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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三十二回 晏蛾兒踰牆殉節 羣公子大鬧朝堂
제32회: 안아아는 담을 넘어 순절하고 여러 공자는 조당에서 떠들어대다.
話說,齊桓公背了管仲遺言,復用豎刁、雍巫、開方三人,鮑叔牙諫諍不從,發病而死。三人益無忌憚,欺桓公老耄無能,遂專權用事。順三人者,不貴亦富。逆三人者,不死亦逐。這話且擱過一邊。且說,是時有鄭國名醫,姓秦名緩,字越人,寓於齊之盧村,因號盧醫。少時開邸舍,有長桑君來寓,秦緩知其異人,厚待之,不責其直。長桑君感之,授以神藥,以上池水服之,眼目如鏡,暗中能見鬼物,雖人在隔牆,亦能見之,以此視人病症,五臟六腑,無不洞燭,特以診脈為名耳。
한편, 제환공이 관중의 유언을 따르지 않고 다시 수조(수초), 옹무(역아), 개방 세 사람을 불러 측근에 두었다. 포숙아가 간했지만 환공이 따르지 않자 화병이 나서 죽었다. 세 사람이 더욱 거리낄 게 없어 늙고 무능한 환공을 속여 마침내 권력을 쥐고 정사를 제멋대로 하기 시작했다. 이 세 사람에게 따르면 귀한 신분이 되거나 부자가 됐고, 이 세 사람에게 거슬리면 죽거나 쫓겨났다. 이 이야기는 잠깐 한 쪽으로 밀어둔다. 한편, 이때 정나라 사람으로서 유명한 의원 한 사람이 있었다. 성은 진(秦)이고 이름은 완(緩)이며 자는 월인(越人)이라 했다. 제나라의 노촌(盧村)이라는 곳에 살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노의(盧醫)라고 불렀다. 그는 어렸을 때 여관을 열어 먹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장상군(長桑君)이라는 사람이 찾아와 그 여관에 묵었다. 진완은 그가 비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올곧은 성질에도 탓하지 않고 극진히 대접했다. 장상군이 감격하여 신약을 주며 연못의 물에 타서 마시게 했다. 그러자 눈이 거울처럼 밝아지고 어두운 곳에서도 능히 귀신을 볼 수 있으며, 사람이 비록 담장 뒤에 숨어 있어도 역시 능히 볼 수 있었다. 이로써 사람의 병을 볼 때 오장육부까지 환히 살펴볼 수 있었고, 특히 진맥을 잘 보아 이름이 났다.
古時有個扁鵲,與軒轅黃帝同時,精於醫藥。人見盧醫手段高強,遂比之古人,亦號為扁鵲。先年扁鵲曾遊虢國,適值虢太子暴蹶而死,扁鵲過其宮中,自言能醫。內侍曰:「太子已死矣,安能復生?」扁鵲曰:「請試之。」內侍報知虢公,虢公流淚沾襟,延扁鵲入視。扁鵲教其弟子陽膚,用砭石針之。須臾,太子甦,更進以湯藥,過二旬復故。世人共稱扁鵲有回生起死之術。扁鵲周遊天下,救人無數。一日,遊至臨淄,謁見齊桓公,奏曰:「君有病在腠理,不治將深?」桓公曰:「寡人不曾有疾。」扁鵲出。
옛날 황제(黃帝) 헌원(軒轅) 시대에 의약에 정통한 편작(扁鹊)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노의(진완)가 병을 고치는 수단이 뛰어나자 사람들이 노의를 편작에 비유하다가 다시 편작이라고 불렀다. 그 전에 편작(진완)이 일찍이 괵국(虢國)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그때 마침 괵나라 태자가 갑자기 쓰러져 죽었다. 편작이 괵국의 궁중에 이르러 스스로 의술에 능한 의원이라고 했다. 내시가 말하기를, “태자가 이미 죽었는데 어찌 다시 살릴 수 있습니까?” 하니, 편작이 말하기를, “시험해 보겠습니다.” 했다. 내시가 괵나라 군주에게 알리니, 괵나라 군주가 눈물을 흘려 옷깃을 적시며 편작을 맞아들여서 보게 했다. 편작이 제자 양부(陽膚)를 시켜 돌침을 주자 조금 지나자 태자가 되살아났다. 다시 탕약을 들게 하고 20일이 지나자 완전히 회복되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모두 칭하기를 편작이 죽은 사람을 살리는 의술을 지녔다고 했다. 편작이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며 무수히 사람의 병을 치료했다. 하루는 임치(제나라 도읍)에 이르러 제환공을 뵙고 아뢰기를, “군주의 병은 살가죽에 있습니다. 깊어질 것인데 치료하지 않으실 건지요?” 하니, 제환공이 말하기를, “과인은 아직 아무 병도 없소.” 했다. 편작은 물러갔다.
後五日復見,奏曰:「君病在血脈,不可不治。」桓公不應。後五日又見,奏曰:「君之病已在腸胃矣。宜速治也!」桓公復不應。扁鵲退,桓公嘆曰:「甚矣,醫人之喜於見功也!無疾而謂之有疾。」過五日,扁鵲又求見,望見桓公之色,退而卻走。桓公使人問其故。曰:「君之病在骨髓矣!夫腠理,湯熨之所及也。血脈,針砭之所及也。腸胃,酒醪之所及也。今在骨髓,雖司命其奈之何!臣是以不言而退也。」又過五日,桓公果病,使人召扁鵲。其館人曰:「秦先生五日前已束裝而去矣。」桓公懊悔無已。
닷새 후에 다시 와서 제환공을 보더니 아뢰기를, “군주의 병은 혈맥에 들어갔습니다. 치료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했다. 제환공이 응하지 않았다. 다시 닷새가 지나서 와서 보고 아뢰기를, “군주의 병은 이미 창자와 위장에 들어갔습니다. 속히 치료하셔야 합니다.” 했다. 제환공이 다시 치료에 응하지 않자, 편작이 물러갔다. 제환공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심하다. 의원이란 자가 공을 세우기만을 즐겨 하여, 없는 병을 있다고 하니.” 했다. 닷새가 지나서 편작이 다시 와서 멀리서 제환공의 안색을 살피더니 물러나서 바로 가버렸다. 제환공이 사람을 시켜 그 까닭을 물으니 편작이 말하기를, “군주의 병은 이미 골수에 들었소. 무릇 병이 살가죽에 있을 때는 다만 찜질로 치료할 수가 있으며 병이 혈맥 속에 있을 때는 침으로써 다스릴 수 있습니다. 또한 병이 창자와 위장에 있을 때는 화제탕(火劑湯)으로 다스릴 수 있었으나, 지금은 이미 골수에 들어갔으니 비록 목숨을 맡은 신(神)이라도 어쩔 수 없게 되었소. 그래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왔소.” 했다. 그리고 닷새가 지나자 환공이 과연 병이 났다. 사람을 시켜 편작을 불러오게 하였다. 편작이 머물던 여관 주인이 말하기를, “진완 선생은 닷새 전에 이미 행장을 꾸려 떠났습니다.” 했다. 제환공은 후회하여 마지않았다.
