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이 단전호흡을 하게 된 동기를 맞게 된 것은 1991년 당시 oo구청에서 감사실장으로 근무할 때이다. 현재 서대문구 구청장으로 근무중이신 이정규씨가 동작구청 부구청장으로 부임 하시게 됨에 따라 매일 아침마다 부구청장실에서 개최되는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다. 매일 아침마다 만나다 보니 공식적인 회의 후 시간의 여유가 생기면 단전호흡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었다.
당시 본인은 57세로서 10여년 전부터 오른손이 떨려서 글씨 쓰는데 많은 부담을 느낌으로서 승진을 위해서는 직무교육에 당연히 참여하여 점수를 따야 함에도 불구하고 교육도 가지 못하고 고민하고 있는 중이었을 뿐아니라 부부생활 하는 데도 여의치 못하여 많은 걱정을 하고 있는 중이었고, 선친께서 중풍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 갈수록 예방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많은 중이었는데 그러한 내용을 상담 하였던 바 단전호흡을 하면 피가 맑아짐으로써 혈액순환이 잘되고 혈액순환이 잘 되면 혈압도 정상으로 됨으로써 중풍이 예방됨은 물론 부부관계도 회복될 것이며, 손 떨리는 것도 호전될 것이므로 무조건 하라고 하여 과연 그렇게 좋은 것인가 하고 발신반의하였는데, 어느날 4층 강당에서 전직원이 참석하는 행사가 있었는데 행사가 끝난 후 이어서 이정규씨가 단전호흡 시범을 보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참여해야 되겠다는 각오를 하게 되었다. 이유는 참석한 직원이 약 400여명이 되었는데 그중에는 여직원들도 70~80명 정도가 있었는데, 모두 쳐다보고 있는데도 단위에서 서슴없이 옷을 벗고 팬티만 입고 도복으로 갈아 입는데 그 용기도 보통 사람들은 할 수 없는 것이려니와 몸매가 40여세로 보였다. 대부분 그 나이가 되면 배도 나오고 몸 전체가 균형이 비틀어지기 마련인데 배도 나오지 않았을 뿐 아니라 보지 않은 사람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미끈하고 얼굴과는 딴판이었다. 이어서 시범을 보이는데 놀라울 정도였다. 즉 두좌법과 팔굽혀펴기 즉 관지훈련을 하는데 마치 마술사 같기도 하고 초인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 후, 며칠 있다가 91년 10월 4일 드디어 강당에 메트리스를 깔고 개장하게 되어 창설 멤버로 참여하게 되었다.
처음 얼마동안은 새벽 일찍 일어나서 5시30분까지 도장에 나가려면 무척 힘이 들었다. 그러나 약 10여일이 지나고 나니 별로 힘드는 것을 모르게 되고 날이 갈수록 습관화되어 약 1개월 정도 지나고 부터는 자명종시계가 필요없게 되었다.
다만 단순한 운동이 아니고 수련이고 보니 동작 하나 하나가 쉽지만은 않고 힘든 동작이 많음으로써 중간에 그만둔 사람도 많았으며, 나역시 그만두고 싶을때도 몇번 있었다.
삼각두좌법이나 가부좌 두좌법을 배울 때 처음에는 왜 그렇게 중심이 안잡히고 힘이 들었는지 그리고 다리 벌리고 가슴이 땅에 닿도록 하는 동작을 할 때는 허벅지가 찢어지는 것 같이 아파서 무척이나 애 먹었다. 억지로 아픔을 참으면서 하였더니 그 이튿날 아침에는 허벅지에 멍이 시퍼렇게 들어서 걱정도 한 적이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던 바 다 거치는 과정이니 걱정말고 하라고 하여 계속 하였던 바 역시 다 풀린 것을 보고 안도한 적도 있었다.
