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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14일 일요일 날씨 흐리고 맑음 ***연중 15주일
오늘은 황규철 사도요한 회장님과 김택중 라파엘님이 우리하고 성당에 동행하기 위해 오셨다. 회장님 6인승 밴에 나하고 안미정(수산나)자매, 임헌국(시몬)형제가 탔다. 차가 출발하고 안미정(수산나)자매가 논산 수녀님들이 만든 붓글씨가 곱게 적힌 하얀 카드를 회장님에게 준다. 수산나 자매는 간단한 한글을 알아서 자기 마음을 글로 써서 성당 사람들에게 주는 걸 좋아한다. 우리원에서 몇 명 안 되는 한글을 쓸 줄 아는 생활인이다. 회장님에게 준 카드는 권명랑 요안나 자매님이 수산나 자매에게 준 것이다.
수산나 자매가 동곡 요양원에 들어 온 건 85년 15세에 때였다. 그 땐 직원들이 별로 없어 중증 장애인과 경증 장애인이 짝이 되어 생활했었다. 그 땐 수산나 자매하고 짝이 된 자매는 부산에서 온 김옥희(세실리아)자매였다. 세실리아 자매는 나와 같은 중증 뇌병변 장애인이다. 87년에 나와 같은 날 공주 교동 성당에서 세례성사를 받고 92년에 유성성당에서 견진성사도 같은 날 받았다, 세실리아 자매가 수산나 자매에게 일방적로 도움을 받은 건 아니었다. 세실리아 자매가 수산나 자매에게 한글도 가르쳐 주고, 무엇보다도 하느님 믿기 싫다는 수산나 자매를 하느님께 인도 한 것이다. 지금의 하느님 안에서 밝은 수산나 자매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수산나 자매가 99년에 유성성당에서 세례성사 받고, 얼마 안 있다가 세실리아 자매는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복지시설로 가고, 그 뒤로 세실리아 자매하고 연락이 끊어졌다. 그 뒤로 수산나 자매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오고 있다.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매이다.
이런 옛 생각들을 중간 중간 하면서 회장님 댁에서 항상 멋지게 단장하고 미사에 가시는 정명희 클라라 사모님(회장님은 사모님을 대통님이라고 부르신다.ㅎㅎ)을 한잠 기다렸다. 한참 만에 나오신 사모님을 타우고 바로 앞 우리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렸다. 임헌국(시몬)형제가 사모님이 차에 탈 때 대통령님이 오셨다고 해서 한바탕 웃었다.
오늘 신부님의 강론은 착한 사마리아인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것저것 생각하고, 재는 것 없이 순수한 수산나 자매는 길거리에서 다쳐서 쓰러진 사람을 분명히 도와줬을 것이다. 나는 수산나 자매처럼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순수하게 도움을 줄 수 없을 것 같다. 하늘나라에 아이와 같은 마음이 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아이의 순수한 마음을 지니지 못한 나는 하늘나라에 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점심으로 여름 보양식 토종닭 백숙을 배불리 먹고 회장님이 대전 롯데백화점까지 태워다 주셨다. 차를 타고 롯데백화점에 가면서 사모님이 우리를 기다리게 하신 이유를 알았다. 회장님은 치매에 걸리신 장모님을 모시고 계신다. 여름이라 시원하게 해먹 설치해 놨는데 호기심 많은 어머니가 해막에 올라가실까봐 절대로 올라가시지 마시라고 당부에 당부를 하느라 늦었다고 하셨다.
오늘 만나는 친구는 내가 39년 전 처음 명주원에 왔을 때 나를 돌봐 주던 친구다. 같은 천주교 신자로 지금은 대전에서 혼자 장애연금 받으며 산다. 영화보고 대전 중앙시장에서 뭘 살게 있어서 장애인 택시는 늦게 와서 내가 지하철을 타보자고 했다. 내 생각엔 장애인 택시를 부르는 것보다 지하철 더 빠를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생각은 오산이었다. 롯데 백화점에서 가까운 용문역에 같이 영화 본 친구가 휠체어를 밀어줘서 갔다. 그런대 계단으로 내려가는 입구만 보이고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는 보이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찾으려 멀리까지 갔다. 한 여름 땡볕에 1시간 넘게 엘리베이터를 찾아보았지만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휠체어를 밀어주는 친구에게도 미안하고 죽을 맛이었다. 지나가는 젊은 커플에게 물어물어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는 용문역 2번 출입구 우리 은행 앞에 있었다. 롯데 백화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인데 1시간 넘게 헤맨 걸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다. 지하철을 타고 단 10분 만에 대전역에 도착했다. 중앙시장은 대전역 바로 앞에 있다.
