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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최북단, 하얀 날개 섬(白翎島)
고광창
북측이 2022. 4.13~14 동.서 해상 완충지구에 포 사격을 가하여 남.북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북측 지도자는 ‘우리의 적은 미국이다. 그래서 미국을 행해 미사일을 발사한다. 우리 남‚북은 같은 동포니까 서로 총뿌리를 겨누는 일은 없어야 한다.‘ 면서 미사일을 동해나 태평양으로만 발사했다. 일본은 자기들 머리 위로 미사일이 날아가니까 무서워 안달을 했지만 솔직히 우리국민들은 북측의 미사일 발사를 뒷짐을 쥐고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달아졌다. 완충지구로 향하던 북측 총구가 언제 남쪽으로 향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북측이 핵을 보유했다고는 하지만 우리도 세계 5대 군사강국이고 한.미간 군사보호조약이 체결되어 있기 때문에 북측이 섣부른 행동을 하지 않을 거라 믿고 있지만 이번 북측 포격이 우리 국민들 특히 서해 5도 주민들에게 커다란 위협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20여 년 전에 다녀온 백령도 여행 낙수를 추억의 창고에서 찾아보았다.
60년대 말에 함께 근무했던 친구 4명이 그동안 친목을 도모해 왔는데 이번에는 무릎이 떨리기 전에 여행을 가자고 한다. 그것도 서해 최북단 백령도로 ---그래서 내가 무릎 떨리기 전에 가자는 의견에는 찬성 하지만 신문 보도에 의하면 서해 5도 주변은 남.북 군사적 갈등이 있어 신변 위협을 느끼는데 왜 하필 백령도냐? 했더니 여행을 가자고 앞장섰던 친구 말이 인천 여행사에 연락해 보니 여객선을 해군 군함이 보호해 주고 있으니 여행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한단다. 1년 전인 1999. 6. 15일 연평 해전이 있었고 금년(2000년) 3월에는 북측이 황해도 부근은 북측 해역이니만큼 서해 5도를 다니려면 우리가 제시한 ‘서해 5도 통항 질서’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남측이 이에 응하지 않아 긴장이 고조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무슨 일이든 ‘하자고’ ‘먹자고’하는 사람에게는 이길 수 없다. 일행 중 두 사람이 가자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 것 같다. 내키지는 않았으나 나만 반대할 수도 없고 이번에 가지 않으면 언제 갈수 있을 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할 수 없이 다수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 (실은 나도 속으로는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이번 여행은 즐거운 여행이 아니라 여행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여행, 해군 군함의 보호를 받고 가는 특별한 여행이었다.
1.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섬 - 백령도
※ 우리나라 바다 울타리 위치
동쪽 ; 독도 (동경 131도 87분)
남쪽 : 마라도 (북위 33도 06분)
서북쪽 : 백령도(동경 124도 60분, 북위 37도 58분)
‘독도’와 ‘마라도‘는 다녀왔지만 백령도는 가지 못하여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섬이었다.
※ 서해 5도 최북단 ‘하얀 날개 섬’ ‘백령도’ 말만 들어도 호기심이 내 마음을 당긴다.
2. 하얀 날개 섬 - 白翎島
o 지명 유래 : 白翎島(하얀 날개 섬) - ‘따오기가 하얀 날개를 펴고 공중을 나는 모습’
※ 地名을 보면 우리 선조들께서 얼마나 先見之明이 뛰어나고 慧眼을 지니셨는가를 알 수 있다. 백령도의 모습이 ‘따오기가 하얀 날개를 펴고 하늘을 나는 모습’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지도를 보니 이곳에는 푸르른 산은 없고 섬 전체에 하얀 규암토가 많은데다가 땅 모습마저 새가 날개를 펴고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 당시에는 비행기는 물론 ‘드론’도 없었을 텐데 어떻게 위에서 내려다 본 것처럼 땅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을까 신기하고 놀라울 뿐이다.
