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첫째 아이가 입학한 중학교에 다녀왔다. 며칠 동안 갈지 말지 망설였고 그냥 전화로 상담할까, 못 간다는 위임장을 써 보낼까 하는 다양한 상황을 머리에 그려가며 고민했다. 이번만 남편에게 부탁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말하려다 말기를 여러 번. 그러다 결국은 가기 싫은 마음을 다잡고 일하다 외출을 달고 학교에 다녀왔다. ‘벌써 6년 넘게 하는 일인데 못할 것도 없지. 중학교라고 뭐가 다를까? ’ 하며 당당하게 간 것은 아니다. 이번만은 그토록 하기 싫은 일이었는데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한 것은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에 있는 “내 삶에서 일어난 일을 끝까지 고개 돌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쓴다는” 문장을 마음에 꾸욱 저장해 두었기 때문이다.
그 날 큰 아이의 학교에 간 것은 개별화교육회의를 하기 위해서이다. 우리 첫째 아이 서우는 특수교육 대상자이다. 특수교육 대상자가 된 것은 자폐스펙트럼 장애, 흔히 아스퍼거 증후군이라 불리는 증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해마다 서우가 새 학년으로 올라가면 담임선생님께 장문의 편지를 쓰고, 상담을 가서 서우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야 하며 일 년 잘 보살펴달라는 간절한 부탁을 해야 한다. 올 해는 특히 중학교에 입학해서 나도 더 긴장을 했고 친하지는 않지만 아는 분들도 있어서 혹시 마주치진 않을까 걱정을 하며 가기 전부터 안절부절했다.
서우가 남들과 뭔가 다르다는 말을 들은 것은 어린이집을 보낸 지 1년이 지난 4살 때였다. 당시 어린이집 선생님과의 상담을 통해 서우가 의사소통이 또래에 비해 잘 안되고, 집중력이 굉장히 짧으며 공격적인 성향까지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처음에는 아직 어린아이인데 과연 선생님이 바라본 눈이 정확할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엄마인 내가 그 느낌을 받지 못한 것은 아니었기에 신중히 듣고 주변 기관들을 검색해 가며 아이의 증상에 따른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서우가 자랄수록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고 다른 또래들과 발달 차이가 벌어졌다. 완벽하게 성인의 언어수준을 구사하고 또래들과 잘 어울리는 아이들을 바라보면 서우가 확실히 늦고 다르구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초등학교 들어가는 해의 2월, 어렵게 예약을 하고 간 연세대 세브란스 소아정신과에서 종합심리검사를 비롯한 다양한 검사를 받았다. 처음 갔을 때 의사 선생님은 늦게 온 나를 질책했다. 진단도 안 받고 엄마의 판단대로 주변에서 검증이 안 되는 치료를 받으면 뭐하냐는 식이었다. 눈물이 났지만 꾹 참고 물었다.
“우리 아이 나중에는 나아지나요?”
선생님은 이때만은 조금은 측은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말했던 것 같다.
“나아진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점점 자라면서 희석이 될 수는 있어요.”
그렇게 그 곳에서 서우는 자폐스펙트럼 장애라는 진단을 받았다.
초등학교 입학하면서부터 서우는 그야말로 부적응 학생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의사선생님께서는 서우가 지능수준은 그래도 낮지 않으니 특수교육을 받을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 당시 다니던 센터 선생님들께서도 서우는 일반학급의 학생들 사이에서 배워야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조금은 안심을 하고 일반 학급으로 입학을 시켰는데 그 것은 그야말로 나의 꿈이었다. 매일매일 학교에서 걸려 온 전화가 노이로제가 되어 나를 괴롭혔고 매번 죄송하다고 조아리는 나는 점점 위축되어만 갔다.
사실 매번 사람들에게 사과하면서 점점 작아지는 것은 그 때 처음 경험한 일은 아니었다. 어린이집 엄마들이 서우의 이야기를 듣고 뒤에서 자주 수군거렸다는 소리를 들었고, 서우를 뺀 여아들과 엄마들이 같이 놀러간 것을 보며 소외감도 자주 느꼈다. 서우가 태권도 학원을 잠깐 다닐 때 같은 원에 다니는 아이를 민 적이 있었는데 아이 엄마에게 사과를 하고 집에 초대를 했지만 거절을 당했고 길을 갈 때마다 나를 모른 채 해서 민망했던 적도 있었다. 그 중에서 제일 충격을 받은 것은 오랫동안 친분이 있어 나를 종종 위로해준 엄마가 다른 엄마에게 가서는 서우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사과 받으라고 종용한 사실을 알았을 때이다.(그 때 오히려 다른 아이 엄마는 그냥 이해하고 넘어가 주었다.) 서로 차도 마시고 선물도 주고받던 사이라 서우와 나를 이해해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나만의 착각이었나 싶어 슬프고도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서우 엄마로서 나는 서우와 함께 점점 이 세상에서 작아져만 갔다. 글쓰기 상담소에 실린 ‘아이와 함께 있을 때 나는 곧잘 주눅 들고 위축됐다. 지하철과 버스와 공원에서, 내 아이로 인해 비장애인들이 불편할까 봐 눈치를 보고 미안해했다. 타인들 속에 있을 때, 자꾸 아이를 숨기고 싶었다.’ 라고 고백한 어느 학인의 글에 포스트 잇을 붙이고 한참을 울었다. 내 모습이 바로 그대로 표현된 문장을 바라보니 목이 메어 왔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 코로나가 터지면서 세상이 멈추고 학교가 멈추자 솔직히 처음에는 더 이상 세상에 의무적으로 나가려고 애쓰지 않아서 편했다. 돌아다니지 않고 집에서만 지내면서 서우를 다른 이들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하지만 결코 그 시간은 서우에게 좋은 시간은 아니었다. 점점 더 집에서 나가지 않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세상과 벽을 쌓아가는 것만 같아 덜컥 겁이 났다. 허겁지겁 나는 의사 선생님께 사정을 말하고 특수교육 대상자로 선정해달라는 소견서를 써 달라고 부탁했다.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했고, 학교의 도움으로 교육청에 가서 절차를 밟아 5학년을 올라가는 봄, 특수교육 대상자가 되었다.