桓公先有三位夫人,曰王姬、徐姬、蔡姬,皆無子。王姬徐姬相繼先卒。蔡姬退回蔡國。以下又有如夫人六位,俱因他得君寵愛,禮數與夫人無別,故謂之如夫人。六位各生一子。第一位長衛姬,生公子無虧。第二位少衛姬,生公子元。第三位鄭姬,生公子昭。第四位葛嬴,生公子潘。第五位密姬,生公子商人。第六位宋華子,生公子雍。其余妾媵,有子者尚多,不在六位如夫人之數。那六位如夫人中,惟長衛姬事桓公最久。六位公子中,亦惟無虧年齒最長。桓公嬖臣雍巫豎刁,俱與衛姬相善,巫刁因請於桓公,許立無虧為嗣。
제환공에게는 세 사람의 부인이 있었는데 주나라의 왕녀인 왕희(王姬), 서(徐)나라에서 온 서희(徐姬), 그리고 채나라 군주의 딸 채희(蔡姬)였다. 그러나 모두 소생이 없었다. 왕희와 서희가 연이어 일찍 죽고 채희는 쫓겨나 채나라로 돌아갔다. 그 밑에 또 부인과 같은 여섯 명이 있었는데, 그들 모두가 제환공의 총애를 받아 대우가 정부인과 다름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부인과 같다고 했다. 여섯 명은 각각 아들을 한 명씩을 낳았다. 첫째인 장위희(長衛姬)는 공자 무휴(無虧)를 낳았고, 둘째인 소위희(少衛姬)는 공자 원(公子元)을 낳았으며, 셋째인 정희(鄭姬)는 공자 소(公子昭)를 낳았고, 넷째인 갈영(葛嬴)은 공자반(公子 潘)을 낳았으며, 다섯째인 밀희(密姬)는 공자 상인(商人)을 낳았고, 여섯째인 송화자(宋華子)는 공자 옹(公子雍)을 낳았다. 그 밖의 첩과 몸종들에게서 난 자식들이 많이 있었으나 여섯 명의 부인과 같은 지위에 들지는 못했다. 그 여섯 부인과 같은 사람들 중에서 오직 장위희가 제환공을 가장 오래도록 모셨다. 그래서 여섯 명의 공자 중에서 또한 오직 무휴의 나이가 가장 많았다. 제환공과 총애를 받는 신하인 옹무(역아), 수조(수초) 두 사람이 장위희와 사이가 좋아서 옹무와 수조가 제환공에게 청하여 무휴를 후계로 삼겠다고 허락했다.
後又愛公子昭之賢,與管仲商議,在葵邱會上,囑咐宋襄公,以昭為太子。衛公子開方,獨與公子潘相善,亦為潘謀嗣立。公子商人性喜施予,頗得民心,因母密姬有寵,未免萌覬覦之心。內中只公子雍出身微賤,安分守己。其他五位公子,各樹黨羽,互相猜忌,如五隻大蟲,各藏牙爪,專等人來搏噬。桓公雖然是個英主,卻不道劍老無芒,人老無剛,他做了多年的侯伯,志足意滿,且是耽於酒色之人,不是個清心寡慾的,到今日衰耄之年,志氣自然昏惰了。況又小人用事,蒙蔽耳目,但知樂境無憂境,不聽忠言聽諛言。
제환공은 뒤에 다시 공자 소(公子昭)가 현명함을 사랑하여 관중과 상의하고 규구(葵邱)의 회맹에서 송양공(宋襄公)에게 부탁하여 공자소를 태자로 삼았다. 위공자 개방은 홀로 공자반과 친하여 역시 반을 태자로 세우려는 모의를 했다. 공자 상인은 성품이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여 자못 인심을 얻었고, 그 어머니 밀희(密姬)가 제환공의 총애를 받았기 때문에 기회를 엿보는 마음이 싹트고 있었다. 그중에서 단지 공자 옹(公子雍)만이 그 모친의 출신이 미천하여 자기 분수를 지켜 욕심을 내지 않았다. 그 나머지 다섯 공자들은 각기 도당을 만들고 서로 시기하여 마치 다섯 마리의 큰 독충이 각기 이빨과 발톱을 감추고 사람이 다가오면 덮쳐들어 물어뜯을 기세였다. 제환공이 비록 뛰어난 군주였으나 말할 것도 없이 칼도 오래 쓰면 날이 무뎌지듯이 사람도 나이가 들면 기력이 줄어드는 법이라, 그는 오래도록 제후의 우두머리가 되어 뜻한 바에 만족하였다. 또한 주색에 탐닉하여 마음을 맑게 하고 욕심을 적게 하지 못하였다. 오늘에 이르러 날로 늙고 쇠약해져서 뜻과 기개도 자연히 혼미하고 게을러졌다. 하물며 소인이 정사를 맡아 제환공의 이목을 가리니 단지 즐거운 일만 찾고 근심스러운 일은 알지 못하여 충성스러운 말은 듣지 않고 아첨하는 말만 들었다.
那五位公子,各使其母求為太子,桓公也一味含糊答應,全沒個處分的道理。正所謂「人無遠慮,必有近憂。」忽然桓公疾病,臥於寢室。雍巫見扁鵲不辭而去,料也難治了。遂與豎刁商議出一條計策,懸牌宮門,假傳桓公之語。牌上寫道:「寡人有怔忡之疾,惡聞人聲,不論群臣子姓,一概不許入宮,著寺貂緊守宮門,雍巫率領宮甲巡邏。一應國政,俱俟寡人病痊日奏聞。」巫刁二人,假寫懸牌,把住宮門。單留公子無虧,住長衛姬宮中,他公子問安,不容入宮相見。
그 다섯 공자들은 각기 자기의 모친을 동원하여 태자의 자리를 요구했으나 제환공은 모두 애매한 대답만 할 뿐 어떻게 처리하겠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다. 바로 그래서 ‘사람이 먼 앞날을 생각하지 않으면 반드시 가까운 데서 그 근심거리가 생긴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갑자기 제환공이 병이 나서 자리에 눕게 되었다. 옹무는 편작이 말도 없이 가버리는 것을 보고 환공의 병은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즉시 수조와 상의하여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해 냈다. 두 사람은 환공의 명령처럼 꾸며 현판에 글을 써서 궁문 앞에 걸었다. 현판에 쓰기를, “과인이 가슴이 울렁거리고 불안해지는 병이 있어 사람들의 소리를 듣기 싫으니 신하들이나 자손이나 일절 입궁을 불허한다. 시인(내시) 수초(竪貂)는 굳게 궁문을 지키고 옹무(역아)는 궁중 병사를 이끌고 궁궐 주위를 순찰하라. 모든 국정은 과인의 병이 낫기를 기다려 한꺼번에 올리도록 하라.” 고 했다. 옹무와 수조 두 사람이 가짜 현판을 궁문에 걸고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지켰다. 다만 공자 무휴와 장위희만 궁중에 머물게 하고, 다른 공자들은 문안을 올리지 못하도록 입궁을 막았다.
過三日,桓公未死,巫刁將他左右侍衛之人,不問男女,盡行逐出,把宮門塞斷。又於寢室周圍,築起高牆三丈,內外隔絕,風縫不通。止存牆下一穴,如狗竇一般,早晚使小內侍鑽入,打探生死消息。一面整頓宮甲,以防群公子之變。不在話下。再說,桓公伏於牀上,起身不得,呼喚左右,不聽得一人答應,光著兩眼,呆呆而看。只見撲蹋一聲,似有人自上而墜,須臾推窗入來。桓公睜目視之,乃賤妾晏蛾兒也。桓公曰:「我腹中覺餓,正思粥飲,為我取之!」蛾兒對曰:「無處覓粥飲。」
3일이 지나도 제환공이 죽지 않자 옹무와 수조가 제환공의 곁에서 시중을 들고 있던 사람들을 남녀불문하고 모두 쫓아내고 궁문을 모두 폐쇄해 버렸다. 또한 침실 주위에 담장을 세 길 높이로 쌓아서 안팎을 격리하여 바람도 통하지 않게 했다. 단지 담장 밑에 마치 개구멍 같은 구멍을 하나 만들어 놓고 아침저녁으로 작은 내시가 기어들어 가서 제환공이 죽었는지를 알아보게 하였다. 한편으로는 궁궐 병사들을 정돈하여 공자들의 변란을 방비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한편, 제환공이 몸도 일으키지 못하고 침상에 누워서 심부름하는 시종들을 불렀으나 대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제환공의 두 눈에서는 빛이 사라지고 허공만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나고, 마치 사람이 위에서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곧 창문을 밀고 사람이 들어왔다. 제환공이 두 눈을 크게 뜨고 보니 천첩 안아아(晏蛾兒)였다. 제환공이 말하기를, “나는 배가 고프다. 죽이 먹고 싶구나. 좀 갖다 다오.” 하니, 안아아가 대답하기를, “죽을 구할 데가 없습니다.” 했다.
