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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전에 낚시가자는 선약이 잡혀있어서 어머니 돌아가시고 보름이 채 안된 시기라 망설이다 그야말로 바람이나 쐬고 오자고 생각하고서 낚시를 나섰다.
대전에서 통영까지 길이 열리기 전에는 통영으로 가려면 감히 엄두도 내기 어려울 정도로 길은 멀고 험했다. 길 하나가 새로 생기면서 얻는 이익이란 값으로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 엄청날 것이다.
오늘은 그 동안 미루고 있던 통영 가는 길을 잠시 소개하겠다. 대전에서 대~통 고속도로로 들어서서 잠시가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지었다는 인삼 랜드 휴게소가 나온다. 30분을 더 질주 하면 무주 이정표가 나오고 대전에서 한 시간 가량 가면 함양 휴게소가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일기의 변화가 급변한다. 지리산이라는 큰 산 자락이 함양으로 뻗어 있기에 구름이 산 위에 걸려 있어 많은 비나 큰 눈이 다른곳은 안 와도 그 곳만 오는 현상이 종 종 생기곤 한다. 나도 그런 경험을 그 곳에서 여러 차례 했다. 달리는 차에서 길 옆을 보면 진주까지 경호강이 흐르는것을 볼 수 있다.
경호강(거울같이 맑은 호수)을 잠시 소개 하자면 산청 선비들의 이야기가 널려있어 도도한 느낌 마저 든다. 경호강은 강폭이 넓고 모래톱과 잔돌들이 퇴적해있어 유속은 빠르면서도 급류가 없어 여름이면 래프팅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창 문을 열고 시원한 강바람을 마시면 30여분 더 가면 진주 시내가 한 눈에 보인다. 진주는 도시가 참 멋스럽다. 도심속으로 강 물이 흐르는것이 꼭 책에서 본 베니스 같다 라는 생각이 든다.
女非斯巖 焉得死所 巖非斯女 烏得義聲 “이 바위 아니였다면, 그 여인 어찌 죽을 곳을 찾으며 이 여인 아니었다면, 바위 또한 어찌 의롭다는 소리 들었으리요"
차가 지나는 곳에 장난스런 논개 캐릭터를 보면서 논개를 떠 올 려본다. 남강과 촉석루 그리고 논개........ |
그 곳 하일면에는 공룡엑스포를 연다고 한다.
하지만 가면 실망할 거 같다. 내가 낚시 가서 보니 별로 볼 것이
없더라.... 난 고성이란 이름보다는 그냥 소가야라는 옛 지명이 더
살갑게 느껴진다.
드디어 통영이다.
통영에 대해선 할 말이 너무 많다.
통영은 원래 통영이 였는데 충무로 이름이 바뀌어다가 충무시와
통영군이 통합 되면서 하나로 다시 통영시가 되었다.
지명 또한 “충무공과 통제영”에서 따온 이름이다.
충무 김밥이라고 우리가 알고 있는 김밥은 전두환 정권 시절
군부통치로 정권을 잡은 정부가 국민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국풍81’이라는 구경거리를 만들어서 전국의 음식을
한자리에 모이게 해서 팔도 맛잔치를 열면서 전국에 알려졌다.
충무김밥은 사실 다도해에서 김밥을 팔다보니 김밥속에 단무지나
소세지를 넣고 김밥을 말으니 김밥속에 단무지가 상하면서 김밥
자체가 상해서 버리게 되서 김에 밥만 말고 반찬은 따로 주면서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여기 저기 원조라고 하지만 별 맛은 없다.
그리고 통영은 윤이상,박경리,유치환,김상옥,김춘수의 고향이기도하다.
윤이상 음악제도 열리고 유치환의 시비도 눈에 띤다.
한국의 나폴리라고 불리는 통영은 통영대교를 넘으면서 풍광이
절정을 이룬다. 통영과 미륵도는 원래 ‘1928~1933’ 5년의
공사로 461M해저터널이 생겼다. 80년전에 이미 바닷속에 길을
만든것이였다.
