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아니면
사후 세계를 논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논어를 행동 지침으로 삼은 유교는 종교가 아니라는 논란에 휩싸여 왔다. 종교로 보는 사람에게는 논어가 경전일 것이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라고 해도, 고래로 논어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 책이 없다는 점만은 인정할 것이다. 타 종교 중에는 인간을 죄인으로 보거나 평가절하하면서 궁극적인 구원을 제시한 것도 있다.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협박을 하는 것에 비해 현세에서 개선이 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치는 유교는 종교이든 아니든 인간을 끝내 포기하지 않은 것이어서 종교 이상으로 인간의 구원을 제시한 면이 없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로 시작해서, 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으며, 예를 알지 못하면 설 수 없으며,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不知命 無以爲君子也 不知禮 無以立也 不知言 無以知人也 )는 구절로 끝을 맺고 있는 논어는 배운다는 학(學)이라는 단어로 시작해서 안다는 뜻의 지(知)로 끝을 맺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논어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배워서 아는 법을 제시하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어쨋거나 논어는 중국 최초의 어록이다. 공자님이 돌아가신 후에 제자들과 당대 문인들이 공동 편찬한 것으로 추정된다. 공자가 제자 등 여러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토론한 것이 논(論)이고 제자들에게 일방적으로 가르친 것을 어(語)라고 칭한다. 각 구절의 첫머리가 자왈(子曰)로 시작하는 논어는 격언과 금언의 보고다.
논어에 들어 있는 유교사상의 핵심이 예(禮)와 인(仁)과 중용(中庸)이다. 인(仁)은 사람(人)을 뜻하는 글자와 둘(二)의 합성어다. 즉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를 의미하는 말이다. 자기가 서고자 한다면 다른 사람을 세워 주고, 자기가 이루고자 한다면 다른 사람을 이루게 해야 한다(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는 구절은 인의 정신을 잘 설명해 준다. 중용(中庸)은 조화를 말하는 것으로서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과 같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정신으로 이어진다.
논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예다. 춘추전국시대 말기 인간의 본질적 가치관마저 무너지는 어지러운 세상을 살았던 공자로써는 끊임없이 예를 외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안연(顔淵)편에 나오는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는 구절은 공자 사상의 진수를 보여주는 것이다. 형식을 포함한 몸과 마음의 자세를 의미하는 예는 더 나아가 모든 것의 이름을 바르게 세우는 정명(正名)사상으로 귀착된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는 논리다. 인간다우려면 예로써 무장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논리다.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는 말을 금과옥조로 여겼던 사대부들은 혼인을 앞둔 딸에게 시집을 가서는 한술 더 떠서 3년 동안은 예던 아니던 아예 보지 않는 장님으로 살고, 그 다음은 3년은 듣지 않는 귀머거리로 살고, 그리고도 3년을 더 벙어리로 살라고 가르쳤다. 9년 동안을 장님과 귀머거리와 벙어리로 살면 시비에 휘말려 들지 않고, 무사히 위기를 넘기고, 잘 적응하여 파경을 맞지 않으리라 여겼던 것이다. 태어나 자라며 정들었던 친정을 떠나 모든 것이 낯설고 모르는 것이 많은 시집살이에 적응하려면 장님처럼, 귀머거리처럼, 벙어리처럼 그저 보아도 못본척, 들어도 못들은척, 할 말이 있어도 참는 것이 최상의 미덕이라고 가르쳤던 것이다.
도쿄(東京)에서 일본 동해안의 명소인 닛코(日光)로 가능한 빨리 가고 싶은 사람은 도쿄의 아사쿠사에서 출발하는 토우부선 특급인 스페시아를 이용하면 된다. 유꾸리 유꾸리 즉 놀멘 놀멘 가고 싶은 사람을 위해서는 값까지 싼 완행열차도 있다. 닛코에 가면 누구나 장엄하고 화려한 일출과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토쇼궁(東照宮)이 기다리고 있다. 닛코의 일출은 우리나라로 치면 정동진에서 보는 것과 비슷한 것으로서, 많은 일본인들이 찾는, 자연이 빚은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다. 토쇼궁은 인간의 셈세한 손길이 곳곳에 배어있는 예술의 진수를 집약시켜 놓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1617년에 만들어진 토쇼궁은 에도 막부의 선조인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를 모신 곳으로써, 2대 히데타다에 의해 축조 된, 유서어린 목조 건물이다.
