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쓴 이 : 고영희
조 회 수 : 30
날 짜 : 2004/08/16 01:08:23
내 용 :
무더위로 초록도 지쳐 가는 8월의 첫주..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바람 역시 잠을 자는 듯 하다
피부에 와 닿는 끈적거림으로 불쾌지수가 올라가는 한 낮을 살짝 지나 이정표를 붙이기 위해 숭산기념관을 나선다
바다로 계곡으로 산으로 향하는 피서 인파들과는 일찍감치 멀어져서 무더위 속에서도 일주일을 꼬박 준비로 보내고 이제 대회를 하루 앞두고 막바지 마무리 작업을 하려 부지런히 손과 발을 움직인다
나무가 무성한 아름다운 원대 교정 안에서 그림자도 더위에 지쳤는지 굼뜨게 움직이는데 우렁찬 매미 소리만이 파릇 파릇한 대학생 자원 봉사자들을 위로하고 있다
노랑,빨강,주황의 큰 화살표 위로" Bonvenon!" 어서 오세요 "vi estas nia espero!" 당신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
국내외에서 모여들 에스페란티스토을 환영하는 문구가 순식간에 정문에서 대회장인 숭산기념관 까지 줄을 선다
에스페란토...
아직은 생소하고 낯설은 이름...
영어나 공부 하지 남들이 알아주지도 않는 그런 것에 왜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가...어디에 쓰일 수 있지...몇 명이나 쓰는데...그거 하면 어떻게 좋은데...
노골적으로 이 언어의 경제성을 알고 싶어하는 눈빛 앞에서 가끔은 막막해지던 이름..에스페란토...
처음 에스페란토를 소개 받았을 적에 나 역시 이런 생각들을 하였던 것 같다 에스페란토가 언어인지 조차도 몰랐고 이 언어를 만든 자멘호프 박사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었다 에스페란토에 대해 묻는 이들의 모습이 예전의 나의 모습인 것이다
익산지회가 생긴 이래 제일 큰 행사인 한국대회를 원만히 치루기 위해 여전히 뜨거운데 에스페란토로 쓰여진 문구들을 힘차게 붙여본다
작년 2학기부터 원대에서 제 외국어 과목으로 에스페란토가 개설이 되어 청강을 하게 되었다 학부생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뒷줄에서 가만히 듣고 공부를 하던 매주 수요일은 퇴근 하기가 바쁘게 부랴부랴 강의가 있는 인문관을 찾았다
이중기 회장님의 열강을 들을 수 있게 된 것도 우리들의 행운이었다 이제 20대 초반의 젊은이 틈에서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른들이 끼여 함께 필기를 하고 함께 따라 발음을 하고 강의를 듣는 장면은 작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아이가 어린 나의 경우는 죄송함을 감수하고 시간이 여의치 않을 땐 아이를 데리고 다녀야 했다 그림 그리고 낙서하며 강의 시간을 함께 보냈던 딸아이는 적어도 dankon,saluton,gxis la가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학부생들에겐 우리의 모습이 자극제가 되었노라고 하였다 도대체 에스페란토가 무엇이기에 나이도 만만치 않고 나름대로 일도 바쁘신 저 분들이 만사를 제치고 이곳으로 오는가가 궁금했노라고 했다
에스페란토..
하면 할수록 이 언어의 마력에 빠져드는 것 같다 언어를 통한 평화 운동이라는 거창한 명분를 말하기에 앞서 에스페란토를 배우다 보면 어느 사이 일민족 이언어주의를 몸으로 체득하게 되는 듯 하다 자연스레 이 중립 언어의 평화성과 평등성을 알아가게 되는 것이다 강국이 약국을 무시하고 차별하고 더 나아가 함부로 침략도 하는 요새 세상에, 강한 것이 보편적인 문화가 되고 약한 것이 보호를 받지 못하는 세상에, 강약에 상관 없이 자국민끼리는 모국어를 타국민끼리는 중립어를 쓰자라니...
영어를 잘 하기 위해서라면 자녀의 혀까지 수술을 하는 세태에 영어의 효과적인 학습법도 아니고 이름도 생뚱망뚱한 에스페란토를 배운다니..
처음엔 긴가민가 하며 입문한 에스페란토가 어느 사이 재미가 되고 보람이 됨을 느끼게 된 것이다 시간과 정성을 투자한 만큼 얻게 되는 묘한 이치...
36차 한국대회..