오늘날 남‚북간에 휴전선이 생겨 우리들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는 곳이지만 새들은 휴전선과 상관없이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이곳 지명이 ‘白翎島’ 하얀 날개 섬이기 때문에 우리가 새처럼 이곳을 자유롭게 여행 할 수 있는 것 같아 ‘백령도’라는 지명을 지어주신 우리 선조들의 지혜에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o 행정구역 :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
육지와의 거리 - 인천 228㎞, 중국 산동 195㎞, 북한 장연 17㎞ (손에 잡힐 듯 가깝다)
o 면적 : 50.98㎢ 우리나라 14번째 큰 섬
o 인구 : 5천 여 명
백령도 주민 - 漁撈활동 제약, 농사에만 의존 - 생계곤란, 1999.6. 15. 연평 해전 이후 많은 주민들이 전쟁 불안으로 육지로 이주 - 주민 수 급격히 감소
※ 農地 - 간척지 쌀, 米質 좋고 量도 많아 주민과 군인들이 먹고도 남아 육지에 판매 한다고 함
o 특징 : 섬 전체가 군사작전지역, 해안선은 군인 전투용 방공호, 안쪽은 주민대피용 방공호,
해병대 여단 주둔,
※해병대는 水陸양면에서 작전이 가능하도록 훈련되고 편성된 군부대로 ‘귀신도 잡는 해병’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용맹스런 군대를 말하는데 이곳에 해병대를 주둔시킨 것은 그 만큼 이곳이 전략적으로 중요하다는 의미인 것 같다. 여단은 육군으로 말하면 사단과 연대의 중간 크기의 규모라고 한다.
※ 천혜적 자연조건으로 유무형의 문화유산을 간직한 전국적 관광지
3. 여행 예약
가. 기간 : 2000. 8. 4 ~ 8. 7
나. 우리는 광주여행사에 예약하고 광주여행사에서 인천 여행사에 의뢰하는 형식
4. 인천 연안여객선 터미널
⦿ 변덕스런 날씨가 문제
선박 출항에는 태풍경보나 주의보 , 파랑 주의보, 안개 주의보 등 일기 예보가 중요한데 이곳 인천항에서 가장 영향을 많이 주는 건 안개 주의보라고 하며 변덕스런 날씨 때문에 안개 주의보가 시시때때로 발령된다고 한다. 오늘만 해도 07: 50 출발 예정이었는데 배가 안개 주의보로 30분 늦게 08;20분 출항하게 된 것이다.
⦿ 백령도 운항 여객선 - 3개 회사에서 30분 간격으로 운영
아침에 인천에서 백령도로 갔다가 오후에 다시 인천으로 되돌아오는 코스다. 아침에 이곳에서 늦게 출항하면 밤늦게 돌아와야 함으로 백령도 가는 배는 아침 10시 이후에는 이곳에서 출항시키지 않는다고 한다.
⦿ 선박운임표(편도) - 3개 회사 운임 조금씩 다름 - 성수기(7~8월) 할증료 10,000원 추가
※ 하모니플라워호(1,2등 실이 구분되어 있고 승용차도 싣고 가는 호화선박)의 운임
일반인 66.500원, 경로 53,500원, 인천시민(80% 할인) 14,500원, 백령도 주민 7,000원
※ 백령도는 북한이 인접해 있는 접적지역이고 남‚북간 군사적 갈등으로 주민들이 불안해서 육지로 이주하는 사람이 많아 인구수가 점차 감소하고 있는 상황임으로 백령도 주민들 선박 운임을 저렴하게 책정한 것이라 이해되지만 인천시민들에게 모두 똑같이 80% 할인은 너무 많은 혜택이다. 이로 인해 일반관광객 선박 운임이 너무 과중하게 책정 된 것은 아닐런지?
5. 西海 5島 참고 자료
⦿西海 5島란? - 북측 황해도 인근 바다에 있지만 남측이 지배하고 있는 5개 섬
o 연평도 부근(2개) - 연평도, 우도. o 서해 최북단(3개) - 백령도, 대청도, 소청도,
⦿서해 5島가 어떻게 남측 땅이 되었나?
1953. 7. 27 정전협정 시 육지는 현재 남북이 차지하고 있는 점령지점을 경계로 하되 그 외 지역은 북위 38선을 경계로 남북으로 나누기로 함 (정전 협정에 따라 서해 5도는 모두 북위 38선 이남에 있어 자연히 남측이 지배하게 됨)
⦿ NLL이란? - Northem Limit Line 바다위에 그려진 남북 경계선, 해상 경계선
o 1953. 7. 27 정전협정 시 육지 경계선만 설정하고 해상 경계선은 명시적 합의가 없이 북위 38선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나누기로 함.
o 1953. 8. 30 주한 유엔군 사령관 ‘마크 크라클’ 장군이 서해 5도 지역에서의 안정을 위해 한강 하구에서 백령도까지 서해 5도를 따라 해상경계선을 일방적으로 설정, 북측에 통보함.