본전과 양명문, 오층탑, 미카미고, 오쿠미야궁, 신교 등등의 축조물들은 모두 저마다 독특한 조형미를 자랑하는 일본 국보들인데, 그 중에서 신마굿간과 그곳의 원숭이 조각이 특히 눈길을 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타던 말을 신마(神馬)라고 하며, 그 신마가 살던 곳이 신마굿간이다. 예로부터 일본에는 원숭이가 말을 지킨다는 속담이 있다. 그에 따라 신마굿간 건물의 8면에 원숭이의 조각이 새겨져 있는데, 그 중 보지마 원숭이(미자루), 말하지마 원숭이(이와자루), 듣지마 원숭이(키카자루) 등 세 마리의 원숭이 조각이 특히 이색적이다. 각각 눈과 입과 귀를 막고 있는 원숭이들은 나쁜 것을 보지도, 말하지도, 듣지도 말라는 것을 상징하는 산자루(세마리 원숭이)들로써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히다리 징고로라는 유명한 조각가의 작품이다. 우리나라의 장님3년, 벙어리3년, 귀머거리3년을 연상 시키는 산자루를 감상하다보면 논어의 안연편에 나오는 '예가 아니면----"이,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건너가서 이런 식으로 영향을 준 실체를 본 느낌이 든다.
얼마 전 통도사가 있는 양산 쪽으로 여행을 갔다가 그곳에 요(窯)를 가지고 있는 운하도예를 둘러볼 수 있는 귀한 인연을 맺었다. 이때 운하요의 전시장에서 눈과 입과 귀를 막고 있는 모습의 세 분 동자승을 만나게 되었다. 도자기 재료로 쓰는 흙을 이용하여 손으로 빚어 만든 솜씨가 빛나 보였다. 운하 선생의 짝인 지원님께서 그 동안 갈고 다듬은 실력을 발휘하여 만든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나는 그 동자승들을 아주 천천히 오랫동안 바라다 보았다. 내가 그렇게 한 것은 작품의 예사롭지 않은 예술성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더 정확하게는 닛코에서 보았던 히다리 징고로의 산자루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일본 토쇼궁의 신마굿간 벽에 붙어있는 원숭이가 동자승으로 변하면서 그 작품을 통해 전달해 주는 메시지도 한층 업그레이드 되었다. 독실한 불자인 지원보살이 눈과 귀와 입을 막고 있는 동자승 조각을 통해 우리들의 마음에다 심어주고 싶었던 코드는 예가 아니라 도로 헤아려 진다.
어찌 예만 그렇겠는가.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에서 예를 도로 바꾸어 非法勿視 非法勿聽 非法勿言이라 해도 무방하리라. 법은 도를 말한다. 법이 곧 도고, 도가 법이다. 법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법이 아니면 구하지 말고, 법이 아니면 보지 말고, 법이 아니면 듣지 말고, 법이 아니면 말하지 말고, 법이 아니면 행하지 말고, 법이 아니면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동자승 조각품은 우리들에게 무엇이던 법에 의하여 행하고, 행주좌와어묵동정을 이와 같이 해야 하며, 뽐내는 마음으로 수행하지 않고, 대충대충 하여 악을 지어서는 안된다 것을 무언 중에 속삭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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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리들의 어른들께서도 딸을 출가시키면서 말씀하셨던 "귀막고 삼년, 눈감고 삼년, 입다물고 삼년.." 참고 살다보면 좋은날이 올거라고 하셨다는데.. 살아가면서 느끼는것은 어른들의 생활지도가 곧 법이고 진리라는것을.. 진리의 말씀들을 예전부터 지키고 살았더라면 사는데 크게 재미는 없었을거라는 생각을 하며 어리버리인 나 또 웃습니다.
스스로 어리버리하다고 여기는 지혜가 번뜩이는데,결혼생활이 행복하지 않았나요?
동조궁의 산자루보다 지원보살님의 동자승이 주는 의미가 더 심장합니다. 그렇다는 것을 알려 주시는 해월 스님의 글은 아주 명쾌합니다. 법이 아니면 듣지도 말하지도 보지도 않겠습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좋은글 읽고 마음으로 받아들입니다..()()
법이 아니면 ------가슴에 넣어 두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