작년 10월, 천안대회에서 대회기를 인수하여 온 날 이후로 익산지회에서는 머리에 늘 이 문구를 달고 산 듯 하다
대회의 성공여부 이전에 행사를 주관할 우리의 질적인 향상을 위해 여러 차례 합숙을 실시하였고 매주 한번 이상은 교재를 이용하여 공부를 계속하여 왔다
그 와중에 간간히 홍보를 위해 이곳 저곳의 문을 두드렸고 발품을 팔아 후원을 받으러 다녔으며 대회의 원만한 개최를 위해 협회와의 협조도 공고히 하고자 노력을 하였다
근 일년 동안의 기간 동안 나름대로 준비를 하여 왔지만 가장 바쁘게 움직인 것은 역시 대회 일주일 전인 듯 하다
8월의 첫주, 대회 준비 위원 사무실로 쓰는 법당 사무실을 나서기만 하며 더운 열기가 순식간에 몸을 덥혀서 허헉 소리가 절로 났다 어린이집이 마침 일주일 방학이라 딸 아이가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왜 하필 이럴 때 방학을 했디야? 하는 어미의 구박에도 아랑곳 않고 아이는 씩씩하게 어미를 따라 다녀야 했다 더운 날 체력 소모가 컸는지 아침이면 기운이 절로 나서 벌떡 일어나는 법이 없어 늘 축 쳐져서 아이구 소리를 몇 번 한 다음에야 겨우 일어났다 ^^*
대회를 준비하는 동안 출근하는 남편 뒷꼭지를 본 기억이 없다 일어나면 대충 고양이 세수하고 치장하고 원대로 향하여 또 이 일 저 일로 하루를 보냈다 어떤 날은 여기 저기 전화하고 주차권과 식권을 만들고 대회장에서 쓸 물품과 음식들을 준비하는 것으로 보냈고 또 다른 날은 문구점에서 구입한 형광색 색지를 봉사자들과 오리고 붙이며 하루를 보냈다 여러 날 동안 대회 책자건으로 회장님과 봉원 교무님은 수 차례 인쇄소를 드나들며 수정을 보고 sono와 gxoja님과 전화로 주고 받고도 수 차례 하셔야 했다 두 분이 거의 이 대회를 총체적으로 준비하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무지 많이 움직이셨다
그래도 여유는 늘 있는 법, 간간히 땀을 식힐 아이스크림을 핥아가며 일을 하기도 하고 회장님이 미리 준비한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기도 하였다 밥으로도 살지만 사람은 무릇 기운으로 사는 듯, 함께 하는 이들의 다사로운 기운과 활기로 그 피로감을 잊었다
날마다 씻기고 갈아 입히어 나름대로 때깔이 고왔던 딸아이의 몰골은 어미의 분주함속에 꾀죄죄해 갔지만, 숭산기념관을 오르내리는 아이의 발걸음은 그 어느때 보다 즐거웠고 가벼워 보였다 달려가다 넘어지고 깨지고 하여 숱하게 멍이 들었지만 아이는 어른들속에서 재미나게 보내는 방법을 나름대로 알아갔고 청년대회에도 불청객으로 참가를 하여 영화를 보고 간식도 얻어먹는 의젓함?을 보였다
대회를 돕기 위해 소중한 분들이 오셨는데 대회 전전날부터 인천에서 홍성조님과 전대봉님이 오셨고 최보광 원무님은 브라질 할아버지를 대동하고 나타나셨다 남궁신 교무님은 아이스크림을 가뜩 사와서 불참이지만 회비까지 내 주시고 가셨다 감사!!
오세형 선생님은 일직을 다 하신 후에 자연스레 대회 준비에 합류를 하여 접수를 담당하기로 하였고 중국으로 공부하러 갔던 김신기님이 귀국하여 반가움을 더해주었다 중국음식이 별로 입맛에 맞지 않았던 듯 절로 다이어트가 되어 더욱 샤프한 용모로 나타났다 지난 학기 장학생인 국정훈님도 친구를 대동하고 나타나 또 한 손을 보태주었고 일문과 여학생 삼인방인 김정희,이상희,한미연님도 예쁜 그림과 글씨 쓰기로 한몫을 해 주었다 여전히 씩씩하고 변함이 없는 김행미님은 대회 전부터 대회 후 까지 쭉 자리를 지켜주어 어떤 일이 주어져도 척척 해 주었다 회장님의 미래 자부감인 최수경님도 회장님의 부름을 받고 참석!!
