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일 10시10분 : 루프트한자(독일항공)을 타고 김해국제공항을 출발, 인천국제공항에서 환승하여, 독일 뮌헨으로 향한다. 사진은 김해국제공항을 이륙하며 찍은 김해평야 풍경... 모내기가 끝난 김해 벌판은 짙은 초록빛이다.
16시50분: 한국시간 23시50분이며, 4~9월까지는 써머타임 기간이라 7시간의 시차가 있다.(그외는 8시간 시차) 인천공항에서 12시간을 넘는 오랜 비행 끝에 독일 뮌헨공항으로 착륙하면서 찍은 풍경으로, 추수가 끝나 군데군데 누른 벌판이 한국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동유럽 6개국을 여행하는 동안 이용할 전용버스를 타고 뮌헨공항을 출발... 비가 간간히 내리는 가운데 2시간 남짓 걸리는 오스트리아의 짤츠부르크로 향한다.
독일 국경을 넘어 21시30분경, 오스트리아 짤츠부르크의 AUSTRIA TREND 호텔에 도착... 한국시간으로는 7/29일 새벽 4시30분이며, 부산에서 이곳까지 1박2일(18시간30분)이 된 셈이다. '소금 성(城)'이라는 뜻의 '짤츠부르크(Salzburg)'는 모차르트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곳이다. 모차르트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살았던 곳이기에 가는 곳마다 모차르트의 흔적이 넘쳐나지만, 특히 영화 촬영지로서도 많은 관광객의 발길을 붙잡고 아름다운 추억을 갖게 해준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은 음악팬과 영화팬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명화로 전 세계인을 감동시켰고, 짤츠부르크에는 이 영화의 무대와 배경이 되었던 곳이 여기저기 산재되어 있어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곳 짤츠부르크를 찾게 하는 동기를 부여한다.
1. 미라벨 정원 (Mirabell garten)
호텔 부페식 아침식사를 마친 후, 첫 여행지로 찾은 짤츠부르크 구시가지의 미라벨 정원... 영화 'The Sound of Music'에서 여주인공 마리아가 아이들과 '도레미 송'을 불렀던 곳이다. 제정일치 시대에 볼프 디트리히 대주교가 사랑하는 여인 살로메를 위해 1606년에 지었다고 하는데, 10여명의 자식이 있었지만, 다른 주교들의 미움으로, 결국 여기서 살아보지 못하고 영어의 몸이 되었다고 한다. 본래 이름은 알테나우 궁전인데, 18세기 초 성을 개축한 뒤 '아름다운'이란 뜻의 미라벨로 부르게 되었다. 17세기 바로크 양식의 궁전으로, 볼프 디트리히 대주교가 실각한 뒤에는 대주교 별궁으로 사용했다. 1818년 화재로 훼손되었으나 이후 복원되었고, 1950년부터 시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궁전 내부에 모차르트가 6세 때 연주했다는 대리석 방이 있으며, 지금도 실내악 연주회나 결혼식 등으로 사용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영감을 얻어 조각했다는 대리석 조각상과 화사한 꽃, 분수 등으로 꾸며 봄이면 특히 아름답다. 그리고 정원 내부의 잘츠부르크 바로크 박물관에는 유럽의 다양한 바로크 예술품이 전시되어 있다.
이하, 미라벨 정원 풍경사진들이다. 왼쪽 멀리 산 위에는 다음 행선지인 '호엔 짤츠부르크성'이 보인다.
미라벨 정원 뒷문 쪽으로 나가며...
2. 호엔짤츠부르크 성 (Hohensalzburg Fortress)
미라벨 정원을 나와, 멀리 산 위에 보이는 호엔짤츠부르크 성으로 걸어 가면서... 이 강은 짤츠부르크 중심부를 흐르는 잘자흐(Salzach)강이며, 이쪽 구시가지와 건너편 신시가지로 구분된다.
맞은편 노란 건물이 짤츠부르크 중심가인 게트라이데 거리(Getreide Strasse)에 위치한 모짜르트의 생가... 1759년에 태어난 모짜르트가 17세까지 살았으며 어릴 때 작품은 거의 대부분 이곳에서 작곡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생전에 사용하던 침대, 악기, 가구 등이 전시되고 있다. 모짜르트 생가 건물 안으로 들어가보지는 못했으나, 내부는 사진촬영금지라고 한다.
산 위에 보이는 호엔짤츠부르크 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짤츠부르크의 상징인 곳으로 묀히스베르크산 120m 지점에 위치한 궁전이다. 1077년 건축한 철옹성으로, 신성로마제국(독일) 황제와 로마 교황 사이에 주교 서임권 투쟁을 벌이던 시기에 짤츠부르크 대주교 게프하르트가 남부 독일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세운 곳이다. 성채 내부에는 15세기에 설치된 무기고와 대포 설치대가 여전히 남아 있고, 15~16세기 동안 증축∙보수 작업을 진행해 17세기에 이르러서야 지금의 모습이 완성됐다.
등반열차(?)를 타는 입구... 우측상단에 덧붙인 티겥을 사야 한다.
등반열차를 타고 올라가면서 내려다본 풍경...
등반열차에서 내려, 성 안으로 올라가면서...
성 뒷편 성벽에서 바라본, 오른쪽 방향 풍경...
가운데(북쪽) 방향 풍경... 맞은편 산이 영화 'The Sound of Music'에서 폰트랩 대령 가족이 스위스로 탈출하는 장면을 찍은 산이라고 한다. 영화를 보고 오스트리아 사람들은 많이 웃었다고 하는데, 저 산 너머는 스위스가 아니고 나치가 있던 독일이라서... ^^*
왼쪽 방향 풍경...
성문 앞 보리수 나무를 배경으로 증명사진 한 장... 슈베르트 가곡집 '겨울나그네' 중에서 '보리수'가 여기서 작곡되었다고 한다. 중학교 음악시간에 불렀던 "성문 앞 우물 곁에 서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 아래 단꿈을 꾸었네..." 가사에 나오는 우물도 오른쪽 광장 옆에 있었다.
성 앞쪽에서 바라본, 신구시가지를 가르는 잘자흐(Salzach)강 풍경...
이곳 성으로 올라왔던 방향 풍경... 아래쪽 커다란 돔형의 짤츠부르크 대성당이 보이고, 강 건너 미라벨 공원도 보인다.
성채 풍경...
성 안으로 들어가, 대포 구멍으로 바라본 짤츠부르크 시가지... 성 내부 관광코스에는 인형박물관이 있어 인형극에 사용되는 인형들이 전시되어 있고, 그외 옛우물 등이 있다.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위치에서 바라본 짤츠부르크 시가지 풍경... 구경을 마치고, 다시 등반열차를 타고 내려가, 사진 중앙에 보이는 짤츠부르크 대성당으로 향한다.
3. 짤츠부르크 대성당...
짤츠부르크 대성당 외벽 모습... (호엔 짤츠부르크 성으로 가는 길에 찍은 풍경이지만, 여행지 구분을 위해...)
대성당 앞 레지덴츠 광장 풍경... 금요일 아침 시간이라 아직 사람들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짤츠부르크 대성당 입구... (정면에 임시 공연장이 설치되어 정면 사진은 못찍었슴) 3개의 청동 대문은 믿음,소망,사랑을 상징하며, 청동 대문 위의 숫자는 다음과 같은 뜻을 갖고 있다. 774년 : 건립, 1628년 : 화재로 40년에 걸쳐 바로크식 건물로 재건축, 1959년 : 제2차 세계대전 후 재건축
입구에 들어서면서 바라본 성당 내부 풍경...
성당 정면 제단... 이곳에서 모짜르트가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성당 좌측 제단...
성당 우측 제단...
성당 중앙 돔 천정 모습...
성당 입구 상단에 위치한 파이프 오르간... 6천여개의 파이프로 만든 유럽 최대의 파이프 오르간으로 유명하다.
짤츠부르크 대성당 옆 모습과 레지덴츠 광장 분수대 풍경... 영화 'Sound of Music'에서 수녀원을 나온 마리아가 폰트랩 대령집으로 가정교사를 하기 위해 가는 장면에서 이 레지덴츠 광장을 힘차게 가로질러 가던 중에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촬영되었다.
약간 떨어진 광장에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 동상 앞에서 증명사진 하나...
다시 돌아온 모짜르트 생가가 있던 게트라이데 거리 풍경이다. (이곳에서 잠시 자유시간) 짤츠부르크에서 가장 번화한 곳으로 거리 양쪽으로 보석가게, 꽃집, 옷가게, 레스토랑, 커피숍 등이 이어지며, 건물마다 가게의 특징을 철제로 표현한 예술적인 수공간판들이 많이 달려 있어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철제간판들은 문맹이 많은 중세시대에 무슨 가게인지를 알리려고 하는데서 시작되었다고 하며, 200년 이상 된 것도 있고, 거리 분위기에 맞추어 현대의 패스트푸드 음식점들도 철제간판을 매달아 놓았다. 4. 짤츠감머구트 (Saltkammergut)...
'소금을 담고 있는 창고'란 뜻을 가진 짤츠감머구트... 짤츠부르크 시내에서 동쪽으로 25km 정도 떨어져 있다. 이곳 식당에서 현지식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장크트 길겐(Sankt Gilgen) 마을에 위치한 모짜르트 어머니 생가... 건물 창문에 세사람의 초상화가 보이는데, 아래쪽 모짜르트와 윗쪽에 어머니와 누이...
성당으로 올라가는 길의 마을 풍경...
우리나라와 달리, 마을 안에 공동묘지가 있다. 뒷편 산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도 보이고...
마을에서 되돌아 나와서... 이하, 장크트 볼프강(St. Wolfgang) 호수 주변 풍경...
왼편 의자에 앉아 있는 연인... 너무 찐한 행동에 고개를 돌리고... ^^*
호수 반대편 공원을 찍는데, 휙 지나가는 자전거... 나름 괜찮아서 초상권 무시하고 올림... ^^*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장크트 볼프강(St. Wolfgang) 호수 관광...
출발지인 장크트 길겐 마을 방향 풍경... 이하, 유람선에서 찍은 호수 주변 풍경...
유람선 관광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호수 풍경이 아름다워 같은 장소에서 한 장 더... 5. 짤츠감머구트 (Saltkammergut)의 볼프강(Wolfgang) 마을
장크트 길겐 마을에서 30분 정도 버스를 타고 도착한 볼프강(Wolfgang) 마을... 12세기부터 순례자들이 정착해 만든 마을인데, 영화 'The Sound of Music' 촬영지로 더 유명세를 타게 된 곳이다.
장크트 볼프강(St. Wolfgang) 호수 풍경...
마을 풍경... 어린애가 식수대에서 홀로 물장난을 하고 있다.
주차장 뒷편으로 보이는 초원지대 언덕... 건물에 가려 잘 보이지는 않지만... 영화 'The Sound of Music'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초원지대는 이곳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마리아가 아이들과 소풍가서 기타를 치며 도레미 노래를 배우며 부르던 곳... 6. 오스트리아 비엔나 도착...
짤츠부르크에서 전용버스로 4시간 넘게 걸려 도착한 오스트리아 수도 빈(비엔나)... 비엔나에 여행오는 사람들은 빠뜨리지 않고 들린다는 '호이리게(Heurige)정식'으로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비엔나 근교의 그린칭 마을에 있는 이집은, 870년전에 문을 열었으며 호이리게 정식을 전문으로 하는 레스토랑이다 . '호이리게(Heurige)'라는 말의 어원은 호이리크(heurig 올해의)이며, heuriger Wein(올해 만든 포도주)를 의미라며,
개인적으로 음식은 특별히 맛있는 건 아니었지만, 포도주 맛은 괜찮았다. 호이리게 정식을 백포도주와 함께 먹는 동안 바이올린과 아코디온을 연주하는 악사가 와서 우리나라 가요도 몇 곡을 곁들여 연주하며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데, 테이블당 5유로 정도의 팁이 필요... ^^*영화 'The Sound of Music'은 그동안 5번이나 볼 정도로 너무 감명 깊게 본 명화인 탓에, 영화의 촬영지인 오스트리아 짤츠부르크는 꼭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비록 수박 겉 핥기였지만 그 뜻을 이루며, 동유럽 여행 첫 날 일정을 무사히 마무리한다. 영화 'The Sound of Music' 중에서 '도레미 송' 영화 'The Sound of Music'의 '도레미송' 동영상입니다. 재생 버튼을 눌러 보시면, 위 사진에서 나오는 장면들을 볼 수 있을 겁니다.
비엔나에서 하룻밤을 지낸 '슐로쓰 빌헬미넨베르크(Schloss Wilheminenberg)라는 호텔이다. 이 호텔은 해발고도가 높은 비엔나 서부의 오타크링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변에는 포도밭이 많이 있다고 한다.
호텔 정면 모습... 옛날에는 궁전이었는데, 개조해서 호텔로 만들었다. 천정이 매우 높은 궁전이라, Room에 중2층이 있고, 침대는 중이층에 아래는 거실의 특이한 구조였다.
호텔 주변은 넓은 잔디밭과 수목림이 잘 가꾸어져 있어, 30분 남짓 아침산책을 즐겼다. 유럽에서도 일출을 볼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구름 가득한 날씨에 기대는 무산되고... 1. 쉔부른 궁전 (Schloss Schoenbrunn)
호텔 부페로 아침식사를 하고 도착한 쉔부른 궁전 정문이다. 1996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쉔부룬 궁전은 1612년 마티아스 황제가 사냥 도중 발견한 아름다운(Schoen) 샘(Brunn)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쉔부룬 궁전은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의 축소판으로 설명되곤 하는데, 프랑스와의 알력이 한창일 때 오스트리아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베르사이유 궁전보다 더 크게 증축하고자 설계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과 병마로 인해 경제사정이 점점 악화되자 규모를 줄여 지금의 크기에 머물게 되었다.
쉔부른 궁전 정면 풍경... 쉔부룬 궁전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 궁전으로 사용 되었으나 1805년, 1809년 나폴레옹에게 점령 당했을 때는 나폴레옹군의 사령부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궁전은 터키군에 의해 파괴 되었다가 1700년 피셔 폰 에르라흐(Fischer von Erlach)에 의해 증축된 후 니콜라우스 파카시(Nikolaus Pacassi)의 대대적인 개축을 통해 1749년에 완성되었다. 지금의 쉔부룬은 파카시의 파격적인 개축으로 본래의 모습을 너무 많이 잃었다는 비평을 받고 있으며 대부분은 로코코 양식의 실내장식으로 꾸며져 있다.
