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시인이자 학자였던 유우석(劉禹錫, 772∼-842)은 유배를 당해 누추하고 궁벽한 곳으로 좌천이 되자, 누추해도 그 곳에 사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장소의 품격이 달라진다며 “산이 높아야 명산이냐山不在高, 신선이 살아야 명산이지有仙則名. 물이 깊어야 신령 스럽느냐水不在深, 용이 살아야 신령스럽지有龍則靈”1)라는 글로 자신을 위로하였답니다.
이는 높은 산도 좋지만 신선이 산다니 그 산이 더 좋고, 저 연못도 물이 깊어 좋지만 용이 산다니 더 좋다는 뜻으로, 절에 가는 발걸음이 부처님도 좋지만 그 절에 잘 생긴 스님이 있으면 더 좋다는 말인 것 같습니다. 이렇듯 겉만 번질 하고 허울만 좋아 앙꼬(팥소) 없는 찐빵 같은 것을 빗대어 항간에는 “칼국수에 칼이 없고, 붕어빵에 붕어가 없고, 자갈치에 갈치 없고, 쥐포에 쥐가 없고, 수제비에 제비가 없고, 사자평엔 사자가 없고, 방어진엔 방어가 없고, 고래밥엔 고래가 없더라”는 말이 떠돌게 된 것입니다. 오늘은 울산 고래 고기 이야기를 잠시 해 보려고 합니다.
고래 중에 가장 고귀하신 몸으로 어쩌면 본적을 우리 울산에 두고 있는 귀신고래는 포경선이 나타나면 귀신처럼 달아난다 해서 얻은 이름이라는데, 이 귀신고래가 울산 사람들의 심성을 닮아 부부 금실도 아주 좋답니다. 암놈이 죽으면 수놈이 곁을 지키고, 새끼가 죽으면 아비의 아픈 심정을 가누지를 못하고 곁을 빙빙 돌다 그만 바보처럼 붙잡히고 만답니다. 이 귀신고래가 국내에서는 50여 년간 자취를 감추고 보이지 않더니만 저 멀리 멕시코 서부 해역에서 얼마 전에 발견됐다고 미국의 MSNBC가 떠들썩하게 보도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한국계 귀신고래라고 명명한 저 귀한 몸은 지구상에 백서른 마리 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아 비상한 주목을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가운데 동해바다에 고래가 많아 졌다고 정부가 최근 국제포경위원회(IWC)에다 우리 연안의 과학적 조사목적으로 고래잡이를 좀 하겠다고 하자, 울산 장생포에서는 포경업이 살아나고 고래 고기 장사도 흥성할 것이라고 환영하는 가하면 이를 반대하는 환경단체들로 떠들썩합니다. IWC가 1986년부터 멸종위기 고래에 대한 포경을 금지한 이후 동해에 고래가 늘어나 어업 피해가 크다고 하는 것은 어민들의 주장이지만, 속내는 다른 데 있어 보여 모처럼 살려 놓은 ‘고래문화’가 우리 울산 미래를 볼 때 이익이 될지 손해가 될지 궁금합니다.
드라마 ‘대장금’에도 장금이가 궁중 조리사(熟手)에게 “고래 고기 맛이 어떤 맛이냐”고 묻자 “쇠고기와 정말 비슷하다”고 답할 정도로 고래 고기 맛은 열두 가지 맛을 낼 만큼 일품이지요. 옛날 시장 좌판에서 친구들과 소주 한 잔과 굵은 소금에 찍어 먹는 그 고래 고기 한 모탈의 맛은 어디다 비길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포항에는 큰일 할 때 두투라는 고기가 없으면 안 되었고, 울산엔 오베기가 없으면 안 되었다”는 말처럼 울산은 그야말로 오래 동안 고래냄새가 확실히 베인 도시인 건 만은 사실입니다.
그 옛날 울산은 고래천지였던지 태화강을 타고 반구대까지 오르고 내렸던 그림을 보면, 정말로 그 시절 울산은‘물 반, 고래 반’ 이였던 모양입니다. 반구대 암각화에 보이는 68마리 짐승 중 43마리의 고래가 그것을 증명하고도 남지 않습니까. 그래서 지금도 울산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고래박물관을 세워 놓고 고래를 높이 모시는 가하면, 고래페스티벌 판을 열어 온갖 세상 고래를 다 초청하는 것을 볼 때, 당연 고래는 울산 사람들이 받들어 온 조상 이상의 의미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들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 고래잡이 허가가 떨어지면 아직도 녹 쓸지 않는 팔을 걷어붙이고 송창식의‘고래사냥’을 힘껏 목청 돋우며 작살을 울러 매고‘노인과 바다’의 꿈을 다시 꿔 볼 포수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도 장생포에서 국내 하나뿐인 고래탐사선을 타고 고래를 찾으러 다니는 일을 한다는 마지막 포수 김용필(72)씨는 그 때 무용담을 어제 일처럼 신나게 회상하고 있습니다. “작살이 고래 등에 꽉 꽂히면 네 가닥 갈퀴가 우산처럼 쫙 펴지지요, 그땐 제아무리 힘센 놈이라도 소용없지요, 작살이 당최 빠지질 않으니까요. 우리는 작살 밧줄만 놓치지 않으면 잡고 말지요. 길어도 30분이면 그놈은 지쳐서 항복합니다. 한창때는 포를 쏘면 열에 아홉은 어김없이 명중했습니다.”
그에 의하면 당시 장생포에서“고래 배 포수 할래? 울산군수 할래?”물으면 “고래 배 포수 하겠다”말할 정도로 인기가 대단했고, “당시 참고래 한마리가 쌀 300가마 값어치가 나갔으니 큰돈 만지려고 포경선으로 많이들 몰려들었다”며 그것이“70년대 들어 고래 고기가 일본으로 수출되자‘장생포 개도 만 원 짜리 물고 다닐 정도’로 경기가 좋았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동물인 고래가 숨을 한번 쉬러 바다 위로 올라오는 그 짤막한 찰나를 놓치지 않고 작살을 꽂아 넣는 고래잡이는 당시 포수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향수이고, 지금도 다시 할 수만 있다면 대장부 일대사의 혈투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산이 높아야 명산이 아니고, 신선이 살아야 명산이고. 물이 깊어야 신령스러운 게 아니고, 용이 살아야 신령스럽다” 하였듯이 울산이 울산인 것은 울산 바다에 고래가 벌떡벌떡 뛰며 기운을 불어 넣어 줘야 울산이라 생각이 듭니다. 남으로는 부산, 북으론 경주, 서로는 영남 알프스, 동으론‘신화처럼 뛰노는 예쁜 고래 한 마리씩’을 커가는 우리 자식새끼들에게 안겨 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간밤에 꾸었던 꿈의 세계는 아침에 일어나면 잊혀 지지만, 그래도 생각나는 내 꿈 하나는 조그만 예쁜 고래 한 마리,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우리의 사랑이 깨진다 해도, 모든 것을 한꺼번에 잃는다 해도, 모두들 가슴속에 뚜렷이 있다, 한 마리 예쁜 고래 하나가, 자 떠나자 동해 바다로 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 잡으러 -어-어-어, 에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