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돌자연학교 중고등부의 네 가지 핵심 교육 목표
1) 성경적 세계관 확립
2) 인문 고전 독서를 통한 지성의 함양
3) 진화론 대신 창조과학에 입문하기
4) 학창시절에 영어 끝내기
<인문 고전 독서를 통한 지성의 함양>
청소년기 시기에 꼭 이루어야 할 교육의 목표 네 가지 중에서 두 번째 과제에 대해서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나라의 공교육 현장에서는 실현되고 있지 않지만 최근에는 AI의 등장과 미래적인 교육에 대한 관심으로 ‘책’의 중요성이 학부모 그룹에서뿐 아니라 교육 당국에서까지도 대두되고 있습니다.
십여 년 전 한 때 인문학 열풍이 우리나라를 휩쓸고 가기도 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이 역시 오래 가지 못하고 한때의 바람으로 지나간 것 같습니다. 전국 곳곳의 문화센터에 인문학 강좌가 열리고 너도나도 인터넷 강좌를 한두 개쯤 신청을 해서 청취하기도 했었지요. 우리나라는 무엇이든지 한 때의 ‘유행’으로 넘겨버릴 수 있는 특이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풍랑이 일 때 배는 순간의 풍랑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멀리 등대를 바라보아야 하는 것처럼, 우리나라처럼 무엇이든 급변하고 풍랑이 많은 나라일수록 흔들리지 않는 보편을 바라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기독교대안학교는 우리나라에 가치관의 붕괴와 혼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21세기와 더불어 시작한 하나님 나라 운동입니다. 세태의 흔들림을 끌어안고 전진해야 하기에 기독학교들 또한 안정과 풍요 속에서 운영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교육적 콘텐츠에서 보편성을 추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흔히들 다니엘을 이야기할 때 그가 바벨론에 포로로 있으면서도 하루 세 번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했던 믿음의 사람인 것을 말합니다. 그는 순전하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한 믿음의 청년이었고 그런 점에서 ‘성경적 세계관’의 사람이었습니다. 바벨론에 교회가 있을 리 만무하며 성경책도 가지고 있기 어려웠을 텐데, 그는 이미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성경적 세계관으로 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속적 가치로 충만한 바벨론의 궁정에서도 하나님을 잃지 않고 자신을 정결하게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단지 이러한 ‘믿음’의 사람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바벨론의 학문에 통달하여 당시 바벨론의 박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출중한 학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럼 다니엘이 공부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을 요즘 식으로 한 마디로 표현하면 바로 ‘인문 고전 독서’였습니다. 여기서 인문이란 말은 ‘자연’과 대비되는 개념이 아니라 요즘의 자연과학을 포함하는 광범위한 ‘지식-책’을 의미합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인문 고전을 읽으며 공부한 사람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문 고전 독서를 통한 지성 훈련을 거친 사람만이 사회의 지도자가 되어 그 사회를 이끌었습니다. [리딩으로 리드하라]는 책이 한때 인문 독서 열풍을 일으킨 도화선이 되었는데, 그 제목 그대로 리딩(reading)을 한 사람만이 사회를 리드(lead)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리더의 가장 큰 덕목은 전체를 통찰하고 상황을 분별하여 정확한 실천적 지침을 내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하는데 그것은 책을 읽고 토론하고 글로써 쓸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덕목입니다.
이렇게 보편적인 교육의 방식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근대교육은 이 보편성을 완전히 도외시한 채 기능 중심의 교과서 위주의 교육을 고수해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난 한 세기 동안 잠시 사회의 기능인을 기르는 역할은 해왔지만 앞으로 미래 사회를 대비할 지성인을 길러내는 일에는 완전히 실패하고 있습니다.
누차 말씀드렸지만 기독학교의 울타리 안에서 ‘교과서’를 가지고 공부한다는 것은 보편의 관점에서 보면 지나치게 협소한 것입니다. 이미 지나간 ‘죽은’ 지식의 습득 훈련에 불과하기에 저는 기독학교가 미래의 세대를 길러내기 위해서 과감하게 교과서를 버리고 ‘살아있는 책’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 방법을 개발하고 실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의 프런티어 정신은 이제 미래를 위한 고전 교육의 보편성으로 방향을 틀어야 합니다.