궁전 내부 관람을 들어가며... 내부 촬영은 금지하고 있어 사진으로 소개하지 못한다.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프란츠 요셉 황제, 엘리자베스 황비(애칭 Sisi) 등이 이곳에서 생활했다. 화려한 궁전에는 합스브르크 황실 유물이 전시되어 있으며, 1441개 방중에 45개의 방만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1918년 1차 세계 대전 패전 후에는 당시 황제 Karl 1세가 오스트리아 헝가리제국의 종말을 선언한 곳이어서, 오스트리아인들에게는 영광과 치욕이 공존하는 곳이다. 궁전내부에는 6세 때 모차르트가 연주하고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구혼했던 '거울의 방(Spiegelsaal)'과 마리아 테레지아의 비밀 만찬실인 '중국식 작은 방 (Chinesisches Rundkabinett)' 등이 볼 만하다
궁전 내부를 관람을 마치고, 뒷편 정원으로 나가 증명사진 하나 남기고... 잘 정돈된 궁전 뒷편의 프랑스식 정원과 1780년에 만들어진 바다의 신을 상징하는 넵툰분수(Neptunbrunnen),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1775년 마리아 테레지아 시대에 건립한 글로리에테(Gloriette)가 당시의 화려함을 대변한다.
정원을 배경으로 넵툰분수와 글로리에테 방향으로...
줌으로 찍은, 아래쪽 조각상이 있는 곳이 넵툰분수이고, 언덕 위 건축물이 전승비인 글로리에테(Gloriette)다. 시간이 부족해 뒷쪽 언덕 너머까지 가지 못하고... 현지 가이드의 2군데 면세점 방문 의도(?)에 말린 것 같다는 생각...
왼쪽 조각상이 있는 곳이 넵툰분수이고, 오른쪽 사진은 전승비 글로리에테를 언덕 너머 반대편에서 찍은 풍경이다.
쉔부른 궁전 뒷쪽 전경...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궁전 건물은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이 가장 좋아했던 짙은 황금색으로 채색되어 있다
정원을 배경으로 찍은 쉔부른 궁전 뒷쪽 풍경...
오른쪽 쉔부른 궁전 정문으로 나가면서, 광장 왼편 분수대를 담았다.
광장 분수대와 함께 담은 쉔부른 궁전 정면 모습... 이 궁전은 '마리아 테레지아' 여왕의 16명 자녀 중 막내딸인 '마리 앙뜨와네뜨'가 15세까지 지내던 곳이기도 하다. '마리 앙뜨와네뜨'는 당시 정략결혼으로 프랑스 루이16세의 왕비가 되어 무관심한 남편과 주위의 시기심으로 늘 외로워 하다가 . 프랑스 혁명으로 30세의 나이에 국고를 낭비한 죄로 단두대의이슬로 사라졌던 비운의 인물이다 2. 왈츠 체험
비엔나의 왈츠학교에 들러, 왈츠 체험시간을 가졌다.
오래된 건물로 보이는 교습소 내부 모습이다. 남녀 2명의 선생이 있었으며, 현지 가이드의 통역에 의해 진행된다.
왈츠(Waltz)는 4분의 3박자의 춤곡을 말하며, 거기에 맞추어 춤도 춘다. 기본 스탭은 별로 어렵지 않았고, 앞으로 나가면서 3번, 뒤로 물러서면서 3번의 스탭을 밟는다. 남녀가 한쌍이 되어 추는데, 숙달이 되면 기본 스탭에 변화를 주어 좌우로 돌기도 한다.
한 시간 남짓 지도를 받고, 수료증까지 받았다. 기념품인 셈... 한국에 돌아가서 어디 사용할데가 있으려나... ^^* 암튼, 왈츠를 직접 배우고 체험해본다는 좋은 점도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짧은 여행기간에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 3. 합스부르크 신왕궁
차도를 건너, 맞은편에 보이는 부르크 문으로 합스부르크 신왕궁으로 들어간다.
부르크 문을 둘어서자, 오른쪽으로 합스부르크 신왕궁이 보인다.
합스부르크 신왕궁의 정면 모습으로, 신왕궁은 1881년에 착공하여 1913년에 완공한 네오바로크 양식의 건물이다. 신왕궁 앞의 헬덴(영웅)광장에는 합스부르크 통치시대에 가장 강력한 군대와 넓은 영토를 지배하게 했던 프랑스 사보이 공국 출신의 '오이겐 공'의 기마상이 세워져 있다.
신왕궁 앞의 헬덴(영웅)광장 너머로 보이는 건축물은 합스부르크 구왕궁이 있는 곳이다. 구왕궁은 반대편 미하엘광장에서 들어가며, 미하엘이란 이름은 왕궁 앞에 있는 미하엘성당에서 유래된 것이다.
신왕궁 맞은편 헨델광장에는 나폴레옹과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카를 대공’의 기마상이 세워져 있다. 뒷쪽 숲속에 시민정원이 있는데, 시간 관계상 역시 가지는 못하고... 4. 빈(Wien) 마리아 테레지아(Maria Theresia) 광장 (자연사박물관+미술사박물관)
부르크 문을 되돌아나가, 차도 건너편의 '빈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으로 향한다.
빈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으로 들어가면서... 정면에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女帝) 동상이 보이고, 오른쪽에 살짝 보이는 건물이 미술사박물관, 왼쪽에 살짝 보이는 건물이 자연사박물관이다. 동상 뒷편에 복합문화공간인 Museums Quartier도 보이고...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의 미술사박물관...
독일의 건축가 G.젬퍼가 설계한, 돔 모양 지붕의 아담하면서 거대한 석조건물로 자연사박물관과 마주 보고 있다. 1891년 개관한 이곳 빈 미술사박물관은 루브르박물관, 프라도미술관과 함께 세계 3대 미술관으로 인정받고 있다. 16세기 이후 합스부르크 왕가와 17세기 중엽 레오폴트 빌헬름 대공이 수집한 진귀한 소장품들로 이루어져 있다.조각·회화·공예 작품 외에도 옛 왕궁의 보물, 무기, 화폐 등의 물건들이 세계 미술사 전반에 걸쳐 폭넓게 소장되어 있다.
미술사박물관 배경으로 찍은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女帝) 동상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 한가운데에 세워져 있으며, 동상을 에워싸고 있는 4개의 기마상은 충성을 맹세한 장군들이다.
마리아 테레지아 동상을 가운데 두고, 미술사박물관과 마주보고 있는 자연사박물관...
1891년에 미술사박물관과 함께 완성된 건축물이며, 마리아 테레지아의 부군 프란츠1세의 수집품을 시작으로 개관했다 . 이곳의 자랑은 2층의 해골 모음 전시실인데, 세계 최다 두개골 컬렉션으로 유명하다. 그외 실물 크기의 공룡화석과 유전자 수집물, 선사 및 청동기 시대 유물, 멸종된된 동물의 박제, 광물 등을 다수 소장하고 있다.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女帝) 동상의 뒷쪽 모습이다.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 반대편 입구 너머로 Museums Quartier가 보인다. Museums Quartier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굿간을 개조해서 2001년 6월에 미술관 단지로 개관했다는데, 미술을 주축으로 다양한 예술 장르가 망라된 복합문화공간이라고 하며, 꼭 들려야 하는 곳이라는데 시간이...
5. 오스트리아 국회의사당 (Parlament)
오스트리아 국회의사당... 버스를 타고 지나면서 잠시 볼 수 있었다. 덴마크 출신 건축가 테오필 한센이 민주주의 발생지인 그리스의 건축 형태를 국회 건물에 적용하여 만들었다.
1883년에 세워진 국회의사당 앞에는 1902년에 카를쿤드만이 지혜의 여신인 아테네 여신상을 세웠다. 사진은 빌려온 걸 편집했는데, 여신상 오른손에 들고 있는 새가 승리를 상징하는 나이키 상이고, 여신상 아래쪽 4개의 분수는 합스브루크 영토였던 4대 도시를 나타내는 강을 상징한다고 한다.1918년 11월11일 합스부르크 왕가가 멸망한 다음날에 이곳에서 오스트리아 연방공화국을 선언했다고 한다. 6. 성 슈테판 대성당 (St. Stephens Cathedral)
성 슈테판 대성당은 규모가 너무 크고, 주변 건물들에 막혀 전체 모습을 겨우 담은 풍경이다. 성당 이름은 그리스도교 역사상 최초의 순교자로 기록된 성인(聖人) 슈테판에서 딴 것이다. 현재 성 슈테판 대성당은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양식 건물이다.1147년 처음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건설을 시작했으며, 1258년 빈을 휩쓸었던 대화재로 전소되었다가 1263년 보헤미아 왕에 의해 재건되었다. 그러나 1359년에 합스부르크 왕가가 로마네스크 양식 성당을 헐어버리고 고딕 양식으로 개축하였고, 1683년에는 터키군, 1945년에는 독일군에 의해 많이 파괴되었으나, 전쟁이 끝난 후 복구를 시작하여 대부분 옛 모습을 찾았다
옛 건물이 가득한 구시가지의 중심부에 있으며 '빈의 혼'이라고 부를 정도로 빈의 상징으로 꼽힌다 공사기간이 65년이나 걸렸으며 건물의 길이가 107m, 천정 높이가 39m에 이르는 거대한 사원이다 .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화재로 내부가 소실되었으나 국민의 성금을 모아 1948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 높이 137m에 달하는 첨탑과 25만 개의 청색과 금색 벽돌로 만든 화려한 모자이크 지붕이 눈에 띈다 모차르트의 결혼식(1782)과 장례식(1791)이 치러진 곳이며, 빈 시민들은 매년 12월 31일 슈테판대성당 광장에 모여 새해를 맞는다.
대성당 입구 쪽의 슈테판 광장(Stephansplatz)의 풍경이다. 슈테판 광장은 지형적으로 비엔나 시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으며, 성 슈테판 대성당이 광장에 자리하고 있다. 광장 동쪽과 북쪽으로 비엔나의 가장 바쁜 쇼핑 거리인 그라벤(Graben) 거리와 케른트너(Kärntner) 거리가 연결된다.
슈테판 대성당 구경 중에 현지 가이드가 안내한 면세점에서 쇼핑... 한국인이 관리하는 면세점으로, 패키지 여행에서 늘 포함되지만,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코스... 관광시간도 부족한데...
그리고, Kyoto라는 한,일식전문집에서 김치찌개로 점심식사... 찌개와 반찬은 별로고 밥만 괜찮았다.
점심식사후 슈테판 대성당 내부 관람을 하러갔다. 대성당의 벽은 사암 벽돌로 지어졌기에, 오래되면 사암에 포함된 철분 등으로 인해 검은색으로 변한다. 대성당 입구 오른쪽은 검게 된 성당벽을 수리공사하는 중이라 원래 벽면 사진으로 만든 덮개가 씌워져 있고, 왼편 벽은 수리가 끝나 본래의 색채를 띄고 있다.
성 슈테판 대성당의 내부 풍경으로, 모차르트가 결혼식을 올렸으며, 그의 장례식이 거행된 곳이기도 하다. 또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3세의 대리석 석관이 있다고 하는데, 챙겨보지는 못했다. 지하에는 유골 안치소인 카타콤이 있는데, 합스부르크 왕가 황제들의 심장과 내장을 담은 항아리와 백골도 있다고..
성당 정면 제단의 풍경으로, 제단 가까이 갈 수가 없어 빌려온 사진을 편집해 소개한다.
천정의 샹들리에 뒤쪽으로 파이프 오르간이 보인다. 이하, 슈테판 대성당 내부 풍경으로, 여러 곳에 위치한 제단을 중심으로 몇 곳을 담았다.
7. 오페라하우스 (Staatsoper)
비엔나의 '오페라하우스(Staatsoper)의 분수대 쪽 풍경이다. (정면은 뒷편 차도 건너서 찍어야 함) 오페라 하우스는 현지 언어인 독일어로는 슈타트오퍼(Staatsoper)라고 하며, 파리 오페라 극장,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과 함께 유럽의 3대 오페라 극장으로 인정 받고 있다.
1869년 5월15일 모짜르트의 돈지오바니(Don Giovanni)공연을 시작으로 '오페라하우스'의 역사는 시작된다. 1945년 2차대전 폭격으로 거의 전소 되어 재정 확보의 어려움을 겪은 후 1955년에 베토벤의 피델로(Fidelio)공연을 시작으로 다시 개장 되었다고 한다.
8. 기타
또 다시 현지 가이드에 의해 안내된 면세 쇼핑센타다. 현지 한국인 가이드의 상술(?)에 마음은 불편하고...
구시가지의 중심 케른트너 거리 풍경... 링크 도로(Ring Strabe)에 연결되어 있는 관광명소의 하나인데, 밤늦게까지 북적거리는 케른트너(Kaerntner) 거리, 그라벤 거리(Graben) 거리, 콜마르크트(Kohlmarkt) 거리, 미하엘 광장, 왕궁의 아치문, 그리고 다녀왔던 헬덴 광장, 왕궁 정원, 시청 등을 따라 산책하면 아주 멋지다고 한다. 이하 전용버스를 타가는 길에 찍은 사진이다.
9. 헝가리 부다페스트로 가면서...
오스트리아 국경선을 넘어 헝가리 땅에 들어섰다. 옛 공산주의 체재 때는 저곳 국경선 초소에 군인들이 입국심사를 했다는데, 이젠 텅 빈 채로 남겨져 있다.
전용버스의 체코인 버스기사가 버스에 부착하는 통행증(?) 비슷한 걸 사고 있다. 지붕을 장식한 코카콜라 선전을 보면서, 옛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가 사라져감을 실감한다.
버스를 타고가며 찍은 풍경... 넓은 초원 위로 풍력발전기 모습이 눈에 띈다. 바다의 수평선은 자주 보지만, 이렇게 끝없는 지평선을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하다.
