해가 제기될 수 있다.
깨어난 후 꿈에서 받는 인상이 그러한 견해와 잘 부합된다.
꿈은 앞뒤가 맞지 않으며, 특별한 동기도 없이 극단적 대립을 결합시키고,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며,
낮 동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지식을 등한히 하고, 윤리와 도덕에 둔감하게 만든다.
잠에서 깨어난 후 꿈에서 본 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미친 사람으로 간주될 것이다.
꺠어있는 동안 꿈속에서처럼 말하고 꿈꾼 일들을 사실인 양 말하는 사람은
정신이 이상하거나 저능아라는 인상을 준다.
따라서 우리는 꿈속에서의 심리 활동을 과소평가하고
무엇보다도 상위 지적 능력이 꿈속에선 중단되거나 적어도 심하게 손상된다고 설명한다면,
그러한 사태를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정신의 산물로서 꿈에 대한 평가는 여러 문헌에서 천차만별이다.
우리가 이미 읽어 본 지나친 과소평가에서부터 아직 밝혀지지 않은 가치의 예감,
나아가 깨어 있는 동안의 삶의 능력보다 꿈을 한층 높이 보는 과대평가도 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힐데브란트는 꿈-생활의 심리학적 특성을 세 가지 이율배반으로 파악하고자 하였으며,
세 번째 대립에서 이러한 일련의 이율배반을 최종적으로 요약하였다.
<그것은 생활정신의 상승, 흔히 노련한 경지까지 이르는 강화,
다른 한편으로는 종종 인간적 수준 이하로의 결정적인 하강과 약화 사이의 대립이다.
전자에 관해서 말하면, 꿈 정신의 활동과 움직임에서 때때로 정서의 깊이와 진지함,
감각의 부드러움, 직관의 분명함, 관찰의 섬세함, 기지에 넘치는 재치가 드러나는 것을
직접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런 것들은 모두 우리가 깨어있는 동안 변함없이 늘 그런 것은 아니라고 겸손하게 부인하는 특성들이다.
꿈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시학, 뛰어난 비유, 비할데 없는 멋진 유머, 절묘한 아이러니를 가지고 있다.
꿈은 독특하게 이상화시키는 관점에서 세계를 보고, 토대를 이루는 본질을 뜻깊게 이해하여
현상들의 효과를 강화시킨다.
또한 현세의 아름다움을 진실로 천상적인 광휘로, 숭고함을 지극한 장엄함으로,
흔히 경험 가능한 무서움을 다시없는 소름끼치는 형태로, 우스꽝스러움을
이루 말할 수 없이 극단적 희극으로 감싸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래서 때때로 우리는 꿈에서 깨어난 후에도 이런 인상들에 충만해 있음을 느끼고,
아직까지 실제 현실에서는 그런 것을 본 적도 경험한 적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7. 꿈 이론과 꿈의 기능
들라주는 소중한 사람이 세상을 떠난 후, 낮 동안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꿈꾸지 않거나,
아니면 다른 관심사에서 밀려나기 시작한 후 비로소 꿈꾼다는 것을 직접 체험했다.
그는 다름 사람들을 통해 계속 연구한 결과 이러한 사태의 보편성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것이 일반적인 사실로 판명되었을 때, 들라주는 젊은 부부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서로 깊이 사랑한다면 결혼 전이나 밀월 중에는 거의 상대방에 대한 꿈을 꾸지 않는다.
성적인 꿈을 꾸는 경우가 있다면, 무관심하거나 싫은 사람에 불륜을 저지르는 꿈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도대체 무엇을 꿈꾸는 것일까?
들라주는 우리의 꿈에 나타나는 재료가 최근 며칠 동안 아니면
과거에 받았던 인상에서 남아 있는 단편적인 것들로 이루어진다고 인식한다.
우리의 꿈에 나타나는 것, 처음에 꿈-생활의 창조물로 여기기 쉬운 것을
보다 자세히 관찰해 보면 모두 인식하지 못한 재현, <무의식적 기억>으로 증명된다.
로베르트가 강조한 것은 다음과 같은 두가지 범주의 인상들이다.
즉 사소한 것들과 처리하지 못한 것들이다.
그러나 들라주는 이러한 인상들이 사소하기 때문이 아니라
처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꿈에 나타난다고 주장하면서 관계를 달리 본다.
사소한 인상들 역시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 거나 다름없으며,
새로운 인상으로서의 본성에 따라 잠잘 때 풀어지는 <팽팽하게 감긴 태엽>이다.
강력한 인상이 우연한 방해로 인해 충분히 이해되지 못했거나 의도적으로 억압당한 경우,
거의 주목받지 못한 미약한 인상보다 꿈에 등장할 수 있는 권리를 더 많이 갖는다.
낮 동안 방해와 억압을 통해 저장된 심리적 힘은 밤에 꿈의 원동력이 된다.
8. 꿈과 정신질환의 관계
꿈과 정신 장애의 관계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 방향으로 나뉜다.
(1) 병인학적이고 임상적인 관계.
이를테면 꿈이 정신 질환 상태를 미리 알려주거나 상태가 지나간 후에도 계속되는 경우.
(2) 정신 질환에 걸린 경우 꿈-생활이 겪는 변화.
(3) 꿈과 정신병의 내적 관계 내지 본질의 동질성을 시사하는 유사관계.
장기간 지속되는 정신병 환자들의 경우에는 꿈-생활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관해 지금까지 연구된 바가 거의 없다.
그에 비해 꿈과 정신 장애, 두 현상의 광범위한 일치로 표현되는 내적 유사성은 예로부터 주목받아 왔다.
물론 꿈과 정신 장애를 비교한 역사는 그보다 훨씬 더 오래되었다.
라데슈토크는 '수면과 꿈의 문제'를 다루는 장에서
꿈과 광증이 유사하다고 논한 견해들을 열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칸트는 <미치광이는 깨어 있을 때 꿈꾸는 사람이다>라고 쓰고 있으며,
크라우스는 '광증에서의 감각'에서 <광증은 감각이 때어 있을 때 꾸는 꿈이다>라고 말한다.
쇼펜하우어는 '시령과 그 관련 사항에 대한 소론'에서 꿈은 짧은 광증이며, 광증은 긴 꿈이라고 부른다.
하겐은 섬망을 수면이 아니라 질병에 의해 생겨나는 꿈-생활이라고 표현한다.
분트는 '생리학적 심리학의 특성'에서 이렇게 말한다.
<실제로 우리는 정신 병원에서 만나 볼 수 있는 거의 모든 현상을 꿈에서 직접 체험할 수 있다>
<꿈은 정신적, 신체적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현실에서는 갖지 못한 것, 즉 건강과 행복을 이루어 준다.
그런 식으로 정신 질환에 걸린 사람에게도 행복, 위대함과 고귀, 부의 밝은 형상들이 떠오른다.
