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리더십에 여러 차원이 있다
영적 리더십이란 무엇일까?
이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특히 분석적으로 접근하기에는 매우 유기적이고 신비적인 것이다.
영적 리더십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따라 우리가 정형화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모양과 기능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적 리더십은 반드시 이런 것이어야 한다거나 어떤 하나의 패턴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 미숙한 접근이다.
영적 리더십에도 여러 패턴과 차원이 있다.
20세기 최고의 인물, 최고의 리더
지난 1999년 12월 31일에 「타임」지는 20세기를 마감하면서 올해의 인물이 아닌 ‘금세기의 인물’(Person of the Century)을 발표했다.
누가 지난 100년간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는가를 알리는 작업이었다.
2차 대전을 서방의 승리로 이끌었던 세계적 리더 처칠이나 고르바초프 등 여러 위대한 인물들이 거론됐다.
그런데 20세기 마지막 호 「타임」지의 커버에 실린 금세기의 인물은 의외였다.
그 사람은 바로 과학자 ‘앨버트 아인슈타인’(Aibert Einstein)이었다.
20세기의 인물 즉 지난 한 세기에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군중들의 선두에 선 정치인이나 군사적 리더가 아니었다.
「타임」지가 아인슈타인을 선정한 이유는 이렇다.
헝클어진 머리에 정장이 아닌 스웨터를 즐겨 입고 어린 아이와 같이 행동하는 이 할아버지는, 이전 사람들이 바라본 우주를 새롭게 발견하고 그것도 생각으로만 새로운 우주관을 정립한 천재 중의 천재였다.
그는 공동체 속에서 물리적으로 지휘한 적이 없으며 특정의 ‘파로워’들을 거느려 본 적도 없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아인슈타인은 지도자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타임」지는 이 사람이야말로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고 강조했다.
단순히 과학자로서만의 공헌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 방법과 틀을 바꿔 놓았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것도 리더십이라고 단언한다.
리더십에 대해 여러 정의가 있지만 한마디로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금세기의 인물’인 아인슈타인은 역시 ‘금세기의 리더’(Leader of the Century)였던 것이다.
이 인물을 통해 우리가 배우게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리더십에 여러 가지 차원이 있다는 사실이다.
영적 리더십 1차원: 영적 관리
영적 리더십 1차원은 ‘영적 관리’(Spiritual Managem-ent)다.
현재 사회에서 리더십의 가장 보편적인 차원으로서 관리, 경영의 역할이다.
이런 리더십의 1차 목표는 조직의 현상 유지 내지 기존의 구조에 기초한 발전이다.
하지킨슨과 같은 학자는 리더십은 결국 이런 차원의 행정이라고 단언하고 있는데, 사실 리더십이 실제 공동체 상황에서 실행되는 데 필수적인 차원이라는 뜻이다.
조직의 목표들을 달성한다는 것은 결국 구체적인 행정과 관리가 있어야 하는데 조직화, 인사 관리, 재정 관리, 교육, 양육, 계획 수립, 전략 등을 뜻한다.
현재 세간에서 부각되고 있는 리더십의 패러다임은 대부분 이런 차원이며 이를 위한 트레이닝과 개발론이 많이 발달해 있다.
영적 관리와 경영의 차원은 이전의 지도자가 카리스마적 리더였고 그 공동체도 카리스마적 공동체였을 경우에 매우 중요하다.
이전의 카리스마적 리더가 퇴장하고 나서 대개 1차원의 영적 매니저 스타일의 리더가 등장해 그 과도기를 관리하고 시스템을 세우게 된다.
이런 현상을 막스 베버는 ‘카리스마의 구조화’(Institutionalization of Charisma)라고 했다.
현재 한국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의 약점을 지적하자면 바로 1차원의 결핍에 있다.
즉 관리와 유지 그리고 안정이라는 기능의 리더십 차원이 비교적 소홀히 되고 있다고 느껴진다.
영적 리더십 2차원: 영적 개혁
영적 리더십 2차원은 ‘영적 개혁’(Spiritual Transfor-mation)이다.
바로 아인슈타인과 같은 ‘패러다임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리더는 공동체 속에서 물리적인 지휘를 하거나 특정의 ‘팔로워’들을 이끌지 않는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리더라고 할 수 없지만, 이는 일종의 간접적 리더이자 패러다임을 바꾸는 사명이 있다.