桓公曰:「得熱水亦可救渴。」蛾兒對曰:「熱水亦不可得。」桓公曰:「何故?」蛾兒對曰:「易牙與豎刁作亂,守禁宮門,築起三丈高牆,隔絕內外,不許人通,飲食從何處而來?」桓公曰:「汝如何得至於此?」蛾兒對曰:「妾曾受主公一幸之恩,是以不顧性命,踰牆而至,欲以視君之瞑也。」桓公曰:「太子昭安在?」蛾兒對曰:「被二人阻擋在外,不得入宮。」桓公嘆曰:「仲父不亦聖乎?聖人所見,豈不遠哉!寡人不明,宜有今日。」乃奮氣大呼曰:「天乎,天乎!小白乃如此終乎?」
제환공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뜨거운 물이라도 마셔 갈증을 풀고 싶구나!”하니, 안아아가 대답하기를, “뜨거운 물도 구할 수 없습니다.” 했다. 제환공이 말하기를, “어째서 구할 수 없다고 하느냐?” 하니, 안아아가 대답하기를, “역아와 수조가 난을 일으켜 궁문을 지키고 세 길의 높은 담을 쌓아서 안과 밖을 격리하여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음식을 어디에서 가져오겠습니까?” 했다. 제환공이 말하기를, “너는 어떻게 여기에 들어왔느냐?” 하니, 안아아가 말하기를, “천첩은 일찍이 주공의 은총을 한번 입은 바 있어서 목숨을 걸고 담을 넘어 주공의 임종을 보러 왔습니다.” 했다. 제환공이 말하기를, “태자 소는 어디 있느냐?” 하니, 안아아가 대답하기를, “이아와 수조에게 막혀서 입궁을 못하고 있습니다.” 했다. 제환공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중보가 또한 성인이 아닌가! 성인이 본 바가 어찌 틀리리요. 과인이 총명하지 못해 오늘 이렇게 된 것이 마땅하구나.” 하고, 이에 기운을 모아 큰 소리로 부르짖기를, “하늘이여, 하늘이여! 소백이 이렇게 죽어야 합니까?” 했다.
連叫數聲,吐血數口,謂蛾兒曰:「我有寵妾六人,子十餘人,無一人在目前者。單只你一人送終,深愧平日未曾厚汝。」蛾兒對曰:「主公請自保重,萬一不幸,妾情願以死送君!」桓公嘆曰:「我死若無知則已,若有知,何面目見仲父於地下?」乃以衣袂自掩其面,連嘆數聲而絕。計桓公即位於周莊王十二年之夏五月,死於周襄王九年之冬十月,在位共四十有三年,壽七十三歲。潛淵先生有詩單讚桓公好處:「姬轍東遷綱紀亡,首倡列國共尊王。南徵僭楚包茅貢,北啟頑戎朔漠疆。立衛存邢仁德著,定儲明禁義聲揚。正而不譎《春秋》許,五伯之中業最強。」
제환공은 계속해서 몇 번 더 부르짖더니 입에서 피를 몇 번 토하고 나서 안아아에게 말하기를, “나는 총애하는 첩이 여섯이고 자식은 십여 명인데, 눈앞에 한 사람도 없고, 다만 너 한 사람만이 나의 임종을 지켜 주는구나! 평소에 너를 잘 대해주지 못한 것이 매우 후회되는구나!” 하니, 안아아가 대답하기를, “주공께서는 부디 몸을 보중하옵소서! 만일 주공께서 돌아가신다면 제가 죽음으로써 주군을 따라가겠습니다.” 했다. 제환공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내가 만약 죽어서 아무것도 모른다면 그만이지만, 만약 안다면 무슨 면목으로 지하에서 중보를 만날 수 있겠는가?” 하고, 옷소매로 자기의 얼굴을 가리고 몇 번 한탄을 계속하더니 숨이 끊어졌다. 제환공은 주나라 장왕 12년(기원전 685년) 여름 5월에 즉위하여. 주나라 양왕 9년(기원전 643년) 겨울 10월에 죽었으니 모두 합하여 43년간을 군주의 자리에 있었다. 수명이 73세였다. 잠연(潛淵) 선생이 시를 지어 제환공이 행한 훌륭한 일을 찬양하기를, “주나라가 동쪽으로 옮겨 천하의 기강이 무너지자, 열국을 이끌어 주나라 왕실을 섬겼다. 왕호를 칭하는 초나라를 남정하여 포모를 바치게 하고, 흉악한 북융을 제압하여 강토를 사막까지 넓혔다. 위나라를 다시 세우고 형나라를 지켜 인덕으로 나타내고, 혼란을 진압하고 법을 밝혀 정의를 드날렸다. 춘추 때 바르고 거짓이 없었던 것으로 말하자면, 제환공은 다섯 영웅 중에서 공로가 가장 컸도다!” 했다.
髯仙又有一絕,嘆桓公一生英雄,到頭沒些結果。詩云:「四十餘年號方伯,南摧西抑雄無敵。一朝疾臥牙刁狂,仲父原來死不得!」晏蛾兒見桓公命絕,痛哭一場。欲待叫喚外人,奈牆高聲不得達,欲待踰牆而出,奈牆內沒有襯腳之物,左思右想,嘆口氣曰:「吾曾有言:『以死送君』。若殯殮之事,非婦人所知也!」乃解衣以覆桓公之屍,復肩負窗槅二扇以蓋之,權當掩覆之意。向牀下叩頭曰:「君魂且勿遠去,待妾相隨!」遂以頭觸柱,腦裂而死。賢哉此婦也!
염선(髥仙)이 또 한 수의 시를 지어 제환공이 일세의 영웅이었지만 그 말로가 비참하게 된 것을 한탄하기를, “사십여 년 동안 제후의 우두머리로 불리면서, 남쪽 초나라를 치고 서융을 무찔러 대항할 자가 없었다. 하루아침에 병들어 눕자 역아와 수조가 미쳐 날뛰었다. 중보가 살았더라면 그렇게 죽지는 않았으리라!” 했다. 안아아는 제환공의 숨이 끊어진 것을 보고 한바탕 통곡하고 밖에 있는 사람을 부르려고 했으나 담장이 높아서 소리가 전달되지 않았다. 다시 담장을 넘어 밖으로 나가려고 해도 담장 안에 딛고 올라설 물건이 없어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한탄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죽어서 주군을 전송하겠다고 이미 말을 했는데, 시체를 염하는 일이야 여인네가 알 바가 아니다.” 하고, 즉시 옷을 벗어 제환공의 시체를 덮고 다시 창가에 있던 부채 두 개를 어깨에 메고 끌어다 시체를 가렸는데 그것은 잠시나마 제환공의 시신을 가려주고 싶어서였다. 안아아가 제환공의 침상 밑에 머리를 조아리고 말하기를, “주군의 혼백은 아직 멀리 가지 마십시오. 제가 따라갈 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하고, 마침내 머리를 기둥에 부딪쳐 뇌가 깨져 죽었다. 어질구나 이 여인이여!
是夜,小內侍鑽牆穴而入,見寢室堂柱之下,血泊中挺著一個屍首,驚忙而出,報與巫刁二人曰:「主公已觸柱自盡矣!」巫刁二人不信,使內侍輩掘開牆垣,二人親自來看,見是個婦人屍首,大驚。內侍中有認得者,指曰:「此晏蛾兒也。」再看牙牀之上,兩扇窗槅,掩蓋著個不言不動,無知無覺的齊桓公。嗚呼哀哉,正不知幾時氣絕的。豎刁便商議發喪之事。雍巫曰:「且慢,且慢,必須先定了長公子的君位,然後發喪,庶免爭競。」豎刁以為然。
그날 밤 작은 내시가 작은 구멍을 통해 들어가서 침실의 기둥 밑에 피가 흥건히 고인 곳에 죽어있던 시신을 보았다. 깜짝 놀라 구멍을 기어 나와 옹무와 수조 두 사람에게 보고하기를, “주공께서 이미 기둥에 머리를 부딪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습니다.” 했다. 옹무와 수조가 그 말을 믿지 못하고, 내시들을 시켜 담장을 헐게 하고 두 사람이 직접 들어가 확인했다. 여인의 시체를 보고 크게 놀라자, 내시들 중에서 알아보는 자가 가리켜 말하기를, “이 여인은 궁녀 안아아입니다.” 했다. 다시 살펴보니 상아로 장식한 침상 위에 창가에 있던 부채 두 개가 말도 없고 움직임도 없는 무엇인가를 가리고 있었다. 그것은 알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제환공의 시신이었다. 아아, 슬프구나.제환공의 숨이 언제 넘어갔는지 아무도 몰랐다. 수조가 문득 장례의 일을 상의하자 옹무가 말하기를, “천천히, 서두르면 안 됩니다. 반드시 먼저 장공자 무휴의 군주 자리를 정한 후에 발상하여야 공자들이 군주 자리를 다투지 않게 됩니다.” 했다. 수조도 그렇다고 했다.