에스페란토 번역은 주로 홍성조님이 해 주시고 컴퓨터에 밝은 전대봉님이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많이 채워주셨다 원무님은 늘 건강한 웃음으로 활기를 주셨다..유창한 언어 능력..에궁 부러버!!
대회 전날인 6일, 청년대회에 자원봉사자들을 어떤 식으로 참여를 시킬 것인가를 두고 잠시 논의가 있었다 논의 결과 익산 지회의 회비로 후원금을 내고 대신 대학생 봉사자들을 대회에 참석 시키자는 것으로 뜻이 모아졌다 회장님은 봉사자들이 자연스레 합류를 하여 외국인 에스페란티스토들과도 만나고 청년대회도 경험하여 안목과 경험을 넓히는 것이 좋겠다고 하신다 젊은이는 젊은이끼리 통하는 것이 있는 듯 어느 사이 다정하게 친구가 되어 가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30대 중반을 넘어선 나는 청년대회에 자격 미달이지만 청년회가 날로 달로 식구들이 불어나 그 조직이 강건해지기를 빌어보았다
일년에 한번 여름에 열리는 정토회 하선에 참석을 할지 말지를 두고 고민을 한다 금-일, 대회와 맞물러 있다 교사회 훈련도 토-일이고..아이 데리고 하루만 날까 하다가 아쉽지만 아예 빠지고 회장님과 오세형선생님만 오전 결재식만 참석을 한 후 오기로 한다 오시는 길에 복숭아를 한박스 사다 주시어 맛있게들 먹었다 먹는 것앞에서 유순해지는 마음..
드디어 대회가 열리는 7일 토요일..
아침부터 분주하다 내내 마음의 여유가 없어 미루었던 머리 다듬기를 위해 잠시 미장원에 들렸다 전도사가 된 듯 에스페란토에 대해 또 한차례 설명을 한다 저기 걸려 있는 저 프랑이 보이시죠?를 시작으로...
머리를 다듬고 가벼운 마음으로 사무실로 갔더니 아니 이게 웬일?
헌다식 사회를 나보고 보라 하신다 에스페란토를 잘하는 태성 교무님이 하시기로 되어 있어 맘을 턱 놓았는데 내 몫으로 떨어진 것이다
요란한 마음..아직 에스페란토 실력이 일천한데 대중 앞에 서야 한다는 부담감이 가볍던 마음을 한순간 요동치게 한다 못한다는 생각이 자신 없게 만들고 준비가 안되었다는 상이 주저하게 만든다 잘하는 사람도 많은데 하필 아직도 버벅대는 내가 해야 하는가..하다가 한 마음을 돌려 본다 이런 기회가 나에게 주어짐을 감사하게 된다 내 정도 껏 하고 내 실력 껏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을 편해진다 그 만큼만 하면 그 만큼의 평가를 받는 것이 당연한 순리가 아니겠는가..대중 앞에 서게 되면 그 만큼 나의 마음의 키도 커지는 법이 아니겠는가..
이왕 내 앞에 떨어진 일이라면 기꺼이 하는 마음과 이제라도 진행 순서를 익히는 것이 필요하겠다 싶어 발음 교정을 잘 해주시는 최은숙님을 붙잡고 여러 번 읽기 연습을 한다
개회식장에서 다례원 6분과 함께 두 세번 예행 연습도 한다 공수, 배례도 알게 되고 예열하는 순서, 차 우러내는 모습도 유심히 보게 된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고 그 이전엔 별다르게 보지 않았던 것이 다 의미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동안 아이는 아침 일찍 오신 원유상 교수님이 너무나 잘 놀아주고 챙겨주시어 내 품에서 떠나버렸다 유머감각과 친화력이 따봉을 넘어서 따따봉이시다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다시는 고운 마음이 절절히 느껴진다
점심때를 지나 모여든 참가자들을 맞아 접수대에선 오세형님이 부지런히 접수를 받고 계산을 하신다 기념품을 챙겨주고 기숙사 방 호실을 안내해 드린다 회계를 맡은 나는 물품을 받고 영수증을 챙기고 돈을 내어 드리며 계산을 정확히 하고자 애를 쓴다 숫자와 별로 친하지 않는데 모임에 가면 늘 총무라 깔끔하고 투명하게 예산을 처리해야 한다는 것에 걸려 있고 그래서 좀 예민한 편이다 식전에 대회대학에도 잠시 참가를 한다 브라질 할아버지의 말을 반은 감으로 알아듣고 반은 그냥 알아듣는 척 하며 듣고 있는데 갑자기 딸이 핸드폰을 갖고 들어오며 하는 말 "엄마! 전화 왔어!"