부다페스트에 도착 저녁식사 장소로 들어가며... 이곳에서 헝가리 대표적인 요리인 굴라쉬 스프를 곁들인 오부다 전통화덕구이요리를 먹었다. 굴라쉬 스프는 우리나라 육개장 비슷했고, 덧붙인 사진의 화덕 갈비 세트를 나누어 먹었는데, 맛은 별로였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손꼽히는 음악과 낭만의 도시 비엔나, 참으로 기대가 컸다. 하지만, 짧은 일정에 현지 한국인 가이드의 불성실한 스케줄 운영으로 갔던 곳도 제대로 둘러볼 시간여유가 없었고, 그외는 그냥 버스로 지나치거나 아예 못가본 곳도 많이 남겨두는 바람에 아쉬움으로 보낸 하루였다. 못가본 곳으로는, 미하엘광장과 합스부르크 구왕궁, 비엔나 시청사, 벨베테레 궁전, 시민공원 등 여럿이 있고, 관광했던 곳도 시간이 부족해 전체를 둘러보지도 못하고 전시물이나 공연 관람등은 엄두 조차 낼 수 없었다. 비엔나를 수박 겉핧기로라도 즐길려면 최소한 2박3일 정도는 머물러야 될 것 같다. 암튼, 남겨진 아쉬움에 불확실한 훗날을 기대하면서, 헝가리에서의 다음 일정을 이어간다. Mozart Symphony No. 25 in G minor, K.183 제1악장 Allegro con brio (10'42) G단조 4/4박자 소나타형식 궁정악장 '살리에르'의 시각에서 천재작곡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를 조명한 영화 '아마데우스'... 이 모짜르트 교향곡 25번의 1악장은 바로 그 영화 '아마데우스'의 첫 부분에 삽입되었으며, 1, 다뉴브강의 야경
저녁식사 후 다뉴브 강가로 나가 건너편 헝가리 국회의사당을 배경으로 증명사진 하나 남긴다. 부다페스트(Budapest)는 다뉴브강을 기준으로 이쪽 부다(Buda)지역과 강너편 페스트(Pest)지역으로 구분된다. 부다 지역과 페스트 지역의 사이를 흐르고 있는 있는 다뉴브강은 이 곳 헝가리 부다페스트 뿐만아니라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슬로바키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우크라이나를 지나고 있는 약 2,850km의 긴 강으로 헝가리어로는 두나(Duna), 영어로는 다뉴브(Danube), 독일어로는 도나우(Donau) 등으로 불리는 강이다. 두나강이라고 하면 처음 들어본 사람이 많겠지만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와 '다뉴브강의 잔물결'이란 곡의 제목 때문인지 도나우란 독일어 이름과 다뉴브란 영어 이름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름인 것 같다.
다뉴브강 상류 풍경... 부다와 페스트지역 이어주는 최초의 다리인 세체니 다리와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높은 곳인 겔레르트 언덕이 보인다.
다뉴브강 하류 풍경... 마르기트 다리와 너머로 다뉴브강의 마르기트섬이 보인다. 마르기트섬은 낙동강의 을숙도인 셈?
다뉴브강 하류에 있는 선착장에 도착, 다뉴브강의 야경을 보기위해 유람선 관광을 시작한다. 맞은편 2층 유람선에는 우리 일행만 예약되어, 와인이나 맥주, 음료 등이 한 잔씩 제공되었다.
다뉴브강 상류로 올라가면서... 아직 저녁무렵이라 불빛은 들어오지 않는다. 마르기트 다리가 보이고...
페스트(Pest)지역 다뉴브 강변에 위치한 국회의사당도 보이고...
부다(Buda)지역 강변 풍경... 가운데 쌍둥이 첨탑 건물이 성안나 성당(St Anne's Church), 왼편 갈색 첨탑이 칼빈 성당(Calvinist Church)이다. 성안나교회 뒷편으로 내일 관광할 마챠시 성당(Matthias Church)과 어부의 요새(Fishermen's Bastion)가 보인다.
맞은편에 세체니 다리, 오른쪽에 부다왕궁, 다리 너머 겔레르트 언덕이 보이고...
돌로 우람하게 교각을 세운 세체니 다리에의 야경... 세체니 다리 오른쪽 아래로 보이는 상류의 다리는 엘리자베스 다리(Elisabeth Bridge)다.
유람선이 선착장으로 되돌아가면서 다시 찍은 풍경으로, 야간 조명이 들어온, 맞은편에 세체니 다리, 오른쪽에 부다왕궁, 다리 너머 겔레르트 언덕...
국회의사당(Parliament)의 야경... 네오고딕양식의 큰 규모로 지어진 국회의사당은 1902년에 완공된 건물로 길이가 268m, 높이가 96m나 되는데
국회의사당 건물은 유네스코에 지정되어 세계문화재로 보전되고 있으며,
야간 조명이 들어온 부다(Buda)지역 강변 풍경... 가운데 쌍둥이 첨탑 건물이 성안나 성당, 왼편 첨탑 건물이 칼빈 성당, 오른쪽 첨탑 건물이 성프란티스카 성당이다. 뒷편 언덕에 내일 관광할 높은 첨탑의 마챠시 성당과 성벽으로 둘러진 어부의 요새, 더불어 힐튼호텔 탑도 보인다.
선상에서 다녀온 세체니 다리 방향으로 바라보며... 똑딱이 디카에 삼각대도 없이 흔들리는 유람선에서 야경을 찍을려니 제대로된 그림이 안나온다. ^^*
유람선 관광을 마치고, 1848년에 개통된 세체니 다리(Szechenyi Lanchid) 관광에 나섰다. 부다와 페스트 사이를 흐르는 다뉴브강에 놓인 8개의 다리 중 가장 아름다운 다리라 불리는 이곳은 다리 건설에 공헌한 세체니 이슈트반 백작의 공을 기리기 위해 건설된 현수교로 세체니 다리라 불리게 되었다. 세체니 다리의 네 귀퉁이에는 4마리의 사자 조각상이 있는데, 사자에게 혀가 없다는 사람들의 지적에 사자를 조각한 조각가가 다뉴브강에 몸을 던져 자살했다고 하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영화 "Gloomy Sunday"에서 여주인공이 이곳 세체니 다리에서 자살함에 따라, 그 영향으로 수많은 유럽 젊은이들이 이곳 세체니 다리에 와서 자살했다는 바로 그곳이기도 하다. 또한, KAL 폭파범인 김현희가 공작원 훈련생활 동안 부다페스트에 와서, 이 다리를 건넜다고도 한다.
세체니 다리의 페스트지역에 위치한 그레셤궁(Gresham palace)... 1904년에 짓기 시작해서 1906년에 완공된 아르누보 건축양식의 대표적인 건물로 제2차 세계대전때는 소련군의 숙소로 사용되었으며, 전쟁 후에는 부다페스트시의 소유로 되었다가 1999년에 팔려서 2004년부터 호텔(Four Seasons Hotel Gresham Palace)로 사용되고 있다.
부다(Buda)지역 야경으로, 언덕 위에 마챠시 성당과 성벽으로 둘러진 어부의 요새가 보인다.
줌으로 당겨찍은 부다왕궁 야경이다.
왼편 아래에 국회의사당이 보이는, 페스트 지역의 다뉴브 강변 풍경이다.
세체니 다리 위에서 페스트지역의 그레셤궁을 향해 찍었다. 세체니 다리에서 찍은 야경들은 삼각대 대신 교각 위에 똑딱이 디카를 얹어놓고 찍은 탓에 그런대로 괜찮게 나왔다. 부다왕궁에서 세체니 다리의 전경을 찍은 야경사진을 하나 빌려와 올린다. 2. 겔레르트(Gellert) 언덕
부다페스트에서 하룻밤을 보낸 호텔...
호텔 뷔페식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도착한 겔레르트(Gellert) 언덕... 겔레르트 언덕은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높은 곳인 부다지구의 높이 235m 언덕이다 언덕 이름은 이 언덕에서 순교한 이탈리아 선교사 '겔레르트'의 이름에서 유래되었으며, 언덕 중턱에는 겔레르트를 기념하기 위한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산 중턱의 기념비가 있는 곳은 가보지 못함) 이 언덕에는 1944년 나치의 점령으로부터 헝가리를 해방시켜 준 소련군의 해방기념탑이 세워져 있으며, 부다페스트 시내와 도나우 강이 어우러져 빚어내는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하기에 좋은 장소의 하나이기도 하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은 마녀의 소굴이었다고 하며, 1900년대 초 만 해도 술집과 매춘굴, 도박장이 가득했으나
아름다운 도나우 강을 중심으로, 강 왼편의 부다지구에 있는 왕궁언덕이 가까이 보이고, 강건너 페스트 지역의 국회의사당과 성 이슈트반 대성당의 돔을 비롯한 구시가지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지난 밤에 야간 투어를 했던 세체니 다리를 줌으로 당겨찍었다.
이곳 겔레르트 언덕 관광을 마친 후, 다음 관광지인 부다왕궁도 줌으로 당겨찍었다.
해방기념탑 쪽으로 올라가는 길에 보이는 치타델라 요새... 이 요새는 합스부르크 왕가가 헝가리를 감시할 목적으로 1851년에 세웠다고 하는데 벽면에는 2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에 저항하다가 파괴된 총탄의 흔적이 아직도 그대로 있다.
2차 대전때 나치로부터 해방시켜준 소련군을 위해 세워진 해방기념탑... 부다페스트 시내 어디서나 보인다고 하며, 일명 헝가리 자유의 여신상이라고도 부르기도 한다고... 이 탑은 14m 높이로 모스크바 쪽을 향하고 있으며, 탑 위에는 종려나무를 높이 들고 있는 여신상이 있다 기념탑 아래에는 원래 두명의 소련군 동상이 있었는데, 1989년 동유럽 자유화 이후 억압의 상징이었던 소련군 동상들은 치워졌다고 한다.
기념탑 언덕에서 바라본, 다뉴브강 상류 풍경...
3. 부다 왕궁
버스에서 내려 부다왕궁이 있는 쪽으로 가면서...
부다왕궁은 13세기에 벨라4세가 몽고의 침입 이후 높은 언덕 부다에 최초로 건립한 왕궁으로, 17세기에는 합스부르크 제국에 의해 현재의 크기로 개축되어 졌으며 오늘날의 부다왕궁의 이미지는 대대적인 보수를 거쳐 1905년에 단장된 것이다.
정원의 공터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파괴된 곳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유물이 발견되어 사적지로 보호하는 곳...
들어왔던 방향으로 뒤돌아보며...
부다왕궁으로 들어가는 문... 부다왕궁 문 왼쪽에는 마자르족 전설의 새인 투룰이 있으며, 머리는 용, 몸은 독수리로 칼을 잡고 있다 세체니 다리에 이어, 이곳에서도 KBS드라마 '아이리스'가 촬영되었다고 한다.
왕궁 성벽에서 내려다본, 세체니 다리...
왕궁으로 내려가며... 왕궁 내부에는 역사박물관, 국립미술관, 국립도서관 등이 마련되어 있지만, 들어가보지는 못했다.
부다왕궁 정면 모습...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왕궁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며 현재의 모습은 1950년대에 완성된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파괴된 것을 복구하면서 수많은 유물들이 발굴되었고 이 유물들은 역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왕궁 안쪽 광장으로 들어가며... 이하 내부 광장 풍경이다.
증명사진 하나 남기고...
부다왕궁을 한바퀴 돌고 나와서, 멀리 첨탑이 보이는 마챠시 성당으로 향한다.
4. 마챠시(Matyas) 성당
마챠시 성당 쪽으로 걸어가면서...
오른쪽으로 우뚝 솟은 마챠시 성당이 보이고, 왼편 광장에 삼위일체탑이 보인다. 역대 왕들의 대관식이 거행되었던 마챠시 성당이 웅장하다
광장의 삼위일체상을 배경으로 증명사진 하나 남기고... 삼위일체상은 페스트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여 세웠다고 한다.
성당은 오스만투르크족(지금의 터키)가 지배하는 동안 모스크 양식으로 변했다가 투르크족이 물러난 뒤 다시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축되었으며, 화려한 색깔의 모자이크 지붕은 성당의 모습을 한층 더 돋보이게 해준다.
마챠시 성당은 비엔나의 성 슈테판 대성당을 떠올리게 하는데, 이는 대성당 지붕과 같은 건축술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오른쪽에 보이는 힐튼호텔 앞 거리 풍경이다. 동유럽을 여행하는 동안 여름을 잊게하는 선선한 날씨였으며, 이곳 나무에는 가을빛이 물들고 있다.
5. 어부의 요새(Fishermen's Bastion)
어부의 요새로 내려가면서... 왼쪽에 살짝 보이는 건물이 마챠시 성당 외벽이다.
어부의 요새... 앞쪽 성벽 전망대에는 입장권을 사야만 올라갈 수 있다. 광장에는 헝가리 최초의 국왕인 성 이슈트반 기마상이 있으며, 헝가리에 그리스도를 전파하는데에 힘을 쓴 국왕이다.
옛날에 어시장이 있던 곳이기 때문이라는 설과 18세기에 어부들이 성벽에서 적군을 방어했다는 설이다
성벽에서 내려다본 다뉴브강 풍경...
성벽 모습과 이곳 요새로 올라오는 입구 계단...
요새 안쪽 풍경...
반대편 탑에서 바라본 성벽 모습... 오른쪽에 마챠시 성당이 살짝 보인다.
성벽에서 바라본 다뉴브 강 하류 방향 풍경... 부다왕궁 너머로 멀리 겔레르트 언덕도 살짝 보인다.
다뉴브강 상류 방향 풍경... 6. 성 이슈트반 대성당 (St. Istvan Bazilika)
버스로 이동해 도착한, 부다페스트 최대의 성당인 성 이슈트반 대성당... 헝가리 건국 1천년을 기념하여, 최초의 헝가리 국왕이며 헝가리에 가톨릭을 처음으로 도입하여 국교로 정한,
성 이슈트반 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성당이다. 성 이슈트반 왕은 1083년 성인으로 추대되었다. 성당 입구 문 위에 적힌 라틴어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라고 한다. 성 이슈트반 대성당은 1851년부터 50년간 공사기간을 거쳐 1905년에 완공했다 성당 내부로 들어가려면, 입장료 비슷한 형식으로, 1유로(또는 1달러) 정도 입구의 헌금함에 넣어야 한다. 이하, 성당 내부 모습...