그럼 학교에서 교과서로 공부를 하고 남는 시간에 책을 읽으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시종일관 교과서 위주로 공부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하루의 가장 중요한 시간에 가장 긴 시간을 교과서에 몰입하는 것을 저는 반대합니다. 아이들의 삶이 아깝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는 교과서로 공부하고 남는 시간에 책을 읽는 방식은 완전히 역전되어야 합니다. 학교에서는 책을 읽고 함께 토론을 하는 수업을 해야 합니다. 서로 눈을 마주 보고 타인의 숨결을 느끼며 열띠게 발표하고 토론하는 것이 오프라인 현장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협동학습이나 조별 활동, 통합교육이 현장에서 진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대신 교과서로 공부해야 하는 측면, 즉 아직 우리나라에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입시를 대비하기 위한 공부는 이제 얼마든지 자기 스스로 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 기반의 컨텐츠들은 나날이 수준이 향상되고 있습니다. 이제 어지간한 교사가 아니면 온라인에서 제공해주는 수준만큼 교과 수업을 해낼 수가 없습니다. 온라인의 ‘1타강사’들의 강의를 그리 비싼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일대일 맞춤식 서비스로 말입니다.
교과서를 가지고 수준이 다른 아이들이 같은 진도를 나가느라고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 온라인 기반의 개인별 맞춤 학습이 훨씬 더 유의미합니다. 이미 학원에서들 그런 방식을 취하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아이들은 이미 학교를 ‘떠나서’ 학원이나 온라인으로 공부를 하고 있고 점점 더 그렇게 될 것입니다.
기존의 교사의 역할도 바뀌고 있습니다. 지식이나 정보를 전달하고 아이들을 통제하는 기존의 교사상으로는 더 이상 미래의 인재들을 길러낼 수 없습니다. 교사는 아이들과 ‘삶’을 나누고 아직 미숙한 아이들의 안내자 역할을 해주며, 진로와 진학에 대해 계획을 함께 짜주고 관리해주는 멘토로서 역할해야 합니다.
미래형 교사는 아이들에게 책을 통한 수업의 장을 마련해주고 좋은 책을 추천해주며 질문을 던져주고 아이들의 질문을 들어주며 토론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학교에서도 전문 교과를 담당하는 많은 교사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생활과 진로를 지도하는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안내자로서의 교사가 필요합니다.
이것을 저는 또 다른 의미의 ‘거꾸로’ 교육 방식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친구들과 함께 책으로 공부하고 입시를 위한 공부는 온라인을 기반으로 스스로 공부하는 방식 말입니다. 학교에서는 살아있는 책으로 공부하고, 기능적으로 필요한 학습은 개별적으로 온라인의 도움을 받아 자기주도(사실 이 말의 함의는 매우 폭넓지만)로 하는 것이 미래를 대비하면서도 과도기적이고 혼란스러운 한국의 입시 현실을 통과해가는 가장 지혜로운 방식이라고 믿습니다.
요즘에는 강남의 학원들도 과목별 강좌가 없어지는 대신 아이들을 ‘관리’하고 소수 그룹이나 일대일로 멘토링을 해주는 방식으로 대거 바뀌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애초에 공부 즉 학습이란 ‘개별화’해야 하는 것이 맞기 때문입니다.
‘학습은 개별적으로 활동은 공동체적으로’는 우리 학교의 모토 중 하나로 개교 이래 지속해오고 있는 수업의 원칙입니다. 학습은 아이들의 수준에 맞게 완전히 개별화하는 것이 맞고, 발표하고 토론하고 상호작용하는 훈련은 공동체적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우리 학교는 청소년 시기에 가장 중요하게 성장해야 할 역량의 하나인 ‘지성’을 함양하기 위하여 인문 고전 독서, 혹은 살아있는 책으로 공부하기를 선택하였습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인문 고전 독서를 통한 지성 함양 교육이란 게 어떤 것인지, 우리 학교에서 어떻게 이를 실현할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인문 고전 독서라고 하면 머리부터 아파오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인문 고전이란 표현보다는 샬롯 메이슨의 ‘살아있는 책’이라는 표현을 더 좋아합니다만, 어쨌든 청소년기 시기에 다루어야 할 ‘책’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부류라고 생각하시면 쉽게 이해가 되실 겁니다. 이 세 가지 영역에서 깊이 있는 독서가 이뤄지고 요약과 조사를 통해 정리하고 토론을 통해 생각을 가다듬고, 최종적으로 글로써 정리할 수 있을 때 지성 훈련이 가능해집니다.
