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망한 그의 죽음다웁게 부음(訃音)도 그렇게 바람결인 듯이 접했다. 오랜만에 권 화백과 동행을 해서 장연지로 출조하던 차 속에서였다. 한적한 국도로 접어들어서 어디쯤이었을까.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이 권 화백이 내가 한 마디 툭 던졌다.
“대낄이 죽었다는 소식 못 들었지?”
대낄이라니! 그렇다, 우리가 험하게 이름 부를 수 있는 이는 그 술주정뱅이 한 사람뿐이었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그 순간 나는 정말이지 둔기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정말입니까?”
놀라 반문하는 사이에도 그의 벗겨진 이마빡이며 뭉툭한 콧덩이가 선연하게 뇌리에 떠올랐다. 킬킬킬키르- 그의 웃음소린들 어찌 떠올리지 못 하겠는가.
“나도 나중에 들었어....”
그의 죽음에 일말의 책임이라도 있다는 듯이, 혹은 임종은커녕 초상집에도 못 가본 것이 무슨 죄라도 되는 듯이 그이는 제법 주눅든 음성으로 대꾸했다.
“아무도 가본 사람은 없는가벼. 홍태도 딴 데서 들었다는 걸 보니...”
예기인즉슨 권 화백은 그의 죽음 소식을 남해낚시점을 운영하는 남 사장한테서 들었고 남 사장은 또 제 집에 들락거리는 딴 낚시꾼한테서 들었다는 말밖에 되질 않는다. 그렇다면 실제로 그의 사체를 본 이며 장례를 지킨 이는 누구란 말인가. 돌이켜 보아도 딱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내가 알기로도 일가친척 빼고는 권 화백이 그와 가장 가까이 교유했고 남 사장은 그 다음이었다. 권 화백이 먼저 알고 남 사장이 다음에 알 일을 거꾸로 전해 들었다는 말 밖에 되질 않는 것이다.
“부인이 화장을 해서 물에 뿌렸다니 대낄이도 벌써 붕어 뱃속에 들어가 있을겨”
어느새 권 화백도 대단히 담담한 어조를 되찾고 있었다. 인생이 원래 그런 것 아니냐는 식의 관조가 배인 말투. 허긴 그랬다. 우린 잠깐 놀라와 하고 잠깐 안됐다는 시늉을 하는 것만으로도 그에 대한 조의는 충분히 나타낸 셈이었다. 나보다는 훨씬 더 많이 권 화백이 그와 놀았다고 해서 권 화백이 나보다 더 안됐다는 표정을 지을 필요는 없었다. 언제 이켠에서 먼저 그를 찾은 이가 있었더란 말인가. 그의 좌절 그의 절망을 보면서도 그에게 어깨죽지 하나 내민 이가 있었더란 말인가. 진즉에 그는 그처럼 허망하게 혼자 떠날 사람이었다. 하루를 더 살면 한 사람을 더 못 견디게 하고 이틀을 더 살면 두 사람을 더 피곤케 할 사람이었으니 그가 이승의 목숨을 온통 놓았다고 해서 애통해 할 사람도 전혀 없는 것이었다. 잘된 일이다. 남은 사람뿐 아니라 물 속 붕어들을 봐서도 갈 사람은 그렇게 훨훨 빨리 가는 것이 나은 일이다--입밖으로 꺼내 말은 안 했지만 권 화백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임은 뻔한 일이었다.
조대길씨, 그는 정신병원을 도망쳐 나왔을 때부터 머잖은 죽음이 예약돼 있었다. 병원에서도 그는 반 년을 버티지 못했다. 그가 그 험한 곳에서 발광을 하지않고 앞날을 기약해서 모범수처럼 다소곳이 지낸 것만도 대단한 일이었다. 언젠가 면회를 갔던 나 자신도 깜박 속았으니까 말이다.
“나 정말이야, 이제 여기서 나가면 사람답게 살아봐야겠어. 내가 생각해도 그동안 내가 너무 했잖아 그지. 술은 완전히 끊었어. 두 번 다시 내가 술을 마시면 난 개새끼도 아녀”
그의 표정은 너무도 진지했다. 술 한 잔만 들어가면 어김없이 나타나던 광기도 그의 얼굴에선 흔적조차 남기고 있질 않았다. 마주하고 있는 동안, 나는 괜한 사람을 억지로 이곳에 집어넣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아심이 들 정도였다. 면회가 끝나기 직전에 그가 말했다.
“날 좀 꺼내줘. 나 자신있단 말이야, 알았지? 경찰에 아는 사람 없어? 경찰이 날 여기 끌고 왔기 땜에 경찰에서 오케이를 해야 된다는 게야”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런 부탁은 내게만 한 것이 아니었다. 면회오는 이한테는 모두 그 부탁이었으며 심지어는 경찰의 힘을 빌어 자기를 그곳에 넣은 부인에게도 울며불며 하소연했다는 것이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자 그는 제 힘으로 그곳을 도망쳐 나왔다. 병동에서 가장 말 잘 듣는 착한 환자가 되어 의사들의 눈에 뜨였다. 의사들의 신임을 얻은 다음에는 병든 노모를 보고 오겠다고 읍소작전을 펼쳤다. 물론 그에게는 노모가 계시질 않았다. 사흘간 휴가를 얻어 병원을 나온 그는 그 길로 종적을 감추었다.