소원을 이루지 못했거나 재산을 몽땅 잃어버린 것이 정신 착란의 심리적 원인이 된 경우,
재산을 되찾는 상상이나 소원 성취하는 환경이 섬망의 주요 내용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소중한 자식을 잃은 여인은 어머니로서 기쁨을 누리는 환상에 빠지고,
재산을 잃은 사람은 자신이 아주 부유하다는 착각에 빠진다.
배신당한 아가씨는 다정하게 사랑받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
(이 구절은 라데슈토크가 그리징거의 섬세한 설명을 요약한 것이다
그리징거는 <소원성취>가 꿈과 정신병에 공통되는 표상의 특징임을 더없이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연구 결과 나는 꿈과 정신병의 심리학적 이론을 위한 열쇠가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꿈과 광증의 주요 특징은 과장된 사고의 결합과 판단의 약화이다>
냉정하게 판단하면 말도 안 되는, 자신의 정신적 능력에 대한 <과대평가>가 정신병과 꿈에서 나타난다.
정신병의 <두서없이 떠오르는 관념들>은 꿈의 <빠른 표상 흐름>과 일치한다.
양측 모두 <시간 척도>가 결여되어 있다.
세세한 특징에 이르기까지 논란의 여지가 없는 꿈과 정신 장애의 일치 관계는
꿈-생활에 관한 의학 이론의 가장 강력한 토대를 형성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꿈은 방해되는 무익한 과정, 저하된 정신 활동의 표현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정신 장애에서 꿈에 대한 궁극적 해명을 얻으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
정신 장애의 진행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얼마나 부족한지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꿈에 대한 견해가 변화하면 정신 장애의 내적 메커니즘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아주 많다. 우리는 꿈의 비밀을 밝히려고 노력하면서 정신병을 해명하기 위해 일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장. 꿈-해석의 방법 : 꿈 사례 분석
내 계획은 꿈을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다룬 꿈 문제들의 해명에 기여한 바가 있다면,
그것은 원래의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뜻밖에 얻은 부수적 소득에 지나지 않는다.
꿈이 해석될 수 있다는 나의 가정은 즉시 지배적인 꿈-이론,
아니 셰르너의 이론을 제외한 모든 꿈-이론과 정면으로 대립한다.
<꿈을 해석한다>는 것은 꿈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
즉 기타 정신 활동들과 마찬가지로 동등하고 중요한 고리로서
우리 정신 활동의 사슬 속에 연결되어 있는 무엇으로 꿈을 대체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이 학문적인 꿈-이론들은 꿈-해석의 문제에 전혀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그러한 이론들의 견지에서는 꿈은 결코 정신 활동이 아니라,
정신 기관에서의 징후를 통해 알려지는 일종의 신체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로부터 대중들은 그와 다르게 생각해 왔다.
사람들은 굳이 일관성있게 행동할 필요가 없는 자신들의 당연한 권리를 누렸다.
그들은 꿈이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한 것이라고 시인하면서도,
꿈이 의미없는 것이라고 선언할 결심은 하지 않는다.
그 대신 막연한 예감에 이끌려, 꿈에는 분명 숨어 있는 의미가 있으며
다른 사고과정을 대신하는 사명을 띠고 있다고 추정하는 듯 보인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꿈의 숨어있는 의미를 찾아내기 위해서
대용물이 무엇을 대체하고 있는지 올바르게 밝혀내는 것이 문제이다.
이런 이유에서 대중들은 옛부터 꿈을 <해석하려고> 노력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근본적으로 판이한 두 가지 방법을 시도했다.
첫 번째 방법은
전체로서의 꿈-내용에 주목하여, 어떤 관점에서 원본과 유사하면서
의미가 명료한 다른 내용으로 대체하고자 한다. 이것이 <상징적인> 꿈-해석이다.
이 방법의 좋은 실례는 구약 성서에 나오는 요셉의 파라오 해석 꿈이다.
일곱 마리의 마른 암소가 뒤쫓아 와 일곱 마리의 살찐 암소를 먹어 치운다.
이것은 이집트에서 7년간 이어진 풍년 끝에 7년에 걸친 기근이 찾아와
그동안 비축해 둔 풍요한 물자를 다 먹어 치운다는 예언을 상징적으로 대신한다.
시인들이 만들어 낸 인위적인 꿈들은 대부분 이러한 상징적 해석을 위한 것이다.
그것들은 시인들이 품고 있는 사상을 우리가 경험으로 알고 있는
꿈의 특성에 부합하도록 위장하여 묘사하기 때문이다.
꿈이 주로 미래와 관계되어 앞날을 예감한다는 의견은 상징적 해석이 발견해 낸 꿈의 의미를
<그렇게 될 것이다>를 통해 미래로 옮겨 놓는 계기가 된다.
그런 상징적인 해석의 길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여기에는 물론 이렇다 할 지침이 없다.
그 때문에 상징에 의한 꿈-해석은 특별한 재능을 필요로 하는 듯 보이는 기예가 될 수 있었다.
또 다른 대중적 꿈-해석 방법은
그러한 요구와는 거리가 멀다. 이 방법은 꿈을 일종의 암호 문서처럼 다루기 때문에,
<암호 해독법>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암호 문서에서 모든 부호는
이미 정해져 있는 암호 해독의 열쇠에 따라 잘 알고 있는 의미의 다른 부호로 번역된다.
예를 들어 내가 편지와 장례식 등이 나오는 꿈을 꾸었다고 치자.
해몽서를 찾아보면, 편지는 불쾌감으로, 장례식은 약혼으로 번역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게 남아 있는 일은 해독해 낸 중심 낱말들을 토대로 관계를 만들어 내 미래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주제를 학문적으로 논하게 되면,
대중적인 두 가지 꿈-해석 방법이 무용지물이라는 것에는 추호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
상징적인 방법은 적용 범위가 한정되어 있어 보편타당한 설명이 불가능하다.
암호 해독법에서는 모든 것이 <열쇠>, 즉 꿈 해몽서의 신뢰성 여부에 달려 있다.
그러나 그것을 보증해 주는 것이 전혀 없다. 따라서 철학자와 정신과 의사들의 의견에 찬성해
꿈-해석의 문제를 비현실적인 상상 속의 과제로 치부해 버리고 싶은 기분이 들 수 있다.
몇년 전부터 나는 치료 목적으로 히스테리성 공포증,
강박 관념 등의 정신 병리학적 형성물들을 해명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환자의 정신활동에서 그런 병적 표상의 원인이 된 요소들을 찾아낼 수 있으며,
그 표상은 소멸되고 환자는 해방된다.
평상시 우리가 치료에 기울이는 노력은 무력하기만 하고 그런 병적 상태들은 수수께끼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모든 어려움을 무릅쓰고라도 브로이어가 내디딘 길을 완전히 해명할 수 있을 떄까지
끝까지 밀고 나가자는 생각은 아주 매혹적으로 생각되었다.
나는 이와 같은 정신분석 연구 도중 꿈의 해석에 부딪히게 되었다.