첫 번째가 문학책입니다. 올해 고학년들이 읽고 있는 [비밀의 화원]은 청소년기 초기에 꼭 읽어야 할 명저입니다. 친구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내적이 비밀이나 상처가 있을 수 있는 나이, 그리고 부모님이나 세상에 대해서 조금은 의아하게 반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예민한 시기에,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의 내면이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지,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 사랑과 돌봄, 기다림과 배려, 그리고 자연(화원)을 통해 누리고 나눌 수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이 책을 통해 느끼고 배울 수 있습니다.
문학은 시, 소설, 에세이와 같은 여러 장르가 있지만 하나 같이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고 깊이 이해하게 하는 통로가 됩니다. 문학 시간을 통해 급우들과 함께 책을 읽으며 책 속에 나오는 인물들을 이해하고 교사가 나눠준 질문지를 통해 다양한 생각들을 나눌 수 있는 시간입니다. 시를 통해 내면의 감정과 사상을 흘려보내고 다양한 산문(에세이)들을 통해 자신의 일상과 감정에 대해 성찰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청소년기 시기에 우리 아이들은 ‘역사’에 보다 깊이 다가가야 합니다. 역사 분야는 크게 한국사와 세계사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역시 살아있는 책을 통해 다가갈 수 있습니다. 세계사 책은 기독교적 관점에서 쓰인 책도 있습니다. [고대 역사와 성경] 같은 책을 통해 세계사와 성경을 함께 공부하는 것이 청소년기 시기에 꼭 필요합니다.
우리나라 역사도 세계사적 맥락 안에서 이해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한국사와 세계사는 항상 함께 공부해야 하는 영역입니다. 우리 학교에서 초등 1학년부터 신앙인물을 통해 인물이 속한 나라의 역사를 배우는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한국사에 관련된 책들은 참 많이 있습니다만 아이들이 우리 역사를 전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필요합니다. 신앙인물은 인물이 살았던 시대를 보다 세밀하게 따라가도록 돕습니다. 인물사적 관점의 역사 공부입니다. 한국사의 전체 흐름, 즉 통사를 파악하는 것은 이야기로 된 20여권의 [이야기 한국사]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한국사 통사는 애석하게도 기독교적 관점으로 쓰여진 책은 없지만, 성경적 세계관을 익히면서 한국사를 배워간다면 우리 역사 속에서 인도하신 하나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문학과 역사는 모두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한 필수적인 학문입니다. 문학과 역사를 살아있는 책으로 공부하는 이유가 바로 이 영역을 통해 목표하는 것이 ‘삶에 대한 이해’이기 때문입니다. 교과서는 어떻게 공부를 해도 그 ‘이해’에 도달하기 어렵고 따라서 ‘통찰’에 다다르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이해와 통찰을 위해서 우리는 사유 자체를 훈련하는 ‘철학’ 및 사상에 대한 공부도 필요합니다. 사상이라고 하면 꼭 인문 사상만이 아니라 과학사상도 포함하는 광범위한 개념입니다. 고대와 중세, 근대까지도 철학자들은 모두 수학자였고 자연과학자였습니다.
철학은 이름만 들어도 뭔가 어렵고 딱딱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고전으로 접하는 많은 책들 가운데에서 중고등부 시기에 읽을 수 있고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책들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동양고전으로 [논어] 같은 것은 참 귀하고 좋은 책입니다. 특별히 내용이 어렵지도 않습니다. 아이들이 책을 읽고 따라쓰기도 하면서 깊이 음미하고 나누는 시간을 통해 사람으로서의 도리와 윤리에 대해서 성찰할 수 있습니다.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 같은 서양 고전들도 중등 고학년 정도의 친구들이 충분히 읽고 토론할 수 있는 좋은 책들입니다. 소크라테스와 나눈 대화를 통해 용기와 인간성에 대해서 배우고 나눌 수 있습니다.