미안한 마음을 핑계로 세미나실을 빠져나와 이후엔 그냥 놀아버렸다 ^^*
아이는 저녁을 먹을 때 눈이 가물가물대더니 결국은 밥도 먹지 못하고 식탁에 머리를 대고 잠이 들었다 일주일 동안 까불까불 놀더니 그 피로감이 몰려 오는 듯 보인다 아이를 선방에 재우고 개회식에 참석하러 갔다 사회자석에 선다 떨리기도 하고 걱정되기 하여 참석자들의 얼굴 표정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얼떨떨한 느낌만이 든다 그래도 식은 진행이 되어 먼저 이종영님이 나오셔서 헌촉을 하시고 이중기님이 헌향을, TEJO회장님이 헌화를 한다 사이 사이 헌촉은 세상의 밝은 등불을 상징함을 ,헌향은 선인들의 희생과 땀의 노력을 기리기 위해 헌화는 선인들의 넋을 기리고 감사하는 의미임을 설명한다 이어 봉원 교무님이 기념문을 낭송하신다
"Pregxo"
Esperanto..
Zamenhof...
Homaranismo...
Kunigante dezirojn de ni cxiuj
Ni esprimas niajn respektojn
al sincero Kaj instruo de doktoro Zamenhof,
kiu kreis esperanton.
Kaj al vi
Ni cxiuj dedicxas odoron de teo,
kiu Faras cxiun belecon de la mondo.
Zamenhof,
Kiu songxis pri monda paco kaj kiu deziris
egalan interpopolan komunikadon trans la lingvaj baroj.
Tiaj deziroj de vi
farigxu pli fortaj brancxoj kaj folioj,
kaj sxirmu varmegajn sunradiojn de diferenco kaj malegaleco!
kaj niaj koroj ankaux similigxu al via verda koro,
ni cxiuj pregxas!
헌다식 기원문
에스페란토...
자멘호프...
인류인주의...
우리 모두의 염원을 모아
에스페란토를 창안한 자멘호프 박사의 정성과 가르침에
경의를 표합니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나투는
차의 향기를 담아 올립니다.
언어의 장벽을 넘어
자유로이 의사 소통을 하고
높낮이 없는 평화를 꿈꾸었던 님!
님의 염원이
더욱 튼실한 가지가 되고
잎이 되어
차별과 불평등의 뜨거운 햇살을 가리우도록
자멘호프의 마음이 우리의 마음이게 하소서....
이어서 헌다의식이 조용한 음악 속에 진행된다 먼저 두 손을 모으고 절을 한 후 팽주가 다포를 걷고 다구를 예열한 후 차를 우린다 대중들이 집중하여 이 의식에 참여함이 느껴진다 소음 하나 들리지 않는다 생명,평화,상생을 기원하는 헌다의식을 끝으로 개회식 전 행사가 끝이 나고 나의 역할도 끝이 났다 가나,일본,독일,스웨덴,블가리아등에서 오신 분들이 에스페란토라는 한가지 언어로 의식에 함께 참여를 하였다 에스페란토이기에 가능한 일이리라... 다례원에서 미리 준비한 향기로운 연꽃차를 한잔 마시는 소중한 경험도 하게 되었다 연꽃차의 은은한 향이 일품이었다 준비해준 정갈한 분들의 표정도
사회를 어찌되었든 무사히 보고 한숨을 돌리며 자리에 앉았는데 아이를 데리러 남편이 와 있다 뒷줄에나 앉아 있는 줄 알았는데 사회를 본다고 놀라는 표정이다 그 이면에는 그동안 집안일은 나 몰라라 하던 나를 이해해주고 인정함이 느껴진다 늦게 끝난다는 말에 자는 아이를 선선히 안고 간다 늘 하는 일에 가로막는 법이 없이 묵묵히 지켜봐 주는 남편.. 배웅하고 들어오는데 숭산기념관 밖으로 에스페란토가 울린다 개회식 축사를 들으며 계단을 올라서는데 작은 감동이 인다 언어 하나로 국경도 민족도 종교도 초월하여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좋다는 생각이 절로 인다 종법사님 축사는 영산님께서 그동안 익히신 실력으로 또박또박 대독해 주셨다 단어를 일일이 찾아 그 뜻을 다 해석하셨다고 한다 정성심이 대단하시다 종법사님 축사가 양이 많아서 그렇지 그 긴 글을 잘 읽어주셨다
대회개회식이 마무리 될 즈음 봉사자들과 부지런히 법당 사무실로 내려왔다 친교의 밤에 쓰일 음식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세형 선생님이 수박 세 통을 다 자르고 그 사이 떡과 과자와 음료를 나른다 교무님과 미리 빌려온 접수와 쟁반,칼등이 드디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선방에 음식을 나르고 세형 선생님 제자들은 신이 나서 놀기에 여념이 없다 늘 대회 때 마다 멀고 가깝고를 가리지 않고 아이들을 챙겨서 참석을 하시는 정성..역시 brillmonda. .