일 보고 중앙시장 식당에서 저녁 먹고 7시 30분에 대전역으로 장애인 택시를 콜 했다. 대전 시내는 장애인 택시가 10시까지 콜을 받지만 대전 시외 지역은 7시 30분까지만 받는다. 보통은 콜 받고 2~30분 있다가 배차되었다고 문자가 오는데 2분도 지나지 않아 배차 문자가 왔다. 식당에서 계산하고 나오는데 내 핸드폰이 울렸다. 장애인 택시 기사님한테 곧 대전역에 도착한다는 절망적인 연락이었다.
내 둥 한참을 기다리만 게 하던 장애인 택시가 오늘은 왜 이렇게 빨리 오는지 모르겠다. 중앙시장으로 콜을 부를 수가 없어서 대전역으로 불렀는데 이렇게 빨리 오면 나더러 어쩌란 말인가???
지금 여긴 중앙시장 한참 들어 온 식당이어서 대전역까진 15분에서 20분 거리인데 10밖에 기다려 주지 않은 장애인 택시를 탈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급하다 보니 대전역으로 가는 길 반대쪽으로 가 버렸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봐서 대전역으로 가는 길을 다시 찾았다. 횡단보도 왜 그렇게 많고 교통신호는 무진장 긴 것처럼 느껴졌다. 마음이 조급하다 보니 평소에 아무 생각 없이 지나던 횡단보도와 교통신호가 지금은 나에게 커다란 방해물이 되었다. 기사님과 콜 센터에서 전화가 와서 늦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대전역까지 30분이나 걸려 겨우 대전역에 도착했다. 그 때까지 기다려 준 기사님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차를 타고 돌아왔다. 무거운 나를 밀고 다니느라 겁나 고생한 친구에게 고맙다.
2019년 7월 28일 일요일 날씨 폭우 ***연중 17주일
하느님, 사랑의 마음
늘상 많이 부족한 저에게
사랑으로 사랑으로
오시는 하느님입니다
가진 것 없는 제가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건
이 마음과 기도뿐입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허무하고 하무한데
오직 하느님만이
내 마음을 채웁니다
오늘도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성당에 와서 미사 드리고
한 여름, 몸에 좋고 맛있는 어죽을 먹을 수 있는 건
하느님, 사랑의 마음.
2019년 8월 15일 목요일 날씨 비오고 흐림 ***성모 승천 대축일
오늘은 광복절이고, 성모 승천 대축일이다. 태풍의 영양으로 새벽부터 요양원에서 차 탈 때까지 비가 내렸다. 성당에 도착하니 비가 잠깐 멈췄다. 미사 중에도 비는 계속 내렸다. 오늘 신부님 강론은 성모님의 관한 것이었다. 죄가 하나도 없으신 성모님께선 첫 번째로 하늘에 올라 천국에 들어 가셨다고 말씀 하셨다.
이 말씀을 듣고 많은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먼저 올 1월에 떠나신 웃으시는 얼굴이 인자하신 황영준(시몬)신부님과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대전 월드컵 경기장에서 성스럽게 거행된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가 떠오른다. 작년에 우리 성당에서 드린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도 가슴에 큰 울림으로 남았다. 성모님은 예수님의 어머님이시고, 죄도 없고 완전무결하시고 고결한 첫 성인이라서 이렇게 흠숭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듣다.
그리고 오늘은 광복절이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36년 동안 신민지로 지배하다가 행방된 날이다. 36년 동안 우린 일본에게 모든 걸 빼앗겼다. 우리나라에서 나는 모든 물자와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살았을 많은 젊은이들을 끌고 갔다.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 전쟁에 총알 받지 학도병으로, 군수물자 만들고 연료로 쓰는 석탄 캐는 노동자로, 꽃다운 우리 누이들은 정신대로 끌려갔다. 해방되고 7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정한 의미에 사과는 하지 않고 있다.
