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1.daumcdn.net/cfile/cafe/13551D204B30D6D389) 4. 공능분(功能分)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以無所得故 菩提薩埵 依般若波羅蜜多故 ... 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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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우리는 파사분(破邪分)에서 우리가 있다고 집착하는 모든 것에 대하여 반야의 공관(空觀)으로 삿된 것을 부수워 왔습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구성하는[혹은 마음작용인] 오온(五蘊), 또 이를 바탕으로 펼쳐진 세계인 십이처(十二處)와 십팔계(十八界), 그 세계에서 일어나는 연기법(緣起法)인 십이인연(十二因緣), 성스러운 진리인 사성제(四聖諦), 심지어 불교에서 가장 중요시 하는 지혜(智慧))와 열반(涅槃)까지도 부정하면서 모든 교법체제를 부정해 왔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이같은 모든 것을 부정한 것처럼 보여도 이는 공의 세계 차원, 깨달음의 세계가 그러함을 보인 것이요, 미혹에 빠진 중생을 해탈의 세계로 인도하려는 방편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런 절대부정을 통해서 우리는 절대긍정의 세계로 나아갑니다. 반야 공관으로 모든 현상을 조견(照見)해 보니 모든 것이 공하여 집착할 바가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반야바라밀다의 공능(功能)에 대하여 공부하고자 합니다. 실은 반야바리밀다에 무슨 설명이 붙는 것조차 불가한 것이지만 우리는 문자를 가탁하여 짐작해 보고자 할 따름입니다. 공능분은 이무소득고(以無所得故)부터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까지 입니다.
공능분(功能分)이란 법대로 닦을 때 증득한다는 대문을 말합니다. 이무소득고(以無所得故)에서 구경열반(究境涅槃)까지는 보살이 열반(涅槃)을 증득(證得)하는 것을 말하고, 삼세제불(三世諸佛)부터 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得阿耨多羅 三藐三菩提)까지는 제불(諸佛)이 깨달음을 얻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1)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以無所得故 菩提薩埵 依般若波羅蜜多故 心無罣碍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以無所得故 菩提薩埵 依般若波羅蜜多故 心無罣碍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
1) 이무소득고(以無所得故)
앞의 파사분(破邪分) 끝부분에서 얻을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열반(涅槃)을 얻는다는 것조차 없다고 강력하게 부정했습니다. 이는 한 생각이라도 집착하지 말라는 소식입니다. 무엇을 얻겠다는 생각, 무엇을 얻겠다는 생각도 망상이기 때문입니다.
이무소득고(以無所得故)란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그러므로'란 뜻입니다. 여기서 무(無)란 파사분에서 많이 살펴보았듯이 파사분을 총괄하는 무입니다. 잘 살펴볼 일입니다. 이는 바라밀(波羅蜜)의 본지(本地)를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모든 법이 공함을 알아 우주와 하나됨을 알았는데 여기서 다시 얻을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무소득(無所得)의 경지는 모든 속박에서 벗어난 해탈(解脫)의 경지를 말합니다. 이는 곧 열반(涅槃)을 말합니다.
얻을 것이 없다고 해서 세상살이가 모두 허망하다고 생각하고 노력할 것도 없고 윤리와 도덕을 지킬 것도 없다고 생각하여 염세적으로 흐른다면 이는 무소득(無所得)을 크게 오해한 것입니다. "소득(所得)이 없는 것이야말로 참 지혜이니 보살이 이 지혜를 얻으므로 무소득(無所得)이라 하는데, 이 무소득(無所得)이 대열반(大涅槃)이다." 라고 《열반경(涅槃經)》에서는 밝히고 있습니다.
이 무소득(無所得)의 경지를 자각한 사람은 중생을 대하면 자비심(慈悲心)을 내게 마련인데 이러한 사람이 바로 보살(菩薩)입니다.
