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칠랑야한(七狼夜寒)
- 하늘은 질리게 푸르다
“뭐 하느냐? 어서 공격해라! 호연세가의 힘을 보여 주어라!”
무위검 여대추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청룡단 무사들에게 고함을 질렀다.
모대건에게 다가서던 아운이 돌아섰다.
막 아운을 공격하려던 청룡단 무사들이 움찔거리며 그 자리에 멈추고
말았다.
“공격해라! 망설이는 놈들은 내가 죽이고 말… 케엑.”
바람이 이보다 빠를까?
아운의 신형이 번개처럼 날아와 청룡단 무사들에게 명령을 내리던
여대추의 입에 주먹을 날렸다.
연환금강룡의 금강추라는 초식으로 그 위력은 이미 여러 번 확인이 되었던
믿을 수 있는 주먹질이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여대추의 왼쪽 입은 뺨에서부터 턱선을 이어주는
모든 부분이 오른쪽 잇몸이 있는 곳까지 침범을 하고 말았다.
단 한방에 기절한 여대추가 뒤로 천천히 곡선을 그리고 무너졌다.
이로서 을급 고수는 전멸하고 말았다.
이어서 아운이 움직인다.
칠보둔형과 섬전어기풍의 믿어지지 않는 신법, 보법이 보는 사람의 시선을
현혹하였고, 단룡수와 선풍 팔비각의 각법이 휘몰아친 후 일각이 지났을 때,
호연세가의 인물들 중 서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을목진 형제와 진경화 조손이나, 정운을 비롯한 묵소정 남매는 모두 숨을
쉬는 것조차 잊어버린 기분이었다.
모대건은 멍하니 서서 아운을 보고 있었다.
뼈가 모두 탈골되고 내상이 심해서 공력이 잘 운기 되지 않는지라,
아운에게 달려 들 수도 없었기에 그저 보고만 있었다.
자신의 수하들이 모두 쓰러지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아운이 돌아서서 모대건에게 다가왔다.
“악독한 놈. 네놈은 호연세가가 존재하는 한…”
말을 하던 모대건이 입을 멈추었다.
아운이 바닥에 있는 주먹만 한 돌을 집어 들고 다가왔다.
대답도 없이 다가서는 아운의 기세는 더욱 긴장감이 있었고,
추호도 흔들리지 않는 아운의 시선으로 보아 호연세가의 이름으로 그를
겁주기는 불가능 할 것 같았다.
모대건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공포란 것을 느끼고 몸을 부르르 떤다.
“네… 놈은 뭐… 뭘 하려고… 컥컥.”
퍽!
아운은 들고 있던 돌을 모대건의 입에 박아 넣었다.
어른 주먹보다 조금 더 큰 돌맹이는 모대건의 이빨을 전부 부수고 입 안에
들어가 박혔다.
삼키지도 못하고 뱉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보던 사람들이 전부 몸을 바르르 떨었다.
심약한 사람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흑칠랑은 다리가 떨리는 것을 느끼며 다시 한 번 아운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인간이란 것을 몸소 깨우치고 있었다.
‘무식한 새끼, 무자비한 놈. 차라리 깨끗하게 사람을 죽이는 내가 군자다.
군자야.’
치를 떨며 아운을 보던 흑칠랑이 몸을 부르르 떨며 야한을 보았다.
그의 눈이 묘하게 변했다.
잔뜩 굳어 있는 야한의 신경이 그대로 전달되어 온다.
‘불쌍한 놈. 꼭 자기가 당하는 기분이겠지. 크윽, 그러고 보니 내가 그런
기분이네.’
흑칠랑의 인상이 다시 구겨졌다.
***
“이제 좀 조용하군. 그럼 이제부터 시작해봐야겠군.”
아운은 모대건의 옆에 있는 마차의 잔해로 시선을 주었다.
광풍사의 습격 때 부서진 마차의 잔해였다.
아운은 그 곳에서 무엇인가를 주워들었다.
마차의 축을 이루는 나무 막대로 그 크기가 제법 길었다.
굵기는 어른손목 정도로 손에 들자 제법 묵직했다.
한쪽을 손으로 쳐서 자르고 나자, 길이가 오척 정도로 들고 사람 패기엔
딱 좋았다.
무엇보다도 몽둥이의 한쪽엔 마차바닥을 이루던 나무판을 고정시키기 위해
박아 놓았던 대못들 서너 개가 나란히 박혀 있었다.
그런데 마차의 바닥을 이루던 나무판은 다 어디가고 대못의 끝머리만
뾰족하게 나와 있었다.
대략 손가락 한마디 정도의 크기로.
그 몽둥이를 들고 모대건에게 다가서자,
그 모습을 보던 사람들은 다리가 떨린다.
“서, 설마…”
진성현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며 을목진을 보았다.
그러나 을목진은 잔뜩 긴장한 채로 아운을 보느라 진성현의 눈길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
“듣거라!”