當下二人同到長衛姬宮中,密奏曰:「先公已薨逝矣!以長幼為序,合當夫人之子。但先公存日,曾將公子昭囑託宋公,立為太子,群臣多有知者;倘聞先公之變,必然輔助太子。依臣等之計,莫若乘今夜倉卒之際,即率本宮甲士,逐殺太子,而奉長公子即位,則大事定矣!」長衛姬曰:「我婦人也,惟卿等好為之!」於是雍巫豎刁各率宮甲數百,殺入東宮,來擒世子。且說,世子昭不得入宮問疾,悶悶不悅。是夕方挑燈獨坐,恍惚之間,似夢非夢,見一婦人前來謂曰:「太子還不速走,禍立至矣!妾乃晏蛾兒也,奉先公之命,特來相報。」
즉시 두 사람이 장위희 궁에 이르러 은밀히 아뢰기를, “주군께서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나이의 순서를 따지면 부인의 아들이 군주 자리를 이으셔야 합니다. 그러나 주공이 살아 계실 때 공자 소를 송나라 군주에게 부탁하고 태자로 세운 것을 신하들이 많이 알고 있습니다. 만약 주공께서 이미 돌아가신 것을 알게 된다면 반드시 태자를 도울 것입니다. 신들의 계책으로는 오늘 밤 번개같이 궁중의 병사들을 거느리고 가서 태자를 죽이고 장공자를 받들어 즉위하게 하면 큰일이 정해질 것입니다.” 하니, 장위희가 말하기를, “나는 아녀자이니 오직 경들이 좋을 대로 하시오!” 했다. 이에 옹무와 수조가 각각 궁중의 군사 수백 명씩을 거느리고 세자 소를 잡으려고 동궁으로 달려갔다. 한편, 세자 소는 궁궐로 들어가 제환공에게 문병을 할 수가 없어 걱정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 바야흐로 등불을 밝히고 혼자 앉아 있는데 정신이 멍해지면서 비몽사몽간이 되어 부인 한 사람이 다가와 말하기를, “태자는 빨리 도망가시오. 화가 닥쳐오고 있습니다. 첩은 안아아라고 하는데 주군의 명을 받들어 특별히 찾아와 알려드립니다.” 했다.
昭方欲叩之,婦人把昭一推,如墜萬丈深淵。忽然驚醒,不見了婦人。此兆甚奇,不可不信。忙呼侍者取行燈相隨,開了便門,步至上卿高虎之家,急扣其門。高虎迎入,問其來意,公子昭訴稱如此。高虎曰:「主公抱病半月,被奸臣隔絕內外,聲息不通。世子此夢,凶多吉少。夢中口稱先公,主公必已薨逝了。寧可信其有,不可信其無,世子且宜暫出境外,以防不測。」昭曰:「何處可以安身?」高虎曰:「主公曾將世子囑咐宋公,今宜適宋,宋公必能相助。虎乃守國之臣,不敢同世子出奔。吾有門下士崔夭,見管東門鎖鑰。吾使人吩咐開門,世子可乘夜出城也。」
세자 소가 막 잡으려고 하는데 그 부인이 세자 소를 잡아 밀치니, 마치 만 길의 깊은 못으로 추락하는 듯했다. 갑자기 놀라 정신을 차리니 부인은 보이지 않았다. 그 조짐이 기이하여 안 믿을 수도 없었다. 황망 중에 시자를 불러 등불을 들고 따라오라며 대문을 열고 걸어서 상경 고호(高虎)의 집에 이르렀다. 급히 대문을 두드리자 고호가 맞아들여 찾아온 까닭을 물었다. 공자
소가 조금 전에 꾼 꿈 이야기를 했다. 고호가 말하기를, “주공이 병이 든 지 반달이 되었습니다. 간신들이 안팎을 격리하여 소식이 통하지 않았는데 세자께서 이런 꿈을 꾸셨으니 흉한 일은 많고 길한 일은 적습니다. 꿈속에서 선공(先公)이라 말했으니 주공께서는 틀림없이 이미 운명하셨습니다. 그런 일이 있으리라고 믿을지언정 그런 일이 없다고 믿을 수는 없습니다. 세자께서는 잠시 나라 밖으로 나가 계시어 뜻밖의 환란을 방비하시기 바랍니다.” 하니, 세자 소가 말하기를, “어디로 가야 몸을 안전하게 의탁할 수 있겠습니까?” 했다. 고호가 말하기를, “주공께서 살아 계실 때에 이미 세자를 송나라 군주에게 부탁했습니다. 지금 마땅히 송나라로 가신다면 송나라 군주가 도울 것입니다. 저는 나라를 지켜야 하는 신하라 감히 세자와 함께 달아날 수는 없으니, 저희 집안의 문객으로 하사(下士) 직에 있는 최요(崔夭)가 동문의 열쇠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람을 보내 문을 열라고 분부하면 세자께서 밤을 틈타 성을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했다.
言之未已,閽人傳報:「宮甲圍了東宮。」嚇得世子昭面如土色。高虎使昭變服,與從人一般,差心腹人相隨,至於東門,傳諭崔夭,令開鑰放出世子。崔夭曰:「主公存亡未知,吾私放太子,罪亦不免。太子無人侍從,如不棄崔夭,願一同奔宋。」世子昭大喜曰:「汝若同行,吾之願也!」當下開了城門,崔夭見有隨身車仗,讓世子登車,自己執轡,望宋國急急而去。話分兩頭。卻說,巫刁二人,率領宮甲,圍了東宮,遍處搜尋,不見世子昭的蹤影。
고호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문지기가 알리기를, “궁궐을 지키던 병사들이 동궁을 에워쌌다고 합니다.” 했다. 세자소가 깜짝 놀라 얼굴색이 흙빛이 되었다. 고호가 세자 소에게 종과 같은 옷으로 바꿔 입히고 심복을 보내 따르게 했다. 동문에 이르자 그 심복이 고호의 말을 최요에게 전하여, 성문을 열고 세자를 내보내게 했다. 최요가 말하기를, “주공이 돌아가셨는지 아직 알지 못하는데 제가 사사로이 세자를 밖으로 내보내면 그 죄를 면할 수 없습니다. 태자께서 시종이 없으니 만일 저를 내치지 않는다면 함께 송나라까지 모시고 싶습니다.” 했다. 세자 소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그대가 만약 나와 동행한다면 그것은 내가 바라는 바요!” 했다. 최요가 곧 성문을 열고 조그만 수레를 구하여 세자를 태우고 자신이 말고삐를 잡고 송나라를 향하여 급히 달려갔다. 이야기는 두 갈래로 나뉜다. 한편, 옹무와 수조 두 사람은 궁궐 병사들을 거느리고 동궁을 포위하여 두루 찾았지만 세자 소의 종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看看鼓打四更,雍巫曰:「吾等擅圍東宮,不過出其不意。若還遲至天明,被他公子知覺,先據朝堂,大事去矣。不如且歸宮擁立長公子,看群情如何,再作道理。」豎刁曰:「此言正合吾意。」二人收甲,未及還宮,但見朝門大開,百官紛紛而集。不過是高氏、國氏、管氏、鮑氏、陳氏、隰氏、南郭氏、北郭氏、閭邱氏這一班子孫臣庶,其名也不可盡述。這些眾官員聞說巫刁二人,率領許多甲士出宮,料必宮中有變,都到朝房打聽消息。宮內已漏出齊侯凶信了。又聞東宮被圍,不消說得,是奸臣乘機作亂。
이윽고 사경(밤 2시경)을 알리는 북소리가 들렸다. 옹무가 말하기를, “우리가 임의로 동궁을 포위한 일은 예상치 않게 처리하고자 함이었는데 만약 해가 밝도록 지체한다면 다른 공자들이 알아차리고 조당을 먼저 점거하면 큰일을 그르치게 되오. 궁궐로 돌아가 장공자 무휴를 옹립하고 여러 공자의 동향을 살펴가면서 다시 도리를 찾아봄이 좋겠소.” 하니, 수조가 말하기를, “그 말이 내 뜻에 맞소.” 했다. 두 사람이 병사들을 이끌고 궁궐에 미처 당도하기도 전에 조당으로 들어가는 문이 크게 열려있고, 백관들이 어지럽게 몰려들고 있었다. 그들은 고(高)씨, 국(國)씨, 관(管)씨, 포(鮑)씨, 진(陳)씨, 습(隰)씨. 남곽(南郭)씨, 북곽(北郭)씨, 여구(閭邱)씨의 일반 자손과 모든 신하와 백성들로서, 그 이름을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모든 관원들은 옹무와 수조가 많은 군사를 이끌고 궁궐을 빠져나갔다는 소문을 듣고 반드시 궁중에 무슨 변이 일어난 것으로 알고, 모두 조당에 이르러 소식을 알아보려 했다. 궁 안에서는 제환공의 죽음을 이미 알고 있었고, 또 동궁이 포위당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이는 말할 필요도 없이 간신들이 기회를 이용하여 반란을 일으켰다고 생각했다.