환자들에게 특정한 주제와 관련해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과 착상들을
빼놓지 않고 의무적으로 이야기하라고 하자. 그들은 꿈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그래서 나는 병적 관념에서 역으로 기억을 더듬어 추적할 수 있는 심리적 연결고리 속에
꿈을 끼워 넣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꿈 자체를 증상으로 다루어 병적 관념을 위해 만들어 낸 해석 방법을 꿈에 적용하자는 생각이 쉽게 떠올랐다.
그러기 위해서는 환자 측에서 일종의 심리적 준비가 필요하다. 환자는 심리적 지각을 위해
주의력을 집중하고, 평소 떠오르는 생각을 걸러 내는 비판을 배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주의력을 집중해 자신을 관찰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눈을 감는 것이 유리하다.
그리고 뇌리에 떠오르는 사고를 절대로 비판하지 말라고 환자에게 신신당부해야 한다.
즉 정신분석의 승패는 머리에 떠로으는 모든 것에 주의를 기울이고
남김없이 이야기하는 것에 달려 있다고 환자에게 말한다.
정신분석 작업 도중 나는 깊이 사고하는 사람의 심리 상태는
자신의 심리적 움직임을 관찰하는 사람의 심리 상태와는 전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자신을 관찰하는 사람의 평온함과는 반대로 깊이 사고하는 사람의 긴장된 표정과 주름진 이마가 증명하듯이,
사고할 때는 주의 깊게 자신을 관찰할 때보다 심리적으로 더 많은 활동을 하게 된다.
두 경우 다 주의력을 집중해야 하지만, 깊이 사고하는 사람은 자신의 비판적 기능 또한 작동시키고 만다.
그는 떠오르는 생각들을 인지한 후 이러한 생각의 일부를 비판을 통해 거부하거나 즉시 중단시켜,
일단 시작된 사고의 흐름을 따르지 않는다.
또한 전혀 의식하지 않는 사고, 다시 말해 지각하기 전 억눌러 버리는 사고도 있다.
그와 반대로 자신을 관찰하는 사람은 오로지 비판을 억누르기 위해 노력한다.
이것이 성공하면 평상시 파악할 수 없었던 수많은 생각들이 의식에 떠오른다.
이와 같이 자기 인식을 위해 새로이 얻은 재료의 도움을 빌려 병적 관념과 꿈의 형성물들을 해석할 수 있다.
내 환자들은 일단 방법만 가르쳐 주면 대부분 성공한다.
나 자신도 떠오르는 생각들을 글로 적으면서 잘만 뒷받침하면, 완벽하게 해낼 수 있다.
비판적 활동을 저하시켜 얻을 수 있으며 자기 관찰의 강도를 높이는 데 이용되는 심리적 에너지의 양은
어떤 주제에 주의를 기울이는지에 따라 상당히 편차가 심하다.
이 방법을 적용하기 위해 첫걸음을 내디디면, 꿈 전체가 아니라
꿈-내용의 일부에만 주의를 기울여도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행하는 꿈-해석 방법은 이 첫 번째 중요한 조건에서부터
역사적, 전설적으로 유명한 대중들의 상징 해석 방법과 큰 차이를 보이면서,
두 번째 <암호 해석법>에 보다 접근한다.
후자처럼, 내 방법은 <전체적>해석이 아니라 <부분적>해석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꿈을 복합적인 성격을 지닌 심리적 형성물들의 집합체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암호 해석법과 일치한다.
세 번째 장. 꿈은 소원 성취다
꿈-해석의 결과 꿈이 성취된 소원을 묘사한다면,
이 소원 성취는 무엇 때문에 의아하고 이상한 형식으로 표현되는 것일까?
꿈-사고가 어떤 변화를 겪기에 눈을 뜰 때 우리의 기억에 남아 있는 것 같은 외현적 꿈이 형성되는 것일까?
이러한 변화는 어떤 경로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일까?
꿈으로 엮어지는 재료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과연 꿈은 우리 내면의 심리적 사건에 관해 새로운 것을 아려줄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내용은 우리가 낮 동안 믿었던 의견을 정정해 줄 수 있을까?
우리는 꿈이 소원을 성취시켜 묘사한다고 알고 있다.
우리의 다음 관심사는 이것이 꿈의 보편적 특성인지
아니면 우리 분석의 출발점이 되었던 꿈의 우연한 내용인지 알아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모든 꿈은 일종의 의미와 심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태세를 갖추고 있더라도,
이 의미가 모든 꿈에서 동일하지 않을 가능성은 열어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네 번째 장. 꿈-왜곡
앞에서 다루었던 사례들이 보여 주는 것처럼 노골적으로 소원 성취인 꿈들이 있다.
소원 성취가 알아볼 수 없도록 위장되어 있는 경우에는 틀림없이 소원에 저항하는 경향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러한 저항 때문에 소원은 왜곡된 형태 말고는 달리 표현될 수 없는 것이다.
심리적 내면 생활의 이러한 현상에 상응하는 것을 사회생활에서 찾아보자.
사회생활 어디에서 그와 유사한 심리적 활동의 왜곡을 찾아볼 수 있을까?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권력을 쥐고, 나머지 한 사람은 그러한 권력을 고려해야 하는 위치에 있을 때뿐이다.
그런 경우 두 번째 사람은 자신의 심리적 활동을 왜곡한다. 아니면 <위장한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매일 내보이는 예의범절 역시 대개는 그러한 위장에 속한다.
권력자에게 듣기 싫은 진실을 말해야 하는 정치적 문인의 상황이 이와 유사하다.
그가 진실을 솔직하게 말하면, 권력자는 그의 발언을 억압할 것이다.
구두에 의한 의사표명이면 추후에, 인쇄 매체를 이용하는 경우에는 사전에 억압하려고 할 것이다.
문인은 검열을 두려워할 수 밖에 없고, 그 때문에 자신의 견해 표현을 완화하고 왜곡한다.
그는 검열의 강도와 민감성에 따라 공격의 일부 형식만을 제한하거나 직접적인 표현 대신 암시로 말하기도 한다.
검열 현상과 꿈-왜곡 현상이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일치한다는 사실은
양측의 조건이 유사하다고 전제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즉 우리는 꿈-형상의 장본인으로서 개개인의 두 가지 심리적 힘(경향, 체계)을 가정할 수 있다.
그 중 하나는 꿈을 통해 표현되는 소원을 형성하고, 다른 하나는 꿈-소망을 검열하고
검열을 통해 소원의 표현을 왜곡하도록 강요한다.
문제는 검열을 행사하는 두 번째 심급의 권한이 어디에 있는가이다.
잠재적 꿈-사고는 분석이 수행되기 전에는 의식되지 않는 반면에,
외형적 꿈-내용은 의식적으로 기억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두 번째 심급이 누리는 특권은
사고가 의식에 진입하는 것을 허락하는 데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설득력있어 보인다.
두 번째 심급이 사전에 통과시키지 않으면, 첫 번째 심급의 어떤 것도 의식에 이를 수 없다.