⦿ 남.북간 군사적 갈등
o 1953, 7. 27. 남북 정전협정
o 1953. 8. 30. 유엔군사령관 ‘마크 크라클’장군이 NLL을 일방적으로 설정, 북측에 통보
o 1977. 8. 북측이 5개 섬 지역은 북측 해역이라고 주장하고 UN이 설정한 NLL을 인정하지 않고 북측이 별도로 해상 경계선(북측 NLL)을 설정하여 선언했으나 남측이 수용하지 않아 긴장이 계속됨.
o 1999. 6. 15 제 1차 연평 해전(연평도 부근에서 북측 해군과 남측 해군간의 교전)
o 2000. 3. 북측 ‘서해 5개 섬 통항질서 선언’ - 남측이 응하지 않아 갈등 계속
※ ‘서해 5개 섬 통항질서’란 서해 5개 섬 지역은 북측 해역임으로 남측에서 5개 섬을 드나들 수 있도록 좁은 항로(폭 1마일), 즉 골목길과 같은 것만 인정해 줄 테니 그 곳으로만 다니라는 것
6. 인천항 출항
<해군 군함의 보호를 받으면서 항해하는 여객선>
08 ; 20분 인천항을 출항한 후 1시간쯤 지났을 때 ‘승객님들 모두 선실로 들어가십시오.’라는 방송 맨트가 나오는 걸 보니 북측 해역이 가까워지는 모양이다. 순간 선실에 조바심과 긴장감이 감돌았다. 우리 해군 함정이 지켜준다고는 하나 솔직히 기대반 걱정반으로 살짝 들뜬 표정들이다.
그러나 배는 우리의 걱정은 아랑곳 하지 않고 계속 북쪽을 향해 달려가니 불안감이 고조되었다. 그런데 또 30분 쯤 갔을 때 창문을 통해 밖을 관람하던 한 승객이 ‘저기 우리 해군 함정이 보인다.’하고 소리쳤다. 모두 배 갑판으로 달려나갔다. 자랑스런 태극기를 단 우리 해군 함정이 늠름한 모습으로 우리 배보다 느린 속도로 천천히 항해하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함정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젠 마음이 든든했다. 인천항에서 출발한 지 3시간이 지나서야 서해 5도중 최북단에 있는 소청도 대청도 백령도가 보이기 시작한다. 만약 이곳 중간을 북측이 가로 막으면 이곳 3도는 꼼짝없이 ‘독 안의 쥐’가 되는 꼴이다. 소청도 대청도 부근에서도 우리 함정을 볼 수 있어 든든했다. 즐거운 여행이 아니라 긴장이 감도는 여행이었다.
7. 백령도 도착
12시 20분경 백령도 용기포 항에 도착했다. 깎아지른 절벽위에 ‘백령도’라는 커다란 글씨가 세워져 있다. 인천에서 4시간쯤 걸린 것 같다. 부둣가 음식점에서 여름철이라 황해도 냉면으로 간단히 중식을 마치고 바로 관광에 들어갔다.
8. 관광 시작
※ 렌트카 탑승
렌트카 11인승 승합차 1대, 4인승 승용차 몇 대가 있었는데 인천 관광여행사에서 이미 예약을 해 놓아서 우리는 11인 승합차와 1대와 승용차 1대에 나눠 탔다. (우리 일행 4명은 4인승 승용차에 탑승)
우리가 탄 배가 인천에서 제일 먼저 출항하기도 했지만 승용차를 실을 수 있기 때문에 승용차가 5대 실려 나와서 렌트카 잡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1) <사람 半 군인 半>
우리 차는 ‘頭武津’이라는 곳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해병대 찝차 2대를 만났는데 우리가 시내에서 볼 때 해병대는 평소 8각 모자에 얼룩무늬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본 해병대는 철모와 상의에 위장망을 씌우고 있는 준 전시태세를 갖춘 모습이다. 우리 교원들이 낙도벽지에 근무하면 승진하는데 벽지 점수가 있듯이 해병대도 이곳이 최전방이고 진급 점수가 있어서 이곳 복무 희망자가 많다고 하니 이곳에 근무하는 해병대는 모두 선택받은 군인들이라고 보면 틀림없을 것 같았다. 이곳에서는 언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군인들은 날마다 비상사태처럼 근무한다고 한다. 우리가 관광지에 관광하러 온 게 아니고 최전방 부대를 방문하러 온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여행사 안내원의 말에 의하면 이곳은 1년 전(1999) ‘제 1차 연평 해전’이 있었고 금년(2000)에는 북측에서 ‘서해 5도 통항질서 선언’이라 하여 서해 5개 섬 통항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보이자 신변 안전에 위험을 느낀 주민들이 육지로 많이 이주해 가는 반면 정부에서 이곳 안전을 위해 해병대 인원을 많이 증원해주는 바람에 주민 수는 줄어들고 해병대 인원수는 증가함으로써 이곳 백령도는 사람들 사이에 군인이 섞여 있는지, 군인들 사이에 사람이 섞여 사는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과 군인이 반반씩 사는 곳이 되어 버렸다고 한다.
