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르다드의 서, 제28장 베타르 왕자와 미르다드의 전쟁과 평화에 관한 대담
스승의 말씀이 끝나자, 우리는 스승의 말씀을 곰곰이 되씹어 보기 시작했다. 그때 분명치 않은 얘기 소리와 힘께 무거운 군화 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이윽고 빈틈없이 무장한 두 명의 커다란 병사가 입구에 나타나, 햇빛에 번쩍거리는 군도(軍刀)를 빼들고 입구 양쪽으로 진을 쳤다. 뒤이어 화려한 복장을 한 젊은 왕자가 들어왔다. 그 뒤에 샤마담이 머뭇머뭇거리면서 걸어 들어왔다. 샤마담의 뒤로 다시 두 명의 병사가 뒤따랐다.
그 왕자는 밀키 산맥에서 가장 세력 있으며 아주 멀리까지 명성을 떨치고 있는 세도가였다. 그는 입구에 잠시 서서 안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주의깊게 살폈보았다. 그러고 나서 그는 크고 또렷또렷한 눈을 스승에게 고정시키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여기 온 것은 위대한 미르다드께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입니다. 미르다드의 명성은 이 밀키 산맥에 널리 퍼져 있으며, 멀리 떨어진 우리 도시에까지 미치고 있습니다.”
미르다드가 말했다.
“명성은 멀리 떨어진 곳으로 화려한 전차를 몰고 가지만, 내가 있는 곳에서는 발을 질질 끌며 목발에 의지하고 있소. 그것에 대해서는 장로가 증인이오. 왕자여, 명성의 요술을 믿지 마시오.”
왕자가 말했다.
“그러나 명성의 요술은 달콤하고, 남의 입술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는 것은 유쾌한 일입니다.”
미르다드가 말했다.
“남의 입술에 이름을 올리는 것은 해변의 모래사장에 이름을 새기는 것과 다름없소. 바람과 조류가 그 이름을 씻어낼 것이오. 재채기가 그 이름을 입술에서 날려 보낼 것이오. 그대가 재채기에 날아가고 싶지 않다면, 남의 입술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기보다 그들의 마음에 그 이름이 불붙게 하시오.”
왕자가 말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수많은 자물쇠로 닫혀 있습니다.”
미르다드가 말했다.
“자물쇠는 무수히 많을지 모르지만, 열쇠는 하나요.“
왕자가 말했다.
“당신은 그 열쇠를 갖고 있습니까? 내겐 그 열쇠가 꼭 필요합니다.”
미르다드가 말했다.
“그대 역시 그 열쇠를 갖고 있소.”
왕자가 말했다.
“뭐라고요? 당신은 나의 진정한 가치보다 훨씬 높이 나를 평가해 주시는군요. 오랫동안 나는 이웃의 마음에서 열쇠를 찾아 왔습니다만, 어디에서도 찾아내질 못했습니다. 그 이웃은 힘센 군주로, 내게 열심히 전쟁을 걸고 있습니다. 나는 평화를 좋아하는 성격이지만, 부득이 그와 맞서 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의 왕관이나 보석으로 장식된 이 옷에 홀리지 마십시오. 나는 이런 것들을 갖고 있지만, 내가 찾는 열쇠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미르다드가 말했다.
“왕관이나 왕의 옷은 열쇠를 숨기기는 해도 갖지는 못하오. 그런 것들은 그대의 걸음걸이를 속이고, 그대의 손을 방해하고, 그대의 눈을 유혹함으로써 그대의 탐색을 무력하게 만드오.”
왕자가 말했다.
“당신은 무엇을 말하려 하는 겁니까? 이웃의 마음을 여는 열쇠를 찾아내기 위해 내가 왕관이나 왕의 옷을 버려야 한단 말씀입니까?”
미르다드가 말했다.
“왕관이나 왕의 옷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웃을 잃어야 하오. 이웃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왕관이나 왕의 옷을 잃어야 하오. 그리고 이웃을 잃는 것은 자기 자신을 잃는 것이오.”
왕자가 말했다.
“이웃의 우정을 얻는 데 그렇게 높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미르다드가 말했다.
“그처럼 보잘 것 없는 대가를 치르고서 자기 자신을 다시 사고 싶지는 않소.?”
