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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된 구사일생
경 진 호
김진주는 충북청주수동에 살며 8살 때다. 한반도는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1,128일 동안 6. 25사변 전쟁으로 남북이 휴전선으로 더 차지하기 위해 서로 갈라져 싸우고 있었다. 김진주는 1958년 2월 27일 6년 졸업하는 1952년 3월 2일 충북청주교동초등학교에 전쟁 중 입학하였다. 초등학교 1, 2학년 때 김진주의 담임 장정숙 여자 선생님은 충북대성여자중학교 서무실에서 일직을 하셨다. 안녕하세요. 여기서 청주시내 교외생활지도교사협의회가 있어 왔습니다. 김진주를 어떻게 알아보고 지금 어디에 있어 하셨다. 김진주는 청주여자고등학교에 영어교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장정숙 담임선생님은 김진주를 보고 훌륭해 하고 말씀하셨다. 김진주가 훌륭하다고 평가받은 것은 청주여자고등학교 정태주 교장선생님이 김진주 첫 발령을 받고 교무실 전체 교직원회의에서 첫 직원인사소개를 할 때 김진주를 훌륭하신 선생님이라고 소개를 하고는 두 번째 듣는 말이었다. 세 번째로 다음과 같이 김진주가 훌륭하다고 말을 듣게 된다. 김진주는 둘째 아들이 손자 둘을 봐달라고 해서 김진주 아내와 어린이집에 오고가게 하기 위해 2011년 5월 16일에 65년 동안 삶의 고장 정들었던 청주를 떠나 서울 동작구 사당동으로 이사했다. 김진주의 집 뒷산이 서울현충원산으로 서울 현충원을 매일같이 자주 들려 걷곤 한다. 오늘도 예외 없이 산보를 하던 중이었다. 때는 2019년 8월 3일 토요일 낮 오후 2시에 서울 현충원 안의 현충천과 현충원 호수사이 공원 정자를 지나다가 갑자기 소나기 비가 내렸다. 김진주는 비를 피하기 위해 정자에 들어서니 서울서초구반포동 반포아파트에 사는 82세 박순덕 여류작가가 나무 그늘 밑에 바람이 솔솔 불어오고 있는 정자에 혼자 있었다. 김진주는 박순덕과 둘이 마주보고 대화를 다음과 같이 하게 되었다. 임순용은 김진주의 한 해 후배로 예비장교훈련단 7기, 교직 국어교사었다. 김진주의 외갓집은 보은이며 임순용의 고향은 보은이라 내외 고향지간이다. 임순용이 2008년 2월 27일 메일로 보낸 내용은 ‘도방 정치 경대승’을 11페이지 자기의 연구 자료를 동봉하며 더는 연구 자료가 없으니 김진주 선생님이 경 씨 종친회에 가서 자료를 얻어 연구를 하여 책으로 남겨 장군의 의의와 업적을 후세에 알려달라고 하는 내용이었다. 김진주는 멀고 가까운 모든 일가 일가문중 앞에서 임 씨 종친회장 임순용이 보내온 메일을 이야기하고 청주 경 씨 시조 고려 의종 때 중서시랑평장사 경 진의 아들 경대승 장군의 자료를 요청하였다. 반응은 좋았다. 김창선의 ‘경 씨 혈맥’ 과, 김만기의 ‘경대승 장군의 실제와 의의’ 라는 석사학위논문이며, 2003년과 2004년 ‘무인시대’ 대하드라마 사극 연속극 각본을 한국방송공사 KBS 저작권 담당자 양길태로부터 인수받아 출판하라고 하였다. 정인지의 고려사와 김종서의 고려사절요도 참고했다. 김진주가 충북대교육대학원영어육과 석사 때 알게 된 2010년 10월 5일 충북대학교교무처장이며 충북대학교사범대학역사교육학과 교수 신구철에게 자구수정 교정을 받고 천 페이지를 반으로 줄여 책으로 출판하라고 실인 날인으로 승인 하여 주었다. 청주기획사에 출판 의뢰하였더니 작가의 승인이 필요한 저작권 침해 표절이라 거절했다. 2년 후 KBS 저작권 담당자 양길태의 안내로 김진주는 바로 샛강역 KBS별관에서 태종무열왕을 제작하고 있는 경대승 편을 극작가 정동현에게 가서 무인시대 경대승 편 각본을 저작권 승인을 받았다. 