제단 중앙에는 그리스도가 아닌, 성 이슈트반의 조각상이 놓여 있다.
오른쪽 제단 모습...
왼쪽 제단 모습...
성 이슈트반 대성당을 나가면서 바라본, 대성당 앞 광장...
성 이슈트반 대성당을 배경으로 증명사진 하나 남기고...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잘 한다는 한국음식점에 가서 점심식사... 비가 내리는 중... 이날 9개의 한국인 관광팀이 예약되어 있어, 30분 쯤 기다리다가 얼른 식사를 하고 나왔다. 맛은 괜찮았다.
7. 영웅광장(Hosok tere)
버스에서 내려 도로 건너 영웅광장으로 들어가며...
영웅광장은 1896년 헝가리 건국 1000년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광장이다
원주 양 옆의 열주에는 헝가리 왕의 동상들이 쭉 늘어서 있어, 헝가리의 역사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비가 조금씩 내리는 가운데, 증명사진 하나 남긴다.
영웅광장 정면 왼쪽에 위치한 헝가리 국립박물관...
영웅광장 정면 오른쪽에 위치한 헝가리 국립미술관... 그 앞에 우리 전세버스가 서있다.
부타페스트에서의 관광을 마치고, 슬로바키아의 타트라 국립공원에 위치한 호텔로 향한다. 구름으로 덮힌 사진 풍경은, 버스에서 바라본 알프스 산맥 중에 하나인 타트라산맥 풍경... 1, 슬로바키아의 호텔 주변 풍경
하룻밤 묵었던 슬로바키아(Slovakia)의 Kolowarat Hotel 모습이다. 호텔은 동유럽의 알프스라 불리는 타트라산맥에 위치해 있다. 슬로바키아는 2차 세계대전 후 체코와 통일국가를 형성하였으나, 1993년에 분리되었다
호텔 안에서 바라본, 타트라산맥의 일부인 구름 덮힌 산 풍경...
호텔 뒷편 정원에서...
호텔 뒷편 정원 풍경... 호텔 주변을 30분 정도 아침 산책... 2, 슬로바키아에서 폴란드로 가는 도로 주변 풍경
슬로바키아의 호텔을 출발해 폴란드 비엘리츠카로 4시간 정도 가는 도중에 버스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달리는 버스 속에서 찍은 사진이라 선명도는 떨어지지만... 이하, 풍경에 대한 설명은 생략...
기사의 휴식을 위해, 도중에 들린 휴게소의 풍경... 유럽버스(LDC) 운행 규정은 기사가 2시간 운전하면 15분간, 다시 2시간을 추가 운전하면 30분간 휴식이 주어진다. 버스의 타코메타를 불시검문으로 확인하기 때문에 편법이 어려우며, 어기면 바람이 빠져 운전이 불가능하게 된다고...
폴란드 크라카우에 도착하면서, 다리 위 버스 속에서 바라본 바벨성... 점심식사를 한 후, 먼저 비엘리츠카 소금광산을 관람하고 되돌아와 바벨성 겉모습만 구경할 예정...
폴란드에 도착, 현지식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3, 비엘리츠카(Wieliczka) 소금광산
소금광산을 구경하기 위해 줄서있는 일반 관광객들... 소금광산 입장권을 우측상단에 덧붙였다. 우리는 사전에 예약된 단체관광객이라 그런지 폴란드인 현장가이드가 동행해서 줄을 서지 않고 구경할 수 있었다. 이곳 소금광산을 관광하기 위해서는 이곳을 전문적으로 안내하는 현장가이드와 동행해야 하며, 소금광산 가이드는 이곳 비엘리츠카 소금광산에서 일했던 광부들만이 자격이 있다고 한다. 700년 역사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소금광산은 내부장식물이 모두 소금(암염)으로 만들어져 있다. 소금광산은 본래 바다였으나 물이 증발한 후 소금만 남아 암염이 되기까지 약 1만5천년이 걸렸으며, 200만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추측되는데 東西로 약 10Km에 이르고 두께는 약 500m에서 1.5Km에 달한다고 한다. 13세기 경 소금을 채취하기 시작해 1996년까지 이어졌고, 지금은 채굴을 중단한 채 관광지로 활용되고 있다.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서면서 관람이 시작되는데 사진촬영을 위해서는 3유로를 지불하고 인증 스티커를 발부받아 카메라 등 잘 보이는 곳에 부착해야 한다. 계단 틈으로 보듯이 나무계단을 한참이나 내려간다. 지하 65m까지 내려가는 동안, 378개의 나무계단이 있다.
마지막 54번 숫자가 적힌 층의 나무계단을 내려오면, 꾸불꾸불한 갱도를 따라 지하 130m까지 약 2.5Km를 걸어서 관광한다. 약 300Km에 이르는 소금광산의 갱도는 3Km 정도만 관광객들에게 공개되고 있으며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곳곳을 통나무로 보강해 놓았는데 미로와 같은 갱도를 독자적으로 관람하던 관광객이 길을 잃고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이후로 관광객은 반드시 가이드의 안내를 받아야 관람이 가능하다.
처음으로 맞이하게 되는,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 소금 조각상... 1493년 근처 크라카우에서 공부했던 코페르니쿠스가 이 곳 소금광산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여, 광부들이 그의 탄생 500주년인 1973년에 둥근 지구를 손에 든 코페르니쿠스 소금 조각상을 세웠다고 한다.
이 소금광산과 관련된, 킹가 공주 전설의 한 장면을 소금조각으로 보여주고 있다. 비엘리츠카 소금광산의 전설이 얽힌 킹가 공주에 대한 전설을 조각으로 만들어 놓은 방이다. 헝가리 벨라4세의 딸인 킹가 공주는 폴란드의 브로츠와프 왕과 결혼하게 되었을 때 ‘폴란드는 부유한 나라지만 소금이 없으며, 헝가리에는 소금이 부족하지 않으니 광산을 하나 달라’고 아버지에게 간청하자, 왕은 ‘마라무레’라는 광산을 결혼 지참 항목에 포함시켰다. 폴란드로 떠나기 전날 밤 특수한 능력이 있는 킹가는 그 소금광산에 가서 주문을 외우며 예물로 받은 약혼반지를 구덩이 속에 던지고 출발하였다. 공주의 행렬이 비엘리츠카에 이르렀을 때 영감을 얻은 공주가 행렬을 멈추고 그곳을 파보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곳에서 헝가리에서 묻었던 반지와 소금 덩어리들이 나왔다고 한다. 더 깊이 파들어 갈수록 많은 소금이 나왔는데, 그것은 폴란드의 모든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양이었다. 소금이 귀했던 이 지역 사람들은 킹가 공주를 마을의 수호천사로 받들게 되었다고 한다.
광산내에서 작업중에 발생되는 메탄가스를 횟불로 태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모형들이다. 1740년 버팀목에 불이 붙으면서 화재가 발생하여, 천정이 그을린 방이다. 이 소금광산에는 몇 번의 큰 화재가 있었는데, 그 중 가장 큰 화재는 1644년에 일어났으며, 여러 달 동안 계속된 이 화재로 많은 사람들과 말이 죽었다. 지하의 또 다른 위험은 바위틈에서 새어나오는 메탄가스로, 5~14%의 메탄가스는 공기와 접촉하면 폭발한다. 그래서 광산에는 가스를 태워버리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긴 막대기 끝에 불을 붙여 가스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 구석에 기어들어가 불을 붙이는 위험한 일을 했다. 이후, 광부들이 암염을 생산하고 운반하던 모습 등 여러가지 모형 전시물들이 있었다.
갱도 벽에는 소금꽃이 하얗게 피어 있다. 말은 소금을 운반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어렸을 때 이곳에 들어와 소금을 밖으로 운반하는데 이용되며,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해 눈이 멀고 끝내 죽어 간다고 하며, 갱도에서 일생을 마친 말을 박제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말들의 수명은 밖에서 사는 말들에 비해 평균 수명이 훨씬 길었다고 한다.
말을 이용해 소금을 밖으로 올려보내는 기구들의 모형도 전시되어 있다.
폴란드를 건국한 왕의 소금 조각상 앞에서 증명사진 하나 남기고...
지하 갱도를 따라 점점 깊이 내려간다.
벽과 천정이 온통 암염으로 이루어져 있다.
요정들의 방이다. 전설에 의하면 오래 전부터 이 광산에 귀중한 소금을 지켜주는 요정이 산다고 여겼으며, 물로부터 소금을 보호하고 광부들에게 소금광맥이 있는 바위에 그림을 그려서 위험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요정의 우두머리는 ‘하얀 손(White Hand)'으로 그녀는 아름다운 크리스탈 소금이 가득한 방에서 사는데, 절대로 늙지 않는다. 그래서 소금은 음식을 오랫동안 보존하는 것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외에도 광부들에 의해 만들어진 소금 조각상들이 곳곳에 만들어져 있었다.
성모마리아와 예수님의 소금 조각상...
소금광산 안에 유일하게 나무로 만들어진 예수 조각상이다.
약 1시간 갱도 관광을 하며 내려가자, 지하 110m 위치에 킹가 대성당이 나타났다. 소금광산 관람의 클라이막스인 킹카대성당은 길이 54m에 폭 17m, 높이 12m로, 1896년 부터 만들기 시작해 약 70년의 작업 끝에 1963년 완공되었는데 예술가가 아닌 광부들이 소금을 캐내며 쉬는 시간을 이용해 틈틈이 조각한 작품으로, 킹카대성당 벽면에 가득하고, 샹들리에를 장식하고 있는 크리스탈도 암염을 조각해 만들었다고 한다. 맨 처음 광부였던 '요셉 마르코브스키'가 암염으로 조각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그후 광부이면서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10살 아래의 동생 ‘토마스 마르코브스키’가 이 성당을 만드는데 동참했다. 형 요셉이 4년에 걸쳐 만든 주제단과 인물은 성모 마리아가 아닌 성녀 킹가였는데 반투명한 암염으로 만들었다. 1920년 형이 세상을 뜨자 동생 토마스는 벽에 소금으로 예수의 일대기를 조각하기로 하고 작업을 진행하던 중 1927년 토마스 마져 죽게 되어 작업이 일시 중단 되었다. 다음에 이어받은 광부인 '안톤 비로데크'는 1935년 마침내 최고의 걸작인 '최후의 만찬'을 만들어 낸다.
킹가 대성당 내부 벽면에는 예수님 일대기를 묘사한 소금 조각상들이 있다.
성당 정면 제단 풍경... 제단에는 성모 마리아가 아닌 성녀 킹가가 조각되어 있다.
대성당의 최고 작품이라는 '최후의 만찬'은 불과 2~3Cm 깊이로 조각하여 원근감을 완벽하게 묘사했다고...
이곳의 소금조각품 중에 유일하게 광부가 아닌 예술가에 의해 만들어진 요한바오로 2세 조각상이다. 폴란드 출신 교황 요한바오르 2세 조각상은 3명의 광부가 이어가며 조각하여 1999년에 완성되었으며, 이들 3명의 이름이 옆에 있는 벽에 붙어 있고, 그중 1명은 지금도 생존해 있다고 한다.
킹가 대성당을 지나자, 소금광산 내에 있는 연못... 연못 바닥에는 던진 동전이 많이 있었다.
광산 내부에 있는 커다란 광장의 붕괴를 예방하기 위한 나무 구조물(?)...
커피나 음료수, 기념엽서나 기념품 등을 판매하는 작은 가게도 있었다.
독일의 철학자이자 과학자이며 한때에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재상이었던, 괴테의 조각상...
소금성분 지하수가 모여 형성된 깊이 7m의 지하 연못... 일명 쇼팽의 방이다. 어두워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작은 연못 주변 난간으로 일행 모두들 빙 둘러서니 한 줄기 조명 속에서 4분 정도에 걸쳐 피아노 곡이 흘러 나왔다. 곡명은 쇼팽의 '이별의 곡'...
1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군 최고사령관이자 독립의 아버지, 대통령이었던 피우수드스키(Josef Pilsudski)의 조각상...
지하 130m에 위치한 또다른 연못...
다시 갱도를 지나자, 엄청 넓은 광장 동굴(?)에는 기념품 판매점을 비롯해 카페, 레스토랑 등이 있었다.
지상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트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일반관광객... 역시 현장가이드와 동행하는 단체 관광객 그룹이라 그런지, 별도 빠른 코스로 이동했다.
또다른 작은 예배당 앞을 지나고...
관람을 마치고 승강기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관광객들... 상하 2대의 승강기는 130 여m를 고속으로 운행되는데, 약 40초만에 지상으로 올라간다.
엘리베이트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가면서 소금광산 관광을 마친다. 4. 크라카우(Krakau)의 바벨(wawel)성
비엘리츠카의 소금광산 관광후, 버스로 약40분 거리의 크라카우로 돌아와 바벨성 겉모습 구경중... '크라카우'는 독일어 이름이고, '폴란드어로'는 크라쿠프... 크라카우는 아이러니하게도 독일군사령부가 있었던 덕에 세계 대전의 참화를 피할 수 있었다. 그래서 폴란드 왕국의 수도 시절에 만들어진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할 수 있게 되었으며, 그 덕에 크라카우는 거의 대부분 지역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많은 여행자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비가 많이 내려 우산 속에 증명사진 하나 남기고, 걸어서 크라카우 중앙광장 관광으로 향했다.
크라카우의 중앙광장 관광후 되돌아와, 비가 그친 상태에서 찍은 바벨성 풍경이다. 바벨성은 크라카우 남쪽 비스와강의 상류 둔치에 있다. 로마네스크·고딕·르네상스·바로크 등 다양한 양식이 혼합된 건축물로, 1000년 크라쿠프 주교에 의해 건설되었다 11세기 중반부터 17세기 초까지 폴란드 통치자들의 거주지로 사용되었고, 특히 르네상스 양식의 성격이 강하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성 외에 바벨 대성당과 주변 건물들, 커다란 정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바벨성 옆으로 흐르는 비스와강 하류 쪽 강변 풍경...
비스와강 상류 쪽 강변 풍경... 슬로바키아에서 버스를 타고 맞은편 다리를 건너 왔었다.