두 번째 심급은 자신의 권리를 행사해, 의식에 들어오고자 하는 것을
자신의 마음에 들도록 변화시키기 전에는 어떤 것도 통과시키지 않는다.
다섯 번째 장. 꿈-재료와 꿈-출처
꿈과 깨어 있는 상태의 관계 및 꿈-재료의 출처에 대한 여러 연구가들의 견해는 이미 앞에서 상세히 소개한 바
있다. 또한 우리는 여러 사람들이 지적했지만 아직 해명되지 못한 꿈-기억의 세 가지 특성도 잊지 않고 있다.
(1) 꿈은 최근 며칠 동안의 인상을 뚜렷이 선호한다.
(2) 꿈은 중요하고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부수적이고 눈에 띄지 않는 것을 기억하기 때문에,
깨어 있을 때의 기억과는 다른 원칙에 따라 재료를 선택한다.
(3) 꿈은 까마득한 어린 시절의 인상을 마음대로 구사할 수 있으며,
사소하고 깨어 있는 동안에는 오래전에 잊었다고 생각한 유년 시절의 세세한 일까지 끄집어낸다
1. 꿈에서 최근의 것과 사소한 것
모든 사람에게는 다른 이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소원, 자신에게도 고백하고 싶지 않은 소원이 있기 마련이다.
다른 한편 이런 꿈들의 불쾌한 특성을 꿈-왜곡의 사실과 연관지어,
꿈-주제나 주제에서 비롯되는 소원을 혐오하고 억압하려는 의도가 있기 때문에
이러한 꿈들이 왜곡되고 소원 성취가 알아볼 수 없게 위장된다고 충분히 추론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꿈-왜곡은 검열 행위로 증명되다.
꿈의 본질을 표현하는 우리의 공식을 다음과 같이 변화시키면,
불쾌한 꿈의 분석이 밝혀낸 모든 것을 고려할 수 있다. <꿈은 억압되고 억제된 소원의 성취이다>
3. 신체적 꿈ㅡ출처
꿈-작업이 동시에 존재하는 모든 꿈-자극을 부득이 하나로 통합시킨다는 명제를 세움으로써
우리는 이미 그것을 위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전날의 인상적인 체험이 두 개 이상 기억에 남아 있으면
그것에서 비롯하는 소원들은 꿈에서 하나로 통합된다는 것, 그리고 심리적으로 중요한 인상과
전날의 사소한 체험은 둘 사이를 이어 주는 표상을 만들어 내는 것이 가능하기만 하면
꿈 재료 속에서 서로 합쳐진다는 것도 우리는 알았다.
따라서 꿈은 잠자는 정신 속에서 동시에 활성화되는 모든 것에 대한 반응으로 나타난다.
즉 우리는 지금까지 분석한 바에 따라, 꿈-재료가 심리적 잔재와 기억 흔적의 더미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리고 그 활성화의 특성을 당장 심리적으로 규정할 수 없다고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심리적 꿈-출처에 신체적 재료를 추가해도 꿈의 본질은 변화하지 않는다.
활성화된 재료를 통해 어떻게 표현되든지 간에 변함없이 꿈은 소원성취이다.
심리적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외부 신경 자극과 내적 신체 자극이 충부히 강하면,
그것들은 ㅡ그 결과 일반적으로 잠에서 꺠어나는 것이 아니라 꿈을 꾸게 되는 경우 ㅡ
꿈-형성을 위한 확고한 근거, 꿈-재료의 핵심을 이룬다.
그리고 두 개의 심리적인 꿈 자극을 이어 주는 표상들의 경우와 유사한 방식으로 상응하는 소원 성취가 모색된다.
그런 점에서 어떤 꿈들의 경우 신체적 요소가 꿈-내용을 지휘한다는 말은 옳다.
이런 극단적인 경우 시급하지 않은 소원이 꿈-형성을 위해 일깨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꿈은 한 상황에서 한 가지 소원만 성취된 것으로 묘사할 수 있다.
그것은 활성화된 감각을 통해 어떤 소원을 성취시켜 묘사할 수 있는지 알아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한다.
주어지는 재료가 고통스럽거나 곤혹스럽다고 꿈-형성에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정신생활은 성취되는 경우 불쾌감을 불러 일으키는 소원도 처리한다. 이것은 모순처럼 보이지만,
존재하는 두 개의 심리적 심급과 그들 사이의 검열을 토대로 충분히 해명할 수 있다.
억제된 소원이 성취되는 일이 일어나면 두 번째 체계의 방해를 극복하는 것이 되고, 그것은 불쾌감으로 표현된다.
지금까지 논의한 바를 결론지으면, 자는 동안 신체적 출처에서 비롯된 불쾌한 특성의 감각이 존재하는 경우
ㅡ대체로 검열이 유지되는 가운데ㅡ이 상황을 이용한다.
이러한 사태는 일련의 불안-꿈을 가능하게 한다.
그 반면 소원 이론에 부적절한 다른 부류의 꿈-형성물에서는 다른 메커니즘을 인식할 수 있다.
요컨대 꿈에서의 불안은 신경 정신적인 것으로, 성 심리의 흥분에서 비롯될 수 있다.
이때 불안은 억압된 리비도와 일치한다.
그런 경우 불안과 불안-꿈 전체는 신경증 증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꿈의 소원 성취 경향이 한계에 이르는 지점이다.
그러나 다른 불안-꿈들의 경우 불안감은 신체적으로 존재하다.
그러면 그것은 강력하게 억제된 소원을 꿈으로 성취하도록 도와주고,
그러한 꿈들은 결과적으로 심리적 동기에서 같은 불안을 유발한다.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는 두 경우를 결합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다.
두 가지 심리적 형성물, 훙분의 경향과 표상 내용은 분리시킬 수 없이 내적으로 하나를 이루고 있다.
그중 활성화된 하나가 꿈속에서도 나머지 하나를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때로는 신체적으로 존재하는 불안이 억제된 표상 내용을,
때로는 억압에서 해방되어 성적 흥분과 결합한 표상 내용이 불안을 만들어낸다.
첫 번째 경우는 신체적으로 주어진 흥분을 심리적으로 해석한다고 말할 수 있다.
두 번째 경우는 모든 것이 심리적으로 주어져 있지만,
억제되었던 내용이 불안에 적합한 신체적 해석으로 쉽게 대체된다.
여기에서 이해를 가로막는 어려움들은 꿈과는 거의 무관하다.
그것들은 불안의 발생과 억압이라는 문제를 언급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다.
나는 잠자는 동안의 신체 자극원 ㅡ즉 수면감각 ㅡ이 특별히 강렬하지 않으면,
꿈-형성에서 최근의 것이지만 사소한 낮의 인상들과 유사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즉 그것들은 심리적 꿈-출처의 표상 내용과 결합하기에 적합하면 꿈-형성에 참여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참여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들은 어디에 사용될지 미리 규정되어 있는 귀중한 재료와 대조적으로,
필요할 때마다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도록 항시 준비되어 있는 값싼 재료 취급을 당한다.
