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점점 깊어져 가는 2022년 10월 29일 오전 10시, 해동고 28회 부산 동기회원들이 영도 절영로 하늘 전망대 부근의 함지골 청소년 수련관 시내버스 정류소에 모여 봉래산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고국방문을 한 미국 메릴랜드 주에 거주하는 '孫永寅' 이 동기회 산행에 동행하여 취재한 글을 올립니다. 참고로 파일을 오픈할 때 사진이 빨리 뜰 수 있도록 사진의 화상도를 1200 픽셀로 축소하여 제작했습니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산행하는 친구들의 모습이 조금은 안쓰러웠습니다. 아무래도 등산을 하게되면 마스크 자체가 호흡하는데 지장을 주지요. 야외 마스크 착용은 해제 되었지만 대부분의 연장자들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안심을 못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강현규, 조만수 친구가 보입니다. 등산 코스가 멀어 보이는데 거동이 불편한 친구들은 조금은 어려워 보이기도 합니다
함지골 청소년 수련원을 지나면서 바위가 많고 등산길이 험한 산 길을 연루한 동기들이 함께 산행을 한다는 것은 다소 힘은 들지만 건강을 유지하는데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요?
산행한지 2Km 정도 걸어니 중간 중간에 운동할 수 있는 운동 기구들도 보입니다. 한국은 지자체가 생긴 이후 이런 시설들이 급 속도로 발전한 것으로 생각이 되어집니다. 문제는 설치는 잘 했지만 관리를 소홀하여 유지가 안되는 곳을 목격했습니다. 우리가 지나는 이곳은 공원으로 조성된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둘레길을 4Km 정도 걸어니 봉래산 등산길에서 아래쪽으로 멀리 보이는 부산 남항대교의 아름다운 바다 경치가 시야에 들어옵니다. 이 도로가 남해안의 해변가를 거제도 쪽으로 관통하는 남해 순환도로가 되었으니 어려운 구간을 시공한 한국의 토목공사 기술은 세계가 인정을 합니다. 그래서 외국에 거주하는 제 자신도 가슴이 뿌듯합니다.
송도쪽 부산 외항에는 물품을 운반하는 대형 선박들이 정박하여 외관상 좋게 보이지는 않지만 세관으로 부터 입국 신고 절차를 밟는 것 같아 보입니다. 멀리 보이는 부산송도 비치와 사진 중간 부분 상단에 보이는 작은 섬은 감천만과 가까운 두도 섬입니다.
50년 만에 만난 최종화(3학년6반) 친구, 서로 마스크를 쓴 상태에서 알아보지 못했지만 마스크를 벗는 순간 감격했습니다.
최종화 친구는 (주)온누리여행사 대표이사로 근무중입니다. "하나투어" 여행사를 경영하고 있는데 미국의 각 대도시 '하나투어" 와 연결되어 여행 대행 업무를 보는 곳입니다. 주로 해외여행을 원하시는 동기는 최종화 친구와 상의하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꼭 전화로 이 친구에게 문의하세요. 전화번호는 010-2557-3201(HP). 051-2557-3201(사무실)
4년만에 다시 만난 같은 반 3학년6반 친구, 하홍곤
봉래산 산책로를 따라 8Km를 걸었더니 부산항의 중심지가 보입니다. 왼쪽에는 남항대교 오른쪽에는 용두산 공원 타워가 보이네요. 인구는 많고 땅은 좁은 한국이다 보니 당연히 고층 아파트 건물을 많이 건설하여 주택난의 어려움은 충족되었지만. 해가 갈수록 인구가 계속 줄어들고 있으니 이렇게 많은 아파트는 어떻게 될까요? 궁금해 집니다.
둘레길 8Km 되는 지점에 도달하니 쉬어 갈수있는 뷰 전망대가 보였고 이곳에서 친구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며 한결 같이 뜻밖의 예상하지 않은 봉래산 둘레길 산 중텩에서 훤히 내려다 보이는 부산항의 경치를 구경할 수 있어서 너무나 좋다라고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한 뜻이 되었습니다.
9 Km 정도 걷는 지점에서 부터는 평지를 유지하며 비교적 산행하는데 쉬운 코스 였습니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학창 시절에 봉래산에서 부산항의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하지 못했는데 이번 산행에서 시야에 들어오는 부산항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야!" 하며 함성이 저절로 터져 나왔습니다.
10 Km 지점, 영도 봉래산 산책로에서 부산역 부근의 매립공사가 진행중인 진수문화공원 터가 보입니다. 매립으로 인하여 부산항이 좁어 드는 기분은 느끼지만 교통난을 해소하고 시민들을 위한 녹지장소를 더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기대가 됩니다. 특히 영도다리 부근에 있던 국제여객 터미널이 부산역에 가까운 장소로 옮겨 일본등지에서 입국하는 승객들이 새로 설치된 다리와 연결로를 통하여 부산역에서 KTX 를 이용할 수 있도록 편리하게 건설되었습니다.
이범천 친구와 함께, 원래는 "이만두" 이었는데 개명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부터는 해돋이 전망대도 보이며 산행에 필요한 시설들과 등산로에는 미끄럼을 방지하는 카펫같은 것이 깔려저있어 걷기에 편안했습니다. 이만두(이범천) 친구의 뒷 모습이 보입니다.
손영인 (미국 메릴랜드주 거주) 입니다.