음식이 준비가 된 후 9시가 다 되어 개회식이 끝이 나고 다들 선방에 모였다 친교의 밤 사회는 홍성조님이 조용한 음성으로 에스페란토로 유창하게 진행을 하신다
제일 먼저 동남풍의 거의 신들린듯한 사물놀이를 감상하였다 절로 어깨가 으쓱거리고 손뼉이 쳐지고 신이 난다 선방을 가득 채우는 사물의 장한 소리와 그네들의 장단을 맞추는 노련한 손놀림을 연신 감탄 감탄하며 본다 얼마만큼의 연습과 정성으로 저리 되었을까 싶은 것이 숙연해지기 까지 한다 며칠, 동남풍 공연료가 많다고 불편해했었는데 그 돈이 정말 하나도 아깝지가 않다란 생각이 든다.. 물론 이 공연을 보기 위해 우리가 모인 것은 아니지만 친교의 밤 문열이를 확실하게 해 주는 것 같다 동남풍이 한바탕 휩쓸고 간 후 경매의 재미도 체험해 보는 시간이 있었다 이종영님이 북경대회에서 가져오신 물건을 청년회 발전기금으로 내신 것이다 차기 협회장이 되실 이영구님과 일본의 가와니시님이 서로 그것을 사겠다며 손을 들어올려 처음 만원 단위로 시작한 것이 나중에 15만원을 훌쩍 넘어선 금액으로 결국 가와니시님에게 낙찰이 되었다 청년회 후원금을 보태주고 싶어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웃음 속에 경매도 끝이 나고 각 지부 별로 나와서 인사를 한다 전국 각지의 열 개 지부에서 오신 분들의 소개가 이어진다 호두 과자를 한아름 사다가 안겨주시며 수고가 많다며 웃음지으시던 스튜데마의 천안지부, 방글라데시에서 막 귀국하여 알록달록한 티셔츠를 입고 오신 박화종님 가족, 숫적으로 우선 한 몫 먹고 들어가는 부산경남 지부의 열아홉분, 저런 수 라면 정말 공부할 맛 나겠다며 원유상 교수님과 소곤소곤거린다
이번 대회를 준비하며 올린 "익산으로 오소서"란 글을 보고 페탈로가 누구였는지 궁금하셨다는 여러 분이 계셨다 그 중 한 분이 부산의 나투라..지난 아시아 대회 적에는 함께 점심도 먹었고 그 이후 분당, 천안대회에서도 얼굴을 보았던 터였다 나는 아는데 상대쪽에서는 잘 몰랐던 듯..조상호 교수님도 그러셨고 윤코 역시 그런 듯 보였다 하긴 대회에 가도 조용하게 있다가 조용하게 오니..이번 대회에는 낯가림이 다소 나아져서 많은 이들과 알게 되었다 나중에 가와니시님의 춤?과 클라리타의 택견을 보았다 화기 애애한 속에 친교의 밤도 끝이 나고 시간은 11시 반을 넘어선다
