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 3번 바꿨지만 빚만 불어나…"
'창업 1순위' 먹는 장사까지 직격탄
남대문 시장엔 지방도매상 발길 '뚝'
"자영업자 금융·세제 혜택줘야" 지적
“하루라도 빨리 장사를 그만두고 싶은데 점포마저 안 나가요.”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한민자(54ㆍ여)씨는 올들어 밀린 점포 임대료와 인건비를 카드 3장으로 돌려 막으며 간신히 버티고 있다.
최근 고용 미용사를 내보내고 혼자 가게를 꾸리고 있지만 한 달에 60만원 만지기도 힘들다. 1년6개월 동안 쉬는 날도 없이 일했으나, 남은 것이라고는 가게 임대를 위해 은행서 빌린 4,500만원과 눈덩이처럼 불어난 카드 이자 등 8,000만원의 빚뿐이다.
경기 고양시 일산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다 최근 부동산에 매물로 내놓은 장경수(47)씨는 “올들어 매출이 절반까지 떨어져 4개월째 관리비와 임대료를 은행 대출로 해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웃 옷 가게는 급한 김에 고리 사채를 빌려 썼다가 이혼 위기에 놓여 있다”며 “우리 같은 동네 상인들은 앞으로 뭘 해먹고 살아갈지 막막하기만 하다”고 하소연했다.
동네가게가 몰락하고 있다. 내수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음식점과 슈퍼마켓, 이ㆍ미용실, 옷가게는 물론, 노래방과 당구장, PC방 심지어 대형 찜질방까지 업종을 가릴 것 없이 매출이 급감해 아예 영업을 포기하는 극한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음식점과 주점이 몰려있는 서울 종로구의 경우 올들어 6월말까지 435개 점포가 문을 닫아 지난해 같은 기간(358건)보다 22% 늘었다. 그나마 경기를 덜 탄다는 강남구도 폐업 점포가 작년보다 10% 이상 증가했다.
서울 소공동이나 남대문로 지하상가에는 상당수 점포가 ‘폐업정리’ ‘점포정리 세일’을 걸어놓고 있지만 고객의 발길이 끊겨 썰렁하다. 부동산중개업소에는 임대료를 내지 못해 보증금까지 까먹은 이른바 ‘깡통 상가’나 권리금이 한푼도 없는 상가 매물이 수북하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 월드공인중개소 박영주(47)씨는 “현재 의뢰된 점포 매물 100여건 중에는 영업도 하지 않으면서 ‘생돈 임대료’를 내는 가게가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서 화장품 전문점을 운영하는 정모(33ㆍ여)씨는 “3만원대 이상 제품은 거의 팔리지 않고 매상도 절반 이상 줄어 임대료 내기가 힘들다”며 “전 재산을 털어 마련한 가게지만 더 이상 적자를 감당하기 어려워 조만간 정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국소기업소상공업학회 정범식(숭실대) 교수는 “조기퇴직과 취업난 등으로 자영업 비율(48%)이 지나치게 높아 경쟁이 치열한데다 내수 불황마저 지속되면서 동네 영세상들이 한계상황에 내몰리고 있다”며 “동네가게의 몰락을 이대로 방치할 경우 제2의 신용대란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