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19일 전파를 타기 시작한 KBS 2TV 주말드라마 ‘오! 삼광빌라!’가 연장 방송 없이 50부작으로 3월 7일 종영했다. 제1회 19.9%(1부. 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이하 같음.)와 23.3%(2부)로 출발한 ‘오! 삼광빌라!’의 최종회 시청률은 32.9%다. 최고 시청률은 33.7%를 찍었다. 평균 시청률은 27.84%로 집계됐다.
직전 드라마 ‘한 번 다녀왔습니다’의 최고 37.0%, 평균 시청률 28.4%에 비하면 좀 낮은 수치다. 갈수록 내가 이미 말한 ‘독보적인 지상파 주말드라마’(전북도민일보, 2020.5.15.)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말나온김에 최근 2년간 방송됐던 KBS 2TV 주말드라마 최고 시청률을 살펴보자. 말할 나위 없이 그 점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먼저 ‘하나뿐인 내편’(2018.9.15.~2019.3.17.)은 49.4%, ‘같이 살래요’(2018.3.17.~9.9)는 그보다 약간 낮은 45.1%였다. 이후 방송한 주말극들은 30%대에 머물렀다.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2019.3.23.~9.22) 35.9%, ‘사랑은 뷰티풀 인생은 원더풀’(2019.9.28.~2020.3.22.)은 32.3%에 그쳤다.
어쨌든 먼저 특기할 것은 제 자릴 찾은 50부작 편성이다. KBS만 그런 건 아니지만, 지상파 방송이 불법인 중간광고를 하면서 50부작 드라마가 100부작이 되곤 했다. 가령 전작 드라마들인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과 ‘하나뿐인 내편’은 연장방송까지 해 각각 108부, 106부작의 대하드라마 아닌 대하드라마가 되고 말았다.
요컨대 방송 기간 6개월의 주말드라마들인데, 어떤 건 50부작, 또 다른 것은 100부작이니 시청자들 입장에선 혼란이 이만저만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혼란을 안긴 건 평일 드라마들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16부작 미니시리즈가 32부작이 되곤 했다. 내 기억으론 SBS가 그런 혼란을 가장 먼저 바로 잡기 시작했다.
약 4개월간 예능 프로를 방송하다가 다시 시작한 SBS 월화드라마 ‘VIP’(2019.10.28.~12.24)가 그 주인공이다. ‘VIP’는 1~2회로 표시해 32부작이 된 것을 1회 1~2부로 나눠 16부작이 되게 했다. 불법인 중간광고가 여전하지만, 변태 내지 기형적 모습을 사라지게 했다. “KBS와 MBC도 그렇게 했으면 한다”고 이미 말했는데, 비로소 그렇게 된 셈이다.
또 하나 특기할 점은 공백 기간 없이 바로 이어지고 있는 탄탄하고 안정적인 주말극 위상이다. 가령 ‘오! 삼광빌라!’는 ‘한 번 다녀왔습니다’ 종영후 다음 주 바로 방송을 시작했다. ‘오! 삼광빌라!’ 후속 드라마 ‘오케이 광자매’도 바로 이어진다. 원래 이게 맞지만, 그동안 평일 드라마들은 그러지 못했다. 심지어 폐지된 게 아닌데도 후속 드라마가 바로 이어지지 않곤 했다.
각론에 앞서 특기할 게 하나 더 있다. 걸그룹 우주소녀 멤버인 보나(이해든 역)의 주말극 출연도 나로선 특기할 사항이다. 보나는 KBS 수목드라마 ‘당신의 하우스헬퍼’(2018.7.4.~8.29)에서 주연으로 활약했지만, 그러나 그것은 최저 시청률 1.7%를 기록한 작품이었다. 최종회 시청률조차 3.0%에 그친 흥행 실패작으로 남아 있는 드라마다.
그런 보나가 ‘황금빛 내 인생’의 신혜선이나 ‘하나뿐인 내편’의 유이같이 타이틀롤 급은 아니지만, ‘30%는 기본으로 보장받는’ KBS 주말드라마에 드디어 캐스팅되었으니 얼마나 좋아했을지 상상이 된다. 그렇다. KBS 주말드라마는 이제 막 발돋움하려는 신인 내지 무명급 연기자들에겐 스타 관문 같은 곳이기도 하다.