흔히 인문학의 3대 분야를 문학 역사 철학(문사철)이라고 하지요. 따라서 인문 고전 또한 이 세 가지 영역을 함께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인문 고전, 살아있는 책으로 문학과 역사, 철학을 공부하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물론 크게 지성의 함양이라고 표현 할 수 있겠는데, 그 지성이 어떤 지성인지 조금 세밀하게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그 첫 번째 목적은 ‘진실’에의 추구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진리 안에서 그 다음에 우리가 반드시 추구해야 하는 것이 진실한 삶입니다. 진실한 삶은 깊은 자기 성찰이 없이는 이뤄질 수 없습니다. 자기 성찰은 문학과 역사, 그리고 철학적 사유를 통해 훈련할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책은 이러한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도구 중 하나입니다.
뿐만 아니라 문학과 역사, 철학을 공부하는 것은 ‘공감능력’과 ‘상상력’을 길러줍니다. 특별히 사춘기를 통과하는 친구들에게 문학 책은 자신의 감정과 관계의 문제들에 대해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장을 열어줍니다. 감정은 적절한 그릇에 담겨 흘려보내지 않으면 사람의 내면 속에서 썩어서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킵니다. 아이들의 감정과 정서에 대해서 조금도 관심이 없는 현재의 우리나라라 중고등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배울 길이 없이 왜곡되고 부패한 채로 그대로 성인이 되어가도록 방치하고 있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좋은 문학책은 또한 ‘고귀함에의 감각’을 길러줍니다. [제인에어]같은 책을 읽으면 책 속의 제인이라는 인물을 통해 비천하고 천박한 감정과 사유가 아닌, 고귀하고 순결한 삶에 대해서 공감하며 배우게 됩니다. 제인에어나 [죄와 벌]의 나타샤 같은 인물들은 예수님의 고귀한 성품을 배울 수 있도록 돕는 인물들입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지금은 사람들이 너무나 천박해진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귀함의 가치는 어린 시절부터 배우고 훈련되어 청소년기에는 주옥같이 길러져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방기하면 제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가진다 하더라도 인생의 의미를 모르는 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인문 고전 독서를 절대 무시해선 안되는 이유입니다.
문사철을 아우르는 인문 독서는 ‘생각하는 힘’을 기르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지식과 정보는 이제 AI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아이들이 청소년기 시절에 반성적으로 사유하고 스스로 분별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많은 ‘책’을 읽고 분석하며 해석하는 부단한 노력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정규 수업 시간에 ‘책’을 통해 충분히 깊이 탐구하고 토론하는 것이 필요하고 교과서 공부는 혼자서 얼마든지 온라인의 도움을 받아 해나갈 수 있습니다.
앞선 글에서 세계관이란 세상을 바라보는 눈으로, 생각과 판단, 행동까지를 아우르는 개념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기에 인문 고전 독서는 세계관을 기르는 데 필수적인 도구입니다. 성경적 세계관을 위해서는 성경적 고전 독서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말씀드렸는데, 인문 고전 독서를 통해서 이러한 세계관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인문 고전 독서는 진실하고 공감능력이 있으며 반성적으로 사유, 성찰하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길러 분석하고 해석하고 행동하게 하는 역량을 기르는 데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지성’의 함양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온고이지신’이란 논의 한 구절이 새삼스레 미래 사회에 필요한 우리의 덕목을 떠올리게 합니다. 새로운 것을 위해서는 옛것을 궁구해야 합니다. 인문 고전 독서는 인류의 보편적인 공부법인데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시대, 미래를 대비하게 합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이러한 고전 교육을 수업 현장에서 구현하는 방식은 어떤 것일까요?