김진주가 청주고등학교 때 동학년을 한 김은수 교감 지시가 있었다. 김진주는 청주중학교 2학년 실부실장 40명을 인솔하여 청풍문화단지 탑방으로 문정구 청주시교육청 인솔책임 장학사로 버스 동승하고 도시락 점심을 같이 한 적도 있었다. 김진주는 충북괴산북중학교 근무 때 같이 지역근무를 한 충북괴산교육장 문정구와 근무하여 친분을 유지하였다. 문정구도 김진주와 대한궁도협회회원으로 괴산 사오정회원이고 김진주는 청주 우암정회원이어서 대회 때마다 퇴직 후에도 자주 만나 김진주는 술은 못하지만 서로 조금씩 나누는 각별한 사이였다. 문정구는 도방 경대승을 책으로 출판하는 건에 대해 김진주가 말하자 경 씨 성과 본이 같은 일가붙이끼리의 모임 종친회에 갔다주어 출판하라고 말하였다. 김진주는 경 씨 서울중앙회종친회장 경평수에게 원고를 갔다 주었다. 임원총회에서 출판지원을 2년을 끌어오다 서로 출판 경쟁을 하자 김진주는 원본과 저장자료 Compact Disc CD를 환수 받아 되찾아왔다. 김진주는 즉시 대한민국국사편찬회에 전화를 하여 ‘도방 정치 경대승’ 출판의뢰를 하였다. 국사과 김길정이 정부에서 지정하는 백서만이 출판한다고 하며 안 된다고 하였다. 김길정은 김진주에게 박사냐고 묻자 석사라고 대답하였으나 석사는 안 되고 박사만이 된다고 하였다. 바로 김진주는 1급공무원 차관급 국무총리조종실민원담당관 최남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남석은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말하였다. ‘도방 정치 경대승’ 출판을 지원 받기위해 국사과 김길정 담당자가 박사는 되고 석사는 안 된다고 하여 출판지원을 받게 해 주십시요 하였다. 김진주는 대한궁도협회 회원이다. 김진주는 손자를 봐주기 위해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되어서 이적한 곳이 대한궁도협회서울관악정이다. 정조대왕이 활을 낸 곳 수원 화성 연수정에서 전국남녀궁도대회에서 15시 10중을 하여 3등 장려상을 받기까지 하였다. 서울관악정 같은 회원이며 활을 함께 내는 경찰고시합격자로 중앙경찰청 소속 근무하며 청와대 치안안보담당관으로 파견근무 경험이 있는 변호사 박순목이었다. 박순목은 한 시간 동안 표지와 목차를 김진주에게 자구 수정을 하여주며 ‘도방 정치 경대승’ 출판을 하라고 권한 적도 있었다. 김진주는 출판지원을 해 달라고 하자 국무총리조정실민원담당관은 될 것 같다며 문화관광체육부 한국출판문화진흥원의 전화를 알려주면서 거기서 출판하라고 친절하게 안내하여주면서 원고를 제출하면 된다 하였다. 김진주는 국무총리조정실민원담당관 최남석 씨에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역사작가들의 검증을 받고 출판지원하여 줌으로 김진주는 매년 새로운 구상과 자구 수정으로 원고를 수정하여 제출하고 있다. 당국에선 메일로 매년 제출하라고 오고 있는 실정이다. 김진주는 세 번째로 훌륭하다는 말을 듣는 자기발견을 서울현충원내에서 듣게된다. 김진주는 주기적으로 서울현충원내외등산로를 따라 등산한다. 김진주는 어느날 서울서초구반포에 사는 여류작가 박순덕을 만난다. 김진주는 박순덕에게 ‘도방 정치 경대승’ 이야기를 위와 같이 하였다. 박순덕은 평가는 역사소설 쓴 경험을 하여 좋았다고 하였다. 박순덕이 작가는 돈을 좋아한다고 말하였다. 김진주 경험은 돈도 아니고 최우수 작품도 아닌 열정과 근면 성실에 끊임없이 새로운 창작으로 수면에 오르는 중간입장에서 정면 통과되어야 출판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박순덕은 출판할 수 있다고 하였다. 