왕자가 말했다.
“나 자신을 다시 산다구요? 나는 보상금을 지불해야 할 포로가 아닙니다. 게다가 내겐 나를 지키는 군대가 있습니다. 그들은 훌륭한 장비를 갖추고 있고, 나는 그들에게 충분한 급료를 지불하고 있습니다. 이웃이 나보다 우수한 군대를 갖고 있다고 과시할 수 없을 정도죠.”
미르다드가 말했다.
“한 사람의 인간이나 한 가지의 물전에 포로가 되는 것은 너무나 가혹하고 견디기 어려운 감금이오. 인간의 군대와 사물의 무리에 포로가 되는 것은 집행유예 없는 추방형이오. 어떤 대상에 의지하는 것은 그 대상에 감금되는 것이기 때문이오. 그러니 오직 신에게만 의지하시오. 신의 포로가 되는 것은 진실로 자유로워지는 것이오.”
왕자가 말했다.
“그럼 나는 나 자신, 나의 왕좌, 나의 신하를 방어하지 않은 채 그대로 놔둬야 한다는 겁니까?”
미르다드가 말했다.
“자기 자신은 방어하지 않은 채 놔둬선 안 되오.”
왕자가 말했다.
“그래서 나는 군대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미르다드라 말했다.
“그래서 그대는 군대를 버려야 하는 것이오.”
왕자가 말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이웃이 즉각 내 왕국을 쳐들어올 것입니다.”
미르다드가 말했다.
“그가 그대의 왕국을 침략할지도 모르오. 그러나 누구든 그대를 삼킬 수는 없소. 두 개의 감옥을 하나로 합친다 해도 자유를 향한 자그마한 발판조차 짓지 못하오. 누군가가 그대를 감옥에서 쫓아낸다면 그것을 기뻐하시오. 그러나 그대의 감옥에 자신을 가두기 위해 온 사람을 부러워하지는 마시오.”
왕자가 말했다.
“나는 전쟁터에서 용맹을 떨친 이름높은 가문의 후손입니다. 우리는 결코 성급히 전쟁을 걸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전쟁을 강요당할 때는 결코 겁내거나 피하지 않습니다. 전쟁터에 산더미처럼 쌓인 적의 시체 꼭대기에 우리의 깃발을 올릴 때까지는 결코 전쟁터를 떠나지 않습니다. 내 이웃이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라고 충고한 것이라면, 그 충고는 적절치 못합니다.”
미르다드가 말했다.
“그대는 평화를 희망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소.”
왕자가 말했다.
“물론 나는 평화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미르다드가 말했다.
“그렇다면 싸워서는 안 되오.”
왕자가 말했다.
“그러나 이웃이 내게 싸움을 강요합니다. 나와 이웃 사이에 평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와 싸워야만 합니다.”
미르다드가 말했다.
“이웃과 평화롭게 살기 위해 그를 죽이려고 하다니! 너무나 기괴한 광경이오! 죽은 자와 함께 평화롭게 산다 해도 그게 무슨 소용이오? 그러나 산 자와 함께 평화롭게 사는 것은 크나큰 미덕이오. 만약 기호나 흥미가 때때로 대립하는 사람이나 사물과 싸워야 한다면, 그런 사람들이나 사물들을 창조한 신과 싸우시오. 그리고 우주와 전쟁을 하시오. 왜냐하면 우주에는 정신을 혼란시키고 마음을 어지럽히는, 그리하여 그대의 삶에 자신을 강요하는 사물이 무수히 많기 때문이오.”
왕자가 물었다.
“나는 이웃과 평화롭게 살고 싶은데, 이웃이 전쟁을 희망할 경우 어떻게 해야 합니까?”
미르다드가 말했다.
“싸우시오.”
왕자가 말했다.
“이제야 당신은 올바로 조언해 주시는군요.”
미르다드가 말했다.
“그렇소, 싸우시오! 그러나 이웃과 싸우라는 것이 아니오. 오히려 당신과 이웃을 싸우게 한 모든 원인과 싸우시오.”