여기서 부터는 고구마 시배지로 영도 조내기 고구마 역사공원으로 선정되어 역사를 소개하는 표지판들이 보입니다.
조선시대 영조 38년 "조엄" 사신이 일본 대마도에서 처음으로 고구마를 가져와 제주도에서 길렀다고 합니다.
거의 산행을 마치는 12Km 지점에 이런 역사적 유물이 있드군요. 산행은 고신대학 입구 부근에서 끝나 도보를 걸어 아래쪽에 위치한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봉래산 둘레길과 오리고기 전문식당등, 이번 동기모임에 최순용 동기가 수고를 많이했습니다.
부산에서도 태양광 시설이 많이 보입니다. 태양광은 설치 장소에 따라 에너지 절약에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유용한 시설이지만 우리가 거주하는 메릴랜드주에도 주로 평지에 많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탄소의 소모를 줄이는데 큰 도움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켈리포이나주는 2025년 부터 주 법으로 개솔린, 경유 차량 판매는 금지되어 전기차만 구입하게 되어 있습니다. 전기차는 전기의 힘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일반 자동차보다는 파워가 약하고 재 충전하는데 소모되는 시간과 장소가 부족합니다. 충돌시 바테리 폭발로 인하여 운전자가 탈출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은 사고가 빈번해 일어나고 있지만 아직은 전기차의 안전성을 신뢰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모 될줄로 믿습니다.
오리 불고기와 백숙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에서 식사를 나누며 담소를 나누는 친구들이 무척 부러웠습니다. 우리는 이제 70세 중반에 접어들지만 100세 인생이라는데 아직은 젊은 편입니다. ^^
한 동안 코로나 시국으로 인하여 정부의 과도한 통제로 모임을 갖지 못하다가 이렇게 동기들이 함께 모이니 모두가 해방된 기분이겠지요. 강현규 회장과 지상용 총무가 28회 부산동기회를 위하여 노력을 많이 하는 모습과 그중에는 특히 송국락 친구는 세금거두는데 대단한 소질이 있었고 커피까지 서비스하는 친절함을 친구의 얼굴을 통하여 읽을수 있네요. 한국 임시 거주처 처형댁으로 귀가할때 함께 다대포행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많은 예길 나누었습니다. ^^
좌석을 모여 한곳으로 연결시킬수가 없어 이렇게 한쪽에 친구들이 식사를 나누고 있네요.
오하이오 주, 휴론시에서 만났던 조만수 친구와 김정식 동기 덕분으로 저는 28회 동기회와 연결되었고 한국방문(2011, 2014, 2018, 2022) 할때마다 다행히 저의 일정이 맞아 동기회에 참석하는 영광을 얻어 친구들을 만날수 있었습니다.
하홍곤 친구는 바깥쪽을 응시하고 있는데 ? 이 사진은 잘 못 찍은 사진인데...
지상용 친구의 오른쪽에 안경쓰신 친구(갑짜기 성함이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는 미국인과 대화를 나눌수 있는 실력을 갖었습니다. 영어 대화는 현지인과 일상생활을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영어회화 실력 향상이 올수있지만 전화로 상대방이 알아 들을수 있다면 최상의 실력을 갖춘 셈입니다. ^^
부산 봉래산 둘레길 산행을 약 12Km를 친구들과 함께 걸어며 아래로 보이는 부산항의 경치는 마음문을 활짝여는 즐거움이었습니다. 짧은 기간을 부산에 있으면서 많은 동기들과의 추억을 안고 11월8일 출국하게 됩니다.
친구들의 건강을 빌면서...
글/사진 孫永寅
첫댓글 친구야
고국 여행하느라 수고 많았다.
서울에 올라왔으면 얼굴이라도 볼텐데 그렇지를 못했구나.
코로나 시대라 감염이 염려되어 서울 동기회는 12월 모임을 예정했다가 결국 취소하고 말았다.
호응하는 친구들이 적어 다음 기회로 미룬거지ᆢ
부산동기들이 건강이 염려되는 시기에 꿈에도 그리운 봉래산 산행을 미국에서 온 친구와 함께한 모습이 너무 보기 좋고 반갑다.
정말 멋쟁이 들이다.
우리가 이제 70대 중반에 접어드니 고령에 가까워지고 있다는게 사실이다.
자고나면 안녕이라고 언제 저 세상으로 갈지 모를 나이에 근접해 가고 있다는 말이다.
아무쪼록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한다.
그동안 친구도 회복되었으리라 믿어진다.
갑짝스런 처 형님께서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살아 생전에 언니를 병문해야 하는 것이 아내와 나의 도리라 생각하고 일시 귀국했다.
이번 귀국 길은 여러모로 세계 정세와 경제도 불안해서 여행하기에 좋은 시기는 아니었다.
한국의 입국 사정은 까다로왔고 고국방문하는 기분이 아니었다. 꼭 남의 나라를 방문하는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4년만에 고국 방문하여 병문안, 선친 산소 방문, 동기회 산행길 등 바쁜 일정을
잘 보내고 출국했지만 아직도 병상에 누워 계시는 처형님을 생각할 때
무거운 발걸음과 함께 모두에게 안녕을 고하며 떠나는 아내의 눈 시울에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모두가 건강하게 행복하게 잘 영위한다면
친구와 다시 만날 기회가 오리라 생각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