110년 전 힘없는 우리를 36년 동안 지배하고 수탈해 놓고, 그 때의 정신대 할머니들에겐 진심어린 사과하고, 군수물자 만들던 노동자 할아버지들에겐 배상 하라고 하니까 경제하는 일본 정부를 이해 할 수 없다. 아베 정권은 일본을 태평양 전쟁 이전 전쟁 가능한 국가로 만들려고 하고 있다. 걱정이다.
점심은 우리성당 신자 부부가 하는 식당에서 먹었다. 배부르게 한약 재료가 듬뿍 들어간 삼계탕을 먹고, 성당에서 나눠 준 떡과 식당에서 반찬으로 나온 감자튀김을 가지고 왔다. 안창수 요안 보스코님이 닭 뼈가 많은 삼계탕을 먼저 드시고 먹여주셨다. 그리고 내가 삼계탕보다 먼저 나온 감자튀김을 맛나게 먹는 걸 본 식사 끝나고 우리성당 식당 부부에게 싸 달라고 하셨다. 여러모로 감사하다.
요양원에 돌아와서 뉴스를 봤더니 오늘 일본 열도엔 태풍이, 우리나라엔 쌍 무지개가 떠다는 영상을 보았다. 그 영상을 보면서 왠지 우리나라엔 좋은 일들만 있을 것 같았다.
오늘은 성모 승천 대축일이고 광복절이다. 우리나라의 광복절을 성모님이 축복하시면서 하늘에 오르신 것 같다.
2019년 8월 25일 일요일 날씨 화창하게 맑음 ***연중 21주일
못처럼 화창하게 맑은 날씨다. 7월 28일 주일하고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 성당 가는 날마다 비가 왔었다. 오늘은 늦여름 햇살이 맑기만 하다. 햇살이 너무 좋아 마당에 있는 사각정에서 차를 기다렸다. 황규철 사도요한 회장님이 혼자 차를 가지고 오셨다. 무거운 나를 차에 태우는데 한 번에 태우지 못하시고 여러 번 힘을 쓰셨다. 회장님 허리가 괜찮은지 걱정되고,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성당은 언제나 나에게 평안을 준다. 내가 하느님을 믿기 시작한 건 34~35년 전으로 기억한다. 그 시절 같은 방에서 생활하던 손무성 다마소 장애인 형님의 인도로 87년 4월에 공주 교동성당에서 세례성사를 받았다. 손무성 다마소 형님이 89년 여직원과 결혼해서 나가고 (경북 칠곡에서 결혼해서 지금은 대전 정림동에서 사셔서 대전에서 가끔씩 만난다.),그 뒤로 2016년까지 거의 30년 동안 요양원 작은 천주교 공동체를 내가 이끌었다. 오랜 시간 주일엔 공소예절과 레지오 마리애 회합을 하면서 내 신앙도 깊어져 갔다. 처음 몇 년 간은 천주교 모임을 갖기도 귀찮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는데, 차츰 하느님 참맛을 더해 가면서 정성 다해 모임을 가졌었다. 주일에 공소예절을 준비하고 드릴 때마다 많이 부족한 내가 하느님 안에서 내 신앙이 다듬어지고 성장했다. 내 안에 반항심이 넘치고 게으른 나를 착실하게 순명하도록 만들어 주신 하느님께 감사한다.
오늘 복음에서 하늘나라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했는데, 난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면 여러 가지로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비대한 몸은 날씬하게, 욕심 많은 마음들은 단출하게, 그리고 세상일들에 정신을 팔지 말고 하느님에게만 정신을 쏟아야겠다. 한 분이신 하느님께 가는 좁은 문을 통과하려면 깊은 다짐과 노력이 필요 하겠다. 하느님 진정한 사랑을 알기 위해서는 자기를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겠다.