그나마 내 소설을 관심갖고 읽어 온 독자라면, 이쯤에서 뭔가 느낌을 가질 지도 모르겠다. 조대길이, 조대길이... 어라, 전에도 한 번 소개된 인물이 아니던가....? 이렇게 말이다. 뒤늦게 밝히거니와 이 조대길씨에 대한 얘기는 전에도 한 번 했다. <조대길씨의 행방>이란 제목으로 그의 낚시 편력 얘기며 정신병원을 도망나온 얘기까지 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번의 얘기는 그 후일담이 되는 셈이다. 이제는 독자분께도 아주 낯선 인물만은 아닌 그이가 영영 이승을 떴다는데 어찌 동도 조사인 필자로서 그 애도문 하나 만들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심정에서 이 얘기를 끌어가는 것이다. 각설.
병원을 나온 조대길씨는 해강면 쌍송리 고향으로 갔다고 내가 넌즛이 비쳤는데 사실 그는 그곳에서도 한 달을 있지 못했다. 밭뙈기 하나 남아있지 않은 고향땅에서 쉰 넘은 알콜중독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뭐 있겠는가.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그는 병원을 나온 그 순간부터 다시 술을 퍼 마시기 시작했다. 부인과 자식들을 찾겠다고 대구땅을 뒤졌지만 처가 식구들의 완력에 의해 다시 유치장 신세만 며칠 지고 또 대전으로 올라 올 수밖에 없었다. 곤죽이 되어 몇 번 권 화백한테 전화를 했지만 권 화백은 그를 만나주질 않았다. 그사이 내 전화번호는 몇 차례나 바뀌었으므로 마음이 있어도 내게는 연락조차 하질 못했다. 대낮에도 술에 취해 술값 갖고 나오라고 소리치는 그를 감당할 사람은 대전땅에도 더 이상 남아있질 않았던 것이다. 술이고 술값이 문제아니었다.
그는 사람을 한 번 붙잡으면 놔주는 법이 없었다. 자정이 넘고 새벽 두 시가 되어도 술상을 치울 생각을 않는 것이다. 제대로 한 번 응대해 줬다간 사나흘을 그와 함께 술독에 묻혀 지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생업을 갖고 하루하루를 빠듯하게 사는 사람들이 어찌 그와의 정분만 생각해서 어떻게 스스로 파락호가 되겠는가 말이다. 즐겁게 술만 마신다면야 하루 이틀도 괜찮겠다. 그러나 그이는 취하기만 하면 꼭 싸움판을 벌인다. 술집 주인하고 싸우고 옆자리 술꾼하고 붙고 지나가는 행인하고 주먹다짐이니 누군들 그의 술자리에 끼어들려고 하겠는가. 술에 대한 끊없는 의지심, 절망과 노여움, 허기와 갈망... 그의 처지와 그의 심정을 십분 이해한다 해도 스스로 자기를 죽여가는 그와 동행할 벗들은 더 이상 있질 않았다.
학창때부터 주위 사람을 놀라게 했던 재주와 감각, 혼자서 깨친 박학다식도 이제는 자신이 걸친 남루한 의상과 같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철들면서부터 시인이었던 그는 문단에 대해 욕설만 퍼부었지 스스로 지은 시는 한 편도 가지질 못했고 뒤늦게 사진작가의 길을 걷고자 집 팔고 계돈 타서 비싼 카메라는 사 모았지만 결국은 여권사진이나 찍어주는 사진관 하나 낼 처지밖에 되질 못했다. 그리고 그 사진관조차 십여 년 전에 날려먹었다. 항상 그는 안목과 뜻이 컸지만 끝내 그것을 현실에서 키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한 삶, 그것은 결국 스스로 나락의 늪으로 빠져 들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런 가운데 더러 낚시가 그의 위안이 되긴 했지만 낚시 자체가 구원이 되지 못함은 그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다. 낚시에서도 드물지않게 그의 난폭성이 드러났던 것도 그런 까닭에서다. (낚시바늘로 남의 집 닭을 낚아채고, 밤중에 다른 꾼의 살림망을 걷어와서 매운탕을 해먹은 얘기 등등은 지난 번에 했다). 나와 권 선생은 차라리 그가 양어장의 일꾼으로 취직되거나 허름한 붕어찜집이라고 운영하길 얼마나 바랐던가.