중앙광장으로 가던 중에 들렀던 폴란드 특산품인 호박 공예품점... 암튼,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쇼핑 시간이다. 이 시간에 바벨성 내부관광이나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바벨성에는 바벨성 뿐만아니라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봉직했던 '바벨성당'과 주변 정원들이 아름답다던데...
중앙광장으로 가는 길은 이런 공원을 가로질러 간다. 5. 크라카우(Krakau)의 중앙(시장)광장
중앙(시장)광장에 도착했다. 중앙광장은 유럽에서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광장 다음으로 큰 광장이라고 한다. 맞은편 건물이 중앙광장 가운데 위치한 직물회관인데, 14세기에 지어졌다고 한다. 그 당시는 옷과 천을 교역했으나, 지금은 1층에 각종 목공예품과 액세사리 등을 파는 기념품 가게가 있고, 2층에는 폴란드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가 있다.
중앙광장 왼편에 보이는 시계탑 건물은 원래는 구시청사였는데 모두 부숴지고 시계탑만 남아 있다.
직물회관 오른쪽의 넓은 광장 풍경으로, 트랜드마크인 성 마리아 성당이 보인다.
광장 중앙에 세워져 있는 동상은 폴란드 국민시인으로 존경받는 '아담 미츠키에비치'라고 한다. 뒷편 건물은 직물회관의 오른쪽 옆 모습이고, 건물 왼편 위쪽에 구시청사의 시계탑도 보인다.
무슨 행사가 열리는 모양인데, 퇴역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말을 타고 광장을 지난다.
그 뒤를 따르는 노병(?)들...
그리고, 옛 크라카우 귀족들의 저택이 있는 거리로 빠져 나간다.
성 마리아 성당의 전경으로, 1222년 세워진 고딕양식의 건축물이다. 몽고군 침입 당시에는 적군의 습격을 알리는 감시탑 역할을 했다고 한다. 돌아와서보니, 성당 내의 각종 장식물들은 폴란드 국보로 대부분 지정되어 있을 만큼 뛰어난 가치를 지녔다는데, 성당 내부 구경은 못했다. 뭘 알아야 제대로 구경을 하지... 역시 사전준비에 가이드의 역활이 중요하다.
광장에는 비들기들이 많다. 비둘기는 쫓는 애들의 모습이 귀엽다!
지나가는 수녀님의 웃는 모습도 보기좋아 한 장 더...
구시청사 시계탑의 반대쪽 풍경이다. 왼편 건물이 직물회관...
광장의 우물펌프를 사용해보는 어린이 모습...
마차를 타고 관광하는 사람들도 있고...
성 마리아 성당을 배경으로 증명사진 하나 남긴다.
중앙광장 주변의 거리 카페...
중앙광장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나가, 사진 속의 공원 근처 식당으로 가서 현지식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전용버스가 있는 곳으로 가는 길가 철망 너머로 또 바벨성이 보인다. 이날 멀리서 바벨성 겉모습만 4번이나 구경하게 되는 셈이다. 뭘 알았으면, 가자고 우겼을텐데... 쩝!
크라카우에서 하룻밤 묵게 된 Hotel Krakow 전경... 이상으로, 동유럽 여행 4편 후기를 마치며, 혹 폴란드 크라카우를 여행할 예정인 분이 있다면, 오늘 소개 못한 바벨성 내부와 주변, 그리고 중앙광장의 성 마리아 성당 내부를 구경하라고 권하고 싶다. 끝으로, 폴란드 여행을 하면 천국과 지옥을 오가게 된다고 하는데, 천국은 오늘 다녀온 비엘리츠카의 소금광산이고, 지옥은 내일 방문할 오쉬비엥침의 아우슈비츠다. 1, 폴란드 오쉬비엥침 (아우슈비츠)
크라카우의 호텔에서 뷔페식 아침식사를 마치고 1시간반 거리에 있는 오쉬비엥침에 도착... 오쉬비엥침은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에는 독일 영토로 아우슈비츠(Auschwitz)라고 불렀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난 후, 독일 동부지역의 아우슈비츠는 폴란드 영토로 바뀌었으며, 이름 역시 오쉬비엥침(O'swiecim, 즐거운 마을이라는 뜻)으로 바뀌게 되었다. 오쉬비엥침에는 독일 최대의 강제수용소이자 집단학살수용소인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있었던 곳으로, 1945년 1월까지 이 수용소에서만 110만 명의 유태인과 14~15만 명의 폴란드인, 2만3천 명의 집시, 만5천 명의 소련군 포로, 2만5천 명의 다른 민족 죄수들이 학살되었는데, 대부분 유태인임을 알 수 있다.
관리소에 들러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들을 수 있는 무선 헤드폰을 받고 수용소 정문으로 향한다.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이며 인류역사상 가장 잔인한 방법으로 유대인들을 집단 살해했던 역사의 현장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촬영지가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정문 간판에는 독일어로 "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구호가 걸려있다. 철문에 붙어있는 'ARBEIT MACHT FREI' 라는 글자에도 유대인들의 처절한 저항의 표시가 있다. 원래 B자는 위가 작고 아래가 크지만, 이곳에 붙어있는 B자는 반대로 위가 크고 아래가 작게 붙어있는데, 그것은 유대인들이 저항의 표시로 일부러 거꾸로 B자를 붙였다고 한다 . 이 입구 간판은 사실 복제품이라고 한다. 원본은 지난 2009년에 도난을 당한 뒤 훼손된 채 발견되었으며, 1년6개월의 복구작업 끝에 제모습을 되찾은 간판은 새로 지어질 수용소 박물관에 전시될 예정이라고 한다.
붉은 벽돌건물로 지어진 제1수용소... 전체 28개 동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현재는 박물관과 전시관으로 꾸며져 있다.
먼저 제4호 막사의 전시관으로 들어간다. 이곳에는 끌려오는 사람들의 사진과 희생된 사람들이 몸에 지니고 있던 유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전시관을 들어서자,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 자들은 과거의 잘못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라는 글이 있고, 이어 유골함이 놓여져 있었다. 1940년 6월에 정치범 수용소를 시작으로 1942년부터 유대인 대학살이 시작되었다.
전시관에는 차례를 기다리며 그룹으로 이어지는 관람객들로 가득하다. 좌측하단에 마이크를 들고있는 우리 현지가이드 모습이 살짝... (인터넷에 올리지 말라고 했는데...) 우측 테이블에는 수용소 입소부터 착취, 작업, 생활, 처벌, 죽음 등에 관한 당시의 문서들이 전시되어 있다.
도처에서 끌려오는 유대인들의 모습... 이외에도 여러 종류의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어린애들을 포함한 가족들이 영문도 모르는 채 끌려오고...
가스실과 화장장의 모형이 있었고, 이어 유대인들을 살상했던 가스통... 치클론(Cyklon) B라는 독가스 한통으로 약 400명을 살상할 수 있다고 한다.
가스실로 끌려갔던 사람들의 안경을 모아놓은 더미...
노동력이 없는 장애인들이 가장 먼저 죽임을 당했으며, 그들이 착용했던 의족,의수,목발 등을 전시해 놓은 것...
가스실로 끌려갔던 사람들의 신발을 모아놓은 더미... 이외에도 죽은 사람의 머리카락과 그 머리카락으로 짠 모포를 비롯해, 가죽가방이나 머리빗 더미, 어린애들의 옷과 신발, 구두약통 등 여러가지 전시물이 있었다. 그들의 유품들에서 볼 수 있듯이 이곳에 수용된 당시의 유태인들은 부유한 인텔리 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안전한 곳으로 이주시켜 준다는 나치의 말을 믿고 중요한 현금과 귀중품만 가지고 가족과 함께 도착한 곳이 바로 이곳 아우슈비츠 수용소였으며, 샤워를 하고 난 후에 자신들의 귀중품을 돌려 받는 다는 말을 믿고 가방에는 커다랗게 자신의 이름이나 표시를 해 두었다고 한다. 결국 머리카락까지 전쟁 군수물자로 이용되고 정작 본인들은 강제 노동이나, 노동력이 없는 사람들은 곧바로 가스실로 끌려가 죽음을 맞이했다.
이 수용소에 수용되었던 사람들 사진이 벽면 가득히 걸려있다. 사진 아래의 수용기간을 보면 불과 2,3년간이고 나중에 도착한 사람일수록 그 기간이 점점 짧아진다. 나치는 이 전쟁의 패배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모든 사실을 자랑스럽게 기록해 두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구출된 체중 23~35kg의 여성 수용자의 모습... 가스실 다음의 사망 원인은 굶주림이었으며, 살아남은 어린이에게 영양식을 먹이자 며칠새로 몸이 회복되었다고 한다.
독일군은 수용소내에서는 여러 생체실험을 자행했으며, 남녀 단종실험(성기절단실험)을 비롯해 쌍둥이나 장애인을 이용한 잔인한 실험도 있었다.
전시관 관람 마치고 나오자, 좀 넓은 공터에는 3개의 기둥을 철봉처럼 연결해 놓은 곳이 있었다. 탈출자가 있을 때 수용자를 모아놓고 동료 수용자나 탈출을 도와준 지역주민을 교수형에 처했던 자리라고 한다
수용자들의 탈출을 막기 위한 고압선 울타리들이 수용소를 감싸고 있다. 가스실로 가던 수용자 중에는 가스실의 고통스러운 죽음이 두려워 고압선에 몸을 던져 자살한 사람도 있다고.
가스실 옆에 있는 이 교수대는 이곳 수용소 소장을 지낸 '루돌프 헤스'를 처형한 교수대라고 한다. 전쟁이 끝난 뒤 달아난 수용소 소장을 붙잡아 와서는, 특별히 만든 이 교수대에서 처형을 했다고 한다.
사진은 한번 들어가면 한줌의 재가되어서야 나올 수 있는 악명높은 아우슈비츠 가스실 옆모습으로, 한번에 약 200명의 사람들이 샤워하라는 독일군의 말에 속아 들어갔다가 영문도 모르는 채 죽임을 당한 곳이다. 빨간 굴뚝은 처음에 없었으나 너무 많은 사람을 화장하다 보니, 그 연기를 감당할 수 없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학살당한 대부분의 피해자들은 노동력이 없는 노인과 여성,그리고 어린이들이었는데, 수용소 도착즉시 선별되어 이곳 가스실로 보내졌다고 한다. 사람들이 죽어가는 고통으로 가스실 벽을 손가락으로 긁어, 벽에는 끍힌 자국이 선명하게 나있었다 "그곳에 들어가면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습니다. 모두들 어찌할 바를 모르며 손톱으로 벽을 긁으며 가스에 질식할 때까지 울부짖었습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 모습이 떠오릅니다, 아이를 품에 안고 서있던 어머니들의 마지막 모습이..."- 다리오 감바이, 아우슈비츠 수감자, 유대인 -
가스실 바로 옆에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시체 화장장이다 . 독일군들은 시체를 옮기는 수고를 덜기 위해 가스실 바로 옆에 호장장을 만들었는데, 하루에 1,500~2,000구의 시신을 화장했다고 하니 그 규모와 만행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천정과 벽 전체가 시체에서 나온 기름으로 쩔어 검은색으로 변색되어 있다
관람을 마치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말없이 주차장을 향하며... 이외에도 '총살의 벽'과 '수용자들의 생활 공간' 등도 있었는데, 현지 가이드가 빠뜨렸는지 가보지 못했다. 그리고, 3km 정도 떨어진 위치에 있다는 아우슈비츠 제2수용소도 못가본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7년 폴란드 의회는 벽돌 건물 28동이 남아 있는 제1수용소를 영구보존키로 결의하고 현재 박물관과 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나치의 잔악행위를 잊지 않기 위해서 유네스코는 1979년 아우슈비츠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2, 폴란드 오쉬비엥침에서 체코로 가는 길에...
아우슈비츠 수용소 관람을 마치고, 점심식사를 위해 들렀던 식당... 현지식 식사는 맛이 별로... 아우슈비츠 수용소 관람 때문에 밥맛이 떨어져서 그런지...
이하, 폴란드 오쉬비엥침에서 체코의 프라하로 가는 길의 풍경사진 몇 장...
도중에 들렀던 체코의 한 휴게소 풍경... 세계 어디서나 보이는 맥도날드는 이곳에서도 만난다.
3, 체코 프라하(Praha) 시내 풍경...
폴란드의 오쉬비엥침(아우슈비츠)에서 전용버스로 6시간 넘게 걸려 도착한 체코 프라하... 이하 사진은 프라하의 중심인 구 시가지 광장으로 걸어가는 길에 찍은 풍경으로 설명 생략...
4. 프라하(Praha) 구 시가지 광장 (Staromestske nameti)
구 시가지 광장으로 들어선다. 프라하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구시가지 광장은 11세기 경 독일, 프랑스 등 인접국과의 교역이 성행하자 교회나 상인들의 주거지가 들어서면서 발전된 지역으로, 이 광장은 체코의 수많은 아픔을 간직한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체코 종교개혁자 얀 후스가 화형에 처해지기도 하였으며, 합스부르크 왕가에 의해 27명의 체코 프로테스탄트 귀족들이 처형된 장소이기도 하다. 광장 주변에는 구시청사와 천문시계, 얀 후스 동상, 틴 성당, 니콜라스 성당 등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등 프라하 역사에 등장했던 여러 양식의 건축물들이 모여 있어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구시가지 광장은 언제나 여행객들로 가득하다.
구 시가지 광장 왼편에는 유명한 천문시계가 있는 구 시청사가 보이고...전형적인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구 시청사 건물은 벽에 달려 있는 천문시계로 유명하다.
광장 옆 쓰레기통에 기대어 쉬고 있는 여행객(?)...
먼저 저녁식사를 위해 근처의 한인식당으로 향한다.
태극기가 걸려있는 'KOBA'라는 한인식당... 괜찮은 된장찌개로 고국의 맛을 즐겼다.
다시 구 시가지 광장으로 되돌아왔다. 섬머타임 때문인지 저녁 8시가 넘었는데도 광장 주변은 별로 어둡지 않다.