점심 먹으러 고급지고 깔끔한 식당으로 갔다. 테이블에 음식을 주문하고 회장님이 이야기 했다. 우리를 성당에다 내려주고 집에 가서 허리에 파스를 붙이고 왔다고 했다. 농담처럼 아침에 나를 차에 태우다가 허리가 약간 놀란 듯하다고 아무러치 않은 듯 얘기하는 모습에서 나의 대한 배려가 느껴진다. 내가 미안해 할까봐 그냥 스치는 말처럼 말하시는 회장님에게 고맙고 미안한 감정이 든다. 이렇게 좋은 날씨에 하느님 안에서 한 형제, 자매라는 이유만으로 식사하고 고르곤 파자가 나오고, 1.000원이면 무두가 음료수 맘 것 마실 수 있는 곳에서 식사하고, 허리가 아픈데도 아무 내색하지 않은 회장님이 있어 저흰 하느님 안에서 행복합니다. 남은 피자와 얼굴도 성함도 알지 못하는 감사한 분이 추석 선물로 준 고운 색색의 반팔 티 하나 씩 가지고 화사하게 햇살을 받으며 돌아왔다.
2019년 9월 8일 일요일 날씨 어제 태풍 지나가고 흐림 ***연중 23주일
어제 태풍 링링이 지나가고 하늘은 흐리지만 날은 괜찮아졌다. 아침 먹고 내일로 잡혀 있던 미용 프로그램이 추석 명일이 코앞이라 미장원이 바쁘다고 해서 미용 프로그램이 잡자기 오늘 오전으로 변경 되었다. 미용실에 가는 방에(미용실은 한 달에 한 번씩 방별로 돌아가면서 간다.)속한 김영도(필립보)형제에게 “성당에 미사 드리러 갈래? 아니면 미용실에 갈래?”라고 물어보았다. 김영도(필립보)형제가 미용실에 가겠다고 해서 미사에 빠지고, 우리 네 명만 황규철 사도요한 회장님 차를 타고 성당에 왔다.
차를 타고 성당에 가면서 회장님에게 김영도(필립보)형제 얘길 했더니 웃는 얼굴로 “필립보 다음에 만나면 꿀밤 줘야겠네.”라고 농담 하셨다. 지난달에 회장님이 나를 차에 태우다가 허리가 삐끗했는데 괜찮으시지 모르겠다. 미사가 시작 되었어도 추석에 이번 주라서 그런지 분심이 많이 들었다. 미사가 끝나고 성당 1층에서 빈체시오 회원들이 어려운 신자들 후원금 마련 위해 한과를 판매해서 점심을 조금 늦게 먹게 되었다. 빈체시오 회원들이 한과를 판매하는 옆에서 여성회에선 마늘장아찌도 판매하고 마늘장아찌 몇 통을 우리 요양원에 전해주라고 따로 챙겨 놓았다. 명절 때마다 정겨운 풍경이다.
미리 맛보라고 나온 한과를 임헌국(시몬)형제와 먹으면서 한과가 완판 되기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명절이라고 몇 번 얼굴을 본적이 있는 자매님이 동생이 만든 어여쁘고 아주 고은 한복 조끼를 안미정(수산나)자매와 요양원에서 근무하는 자매님에게 전해 주라고 주셨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박순옥 헬레나자매님이 추석 선물이라고 한과 한 박스를 임헌국(시몬)형제에게 주셨다. 정말 모두 모두에게 감사하고 고맙다.
한과를 완판하고 성당 가까운 곳에서 돼지 등뼈로 식당을 하시는 신자분이 추석이라고 우릴 초대해 주셨다. 식당이 성당하고 가까운 곳이라 나는 차에 타지 않고 김영희 베드로님이 휠체어를 밀고 갔다. 베드로님하고 오늘 우릴 초대해준 신자분과 이야기 나누면서 식당에 도착했다.