‘오! 삼광빌라!’는 삼광빌라에 사는 엄마 이순정(전인화)과 딸 이빛채운(진기주)ㆍ이해든, 아들 이라훈(려운)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반상식적ㆍ비일상적 이야기다. 물론 순정 동생 만정(김선영), 의동생 김확세(인교진)가 더부살이하고 있고, 우재희(이장우)ㆍ황나로(전성우)ㆍ장준아(동하)ㆍ차바른(김시아) 등 많은 세입자가 드나든다.
또 다른 이야기 축엔 재희 부모 우정후(정보석)ㆍ정민재(진경), 빛채운의 생모 김정원(황신혜)과 친부 박필홍(엄효섭) 등이 얽혀 있다. 정원 의붓딸 장서아(한보름)도 있다.여느 주말극처럼 해피엔딩으로 끝나 코로나19 시대 힐링을 선사한 듯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다. 이런 드라마를 한 회도 빼먹지 않고 6개월 동안이나 본방사수했다는 게 한심할 지경이다.
‘오! 삼광빌라!’의 키워드를 하나만 들라면 단연 양자(養子)다. 제1의 주인공이라 할 순정의 세 자녀는 전부 입양해 키운 아이들이다. 입양 가정이 전국 가구의 몇 퍼센트나 되는지 알 수 없지만, 6개월이나 방송되는 주말극 소재와 주제로 고스란히 쓰인 건 놀라운 일이다. 또 다른 이야기 축인 정원의 아들(준아), 딸(서아)도 친자식이 아니다.
친자식(재희)을 둔 건 정후와 민재 부부뿐이다. 나로는 해외로 입양된 경우고 바른도 멀쩡한 대학생으로 나오지만, 부모나 집에 대해선 일절 설명이 없다. 전작 ‘사랑은 뷰티풀 인생은 원더풀’에서도 정원중이 3남매를 데려다가 키운 아빠로 나온 바 있는데, ‘오! 삼광빌라!’는 그런 부분적 설정을 넘어 아예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라는 특징을 드러낸다.
응당 그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당장 순정은 왜 자기 자식이 없는지 의문이 생긴다. 결혼했는데 원래 석녀(石女)라 남의 애들만 데려다 키운 건지 도대체 말 안 되는 설정이 당황스러울 정도다. 순정이 빛채운을 키운 사정이 극의 주요 서사로 펼쳐지지만, 요컨대 그녀가 왜 ‘입양 전문 아줌마’로 살아야 했는지에 대한 어떤 묘사도 없는 것이다.
이 점은 정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준아와 서아가 의붓 자식들인데, 왜 그렇게 된 것인지 아무런 맥락이 없다. 자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매이거나 자식간이라 너무 요란스럽게 친한 그들의 모습으로 보인다. 작위적이란 느낌도 뒤따른다. 순정이 보살 같은 이미지보다 오히려 반상식적ㆍ비일상적캐릭터로 다가오는 것도 그래서다.
그뿐이 아니다. 이른바 ‘얼굴 없는 천사’를 의도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순정은 생전 처음 보는 외간 남자인데도 기억 잃은 정후를 자신의 집에 데려와 제임스로 살게 한다. 확세도 노숙자로 있는 걸 집에 데려와 보살펴 살게 해준 경우다. 자수하러 가는 나로를 굳이 집으로 들어오게해 반찬까지 수저에 담아주는 등 ‘위장된 모정’이 의아하게 다가올 지경이다.
‘기른 정’의 소중함을 환기하려는 의도인지 모르겠으나 ‘물보다 진한 피’로 맺어진 천륜(天倫)이 좀 소홀히 다뤄진 듯한 아쉬움도 있다. 단적인 예로 필홍의 빛채운을 대신한 교통사고를 들 수 있다. 빛채운이 사경을 헤매는 필홍을 보고 그제서야 ‘아빠’라 부르고 있을 만큼 자식 버린 부모에 대한 매서운 응징이라 할까.
‘오! 삼광빌라!’는 짝짓기 드라마처럼 보이기도 한다. 빛채운과 재희의 사랑과 결혼 정도만으로도 충분한 듯한데 필요 이상 여러 쌍을 맺어놓고 있다. 만정과 확세, 서아와 나로, 라훈과 바른, 해든과 준아 등 여느 주말극에서 볼 수 없던 많은 짝짓기다. 극 초반 이혼하고, 결말에 다시 합치는 정후와 민재도 사실상 짝짓기라 할 수 있다.