구 시가지 도심가는 귀중한 중세기 기독교문화재로 199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광장을 한 바퀴 돌면 로마네스크에서 아르누보 양식에 이르는 모든 건축양식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고 하여 시인 '릴케'는 프라하를 '건축의 도시'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광장 옆 틴 성당(Tyn Cathedral)을 배경으로 한 풍경이다. 구 시청사 맞은편에 있는 프라하를 대표하는 틴 성당은 1365년 지어진 후 17세기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건축양식이 추가되면서 증축되었다. 정교하면서도 화려한 외관은 고딕양식으로, 80m 높이인 2개의 첨탑은 시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이 성당의 상징이 되고 있는 데, 성배(聖杯)를 녹여서 만들었다는 황금 첨탑의 성모마리아 상이 유명하다. 성당 내부에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상이 고딕양식으로 조각되어 있고, 백랍으로 만든 세례받침도 유명하다. 교회 옆에 있는 건물은 틴 학교로, 고딕양식의 아케이드와 르네상스 양식의 아름다운 장식을 가진 지붕이 있다. 틴 성당의 첨탑 중앙에, 성배(聖杯)를 녹여서 만들었다는 황금 첨탑의 성모마리아 상이 보인다.
광장을 배경으로 증명사진 한 장... 광장 바닥에 자유분방하게 삼삼오오 어울려 앉거나 누워있는 관광객들의 모습이 평화롭다.
광장 서쪽의 '미쿨라스(Mikulase) 성당' 방향 풍경이다. 니콜라스 성당이라고도 하는 미쿨라스 성당은 하얀색 벽에 옥색 지붕의 돔이눈길을 끄는 바로크 양식의 건물이다. 12세기에 처음으로 지어진 후, 합스부르크 왕가에 의해 1732년부터 4년간의 공사 끝에 지금 모습으로 다시 지어졌다. 틴 성당이 지어지기 전까지는 구 시가지 지역의 중심 성당이었으며 1868년부터는 러시아 정교회로 사용되기도 했다. 성당 내부에는 러시아 왕관 모양의 대형 크리스탈 샹들리에가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보헤미아 크리스탈로 만든 이 샹들리에는 무게가 1,400kg이나 된다.
구 시가지 광장 한복판에는 종교개혁가이자 체코의 영웅으로 추앙받는 '얀 후스'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얀 후스의 동상의 주변은 많은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로 유명하다. 가톨릭의 개혁을 주장하며 싸우다 1415년 화형에 처해진 얀 후스(Jan Hus)의 동상은 만남의 장소로도 유명한 곳이다. 15세기 종교개혁의 선구자였던 그는 로마 가톨릭이 타락하자 프라하 대학에서 가톨릭은 썩었다고 선언하며 비판하자 콘스탄트 공회에 소환되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아 파문을 당하고 1415년 화형에 처해졌다. 이 동상은 그의 사망 5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1915년 7월 6일에 세워졌다. 이동상에는 승리를 거둔 후스파와 추방당하는 프로테스탄트 등 두 그룹의 사람들과 체코의 새로운 탄생을 상징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담겨져 있고, 그 중앙에 신념을 지키며 죽음으로 맞선 얀 후스의 당당한 모습이 세워져 있다. 그러나 이 동상의 얼굴이 얀 후스의 것은 아니라 한다. 그에 대한 사진이나 그림이 남겨지지 않아 동상의 얼굴은 체코인들이 생각하는 가장 성자다운 모습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동상 아래쪽에는 '진실을 사랑하고, 말하고, 지켜라'고 한 얀 후스의 유명한 말이 새겨져 있다. 구 시청사 옆 바닥에는 27개의 하얀 십자가가 새겨져 있다. 1620년 '빌라 호라 전투'에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에 패배한 체코의 지도자(귀족들) 27명을 1621년 이 광장에서 처형하고 그들의 머리를 놓아두었던 곳이라고 한다. 이 외에도 광장에는 그들이 처형 당한 장소의 십자가 표시와 처형 당한 날짜 등도 표시해 놓았다.
저녁 9시가 되자 광장 옆 구시청사의 천문시계 앞에는 관광객으로 가득하다.
저녁 9시가 되자 천문시계의 퍼모먼스가 시작되고... 이 천문시계는 1410년에 만들어졌다고 하니 무려 600년이 된 시계이다. 위쪽 시계는 천동설의 원리에 의해 만든 것으로, 두개의 원반이 함께 돌아가는데 해와 달, 그리고 천체를 표현한 것이다. 이 시계는 1년에 한 바퀴 돌면서 연, 월, 일, 시간을 나타낸다. 아래쪽의 원은 12개로 나누어진 사계절을 나타내 주며 하루에 한 눈금씩 움직인다. 이곳의 시계는 매시각 정시에 시간을 알려 주는데, 매시 정각 무렵이면 이것을 보려고 시계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든다. 09:00부터 21:00 사이에 매시 정각이 되면, 원반 위에 있는 천사의 조각상 양 옆에 있는 2개의 창문이 열리고, 종소리와 함께 그리스도 12제자가 천천히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이어서 시계 위에 있는 황금색 닭이 나와 울면서 시간을 알리는 것으로 끝난다.
5. 블타바강의 카를교(Karluv most)
9시 천문시계 퍼포먼스 구경을 마치고 카를교를 향해 걸어가면서...
카를교에 도착하자 사람들로 붐빈다. 영어로 챨스교(Charles Bridge)라고 불리는 카를교는 프라하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찾는 프라하의 관광 명소... 600여년 전 보헤미아 왕조의 카를 4세가 만들었다 하여 '카를교'라는 이름을 가진 이 다리는 프라하 시내를 가로질러 흐르는 블타바 강의 동서를 연결하고 있는데, 프라하에서는 물론 동유럽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돌다리라고 한다.
카를교에서 바라본 구 시가지쪽 풍경이다. 다음 날 낮에 다시 이곳 카를교를 관광할 예정이라 이하 간단히 야경만 소개한다.
카를교 건너 블타바강 하류쪽 야경... 프라하 시내를 관통하여 카를교 아래를 지나는 블타바(Vltava)강은 독일어로 몰다우( Moldau)강으로 불리며, 체코에서 가장 긴 강으로 430km에 이른다.
카를교에서 바라본, 강건너 프라하 성 방향 야경...
블타바강 상류쪽 야경...
카를교에서 프라하 성 방향으로 찍은 다리 풍경... 삼각대가 없어 다리 난간에 야경 노출로 찍다보니, 지나는 사람들이 유령처럼 보인다. 카를교의 양쪽 난간에는 바로크 시대에 만들어진 30개의 성인상(聖人像)이 세워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조각상들은 다리가 지어진 200여년 후인 17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중반까지 약 250년에 걸쳐 만들어진 것인데, 모두 성서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가치있는 작품은 라피다리움(Lapidárium) 국립박물관으로 옮겨졌고 현재의 조각상들은 대부분 복제품이라고 한다.
구 시가지쪽 다리 아래에 있는 노천카페에서는 라이브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건너왔던 구 시가지쪽에는 작은 광장이 있는데, 광장에는 이 다리를 만든 카를4세의 동상이 있다.
카를4세 동상이 있는 광장 옆 풍경...
프라하의 야경을 구경하고 밤 10시가 넘어 호텔에 투숙... 6. 구 시가시 광장의 한밤중 야경...
다시 찾은 밤11시20분의 구 시가지 광장의 한밤중 야경. 오스트리아에서 이곳까지 며칠간의 패키지 일정에 너무 충실한 일행들이 호텔에 머무는 동안, 일정을 벗어나 자유롭게 프라하의 밤거리를 즐기기 위해 마눌과 둘이서 호텔 리무진 택시를 타고 왔다.
구 시청사를 배경으로 증명사진도 남기고...
밤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 광장에는 아직까지 남아있는 사람들이 곳곳에 보인다.
구 시청사와 미쿨라스 성당 방향 야경...
광장 옆 노천 카페에서 맥주 한 잔 하면서... 거리쪽에는 밤 늦게까지 카페가 열려 있었다.
밤 12시30분 경, 푸른 빛을 띤 틴 성당 방향 풍경... 이제 광장도 점점 조용해지면서, 청소차가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다니는 광경도 보인다.
미쿨라스 성당 앞에서 예약했던 호텔 리무진택시를 기다리며... 그렇게 구 시가지 광장 주변의 한밤중 개별관광을 마치고, 밤 1시가 넘어 호텔에 도착... 1, 체코 프라하(Praha)의 아침
호텔에서 내려다본 체코 프라하의 아침 풍경이다. 인구 120만 명의 프라하는 '백탑의 도시', '뚜껑 없는 박물관', '알프스 이북의 로마', '유럽의 음악학원' 등으로 불릴 만큼 수많은 문화재와 아름다운 건축물이 가득하며,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손꼽히고 있다. '백탑(百塔)의 도시'라는 말은 시인 괴테가 한달간의 프라하 여행을 다녀와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하고, 19세기에 한 교수가 프라하에 있는 탑을 세어보니 103개라서, 이후 '백탑의 도시'라고 불렀다는 얘기도 있다.
어디가 어디인지 구분이 안되지만, 오른쪽에 솟아있는 철탑은 페트르진 전망탑이 분명한 것 같다.
프라하의 지도... 프라하 시 전체는 아니고 중심부의 역사지구만 보여주고 있다. 체코어로 표시된 여행 지도라서, 읽기가 어려워 아래에 간단한 개념도를 구해와서 올린다. 크게 휘어진 블타바(Vltava)강을 사이에 두고 서쪽 흐라드차니(성지구)와 말라 스트라나(소지구)가 위치해 있고, 동쪽으로는 구 시가지와 신 시가지 그리고 구 유태인 거주지역이었던 요제포프(Josefov)가 자리 잡고 있다. 오늘의 관광지는 프라하성~카를다리~구 시청사(천문시계) + 틴성당~바츨라프 광장으로 이어지며, 그리고 개념도에는 없지만, 국립박물관 우측 상단의 중앙역까지다. 이후 3시간반 거리의 '체스키 크롬로프'로 떠난다. 2, 프라하 성 (Prazsky Hrad)
프라하 성으로 들어가면서... 프라하 성(prazsky hrad)은 현존하는 전 세계의 중세 성 중에서 가장 큰 규모다 블타바 강(江) 맞은편 언덕 위에 자리한 길이 570m, 너비 128m 규모의 체코를 대표하는 국가적 상징물이며, 9세기(870년) 경에 건설되기 시작하여 카를 4세 때인 14세기에 지금과 비슷한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이후 여러 양식이 다시 가미되면서 18세기 말에야 현재 모습이 되면서, 시작부터 완성까지 900년이나 걸렸기에, 로마네스크양식에서부터 바로크양식까지 다양한 양식의 진수를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 할 수 있다.
입구 근위병 옆에서 증명사진 하나 남기고...
프라하 성 내부 제2정원 모습... 오른쪽으로 나가면 프라하 성 서쪽 정문이 있으며, 왼쪽으로 나가면 성 비투스 성당이 있다.
제2정원에 있는 궁전은 대통령의 관저로 사용되고 있으며, 오른쪽 커다란 분수는 코르분수라고 부른다. 맞은편 지붕 윗쪽에 체코 국기가 보이는데, 저렇게 국기가 걸려 있으면 현재 대통령이 집무중이라는 표시라고... 건물 최종 양식은 바로크 시대에 완성되었으며, 1918년 대통령 관저로 바뀌면서 내부장식과 정원이 새로 정비되었다.
교대식을 위해 근위병들이 지나가고, 건물 너머에 성 비투스 성당의 첨탑이 보인다.
프라하 성 서쪽 정문 앞 흐라드차니 광장으로 나갔다.
서쪽 정문 맞은편의 흐라드차니 광장 풍경으로, 사진 가운데의 붉은 지붕 건물이 투스카니궁이다. 그리고 왼쪽 흰 건물은 피렌체 양식의 슈바르첸 베르크 궁전으로, 지금은 군대 역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광장 오른쪽 대주교 궁 앞으로 지나가는 군악대(?)들의 모습을 담았다.
광장 가운데에 있는 페스트(흑사병) 탑...
흐라드차니 광장에서 바라본 프라하 성 서쪽 정문 방향 풍경... 프라하 성은 14세기 룩셈부르크가의 카를4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되면서 자신의 거처를 프라하로 정하고, 현재의 구 시가지에 해당하는 도시를 새롭게 정비하면서, 프라하 성의 새로운 입지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왕궁을 재건하고 성 비투스의 성당을 건축하기 시작하면서 이곳은 보헤미아 왕국의 상징물이 되었다. 그리고 15세기 말 폴란드 야기엘로 왕가 출신인 블라디슬라프 2세 때 지금의 구왕궁 건물이 후기 고딕 양식으로 만들어진다. 이후 1526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가 보헤미아를 지배 했을 때부터 르네상스적인 건축물이 들어서게 되었고, 프라하 성의 건축 양식의 완결은 바로크시대에 이루어졌다.
광장에 사람들이 많이 모인 이유는 10시 정각의 근위병 교대식을 보기 위한 것으로, 프라하 성의 각 정문 앞에서는 매시 정각이 되면 근위병들의 교대식 행사가 시행된다고 한다. 정문 상단의 동상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사진 왼쪽이 포세이돈 상이고 오른쪽이 헤라클레스 상이다.
광장 북쪽으로 보이는 프라하 시가지 풍경이다.
흐라드차니 광장 북쪽에서 바라본, 광장 주변 풍경... 오른쪽이 프라하 성 서쪽 정문이고, 왼쪽에 보이는 흰 건물이 영화 '아마데우스'의 촬영지였던 대주교 궁이다.
정문 옆에서 커다란 모자를 놓고 열심히 연주하고 있는 길거리 악사들...
다시 프라하 성 제2정원을 지나 도착한 성 비투스 성당의 정면 상단 모습... 상단에 보이는 둥근 '장미의 창' 스테인드 글라스에는 천지창조의 이야기가 묘사되어 있다고 하는데, 제대로 보이지는 않는다, 암튼, 외벽을 장식한 조각이 매우 정교하고, 건물 전체가 하나의 조각품처럼 보인다.
아래쪽 성당 정문이다. 현지 가이드가 우리 일행 안내용으로 들고 있는 태극기를 함께 찍었더니, 마치 우리나라 소유의 건물 같다! ^^* 프라하 성은 많은 건물들이 모여 하나의 타운을 이루고 있는데, 그 중심 건물이 바로 성 비투스 성당이다. 카를 4세 때 부터 건설하기 시작한 성 비투스 성당은 50년 이상에 걸친 신 고딕양식 부분을 추가 함으로써, 약 6백년의 공사기간을 기록하며 완성되었고, 내부에 있는 스테인드 글라스가 유명하다.