「那世子是先公所立,若世子有失,吾等何面目為齊臣?」三三兩兩,正商議去救護世子。恰好巫刁二人兵轉。眾官員一擁而前,七嘴八張的,都問道:「世子何在?」雍巫拱手答曰:「世子無虧,今在宮中。」眾人曰:「無虧未曾受命冊立,非吾主也,還我世子昭來!」豎刁仗劍大言曰:「昭已逐去了!今奉先公臨終遺命,立長子無虧為君,有不從者,劍下誅之。」眾人憤憤不平,亂嚷亂罵:「都是你這班奸佞,欺死蔑生,擅權廢置。你若立了無虧,吾等誓不為臣!」大夫管平挺身出曰:「今日先打死這兩個奸臣,除卻禍根,再作商議。」
신하들이 말하기를, “세자는 선공이 살아 계실 때에 이미 세웠는데, 만약 세자가 없어졌다면 우리는 무슨 면목으로 제나라의 신하라고 말할 수 있겠소?” 하며, 삼삼오오 짝을 지어 세자를 구하러 가야 한다고 의논을 했다. 그때 마침 옹무와 수조 두 사람의 군사가 돌아왔다. 여러 관원이 두 사람을 에워싸고 중구난방으로 묻기를, “세자는 어디에 계시는가?” 하니, 옹무가 두 손을 모으고 대답하기를, “세자는 무휴 공자이신데 지금 궁중에 계십니다.” 했다. 여러 사람이 말하기를, “무휴는 아직 선군으로부터 명을 받아 세자로 책봉된 일이 없으니 우리의 주군이 아니오. 우리의 세자 소를 빨리 모셔 오시오.” 하니, 수조가 칼을 뽑아 들고 큰 소리로 말하기를, “소는 이미 달아났소. 지금 선공이 임종할 때의 유언을 받들어 장자 무휴를 군주로 세울 것이오. 만일 따르지 않는 자가 있다면 이 칼로 벨 것이오.” 하니, 여러 사람이 분해하고 불평하며 어지럽게 아우성치고 욕하기를, “이것은 모두 너희 같은 간신들이 죽은 선공을 속이고 살아 있는 우리를 능멸하여 제멋대로 권력을 휘둘러 세자를 폐하려고 하는 짓이다. 너희가 만약 무휴를 세운다면 우리는 맹세코 무휴의 신하가 되지 않겠다.” 했다. 대부 관평(管平)이 앞장서 나와 말하기를, “오늘 저 간신 두 놈을 먼저 쳐 죽여서 화근을 없앤 후에 다시 상의하도록 합시다.” 했다.
手挺牙笏,望豎刁頂門便打。豎刁用劍架住。眾官員卻待上前相助,只見雍巫大喝曰:「甲士們,今番還不動手,平日養你每何幹?」數百名甲士,各挺器械,一齊發作,將眾官員亂砍。眾人手無兵器,況且寡不敵眾,弱不敵強,如何支架得來?正是:「白玉階前為戰地,金鑾殿上見閻王。」百官死於亂軍之手者,十分之三。其餘帶傷者甚多,俱亂竄出朝門去了。再說,巫刁二人,殺散了眾百官,天已大明,遂於宮中扶出公子無虧,至朝堂即位。內侍們鳴鐘擊鼓,甲士環列兩邊,階下拜舞稱賀者,剛剛只有雍巫豎刁二人。無虧又慚又怒。
관평은 손에 들고 있던 상아 홀(笏)을 수조의 이마를 향하여 내리쳤다. 수조가 칼을 들어서 홀을 쳐서 막았다. 여러 관원이 관평을 돕기 위해 앞으로 뛰어나오자 이를 본 옹무가 큰소리로 외치기를, “무사들은 어찌하여 손을 쓰지 않느냐? 평소에 내가 너희들을 양성하여 매양 어디에 쓰겠느냐?” 하니, 수백 명의 무장병이 무기를 손에 들고 일제히 뛰어나와 백관들을 어지럽게 베었다. 여러 관원의 손에는 병장기가 없었고 더구나 수가 적어서 많은 병사를 대적할 수 없었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대적하지 못하는 법인데 어떻게 버틸 수 있겠는가? 이것은 마치 ‘백옥으로 만든 계단 앞에서 벌어진 전쟁이며 금으로 만든 옥좌에 앉아 있는 염라대왕을 만난’ 격이 되어 버렸다. 난군의 손에 죽은 관리가 열 명 가운데 세 명은 되었다. 그 밖에 부상을 당한 사람도 매우 많았다, 모두 어지럽게 쫓겨서 조정문을 나와 달아났다. 한편, 옹무와 수조 두 사람이 백관들을 죽이거나 흩어지게 하고 나니 날은 이미 훤히 밝았다. 마침내 궁중에서 공자 무휴를 조당으로 모시고 나와서 제나라 군주의 자리에 앉혔다. 내시들이 종을 두드리고 북을 울렸으며, 무장병들은 조당의 뜰 양쪽으로 정렬했다. 계단 밑에서 절을 하고 춤을 추며 축하하는 자는 단지 옹무와 수조 두 사람뿐이었다. 무휴는 부끄럽고 화가 났다.
雍巫奏曰:「大喪未發,群臣尚未知送舊,安知迎新乎?此事必須召國高二老入朝,方可號召百官,壓服人眾。」無虧准奏,即遣內侍分頭宣召右卿國懿仲,左卿高虎。這兩位是周天子所命監國之臣,世為上卿,群僚欽服,所以召之。國懿仲與高虎聞內侍將命,知齊侯已死,且不具朝服,即時披麻帶孝,入朝奔喪。巫刁二人,急忙迎住於門外,謂曰:「今日新君御殿,老大夫權且從吉。」國高二老齊聲答曰:「未殯舊君,先拜新君,非禮也。誰非先公之子,老夫何擇,惟能主喪者,則從之。」巫刁語塞。國高乃就門外,望空再拜,大哭而出。
옹무가 아뢰기를, “대상(大喪)을 아직 발표하지 않아서 신하들이 옛 군주를 내보내지 않았으니 어찌 새 군주를 영접할 줄 알겠습니까? 이 일은 반드시 국의중(國懿仲), 고호(高虎) 두 노대신을 입조하게 하여야 비로소 백관들을 부를 수 있고 사람들을 눌러 복종시킬 수 있습니다.” 하니, 무휴가 허락하여 즉시 내시를 나누어 우경(右卿) 국의중(國懿仲)과 좌경(左卿) 고호(高虎)의 집으로 보냈다. 이 두 사람은 주나라 천자의 명에 따라 제나라를 감국하는 임무를 띠고 있어 두 집안이 대대로 상경이 되었기 때문에 신료들은 마음속으로 존경하고 복종했다. 그래서 그들을 불렀다. 국의중과 고호는 내시가 전하는 명을 듣고 제환공이 이미 죽었다는 것을 알았다. 두 사람은 조복 대신에 삼베로 만든 상복을 입고 문상을 하러 조당으로 갔다. 옹무와 수조 두 사람이 황망 중에 조당 문밖에서 맞이하여 말하기를, “오늘 새 군주께서 전상에 나와 계시니, 노대부께서는 잠시 길복으로 갈아입고 새 군주를 뵙도록 하시지요.” 하니, 국의중과 고호 두 대신이 한 목소리로 대답하기를, “옛 군주의 빈소를 뵙기 전에 새 군주에게 먼저 절을 올리는 것은 예에 벗어난 일입니다. 우리는 여러 공자 중 누가 되든지 간에 선군의 상을 치르는 공자를 따를 것입니다.” 했다. 옹무와 수조가 말이 막혔다. 국의중과 고호가 조문 밖에서 하늘을 향하여 절을 두 번 올리고 크게 곡하고 물러갔다.
