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손 10 (삿 14:12-14)
12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너희에게 수수께끼를 내리니 잔치하는 이레 동안에 너희가 그것을 풀어 내게 말하면 내가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을 너희에게 주리라 13 그러나 그것을 능히 내게 말하지 못하면 너희가 내게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을 줄지니라 하니 그들이 이르되 네가 수수께끼를 내면 우리가 그것을 들으리라 하매 14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하니라 그들이 사흘이 되도록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였더라
오늘은 삼손을 통해서 본 “성경해석의 비밀”에 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영생을 얻고 천국 가는 지도가 성경입니다. 그런데 비밀스런 지도라서 수수께끼 풀듯 잘 해석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엉뚱한 결론이 나서 구원 얻을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멸망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벧후3:15-16에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
본문은 삼손이 블레셋에 가서 혼인잔치의 흥을 돋우기 위해서 수수께끼를 낸 장면입니다. 우리나라의 재래 혼인풍습에도 여러 재미있는 풍습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수수께끼가 14절에 나옵니다.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이것이 뭐냐는 수수께끼입니다. 내기는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이고 기한은 7일입니다. 문제를 풀면 신랑이, 풀지 못하면 상대가 내야 합니다.
이 문제 속에 성경해석의 비밀이 있습니다.
1. 육신의 생각으로 접근하면 안 됩니다.
14절 “그들이 사흘이 되도록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였더라” 블레셋 사람들이 이 문제를 풀지 못한 것은 히브리인이었던 삼손의 히브리적인 사고로 보지 못하고 자신들의 블레셋 사고로 문제를 접근했기 때문입니다.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이것이 뭘까?
블레셋 사람들은 먹는 자가 뭐고, 먹는 것이 뭘까? 그리고 강한 자가 뭐고 단 것이 뭘까? 블레셋 사고로 보면 답이 4개가 나와야 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적인 눈으로 보면 답이 2개입니다. 그것을 평행법 문장이라 하는데 평행법이란 같은 내용을 반복함으로 전자와 후자가 서로 내용을 보완하거나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공식으로 나열하면 먹는 자와 강한 자는 같은 것입니다. 이처럼 먹는 것과 단 것도 같습니다. 이 공식으로 풀면 강하면서 잡아먹는 자가 무엇입니까? 사자입니다. 또 먹는 것이면서도 단 것이 무엇입니까? 그 답은 꿀입니다. 공식만 알면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들이 문제를 풀지 못한 것은 이 평행법 문장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머리로 성경을 해석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과학적인 눈으로 성경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독일에서 신신학자들이 많이 나왔는데 독일인들의 사고방식은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두뇌를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등비평에 문서설이 나오고 성경을 갈기갈기 찢어 분해하다가 못 믿겠다가 되고 말았고, 혹은 적그리스도 이단들이 교묘하게 짜 맞추어 자기 홍보에 악용하였습니다.
고전2:8-10에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성령을 강조한 것은 육신적으로 해석하지 말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알지 못한 것은 그들은 잘못된 교리에 묶여 영광의 메시야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메시야가 낮게 오실 리가 없다는 가정 하에 잘못된 결론을 설정해 놓고 성경을 해석한 것입니다. 사 53장과 같은 메시야 수난예언장도 성경에서 빼버렸습니다. 그 눈으로만 보니 성경이 열릴 리가 없습니다.
2.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이 평행법은 문장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 원리는 구약과 신약, 혹은 성경과 성경으로 확대됩니다. 신구약은 맷돌의 두 짝과 같습니다. 이 두 가지가 맞물려 돌아갈 때 비밀이 풀려나고 내용이 더욱 확실해지고 구체화될 뿐 아니라 그 메시지가 항거하지 못할 만큼 사자처럼 강해지고 또 꿀송이와 같이 달콤하게 됩니다.
신약의 복음을 구약의 줄거리에다 실어서 전하니까 얼마나 말씀이 풍성해집니까? 가령 성막 절기 율법 등으로 복음을 설명하면 얼마나 구체적입니까? 혹은 중생을 기드온 이야기에 실어서 말하면 중생의 생명이 살아 약동합니다. 기드온이 밤에만 밤에만 싸우듯 예수 믿고 하나님을 경외하면 나도 모르는 순간에 중생의 생명이 활동하기 시작하여 마음의 우상을 부수고, 기드온 300명처럼 일치된 완전한 마음으로 주님을 따르며, 미디안의 군대를 완전히 추격한 후 해가 돋듯 나는 사라지고 예수를 나타내는 사람이 됩니다.
이처럼 신약이 구약을 만나면 의미가 더 확실해지고 풍성해지고 살아 약동합니다. 신약은 한 마디로 예수와 그 복음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로 구약을 해석해야 정답이 나옵니다. 그래서 요5:39에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비밀이요 수수께끼의 답입니다.
그래서 골2:2에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라고 했고, 엡3:9에는 "하나님 속에 감취었던 비밀", 엡6:19에는 "복음의 비밀"이라 했으며, 골1:26-7에는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그리스도"라고 말씀합니다.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의 고백처럼 이 비밀을 깨닫고 믿어야 구원을 얻습니다.
눅 24장에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25-27절)
그 후 11제자들에게도 눅24:44-48을 보면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요한계시록도 성경이니까 성경으로 해석해야지 시대적 과학적으로 풀려고 하니까 모두가 제각각이고 두려움밖에는 없습니다. 복음이 없고 두려움만 있다면 그것이 재앙입니다. 그래서 계22:18-19에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계시록도 복음의 비밀이지 다른 책이 아니란 말씀입니다.
3. 성경에 칭의와 성화의 비밀이 들어 있습니다.
12절 “너희에게 수수께끼를 내리니 잔치하는 이레 동안에 너희가 그것을 풀어 내게 말하면 내가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을 너희에게 주리라” 이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면 30명의 블레셋 청년들은 겉옷 속옷까지 빼앗기고 벌거벗게 생겼습니다.
이처럼 성경을 모르면 믿는다 하면서도 벌거벗고 살게 됩니다. 사61:10에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했습니다.
속옷이 칭의라면 겉옷은 성화입니다. 30벌이니 하나님의 완전수 3에 갖춤 구비수 10이니 완전한 칭의와 성화를 암시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나의 구주임을 믿어 영접하면 그것이 칭의요, 그 주님이 내 인격 안에 나타나실 때 그것이 성화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을 뿐 아니라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칭의를 넘어 성화가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완성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도 사람들이 천국의 비밀을 알지 못하니까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마13:11-13). 성경 속에 구원 얻을 영생의 비밀이 들어 있고 어떻게 신앙생활할지 경건의 비밀이 들어 있고 우리가 장차 어떻게 될지 천국의 비밀이 들어 있습니다. 잘못 알아 멸망에 이르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성경에서 우리 구주이신 그리스도와 그 복음을 확실히 알고 믿어서 칭의와 성화와 영화의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한국강해설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