2)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고 심무가애 (菩提薩埵 依般若波羅蜜多故 心無罣碍)
① 보리살타(菩提薩埵)
보리살타(菩提薩埵)란 범어로는 보디삿트바(bodhi-sattva 菩提薩埵) 입니다. 보리(菩提)는 '각(覺. 깨달음)'의 뜻이고, 살타(薩埵)는 '유정(有情. 衆生)'이란 뜻입니다. 한역하여 '각유정(覺有情)'이라 하고 우리말로는 '깨달은 중생'이라는 뜻이라고 관세음보살을 공부할 때 나온 바 있습니다. 보리살타(菩提薩埵)를 줄여서 보살(菩薩)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보살은 상구보리(上求菩提)ㆍ하화중생(下化衆生)을 이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위로는 보리(菩提. 깨달음)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대승불교에서는 보살을 이상형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② 의반야바라밀다(依般若波羅蜜多故)와 공능(功能) 의반야바라밀다고(依般若波羅蜜多故)란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란 뜻이고, 심무가애(心無罣碍)란 '마음에 걸림이 없다.'는 뜻입니다.
반야바라밀다에 대해서는 경제(經題)를 설명하면서 해설한 바가 있습니다. 반야바라밀다는 진리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한 여러 가지 수행, 즉 육바라밀을 실천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육바라밀을 통해 깨침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기서 반야지혜는 파사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제법이 공함을 알고 미(迷)의 세계로부터 벗어나 집착할 바 없음을 알고 반야바라밀에 사는 지혜를 말합니다.
보살은 이런 반야바라밀에 의지하므로 여러 가지 공능이 생긴다고 합니다. 그 첫 번째로 나타나는 것이 마음에 걸림이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마음에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사라지고, 셋째로는 뒤바뀌고 잘못된 망상인 전도몽상(顚倒夢想)을 멀리 여의고, 넷째로는 마침내 열반(涅槃)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반야바라밀에 의지하는 공능은 한량없이 큰 것입니다.
③ 심무가애(心無罣碍)
여기서 첫 번째로 나타나는 공능이 심무가애(心無罣碍)입니다. 여기서 가(罣)는 괘(掛)와 같은 뜻으로 '건다' '거리낀다' '옭힌다'는 뜻이고, 애(碍)란 장애, 방해, 지장의 뜻으로 가애((罣碍)는 '걸림이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심무가애(心無罣碍)란 마음에 걸림이 없다는 뜻입니다. 걸리적 거리고 꺼리낌이 없다는 것입니다.
④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
마음의 걸림에는 크게 나누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이를 이장(二障)이라고 하는데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을 말합니다. 이 이장(二障)은 중생이 일으키는 갖가지 번뇌망상을 말합니다.
번뇌장(煩惱障)은 번(煩)이란 번(煩)자에 불 화(火)자가 있음을 볼 때 물질적인 의미가 있으므로 몸이 어지럽고 번다함을 말하고, 뇌(惱)는 심방(忄)변이 들어감을 보아 마음이 산란하여 어지러움을 말한다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번뇌(煩惱)란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탐ㆍ진ㆍ치(貪瞋癡) 삼독(三毒)을 말합니다.
소지장(所知障)이란 우리의 알음알이가 본래성품을 가로막아 장애하는 것을 말합니다. 말하자면 지적장애(知的障碍)로 각종사상ㆍ주의주장ㆍ철학ㆍ종교ㆍ학문 등의 고정관념이 본래성품을 장애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이장은 각종 망상을 양산해 마음을 오염시켜 온갖 차별상(差別相)을 갖는 염상(染相)을 만들어 내게 됩니다. 우리가 사찰을 방문할 때 제일 먼저 만나는 문인 일주문(一柱門)을 보게 되면 '입차문래 막존지해(入此門來 莫存知解)'라는 주련을 보셨을 겁니다. 이 말은 "이 문안에 들어오거든 알음알이를 내지 말라." 는 것입니다.
알음알이 가지고는 불국토에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이 집착을 떠나 공의 세계에 사는 보살은 반야지혜로 빛나고 있는데 무슨 걸림이 있겠습니까? 공의 세계에는 걸릴 것이 없는 것입니다.