통영대교를 넘어 오면서 바로 미륵도라는 거대한 섬을 만나고
미륵도에서 30여분 차를타고 가면 ‘달아공원’을 만난다. 여기서 보면
한산도에서 여수까지 이어지는 뱃 길이 (한려수도) 한 눈에
들어온다. 그중 통영 일대에만 150여개의 섬들이 밤하늘의 뿌려진
별처럼 흩어져있다. 이 곳 물을 길어다가 63빌딩의 수족관에서
사용한다고 한다.
미륵도를 통영사람들은 ‘동백길’,또는‘꿈길 드라이브 60리’
라 부르지만 나는 길이 꼬불 꼬불해 멀미만나더라...
슬픔처럼 떨어진 동백을 보면서
조금 더 가니 길에서 놀란 고라니 한 마리가
물끄러미 낯선 차를 슬픈눈으로 쳐다본다.
대전을 출발해서 2시간 30분만에 척포항에 도착하니 선장님이
반갑게 악수를 청한다. 그리고 출발하기전에 내가 전화로 문어를
삶아놓으라고 했기에 커다란 쟁반에 방금 삶은 문어를 가득 내 오셨다.
이 곳 척포 문어는 그 맛이 일품이다. (선장님은 예전에 삼형제가
문어잡이를 했는데 지금은 혼자만 낚시배를 하시고 다른형제는 여전히
문어를 잡고있다.) 도마에 잘려진 더운김을 내는 문어는 소주 열병의
안주로 없어지고 선장님은 다시 문어를 새로 삶아주셨다.
소주 몇 잔을 더 마시고 취기도 오르고 해서 나는 2층으로(2층은
낚시꾼 잠자리가 있다.)올라가 먼저 잠을 청했다.
새벽4시정도 되니 깨우는 소리가 들렸다.
잠을 깨느라 담배만 연신 피우고 있는데 70대정도의 늙은 어부가
털게와 낙지를 커다란 양동이에 담아와서 팔려고 하고 있었다.
털게는 너무 귀해서 도시에서는 구경도 할 수 없는거라 가격을
물어보니 암게30여마리 들어있는 통을 가리키며 3만원이란다.
무지하게 싸다. 귀한거니까 일행한테 사라고 말하고 낙지는
얼마냐고 물으니 팔뚝만한 낙지8마리에 만4천원이라고 했다.
일단 낙지값을 지불하고 3명이 팀으로 나누고 낙지을 나누었다
라면에 넣고 끓여 먹으면 맛있다고 해서.........
그렇게 늦장을 부리다 5시에 배를타고 오곡도로 향했다.
오곡도 맞은편엔 유명한 비진도 해수욕장이 있고 연대도, 만지도,
학림도,부지도, 용초도, 한산도 등의 섬들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근처 바다는 이순신 장군이 학익진을 치고 왜군을 물리친 곳이다.
섬의 생김새가 멀리서 보면 까마귀 형상을 하고 있고
섬에는 까마귀가 많이 살아 오곡도라 불렀다고 한다.
일행의 채비를 해주다 보니 바다 저 쪽에서 해가 붉게 바다을
물들이고 있었다. 날이 환하게 밝고 앞에 장구통 닮은 비진도의
텅 빈 해수욕장이 한 눈에 들어왔다.
허기 느끼면서 먼저 라면 수프를 넣고 펄펄 끓인 뒤 낙지를 넣고
삶은 뒤 꺼낸 후 라면을 다시 끓인다. 바로 잡은 놀래미를 회를 쳐서
놓으니 금새 갯바위에서 진수성찬이 차려졌다.
술이 떨어져 갈 때쯤 되니 낚시고 뭐고 세상 귀찮다.
잠자리 찾아서 산 위로 올라가니 커다란 바위들이 조각처럼
웅장하게 펼쳐진 곳이 있어 잠을 자다보니 해가 중천에 떠 있었다.
바다만 보면 마음이 평화롭다.
낚시가 끝나고 나오니 어부들이 고기를 팔고 있길래 가보니
방금 잡은 팔뚝만한 정갱이기에 만원어치 사니 30여마리나 주더라
성질이 고등어 보다도 더 급한 정갱이는 고등어 보다도 훨씬 맛있다.
추신: 이 글은 3년전에 쓴 글인데 원체 같은 길 비숫한 내용들이 있어
중복되는 해설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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