뿐만아니라 어깨와 옆구리 및 팔등이 장기간동안 아파서 병원에까지 가본 적도 있었지만 역시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풀리고 보니 그동안 굳었던 근육과 골격이 제대로 잡혀가는 과정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중단하지 않고 계속하게 된 것은 전술한 바와 같이 안되는 것을 하려고 노력하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신기하게도 하게 되고 안했더라면 근육이나 골격이 틀어진 상태로 굳어버렸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을 할 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1994년 11월 6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한 진기 승단식에 참석하여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시범을 보이고 나니 자신감이 생길뿐더러 단전호흡에 입문한 것에 대하여 무척이나 기쁨을 느꼈다. 그러나 시범행사 종목 중 팔에 쇠젓가락을 끼우고 물통을 거는 종목과 사람위에 무거운 바위를 올려 놓고 함마로 치는 종목을 빼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이유는 그 종목을 하고 싶은 회원이 없을 것이며 선사님께서 하라고 하시므로 마지 못하여 하기야 하지만 반면에 보는 사람들에게는 순수한 수련이라기보다는 마치 마술사가 마술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겠느냐 하는 우려가 되었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는 이정규청장은 하등의 대가도 없이 희생적인 정신으로 회원들의 지도를 위하여 추울 때나 더울 때나 한결같이 제일 먼저 나와 지도하는 것을 보고 많은 경각심을 받고 그만 둘 수가 없었으며, 또한 일정기간이 되면 승급됨에 따라 띠를 바꿔 매주는데 그 때마다 기분이 우쭐해지고 흥미도 더해지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이렇게 좋은 수련을 나만 할 것이 아니라 입문하지 않은 동료들과 일반 대중들에게 보급하는 것이 나의 소임이 아니겠느냐 하는 생각이 들어서 3기 사범 연수반에 입문하게 되었다.
입문하여 수련하여 본 결과 제일 어려운 것은 오공법이었다. 의세부터 시작하여 당세까지 10가지의 동작이 모두 비슷비슷하여 외우기도 힘들 뿐아니라 외워도 1주일이 지나고 나면 또 잊어버리고 정말 힘들었다.
그러나 오기법과 기신법은 각각 5가지씩의 동작이므로 별 부담이 없었지만 기화외공법 또한 쉽지 않았다.
원체 종류가 많고 또 순서를 바꿔가면서 수련하다 보니 무척 혼란이 와서 어리둥절할 때가 많았었다. 특히나 제일 힘들었던 것은 삼복더위에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데 단전호흡을 하면 땀으로 목욕을 하게 되므로 정말 참기 어려웠지만, 거뜬히 견뎌내게 된 것은 그간 약 5년 동안을 수련한 덕택으로 인내력이 생긴 결과가 아닌가 생각할 때 흐믓하기도 하였다.
그간 체험한 바를 기술해 보면
첫째 부부관계가 여의치 못하게 되고 보니 모든 것에 자신감이 없고 허전하여 삶에 의욕을 잃었었는데 단전호흡을 시작한 지 약 6개월이 지난 때로부터 회복하게 되었다. 삶에 의욕을 찾고 보니 그 기쁨을 무어라 형언할 수 없었다. 돈이 아무리 많으면 무엇하겠는가.
둘째 간혹 등산을 해 보면 단전호흡에 입문하기 전에는 후배에 처져서 겨우 따라가는 정도였고, 다녀온 후에는 몸살이 날 때가 많았었는데 지금은 선두그룹에서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빨리 따라 오라고 독려를 할 정도였고 다녀오고 나서도 몸살하는 일 없이 정상적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셋째 단전호흡을 하기 전에는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서 앞에 나가 회의를 진행한다거나 발표를 하려면 당황이 되어 제대로 하기가 힘들 때가 있었으나, 지금은 당황된 감이 적고 안정되고 침착성이 생기게 되며 부담이 덜어졌다.
넷째 중풍예방에도 효과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전에는 4층이나 5층을 올라가면 숨이 가쁘고 어지러울 때가 있었으나 지금은 많이 감소되었고, 오기법 중 가기법을 하여도 큰 부담이 없는 상태이다.
다섯째 손 떨리는 것은 수련하기 전보다 호전된 것은 틀림 없으나 완치는 안되고 지금도 조금씩 떨리는 상태이지만 계속하면 완치되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본원 사무실 액자에도 있지만 돈을 잃은 것은 조금 잃은 것이고, 명예를 잃은 것은 많이 잃은 것이며, 건강을 잃은 것은 전부를 잃은 것으로서 우리 인생에 제일 중요한 것은 건강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건강하고 활기찬 삶을 위하여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본인이 그간 체험한 바로는 단전호흡이 최선이라고 생각되는 바 아직까지 입문하지 않은 동료들이나 일반 대중에게 최대한으로 보급 지도하면서 이 생명 다할 때까지 계속 할 것을 다짐하면서 끝 맺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