식당에 도착해서 자릴 잡고 보니까 임헌국(시몬)형제가 보이지 않았다. 성당 1층에서 한과 판매 할 때까지 나랑 같이 있었다. 나는 고광일(야고보)형제와 안미정(수산나)자매하고 차를 타고 먼저 간 줄 알았다. 오늘은 모두들 바쁘다 보니까 임헌국(시몬)형제를 챙기지 못 했다. 빈체시오 회원님들하고 신부님, 그 때까지 남아 있던 신자들이 총출동해서 찾았지만 어디에도 없었다. 성당에도, 우리가 그 동안 다였던 성당에서 가까운 식당들, 주변도로 어디에도 있지 않았다. 성당에서 식당에 오는 사이에 임헌국(시몬)형제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식당에서 나하고 고광일(야고보)형제와 안미정(수산나)자매, 정명희 클라라 자매님은 임헌국(시몬)형제가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임헌국(시몬)형제가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건 아닌지, 사람들을 좋아하고 순진한 시몬을 안 좋은 사람이 데려간 건 아닌지 하는 걱정 때문에 점심을 못 먹었다.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고 상항은 점점 심각해졌다. 정명희 클라라 자매님은 식당에서 우리하고 줄 곳 함께 걱정하셨고, 박순옥 헬레나자매님은 오늘 새벽에 돌아가신 자매님 연도에도 가시지도 않으시고 시몬을 찾는데 힘을 보태주셨다. 중간 중간에 오시는 빈체시오 형제님들은 더운 날씨도 아닌데도 등에 땀이 흥건하게 젖어 가면서 뛰어 다니면서 찾고 또 찾았다.
한 30분이 흘러서 권명랑 요안나 자매님이 오셨다. “우리가 너무 나태했다. 하느님에게 더욱 겸손해져야 한다.”라는 혼자 말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나를 돌아보게 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라는 오늘 복음 말씀이 나를 세게 후려쳤다. 하느님하고 만나는 일이 얼마나 위대하고 기쁜 일인데, 미사시간에 추석이라고 분심이 들었던 나를 반성했다.
아무리 찾아도 못 찾아서 경찰에 신고해서 성당 CCTV를 봤더니, 시몬 형제가 성당 입구에서 어떤 사람이 차에서 내려 주차장에서 같이 차를 타고 가는 모습이 보였다고 한다. CCTV화질 떨어져서 시몬하고 같이 간 사람들이 누군지는 모른다는 소식들이 들여왔다. 시몬 찾는 것도 경찰에 신고 했고, 시간도 2시 가까이 돼서 점심을 먹어야 했다. 야고보 형제와 수산나 자매는 먼저 먹고 난 걱정을 해서 그런지 속 아 좋아서 등뼈탕 대신 요한나님이 먹여주시는 냉면도 반박에 먹었다. 윤주용 안젤로님 내 휠체어를 밀고 점심 안 드신 클라라님, 요한나님, 그리고 야고보와 수산나 다 같이 성당에 왔다. 그 때까지 신부님과 신자들이 점심도 못 드시고 경찰과 함께 시몬을 찾을 대책을 의론하고 있었다.
회장님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먼저 요양원에 돌아왔다. 돌아오는 차에서 회장님과 대화 하면서 시몬이 누구와 함께 사라졌는지 의문이 풀렸다. 회장님이 “CCTV를 보니까 성당에 주차되 있던 차가 아니고 성당으로 들어오는 차를 타고 간 것 같다.”고 하셨다. 그래서 내가 “혹시 추석이라 시몬 부모님이 면회 와서 데리고 가신 게 아닐까요?”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회장님이 요양원에 전화로 확인해 보고 시몬 부모님이 면회 오신 게 맞는 것 같다고 하셨다. 회장님도 나도 한시름 놓았다.
추석이라고 시몬 어머님이 요양원에 면회를 왔는데, 성당에 갔다고 하니까 성당에다 얘기도 하지 않고 그대로 데려 간 거였다. 아무리 자식을 빨리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해도 너무 했단 생각이 든다. 성당에다 얘길 했으면 많은 성당 사람들이 점심도 못 먹고, 애끊는 마음으로 시몬을 찾는 수고는 안했을 것이다.
그래도 시몬이 나쁜 사람에게 끌려가거나 길을 잃고 어디 다친 것도 아니고, 어머님과 맛있는 식사를 하고 와서 다행이다. 시몬이 무사히 돌아 온 건 신부님과 많은 신자들의 기도와 걱정하는 마음들과 하느님의 은혜로운 사랑 덕뿐이다. 이번 일이 오늘 미사시간에 나의 분심 때문인 것만 같다. 앞으로는 하느님과의 시간엔 다른 생각하지 않고, 오직 하느님만 바라 볼 것을 다짐해 본다.