독서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나래이션입니다. 나래이션은 말 그대로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그대로’ 말한다는 의미입니다. 초등 저학년부터 문학이나 탐구 시간을 통해 우리 아이들이 매일 꾸준히 훈련해오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읽은 것을 그대로 말하기, 본 것을 그대로 그리기, 경험한 것을 그대로 설명하기입니다. 나래이션은 책이나 텍스트에 대해서는 ‘요약’이라는 일반 용어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 5,6학년 친구들이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지난 시간 동안 꾸준히 나래이션을 해왔던 열매입니다.
소설을 읽어도 그 내용을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논문이나 에세이, 신문 기사 같은 것도 읽은 것을 그대로 - 그렇다고 해서 통째로 외워서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파악한 핵심을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생각을 덧붙이지 않는 것이 나래이션의 기본입니다. 이것은 ‘정확’의 훈련이면서 동시에 ‘정직’, 나아가 ‘진실’의 훈련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샬롯 메이슨은 모든 활동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방식을 나래이션에 두었습니다.
이 나래이션 훈련은 12학년이 되기까지, 꾸준하다 못해 거의 매일 이뤄져야 하는 중요한 작업입니다. 초등 고학년 정도가 되면 우리학교에서 꾸준히 나래이션을 해온 친구들은 ‘요약’이 어느 정도 잘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5,6학년이 되면 벌써 책을 읽고 그 내용을 발표하는 것에 능숙해지게 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나래이션 이후의 작업입니다. 나래이션은 교사와 다른 아이들 앞에서 진행하는데 여러 친구들의 나래이션-요약을 듣는 것입니다. 어떤 친구는 이런 점을 중점적으로 요약을 했고 다른 친구는 전혀 다른 부분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서로 요약한 것을 비교하는 작업이 자연스럽게 이뤄집니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자신이 놓친 부분과 잘못 요약한 부분을 알 수 있게 되고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점차 더 정확하고 세련된 나래이션이 가능해집니다.
이렇게 내용을 파악하는 작업에 아울러 중요한 것이 질문에 답하는 것입니다. 일반학교의 시험과 같은 그런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이 책을 통해 생각해볼 만한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해 아이들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교사의 질문지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펼치기도 하고 스스로 제기한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하기도 합니다. 질문지에는 어떻게와 왜라는 질문이 가장 많이 등장합니다. 어떻게라는 질문을 통해 ‘과정’을 찾아가는 연습을 하고 ‘왜’라는 질문을 통해 이유와 원인을 찾아내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요약하기와 질문에 답하기는 언제나 함께 하는 수업의 기본 방식입니다. 여기에 세 번째로 토론하기가 결합이 됩니다. 토론은 아이들에게 그냥 시킨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토론이 되려면 내용에 대한 파악과 자신의 생각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토론의 중요성을 강조하면 할수록 앞선 작업인 요약과 질문에 답하기 과정의 중요성이 커집니다.
토론은 살아있는 과정으로 중고등부 시절에 반드시 해야 하는 훈련입니다. 초등과정까지는 아직 토론에 이르기에는 아이들이 미숙합니다. 초등과정까지 나래이션 훈련이 잘 되어 있다는 전제 하에서 중고등부부터는 작은 토론에서부터 큰 이슈를 다루는 토론까지 다양한 형식의 토론이 수업의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토론은 짝을 이뤄 대화의 형식으로 하는 하브루타가 있고 찬반을 나눠서 근거를 대며 논쟁하는 디베이트 형식도 있습니다. 토론의 틀을 주지 않고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는 비형식 토론 방식도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하나의 토론 방식만을 고수할 필요가 없이 다양한 토론의 방식을 읽은 책과 주제에 따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를 정리하겠습니다.
인문고전 독서를 통한 지성의 함양이라는 과제는 인류 보편의 공부방법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미래 사회에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할 다음세대를 길러내기 위한 기독학교의 공부법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문학, 역사, 철학-사상의 모든 분야의 고전과 살아있는 책을 수업에 도입하여 함께 읽고 요약, 발표하며 토론하는 충분한 시간을 청소년기에 마련해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아이들이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한 진실함과 자기 성찰 능력, 공감능력과 상상력을 청소년 시기에 길러가기를 소망합니다.
첫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