특히 서아와 나로의 경우 다른 커플처럼 맺어짐으로 끝난 건 아니지만, 좀 아니지 싶다. 캐릭터 정체성에 균열을 일으켜서다. 극중 갈등의 사실상 핵심축으로 대표적 반동인물인 서아가 “나로씨 옆에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하는 등 진짜로 그를 사랑해 개과천선한다는 설정이 그럴 듯하게 와닿지 않는다.
그보다 더 거역스러운 건 만정과 확세의 러브라인이다. 그 나이라 해서 사랑하지 말란 법이 있는 건 아니지만, 너무 비현실적이라 그런지 징그러우면서도 억지스러워 보인다. 거기에 더해 밀당까지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장관(壯觀)이 아닐 수 없다. 아들을 결혼시킨 이혼녀 민재가 ‘누님’하며 접근하는 손교수(류진)에게 설레임을 갖는 따위 전개도 마찬가지다.
그뿐이 아니다. 정후는 첨엔 해보지 못한 무릎꿇고 하는 프로포즈를 이혼한 민재를 향해 하고 있다. 글쎄, 내가 60대 중반 꼰대라 그런지 첫날이라며 며느리와 아들 아침 밥상을 차려주는 시아버지 정후의 변신을 어떻게 봐야할 지도 난감하다. 정후 혼자 스스로 밥 차려 먹어야 며느리 사랑을 받는다는 민재도 마찬가지다.
그 점에서 정후와 민재는 때 아닌 부창부수(夫唱婦隨)가 돋보이는 이혼 커플이다. 세상이 무섭게 변하고 있지만, 변해선 안 될 것들이 있다. 가령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자연의 법칙 같은 질서, 바로 그것이다. ‘오! 삼광빌라!’는, 이를테면 그런 걸 송두리째 엎어버리는 반상식적ㆍ비일상적드라마인 셈이다.
하긴 그들의 이합집산 자체가 보기에 불편하다. 정후의 제임스를 통한 변신 자체가 대가족 장남으로 앞만 보며 살던 가부장적 권위의 그 세대들을 통째로 부정한 셈이 되니까. 정후와의 결혼은 자기가 좋아 목매달던 민재의 선택이었다. 그런데도 민재는 감내해온 모든 걸 부정하며 이혼하고, 재결합으로 정후만 나쁜 놈이 되고 만 것이다.
이해 안 되는 장면들도 있다. 가령 화장실이 급한 바른이 가지 못한 채 방으로 들어간다. 그런데도 문 걸고 밥먹기에만 몰두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끝내 화장실 가는 장면은 없다. 또 빛채운이 친부모 만나러 가는 걸 왜 다른 형제들이 못가게 막아서는 지도 이해가 안된다. 라훈의 입대를 앞두고 왜 그렇게 울고 불고 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의붓딸 서아가 친딸 빛채운이나 엄마 정원에게 왜 툭하면 고압적이거나 가해자로 나오는 지도 마찬가지다. 초면인데도 준아가 몸 가누지 못할 정도로 만취한 채 찾아가는 해든 집(삼광빌라) 역시 이해가 안된다. 확세가 재희와 빛채운 결혼식 사회자로 나선 것도 그렇다. 우리는 보통 신랑 친구가 결혼식 사회를 보는 것에 익숙해 있지 않은가?
곳곳에서 여러 배우들이 ‘창고’를 ‘창꼬’라 말하는 등 발음상 오류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꼬시(꽃이→꼬치) 이쁜 게 아니라”(10회), “꼬슬(꽃을→꼬츨) 정말 좋아해요”(11회), “깨끄치(깨끗이→깨끄시) 빨아놨지”(24회), “오다가 주섰(었)어요”(26회), “저 옷은 나시(낯이→나치) 익네”(40회) 등이다. 그 외 ‘파이팅’을 ‘화이팅’(5회)으로 말하거나 심지어 남의 아내를 높여 부를 때 쓰는 ‘부인’을 “내 부인”(22회)이라고 말하는 잘못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