無虧曰:「大喪未殯,群臣又不服,如之奈何?」豎刁曰:「今日之事,譬如搏虎,有力者勝。主上但據住正殿,臣等列兵兩廡,俟公子有入朝者,即以兵劫之。」無虧從其言。長衛姬盡出本宮之甲,凡內侍悉令軍裝,宮女長大有力者,亦湊甲士之數,巫刁各統一半,分布兩廡。不在話下。且說,衛公子開方,聞巫刁擁立無虧,謂葛嬴之子潘曰:「太子昭不知何往,若無虧可立,公子獨不可立乎?」乃悉起家丁死士,列營於右殿。密姬之子商人,與少衛姬之子元共議:「同是先公骨血,江山莫不有分。公子潘已據右殿,吾等同據左殿。世子昭若到,大家讓位,若其不來,把齊國四分均分。」
무휴가 말하기를, “장례를 치르지 못하여 신하들이 복종하지 않으니 이를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하니, 수조가 말하기를, “오늘의 일은 마치 호랑이를 때려잡는 일과 같습니다. 힘이 있는 사람이 이깁니다. 주상께서는 정전에 앉아만 계십시오. 신등은 양쪽 낭하에 군사를 세우고 공자들이 조당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려서 군사들로 겁을 주겠습니다.” 했다. 무휴가 그 말을 따랐다. 장위희도 본궁의 군사를 다 내어주고 내시들에게도 군장을 갖추게 했으며, 궁녀 중에서도 키가 크고 힘이 센 여인들도 갑사들의 대오에 집어넣어 옹무와 수조가 각각 반을 거느리고 양쪽 낭하에 나누어 세운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한편, 위나라 공자 개방은 옹무와 수조가 무휴를 옹립했다는 소식을 듣고 갈영(葛嬴)의 아들 공자 반(潘)에게 말하기를, “세자 소는 어디로 도망갔는지 알 수가 없는데, 만약 무휴가 즉위할 수 있다면 홀로 공자께서 즉위하지 못할 이유가 있습니까?” 하고 즉시 가병과 결사대들을 모두 일으켜 오른쪽 궁궐 앞에 늘어섰다. 밀희(密姬)의 아들 공자 상인(商人)도 소위희(少衛姬)의 아들 공자 원(元)과 함께 의논하기를, “우리는 모두 선공의 다 같은 골육인데 강산을 나누어 가지지 못할 이유가 없다. 공자 반은 이미 오른쪽 궁궐을 점령하였으니 우리도 왼쪽 궁궐을 점령해야 한다. 세자 소가 나타난다면 모두 물러나면 되고 만일 돌아오지 않는다면 제나라를 넷으로 똑같이 나눠 갖자.” 고 했다.
元以為然,亦各起家甲,及平素所養門下之士,成隊而來。公子元列營於左殿,公子商人列營於朝門,相約為犄角之勢。巫刁畏三公子之眾,牢把正殿,不敢出攻。三公子又畏巫刁之強,各守軍營,謹防衝突。正是:「朝中成敵國,路上絕行人。」有詩為證:「鳳閣龍樓虎豹嘶,紛紛戈甲滿丹墀。分明四虎爭殘肉,那個降心肯伏低?」其時只有公子雍怕事,出奔秦國去訖,秦穆公用為大夫。不在話下。且說,眾官知世子出奔,無所朝宗,皆閉門不出。惟有老臣國懿仲高虎,心如刀刺,只想解結,未得其策。如此相持,不覺兩月有餘。
공자 원이 옳다고 생각하여, 각기 가병과 평소 양성하던 문객들을 일으켜 대오를 만들어 궁궐로 들어가, 공자 원은 왼쪽 궁궐에 군사들을 세우고, 공자 상인은 조당의 문을 점거하여 서로 약속하고 기각지세(양쪽으로 나누어 서로 도우는 형세)를 이루었다. 옹무와 수조는 세 공자의 가병들의 수가 많음에 겁을 먹고 어전의 양쪽 낭하에만 있으면서 감히 조문 밖으로 나가 공격하지 못했다. 세 공자도 또한 옹무와 수조의 강함을 두려워하여 각각 군영을 지키며 충돌을 막았다. 이것은 마치 “한 조정에 적대국이 생겨서 길거리에 행인들의 발길이 끊기게 되었다.”는 말과 같았다. 이 일을 두고 시를 지어 증언하기를, “봉과 용이 서린 누각에 호랑이와 표범이 울부짖고, 갑사들이 여기저기 궁궐 안에 가득하구나. 분명히 네 호랑이가 남은 고기를 다투는 꼴이니, 그 누가 마음을 굽혀 복종하려고 하겠는가?” 했다. 그때 다만 공자 옹은 공자들이 서로 다투는 모습에 겁을 먹고 도망쳐 진(秦)나라로 가버렸다. 진(秦)목공이 그를 대부로 임명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한편, 관리들은 세자가 달아났다는 것을 알고, 조정과 종묘가 없어졌다고 생각하여 모두 문을 닫고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오직 노대신 국의중과 고호가 가슴을 칼로 찌르는 듯한 고통으로 해결 방법을 생각해 봤으나 대책을 얻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서로 대치하면서 어느덧 두 달여가 지나갔다.
高虎曰:「諸公子但知奪位,不思治喪,吾今日當以死爭。」國懿仲曰:「子先入言,我則繼之,同捨一命,以報累朝爵祿之恩可也。」高虎曰:「只我兩人開口,濟得甚事?凡食齊祿者,莫非臣子,吾等沿門喚集,同至朝堂,且奉公子無虧主喪何如?」懿仲曰:「立子以長,立無虧不為無名。」於是分頭四下,招呼群臣,同去哭臨。眾官員見兩位老大夫做主,放著膽各具喪服,相率入朝。寺貂攔住問曰:「老大夫此來何意?」高虎曰:「彼此相持,無有了期。吾等專請公子主喪而來,無他意也。」
고호가 (국의중을 찾아가) 말하기를, “여러 공자가 단지 군주 자리에만 마음이 있고 장례를 치르려는 생각을 하지 않으니, 오늘 우리가 마땅히 죽기를 각오하고 나서야겠습니다.” 하니, 국의중이 말하기를, “대감이 먼저 말을 꺼내면 내가 뒤를 이어 우리들의 한 목숨을 같이 바쳐 여러 대를 거쳐 받은 벼슬과 녹봉의 은혜를 보답하기로 합시다.” 했다. 고호가 말하기를, “우리 두 사람만이라도 입을 연다면 무슨 일인들 못 이루겠습니까? 무릇 제나라의 녹을 먹는 자는 신하가 아닌 자가 없으니, 우리가 조당 문밖에 신하들을 불러 모아 함께 조당에 이르러 잠시 공자 무휴를 모시고 선공의 장례를 치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국의중이 말하기를, “맏이인 무휴를 세운다고 해서 명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했다. 이에 두 사람이 사방에 사람을 보내어 신하들을 불러내어 같이 궁으로 들어가 곡을 했다. 여러 관원도 두 원로대부가 주관하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놓여서 각기 상복을 입고 잇따라 조당으로 들어갔다. 시인 수초가 가로막으며 묻기를, “노대부들께서 이곳에 오신 까닭은 무엇입니까?” 하니, 고호가 말하기를, “공자들이 서로 대치만 하고 있어 언제 이 분쟁이 끝날지 알 수 없어서, 우리는 공자 무휴에게 청하여 장례를 주관하여 치르자고 왔을 뿐 다른 뜻은 없소.” 했다.