세계 역사에서 기억되는 위대한 리더는 대개 이 차원이거나 관리와 개혁의 차원을 동시에 갖고 있다.
마르틴 루터 킹, 고르바초프, 마오 쩌둥, 프로이드, 아인슈타인 등이 있다.
성경에도 한 패러다임 리더가 나온다.
그 사람의 이름은 아나니아다.
그는 성경에 별로 언급되지 않다가 사도행전에서 잠깐 등장하고 사라진다.
그는 한 공동체를 위한 1차원의 리더가 아니고, 다른 리더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2차원의 리더로 나타난다.
당시 기독교인들의 큰 적이었던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거꾸러진 후에 눈이 멀게 된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나니아에게 명하셔서 사울에게 가서 기도하게 하신다(행 9:17 ~18).
사울이 바울로 되는 역사가 일어나는데, 이 순간 그의 눈에서 비늘이 떨어져 나갔다.
그것은 하나의 상징으로 느껴진다.
바울의 문화적, 사회적 기존 패러다임은 벗겨져 나가고 진리를 새롭게 보게 되는 사건이다.
여기서 우리는 아나니아의 역할에 주목해야 한다.
그는 바울을 위한 패러다임 리더였다.
바울의 옛 세계관을 벗겨 버리고 새로운 시야를 주는 리더였다.
그는 1차원 리더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조용한 종 아나니아는 한 리더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주는 간접적 리더였다.
‘우리 눈의 비늘을 벗겨 주는 자’, 필자는 아나니아를‘리더를 위한 리더’(Leader for leaders)라고 부른다.
2차원의 리더십은 1차원과 달리 공동체 상황에서 실제적인 리더십 행위(Leadership Behaviors)를 나타내지 않는다.
그러나 1차원의 리더십을 행사할 리더들을 위한 패러다임의 개혁과 수립을 담당한다.
이것은 더 큰 스케일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강력한 영적 리더십이다.
미국에는 참 기이하고 매력적인 대기업이 있다. 그것은 바로 애플 컴퓨터 회사다.
상상을 초월하는 혁신으로 꿈의 세계를 현실화시키는 기업인데 그곳은 자유분방함 속에서 천재적인 창의성만이 최고의 가치로 인정받고 있다.
전통적인 사고와 규칙을 혐오하며 거의 히피 문화에 가까운 괴짜 직원들의 공동체를 완전히 장악하고 이끌어가는 한 리더가 있다.
그가 바로 애플 컴퓨터의 CEO 스티브 잡스(Steve Jobs)다.
일찍이 그는 어린 나이에 획기적인 애플 컴퓨터를 만들어 낸 천재인데 계속해서 기존의 상식을 넘는 상상력과 아이디어로 미국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업계에서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 리더의 특징은 이윤의 논리를 넘어서 자신이 꿈꾸는 것을 이루기 위해 무모한 도전을 계속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사람의 과거는 젊은 시절부터 파란만장했다.
그러나 그는 재미없고 창의적이지 않은 일에 흥미를 갖지 못하고 기존의 틀을 바꾸며 꿈이라는 것을 현실화시키는 데 모든 것을 거는 인물이다.
그의 리더십의 의미는 현상 유지나 관리와 같은 1차원에 있지 않다.
애플의 슬로건이 이를 잘 반영한다.
“박스를 넘어서!”(Beyond Box!),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스티브 잡스, iCon, p.14).
리더십의 정의 중에서 이런 것이 있다.
“리더십: 리더의 임무는 그의 그룹 구성원들을 그들이 가보지 못했던 곳으로 데려 가는 것이다”(LEADERSHIP: The task of a leader is to take his followers to where they have not been).
이는 논리적이라기보다 영감적인 것이며 이런 리더의 리더됨은 추종하는 공동체의 존재 여부나 그 수에 있는 것이 아니다(김광건, 영적 리더십의 새로운 패러다임, pp.54~55).
즉 공동체의 개혁과 새로운 패러다임의 제시를 위해 2차원의 리더는 공동체와 차별화되는 무엇인가를 지녀야만 한다.
이제 세상도 단순히 정형화된 1차원의 리더십 개념을 넘어서고 있다.
즉 여러 차원을 받아들이면서 기존의 개념을 과감히 극복하는 리더십의 혁신을 이뤄가고 있다.