아운의 목소리에 내공이 실리면서 사막의 바람마저 잠이 드는 기세였다.
“호연세가의 소가주인 호연란이란 계집은, 사악한 무공을 익히기 위해
수련이라는 명목으로 죄 없는 젊은 소년들을 무수히 죽음 속으로 몰아
넣었다. 지금부터 내가 그들을 대신해서 호연란과 호연세가를 단죄하겠다.
이후에 내 앞에 나타난 호연세가의 종자들은 씨를 말려 놓겠다. 그에 본
보기로 죄 없는 젊은 소년들을 납치하는데 앞장 선 이 개자식을 지금부터
내 방식으로 단죄하겠다.”
아운의 말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전부 경악한 표정이었다.
그들로서는 이 비밀을 안 자체가 멸문의 이유가 될 수 있었다.
어차피 알아도 입을 다물어야 할 판이었다.
정확한 증거를 가지고 있기 전에는.
모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꿀꺽”
야한이 마른침을 삼킨다.
흑칠랑의 인상이 야릇해졌다.
‘흐흐, 겁 좀 날거다. 불쌍한 놈아.’
흑칠랑은 얼마 전의 자신을 생각하고 야한의 마음을 능히 헤아렸다.
혼자 당할 땐 억울했는데, 그 기분을 야한이 씻어 주는 것 같았다.
볼수록, 생각할수록 야한이 맘에 들었고, 무엇인가 동지애가 느껴졌다.
좀 과묵하긴 하지만.
흑칠랑이 다시 아운을 본다.
'겁도 없는 새끼. 내 장담하건데, 저 새낀 배속을 해부해도 간이 아예
없거나, 부운 간댕이 하나만 달랑 있을 거다.'
호연세가를 무슨 녹림채의 작은 산적 무리 정도로 평가절하 하는 듯한
아운의 배짱 앞에 흑칠랑은 그저 한없이 작아지고 있었다.
아운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감돌자,
그것을 본 묵천악은 하마터면 오줌을 지릴 뻔하였다.
그는 떨리는 시선으로 소설과 소산을 보았다.
이제 자신의 목숨이 그녀들에게 달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들이 입을 여는 순간 아운은 말이 아니라 이번에는 못 박힌 몽둥이로
때려죽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지도 모른다가 아니라 능히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었다.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고, 묵소정이나 정운마저 안절부절하고 있는데,
아운이 들고 있던 몽둥이를 휘두르며 모대건에게 다가섰다.
뾰족하게 삐져나온 대못이 사막의 태양빛에 차갑게 반짝거렸다.
기절도 못하고 아운을 보며 컥컥거리는 모대건의 눈은 이미 공포에 질려
죽어가고 있었다.
차후, 을목진이 당시의 일을 회상하며 말하길…
“누가 있어 그의 길을 막을 것이고, 누가 있어 감히 그의 비위를 상하게
할 것인가? 그는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가는 장부였다.
내가 장담하여 말하건대, 권왕과 적이 되는 것은 차라리 죽는 것보다
못할 것이다.”
아운의 몽둥이는 무자비했다.
결코 가리는 곳 없이 휘두르는 몽둥이와 대못의 압박은 보는 사람의
모골을 쭈뼛거리게 만들었다.
저자거리에서 막가는 인생들도 저렇게 사람을 패지는 않을 것 같았다.
“네 놈에게 죄 없이 끌려와 죽은 영혼들을 생각하며 죽을 때까지 반성
하거라!”
아운의 몽둥이가 단전을 내리치면서 모대건은 무공이 전패되고 말았다.
모든 것을 잃었다.
무공을 잃었고, 명예도 잃었다.
모대건은 몇 번을 기절했다가 깨어났지만, 그것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제발 빨리 죽여주었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아프다.
아파도 너무 아팠고, 무서워도 너무 무서웠다.
공포는 사람의 사고를 마비시키고, 가장 순수한 상태로 돌아가게도 만든다.
모대건은 자신이 무림제일세가라는 호연세가의 천각, 각주였다는 사실마저
의식하지 못했다.
공포와 두려움, 그리고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서서히 의식을 끈을
놓았다.
아운의 사나운 기세 앞에서 그 누구도 말릴 생각을 못했다.
어쩌면 말릴 필요가 없을지도 몰랐다.
을목진이나 을국진 형제, 그리고 진경화 조손으로선 은근히 통쾌한
기분마저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묵소정이나 묵천악이 볼 때,
모대건의 처지는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묵천악의 얼굴은 완전히 공포에 질려 있었다.
지은 죄가 있는 만큼 모대건의 처지가 자꾸만 자신과 겹쳐졌다.
주먹질은 안 해도 몽둥이질을 안 하겠다는 말은 없었기에 더욱 두려웠다.
묵소정이나 묵천악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 있음을 인식하고 슬그머니
소설과 소산에게 다가섰다.