성당 안으로 들서면서 바라본 내부 전경이다. 성당 내부는 안쪽 길이 64m, 폭 46m, 높이 46m나 된다고 하는데, 앞쪽으로 못가게 막아 놓아 아쉬움...
성당 양쪽에 있는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
스테인드 글라스를 똑딱이 디카로는 제대로 담기 어려웠으며, 여럿 중에서 몇 개만 소개한다.
성당 정문에서 보았던 둥근 '장미의 창(Rose Window)' 으로, 차륜창(Wheel Window)이라고도 한다. '장미의 창'은 프랑스 고딕성당들의 특징으로, 성당 입구 상단의 크고 아름다운 원형창을 말한다.
성 비투스 성당의 옆 모습... 가운데 첨탑의 287개 계단을 올라가면 전망대가 있어 프라하 성을 둘러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고 한다. 미리 알았더라면 혼자라도 잽싸게 다녀왔을텐데, 무책임(?)한 현지 가이드와 섬세하지 못한 스케줄이 아쉽다.
성 비투스 성당을 배경으로 증명사진 하나 남기고...
프라하 성 관람을 마치고, 왔던 길로 되돌아 나오면서 성 비투스 성당을 향해... 3, 트램(Tram) 체험
프라하의 대중교통 중에 하나인 트램 체험을 한다. 일종의 전차인 셈이다. 프라하의 중심지역은 주로 트램이 운행되며, 시외곽 지역과의 연계는 주로 버스가 이용된다. [대중교통 티켓 구매 및 이용 방법] 1. 티켓 구매 - 티켓은 주로 지하철 역에 설치되어 있는 자동판매기나 시내에 있는 'TABAK'이라고 간판이 있는 담배가게에서 구매 할 수 있다. 단, 티켓판매기에서는 동전만 사용이 가능하다, 티켓발매기 이용방법은 먼저 원하는 티켓을 정한 후, 해당 티켓의 가격이 적혀있는 왼쪽의 둥근 버튼을 누르면 화면에 가격이 나오고 동전을 넣으면 티켓이 나오게 된다. 2. 이용 방법 - 프라하 대중교통은 이용이 매우 자유로운 편이며, 탑승시 개표기를 통해 자율적으로 티켓을 펀칭하도록 되어 있다. 최초 탑승시 개표기에 티켓펀칭을 하고, 환승시에는 따로 펀칭할 필요가 없이 소지하고만 하고 있으면 된다. 체코에는 사복을 입고 티켓을 불시에 확인하는 검표원이 따로 있으며, 이들은 신분증을 내보이며 티켓 소지여부 및 시간을 확인하는데 이때, 무임승차임이 적발되면 700 Kc의 벌금이 부과된다. 그렇기에 반드시 티켓은 하차시 까지 소지하고 있어야 하며, 티켓을 소지하고 있더라도 탑승과 동시에 티켓펀칭을 하지않고 타고 가다 적발되면 이 경우 역시 무임승차로 단속된다.
트램 체험 후 세 정거장 만에 내렸다. 티켓은 트램 외에도 버스, 지하철 모두 사용이 가능한데, 프라하 시가지 관광지 코스들은 대부분 도보로 연결되기 때문에, 꼭 일일교통권을 구입할 필요는 없다.
4, 블타바 강의 카를교(Karluv most)
트램에서 내려 카를교를 향해 가는 길에...
프라하 성 쪽의 카를교 교탑이 보인다. 원래 교탑은 통행세를 징수하고 다리를 방어하는 목적이었지만, 현재는 관광객에게 개방되고 있다.
카를교 교탑 아래에서 관광객을 위한 교탑지기(?)가 사진 찍도록 폼을 잡아줘서 한 장 찰칵...
카를교 다리 아래의 수로에는 관광용 배가 운행되고 있었다.
블타바 강을 건너는 카를교를 건너 구 시가지로 향한다. 지난 밤에 야경을 보기 위해 왔던 곳으로, 동유럽 여행 5편 후기에서 언급했기에 관련 설명은 덧붙이지 않는다.
카를교에서 바라본, 블타바(Vltava)강 상류쪽 풍경이다.
카를교에서 바라본, 블타바(Vltava)강 하류쪽 풍경...
카를교의 양쪽 난간에 세워진 30개의 성인상 중에서 가장 인기 높은 '성 얀 네포무크'의 동상이다. 동상 아래 부조에는 바람을 핀 왕비의 고해 내용을 실토하지 않는다고 바츨라프 4세에 의해 혀를 잘린 채 강물에 던져지는 얀 네포무크 신부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으며, 얀 신부는 1729년에 성인으로 추대되었다. 이 조각상 아래에 있는 2개의 부조 동판에 손을 대고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어 여행객들의 손길이 많이 닿은 동판 부분은 사진처럼 반질반질해져 있다. 오른쪽 동판에 손을 대고 빌면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지고, 왼쪽 동판에 손을 대고 빌면 자신이 기르는 개의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일행들은 손을 대고 사진도 찍었지만, 개인적으로 남의 나라 성인에게 그렇게까지 하고싶진 않았다. ^^*
구 시가지쪽 상류 강변 풍경...
카를교에서 바라본, 프라하 성 방향 풍경... 성 비투스 성당의 첨탑들이 보인다.
다리를 건너, 구 시가지 쪽 까를교 교탑으로 향하면서...
구 시가지 쪽 카를교 교탑의 반대편 모습으로, 12시가 되자, 카를교 교탑 꼭대기에서 나팔을 부는 사람이 나타났고, 아래로 내려다보며 손을 흔들었다.
구 시가지 근처의 현지 식당에 들러 점심식사를 했다. 식빵과 양파스프(?)에 덧붙인 사진 모양의 돼지갈비(?)가 나왔는데, 맛은 그런대로 먹을만 했다. 5, 구 시가지 광장 (Staromestske nameti)
전날 낮과 밤에 이어 세번째 찾는 구 시가지 광장으로 들어선다. 사진 왼편에 구 시청사의 천문시계가 보이고, 맞은편에 틴 성당(Tyn Cathedral)이 보인다.
오후 2시 정각, 천문시계의 퍼포먼스가 시작되고, 관광객들은 사진찍기에 열심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동유럽 여행 5편 후기에서 이미 소개한 내용을 다시 덧붙인다) 이 천문시계는 1410년에 만들어졌다고 하니 무려 600년이 된 시계이다. 위쪽 시계는 천동설의 원리에 의해 만든 것으로, 두개의 원반이 함께 돌아가는데 해와 달, 그리고 천체를 표현한 것이다. 이 시계는 1년에 한 바퀴 돌면서 연, 월, 일, 시간을 나타낸다. 아래쪽의 원은 12개로 나누어진 사계절을 나타내 주며 하루에 한 눈금씩 움직인다. 이곳의 시계는 매시각 정시에 시간을 알려 주는데, 매시 정각 무렵이면 이것을 보려고 시계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든다. 09:00부터 21:00 사이에 매시 정각이 되면, 원반 위에 있는 천사의 조각상 양 옆에 있는 2개의 창문이 열리고, 종소리와 함께 그리스도 12제자가 천천히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이어서 시계 위에 있는 황금색 닭이 나와 울면서 시간을 알리는 것으로 끝난다.
구 시청사 전망대에서도 나팔수가 나팔을 불고, 이어 관광객들에게 손을 흔든다. 저곳 전망대에 올라가보지 못한 것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프라하 시가지 전체를 볼 수 있는 곳인데...
틴 성당을 배경으로 구 시가지 광장 풍경을 담았다. 전날 낮과 밤에 두 차례나 왔던 곳으로, 동유럽 여행 5편 후기에서 광장 주변 풍경을 많이 소개했기에 관련 사진과 설명은 더이상 덧붙이지 않는다.
6, 바츨라프 광장 (Vaclavske Namesti)과 중앙역
'프라하의 봄'으로 잘 알려진 체코 민주화의 상징인 바츨라프 광장으로 들어간다. 바츨라프 광장은 프라하 국립박물관으로 부터 길이 750m, 폭 60m로 마치 대로와 같이 뻗어 있는 광장으로, 보헤미아 최초의 왕이자 체코인들의 수호성인으로 여기는 성 바츨라프의 이름을 따서 세워진 광장이다.
바츨라프 광장에서의 일행 단체사진을 하나 남긴다. 일행은 모두 22명으로 남성 4명에 여성 18명... 이 광장은 체코 독립의 역사와 함께한 장소이기도 하다. 이 광장에서 공산당 선언문이 낭독되며 체코의 공산화가 되기도 하였으며, 1968년 체코 자유화운동이었던 ‘프라하의 봄’ 때, 탱크를 앞세운 소련 주도의 바르샤바 조약 군과 시위대의 격돌로 100여 명이 희생 당한 장소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20년 후인 1989년 11월에, 100만 명의 프라하 시민들이 이 광장에 모여 소위 '벨벳 혁명'이라고 불리는 민주혁명이 성공을 거두게 된다.
나홀로 증명사진도 하나 남기고... 지금의 바츨라프 광장 양쪽 거리에는 유명한 호텔과 백화점, 고급 레스토랑 등이 들어서 있다.
줌으로 당겨 찍은, 프라하 국립 박물관과 광장을 바라보며 서있는 성 바츨라프 기마상의 모습이다. 프라하 국립 박물관 앞에 있는 '성 바츨라프 기마상(왼쪽)'과 '위령 조각상(오른쪽)'이다. 도중에 면세 쇼핑코스로 가이드 되면서, 주요 관광코스인 국립 박물관 앞까지 못가게 되었다. 하여, 2개의 빌려온 사진을 간단히 편집해 올리면서,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던 아쉬움을 달랜다.
면세 쇼핑 후, 전용버스를 타러 가다가 길 건너편에 보이던 프라하 중앙역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프라하에서 약 3시간30분 거리의 '체스키 크롬로프'로 가는 길에 들렀던 휴게소에서... 옆에 세워진 오토바이와 비교될 정도로, 귀엽게 생긴 초미니 승용차를 사진으로 담아본다. 7. 체스키 크룸로프 성 (State Castle Cesky Krumlov)
체스키 크롬로프에 도착, 주차장 옆에 있는 안내판을 사진으로 담았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중세도시의 하나인 체스키 크룸로프(Cesky Krumlov) 체코 공화국의 남동쪽에 자리한 중세의 성채 도시인 '체스키 크룸로프'는 인구 1만 5천여 명의 작은 도시로서, 보헤미아의 진주라고 불리며, 체코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블타바(독일어:몰다우 Moldau) 강이 흐르는 곳이다. '강변 옆 초원'이란 의미의 체스키 크룸로프는 13세기 보헤미아의 한 영주가 성을 건설하면서 도시가 형성된 후, 7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녔지만, 지금도 중세시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작은 프라하라고 불리기도 한다. 블타바 강이 S자 모양으로 흐르는 이 도시는 붉은 기와지붕의 옛 건물들이 동화처럼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준다. 체스키 크롬로프 성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또 다른 안내판을 사진으로 담았다 13세기 중엽, 이 지역 영주였던 비텍 가(家)에서 블타바 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처음 성을 만든 뒤, 여러 시대의 건축양식이 추가되었으며, 시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성탑은 이 도시를 상징하는 아름다운 건축물이기도 하다. 한때 왕궁으로 사용된 이 성은 체코의 보헤미아 지방에서는 프라하 성 다음으로 크며, 세계 300대 건축물의 하나다. 하루 평균 2,000명의 관광객이 찾는 이 성은 40개 건물과 5개 마당(중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1992년 체스키 크룸로프 성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주차장에서 5분쯤 올라가 들렀던, 체스키 크룸로프 정원 풍경을 먼저 소개한다. '영주의 정원'이라고도 부른다는데, 엄청 넓은 규모의 잘 다듬어진 정원 모습에 그저 감탄...
정원의 중앙에 위치한 분수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조각상들로 꾸며져 있다. 이하, 정원을 한 바퀴 돌면서 찍은 풍경들이며, 진부한 설명은 생략한다.
미로 정원을 돌아보며...
이상으로, 체스키 크룸로프 정원 (영주의 정원)의 풍경 소개를 마친다.
체스키 크룸로프 정원 구경을 마치고 내려와, 체스키 크롬로프 성으로 향하다, 망토 다리를 건너기 전의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풍경이다. 사진에 보이는 블타바 강을 기준으로 성곽 지역과 구 도시 지역으로 나누어지는데, 강 왼쪽의 성벽과 성탑이 있는 곳이 체스키 크룸로프 성이고, 오른쪽이 구 시가지 모습이다.
망토 다리 전망대에서 바라본, 블타바 강 건너편의 구 시가지 전경...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 갑자기 중세 유럽의 도시가 한 눈에 들어온다. 가운데 첨탑 건물이 시청사이며, 시내 중심인 스보르노스티 광장이 있는 곳이다.
망토 다리 전망대에서 바라본, 블타바 강 상류 풍경... 사진 오른쪽 상단 언덕 너머에, 조금 전에 구경했던 체스키 크룸로프 정원이 있다.
망토 다리 위의 전망대에서 체스키 크룸로프 성의 정원으로 들어간다.
로젠베르크 가문의 저택을 지난다. 한 때 궁전으로 사용되기도 했을 만큼 아름다운 성이었는데, 보이는 건물 외벽 모습은 모두 그림이었으며, 예산 부족인지 복원작업까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잠시후, 작은 마당(중정) 주변에는 성탑을 비롯해 여러 세대를 거치며 증축된 다른 양식의 건축물이 있다.
성문 아래에는 곰을 사육하는 장소도 있었고... 막 쏟아낸 배설물도 보인다.
시내 어디에서나 보이는 체스키 크룸로프의 성탑(城塔)... 이 성탑은 원래 고딕 양식이었으나, 1590년에 10년의 공사로 현재의 르네상스 양식으로 다시 만들었으며, 이 탑은 별도의 입장료를 내고 내부의 좁은 계단을 통해 위에 있는 전망대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건물 외벽은 대리석과 조각장식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역시 원래의 모습처럼 보이도록 그린 그림이다.