여류작가 박순덕은 성공사례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였다. 박순덕은 잡지에 글을 올려 당선이 되었다고 말하였다. 당선 때 깜짝 놀란 경험을 말하여 주었다. 박순덕은 잡지에 글을 올려 당선되어 기뻐하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폭탄 터지는 소리가 밖에서 들려와서 나가 보았다. 현관문을 열고 집밖을 나갔다. 360명의 독자들이 보낸 잡지 당선을 축하하는 격려의 편지가 끈에 묶여 우편배달부가 한 뭉치를 마당에 던져 떨어지는 독후감 소리라고 말하였다. 비 바람이 솔솔불며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김진주는 여류작가 박순덕에게 사람이나 국가 단체가 신에 관계되는 신성한 싸움이라는 국어사전에도 있는 ‘신전’이라는 말이 있다고 하였다. 임진왜란에 이어 정유재란 1597년 9월 16일 원균이 대패한 나머지 12척으로 일본군 330척 중 133척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 난중일기에 명랑대첩은 지피기기 백전불태 정신 하에 신화적 대승과 같이 ‘신전’이라는 소설을 쓰고 있다고 하였다. 김진주는 박순덕에게 다음과 같이 ‘신전’ 내용을 말하였다. 김진주는 대한민국 예비장교훈련단 Reserve Officers Training Corps 약자 R.O.T.C. 6기 경리장교 육군제3보병사단 경리참모부급여재산장교 직을 수행하고 있을 때다. 김진주는 6군단 근무 때 위관장교 150명 중 완전군장 왕복고지점령에서 3등을 한 적도 있어 굳세고 질겨 강인하였다. 김진주는 업무로 군인봉급 수령 지급, 봉급착오불발생처리, 군신용대부, 군인연금신청지급 담당관의 일상이었다. 김진주는 사단일일명령 숙직근무 사단정문 위병장교 때 이였다. 1969년 12월 29일 오후 5시 퇴근을 하고 평소 부관부 행정장교 권명성, 부관부 상전장교 신규옥과 함께 방을 쓰며 생활하였다. 독신 장교 숙소 Bachelor Officers' Quarters 약자 BOQ에서 200m 떨어진 식당이 있었다. 아침 저녁을 3사단 본부사령 소령 김칠성과 함께 식사하였다. 김진주는 일직근무하러 일찍 저녁을 먹고 헌병 2명이 교대로 근무하고 있는 오후 6시 사단정문 위병소에 도착했다. 어제도 철책 삼팔선휴전선이 이십리 떨어져 무장공비가 자주 출현하여 사단위병소 인접한 주변에서 사살되어 초긴장 상태였다. 오늘 또 나타날지도 몰라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김진주는 위병소에서 헌병 둘이 교대로 잘 근무 해서 마음을 놓았다. 김진주가 피로 했던 탓으로 야전침대에 잠시 눕는다고 하였는데 7시간이나 잠이 들었고 깨어보니 밤 1시이었다. 오늘은 김진주가 일주일 휴가 명령을 받아서 집에 가는 날이었다. 김진주가 깨어보니 김진주 옆에서 교대근무는 하지 않고 헌병 둘이 다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김진주는 깜짝 놀라 자는 헌병 둘을 깨웠다. 김진주가 그들을 깨워 교대로 근무하라고 하니까 어제는 무장공비가 사살되었지만 하루 건너 오니까 오늘은 오지 않는다고 하며 계속 그들은 잠을 청했다. 김진주는 기가 막혀 헌병들 대신 밖에 나가서 위병소 주변 상황을 점검을 하다가 우연히 앞산 정상을 주시했다. 김진주는 잠시 신이 되어 싸우고 헌병 둘이 신의 안내자인 줄을 몰랐다. 김진주는 깜깜한 밤 별빛만 빛나고 있는 하늘을 배경으로 겨울 산 정상을 바라보았다. 바로 신이 와서 김진주 대신 싸우는 ‘신전’이 시작되었다. 