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일시:24.4.23-4.27
ㅇ장소:도쿄, 가나자와시(이시카와현)
일본출발 2일전 암치제 정라도중 슬립으로 오른쪽 발목인대 파열, 암담한 상황이었다.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해서 결국 어렵지만 일본 가기로 결정하고 출발한다.
새벽 한시 전북도청으로 출발, 도청 북2문에 대기중인 리무진버스로 새벽세시에 출발 김포공항에 6시경 도착하여 입국 수속하고 간단 아침식사후 8시40분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출발했다.
공항 수속은 장애인 서비스를 사전에 신청해놓아서 휠체어로 프리패스통과할수 있었다.
근데 난관에 봉착, 일반적 전세버스로 이동이 아니라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베낭여행컨셉이다.
미리 알고는 같지만 이정도일줄은 몰랐다.
첫날 하네다 공항에서 숙소인 메트로폴리탄 이케브크로호텔에 도착 짐풀고 간단 점심후 나는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고 일행은 첫날일정인 요코하마 미나토리아21로 갔다.
호텔 체크인이 3시부터라 3시까지 혼자 로비에서 3시까지 기다리고 있다.
다음날 역시 지하철과 신간센 고속열차로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에 도착 도시락으로 열차에서 식사후 일정을 강행한다. 살인제인 타이트한 일정이다.
첫날간곳은 가나자와 미래마을 창조관이다. 폐교된 초등학교를 리노베이션해서 주민공동체를 위한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가나자와시 관계자가 미래창조관 이용상황에 대한 설명과 질으 응답을 해준다. 오른쪽 아가씨는 현지 통역인 우리나라 사람이다. 일본에서 통역으로 취직중이라한다. 대단한 아가씨다.
초등학교를 리모델링 하면서 최대한 간결하게 하려는 노력이 보인다.
천정반자는 없에고 노출시키고 벽체와 천정모두 백색으로 담백하게 계획하였다.
필요 배관 설치하기 위해 별도 철골구조물을설지
배관에 명칭을 적어놓아 구분될수 있게함
미래도시창조관 옥상에서~
공유주방
스타트업 육성관
지역 어린이,청소년 놀이공간겸 창의력 향사믈 위한 활동공간
오른쪽 끝에 남자분은 현지 통역사인 한국분이심, 가운데는 김제시 정효곤 과장님
어린이, 청소년 활동상황들
초등학교 칠판 재활용
등록된 어린이 회원수가 300명 정도고 이용료는 무료라고 함
미래도시창조관 전경이다.
가나자와시 둘째날
첫번째 공식일정은 이시카와현립도서관 방문, 왼쪽은 동행설명을 맡아주신 부관장님 오른쪽은 어제 그 통역아가씨다.
현립도서관의 외관은 책장이 넘어가는걸 형상화했다. 대단한 규모의 도서관이다.
도서관의 전체적인 외관은 장방형인데 안에 들어오면 원형의 홀이 있어 도서관 형태가 흡사 원형처럼 느껴진다.
홀 중심엔 동서남북 방위표가 있는데 사용자들이 방향을 헤깔리지 않도록한 배려다.
부관장님이 열변을 토하시며 도서관 이곳저곳을 안내해 주셨다. 이런 견학생들이 우리 말고도 상당히 많았던듯 하다. 설명 하시는게 뭔가 짜임새가 있다.
이런 공간 모두 주말이면 한자리씩 차고 앉아 책읽는 공간이 된다. 따스한 빛과 어우러지는 멋진 곳이다. 책이 막 읽고 싶어질거 같다
원형의 서가배치, 각 섹터별로 방위에따라 색을 달리해서 동서ㆍ에 혼선이 오지 않도록 했다. 원형이다보니 자칫 방향감을 잃을 수도 있기에 간단하지만 직관적으로 잘 알아볼 수 있게 한 지혜로운 방법이란 생각이 들었다.
구석에 숨어들길 좋아하는 꼬맹이들의 습성을 배려새 이런 유아용 독서공간을 만들어놨다.
유아공간은 유일하게 외부 정원도 만들어서 책읽기 지루하거나 애들 짜증내면 밖으로 나가 햇빛을 쪼이면서 시간을 보낼수도 있다.
여긴 윤봉길의사 암장지다.
이시카와현 가나자와시 윤봉길의사 암장지(매장터) 방문, 숙연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소주 한잔 올리고 묵념후 방문록에 서명도 했습니다. 묵념하는 잛은 순간 복잡한 생각이 들었네요. 지금껏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었다는 죄송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현재 이곳은 제일 한인회에서 관리 하고 있는데 작은 리플릿등이 구비되 있습니다.
윤봉길의사는 1932년 4월 29일 백범 김구의 명으로 상하이 홍커우공원(현 루쉰공원)에서 열린 일본전승기념식 단상에 폭탄을 투척, 상하이 파견군 총사령관이 사망 하는등 많은 피해를 입히고 붙잡혀 일본 가나자와로 이송되어 1932년12월19일 07:27에 사형집행되었습니다. 순국이후 시신은 일본군 전사자 기념비로 가는 통로에 평장으로 암장하여 길가는 사람들이 밟고 가도록 하여 순국이후에도 편히 쉴수 없도록 하였다 합니다. 1946년 윤봉길 의사의 유해는 백범김구 등의 노력으로 시신발굴을 통해 고국으로 이송 현재는 서울 효창공원에 모셔져있다 합니다.
의거를 시행할당시 그의 나이는 26세(만24) 였다 합니다.
나름 유명한 라멘집이라 아픈다리를 질질끌고 삼싶분을 걸어 찿아간곳이다.
라멘 먹기도 전에 이 먼곳을 다리아픈 날 끌고 온거에 분통이 터져 씩씨커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렇게 힘들게 먹은 라면맛은 완전 똥맛이었다.
똥맛라멘, 이렇게 짜고 느끼한걸 맛있다고 먹는 인간들이 대단하다. 거기에 비하면 신라면은 그야말로 천국의 맛이다.
라엔집은 흡사 독서실처럼 개인칸이 요렇게 생겨 먹었다. 참~다씬 일본 라멘 안먹는다고 다짐해본다.
일식당은 엔저현상으로 싸다고 하지만 아직도 우리가 느끼기엔 비싸다. 마지막날 플렉스 한다고 갔던 소고기집이다 술은 무한리필이며 술 종류또한 와인,사케,맥주 등 다양하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한쪽에선 갑자기 게임을 하며 와짜한 분위기다.
발목부상으로 술을 못하던 나도 이날저녁은 술을 같이 마셨다는...소고기 맛은 참 좋았지만 양이 너무 적었던거 같다.
부상 투혼으로 다녀왔던 일본 도시재생 현장견학 여러모로 많은 아쉬움이 남는 여행이었다. 부상만 아니었으면 보다 즐겁게 일행들과도 많이 친해지며 많은 성과를 거둬왔을거 같은 알찬 여행이었을텐데....
앞으론 조심히 다니며 절대 부상당하지 말자. 부상당하면 이도저도 다 부질없어진다. 조심히 조심히 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