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초등학교 동창회에 갔었다. 그런데 처음 보는 아리따운 여성이 내 눈에 들어왔다. 긴 생머리에 환상적인 몸매, 수줍은 듯한 미소와 지적인 옷차림까지…. 딱 내 이상형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저런 미인이 우리 동창 중에 있을 리가 없는데 놀라웠다. 이름을 들으니 20년 전 기억이 떠오르며 후회가 밀려왔다. 그녀는 나를 좋아하던 안경을 쓴 뚱뚱한 여자애였다. 당시에 그 여자애를 무척 무시했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내 이상형이 돼 돌아왔다. 속 보이는 행동이었지만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하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현회야. 반가워. 이게 얼마만이니? 나 다음 달에 결혼해. 와서 축하해 줄 거지?” 젠장, 그녀의 남편은 치과의사라고 한다. 내셔널리그 강릉시청에서 활약하던 김인성이 러시아 명문 구단 CSKA 모스크바 입단을 확정지었다. 이를 두고 누군가는 신데렐라라고 부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인생역전이라고 한다. 무명의 선수가 유럽 명문 구단으로 이적했으니 이거 참 충격적이고 대단하다. 하지만 나는 김인성의 CSKA 모스크바 입단이 하루 아침에 뚝딱 떨어진 선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김인성을 주목하지 않는 동안 그는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을 흘렸을까. 김인성은 오로지 자신의 능력으로 유럽 진출에 성공했다. 이 충격적이고 어마어마한 이적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할까. ![]() 내셔널리그 강릉시청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를 누비던 김인성은 이제 CSKA모스크바로 이적하게 됐다. (사진=내셔널리그) 김인성, 왜 K리그 도전에 실패했을까 김인성은 성균관대 시절 대학 선발로 한·일 대학 축구 정기전인 덴소컵에 출전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리 주목받는 선수는 아니었다. 20세 이하 청소년대표로 선발된 적도 있지만 청소년월드컵 무대에 서지는 못했다. 소집 훈련에만 참가했던 선수로 가능성은 있지만 또래 주전급 선수들에 비해 돋보이는 편은 아니었다. 성균관대 재학 당시 해외진출을 노리다 실패한 그는 K리그 드래프트에 도전했지만 결국 어떤 팀의 선택도 받지 못했고 2010년 내셔널리그 강릉시청에 입단했다. 실제로 지난해 김인성의 내셔널리그 경기 모습을 지켜본 나는 그의 빠른 발과 돌파 능력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이 사실을 놓고 K리그가 이렇게 대단한 선수를 알아보지 못했다고 지적하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이건 내셔널리그의 경사이지만 그렇다고 K리그가 숨은 고수를 알아보지 못해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수원이 잡지 않은 에니오라는 선수가 몇 년 뒤 전북에서 에닝요라는 이름으로 맹활약하는 것처럼 축구에서는 때때로 일어나는 일일 뿐이다. 이를 결과만 놓고 K리그가 학연과 지연으로 재능 있는 선수를 외면했다고 바라보는 건 잘못됐다. 김인성이 K리그의 지명을 받지 못했을 때 이에 이의를 제기한 축구팬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그땐 다들 어디 가 있었나. 김인성이 K리그 드래프트를 신청했을 당시 그가 유망주였던 건 사실이지만 K리그 구단들이 그를 선택할 만큼의 매력이 부족했다고 이해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가 청소년대표 출신인데 그 어떤 구단도 그를 선택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를 학연과 지연에 얽매였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건 곤란하다. K리그 드래프트 시장에 나온 선수치고 연령별 대표 한 번 안 거친 선수가 없다. K리그에 입성한 선수들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했는지 이해를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경쟁 속에서 특출난 실력을 보이는 몇몇만 선택받는 게 K리그다. 공부로 치면 서울대에 입학하는 것보다 어려운 게 K리그 가는 거다. 충분히 서울대 갈 실력이어도 운이나 수능 당일 컨디션 등 여러 이유가 겹쳐 못 가는 이들도 많지 않은가. ![]() 김인성이 CSKA모스크바에서 훈련하는 모습. 그는 3단계의 피 말리는 입단 테스트를 통과하고 이적에 성공했다. (사진=연합뉴스) K리그 전체의 문제? 번지수가 틀렸다 실제로 내 주변에는 같은 동네에서 학창 시절 전문적으로 축구를 한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들 중 K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들은 딱 세 명뿐이다. 상무의 최효진과 권순태, 대전의 김영빈이 전부다. 나머지 친구들은 K리그 문턱도 밟아보지 못하고 축구를 그만뒀다. 이 정도로 치열한 경쟁 속에서 당장 눈에 띄지 못하면 선택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한 무명 선수가 유럽으로 진출했다고 해 이걸 무슨 K리그 전체의 문제로 돌리는 건 번지수를 한참 잘못 짚은 것이다. 