왜 이웃이 그대와 싸우고 싶어하겠소? 자기의 눈은 연한 갈색인데 그대의 눈은 푸르기 때문이오? 자기는 악마를 꿈을 꾸는데 그대는 천사의 꿈을 꾸기 때문이오? 그대가 이웃을 자기 자신만큼이나 사랑해서 그대가 가진 모든 것을 이웃의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하기 때문이오?
왕자여, 이웃이 그대와 싸우고 싶어하는 것은 왕좌, 왕의 옷, 재산, 영애 등 그대가 포로로 잡혀 있는 데서 그대를 구하려 하기 때문이오.
그대는 창을 쓰지 않고 그를 완전히 굴복시키고 싶소? 그렇다면 먼저 그런 것들에 대해 선전포고하시오. 그대의 영혼이 그런 것들의 지배한테서 벗어나도록 하시오. 그런 것들을 정복했을 때, 즉 그대가 그런 것들을 쓰레기 더미에다 버렸을 때, 아마 이웃 사람은 행진을 멈추고 칼을 칼집에 거두면서 이렇게 말할 것이오. ‘이런 것들과 싸울 만한 가치가 있다면, 내 이웃이 쓰레기 더미에다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대의 이웃이 미쳐서 그 쓰레기 더미를 싣고 간다면, 자신이 그러한 해로운 짐에서 벗어난 것을 기뻐하시오. 그러나 이웃의 운명에 대해서는 슬퍼하시오.“
왕자가 말했다.
“나의 모든 소유물보다 훨씬 중요한 나의 명예는 어떻게 됩니까?”
미르다드라 말했다.
“인간의 유일한 명예는 인간이라는 것, 요컨대 신의 생생한 닮은 꼴이자 심상(心象)이라는 것뿐이오. 그 밖의 모든 명예는 불명예요.
인간이 준 명예는 인간이 간단히 빼앗아 가오. 칼을 쓴 명예는 칼로 간단히 지울 수 있소. 왕자여 , 어떠한 명예든 녹슨 화살만한 가치도 없소. 뜨거운 눈물을 흘릴 만한 가치는 더더욱 없고, 피 한 방울의 가치도 없소.“
왕자가 물었다.
“그러면 자유, 그러니까 나의 자유와 내 부하들의 자유는 가장 큰 희생을 치를 만한 가치가 없는 것입니까?”
미르다드가 말했다.
“참된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자기를 희생할 만한 가치가 있소, 그대 이웃의 무기도 그 자유를 빼앗을 수는 없소. 또 그대 자신의 무기가 그 자유를 싸워 얻을 수도 없으며 지킬 수도 없소. 그리고 전쟁터는 참된 자유의 입장에서는 묘지요.
참된 자유는 마음 속에서 얻을 수도 있고 잃을 수도 있소.
그대는 전쟁을 하고 싶소? 그렇다면 자기 마음속에서 마음에 대해 전쟁하시오. 그대의 세계를 숨막히는 감방으로 만드는 모든 희망과 공포와 허무한 소망의 무장(武裝)을 풀고 그대 마음을 해방시키시오. 그리하면 마음이 우주보다 더 광대함을 알게 될 것이오. 그때 그대는 마음 먹은 대로 우주를 거닐 것이오. 그때 방해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오.
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전쟁은 이것뿐이오. 이런 전쟁을 하게 되면, 다른 전쟁에 끼어들 시간이 더 이상 없을 것이오. 다른 전쟁은 혐오스런 야수성과 사악한 책략으로 그대의 정신을 미혹시키고 힘을 탕진시켜, 결국 참된 성전(聖戰)인 자기 자신과의 커다란 전쟁에서 패배케 할 것이오. 그 성전에서 이기는 것이야말로 불멸의 영광을 얻는 것. 그러나 다른 전쟁에서 이기는 것은 가혹한 패배보다 더 나쁜 것. 그리고 승자와 패자가 함께 패배를 당하는 것이 인간이 벌이는 온갖 전쟁의 두려운 모습이오.
그대는 평화를 희망하고 있소? 언어로 기록한 것에서 그 희망을 찾지 마시오. 바위에까지 그 희망을 새겨 놓으려고 하고 고투하지도 마시오.