우리 신체의 특별히 강렬하지 않은 자극이 제공하는 꿈-내용이
매일 밤 모든 꿈에 나타나지는 않는다는 사실은 오로지 이런 식으로만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4. 전형적인 꿈들
(1) 벌거벗고 당황하는 꿈
수치심을 모르는 어린 시절은 훗날 되돌아보면 낙원처럼 보인다.
낙원은 개개인의 어린 시절에 대한 집단적 환상일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낙원에서 벌거벗고 있으며, 그러면서도 서로에게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러다 이윽고 수치심과 두려움이 눈을 뜨는 순간이 오고,
인간은 낙원에서 추방되어 성생활과 문화활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꿈은 밤마다 우리를 그런 낙원으로 데려갈 수 있다.
우리는 유년 시절 초기(근 만 세살까지 역사 이전의 시기)에 받은 인상들이 내용과는 상관없이
그 자체로 재현되기를 바라며, 그것이 되풀이되는 경우 소원 성취라고 이미 추측했다.
따라서 벌거벗는 꿈은 <노출-꿈>이다.
(2) 소중한 사람이 죽는 꿈
전형적이라 부를 수 있는 또 다른 일련의 꿈은 소중한 친척, 부모나 형제자매, 자녀 등이 죽는 내용의 꿈이다.
이 꿈은 두 부류로 구분해야 한다.
하나는 꿈 속에서 전혀 슬픔을 느끼지 않아 깨어난 후 자신의 무정함에 놀라고 의아해하는 경우이다.
다른 하나는 죽음을 몹시 비통해하며 잠자는 동안 격렬하게 울음을 터뜨리는 꿈이다.
첫 번째 부류의 꿈은 제쳐 둘 수 있다. 그것들은 전형적으로 다루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사랑하는 친척의 죽음 앞에서 비통한 감정을 느끼는 꿈들은 다르다.
이것들은 내용이 말하는 것, 즉 관계된 사람이 죽었으면 하는 소원을 의미한다.
우리는 꿈에서 성취된 것으로 묘사되는 소원들이
항상 현재 품고 있는 소원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는 꿈을 이미 해명했다.
그것들은 오래전에 지나가 버리고 다른 것들에 뒤덮여 억압된 소원일 수 있다.
오로지 꿈에 다시 나타났기 때문에 아직 존재한다고 인정해야 하는 것들이다.
그러한 소원들은 우리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생각할 때처럼 죽어 버린 것이 아니라.
피를 마시자마자 생명을 얻는 오디세우스의 그림자들 같다.
누군가 몹시 비통해하며 아버지나 어머니, 형제자매가 죽은 꿈을 꾸었다고 해서,
그 꿈을 그가 <지금> 그들의 죽음을 바란다는 증거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꿈-이론은 그렇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못한다.
단지 그가 ㅡ언젠가 어렸을 때 ㅡ그들의 죽음을 바란 적이 있었다고 추론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형제자매의 죽음을 바라는 소원은 그들을 경쟁자로 생각하는 어린이의 이기심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면,
온갖 사랑을 베풀고 욕구를 해결해 주는 부모가 죽기를 바라는 소원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기적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계속 살아 있기를 소원해야 맞지 않을까?
부모의 죽음에 관한 꿈이 주로 꿈꾸는 사람과 성별이 같은 쪽에만 해당된다는 경험이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도록 이끌어 준다. 남자는 대부분 아버지의 죽음을, 여자는 어머니의 죽음을 꿈꾼다.
요점만 말하면 성적으로 어느 한쪽을 좋아하는 경향이 일찍부터 눈을 떠, 소년은 아버지를,
소녀는 어머니를 사랑의 경쟁자로 보고 이 경쟁자를 제거하면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부모 자식 관계에는 적대감을 불러일으키는 동기가 한 가지 이상 숨어 있다.
검열을 통과할 수 없는 소원을 품게 하는 조건은 아주 많다.
의사는 아들에게서 아버지를 잃은 고통보다 마침내 바라던 자유를 얻은 기쁨이 더 큰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된다.
아버지들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골동품이 되어 버린 가장으로서의 권리를 발작적으로 움켜쥐곤 한다.
모녀 갈등의 동기는 딸이 자라 어머니가 감시인이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표출된다. 딸은 성적 자유를 갈망하지만,
어머니는 활짝 핀 딸을 통해 자신이 성적 요구를 단념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지금까지 수많은 내 경험에 따르면,
어른이 되어 정신 신경증을 앓게 되는 어린이들의 정신생활에서 부모가 중대한 역할을 한다.
그 시기에 형성된 부모의 어느 한쪽에 대한 사랑과 다른 한쪽에 대한 증오심은
훗날 신경증 증상에 아주 중요한 부동의 심리적 자극 재료이다.
우리는 모두 어머니에게 최초의 성적 자극을,
아버지에게 최초의 증오심과 폭력적 희망을 품는 운명을 짊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꿈은 그것이 사실이라고 우리를 설득한다.
아버지 라이오스를 살해하고 어머니 이오카스테와 결혼한 오이디푸스 왕은
우리 어린 시절의 소원 성취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신경 정신증 환자가 되지 않는 한,
오이디푸스보다 행복하게 우리의 성적 자극을 어머니에게서 분리시키고 아버지에 대한 질투심을 잊을 수 있다.
우리는 유년기의 원시적 소원을 성취한 인물 앞에서 마음속의 소원을 억압한 만큼 경악한다.
소포클레스는 문학 작품을 통해 오이디푸스의 죄를 밝히고 또한 억압했지만,
여전히 그 충동이 존재하고 있는 우리 내면을 인식하도록 강요한다.
오이디푸스처럼 우리도 자연이 우리에게 강요한 소원, 도덕을 모욕하는 소원의 존재를 모르면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 소원이 폭로되면, 우리는 모두 유년 시절의 사건들을 애써 외면하려 한다.
오이디푸스 전설이 최초의 성적인 자극 때문에 부모와의 관계가 곤혹스럽고 불편해지는 내용의
태곳적 꿈-재료에서 유래했다는 암시가 소포클레스의 비극 원문 자체 안에 분명히 존재한다.
이러한 꿈들과 불안 꿈의 관계를 추적해 보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소중한 사람이 죽는 꿈에서 억압된 소원은 검열 ㅡ그리고 이것에 의해 생겨나는 왜곡 ㅡ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발견한다. 그런 다음 어김없이 수반되는 현상은 꿈속에서 비통한 감정을 느낀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검열을 전부 아니면 부분적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경우에만 불안-꿈을 꾸게 된다.
다른 한편 불안이 신체적 출처에서 비롯된 현실적 감각으로 이미 존재하고 있으면, 검열을 극복하기가 쉬워진다.
그렇다면 검열이 어떤 경향으로 직무를 수행하고 꿈-왜곡을 실행하는지 명백해진다.
그것은 <두려움이나 다른 형태의 불쾌한 흥분이 발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여섯 번째 장. 꿈-작업
우리는 외현적 꿈-내용이 아니라 잠재적 꿈-내용을 토대로 꿈-해석을 전개시켰다.