지금부터 신으로 나타나서 김진주가 신의 싸움, 사람이나 국가단체가 신에 관계되는 신성한 싸움 '신전‘이 전개되는 순간에 접한다. 무기를 휴대하고 철모 착용 M16자동소총에 착검하고 탄알을 탄창에 끼워 줄로 엮어 견장에 두르고 수류탄을 양쪽 가슴에 달고 산 정상을 넘어오고 있는 무장공비 모습이 포착되었다. 1초라도 늦게 발견하였더라면 역사가 바뀌는 헌병 둘이 인도하는 잠시 신으로 환생한 김진주는 신만이 아는 사건이다. 김진주는 사단정문위병소쪽으로 넘어오는 무장공비 수를 세었다. 무장공비는 2개 분대 모두 18명이었다. 상황이 끝나고도 정확히 18명 무장공비이었으므로 확인이 전과 후가 같았다. 김진주는 즉시 멈추지 않고 바로 전화로 사단주번사령실로 전화를 하였다. 김진주는 적으로 판단되는 병력 18명 2개 분대가 무기를 휴대하고 사단정문으로 오고 있다고 보고하자 사단주번사령 중령 이세기가 전화를 받았다. 그는 알았다고 하며 바로 전화를 끊었다. 얼마나 긴박한 상황이었으면 알았어라는 세글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겠는가 당시 급박했음을 알 수 있는 사태이었다. 5분도 되지 않아 무장공비들은 산 정산에서 내려와 사단정문으로 접근했다. 김진주는 암호하니까 암호가 뭐여 사단장 내놓아라고 하면 1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김진주를 향해 무장공비들은 총을 발사하였다. 오늘부터 휴가 명령이 되어 집에 가야하는데 집에 다갔다고 생각하며 총에 맞아 쓸어져야 할텐데 쓸어지지 않았다. 동시에 사단주번사령이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전조등을 켠 채 지프 jeep 차를 타고 내려오고 있었다. 사단주번사령 중령 이세기는 김진주와 무장공비들이 대치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해 현장확인하고 전조등 헤드라이트 headlight 끄고 방향전환으로 우회하였다. 사단정문 부근에서 지휘 용이한 지점에 도착하여 현지 전투를 진두지휘하였다. 사전에 사단정문에 도착하여 사단헌병참모 중령 허중섭은 헌병중대병력을 산개하여 포위대형으로 주변을 포진하고 있었다. 허중섭은 1소대 우로 2소대 좌로 3소대 정면으로 전투공격명령을 하달한 상태이었다. 사단주번사령 이세기의 전투개시명령이 하달하자 사단헌병참모 중령 허중섭은 발사명령을 내렸다. 무장공비가 총을 발사한 동시 유탄발사기로 조명탄 발사를 하여 빛은 낮과 같이 30분간 대낮 같았다. 앞으로라는 수신호 손짓으로 작전을 빠르게 진행되어 무장공비를 에워쌓아 전원 생포하여 무기를 지프차 결합물 jeep trainer에 실어 회수하고 대열을 유지시키고 목표 헌병중대 앞으로 가라는 구령으로 옮겼다. 인솔대열 뒤에서는 지프차 jeep 전조등을 밝히며 앞으로 가라는 명령에 따라 진행 모습을 김진주는 지켜 보았다. 헌병중대구치소로 지나는 초소 1키로미터마다 헌병제1초소와 헌병제2초소가 있었다. 왜 보고를 미리 하지 않았느냐며 헌병참모 중령 허중섭은 현장에서 헌병이 보이지 않자 전부 초소헌병들을 근무태만으로 모두 영창에 넣었다. 그들 중에 유일하게 김진주와 함께 근무한 헌병 둘은 자다가 사태가 긴박한 상황을 알고 위병소를 탈출하여 모두 도망했다. 사단정문헌병들은 안전한 곳에 피신했다가 상황이 끝나 사단정문위병소로 돌아오고 있었다. 김진주가 들어서니 헌병 둘은 헐레벌떡거리며 위병소로 뛰어들어와 김진주와 부닥쳤다. 그들은 김진주를 보자 웃기만 했다. 그들은 김진주가 무장공비들을 모두 물리쳐 상황처리로 영창을 면했다. 무사히 교대로 계속 근무를 제대로 하여 처음 저녁 때와 같았다. 