貂乃揖虎而進。虎將手一招,國懿仲同群臣俱入,直至朝堂,告無虧曰:「臣等聞『父母之恩,猶天地也。』故為人子者,生則致敬,死則殯葬。未聞父死不殮,而爭富貴者。且君者臣之表,君既不孝,臣何忠焉?今先君已死六十七日矣,尚未入棺。公子雖御正殿,於心安乎?」言罷,群臣皆伏地痛哭。無虧亦泣下曰:「孤之不孝,罪通於天。孤非不欲成喪禮,其如元等之見逼何?」國懿仲曰:「太子已外奔,惟公子最長。公子若能主喪事,收殮先君,大位自屬。公子元等,雖分據殿門,老臣當以義責之,誰敢與公子爭者!」
수초가 고호에게 읍을 하고 들어오게 하니, 고호가 손짓으로 불러서 국의중 함께 신하들이 조당으로 들어가 무휴에게 고하기를, “신들이 듣건대 ‘부모의 은혜는 하늘과 땅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자식이면 살아계실 때는 정성껏 공경하고, 돌아가시면 염습하여 장례를 치러야 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염습을 하지 않고 부귀를 다투었다는 사람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군주란 신하들의 표본과 같습니다. 군주가 이미 불효를 저지르고 있는데 신하들을 보고 충성을 하라고 하겠습니까? 지금 선군께서 돌아가신 지 이미 67일이 지났는데 아직 입관을 못하고 있습니다. 공자께서 비록 정전(正殿)을 지키신다 한들 마음이 편안하겠습니까?” 했다. 고호가 말을 마치자 신하들이 모두 땅에 엎드려 통곡했다. 무휴도 역시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기를, “내가 저지른 불효의 죄는 하늘을 뚫고 있습니다. 내가 장례를 치르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공자 원 등이 핍박하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했다. 국의중이 말하기를, “태자는 이미 외국으로 달아나 버렸기 때문에 오로지 공자가 가장 나이가 많습니다. 공자께서 만약에 장례를 주관하여 선군의 시신을 거두신다면 군주의 자리는 자연히 공자에게로 돌아갈 것입니다. 공자 원 등이 비록 궁궐의 문을 점거하고 있다고 하지만 노신 등이 나가서 마땅히 이치로써 이를 꾸짖겠습니다. 누가 감히 공자와 다투겠습니까?” 했다.
無虧收淚下拜曰:「此孤之願也。」高虎吩咐雍巫,仍守殿廡,群公子但衰麻入臨者,便放入宮,如帶挾兵仗者,即時拿住正罪。寺貂先至寢宮,安排殯殮。卻說,桓公屍在牀上,日久無人照顧,雖則冬天,血肉狼藉,屍氣所蒸,生蟲如蟻,直散出於牆外。起初眾人尚不知蟲從何來,及入寢室,發開窗槅,見蟲攢屍骨,無不悽慘。無虧放聲大哭,群臣皆哭。即日取梓棺盛殮,皮肉皆腐,僅以袍帶裹之,草草而已。惟晏蛾兒面色如生,形體不變,高虎等知為忠烈之婦,嘆息不已,亦命取棺殮之。高虎等率群臣奉無虧居主喪之位,眾人各依次哭臨。是夜,同宿於柩側。
무휴가 눈물을 거두고 내려와 고호에게 절하면서 말하기를, “이는 바로 내가 원하던 바입니다.” 했다. 고호가 옹무에게 분부하여 궁궐의 양쪽 낭하를 지키고 있다가 공자들이 상복을 입고 들어오려는 사람만 들여보내게 하고, 병장기를 들고 들어오려는 자는 즉시 잡아서 치죄하도록 했다. 시인 수초가 먼저 제환공의 침실에 이르러 시신을 염습하는 일을 주선했다. 한편, 환공의 시신은 침상 위에서 날이 오래되도록 아무도 돌보는 사람이 없어 비록 겨울이지만 피와 살이 어지러이 흩어지고 시체의 썩는 냄새가 진동하였다. 개미만한 벌레들이 생겨 담장 밖에까지 흩어져 나왔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그 벌레들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모르고 있다가, 침실에 들어가서 창문을 열자 벌레들이 시체 위에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처참한 광경에 놀랐다. 무휴가 목을 놓아 통곡하자 신하들도 모두 울었다. 그날로 가래나무 관을 취하여 피부와 살이 다 썩어서 겨우 도포와 띠로 싸서 간략하게 마쳤다. 오직 안아아는 그 얼굴빛이 살아 있는 것 같고 형체도 변하지 않았다. 고호 등이 안아아가 충성과 열부의 마음으로 그렇게 죽었다는 것을 알고 탄식해 마지않았다. 그래서 또한 그녀의 시신도 염습하여 관에 수습하도록 했다. 고호 등은 신하들을 거느리고 무휴를 상주의 자리에 받들어 앉게 하고, 여러 관리가 순서에 따라 곡을 올리도록 하였다. 그날 밤은 모두가 함께 관 옆에서 잠을 잤다.
卻說,公子元、公子潘、公子商人,列營在外,見高國老臣,率群臣喪服入內,不知何事。後聞桓公已殯,群臣俱奉無虧主喪,戴以為君,各相傳語,言:「高國為主,吾等不能與爭矣!」及各散去兵眾,俱衰麻入宮奔喪,兄弟相見,各各大哭。當時若無高國說下無虧,此事不知如何結局也!胡曾先生有詩嘆曰:「違背忠臣寵佞臣,致令骨肉肆紛爭。若非高國行和局,白骨堆牀葬不成。」卻說,齊世子昭逃奔宋國,見了宋襄公,哭拜於地,訴以雍巫豎刁作亂之事。
한편, 공자 원, 공자 반, 공자 상인 등이 궁궐 밖에서 진을 치고 있다가, 고호와 국의중 두 노대신이 상복을 입은 신하들을 거느리고 조당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으나 무슨 일인지는 알지 못했다. 뒤에 환공의 염습이 이미 끝나고 신하들이 공자 무휴를 상주로 받들어 군주의 자리에 추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세 공자가 말을 전하기를, “고호와 국의중 두 원로대신이 주관했다고 하니 우리는 다툴 수 없겠습니다.” 하고, 각기 군사를 거두었다. 여러 공자는 모두 상복을 입고 장례식장에 나와서 형제들이 서로 만난 후에 각각 크게 곡을 했다. 당시에 만약 고호와 국의중이 나서서 무휴를 설득하지 않았다면 이 일이 어떻게 끝났을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호증(胡曾) 선생이 시를 지어 탄식하기를, “충신의 유언을 버리고 아첨하는 신하를 총애하여, 형제간에 골육상잔의 분쟁을 일으키게 했다. 고호와 국의중 두 대신이 나서서 수습하지 못했다면, 침상에 쌓인 환공의 백골은 장례도 치르지 못했으리라!” 했다. 한편, 제나라 세자 소는 송나라로 달아나서 송양공을 뵙고, 통곡하면서 절한 뒤에 옹무와 수조가 란을 일으켰다고 호소했다.
其時宋襄公乃集群臣問曰:「昔齊桓公曾以公子昭囑託寡人,立為太子,屈指十年矣。寡人中心藏之,不敢忘也。今巫刁內亂,太子見逐,寡人欲約會諸侯,共討齊罪,納昭於齊,定其君位而返。此舉若遂,名動諸侯,便可倡率會盟,以紹桓公之伯業,卿等以為何如?」忽有一大臣出班奏曰:「宋國有三不如齊,焉能伯諸侯乎?」襄公視之,其人乃桓公之長子,襄公之庶兄,因先年讓國不立,襄公以為上卿,公子目夷字子魚也。襄公曰:「子魚言『三不如齊』,其故安在?」
송양공은 즉시 신하들을 불러서 모이게 하고는 묻기를, “옛날에 제환공이 공자 소를 나에게 부탁하고 태자로 세웠는데, 헤아려 보니 10년이 되었소. 과인은 그 부탁을 마음속에 간직하며 잊지 않고 있었소. 지금 옹무와 수조가 내란을 일으켜 태자가 이렇듯 쫓겨났으니 과인이 제후들을 불러 회맹을 한 후에 함께 제나라의 죄를 묻고, 세자 소를 제나라에 들여보내 군주의 자리에 올린 후에 돌아오려고 하오. 이번의 거사를 만약 이루게 된다면 이름이 제후들의 마음을 움직여 회맹을 주재할 수 있고, 제환공의 패업을 이을 수 있다고 보는데, 경들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했다. 갑자기 한 대신이 반열에서 나와 아뢰기를, “송나라는 제나라에 미치지 못하는 점이 세 가지가 있는데 어떻게 제후들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겠습니까?” 했다. 송양공이 보니 그 사람은 노환공의 장자요 송양공의 서형(庶兄)이었다. 지난날 그는 나라를 동생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군주가 되지 않자 송양공이 상경으로 삼았다. 그는 공자 목이(目夷)로 자를 자어(子魚)라고 했다. 송양공이 묻기를, “자어 형님의 말이 ‘우리나라가 제나라에 미치지 못하는 점이 세 가지가 있다.’고 했는데, 그 까닭이 무엇입니까?” 했다.