우리의 영적 공동체도 2차원의 리더십을 통해 성령께서 시대적으로 새롭게 주시는 틀을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
영적 리더십 3차원: 영적 제사
영적 리더십의 세 번째 차원은 ‘영적 제사’(Spiritual Sacrifice)다.
이것은 가장 고차원적인 영적 리더십이다.
실로 어떤 물리적 영향력이나 패러다임 영향력의 차원을 넘어서 영계에서 일어나는 신비한 영향력의 차원이다.
그리고 이것은 어느 리더십의 차원보다 하나님의 주도적인 개입과 섭리가 극대화되는 차원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리더의 공동체 지휘의 차원을 초월해 하나님께서 한 인물(리더)을 제물로 받으시고 그 피와 희생의 대가가 하나님의 신비하고 초자연적인 영향력으로 역사에 나타나는 차원이다.
소위 순교 내지 순교적 차원이다.
리더십이 영향력의 과정이라면 과연 이것도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리더 대 ‘팔로워’ 즉 인간 대 인간 간의 직접적 영향력의 과정이 아니라 하나님과 리더 그리고 하나님과 ‘팔로워’의 보다 영적이며 시간을 초월한 영향력의 과정이다.
한 인물의 희생과 피 혹은 한 밀알이 썩음으로써, 그가 의도했건 안 했건 하나님께서 그 제물을 흠향하시고 한 공동체와 민족에 큰 역사적인 일(영향)을 행하시는 것이다.
밀알 하나가 썩음으로서 많은 열매가 맺는 ‘밀알 리더십’이다.
이것은 우리가 목회 현장에서 임상적으로 경험하는 진리이며 교회사를 통해 선교 현장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고차원적 리더십의 사용 방법이다.
즉 사회적 효율성을 완전히 넘어서는 신비한 영적 메커니즘이다.
3차원의 리더(혹은 잠재적 리더)의 피는 그 이하(1, 2차원)의 리더십의 기반이 된다.
바로 한국 기독교가 이를 증명한다.
지금 세계적인 한국의 기독교는 일찍이 서구 선교사에 의해 시작되었는데, 이는 모든 것들이 선교사들의 현장 리더십에 의해서만 이뤄진 게 아니다.
여기에 영적 제사 차원의 리더십이 우선했음을 명심해야 한다.
한국에 개신교 복음이 실제적으로 처음 전파된 1884년보다 그 전인 1866년에 토머스 선교사가 리더십은 커녕 전도 한 번 제대로 못해 보고 대동강변에서 순교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바로 이 희생을 토대로 하나님께서 그 후에 2차원 이하의 여러 영적 리더십을 일으키신다.
즉 역사적 영향력은 영적 제사 차원의 리더에 의해 시작되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이 차원의 리더십은 많은 영적 전쟁을 수행하는 단계이기도 하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예수님의 리더십’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낀다.
많은 책들과 학자들이 효율성을 위해 ‘예수 리더십’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리더십이 아니라 특수한 ‘로드십’(Lordship)이었다.
즉 리더십의 차원을 넘어서는 주님만의 특수 사명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십자가이다.
예수님께서 12제자를 모아 사역하셨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런 물리적 리더십의 전략을 지향하신 적이 없다.
가장 중요한 목적인 그 길을 가셨는데 그것은 오로지 어린양으로서 죽음을 당하는 일이었다.
공동체를 위해 대신 죽으시는 일이었다.
이것이 그분의 리더십의 전부다.
그리고 그 보혈과 희생의 제사로 하나님께서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시는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다.
바로 이 고귀한 차원을 말하는 것이며, 따라서 영적 리더들은 이 차원에 도달하고자 헌신해야 한다.
다양한 차원의 리더십에 대해 유연하게 이상 세 가지 영적 리더십의 차원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이런 차원이 항상 배타적으로 구분돼 한 리더의 리더십이 한 차원에서만 규정된다고 보기 어렵다.
각 차원이 서로 유기적으로 혹은 리더십의 무게 중심이 이동하면서 변화할 수도 있다.
때로 한 영적 리더 안에 여러 가지 차원이 공존하기도 하고 상황과 소명에 따라 동시에 여러 차원을 감당하기도 한다.
이제 우리 영적 공동체도 이런 다양한 리더십의 차원을 유연하게 수용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예민하게 느껴야 한다.
리더십 차원의 다양화! 여기에 한국 교회의 큰 도약이 있으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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