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를 그리다
나비는 변화와 성장, 자유를 의미한다.
평소에 새롭고 다양한 작품을 만나기 위해서 갤러리에 자주 간다. 여럿이 갈 때도 있지만 작품을 깊게 살피기 위해 혼자서 감상할 때가 많다. 오늘도 아는 작가의 ‘부스 전’을 관람하려고 집을 나선다. 작가의 설명을 들으면 작업 과정과 작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오랜만에 미술 세계에 대해서 깊은 대화를 나누며 시간의 흐름을 잊는다.
전시장이나 무대는 꽃과 나비가 만나는 장소가 아닐까. 관람객은 나비처럼 날아서 전시장의 꽃을 찾아 방문한다. 모든 작품과 예술가는 꽃과 나비가 된다. 다른 작가의 작품을 둘러보니 꽃밭에 들어선 듯 다채롭다. 마음에 드는 작품과 만나면 원하던 꽃을 만난 듯 반갑다. 전시장을 나설 때는 발걸음이 날개를 단 것처럼 가벼워진다. 새로운 창작 의욕이 샘솟으며.
‘꽃들에 희망을’이란 책이 떠오른다. 애벌레의 과정을 거쳐서 나비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그린 내용이다. “너는 아름다운 나비가 될 수 있어. 우리가 모두 너를 위해 기다리고 있는 거란다.” 노랑나비가 줄무늬 애벌레에게 해준 말이다. 꼭대기까지 기어가는 것이 아니라 날아서 갈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준다. 치열하게 경쟁하며 정체성을 잃고 헤매는 어른을 위해 들려준 얘기가 감동을 준다.
작업에 몰입할 때는 나비의 유충이나 번데기처럼 스스로 어둠 안에 갇힌다. 본인이 원하는 일이지만 고뇌가 따른다. 고치 안에서 뽑는 실이 엉킬 때는 나락을 헤매는 느낌이다. 자유를 갈망하지만 스스로 묶은 올가미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원하던 형태와 색채를 만나면 환희를 느낀다. 전시장에서 작품은 꽃으로 피어나고 작가는 나비처럼 날아오른다. 찬란한 그 순간을 위해서 유충과 번데기의 시간을 견디나 보다.
나비는 아름다움과 우아함의 상징이다. '쿠바의 댄서'란 독립영화를 감상했다. 15살 소년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성장기이다. 그는 쿠바 국립발레단의 유망주인데, 가족의 이민으로 미국에 가게 되었다. 정든 고향, 스승님, 첫사랑과도 헤어져야 한다. 언어도 다르고 낯선 곳에서 혹독한 훈련을 거듭하며 샌프란시스코 발레단원이 되기를 꿈꾼다.
그는 수없이 넘어져도 끊임없는 날갯짓 끝에 우아한 발레리노의 모습으로 성장한다. 그 배경에는 부모님의 헌신적인 사랑과 희생이 따른다. 마침내 발레학교에서 우수한 학생으로 졸업하고 샌프란시스코 발레단에 입단하게 된다. 그는 쿠바인이란 자부심과 투쟁 정신으로 사뿐히 날게 되었다.
하얀 나비는 화려하진 않지만 순수한 느낌으로 정감이 간다. 나비가 날 때, 영혼과 부활,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상징한다. 하얀 나비를 보면 그리운 이가 떠오른다. 어느 날, 노란 배추꽃 위를 나르는 흰 나비를 보면서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렸다. 나비로 환생해서 내 곁에 오신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애틋한 시선으로 나비의 움직임을 따라다녔다. 그리움이 간절해서 환상에 사로잡혔나 보다.
나비를 보며 그리운 이를 떠올린 것도 우연의 일치일까. 미술 단체에서 가평에 있는 미술관을 방문했다. 고향을 가꾸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가 갈고 닦은 미술관이다. 실내외에 수많은 그림과 조각 작품으로 공간을 꾸몄다. 그 부부에겐 지울 수 없는 아픔이 있다. 음악 재원인 딸이 유학을 앞두고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딸을 보내고 일주기를 기념하기 위해서 그곳 뜰에 도착했을 때 한 마리 나비가 엄마의 가슴에 내려앉아서 몇 분간 머물렀다고 한다. 부부는 분명 딸이 나비가 되어서 왔을 거라고 믿고 있다. 딸을 추억하는 방 앞쪽 난간에 색색의 철사로 나비를 만들 수 있는 코너를 마련했다. 나도 그 영혼을 위해 나비의 형태를 만들어 난간에 매달았다. 하늘나라에서 편히 잠들기를 기원하면서.
꽃과 나비의 의미를 생각한다. 누구나 갇힌 현실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여행하길 꿈꾼다. 여행지에서 꽃으로 단장한 창문과 정원이 아름다운 집을 보며 감탄할 때가 많다. 주인의 섬세한 손길과 정성으로 가꿔진 풍경이다. 넓은 들판과 초목조차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날아다니는 나비도 꽃 위에서 쉬고 싶을 것이다.
여행도 정착의 의미를 깨닫게 되는 성장 과정이 아닐까.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여행에서 귀소본능이 꿈틀댄다. 안락한 집을 그리워하며. 진정한 자유란 꽃을 가꾸는 마음으로 자기 역할에 최선을 다했을 때 느낄 수 있다. 그때야 비로소 자유롭게 날아오를 수 있기에.
첫댓글 김영신 지송 선생님의 수필에서 이야기 하신, "하나의 작품은 꽃이고, 작품이 완성되는 순간, 작가는 나비처럼 날아 오른다" ."그리고 그것은 유츙과 번데가의 시간을 견디어 나온다" 라는 표현이 멋지고 문학적인 거 같습니다. 예술가가 작품 완성을 하는 환희의 순간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거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지송 선생님의 글이 언제 올라오나 기다렸어요.
예술가의 고통과 아픔은 날개를 만들지요. 남의 눈을 빌려 내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것도 자기 관리라고
생각합니다. '나비와 그리움' 울컥했어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