오후 4시 쯤 회장님에게 전화 왔다. “한 5분 후에 요양원에 추석 선물로 한과와 마늘장아찌를 전해주러 가는데 시몬이 돌아왔냐?”고 물어 보셔서 “돌아왔어요.” 하니까 “만나면 혼쭐을 내 줘야지…….” 웃음어린 목소리엔 은은한 따스함이 묻어난다. 회장님은 시몬의 대부님이시다.
2019년 9월 29일 일요일 날씨 한 여름처럼 덥고 해가 뜨거움
제4회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대전 교구이사회 주최한
{한마음 사랑나눔 걷기축제} 및 ***연중 26주일(이민자의 날) 야외 미사
오늘 행사가 유성 갑천 변에서 해서 평소보다 30분 일찍 9시 쯤 회장님이 오셨다. 화장님은 작년까지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빈첸시오 대전 지회 회장님이시었다. 회장님도 오늘이 빈첸시오회 행사여서 기분이 좋으신 듯하다. 차를 타고 갑천 변으로 가는 동안 하늘은 유리알처럼 맑았다. 차에서 시몬에게 지난 8일 주일날처럼 누군가 와서 같이 가자고 하면 우리에게 얘기하고 가라고 강조하셨다. 지난번에 시몬 찾느라고 심적으로 많이 힘드셨나보다
어느새 갑천변 광장에 도착했다. 작년하고 똑 같이 잔디밭에 무대를 중심으로 반원을 그리며 흰색 그늘막이 처 있었다. 흰색 그늘 막 밑엔 테이블과 의자들이 있어 우리 자릴 찾아 앉았다. 자리에 앉아 있는데 베드로님, 라파엘님, 요안나님이 약간 늦게 오셨다. 먼전 오신 요안 보스코님이 차에서 내리는 시몬을 보자마자 지난번 사라졌던 이야기를 하시며 다신 그러지 말라고 하셨다. 그 날 등에 땀이 흥건하게 시몬을 찾아 다녔던 요안 보스코님이 떠오른다. 클라라님도 시몬에게 같은 말을 하셨다. 그 날(지난 8일 주일) 식당에게 2시간 넘게 사라진 시몬 때문에 애타하시는 모습이 지금도 먹먹하게 그려진다. 우리 성당 빈첸시오 회원 모두 사라진 시몬 때문에 걱정하시고 마음고생 많이 하셨다.
오늘은 미사를 오전에 하지 않고 행사 끝나고 파견 미사로 한단다. 오늘 행사는 오전엔 작년하고 같이 유림공원을 반환점으로 왕복 7km 걷기 운동하고, 점심 먹고 레크레이션 게임과 노래자랑 순으로 짜여져 있었다. 간단한 준비운동을 하고 걷기 운동이 출발했다. 가을 하늘과 잘 어울리는 우리 옷을 입은 풍물패가 먼저 길놀이하고, 난 요안 보스코님과 맨 앞에서 걷기 운동을 시작했다.
요안 보스코님은 육중한 내 휠체어를 밀고 경쾌하게 경보하는 사람처럼 빠르게 나아간다. 길은 조깅 코스라 울퉁불퉁하지도 않고, 언덕도 없고 평탄한 길이었다. 갑천 변을 끼고 도는 코스라서 강물도 볼 수 있어 좋다. 요안 보스코님은 천천히 걷는 것보다 빠르게 걷는 것이 편하다고 나를 빠르게 밀고 가신다. 그래서 우리 앞엔 중학생 쯤 되 보이는 아이 한 명 밖에 없었다.
나는 이렇게 휠체어 타고 도시를 달리는 게 좋다.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는 나에겐 정말 즐거운 기회다. 지난 2회 땐 유흥식 라자로 주교님께서 밀어주시는 영광도 누렸었다. 이렇게 맑은 초 가을날 안정감 있는 길을 간다는 건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처음엔 햇살은 약간 뜨겁지만 오전이라 그렇게 많이 덥지 않았다. 한참을 가다가 앞서가는 학생과 같이 걷게 되었다. 학생은 초등학교 6학년이라 하고 나를 보더니 언제 장애를 얻었냐고? 물어봐서 내가 갓난아기 때 열 경기로 인해 장애가 왔다는 얘기를 하면서 같이 걷다가 학생은 먼저 앞서 갔다.