이렇게 소모적인 논쟁할 시간에 김인성에 대해 알아보고 내셔널리그를 주목하는 게 먼저다. 강릉시청 박문영 감독도 이런 말을 했다. “(김)인성이는 세기가 다소 부족하다. 이 부분을 보완한다면 K리그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1년 동안 강릉시청에서 활약한 김인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가 바로 박문영 감독이다. 내셔널리그 명문 구단 강릉시청을 오랜 시간 이끌어온 박문영 감독의 선수 보는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김인성은 성장 가능성이 충분하지만 보완해야 할 점도 있는 그런 선수다. 당장 완성된 선수가 아닌데 K리그가 그를 외면했다고 해서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김인성이 강릉시청에서 더 노력해 K리그 구단의 선택을 받으면 될 일이었는데 그는 그 이상 노력해 유럽으로 날아갔다. 이미 한 차례 드래프트에서 고배를 마신 김인성은 지난 시즌 강릉시청에서 맹활약했지만 올해 드래프트에는 신청서를 넣지 않았다. 아마 내셔널리그에서 실력으로 인정받은 올해 K리그 드래프트에 이름을 올렸다면 그를 선택할 구단은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모스크바로 날아가 CSKA모스크바 입단테스트에 합류했다. 1년 사이 실력을 끌어올려 유럽 도전에 대한 자신감이 충만했고 결국 그 꿈을 이뤘다. 우리가 바라봐야 할 건 1년 동안 그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다. 이 부분만 이야기해도 충분하다. 여기에 K리그를 끼워 넣을 이유가 없다. 이제 와서 K리그가 숨은 고수를 외면했다고 지적하는 건 가만히 팔짱 끼고 있다가 일이 터지면 “거봐. 내가 저럴 줄 알았다니까”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 김인성이 앞으로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도 이런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그는 한국 축구의 기존 시스템을 깬 새로운 희망이다. (사진=스포티즌) 김인성의 용기 있는 도전에 박수를 보내자 단순하다. 2년 전 그는 K리그에 뽑힐 만한 실력이 없었지만 지금은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유럽 구단에 입단한 정도의 실력으로 성장한 것이다. 딱 그렇게 바라보면 된다. 그리고 하나 더, 내셔널리그에도 K리그 선수들 못지 않은 이들이 즐비하다는 점도 김인성의 이번 이적을 통해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비록 K리그 드래프트 당시 선택을 받을 만큼의 매력이 부족했지만 내셔널리그에서 실력을 갈고 닦아 성장하고 있는 선수들이 많다. 김인성 외에 부산교통공사 박승민과 김해시청 김원민 등도 앞으로 지켜보면 좋을 것이다. 비록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하고 있지만 이 순간에도 더 큰 무대를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팬들과 언론의 관심 밖이었던 내셔널리그는 김인성의 유럽 진출이라는 경사로 활력을 찾을 수 있게 됐다. 팬들과 언론은 그간 무관심했던 강릉시청이라는 팀을 주목하기 시작했고 내셔널리그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은 자신의 노력을 보상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직접 느끼게 됐다. 앞으로 그의 이적이 더 나아가 승강제에서 큰 역할을 차지해야 하는 내셔널리그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길 바란다. 지난해 11월 모스크바의 1차 테스트에 합격한 후 올 1월 초 리저브팀과 훈련했고 이후 다시 1군 스페인 전지훈련에 합류해 피 말리는 테스트를 거친 김인성은 지금까지 한국 축구 시스템에서는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이적에 성공했다. 단순히 한 무명 선수의 성공 스토리를 넘어 한국 축구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어마어마한 일이다. 김인성은 모두를 놀라게 할 이적을 일궈냈다. 우리에게는 ‘깜짝 이적’일지 몰라도 그에게는 실력을 갈고 닦아 이뤄낸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다. K리그가 드래프트에서 그를 외면했다는 것보다 2년 만에 K리그가 선택하지 않은 선수에서 유럽 명문 구단이 인정하는 선수로 성장했다는 점에 박수를 보내는 게 먼저다. 그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까. 될성 부른 떡잎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K리그가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20년 전 초등학교 시절 나를 좋아하던 못 생긴 여자애가 20년 후 미인이 돼 돌아올 줄 누가 알았는가. 여자와 축구선수의 미래는 모르는 법이다. 그녀가 능력 있는 남자와 행복한 가정을 꾸린 것처럼 우리도 김인성이 유럽에서 오랜 시간 행복한 축구를 하길 기원하는 게 어떨까. 쿨한 남자는 그래야 한다. 아니, 속은 쓰려도 그런 척이라도 해야 한다. footballavenue@nate.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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