체스키 크룸로프도 다른 중세 도시들처럼 좁고 구불구불한 돌포장 골목길이 미로처럼 얽혀 있다. 차 한 대가 지날 정도의 좁은 길 양옆으로는 각종 수공예품 가게나 레스토랑, 카페 등이 있었다.
구 시가지로 들어가는 다리에서 바라본, 블타바 강과 강 주변 풍경...
프라하의 카를교에서도 보았던, 다리 위의 '성 얀 네포무크' 동상을 배경으로 증명사진 하나 남기고...
스보르노스티(Svornosti) 광장으로 들어선다. 스보르노스티 광장은 16세기부터 사진 정면에 보이는 4층짜리 건물의 시청사가 자리잡은 도시의 중심으로, 1993년 유네스코로부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이 도시의 상징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고 한다. 광장 한가운데에는 1715년 페스트 퇴치기념으로 세워진 삼위일체(Marian Plague Column) 탑이 서있으며, 스보르노스티 광장을 중심으로 돌이 깔린 작은 길이 여러 군데 뻗어있다.
잠시후 관광객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한 쇼단(?)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와서는 나무다리를 신은 키다리가 관광온 소년에게 링을 던져 막대기에 꽂아서 받게 하는 재미를 선사하기도...
구 도시지역에서 블타바 강 다리를 건너 '망토 다리'로 가면서 바라본, 체스키 크롬로프 성의 모습...
블타바강 다리를 건너, 사진 오른쪽의 망토 다리(Cloak Bridge)로 향한다. 망토 다리는 15세기에 목조로 만들었으나, 이후 현재의 석조로 개축되었다. 2개의 성(城)을 연결하기 위해 만들었으며, 3층 아치 모양의 다리는 육중한 석조기둥이 떠받치고 있다. 체스키 크롬로프 성 안에서 망토 다리의 3층에 있는 통로와 연결되는데, 이 통로로 양쪽 성을 오간다. 3층의 다리 중간과 다리 건너에는 각각 전망대가 있어, 이들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도시를 휘감아 흐르는 블타바강과 빨간 지붕의 구 시가지 경관이 가장 잘 보이기에, 관광객이 망토 다리를 꼭 찾는 이유이다.
블타바 강 하류 방향 풍경...
블타바 강 상류 방향 풍경... 유네스코에 등재된 이런 중세도시의 강에 왠 콘크리트 보?? 우리나라는 4대강에 보 설치한다고 시끄러운데...
블타바 강을 건너서 바라본, 구 도시 지역...
망토 다리를 지나 뒤돌아본, 체스키 크롬로프 성의 모습...
체스키 크롬로프 성 관광을 마치고 주차장에 도착하자, 어느덧 해가 지기 시작하고... 6일 동안 함께한 체코인 전용버스 기사가 자신의 집이 가까운 곳에 있어 다녀오다 늦어 잠시 기다렸다.
체스키 크롬로프 외곽에 위치한 'PARK Hotel'에 도착, 체크인을 하고...
사진의 별채 레스토랑에서 현지식으로 저녁식사... 호텔 야외에서 가져간 볶음고추장 안주(?)에 소주로 늦게까지 이국의 밤을 즐기고...
하룻밤을 보낸 체코 '체스키 크롬로프' 외곽에 위치한 'PARK Hotel'의 아침...
아침 산책으로 둘러본 호텔 정원 풍경... 호텔 아침식사를 마치고, 전용버스편으로 5시간 가까이 걸리는 독일의 뮌헨으로 향한다.
독일 뮌헨에 도착하자 점심시간... 중국식당인데, 흉내만 낸 김치도 있었다.
독일 뮌헨(Muenchen)은 바이에른 주(州)의 주도(州都)로서, 인구는 약 130만이고, 주의 정치 ·경제 ·문화 ·교통의 중심지이며, 베를린과 함부르크 다음으로 독일 제3의 도시다 뮌헨은 수도사(修道士)라는 뜻을 가진 묀히(Moench)에서 도시의 이름이 유래되었으며, 9세기에 베네딕투스파 수도사들이 모여 살면서 도시를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1506년 바이에른 공국(公國)의 수도가 되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 후 혁명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히틀러는 이곳에서 나치스 운동을 일으켰고, 훗날 뮌헨을 ‘나치스 운동의 수도’라고 하였다. 1972년 뮌헨 올림픽대회를 계기로 지하철이 건설되었다. 뮌헨은 예술 ·문화의 도시로 유명하며, 시내에는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클래식 등의 건축물이 많다. 그 밖에 바이에른국립박물관 ·국립오페라극장 등이 있으며, 뮌헨 필하모니 관현악단과 바이에른 관현악단이 유명하다. 또 ‘리하르트 바그너 축제’, ‘모차르트 축제’ 등이 열리며, 각종 박람회와 국제회의가 수시로 개최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맥주 제전이 열린다. 1, 뮌헨 BMW 월드(World) 관광
점심식사후 BMW 벨트(Welt) 관광부터 시작된다. BMW 벨트는 전시관·교육관·차량 인수센터·레스토랑·극장 등이 포함된 복합공간이다. 유리와 금속으로 뒤덮인 1만6000㎡ 면적의 거대한 지붕, 회오리 모양의 상징물, 구름을 형상화한 건물 외벽 등이 잘 어우러져, 뮌헨의 새 명소로 손색이 없다.
BMW 벨트 1층으로 들어선다. BMW는 5억 유로(약 7,000억원)라는 엄청난 돈을 들여 이런 시설을 만든 이유에 대해 "BMW가 어떤 브랜드인지를 고객이 단순히 아는 차원이 아니라, 이해하고 즐기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라고 한다.
25,000㎡ 면적에 들어선 벨트 1층엔 BMW의 소·중·대형 세단인 3·5·7 시리즈를 비롯해 판매 중인 모든 차량과 모터사이클이 전시돼 있고, 도로주행을 가상공간에서 경험해보는 테크놀로지 스튜디오와 관람객이 컴퓨터로 직접 차를 디자인해 보는 디자인 아틀리에(공방·工房)가 마련돼 있다.
BMW 벨트 2층으로 올라갔다.
사진의 2층 왼편에 보이는 '프리미어(premiere·첫 공개라는 뜻)'라는 이름의 차량 인수센터가 있다. 차를 구입한 고객과 차량이 처음 만나는 공간으로 이곳의 핵심이다. 인근 공장에서 출하된 자동차가 승강기를 타고 올라오면 고객이 차 열쇠를 받아 몰고 나가는 형식이다. 고객은 인수식뿐 아니라, 공장 박물관 등 BMW의 다른 시설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기회도 갖게 된다.
차와 연관이 적은 공간도 많다. '차를 사지 않더라도 누구든 찾아와 즐기라'는 의미다. 1층 오디토리움은 회의·공연 공간으로도 사용되고, 2층도 공연장으로 사용될 수 있게 음향시설이 갖추어졌다. 3층엔 비즈니스센터 커피숍 레스토랑, 4층엔 야외 라운지가 있어 뮌헨 도심을 조망할 수 있다.
BMW 벨트 2층 밖으로 나와 바라본, 바깥 BMW 월드 풍경이다. 왼편의 높은 건물은 1972년에 건축된 BMW 본사 빌딩으로, 4기통 엔진 실린더 모양을 형상화했으며, 이제는 뮌헨을 상징하는 새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가운데 그릇(?) 모양으로 생긴 건축물은 BMW 박물관이며, 하늘에서 보면 BMW 로고가 새겨져 있다.
BMW 벨트 2층 바깥에서 바라본, 1층 입구 모습... 2, 뮌헨 올림픽 공원
BMW 벨트 구경을 마치고, 걸어서 근처의 뮌헨 올림픽 공원으로 향한다. 자유시간이 BMW 벨트 구경할 정도로 짧아, 나홀로 급히 다녀올 요랑으로 올림픽 공원으로 향했다.
차도를 건너는 다리 왼편으로 올림픽 타워가 보이는데, 현재는 'TV탑'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올림픽 타워의 총 높이는 290m로, 182m 지점에는 전망대와 회전 레스토랑이 있다고 한다.
차도 위 다리에서 바라본 올림픽 경기장 쪽 풍경이다. 올림픽 공원(Olympic Park)은 1972년 '뮌헨 올림픽' 때 만들어진 스포츠 공원이다. 선수촌에 팔레스타인 게릴라가 침입하여 이스라엘 선수단 숙소를 피로 물들였던 사건으로...
올림픽 공원내로 들어가면서... 철근과 유리를 이용해 독특한 모양으로 만든 경기장과 조형물이 인상적이다.
공원 옆 공터에서 인디언 복장의 사람들이 연주와 함께, 기념품을 팔고 있었고...
올림픽 공원 내에는 우리나라의 놀이공원처럼, 어린이들을 위한 여러가지 놀이기구가 운영되고 있었다.
올림픽 공원의 넓은 공간에는 사이클 경기장, 스타디움, 실내수영장, 사우나 등 이용 가능한 시설과 잔디, 호수 등이 잘 조성되어 있었다.
이하 진부한 설명없이 올림픽 공원 내의 풍경을 사진으로 소개한다.
공원에서 독일인들의 일상 분위기를 느끼며 좀 머물고 싶었지만, 주어진 자유시간이 거의 끝나는 싯점이라, 전용버스가 있는 곳으로 급히 돌아가야 하는 아쉬움...
올림픽 공원 구경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다른 차도 위 다리에서 바라본, 맞은편 BMW 벨트와 오른쪽 BMW 본사 건물, 박물관 풍경이다. 3, 뮌헨 시내 관광
개인적으로 마음에 안들지만, 뮌헨 중심가에 도착하자 먼저 50분 정도의 면세점 쇼핑부터...
면세점에서 걸어서 시내 중심에 위치한 신(新) 시청사에 도착, 앞쪽 광장은 마리엔 광장이다.
신 시청사(Neues Rathaus)와 마리엔 광장(Marien Platz)을 최대한 넣어서 찍은 풍경이다. 신 시청사는 100년 밖에 안된 건축물인데, 고풍스러운 외관과 높은 첨탑이 마치 중세의 성당처럼 보인다. 그리고 왼편 상단에 보이는, 양파 모양의 쌍둥이 첨탑은 프라우엔 성당(성모 성당)이다.
신 시청사의 첨탑을 중심으로 찍은 사진으로, 높이 85m의 네오고딕양식이다. 첨탑 가운데 보이는 초록 부분은 인형시계 글로켄슈필(Glockenspiel)이며, 매일 오전 11시에 인형들이 빙글빙글 돌면서 종을 울리는 '춤추는 인형시계'라고 한다. 하지만, 5/1~10/31일 사이에는 낮12시와 오후 5시에도 볼 수 있다는데, 쇼핑때문에 못본 게 아쉽다.
마리아 탑 앞에서 증명사진 하나 남기고...
신 시청사의 전경과 마리엔 광장의 풍경을 왼쪽편에서 다시 담았다.
마리엔 광장 오른쪽에 위치한 구 시청사 건물을 광장 반대편에서 줌으로 당겨 찍었다. 현재 보수공사로 전면이 모두 흰 천으로 가려져 있으며, 1874년까지 시청사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1310년에 착공된 것으로 알려진 오래 된 건물이며, 전면은 1861년에 후기 고딕 양식으로 다시 지어졌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심각한 손상을 입어 1970년대에 첨탑 등이 재건되었다고 한다.
신 시청사 주변 거리 풍경... 노천 카페가 곳곳에 보인다.
광장을 벗어나 프라우엔 성당(성모 성당)에 도착... 쌍둥이 첨탑 중에서 뒷편 첨탑은 그림으로 가려져 있는데, 사암의 검은 색을 제거하고 있는 모양이다. 성당은 16세기 후기 고딕양식으로 건축되었으며, 1990년에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했다고 한다. 이하, 신 시청사 주변 거리 풍경이다.
신 시청사의 뒷편 모습...
오데온 광장으로 가는 길에... 고전적 건축물과 현대적 쇼핑몰들이 조화를 이루고, 예술과 사랑이 편안하게 어우리진 거리...
오데온 광장(Odeons Platz)에 도착, 광장 오른쪽의 '테아티네 성당(Theatiner Kirche)' 전경이다. 테아티네 성당은 1663년에 착공되어 10m에 이르는 돔은 1690년에 완성되었으며 이탈리아 바로크 양식이다. 전면의 로코코 양식은 1768년에 덧붙여진 것으로, 이 성당은 남부 독일의 성당 건축에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오데온 광장 가운데에 위치한, 바이에른 군대 명예의 상징인 펠트헤른할레(Feldherrnhalle)... 바이에른 왕 루트비히 1세의 명령으로,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로지아'를 모방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광장 왼쪽의 왕궁 건물 전경이다. 왕궁(Residenz)에는 박물관과 왕실의 보물을 전시해 놓은 보물관(Schatzkammer)이 있다고 한다.
막스 요제프 광장으로 가면서...
막스 요제프 광장에 도착... 광장은 바닥 보수공사를 하고 있었다. 바이에른의 왕이었던 막스 요제프의 이름을 딴 광장으로, 사진 오른쪽 동상이 막스 요제프 동상이고, 광장 건너편에 보이는 건물은 바이에른 국립오페라와 발레단의 본거지인 국립 오페라극장이다.
외벽 보수공사가 진행중인 레지덴츠(Residents) 왕궁...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건물보다는 정원이 더 멋있다고 하는데 가보지는 못했다.
전용버스를 타고 잠시 이동하여 도착한 한인식당, 사진 우측 상단에 덧붙인 된장찌개로 저녁식사를 하고...
식사후 도로에 나가 뮌헨의 전차 모습 담았다.
뮌헨에서 하룻밤을 보낼 호텔에 도착하면서, 동유럽 여행의 공식 관광일정을 마무리한다. 4, 독일 뮌헨을 떠나 한국으로...
호텔에서 아침식사후 공항으로...
뮌헨공항에 도착, 출국 수속을 하고...
8/6일 아침, 11시간이 넘는 긴 비행 끝에 대한민국 인천공항으로 내려선다.
인천공항에서 같은 비행기로 환승해서 다시 부산으로...
그렇게 9박10일 동안의 동유럽 6개국 여행을 무사히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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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시차적으로 잘 기술하여 안방에 앉아서 동유럽 구경 잘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