그후 김진주는 무장공비 18명을 최초발견 신고하여 일약, 사업이나 나라를 위하여 두드러지게 세운 공로가 있는 공훈을 세운 김진주는 소위에서 중위진급으로 승진했다. 김진주는 행사에 참여하는 사단장 부부관으로 전보다 더 높은 직위나 좋은 자리로 옮기는 영전을 했다. 나라나 사회에 공로가 있는 사람에게 그 일을 기리기 위하여 내려 주는 휘장 훈장도 받았다. 청주상업고등학교 모교도 위로차 사단장과 개교일에 동행했다. 사단장 부부관은 장군이 되는 과정의 자리다. 못 할 일이 없이 다 함, 무소불위 자리이었다. 희망 전역 후에 김진주는 알았다. 김진주의 공훈과 함께 일약 사단장 육기용도 준장에서 소장 진급과 동시 승진하여 육군본부 민사감으로 영전했다. 김진주는 이러한 전쟁역사를 가슴에만 간직한 채 대한민국ROTC중앙회산악회 서울북한산성을 김진주 6기 옆에서 산행 시, 한 해 후배 7기생 중앙대학교 남문석에게 이 전쟁역사를 이야기를 하니 듣고서 책으로 남기라고 하였다. 처음 시작하여 ‘신전’이라는 책의 300페이지 계획의 절반을 쓰고 있다고 여류작가 박순덕에게 말했다. 여류작가 박순덕은 서울현충원에 아무나 오는 데가 아니다. 노벨상을 타게되는 훌륭한 분만 오시는 곳이라고 말하고 ‘신전’ 책을 얼른 보고싶다고 말하였다. 하루 아침에 갑자기 유명하였다는 말은 땅을 사고나서 하룻 밤을 자고나니 갑자기 수 십배 값이 올랐다는 것이다. 이처럼 김진주 갑자기 하루 아침에 유명해진 훌륭하다는 말을 들었다. 어느 새 비가 그치고 벌써 오후 5시 30분이 되자 오후 6시 개방문을 닫는 서울현충원 정문을 함께 나왔다. 여류작가 박순덕은 처음 김진주가 어디에서 오셨어요 하자 반포에서 왔습니다라고 하듯 지하철 동작역 바로 곁에 박순덕이 사는 반포아파트 쪽으로 갔다. 김진주의 집은 다음 이수역으로 지하철 동작역으로 갔다. 김진주는 헤어지면서 경험이 책이 되었다고 했다. 여류작가 박순덕은 맞다고 하면서 서로 작별인사를 하였다. 김진주는 정자에서 비를 피한 시간은 유익했다. 이어서 예상된 구사일생은 계속되었다. 김진주의 어머니가 사 주시는 생북어 한코를 들고 초등학교 5학년 여름방학 내내 있을 할머니댁에 갔다. 김진주는 할머니댁에서 이십리 거리에 김진주보다 7살이나 손위 7촌 아저씨 김석호를 따라 개천 큰 보를 이룬 복거리로 갔다. 바위 위에서 구경하던 김진주는 김석호가 수영하라고 하자 못한다고 거절을 다섯 번 했다. 촌수로 한 학렬 더 높은 김석호는 괜찮다며 바위에서 뛰어내려라고 하였다. 수십 길 되는 깊은 물로 뛰었다. 맥주병 같이 빠져 허우적거렸다. 모습을 본 김석호는 물속 밑에 들어가서 김진주 몸을 받쳐 올려주고 등을 물가로 밀었다. 반복 끝에 물가 바위가 닿아 김진주는 손으로 잡고 나왔다. 김진주는 물을 먹어 맹꽁이 배였다. 김진주는 바위에 엎드려 먹었던 물을 토했다. 김진주는 구사일생으로 칠전팔기였다. 물에 용이 되려다 못되고 전설상의 큰 구렁이 이무기가 있다. 김석호 아저씨 덕에 살아 감사할 뿐이다. 하마터면 이무기의 밥이 될 뻔한 사건이었다. 김진주는 갈림 길에서 상상의 동물 승천하는 용이 돼 김진주는 대한적십자교사수영연수 1등급였다. 자기발견 김진주는 뒤돌아 보니 예상된 구사일생이었다.
경진호
충북괴산연풍,진천출생, 충북대교육대학원영어교육과교육학석사1988, ROTC6기부회장 2018
충청북도교육청 전문직선정고시영어과장학사 2004, 대한궁도협회서울관악정 회원 2019
등단․신인상 수필부문 2014<돈>외 1편, 시부문 2014<쉼터>외 2편, 동작문인협회 회원 2019
소설부문 충북대사범대역사교육과 경대승연구가 교수 신호철 선정추천도서 2010 <도방 정치 경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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