사람들은 다들 기숙사로 자리를 옮기고 친교의 밤 장소인 선방을 대충 정리한 후 협회 대의원 임시 총회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 사이 포항에서 준비한 횟감에 같이 먹을 야채를 씻기 위해 봉사자와 세형선생님이 먼저 가시고 우리는 후발대로 1시가 다 되어서야 기숙사로 갔다 원유상 교수님은 미리 준비한 포도주 두 병을 가지고 가시고 자리에 잠시 참석하다가 집에 갈 요량으로 나 역시 기숙사로 갔다 주차 까지는 좋았는데 기숙사를 엉뚱한 곳으로 가서 한참을 헤매였다 피곤은 하고 후덥지근한 날씨까지 짜증이 막 나려 한다 술도 안마실 것이고 잠시 얼굴만 내밀다 갈 것 같은데 괜히 왔나 하는 생각이 무럭 무럭 난다 뒷풀이를 하는데 익산지회만 달랑 빠지는것도 그럴 듯 하여 자리를 지켜 보자라고 다시 마음을 잡아 본다
4층 휴게실에는 사람들이 우르르 모여있다 회가 나누어지고 세형 선생님은 부지런히 오이를 깍고 그 틈에 끼여 나도 소문으로만 듣던 포항의 회를 맛있게 먹었다 물론 포도주를 약간 겉들여서..그 사이 소주가 여러 병 들어온다.. 바로 내 옆에 앉아 계시던 조성호 교수님 낮은 목소리로 "왠지 이번 한국대회는 남다를 듯 한 기대가 되었는데..현재 까지는 그 기대가 맞는 것 같아요"하시며 매 대회 때 마다 이 멘트를 쓰고 있긴 하다며 웃으신다 술이 오고 가고 몇 순배 도는 것을 보며 슬그며니 자리에서 일어난다 밖에선 원무님이 여러 명과 열심히 대화중이시고.. 집에 가는 길에 원유상교수님은 댁 근처까지 모셔다 드리고 집에 간다 새벽 2시..참 이렇게 늦은 시간에 거리를 돌아다녀 본 적이 별로 없는 듯 하다 집안은 어둠속에 고요하고 다들 깊은 잠에 빠져있다 하루가 이렇게 가는구나..오랫동안 기다려온 날..어김없이..속절없이..
8일 일요일.. 잠이 채 깨지 않는데 의지력으로 일어난다 대회가 시작되기 전 까지 가야 한다는 생각이 피곤함을 느낄 겨를이 없다 법당 사무실에 다들 와 계시고 심포지오 축사를 하기 위해 국제부에서 김효철 교무님과 무량 교무님이 오셨다 격려도 해 주시고 덕담도 해 주시고 축사를 에스페란토로 읽으신 후 바쁘신 두 분은 다시 가시고 세미나 실에서 대회 심포지오가 시작되었다 이종영님이 "에스페란토와 종교"에 대해 발제를 해 주신 후 우리의 영원한 Avo 홍성조님께서 원불교와 에스페란토를 가지고 발표를 해 주셨다 뒤편에서 그 모습을 지켜 보고 있던 스베카 교무님의 한 말씀"와! 어쩜 저렇게 유창하게 잘 하실까!"고 옆에서 그러게요 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나도 한 마디" 교무님도 앞으로 한 십 년 만 열심히 하시면 저 정도는 하지 않을까요?" ^^*
오오모토 교에선 MAEDA Sigeki님이, 바하이교에선 Klarita Velikova님이,기독교에선 마영태님이 패널로 참가를 하셨다 김행미님은 심포지오 책자를 개당 2천원씩 부지런히 파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고..
원불교와 에스페란토..