왜냐하면 쉽게 ‘평화’ 라고 쓰는 펜은, 마찬가지로 쉽게 ‘전쟁’ 이라고도 쓸 수 있기 때문이오. 그리고 ‘평화를 우리에게’라고 조각하는 끌은, ‘전쟁을 우리에게’라고 조각할 수도 있소. 게다가 종이와 바위, 펜과 끌은 금방 좀이 먹거나 녹이 슬어 바래기 마련이오. ‘성스러운 이해’의 아성인, 시간을 초월한 인간의 마음은 그렇지 않소.
일단 ‘이해’ 가 베일을 걷어내면, 승리와 평화가 마음속에 영원히 확립된다오. 이해하는 마음은 전쟁으로 어지러운 세계의 한복판에서도 늘 평화롭소.
무지한 마음은 둘로 갈라진 마음이오. 둘로 갈라진 마음은 둘로 나뉜 세계를 만든다오. 둘로 나뉜 세계는 끊임없는 투쟁과 전쟁을 낳는 법이오.
반면에 이해하는 마음은 하나된 마음이오. 하나된 마음은 하나된 세계를 만든다오. 하나된 세계는 평화의 세계요.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둘이 필요하니까.
그래서 나는 마음과 전쟁을 해서, 그 마음을 하나로 만들라고 조언하는 것이오. 그 전쟁에서 승리해 얻은 전리품은 영원한 평화요.
왕자여, 그대가 어떤 돌에서든 왕좌를 볼 수 있을 때, 어떤 동굴에서도 궁궐을 발견할 수 있을 때, 태양은 기쁘게 그대의 왕좌가 되고, 별자리는 기쁘게 그대의 궁궐이 될 것이오.
들에 핀 데이지 꽃이 기쁘게 그대의 훈장이 되어 주고, 어떤 곤충들도 그대의 선생이 되어 주려 할 때, 별들은 기꺼이 그대의 가슴에 훈장을 달아줄 것이고, 대지는 그대의 연단이 될 것이오.
그대가 자신의 마음을 지배할 수 있을 때, 누가 명목상 그대의 몸을 지배하든 무슨 상관 있겠소? 온 우주가 그대의 것을 때, 땅 위의 이 지역 저 지역을 누가 지배하든 무슨 상관 있겠소?
왕자가 말했다.
“당신의 말은 너무나 매력적입니다. 하지만 나는 전쟁이 자연의 법처럼 보입니다. 바다의 고기조차 끊임없이 전쟁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약자는 강자의 먹이가 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나는 그 누구의 먹이도 되고 싶지 않습니다.”
미르다드가 말했다.
“그대에게 전쟁으로 보이는 것은 자연이 스스로를 기르고 번식하는 방식에 지나지 않소. 약자가 강자의 먹이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강자 역시 약자의 먹이가 되오. 그러니 자연 속에서 누가 강자고 누가 약자겠소?
자연만이 강자요. 그 밖의 것은 모두 자연의 의지에 따르고, 죽음의 강을 순응하면서 흘러내려가오.
불사의 것만이 강자로 분류될 수 있소. 그리고 인간은 불사요. 왕자여. 진정 인간은 자연보다 강하오. 인간이 육신을 가진 자연 속의 생물을 먹는 것은 육신 없는 자신의 생명에 도달하기 위해서요. 인간이 자신을 번식시키는 것은 자기 번식을 초월한 높은 곳으로 오르기 위해서요.
자신의 깨끗하지 않은 욕구를 짐승의 깨끗한 본능으로 정당화하려는 자들은 스스로를 멧돼지나 이리, 재칼 같은 것으로 부르도록 내버려 두시오. 그러나 그들이 인간의 존엄한 이름을 더럽히게 해서는 안 되오.
미르다드를 믿고 평화롭게 사시오, 왕자여.“
왕자가 말했다.
“장로가 내게 미르다드는 신비한 마술로써 교묘한 변설을 행한다고 말했소, 나는 내가 장로를 믿는다는 것을 그에게 보여 주고 싶소.”
미르다드가 말했다.
“만약 인간 속의 신을 드러내기 위해 베일을 벗기는 것이 마술이라면, 그 경우 미르다드는 마술사. 그대는 내 마술을 증명하고, 그 마술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싶소?