이곳은 용맹스런 해병대가 이곳 주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고 있어서 주민들은 군인들에게 고맙게 생각하지만 한편으로는 이곳 주민들이 이곳에 살면서 국토를 수호하고 여기서 농사를 지어 군량미를 대어 주고 있으니 軍人들 입장에서도 주민들이 무척 고마운 분들이다. 軍과 民 모두가 상대편에 고마움을 지닌 채 서로 도와가면서 살고 있는 애국자들인 셈이다.
이곳 주민들에게 선박 운임을 저렴하게 해 주는 것도 필요하지만 각종 세금 혜택도 주어져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최전방에서 나라를 지키고 있으니까 --
(2) <자연 해양 명승지 ‘頭武鎭’>
‘頭武鎭’이란 이름은 해변에 우뚝우뚝 솟아있는 거대한 바위기둥이 마치 회의하고 있는 장군들의 머리 모습 같다 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그 만큼 우뚝 솟은 돌기둥이 많다는 뜻인 것 같다. 백령도는 따오기가 하얀 날개를 펼친 모습 같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하는데 ‘두무진’은 따오기의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이라고 한다.
해상관광유람선을 타고 8km나 되는 해안선을 둘러보았다. 코끼리 바위, 형제 바위 등을 구경하고 선대암 앞으로 왔다. 해상에서 수천 년 동안 파도와 비바람에 씻기고 남은 50m가 넘는 병풍처럼 깎아지른 규암 절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신이 빚어놓은 것 같은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천혜의 경관이 무척 아름답다. 무아지경이다. 이런 절경 때문에 이곳을 ‘제2의 해금강’이라고 하고 또 ‘자연 해양 명승지’라고 하는가 보다.
보는 위치에 따라 기암괴석의 모습이 달리 보이기 때문에 유람선을 타고 2시간 정도 이리 저리 옮겨가며 관람했다. 바람이 조금 불어 파도가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지만 바위는 장군처럼 끄덕도 않고 버티고 있다. 역시 장군다운 늠름한 모습이다. 유람선에서 내려 가까이에서 보니 돌기둥은 지층이 여러 개 켜켜이 싸여 있다. 마치 지층박물관에 온 것 같은 느낌이다. 이곳에서 관람시간을 넉넉히 많이 주는 걸 보니 아마도 이곳 두무진이 백령도 관광의 백미가 될 성 싶다.
(3) <효 사상의 심볼 ‘심청각’>
렌트카를 타고 ‘심청각’으로 향했다. 오는 도중 군인들이 탄 차를 몇 대 보고나니 우리가 최전방에 와 있다는 느낌이 다시 들었다. ‘심청전’은 작가 미상의 고대 전래 소설이지만 우리 국민들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효녀 심청’으로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심청각’은 좀 높다란 언덕위에 자리 잡고 있다. 여기가 따오기의 오른쪽 날개에 해당되는 지점이라고 한다. ‘심청각’은 孝 전시관으로 고서, 영화 대본, 판소리 음반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주위에는 ‘효녀 심청상’(동상)이 있고 저 멀리 심청이가 아버지 눈을 띄게 하기 위해 공양미 삼백 석에 몸을 팔아 바다에 뛰어들었다는 인당수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효녀 심청 연고지로 황해도 황주, 옹진, 장연, 전남 곡성 등 여러 곳이 거론 되고 있지만 이곳에 와 보니 백령도가 관광객 유치를 위해 ‘심청전’을 잘 활용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백령도는 심청전 소설 속에 나오는 장면을 떠 올릴 수 있도록 장면 설정을 잘 해 놓았다. 즉 백령도 전체가 심청전의 무대였다. ‘인당수’ 바다의 위치를 정해 놓았고 심청이가 환생하여 연꽃을 타고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 도중에 연꽃 씨가 떨어져 거기에 연꽃이 핀 마을을 ‘蓮花里’라 하고 또 심청이가 연꽃을 타고 떠내려가다가 걸린 바위를 ‘연봉바위’라고 이름 붙여 놓는 등등 소설 내용이 사실인 것처럼 잘 꾸며 놓았다.