그 때문에 우리에게는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과제가 대두한다. 즉 잠재적 꿈-내용과
외현적 꿈 내용의 관계를 조사하고, 어떤 과정을 통해 전자에서 후자가 생겨났는지 추적해야 한다.
꿈-사고와 꿈-내용은 하나의 내용을 두 개의 다른 언어로 묘사하는 것과 같다.
또는 더 정확히 말하면, 꿈-내용이 꿈-사고를 다른 표현 방식으로 옮겨 놓은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우리는 원본과 비교하고 번역하여 다른 표현 방식의 기호와 결합 법칙을 알아내야 한다.
꿈-사고는 알아내기만 하면 즉시 이해할 수 있다.
꿈-내용은 마치 상형 문자로 씌어 있는 것 같기 때문에, 기호 하나하나를 꿈-사고의 언어로 옮겨 놓아야 한다.
이 기호들을 기호 관계 대신 상형 가치에 따라 읽는다면, 분명 길을 잘못 들게 될 것이다.
이를테면 내 앞에 그림 퀴즈가 하나 있다. 집이 한 채 있고, 지붕 위에는 보트가 한 척 보인다.
그리고 알파벳 한 글자와 머리 없는 인물의 달려가는 모습 등이 그려져 있다.
나는 전체적인 구성과 부분들이 말도 안 된다고 비난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보트는 지붕 위에 걸맞지 않고, 머리 없는 사람은 달려갈 수 없는 법이다.
게다가 사람이 집보다 더 크다. 전체가 어떤 풍경을 묘사한다면, 알파벳이 어울리지 않는다.
전체와 세세한 부분들에 대해 그런 식으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각 형상을 음절이나 낱말에 의해 보충하고자 노력하면 비로소 그림 퀴즈를 올바로 판단할 수 있다.
여기에서 낱말은 어떤 관계에 의거하여 형상으로 묘사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합성된 낱말들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아주 아름답고 함축적인 시구가 될 수 있다.
꿈이 바로 그런 그림 수수께끼이다. 우리 이전에 꿈을 해석한 사람들은 그림 퀴즈를
회화적 구성으로 판단하는 오류를 범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꿈이 불합리하고 무가치한 것으로 보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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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오피니언> 생의 3분의 1을 왜 잠으로 소비하나? 인류를 ‘오랜 꿈’에서 깨운 의학자 미셸 주베
진로를 두고 고민하던 23세의 데카르트가 ‘30년 전쟁’의 전장에서 꿈을 꾼 뒤
철학의 길을 선택하게 됐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가 감각과 오성의 앎을 의심하며 참된 진리로 나아가기 위해 들여다본 것도 꿈이었다.
신학을 익힌 17세기의 그에게 꿈은 신의 계시거나 성령의 영감이었을 테지만,
그가 방법론적 회의 곧 ‘성찰’을 통해 들여다본 꿈은 합리론이라는 근대철학의 토대를 닦은 재료였다.
43세의 소설가 브램 스토커가 세 마녀와 한 괴인이 등장하는 악몽을 꾸고는 ‘드라큘라’를 썼고,
스테프니 메이어(Stephenie Meyer, 1973~)도 꿈 속에서 뱀파이어와 사랑을 나눈 뒤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들에게 꿈은 창작의 모티프이자, 프롬프터였을 것이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의 드미트리 멘델레예프(1834~1907)는
원소들의 규칙성을 찾느라 골머리를 썩이던 어느 날, 꿈에서 원소들의 일람표를 보고
저 유명한 ‘주기율표’를 만들었고,
독일 화학자 아우구스트 케쿨레(1829~1896)도 꼬리를 물고 몸을 만 뱀을 꿈에 보고
벤젠의 고리모양 분자구조를 찾아냈다. 그들의 꿈에 찾아온 것은 자신을 뛰어넘는 통찰의 과학자였다.
길몽을 꾼 뒤 복권을 사고, 흉몽을 꾼 날엔 운전대를 잡지 않는 이들에게 꿈은 예언적 징후일 것이다.
꿈에 찾아온 저 모든 신과 뮤즈와 조상 등등이 실은 바깥에서 온 게 아니라
내 안, 나의 무의식의 반영이라고 말한 이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였다.
그는 꿈을 억눌린 욕망의 표상이라 여겼고, 꿈을 통해 신경증 등 정신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899년 출간한 그의 기념비적 저서 ‘꿈의 해석’은
발터 벤야민쯤 되는 이들조차 감복시킬 만큼 20세기 전반기 인류 지성사를 뒤흔들었다.
프로이트의 시대를 관통하며, 뇌과학(신경세포학 생화학 등)도 발전했다.
1889년 뇌의 기본 구성요소로서의 신경세포와 뉴런이 발견됐고
(스페인 과학자 SantiagoRamón y Cajal, 1906년 노벨생리의학상),
1897년에는 뉴런을 잇는 시냅스가 확인됐다.(영국의 의사 Charles Scott Sherrington, 32년 노벨생리의학상)
1924년 독일 의사 한스 베르거(Hans Berger)는 뇌전도 검사를 실시했고,
51년 미세전극(John Eccles 발명)이 등장해 뇌를 열지 않고도 부위별 미세전류를 포착할 수 있게 됐다.
뇌파의 궤적을 종이에 기록하는 장치가 등장한 것도 50년대였다.(new-learn.kr)
과학자들이 잠과 꿈을 실험실로 끌고 와 본격적으로 관찰ㆍ연구하기 시작한 것도 대략 그 무렵부터였다.
그들은 ‘꿈의 해석’이 프로이트의 꿈일지 모른다고 의심했다.
미국 시카고대 생리학자 유진 애스린스키(Eugene Aserinsky)와 너새니얼 클라이트먼(Nathaniel Kleitman)이
1953년 ‘렘(REM, Rapid Eye Movement) 수면’을 발견했다.
수면 상태에서 눈동자가 마치 깨어있는 것처럼 빠르게 움직이는 현상.
뇌파 활동도 각성상태에 버금가게 빨라졌다. 꿈의 과학적 증거로 추정되는 전기화학적 반응이
최초로 포착된 거였다. 학자들은 렘 수면을 꿈의 방해를 받는 반(半) 각성상태의 얕은잠이라 여겼다.
프랑스 리옹대 신경생리학자 미셸 주베와 그의 연구팀은 렘 수면 단계에 이르면,
서파(徐波)수면 즉 깊은 수면 단계에서도 얼마간 긴장을 유지하던 근육이
완전히 이완돼 온 몸에 힘이 빠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꿈을 동반한 렘수면이 단순히 얕은 잠이 아니라, 뇌는 깨어있지만 몸은 더 깊이 잠이 든 상태,
“잠의 일부가 아니라 새로운 차원의 뇌 활동 상태”(lepoint.fr)라 판단했다.
그리고 그 상태를 렘수면 대신 ‘역설수면(Paradoxical Sleep, 일명 파라수면)’이라 명명했다.