目夷曰:「齊有泰山渤海之險,瑯琊即墨之饒,我國小土薄,兵少糧稀,一不如也。齊有高國世卿,以幹其國,有管仲、甯戚、隰朋、鮑叔牙以謀其事,我文武不具,賢才不登,二不如也。桓公北伐山戎,『俞兒』開道,獵於郊外,『委蛇』現形。我今年春正月,五星隕地,俱化為石,二月又有大風之異,六鷁退飛,此乃上而降下,求進反退之象,三不如也。有此三不如齊,自保且不暇,何暇顧他人乎?」襄公曰:「寡人以仁義為主,不救遺孤,非仁也。受人囑而棄之,非義也。」
목이가 말하기를, “제나라는 태산(泰山)과 발해(渤海)의 험한 지세를 의지하고, 낭야(琅琊)와 즉묵(卽墨) 평원의 풍부한 물산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협소하고 땅은 척박합니다. 또한 병사의 수는 적고 식량은 넉넉지 못합니다. 이것이 제나라에 못 미치는 첫 번째입니다. 제나라에는 고씨와 국씨 같은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명문거족들이 나라의 중심이 되고, 관중, 영척, 습붕, 포숙아와 같은 재사들이 일을 도모했던 반면에, 우리 송나라는 문신이나 무신도 구비하지 못하고 어진 사람을 찾아 등용시키지도 못했으니 이것이 제나라에 못 미치는 두 번째입니다. 제환공이 북쪽의 산융(山戎)을 정벌하러 갈 때 유아(兪兒)라는 귀신이 길을 열어 주었고, 성 밖의 늪지에서 사냥할 때 그곳의 귀신 위사(委蛇)가 나타났습니다. 우리 송나라는 금년 봄 정월에 다섯 개의 운석이 땅에 떨어져서 모두가 돌로 변하여 버렸고, 이월에는 다시 큰바람이 부는 이변이 일어나 여섯 마리의 익조(鷁鳥)가 날아가 버렸습니다. 이것은 우리 송나라의 국세가 올라가기보다는 내려간다는 징조를 말하며, 앞으로 나아가기를 구하면 도리어 뒤로 물러나는 것을 말하니, 이것이 제나라에 못 미치는 세 번째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제나라보다 못한 점이 세 가지가 있어 스스로 지키기도 여가가 없는데 어느 겨를에 다른 나라까지 돌보려고 하십니까?” 했다. 송양공이 말하기를, “과인은 인의(仁義)를 근본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이오. 나에게 맡긴 세자 소가 외롭게 되었음에도 내가 구하지 않는다면 인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부탁을 받고 허락한 약속을 저버린다면 의가 아니오.” 했다.
遂以納太子昭傳檄諸侯,約以來年春正月,共集齊郊。檄至衛國,衛大夫寧速進曰:「立子以嫡,無嫡立長,禮之常也。無虧年長,且有戍衛之勞,於我有恩,願君勿與。」衛文公曰:「昭已立為世子,天下莫不知之。夫戍衛,私恩也,立世子,公義也。以私廢公,寡人不為也。」檄至魯國,魯僖公曰:「齊侯托昭於宋,不託寡人,寡人惟知長幼之序矣。若宋伐無虧,寡人當救之。」周襄王十年,齊公子無虧元年三月,宋襄公親合衛、曹、邾三國之師,奉世子昭伐齊,屯兵於郊。時雍巫已進位中大夫,為司馬,掌兵權矣。
송양공은 마침내 태자 소를 제나라 군주로 들이려는 격문을 제후들에게 전하여 내년 봄 정월에 제나라 도성 밖에 모이자고 약속했다. 격문이 위나라에 이르자 대부 영속(寧速)이 나아가 말하기를, “군주의 자리는 적자(嫡子)를 세우지만 적자가 없을 때에는 장자(長子)를 세우는 것이 예법입니다. 무휴는 나이가 제일 많을 뿐 아니라, 그는 지난날 우리나라를 위하여 싸운 공로가 있어, 우리가 은혜를 입었으니 주군께서는 제나라의 일에 관여하지 마십시오.” 하니, 위문공이 말하기를, “공자 소가 이미 제나라의 세자로 세워진 일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오. 무릇 무휴가 위나라를 위해 싸워 준 일은 사사로운 은혜이고, 세자를 세우는 일은 공적인 의리라 말할 수 있소. 사사로움을 위해서 공적인 의리를 버리는 짓은 과인이 하지 못하겠소!” 했다. 격문이 노나라에 이르자, 노희공(魯僖公)이 말하기를, “제환공이 세자 소를 송양공에게 부탁하고 나에게 부탁하지 않았으니, 과인은 오직 어른과 아이에게는 차례가 있다는 말밖에는 모르겠다. 만약 송양공이 무휴를 정벌한다면 나는 마땅히 무휴를 구원하겠다.” 했다. 주양왕(周襄王) 10년(기원전 642년) 제나라 공자 무휴(無虧) 원년 3월에 송양공이 친히 위(衛)나라, 조(曹)나라, 주(邾)나라 세 나라의 군사를 합쳐 이끌고, 세자 소와 함께 제나라를 정벌했다. 제나라의 도성인 임치성 밖에 진영을 세웠다. 그때 옹무는 이미 중대부로 올라서 사마가 되어 병권을 쥐고 있었다.
無虧使統兵出城禦敵,寺貂居中調度。高國二卿分守城池。高虎謂國懿仲曰:「吾之立無虧,為先君之未殯,非奉之也。今世子已至,又得宋助,論理則彼順,較勢則彼強。且巫刁戕殺百官,專權亂政,必為齊患。不若乘此除之,迎世子奉以為君。則諸公子絕覬覦之望,而齊有泰山之安矣。」懿仲曰:「易牙統兵駐郊,吾召豎刁,託以議事,因而殺之,率百官奉迎世子,以代無虧之位。吾諒易牙無能為也。」高虎曰:「此計大妙!」乃伏壯士於城樓,託言機密重事,使人請豎刁相會。正是:「做就機關擒猛虎,安排香餌釣鰲魚。」
무휴가 옹무를 시켜 군사를 거느리고 성을 나가 적을 막으라고 하고, 시인(내시) 수초는 성내에 있으면서 보급을 맡기로 했다. 고호와 국의중 두 노대신들은 서로 성 앞의 해자를 나누어 지켰다. 고호가 국의중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무휴를 세운 이유는 선군의 시신을 거두기 위해서였지, 그를 주군으로 받들기 위한 것은 아니었소. 오늘 세자가 송양공의 도움을 받아 이미 이곳에 이르렀으며, 도리로 따진다 해도 저쪽이 옳고, 군사의 세를 비교해도 저들이 강합니다. 이와 반대로 옹무와 수조는 많은 관료를 살해하고 권세를 멋대로 휘둘러 정사를 어지럽혔으니 이것은 제나라의 환란이 틀림없습니다. 만약 이번 기회를 이용하여 그들을 제거하고 세자를 맞이하여 군주 자리를 잇게 하면 여러 공자도 군주 자리를 넘보지 않게 되어 제나라는 태산처럼 안정될 것입니다.” 하니, 국의중이 말하기를, “역아(옹무)는 군사를 거느리고 성 밖에 주둔하고 있으니, 우리가 의논할 일이 있다고 수조를 불러서 죽인 후에 백관들을 거느리고 세자를 영접하여 무휴의 자리를 대신하게 하면 일을 성사시킬 수 있습니다. 내가 짐작건대 역아가 군사를 이끌고 있으나 성밖에서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했다. 고호가 말하기를, “그 계책이 아주 훌륭합니다.” 하고, 곧 장사들을 성루에 매복시킨 후에 사람을 수조에게 보내어 비밀리에 의논할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하여 청해 오게 하였다. 이것은 마치 사나운 호랑이를 잡기 위해 덫을 놓은 것이며, 자라를 낚기 위해 향기로운 미끼를 매달아 놓은 것이었다.
不知豎刁性命如何,且看下回分解。
수조의 목숨이 어찌될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를 보면 풀릴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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