대종사님께서는 "세계 모든 종교의 근본 원리는 각기 달리 이름지어지지만 본질적으로는 하나다. 그러니 각자의 제도와 방편을 고집하지 말고 서로 융통을 하는 것이 모든 성인의 본의이다”라고 천명하셨다
에스페란토를 통해 각기 다른 믿음과 신념을 가진 이들이 자유로이 의사소통을 하고 서로의 이해의 폭을 넓혀갈 수 있다면 이는 우리의 바램인 상생의 세계를 이루는데 단단하고 야무진 기초가 될 것이다 스승님의 가르침을 나투게 하는 역할을 에스페란토를 통해 한다고 생각해 본다
심포지오를 취재하기 위해 원불교 신문사에서 문향허 교무님이 오셨고 회장님은 지방신문사에서 나온 기자들과 인터뷰를 하셨다 지방신문이지만 많은 이들에게 홍보가 되었음 하는 바램을 갖어본다 기념품으로 청년대회 티를 한 벌 씩 산 후 협회 사무국장이신 소노와 임시 회계를 보았다 공동주관이다 보니 양쪽에서 결산을 본 후 서로 보고를 하는 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기념촬영을 한다고 다들 3층 대회의실에 모여서 부지런히 사진을 찍고 나니 점심 먹을 시간..그 사이 아빠가 데려다 준 딸 아이는 신나서 이곳 저곳을 다니느라 부산하다 아이를 데리고 식당에 내려가 보니 주방장 아저씨가 얼음으로 일원상을 조각하여 놓고 그 사이에 vi estas nia espero!글귀를 넣어주셨다 얼음조각을 배경으로 열심히 사진들을 찍었다 점심을 먹다가 우연히 합석을 한 최윤희님과 여러 애기를 하게 되었다 어제 늦게 친교의 밤 행사장에 도착하는 것을 본 터이라 늦게 오셨데요? 라며 자연스레 말을 하게 된 것이다
대회를 통해 막연하던 사이가 이름을 아는 사이로 업그레이드 되는 것 같다 내년 리투아니아 세계 대회에 한국적이 무엇인가를 함께 준비해 보자는 쪽으로 말이 오갔다 세계 대회는 한번도 가 본적이 없는지라 여러 모로 기대가 된다 어제 헌다식 사회를 본 것을 보고 원무님은 다음 세계 대회 분과 사회는 페탈로가 봐도 되겠다며 칭찬을 하셔서 어깨가 으쓱거렸던 참이었다(전문가가 칭찬을 해 주면 더 그럴싸 하기에...) 홍성조님은 산을 올라가네요가 맞나요 산을 오라가네요가 맞나요 하며 나의 L 발음이 부정확한 것을 꼬집어 주셨지만...흐흑!!비판에 약한 페탈로!! 그래도 내년 대회를 목표로 에스페란토 공부를 열심히 해보리라는 참 단순한 분발심이 생긴다 아샤!!
홍선생님이 폐회식 인사말을 하시고 개회식 때 처럼 모시 한복을 곱게 입으신 회장님을 비롯하여 우리 모두는 연단에 올라가서 수고했다는 박수를 받았다 대회 준비 기간 내내 지회 고문으로 여러 모로 후원과 기운을 밀어주신 영산님도 한자리 하셨다 역전 보화당에서 후원한 예쁜 방향제를 한개씩 선물로 받았다 나중에 독일에서 온 학생들에게 선물을 하니 무척 좋아했다 시간은 흘러 흘러 폐회식도 끝이 나고 다들 썰물처럼 숭산기념관을 빠져 나가신다 차 시간이 여유가 있는 몇 분 만이 남으시고... 그 사이 김우선님을 터미널 까지 배웅해 드리는 홍선생님 차를 나도 타게 되었다 아이는 그 시각에 잠투정으로 엄마를 애타게 그리다 울며 잠이 들었다고 한다 회장님과 오세형선생님은 만덕산 훈련원으로 들어가서 종법사님의 야단법설에 참석을 하신다고 길을 나서신다 이번대회를 끝으로 회장직에서 물러난 이중기님이 입교를 하신다는데 마침 오오모토교에서 종법사님 선물을 준비하여 함께 영산님 안내하에 만덕산으로 가셨다 미국에 가셔서 이번 대회에 불참한 한숙희님은 멀리 미국에서도 응원을 해 주셨는데 이번 대회에 그 분의 동생인 현희님이 참석을 하였다가 마지막에야 김영옥님과 조성호님과 함께 출발을 하셨다 전대봉님의 짝꿍이자 이번 대회책자을 만드시느라 너무나 애를 많이 쓰신 조명자님도 오시어서 홍선생님편에 인천으로 가시었다 이래저래 아쉽지만 이제는 헤여져야만 하는 시간이라 4시를 넘겨서 다들 가시고 사무실엔 교무님과 나와 잠이 든 딸아이만 남았다 대회 경비를 다시 결산하고 사무실에 남겨진 기념품등을 창고로 치우고 정리하고 나니 6시..
