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개인적인 시험
성경: 6장 1-19절
주제:느헤미아가 당하는 개인적인 시험
느혜미아서 6장에 들어갑니다. 지금까지 공부한 느혜미아서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감에 있어서 참으로 힘이들었던 이유는? 대적들로 인한 끊임없는 시험이 있기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합니다. 4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단체적인 시험인 반면, 6장은 느혜미아를 향한 개인적인 시험입니다.
사단은 무리를 시험하기도 하지만 개인도 시험을 합니다.
1절에서 보면 성벽건축이 이제 완성 직전에 있습니다. 문짝만 달면 됩니다.
이소식을 들은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사람 게셈과 그 나머지 대적들이 성벽공사 현황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느혜미아는 웅장하게 선 성벽을 바라보면서 감회가 남달랐으리가 봅니다.
"이제 문짝만 만들어 달면 되겠구나". "이젠 다 됐구나" 하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대적 산발랏과 게셈으로 부터 정상회담을 하자는 전갈이 왔습니다. 그 장소는 오노평지였습니다. 이 오노평지는 예루살렘에서 한 40키로 떨어진 예루살렘과 사마리아 중간지점입니다. 그러나 그곳은 이스라엘 영토가 아니므로 대적들이 자기를 유인해서 얼마든지 살해할 함정이 있는 곳이였습니다.
이 사실을 안 느혜미아는 그들에게 사자를 보냅니다.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겟노라 내가 어찌하여 역사를 떠나 정지하게 하고 너희에게로 내려가겠느냐"고 명분있는 대답을 합니다.
여기서 "큰 역사"란 성벽공사를 의미 합니다.
그러자 "저희는 네 번이나 사람을 보내서 계속 만나자고 했습니다"
네번이나 사람을 보낸것을 보면 "그들이 받고 있는 심리적인 위협과 또한 느헤미아를 살해하려는 의도가 얼마나 집요했던가를 알 수 있게 합니다"
그때마다 느헤미아는 한결같습니다. 큰역사를 행하므로 못내려간다는 명분있는 대답으로 거절합니다.
여러분은 이 느헤미아가 당한 사건을 보면서 어떤 느낌을 받습니까?
"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말아야 겠구나' 하는 생각입니다.
이제 성벽건축 다 되었습니다 ,문짝만 달면.됩니다.. 그런데 살해하려는 대적의 계괴가 그것도 무려 4번이나 집요하게 해오는것을 보면 이것은 느혜미아에게만 있는 일이 아니라, 오늘날 하나님의 일을 하는 우리 성도들에게도 있는 일이라 여겨집니다. 우리의 원수 사탄은 마지막, 이제 다 됫다고 방심할 그때, 사정없이 무서운 음모를 가지고 공격해 올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지난 한 주간 저는 서울 사랑의 교회에 가서 제자 훈련을 4박 5일 받고 왔습니다. 그때 간증하러 나오신 이랜드의 사장인 박성수 집사님으로 부터 인상깊은 간증을 들었습니다.
자신이 성경공부를 시키는 자매가 ,말씀을 공부하는중에 찔림이 있었는지, 자신의 숨긴 비빌을 고백하는데 ,지금 자신은 결혼을 전재로 한 동거생활을 하고 있다는것입니다. 같이 사는 남자는 지독한 여호와증인이라는 것입니다. 그 남자를 사랑하고 있는데, 여호와증인에서 좀 빠져나오게 해 달라는 부탁에 성경공부를 하는곳에 데리고 오라고 했답니다.
여호와증인은 기존 교회를 나가면 파문을 시킨다는 사실을 안 박집사님은 어떻게 하든 이 형제를 교회에 다니도록 해야 겠다고 생각을 하고 성경을 나누는데 참 초기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형제에게 직장을 잃고 , 직장을 찾아야 하는 아주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을때 ,하나님에게 한번도 기도한적이 없는 이 청년에게 , 우리 한번 기도해보자고, 댁도 여호와를 섬기고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니까 그 여호와께 기도하자고.. 직장을 달라고 기도한지 일주일만에 응답이 되어서 좋은 새 직장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것을 계기로 그 형제의 마음이 기울어져 드디어 여호와증인을 중단하고 교회에 나가겠다는 결심을 얻게 되었고 그 약속은 오는 주일날로 정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주간에 아주 중요한 해외출장이 있어서 , 한 주를 더 미루고 출장을 갔다 온 다음, 금주에 약속한데로 못지켜 죄송하다고 하고 다음주에 같이 나가자고 하려고 연략을 해보니 , 그 형제는 완전히 여호와증인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답니다.
여호와증인쪽에서 사람이 나와서 다시 끌고 들어간것입니다.