한편 호연세가의 청룡단이나 을급 고수들은 전부 어디 하나가 부러진 채
쓰러져 있었으며, 자충은 아운이 한 약속대로 팔 다리가 부러지고 영혼과
육체가 분리된 상태였다.
흑칠랑은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은 심정이었다.
당장이라도 대못 박힌 몽둥이가 자신의 머리를 찍어 오는 착각이 들었다.
‘으으, 인간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단 말인가…’
흑칠랑이 본 아운은 인간이 아니었다.
지옥의 악귀도 저렇게 잔인하진 못할 것이다.
‘그, 그래도 어딘가 허점이 있을 것이다. 반드시 천하제일살수문의 자리를
차지하고 말겠다.’
의지의 흑칠랑이었다.
그는 새삼 새롭게 결심을 다시면서 야한을 보았다.
‘이 자식, 이거 정말 대단하군. 저런걸 보고도 표정 변화가 없다니.’
흑칠랑은 야한을 보면서 조금 꺼림칙했다.
아운의 능력을 보고 겁을 먹었던 자신과는 대조적으로 야한은 그다지
큰 표정의 변화가 없어 보였던 것이다.
은근히 상대적으로 열등감마저 밀려 왔다.
‘그렇지. 이 자식과 합작을 하면 되겠다. 그럼 좀 쉬어질 수도 있을 텐데.’
흑칠랑은 왜 이제서야 그 생각을 했을까 후회하며 야한에게 물었다.
“이봐, 우리 힘을 합해서 저 자식을 치는 것은 어떤가?”
야한의 대답이 없었다.
“이봐.”
그제서야 야한이 무표정한 얼굴로 흑칠랑을 보았다.
“무슨 일이요?”
그래도 흑칠랑이 조금은 선배라고 대접은 할 줄 안다.
“내가 말이야! 꼭 저 아운이란 무식한 녀석이 무서워서 하는 소리는 아닌데,
어차피 같은 목표를 노린다면 둘이서 힘을 합하는 것은 어떤가?”
야한의 눈이 스산하게 변했다.
‘올 커니 내 말에 지도 느끼는 것이 있구나.’
흑칠랑이 기대어린 눈으로 야한을 본다.
“난 말이요. 선배.”
잔뜩 굳어 있는 목소리였다.
“말해 보게, 내가 자네의 뜻을 많이 수용해 주겠네.”
“칼 맞아 죽는 것은 어쩔 수 없어도, 몽둥이에 맞아 죽고 싶지는 않소.
더군다나 대못 박힌 몽둥이에 맞아 죽는 짓은 죽어도 싫소.”
정말 너무도 진지한 말이었다.
흑칠랑은 잠시 멍한 기분이었다가 다시 한 번 야한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제서야 흑칠랑은 야한의 얼굴이 무표정한 이유를 알았다.
그는 겁에 질려서 안면이 굳어 버린 것이다.
흑칠랑은 허탈한 마음으로 다시 하늘을 보고 말았다.
‘염병 하늘은 질리게 푸르기도 하구나. 야한 저 겁쟁이 새끼 얼굴처럼.’
자신이 겁먹은 것은 인정하지 않았다.
살아남은 을급 고수 네 명은 겨우 목숨만 붙어 있는 모대건을 말에 태우고
사막을 떠나갔다.
입에 박힌 돌은 아직도 그대로였다.
그 들의 뒤를 무공을 잃은 채 팔다리가 부러진 청룡단의 무사들이 불쌍한
모습으로 뒤따른다.
그래도 그들은 오로지 아운에게서 멀어진다는 그 하나에 희망을 걸고
부지런히 걸어서 멀어져 갔다.
맨 앞에 걸어가는 무위검 여대추는 아운의 일행이 안 보이는 곳까지 오자
뒤를 돌아보았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이 꿈만 같았다.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은 전혀 생각해 보지도 않은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아운이 호연란에게 전하라고 한 말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했다.
"가서 호연란이란 계집과 호연각이란 늙은이에게 전해라! 나 아운이 다시
강호에 들어가는 날, 호연세가를 멸하고 호연란이란 계집의 사지를 부러
트려 죽이겠다고.”
강호제일세가를 멸문시키겠다는 말을 너무도 당당하게 선포였다.
그 말을 듣고 여대추는 다시 한 번 가슴이 서늘해지는 기분을 느껴야 했다.
아운의 말이 결코 허언으로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여대추를 비롯한 호연세가의 무사들은 아운이 모대건에게 하는
말을 전혀 듣지 못했다.
모두 기절해 있던 상황이었기에 들을수가 없었던 것이다.
단지 아운이 호연세가에 무엇인가 원한이 있을 것이란 짐작만 할뿐이었다.
“휴우.”
한숨이 세어 나왔다.
이제 무공이 전폐 되었으니, 무엇을 하고 살지 막막했다.
그게 어디 그 하나의 생각뿐이겠는가?
함께 길을 가는 호연세가의 무사들은 전부 같은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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