날이 점점 더워져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아침 먹고 나서 얼굴 전체에 선크림을 잔뜩 발랐는데 이마에 바른 선크림이 땀과 함께 눈에 들어가 눈이 따갑고 눈물이 났다. 요안 보스코님이 선크림은 눈 아래쪽으로만 바르는 거라고 가르쳐 주셨다. 반환점에서 마주한 전동 휠체어를 타고 온 교우들, 반환점에서 손등에 도장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교차한 다른 성당 교우들과 우리 일행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두 번째로 들어왔다.
우리 자리로 돌아와서 물에 적신 요안 보스코님 손수건과 화장지로 눈을 닦았더니 따가웠던 눈이 괜찮아졌다. 돌아오는 길에 베드로님과 같이 가는 야고보를 만나고, 사도요한 회장님과 클라라님을 부부를 끌고 가는 시몬을 보고, 그리고 라파엘님, 요안나님 부부와 함께 출발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다리 밑 그늘에서 즐거움을 나누는 수산나와 필립보도 보았다. 모두가 하느님 안에서 평화스런 모습이었다.
드디어 점심시간이 되었다. 점심도 작년 같이 밥차가 왔다. 내 먹성을 잘 아시는 요안 보스코님이 점심을 접시에 고봉으로 담아 오셨다. 그런데 우리에게 배정된 테이블이 없었다. 바로 옆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게 됐다. 나를 정면으로 보며 식사하는 할아버지가 인상을 험악하게 쓰며 혼자말로 “우리 일행 자리데, 우리 일행이 곧 올 건데, 우리 자릴 다 차지하고......”라는 말을 계속 해되다. 식사하는 날 정면으로 꼬나보는 할아버지 눈초리 때문에 밥을 재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더운 날씨에 밥을 많이 먹으면 안 좋을 것 같아 밥을 반만 먹었다.
점심 먹고 레크레이션 게임과 노래자랑이 시작되었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라는 각설이 타령 가사처럼 작년에 구수한 충청도 입담으로 사회를 맛스럽게 보신 입장 성당 형제님이 또 다시 사회를 보셨다. 재미있게 진행되는 가운데 필립보하고 시몬이 풍선 터트리기에 나가서 1등 해서 상을 탔다. 우리 원에서 레크레이션을 많이 해서 1등을 한 것 같다. 야고보도 노래자랑에 나서가 상을 탔다. 노래자랑 중간에 라파엘님, 요안나님, 요안 보스코님은 우리성당 일로 먼저 가셨다. 노래자랑 막바지에 황규철 사도요한 회장님이 마지막 봉사로 빈첸시오 전국 회장에 출마하시겠다고 하셨다. 결과가 좋게 나왔으면 좋겠다. 내게도 노래자랑 끝나고 걷기 운동 2등으로 들어왔다고 회장님과 나가서 인증 사진 찍고 상을 줬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사가 시작되었다. 미사 시간이 오후 3시라서 가까운 곳에서 행사를 하는지 대중가요 소리가 들려서 미사에 방해가 됐다. 내 생각엔 오전에 미사 들리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복음은 가난하고 병든 라자로 이야기였다. 오늘 여기 모인 빈체시오 회원님들 가난하고 힘들어 하는 이들과 항상 같이 가는 삶을 사셔서 부자처럼 저승에 떨어지진 않을 것이다. 신부님 강론도 같은 취지의 말씀이었다. 부자가 가난하고 병든 라자로를 도와주지 않고 모른 체 했기 때문에 불길 속 저승에 간 것이라고......
미사 마치고 신부님과 오늘 축일 맞은 신자들이 케이크를 앞에 놓고 축하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느 자매님 축일 케이크 우리들 가지고 가라고 주셨다. 고맙게 잘 먹겠다고 인사했다. 요양원에 돌아오니 5시 다 되었다. 오늘 행사에서 받은 상품은 컵과 접시였다. 저녁 먹고 늦게 먹은 축일 케이크는 부드럽고 내가 좋아하는 담백한 맛이었다. 점심을 대충 먹어서 그런지 더 맛있었다. 오늘 하루는 하느님 곁에 폭 안기는 꿈결 같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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