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중턱 물길에 놓여 있었다. 크기는 내가 힘겹게 들 수 있을 정도였다. 돌은 물이 지나간 자리마다 마른 이끼꽃이 피었다.
처음 보는 순간 왜 저기에 있지 하고 생각했다. 거기가 본래의 자리인지는 모르지만 마지못해 끼어 있는 듯 힘겹고 답답해 보였다. 지금은 물이 말라 있지만 장맛비가 쏟아져 콸콸 흘러내리면 물길에 가로 놓여 있는 돌 때문에 물이 길 쪽으로 쏟아져 넘칠 것 같다.
주위를 더 살펴보니 처음 봤던 돌보다 더 큰 것, 길쭉한 것, 동글동글한 것, 놓인 모습이 툭 툭 떨어트리듯 나뒹굴었다. 생긴 것은 다 달라도 그 색은 모두 같았다. 표면에 이끼를 머금은 칙칙한 색이었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 제 혼자 앉아 있었다.
“저 돌이 무엇이며, 왜 저기 있지요?”
산을 같이 오른 이선생에게 물어보았다. 처음 보는 듯 ‘거기에 돌이 있었네’ 했다. 수로하고 색이 비슷하기도 하고, 들판이나 산에 묻혀 있는 아무런 특징이 없는 모습이 세심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 있었다.
‘버팀목이 아니고 버팀돌이네!’ 이 선생은 혼자 중얼거렸다. 한참을 주위를 살피더니 저 돌이 수로를 받쳐주고 있다고 했다. 위 언덕에는 오래된 소나무가 있었다. 매일 이 산을 오르는데 이 작은 돌을 살피지 못했다고 했다. 이선생도 이곳으로 이사 온 지 벌써 십 년이 다가왔다.
산을 오르며 그동안 한 번도 버팀돌을 살펴보지 못했던 아쉬움에 이 선생은 이야기가 많았다. 보기에는 작아도 저 버팀돌들이 산사태를 막아주어서 아랫마을에 사는 이선생은 편안하게 살았다며 귀중한 돌이라고 했다. 같이 내려가던 남편도, 안동에서 온 최선생도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내려가니 넓은 개울이 나왔다. 올해는 비가 자주 와서 시월이지만 장마철 같은 맑은 물이 시원하게 흘러내렸다. 버팀돌을 개울의 물속에 갖다 놓는 상상을 해 보았다. 검고 못생긴 돌은 깨끗이 씻겨서 개울이 환해졌다. 그러나 버팀돌은 아니었다.
산동네에 있는 ‘솔향기마을’을 구경하고 이선생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작년에도 초대받아서 왔지만, 올해 또 왔다. 사모님이 볼일로 집을 비운 사이 친구들 몇 명이 모여서 같이 놀면서 쉬기도 하고 나름 편한 시간을 가진다고 했다. 나는 이선생의 친구는 아니지만 벌써 오랜 시간 같이 보아온 사이니 같이 오라고 해서 별 어려움 없이 남편을 따라왔다.
이선생 집에는 꽃들이 많다. 이선생이 사모님을 위해 열심히 가꾸어 놓은 사랑 표현이다. 앞마당에도 온통 꽃이지만, 집 본채 옆에 붙여서 지은 넓은 공간은 꽃들이 가득해서 온실이 되었다. 큰 화분에 심어진 공기를 맑게 하는 나무들, 옹기종기 작은 화분에 심어진 허브, 선인장. 통유리로 내려다보는 저 멀리 풍기의 시가지는 불빛이 아련했다. 하늘에 별, 시가지의 불빛, 온실의 꽃들은 모두 같은 별빛 같았다.
마당에서 화로에 불피워 고기를 구워서 온실로 가지고 들어와 먹었다. 한쪽에 있는 벽난로에는 불이 활활 타서 붉은빛이 보였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붉은색이다. 나는 밝은 빛에 정신이 팔렸다. 불을 바라보며 마음도 점점 뜨거워지면서 지친 몸이 편안해졌다. 옆에 앉아 있는 남편을 쳐다보니 그의 얼굴도 불빛으로 붉게 빛났다. 집에서 보던 모습이 아니었다. 이선생의 이야기는 꼬리를 물고 끝이 없었다.
“명품백을 사주고 하는 것도 좋지만 우리가 오래 살아서 낮에 본 버팀돌이 되어야지!”
별안간 내 귀에 선명하게 들려오는 이선생의 말에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나는 별생각 없이 중얼거렸다. ‘이제 좀 내려놓고 본인들의 생활에 열중하면 좋겠다고, 안 사람들은 잘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면 안돼요! 가족이 전부였던 나는 생각해 보지도 않은 말입니다.”
이선생의 불만 가득한 목소리가 아득히 들려왔다. 남편도 우리가 잠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처음 만나서 서로 좋아하고, 결혼하고, 마냥 좋기만 할 것 같은 신혼 시절에는 하루가 지나면 그가 더 좋아지고, 또 하루가 지나면 내가 몰랐던 그의 장점이 눈에 보이고.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같이 서로를 힘들어하는 감정이 생기리라고는 가늠하질 못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 그는 묵묵히 운전만 했다. 집에 와서도 뭔가를 잃어버린 듯 멍한 표정을 하고 말이 없었다. 나는 지금 그의 마음이 어떤지 느껴지지 않았다. 내 입에서도 목쉰 소리만 흘러나왔다. 별 뜻 없었다고 사과하고 이 상황을 허물어뜨리기에는 막막했다.
가만히 기다리는 일뿐. 내 마음속에는 항상 남편이 버팀돌이라는 것을 말할 수가 없었다. 그 당연한 말을. 늘 의지만 하지 말고 나도 누군가의 버팀돌이 되어 받쳐주고 싶었다.
며칠이 지났다. 선물이라고 사탕 한 봉지 사 들고 오지 않던 그가 명품가방이라면서 나보다 더 큰 가방을 가지고 들어왔다. 그리고 하는 말이 이제는 내가 우리 집의 버팀돌이 되라고 했다. 나는 큰 가방이 마음에 들어서 어깨에 메고 외출하려다 신발에 걸려 넘어졌다. 간신히 눈을 떠보니 그가 옆에서 쿨쿨 자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꿈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