그 때 미루지 않고 약속한 주간에 교회에 데리고 나왔으면 그 형제는 여호와증인에게서 파문을 당할것이고 그 영혼을 건질 수 있었는데 그 마지막 좀 소홀하므로 그 동안 쏟았던 정성과 노력이 다 수포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고 하며 지금도 마음에 아픔으로 남아 있다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참 이것을 보면 우리는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 마지막 순간까지 방심하지 말아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장기 금식기도하다가 마지막, 이제 조금만 참으면 되는데 그것을 참지 못하고 사단의 집요한 음식의 유혹에 넘어가 절제하지 못하므로 갑자기 너무 많은 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었다가 생명을 잃는 사람도 종종 있습니다. 그것은 마지막 방심해서 그렇습니다.
그러니 끝까지 충성해야 합니다. 조금도 방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느혜미아는 끝까지 방심하지 않았습니다. 4번의연락이 왔으면 느혜미아의 마음도 좀 흔들릴 수 도 있을것입니다. 나를 해코자 함이라는것을 알아 차렸다면 그들을 느혜미아가 해를 입지 않을 유리한 장소를 선정해서 그렇게 만나고자 한다면 너희들이 와라, 하고 연락을 할 수 있었을 것인데, 느헤미아의 한결같은 대답은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내가 어찌하여 역사를 떠나 정지하고 너희에게로 내려가겟느냐"라는 대답만 했습니다.
4번이나 똑같은 이와같은 느헤미아의 대답속에는 느혜미아의 비장의 각오가 들어있음을 우리가 보게 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성벽완성의 일을 소홀하지 않겠다는것입니다.
마지막 성문이 달 때까지 자신의 모든 노력을 조금도 늦추지 않겠다는 지도자의 각오,충성된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대적은 집요합니다.
5절에 보면 4번을 거절당하자, 이제는 다섯번째 "봉하지 않는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그 내용인 즉 " 이방인중에서도 이미 소문이 쫙 퍼져다는것입니다. 그 소문은 "느혜미아 네가 유다사람들과 성벽을 건축해서 그들의 왕이 되어 아닥사스다왕을 모반하려고 한다는 소문" 또한 "느혜미아가 선지자를 세워서 유다 왕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선전하게 하였다"고 하는 소문이 이방인에게까지 퍼져서 그것은 결국 아닥사스다왕에게 들어가게 될것이니 한번 만나자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무서운 모함입니다.
보통 편지를 봉해서 그 받는 사람만 보게 해야 하는데 일부로 봉하지 않아서 누구도 꺼내 볼 수 있게 하므로 이 거짖 모함이 번지도록 했습니다.사실 아닥사스다왕이 이것짓 소문을 들으면 정말 느헤미아가 위기에 처할 수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들이 이런 편지를 보낸것은 에스라 선지자때 르흠과 심새의 모함의 편지로 건축이 중단되었던 과거의 역사가 되풀이가 될 그와같은 두려움을 갖게 하여 스스로 맥이 빠지게 하여 일을 중단케 하고자 하는 숨은 의도가 있는것입니다.
지도자에게 있어 악성 루머만큼 큰 상처를 주는것이 없습니다.
잘못된 소문이 퍼져 나가면 밤새 잠도 못자고 심지어는 사역을 중단하는 사태까지 벌어집니다.
마귀의 자녀만 이짖을 하는것이 아니라 종종 성도들도 사단의 도구가 되어서 나쁜 소문을 퍼뜨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입으로 전해지는 소문은 사실과 엄청나게 다르다는것을 당자와 이야기속에서 저는 종종 발견하게됩니다.
저는 사실 교회에서 저에게 성도들중에 누가 이렇다고 그 사람에 대해서 아주 나쁜 소문을 전해주는 경우를 가끔 들을때가 있습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그 소문에 당사자에게로 부터 나쁜 소문에 대한 그 문제에 대해서 사건전후와 그리고 그 본인에 처한 입장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들어보면 너무나도 엉뚱하게 오해가 되어서 ,또 부풀려져서 돌아다니는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깨닫는것이 양쪽의 이야기를 다 들어보아야 하겠구나입니다.
한쪽말만 들어서는 안된다는것입니다.
우리가 말할때 두가지 원칙,
1,사실에 근건한 말만을 하자는 것입니다.
뜬 소문을 전하면 안됩니다. 다른 사람에 이야기를 듣고 그것을 또 다른사람에게 하면 안됩니다.
2,덕이 되는 말만을 하자는것입니다.
사실이라 할지라도 덕이 되지 않는 말은 말 할 필요가 없습니다.
에베소서 4장 29절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합니다.
듣는 사람에게 "은혜로운 말"만 해야 합니다.
느헤미아는 이와같은 악성 루머에 대해서, "이런 일은 없는일이며 너의 마음에서 지어낸 이야기"라고 통보를 했습니다만, 심적으로 몹시 힘이 든것 같습니다..
그래서 느혜미아는 이때 다음과 같은 기도를 9절 끝에 합니다.
"내 손에 힘있게 하옵소서".