이제 가야 할 시간..아이를 들쳐 업고 내 짐은 교무님이 들고 나오신다 건물 경비 아저씨께 감사하다는 인사말을 한다 여전히 해는 지글거리고 거리는 무덥다 잠이 깬 아이를 데리고 남편을 만나 저녁을 먹은 후 대중탕에 간다 시간이 한 두시간만 여유가 있어도 가는곳.. 아이는 신이 나서 일주일 동안 뛰어다니다 얻은 멍을 보여주며 숫자를 센다 그러곤 "엄마 차 해! 내가 세차 해 줄게" 하며 내 몸을 수건으로 닦아 준다 아이의 표현이 참 그럴싸 하여 하하 웃는다 기다릴적에는 거북이처럼 오더니 갈 때에는 토끼처럼 가버리다니...이틀이 어느새 이리 지나갔을까 싶다 2년 전부터 대회에 참석을 하다 이번엔 직접 치루게 된 한국대회... 이런 저런 이유로 여러 프로그라모에 참여를 적절하게 하지는 못했다 .. 대회를 준비하면서 장소 협찬에서 주차비 후원,대회 책자 표지 문제등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다 원만하게 해결이 되어 큰 무리 없이 대회를 마쳤다는 것이 큰 위안이 된다
다시 일상의 나로 돌아온 지 일주일..그 사이 해수욕장도 갔다 오고 가까운 계곡에도 갔다 오고 소소한 집안일도 하고.. 협회 홈에 들어가서 수고했다는 인사말도 읽어보고 감사하다는 인사말도 남기고 대회 경비에 대해서도 마무리 정산을 하여 협회와 사이좋게 나누기도 하였다 8년 동안 산 이 집을 떠나 며칠 후면 이사갈 집 도배도 맡기고 오늘은 청소도 팔 빠지게 하였다 이사를 하면 정신 건강에 좋아..라며 심란한 내 맘을 위로하시던 선진님 말씀처럼 묵은 것을 털어버리고 그 동안 쓸데 없이 껴안고 있는 것들을 정리할 때인 듯 하다 신지 않는 신발을 정리하고 옷가지들을 분류하여 정리하고 냉장고 속도 비워내고 집안 구석 구석 쌓인 물건들을 들쳐내 보고 있다 익숙한 것에 대한 애착이 강한 자신도 보고 되고 새로운 장소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는 것도 보게 된다 8년을 산 이곳도 하물며 이럴진대 평생을 지고 이고 가꾸고 산 이 육신을 떠날 적에는 그 얼마나 두꺼운 착심이 있을 것인가 생각해 본다 길 떠나는 나그네의 빈 마음을 그리워 하면서도 현실의 나는 내 물건과 내 가족과 내가 거처하는 장소에 대한 참 막강한 애착심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다음주면 이 집이 아닌 다른 장소에 내가 있겠다는 생각 만으로 뻐근해짐을 느낀다 하지만 곧 적응을 하고 익숙해지면 또 그곳에 정을 붙이고 살 터이다 떠남이 있기에 새로움을 맞이하는 것이겠다 떠나는 에스페란티스토들을 보면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듯이..
이제 이 대회 후기담도 슬슬 마무리를 해 보자
늘 대회건 합숙이건 훈련이건 갔다 오면 후기담을 써야 정리가 된 것 같이 개운한 것이 아마도 후기담 중독증?에 걸린 것 같다 생각만으로 맴도는 여러 단어들을 어느 정도 쏟아 놓아야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다 생각 가는대로 몇 자 적는 것이 어쩔때는 쓸데없이 길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꿈보다 해몽이 더 재밌다고 이미 지나간 일들을 다른 이의 글을 통해 다시 한번 느껴보는것도 좋을성 싶다
전북 여산 태생의 정사섭님은 1930년대에 에스페란토 시로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나의 조국의 들에 장미 꽃이 피듯이 남의 나라의 들에도 장미 꽃이 핀다"
세상의 다툼이 많아지고 다름을 인정하지 못한 분쟁이 치열해지는 요즘,
무엇보다 상생의 마음이 그립다
한 여름의 더위를 식혀주는 것은 에어컨이나 선풍기,시원한 음료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상대방의 체온의 열기를 짜증으로 느끼지 않는 마음이 아닐런지..
지천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매미 소리가 소음만은 아님은 7년을 기다려 이주일을 살다가는 그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우리 마음의 여유에서 나오는 것처럼..
에스페란토의 인류인주의에 바탕하여 하나 되는 세계를 감히 꿈꾸어 본다
편견과 불화라는 세상의 신산한 그물에서 자유로움을 구가하기를...
그물에 걸리지 않는 저 바람처럼, 풍경을 울리는 저 바람처럼...
Esperanto estas la vehiklo, kiu portas nin de senviva dezerto al la mondo, kiu brilas belaj steloj! (에스페란토는, 황량한 사막에서 아름다운 별이 빛나는 세계로 우리를 날라다 주는 교통수단이다.)
Vivu, Esperanto!(에스페란토여! 영원하라!)
페탈로 마음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