효녀 심청이의 연고지라고 알려진 곳이 몇 곳 있지만 연고지 쟁탈전은 없다. 심청이는 실존 인물이 아니고 소설 속 주인공이기 때문이고 또 심청이는 효녀의 상징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어떤 고을에 효녀가 나타나면 성씨와 상관없이 모두 ‘효녀 심청’이라고 불렀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효녀 심청이라면 많을수록 좋다는 생각이 든다. 여하튼 이 소설이 ‘심청전’이라는 이름으로 영화화 되었는가 하면 창법으로 ‘심청가’가 널리 불리우고 또 ‘심봉사’가 심청이를 만나 눈을 뜨는 극적인 장면을 마당굿으로 만드는 등 ‘심청전’이라는 고대 전래 소설이 우리 국민들에게 효 사상을 고취시키는데 엄청난 효과를 거둔 것만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이를 관광자원으로 잘 활용하고 있는 곳이 바로 이곳 백령도라는 것을 이곳에 와서 알게 되었다. ‘심청각’을 끝으로 백령도에서의 첫째 날 관광을 마쳤다.
(4) <바닥이 단단한 ‘사곶 천연비행장’>
둘째 날이다. 아침밥을 일찍 먹고 렌트카를 타고 ‘사곶 천연비행장’으로 갔다. 해안의 폭 300m, 길이 4km인데다가 바닥이 규조토로만 이루어져 매우 단단하기 때문에 비행기 이착륙이 가능한 천연 비행장이라고 한다. 우리가 직접 비행장 바닥에서 훌쩍 훌쩍 뛰어 보아도 발자국이 전혀 생기지 않는다. 이런 천연비행장은 이탈리아 나폴리 해안과 이곳 단 두 곳뿐이라고 하며 6‚25전쟁 시 군 수송기가 이착륙했다고 한다. 지금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었다. 이곳이 따오기의 왼쪽 날개 부분에 해당된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신발을 벗고 맨발로 이곳에서 300m이상을 걸었다. 건강을 위해서 ---
(5) <콩처럼 작은 돌, ‘콩돌 해안’>
콩처럼 작고 예쁘고 반질반질한 자갈이 알록달록 다양한 색깔을 지닌 채, 폭 30m에 길이 1km의 해안에 쭉 깔려 있어 장관이다. 콩처럼 작은 돌이라 해서 ‘콩돌 해안’이라 부른단다. 파도가 밀려왔다가 내려갈 때 자갈에 부딪치는 소리가 아주 경쾌하고 또 우리가 콩돌을 밟을 때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을 만 했다. 이 소리를 듣기 위해 신발을 벗고 맨발로 한 참을 걸었다. 돌이 너무 예뻐 한 두 개 가져오고 싶었지만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반출이 안 된단다.
(6)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닮은 ‘용틀임 바위’>
바다 위에 떠 있는 조그만 바위인데 용이 몸을 비틀며 하늘을 향해 승천하는 듯한 모습이라 해서 ‘용틀임 바위’라고 불리 운다고 하는데 뾰족하고 구불구불한 모습이 퍽 인상적이다. 회원들의 카메라가 이 모습을 담기에 바쁘다.
(7) <심청이가 떠내려가다 걸렸다는‘연봉바위’>
바다 가운데 연꽃 모양을 닮은 조그만 바위가 떠 있고, 이 바위를 ‘연봉바위’라고 하는데 심청이가 떠내려가다가 이 바위에 걸려 쉬었다 갔다고 한다.
※ 부근에 백령도 명물 ‘까나리 액젓’과 ‘멸치’를 파는 공판장이 있다고는 하나 여행길이라 들고 오기도 그렇고 해서 바로 용기포 해안으로 나와서 이곳 명품 요리인 ‘메밀 칼국수’로 점심을 이름 지은 후 여객선을 타러 갔다.
백령도에서의 관광은 여행사 패키지가 1박 2일로 첫째 날 오후와, 둘째 날 오전으로 마무리 지었다. 날짜로는 이틀이지만 시간상으로는 꼭 하루 걸린 셈이다. 작은 섬이라 더 이상 볼 것도 없었다.