말 상대도 잃고 외상 술 먹을 술집조차 가지지 못한 그가 말년에 자주 찾아 간 곳은 남해낚시점이었다. 맘씨좋은 남 사장은 그의 학교 후배였다. 젊은 나이에 풍을 맞아 거동이 편치않은 남사장은 그를 보면 더욱 마음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남 사장, 나 낚시대 하나만 줘. 고장난 것도 괜찮고 구식이라도 상관없어. 술 안 마시려면 낚시터에라도 가 앉았는 수밖에 없겠어”
물가에 앉아서 새 생활 꾸릴 궁리라도 해봐야 되겠다는 그를 남 사장 또한 매정하게 뿌리치지 못했다. 괜찮은 낚시대에다 받침대며 뒷꽂이, 떡밥까지 잔뜩 챙겨서 그의 손에 쥐어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의 조대길씨는 그걸 들고 물가보다는 먼저 술집으로 달려간다. 술집 남정네한테 낚시대를 쥐어주는 대신 자기는 또 술병을 얻어걸려 하루를 호기롭게 버팀하는 것이다.
사나흘 지나서 또 낚시점을 찾아온다.
“남 사장, 요새는 인심이 사나워서 낚시도 못 하겠더구먼. 아 글씨, 오랜만에 밤낚시를 했는데 말이야, 텐트에 들어가서 두 시간은 잤을까. 느낌이 이상시러워서 밖에 나와 봤더니 시상에! 어떤 개자슥이 내 낚시대를 싹 걷어가버리고 없는게야. 낚시대만 가져갔음 나 말도 안해. 살림망까지 다 걷어가고 없어요! 남 사장, 우리 나라 낚시터 인심이 언제부터 이렇게 돼야뿌렸어 응? 이눔의 새끼들, 내 손에 한 번 걸리기만 해봐라. 다리몽둥이 팔몽둥이 다 분질러놔 버릴게다”
뻔한 수작임을 알면서도 남 사장은 다른 소리를 하지 않는다. 씨익 웃으며 두 칸 반 대 하나를 또 쥐어주는 도리밖에 없는 것이다.
조대길씨의 시신(屍身)은 가오동의 뉘집 채소밭에서 발견됐다. 남의 집 시멘트 담벼락에 등을 기대고 두 다리는 밭고랑쪽으로 쭉 뻗은 채 그렇게 자는 듯 죽어 있더라는 것이다. 이른 새벽, 채소를 살피러 나왔던 밭주인이 그 주검을 발견하곤 곧장 경찰에 연락을 했는데 그의 몸에서는 스스로의 신분을 밝힐 수 있는 증명서는커녕 제대로 된 소지품 하나 없어서 경찰조차 그의 신원을 알아내는데 큰 애를 먹었다고 했다. 경찰의 연락을 받고 부인이 곧장 대전으로 왔으며 그리고 그 초라한 주검이 한 평생 자신을 속썩히기만 한 사내의 것임을 확인하고는 몇 사람 일가붙이만 지켜선 가운데 화장터 불아궁이에 밀어넣었다는 것이었다.
“하필이면 왜 가오동이래요?”
장연지의 높다란 물막이 벽을 쳐다보며 샛길로 차를 밀어넣던 내가 물어 보았다.
“난들 알어”
권 화백의 대꾸도 심심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나뿐 아니라, 어느 한 시절 죽은 그이와 함께 이틀이 멀다하고 물가를 찾았던 권 화백조차도 조대길씨는 지나간 시대의 꾼임을 확연히 깨닫고 있음은 분명했다. 예컨대 우리가 알기에 그는 캐미라이트를 사용해서 밤낚시를 해 본 경험이 없었다. 카바이트가 사라지던 그 무렵 그는 이미 자신의 몸을 넝마로 만들어 놓고 있었다. 그는 카본 낚시대를 쥐어 본 적이 없으며 낚시가방을 자동차 트렁크에 싣고 휭하니 물가로 달려가본 일조차 없다. 수면에 뜬 좌대는 구경조차 해 본 일이 없는 그는 세상 천지에 돈 내고 낚시하는 유료낚시터가 있는 줄은 꿈에도 상상칠 못했다. 어느 때 문득 낚시터 풍속조차 홀연 바뀌었을 때 그는 스스로 힘든 세상과 절연한 채 애써 죽음의 길로만 타박타박 걸어갈 줄 알았던 것이다.
상류 물골 옆에다 차를 세웠다. 권 화백이 먼저 낚시가방을 들고 빠른 걸음을 놓았다. 올
들어서 숱하게 밤낚시를 했지만 캐미라이트 찌가 솟는 꼴은 본 적이 없다는 나의 말을 듣고 직장 동료가 일러준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씨알은 작지만 입질 하나는 쉼없이 이어진다는 것의 그의 말이었다. 처지가 나와 다를 바 없었던 권 화백이 이곳에 거는 기대도 결코 만만치 않은 것이었다.
우리가 낚시대를 차리는 때에 마을 버스 한 대가 힙겹게 골 안으로 들어왔는데 나는 혹여 그 버스에서 조대길씨가 내리지않나 싶어 몇 번이고 고개를 쳐들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