그는 역설수면과 꿈이 고도의 지적 능력을 지닌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
조류와 포유류 일반(돌고래 등 수상포유류는 예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톰과 제리’의 쥐나 고양이도
실제로 꿈을 꾸고, 눈이 퇴화한 두더지나 눈동자를 움직이지 않는 올빼미도 ‘렘’ 없이 꿈을 꾼다는 사실을 확인,
꿈에 대한 인간의 수천 년 독점적 지위(착각)를 박탈하고 꿈에 드리운 신화적 베일을 벗기는 데 일조했다.
역설수면을 관장하는 뇌 부위도 당연히, 인지기능을 관장하는 대뇌피질이 아니라
호흡 감각 등 생명활동을 컨트롤하는 뇌교와 연수 속의 신경핵,
특히 폰스(Pons)라 불리는 중-소뇌 사이의 중추신경계라는 것도 찾아냈다.(nyt, 2017.10.11)
잠과 꿈의 메커니즘과 생리ㆍ해부학적 원리서부터 꿈ㆍ역설수면의 기능에 이르기까지 꿈의 비밀을 연구,
인류를 오랜 꿈에서 깨우는 데 앞장선 미셸 주베(Michel Marcel Jouvet)가 10월 3일 별세했다. 향년 91세.
그는 1925년 11월 16일 프랑스 동부 쥐라 주 롱르소니에(Lons-le Saunier)에서 태어났다.
그의 고향은 대륙 한 복판이었고 아버지는 내과 의사였지만, 그의 꿈은 엉뚱하게도 선원이 되는 거였다고 한다.
(lemonde.fr) 자질 탓인지 기회가 없었던지 그는 선원이 되지 못했고, 대학(리옹대)은 수학과로 진학했다.
43년 전쟁이 났고, 이듬해 19세의 그는 자유프랑스군(FFI) 레지스탕스의 전설인
쥐라 주 마커(Maquis) 부대에 입대해 산악 게릴라로 활약했다. 전쟁이 끝나고 복학하면서
그는 수학 대신 고생물학과와 해양학과에 노크했다가 잇달아 거부당한다.
아버지의 설득에 못 이겨 의대로 전과했지만, 거기서도 인류학과 민족(인종)학(ethnology)을 부전공했다.
부모 입장에선 그의 ‘방황’이 심란해 보였겠지만,
어쨌건 그는 51년 신경외과 전공의가 됐고 신경생리학에 매료돼 고양이 실험을 시작했다.
그에게 잠과 꿈은 선원이 되려던 유년의 바다처럼 미지의 영역이었고,
하루 평균 스무 시간씩 자는 고양이는 이상적인 실험 대상이었다.
뇌파 검사 기법이 갓 도입되고, 당시로선 신비로워 보였을 렘수면이 막 발견된 때였다.
그는 54년, 뇌-수면과학 분야에서 앞서 있던 미국 노스웨스턴대 캘리포니아 실험실의
호레이스 매군(Horace W. Magoun, 1907~1991)과 이탈리아 출신 신경생리학자 주세페 모루치
(Giuseppe Moruzzi, 1910~1986) 공동연구팀 연구원으로 합류했고, 한 해 뒤 귀국해 56년 박사 학위를 받았다.
매군-모루치는 고양이 중뇌의 망상체라는신경경로에 전기자극을 가하면 고양이가 깨어난다는 사실을 근거로
망상체가 대뇌피질의 전기활동을 촉진시켜 각성을 일으키는 부위라고 주장했다.
훗날 그 가설을 뒤집은 것도 주베였다. 현대 신경생리학은 연수에서 시상까지 거미줄처럼 엮인 시스템이
단계적으로 관여해 뇌를 각성시키며, 그 과정에서 히스타민, 아세틸콜린 같은
각성 신경전달물질이 상호작용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과학은 생명체가 어떻게 잠들고 깨는지, 각성-수면 메커니즘을 밝혀냈다.
깨어있는 동안 ‘S인자(Sleep-Inducing Factors)’라 부르는, 아직 온전히 정체를 밝히지 못한 물질이
뇌 안에 쌓여 깊은 수면 단계의 아주 느린 뇌파인 델타파가 발생하고,
S인자가 감소하면 델타파도 줄어들어 깨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각성체계의 복잡한 신경세포작용에 제동을 거는,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을
학자들은 GABA(Gamma-aminobutyric acid) 부른다. 이 성분을 함유한 중간 뉴런들이 GABA를 분비하면
시냅스로 연결된 신경세포들이 기능을 서서히 멈추며 잠이 든다.
호흡과 눈동자를 움직이는 신경세포를 제외한 모든 운동신경 활동도 억제된다. 바로 렘수면, 역설수면이다.
주베는 꿈을 꾸면서 꿈속 동작을 따라 하며
심할 경우 옆 사람을 때리거나 걷어차기도 하는 몽환행위(Oneiric Behavior) 즉 ‘렘수면 행동장애’가
저 시스템이 교란되거나 망가져 운동 신경을 활성화하는 수면 장애의 하나임을 밝혀냈다.
렘수면 행동장애는 유년기 서파수면 단계에서 나타났다가 성장하면서 대부분 사라지는 몽유병 증상과는 다르다.
주베는 프랑스 제약회사 세팔론(Cephalon)사의 라폰(Lafon)연구소와 협력,
중추신경흥분ㆍ각성제로 렘수면행동장애 치료제로 쓰이는 ‘모다피닐(Modafinil)’을 개발했다.(reditt.com)
그는 모다피닐을 복용하면 군인이 사흘 정도는 부작용 없이 각성 상태로 작전에 임할 수 있다고 제안했고,
이라크 걸프전 당시 프랑스 외인부대와 미군이 저 약을 활용했다.(telegraph)
‘머리 좋아지는 약’(smart drug)으로 잘못 알려져 수험생들이 복용해 부작용을 일으키곤 하는 바로 그 약이다.
과학은 하지만, 우리가 왜 생애의 1/3을 잠으로 소비해야 하는지,
잠의 기능과 목적이 무엇인지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다.
물론 가설은 많다.
각성상태의 활동으로 인해 피곤해진 몸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라는 복원설은 상식적인 가설이지만,
뇌 세포단위에서 복원 메커니즘을 입증한 예는 아직 없다.
보호 가설, 즉 너무 피곤해져 ‘최면독소’란 게 축적되지 않게 하기 위해 잠을 잔다는 주장도 있지만,
최면독소를 확인한 학자도 없다. 겨울잠을 자는 포유동물의 예에 근거해 ‘경제이론’을 제기하는 학자들도 있다.
잠이 과도한 에너지 소비를 막아 개체단위 혹은 생태계 단위의 항상성을 유지시킨다는 것이다.
잠의 원인과 기능을 유기체 바깥 환경 요인에서 찾기도 한다.
발정ㆍ생식기가 아닌 한 고양이는 하루 20시간을 자지만,
야생 상태에서는 하루 6~7시간을 자다 깨다 하면서 잔다.