힘을 달라고 기도하는 느혜미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10절에 보면 느혜미아는 그 후에 자신의 친구이자 선지자인 스마야가 얼굴이 보이지 않자 그 집으로 찾아 갑니다. 이것을 보면 스마야는 느혜미의 아주 가까운 사람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찾아가니 스마야가 말하기를 "저희가 너를 죽이러 올테니 우리가 하나님의 전 외소안에 있고,그 문을 닫자 저희가 필연 밤에 와서너를 죽이리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외소란 성전안에 지성소와 성소로 나누는 부분중 성소를 말합니다. 그 성소안으로 도망을 가서 성전문을 닫고 숨자는 것입니다. 자기도 같이 가겠다고 합니다.
얼마나 친구를 생각해주는 우정 어린 표현입니까?
더군다나 스마야는 선지자입니다. 선지자란 하나님의말씀을 받아서 말하는 자입니다.
느혜미아 쪽에서는 무시할 수 가 없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신분을 가진 사람의 말입니다.
그러나 느혜미아는 11절에 "나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고 했습니다.
느혜미아는 지도자입니다. 지도자가 도망가서 숨었다고 하면 , 한손에 칼을 들고 한손에 보습을 들고 일하는 백성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런데 12-13절에 나중에 "깨달안즉 저는 하나님의 보내신 바가 아니라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내게 이런 예언을 함이라 저희가 뇌물을 준 까닭은 나를 두렵게 하고 이렇게 함으로 범죄하게 하고 악한 말을 지어 나를 비방하려 함이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친구이자 하나님이 종인 선지자가 재물을 유혹이 되어 우정과 직분의 바른 자세를 버린고 만것입니다.
스마야에게 뇌물을 준까닭은? (1)느혜미아를 두렵게 하고, (2),범죄하게 하려고 하고, 사실 성소에는 제사장만 들어가는곳인데 느혜미아가 들어가면 범죄입니다. (3)악한 말을 지어 나를 비방하려 함이었느니라 ,지도자가 도망을 가서 성소에 숨었다고 하면 이것은 끝난것입니다. 지도자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는것입니다. 누가 이런 느혜미아를 존경하고 따르겠습니까?
이것을 깨달았을때 느혜미아의 마음이 어떻했을까요?
그것도 가장 가까운 벗으로 부터... 또한 오늘날 같으면 말씀을 받아서 전해주는 목사님과 같은 직분을 가진 자로 부터... 참으로 고통스러울겁니다.
오늘 날도 사탄이 쓰는 수법중에 하나가 바로 가장 가까이 있는 자를 들어서 쓰러뜨리고자 하는 수법입니다. 예수님에게는 베드로를 통해서 쓰러뜨리고자 했습니다. 십자가를 지겠다는 말을 들었을때 "주여 그리 마옵소서.."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갈지어다.. 너는 하나님의 일보다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하면서 꾸짖는 모습 기억합니다.
예수님에게 가장 가까운 베드로를 통해서 사탄이 공격한것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0장 35절에 "내가 온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 딸이 어미와 ,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고 했습니다.
가장 가까운 집안식구가 원수노릇을 할 수 있다는것입니다.
이때 얼마나 아품이 크겠습니까?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당하는 배반과 상처 , 아들에게서 당하는 아버지의 고통, 며느리에게 당하는 시어머니의 절규, 흔히 있는 일입니다.
이럴때 느헤미아는 14절에 보면 그 아픔을 갖고 하나님에게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선지 노아디와 그 남은 선지자들 무릇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의 소위를 기억하옵소서 하였노라"고 합니다.
내 하나님이여! 기억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에게 의뢰합니다.
다윗도 자기 장인 사울이 죽이려고 원수가 되어 좇아 올때 그가 피한것은 하나님이였습니다.
그래서 시편 18편 1-3절을 보면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이시요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가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라고 합니다.
이말은 하나님에게 피하니 나의 힘이 되어 주셨다는것입니다.
나를 건져 주셨다는것입니다. 나의 피할 바위시라는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해보면, 느혜미아는 대적으로 부터 세가지 종류의 개인적인 공격을 받은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노평지에서 만나 살해하려는 무서운 음모에 집요하게 시달렸고, 둘째는 봉하지 않는 편지로의 증상모략에 고통했고, 세째는 가장 믿었던 가까운 벗으로 부터 배반에 고통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느혜미아는 그럴때마다 하나님께 피하므로,.
결국 15절에 "성 역사가 오십이일만에 엘룰월 이십오일에 끝나매 우리 모든 대적과 사면 이방 사람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스스로 낙담하였으니 이는 이 역사를 우리 하나님이 이루신것을 앎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결국은 이루게 하셨습니다.
두려움을 주려했던 대적들이 오히려 두려움에 떨게 되었고, 낙담케 하려던 원수들이 오히려 낙담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원수 사탄이 음모와 증상모략과 , 가장가까운 사람을 통한 거짖 충고로 공격해 올때 두려워하지 말고, 낙담하지 말고, 하나님앞으로 피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아시고, 하나님이 이루시고, 하나님이 도우실것입니다. 기도하십시다.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옥련지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