⑤ 무소득(無所得)의 마음이 심무가애(心無罣碍)다
걸림없이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무엇 때문에 걸릴까요? 생각해 보면 걸리는 것이 무척 많습니다. 마음에 얻을 바가 많으면 걸리게 됩니다. 우리는 무엇인가 끊임없이 추구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오욕락(五欲樂. 財色食名睡)의 추구 때문에 수많은 갈등을 야기합니다. 지금 세상은 지자제 선거 때문에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표를 얻기 위하여 서로의 단점을 잡아 깎아내리기 바쁩니다. 상대를 칭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라도 어떻게 하든지 단점을 걺어져야 승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냅니다. 양심에 꺼리낌이 없을까요? 이것이 중생이 사는 세상입니다. 끝없는 탐욕, 분에 넘치는 기대, 지나친 허영심은 늘 장벽을 만나게 됩니다. 소득(所得)이 있는 곳에는 늘 갈등과 장애가 존재합니다. 소득은 집착을 말합니다. 집착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고(苦)가 뒤따릅니다.
소득(所得)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북새통을 이루지만 소득이 없는 곳에는 누구도 거들떠 보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한가합니다. ㅎㅎㅎ
마음에 소득이 없다면 평안이 찾아올 것입니다. 재산을 많이 모아야겠다는 생각, 미인을 얻어야겠다는 생각, 좋은 것을 먹어야겠다는 생각, 명예와 권력을 얻어야겠다는 생각, 좋은 집에서 생활해야겠다는 생각을 모두 버린다면 얼마나 편안할까 생각해 봅니다. 이와 같은 소득에 초연하다면 마음에 걸림이 없어 참된 자유를 만끽하리라 생각됩니다.
소득은 집착을 발생시켜 업(業)을 만들어 인과(因果)의 속박에 얽매어 삼세를 윤회하며 고통을 받지만, 무소득(無所得)은 집착이 일어날 근거가 없으므로 업에서 벗어나 열반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걸림없이 산다는 것은 결국 무소득(無所得)의 마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막행막식(莫行莫食)하며 거리낌없이 행동하는 것은 절대 무애행(無碍行)이 아니라 잡행(雜行)에 지나지 않습니다. 무소득(無所得)의 마음, 이것이 심무가애(心無罣碍)의 경지입니다. _(())_ 감사합니다. 백우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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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얻을 것이 없으니 걸림도 없겠지요.![ㅎㅎ](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70.gif)
좋은 마음의 공부 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_()_ ![^-^](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3.gif)
얻을 것이 없는 마음 무소득의 마음이 되어야 하는데...![ㅎㅎ](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70.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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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3.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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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월사 조실 춘성스님이 지욱이의 알음알이를 다 버리게 하기 위해서 지욱이를 탄허스님에게로 보낸 이야기도 결국은 알음알이, 즉 고정관념에 의한 집착을 버리고 무소득의 마음, 심무가애의 경지에 오르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_()_
그럴 것입니다. 알음알이 끊기가 참으로 어렵지요. 入此門來 莫存知解 다음에 붙는 나머지 구는 無解空器 大道成滿입니다. 알음알이 없는 빈 그릇이라야 대도를 가득 담을 수 있다는 말씀이지요.![^-^](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3.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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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시원스레 답글을 주시니 너무나 감사할 따름입니다.
여기서 菩提薩埵는 주인공인 관자재보살님을 가르키는 것인지, 아니면 심무가애의 경지에 오른 즉 불특정자를 가르키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_()_
지금 설법장에는 부처님께서![삼](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17.gif)
매에 드신 가운데 사리불을 비롯한 대비구와 많은 보살들이 관세음보살님의 설법을 듣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니 후자라 하겠습니다. ![ㅎㅎ](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70.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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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3.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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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_()_
감사합니다~~
무소득의 마음으로... 정진해 갑시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3.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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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30.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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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이 없다는 뜻... 일까요?
아마도 '본래무일물'이라는 말에 대한 방편설 아닐까요?
본래 있는 것이 아닌데...
무엇을 얻으려는 마음...
'나' 가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인데, 마음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인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