유영하는 고래는 호흡을 위해서,
길게는 한 달씩 논스톱 비행하는 알바트로스는 날갯짓과 사냥을 위해서,
뇌의 절반씩 수면-각성을 교대하는 반구(半球)수면을 한다.
저 가설들은 일부 종에 한해서만 유효하다.
-‘잠과 꿈속으로 떠나는 7일간의 과학여행’(미셸 주베, 서천석 옮김, 한울림) 참조.
주베는 황제펭귄의 주요 서식지인 남극 크로제 섬에서 펭귄의 수면패턴을 연구했다.
황제펭귄은 평소 하루 6~8시간씩 자지만, 암컷이 알을 낳으면 수컷이 두 달간 알을 품고
선 채 하루 10~15분씩 자면서 버티고, 암컷이 돌아오면 교대해서 또 한 달간 먹이사냥만 하면서 버틴다.
황제펭귄의 수면 패턴은 저 모든 가설로도 설명할 수 없다.
한번은 전파 원격 칩을 삽입한 주베의 황제펭귄이
범고래에게 잡아 먹히는 바람에 실험을 망친 일도 있었다고 한다.(telegraph)
저 가설들은 모두 서파 수면에 관한 것이고, 역설수면과 꿈의 기능은 더 미지의 영역이다.
뇌 각성상태를 유지함으로써 야생 상태의 동물들이 자면서 포식자를 감시하는데 도움을 얻는다는 설,
유년의 일들이 꿈에 가끔 등장하듯 개체의 장기기억을 강화한다는 설,
거꾸로 깨어 있는 동안 받아들인 무의식적 신호들을 배출(망각)하는 데도움을 준다는 설 등이 있다.
그 중 기억강화설은 수면이 학습에 도움이 된다는 가설과 결합하면서
상업적 의미의 ‘수면과학’으로 변질되기도 했다.
하지만, 항우울제 등정신과 치료 약물을 장기 복용할 경우 역설수면이 억제되지만
기억력에 아무런 문제가 없고, 뇌간 부위에 손상을 입어 역설수면을 취하지 못하는 이들도
기억력과 관련된 일상 생활에 불편을 겪지 않는다는 사실이 입증되면서 저 가설은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
미셸 주베는 1999년 MIT공대에서 출간한 책 ‘The Paradox of Sleep’에서
꿈이 개인의 퍼스낼리티, 즉 정서ㆍ심리적 유전 형질을 보존하는 기능을 한다는
이른바 ‘신경학적 반복 프로그래밍 가설’을 제시했다.
역설수면이 기억이나 망각 같은 과거의 일이 아니라 미래 즉, 뇌의 기억ㆍ감정 중추인
해마 같은 영역에서 신경세포 연결을 통해 특정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는 것이다.(lefigaro.fr)
주베는 역설수면이 없는 어류 양서류 파충류의 뇌 신경세포는 평생 분화하며 재생되는 반면
역설수면을 취하는 조류 포유류는 출생 초기(인간은 생후 2~3개월)에 뇌 중추신경계가 완성돼
한번 손상된 뇌는 치유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근거로 들었다.
그는 파충류 등이 반복적인 신경세포 분열로 유전적 정보를 유지할 수 있지만,
조류ㆍ포유류는 그게 불가능한 데다 각성상태에서 수많은 교란 요인들을 흡수하기 때문에
유전적 특징과 개성을 유지하기 위해 역설수면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꿈 연구자들을 주인공으로 한 과학 로맨스 ‘꿈의 성 The Castle ofDreams’(1992)과
자신의 역설수면 가설을 모티프로 한 SF스릴러 ‘꿈 도둑Le Voleur de Songes’(이세욱 옮김, 아침이슬)도 썼다.
역설수면을 교란시켜 인격을 바꿀 수 있는 물질이 등장하는 ‘꿈 도둑’의 주인공 이름도 주베다.
소설 속 주베는 자신의 가설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 개인의 심리적 특성을 프로그램화하는 것은
당연히 뇌 속의 특정한 운동신경계를 활성화하거나 자극하는 것으로 귀착되지.
그럼으로써 우리는 저마다 남들과 구별되는 특유의 반응을 보이게 되는 걸세.(…)
그런데 이렇게 프로그램을 짜는 일은
우리가 깨어 있는 동안에는 일어나지 않는 편이 좋겠지.
깨어 있을 때 프로그래밍이 진행되면
우리의 의지와 무관한 행동이나 부적응 행동이 야기될 염려가 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잠을 잘 때는 사정이 다르지.
특히 역설수면 단계에서는 척수에서 운동신경의 활동전위가 완전히 차단되기 때문에
프로그래밍이 아주 용이하게 진행될 수 있네.(…)
내가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는 하나의 인격으로 존재하는것은 역설수면 덕분이야.
나는 꿈을 꾼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꿈이 나를 만든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그런 얘기일세.”
그는 리옹대와 파리대 교수를 지냈다.
프랑스 국립보건의학연구소(INSERM)와 국립과학연구원(CNRS)에서 수면 및 신경생리학 연구팀을 이끌었고,
콘래드 로렌츠가 첫수상자(69년)였던 ‘치노 델 뒤까 세계상(Prix mondial Cino Del Duca, 91년)’ 등 여러 상을 탔다.
59년 중추신경계의 죽음을 규정한 논문으로 뇌파를 근거로 뇌사상태를 규명했던 그는
만년에는 유아돌연사와 6~8세 아동 기면증의 상관관계를 연구했다.
출처: https://hoyony.tistory.com/81 [hoyony:티스토리]
첫댓글 긴 글 올리시느라
수고 하셨어요 결국 꿈은
내재 된 소망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꿈을 꾸게하고
꿈 꾸는 것은 건강한 삶 속에
일부라는 것을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너무 어려운 명제입니다만
삶방에 올라온 글 들을 보면서
이 글을 모셔 왔습니다
전문 서적 한권 읽었네요
저도 꿈을 많이 꾸는데
이상한 꿈을 꾸면 누가
해몽좀 해줄까 한답니다
생시에 골돌히 생각한것이
꿈에 나타 나기도 하고요
많이 알려지긴 했지만
아직 미지의 영역이 많습니다
해몽책이나 해설 등은
흥미위주의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본인의 실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어쨌든 참 신기합니다
인간의 뇌가 대단하구요
인류가 이뤄낸 문명
겨우 지난 1만년에 이룬 성과입니다
특히 지난 5000년
감사합니다
저는 하루도 빠짐없이 꿈을 꾸어서 오래전 해몽책을 사서 본적도 있었답니다
그래서 젊은시절 꿈일기를 적은적도 있었지요
그중에 영원히 잊혀지지않는 꿈도 여럿 됩니다만 글로서 표현 못할 뿐입니다
긴 글 잘 보았습니다
꿈을 꾼다는건 건강하시다는 겁니다
뇌가 정화된다는 거라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흥미도 있고 공부도 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