보시오, 내가 그 증명이자 나타남이오.
빨리 시작하시오. 그대가 이곳에 와서 하려고 한 그 일을 하시오.“
왕자가 말했다.
“내 귀를 당신의 교묘한 말로 즐겁게 하는 것말고, 또다른 목적이 있다는 걸 정말 잘 꿰뚫어보았소. 왜냐하면 베타르 왕자는 다른 종류의 마술을 잘 다루기 때문이오. 이제 곧 그 마술을 실제로 펼쳐 보이겠소.”
왕자는 자기 부하에게 명령했다.
“족쇄를 가져와, 신이자 인간이며 인간이며 신인 이자를 결박하라. 그와 그 벗들에게 우리의 마술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라.”
맹수가 포획물을 낚아채듯 네 명의 병사가 스승에게 덤벼들어 재빨리 스승의 손발을 묶기 시작했다. 잠시 동안 일곱 명의 동행자는 눈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하기 어려워 -장난인지 진실인지 몰라서- 망연히 앉아 있었다. 미카욘과 자모라는 그 추악한 상황이 장난이 아니란 걸 다른 사람보다 빨리 알아차렸다. 두 사람을 제지하고 달래는 미르다드는 소리가 없었다면, 그들은 병사를 때려눕히고 말았을 것이다.
미르다드가 말했다.
“조급한 미카욘이여, 그들이 책략을 꾸미도록 내버려 두라. 선량한 자모라여,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라. 이 족쇄는 미르다드에겐 ‘검은 구덩이’와 마찬가지로 전혀 두려움을 주지 못한다. 샤마담이 자신의 권위를 베타르 왕자의 권위로 꾸미는 것을 즐기도록 내버려 두라. 그 겉꾸밈은 그들 두 사람을 분열시킬 것이다.”
미카욘이 말했다.
“우리의 스승이 죄인처럼 묶이고 있는데 어떻게 바라보고만 있습니까?”
미르다드가 말했다.
“나를 위해 추호도 마음을 번거롭히지 말라. 평화로워지라. 언젠가는 이와 똑같은 일을 그들이 그대들에게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해치는 것은 그대들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다.”
왕자가 말했다.
“엄연한 정의와 권위를 우롱하는 부랑자나 무뢰한은 어느 누구든 이와 똑같은 꼴을 당할 것이다.”
그는 샤마담을 가리켰다.
“이 성스러운 인물이 이 공동체의 정당한 수장(首長)이며, 그의 말이 모든 일의 규칙이어야 한다. 그대들이 은혜를 누리고 있는 방주는 나의 보호 아래 있다. 나는 방주의 운명에 감시의 눈빛을 보내고 있다. 힘센 나의 팔은 방주의 지붕과 재산을 지키고 있다. 나의 칼은 악의를 가지고 방주를 건드리는 손을 물리친다. 모든 사람에게 이 일을 알리고 주의를 환기시키도록 하라.”
왕자가 다시 자기 부하에게 명령했다.
“이 악당을 데려가라. 놈의 위험한 가르침은 이 방주를 무너뜨릴 정도였다. 만약 이러한 해로운 가르침을 제멋대로 놔두면, 그 가르침은 이내 우리 왕국을 파괴하고 지구를 파멸시킬 것이다. 이제부터는 그가 베타르의 지하감옥 내의 음울한 벽에서 설교하도록 하라. 놈을 데려가라.”
병사들은 스승을 연행했으며, 의기양양한 왕자와 샤마담이 뒤따랐다. 일곱 사람은 이 기분 나쁜 행렬 뒤를 따라갔지만, 눈은 스승을 쫓고, 입술은 슬픔으로 굳게 닫혔으며, 마음은 눈물로 터질 것 같았다. 스승은 단호한 발걸음으로 꿋꿋이 걸었으며, 머리는 곧추세우고 있었다. 얼마간 걸은 뒤, 스승은 우리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미르다드를 믿고, 동요하지 말도록 하라. 나는 방주를 출범시켜 그대들을 지휘할 때까지는 그대들에게서 떠나지 않는다.”
스승의 이 말씀은 둔중하게 절거덕거리는 족쇄 소리와 함께 우리 귓전에서 크나큰 소리로 오랫동안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