백령도가 외딴 섬이어서 북측이 오판하고 섣부른 짓 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곳에 와보니 용맹스런 해병대의 많은 병력이 물샐 틈 없이 지키고 있고 군량미도 걱정할 필요 없이 자급이 가능하고 또 비상시 군수송기가 ‘사곶 천연비행장’을 사용할 수 있으니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 떠나올 때 마음이 든든했다.
9. 백령도 출발
8월 6일 : 13:00 용기포 항구 출항 17:20 인천 항 도착
돌아오는 길은 안개가 끼지 않고 날씨가 청명했으며 우리 해군 군함을 몇 군데서 목격되기는 했지만 갈 때처럼 긴장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선실 에서는 몇 군데서 화투판과 술판 등이 펼쳐질 정도로 평온하고 즐거운 분위기였다. 우리는 갑판위에서 주변 환경을 구경하면 우리들끼리 서해 5도와 NLL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우리 일행의 결론은 이렇다.
(1) 백령도 관광
볼거리는 ‘두무진’의 기암 괴석과 ‘사곶 천연 비행장’, ‘콩돌 해안’ 등이고 소설 ‘심청전’의 무대를 셑트화 해 놓은 점이 특이 했다.
(2) 남.북간 군사 갈등 문제
휴전 협정 시 해상 경계선을 북위 38도 정할 때 북측에서 서해 5도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남측에 넘겨줄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러나 주한 UN군 사령관이 NLL을 일방적으로 선포했을 때는 아무 말 없이 묵인하고 있다가 20년이 지난 77년에야 UN군이 일방적으로 선언 한 NLL은 무효라고 하면서 자기들이 작성한 NLL을 들고 나왔을까? 지도를 보면 유엔군 측 NLL이 황해도 주민들이 서해로 나가는 길목을 가로 막고 있기 때문에 무척 답답했을 텐데 --
자기들이 제시한 NLL을 남측이 인정해 주지 않으니까 남.북간 고위급 군사대표자 회담 등을 통해서 입씨름만 하다가 99년 북측이 연평도 부근에서 어선 몇 척을 데리고 NLL을 넘어오게 되면서 남.북간 해상 전투가 벌어지게 되었는데 이것이 제1차 연평 해전이다. 이 전투에서 피해를 많이 본 북측이 1년 후에는 ‘서해 5도 통항질서’라는 안을 들고 나왔다. 이 안은 황해도 주변은 북측 해역임으로 남측이 서해 5도를 통행하는데 좁은 통로(폭 1마일)만 인정해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 안을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군사적 갈등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우리 일행은 8월 7일 오전에 인천시내 공원과 차이나타운 등 몇 군데를 관광하고 오후에 광주로 내려와 3박 4일 일정을 모두 마무리 지었다.
10. 우리가 다녀 온 후 계속된 군사적 갈등
우리가 다녀 온 후 군사적 갈등이 계속 되는 걸 보고 그때 다녀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포탄이 쏟아지는 전쟁터를 요리조리 피하면서 다녀온 느낌마저 들었다.
o 2002. 6. 29 제 2차 연평 해전(우리 측 피해 전사 6명, 부상 18명)
o 2009. 11. 10 대청 해전(북측 군함이 대청도 동쪽 NLL선을 넘어 내려오자 남측 군함이 북측 군함을 공격하여 격파함)
o 2010. 3. 26 천안함 피격사건 - 백령도 부근, 북한 잠수함 어뢰공격으로 천안함 침몰, 우리 측 46명 전사
o 2010. 11. 23 연평도 포격전 - 북한 측 아무런 선전포고 없이 연평도를 향해 해안포 발사, 우리측도 대응 사격, 우리 측 4명 전사, 19명 부상, 각종 시설 및 가옥 피해
o 2020. 9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 소연평도 인근 해역에서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 실종, 38km 떨어진 북측 지역에서 총격으로 사망. 정부 발표 - 사망자 자진 월북 추정, 유가족 - 월북 아니다 진실요구 주장, 2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정치적 이슈화
o 2022년 10월 북측, 동서 해상 완충지구에 포 사격 - 13~14일 250여 발 사격
※ 서해 5도 지역은 언제까지 남.북간 ‘화약고’로 남아 있을 것인가? 따오기가 하얀 날개를 펴고 날아다니듯이 우리들도 마음 놓고 백령도를 오갈 수 있는 날은 언제쯤 올 것인가?
-2022. 10. 28 저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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