서우가 특수교육 대상자로 쉽게 선정될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학교에서도 서우가 심각하지 않아서 안 될 수도 있다고 했고 교육청 담당자도, 거기서 또 의뢰한 기관의 담당자도 갸우뚱하던 모습을 비치기도 했다. 언뜻 서우를 보면 평범하고 심지어 모범적인 모습까지 보이는 학생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엄마인 나도 부디, 제발 그렇게 비치기만 해다오 수없이 빌기도 했다. 하지만 안다. 서우가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같은 속도로 배우고 성장하기에는 느린 아이라는 것을. 20년 동안 중학교에서 근무하며 아이들을 많이 보아 왔기에 진단서에 찍힌 장애명을 확인하지 않아도 일반 아이들과는 서우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보통의 학생들과는 다른 서우의 특징을, 서우의 세계를 받아들인다.(받아들이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지만 말이다.)
받아들이고 인정한다고 해서 내 아이를 세상에 다 공개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이제야 겨우 친한 친구와 지인들, 동료에게 오픈을 했고, 시댁에도 진단 받고도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말을 했다. 서우가 중학교에 입학해서 내가 더 긴장한 것도 내가 근무한 학교와 가까워서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창피한 마음이라기 보단 내가 그들에게 서우의 스토리를, 느린 아이를 기르는 부모의 마음을, 어려움을 다 풀어 설명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애써 담담한 척 웃으며 말하다 결국 눈에 촉촉이 맺어지는 눈물을 피할 도리가 없다.
며칠 동안 서우에 대해 먼저 쓰고자 결심을 하며 눈물을 많이 흘렸다. ‘무거운 시간을 충분히 가진 무른 땅은 그제야 빨대를 통해 물을 내뱉는다.’, ‘이번에 빨대를 제대로 꽂았구나’ 하며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는 학인의 문장처럼 내 마음에 그 동안 담았 두었던 아픔을 많이 퍼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아직도 물이 많이 빠져 나가있지 못한 무른 상태이다. 이번 글쓰기 수업동안 얼마나 더 많은 물이 빠져 나갈지 잘 모르겠다. ‘마음껏 물을 내보내기로 한다’는 학인처럼 과연 나도 용기있게 물을 내보낼 수 있을까.
이번 책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에 밑줄을 긋고 마음에 담아두었다. 그 중 은유님께서 ’어떤 일도 일어나는 게 삶이다’라고 말한 부분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 내가 잘못 해서가 아니라, 내가 어리석어서가 아니라….그냥 삶이 그런 것이구나......’ 덕분에 그 동안 서우를 키우며 자책하고 슬퍼하던 내 마음의 소용돌이가 많이 가라 앉았다. 물론 시시각각 현실에서는 잔소리쟁이, 버럭쟁이 엄마이지만 서우에 대한 마음 속 무거운 추를 많이 내려 놓았다.
현실을 회피하지 말고, 떳떳하게 고개를 들고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하자고 다짐을 하며 서우의 중학교를 방문한 그 날, 얼마나 당당해 보였는지 회의를 마치고 교무실을 나와 운동장을 걷는 나에게 하교하는 중학생들이 자기 학교 선생님인 줄 알고 인사를 한다. 또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 인사를 받아 주었다. 친구와 신나게 축구하며 인사를 하다 ‘근데 누구야’ 하며 서로 묻는 아이들을 보고 피식 웃음을 지으며 생각했다. ‘그 동안 걱정만 하느라 서우에게 중학교 생활을 즐겁고 신나게 하라고 응원 한 번 해주지 못했구나…….’ 이제부터라도 걱정 반, 잔소리 반의 말을 줄이고 응원의 말을 많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서우가 서우처럼 사는 것도 그냥 자연스러운 삶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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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 감사해요. 사실 쪼그라진 나를 보면 내가 부모 맞나 이런 감정에 시달려 의욕이 사라질 때도 종종 있어요. 하지만 조금씩 회복하려구요. 하나씩 마주보고 해결하고 가면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엄마가 되어갈 거라 믿어 볼래요.
우주진주님 뵈었을 때 이미 너무 당당하시고 멋지시던 걸요. '자기 학교 선생님인 줄 알고 인사를 한다. 아주 자연스럽게 그 인사를 받아주었다.'에서 빵 터졌어요. 첫째 아이의 자연스러운 삶도 현재 이어지고 있을 거예요. 응원합니다.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더 당당해 보이려고 애쓰고 있는건 아닌가 싶어요. 첫째 아이 이야기 읽어주시고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맘고생, 몸고생이 얼마나 심하셨을지 짐작조차 안 되네요. 담담하게 적어주신 글을 읽으며 자식 키우는 엄마로서 진심을 다해 응원하고 싶었습니다. 애쓰셨어요. 10기 학인들과 읽고 쓰면서 힘을 얻으셨으면 좋겠네요. 잘 읽었습니다.
아이를 키운다는게 이렇게 심오하고 큰 일이라는걸 왜 몰랐을까요;;^^ 첫째 아이를 통해 인생에서 겸손과 감사를 배우고 있어요. 응원해 주신 마음 잘 간직할게요. 감사합니다.
제가 겪어보지 못한걸 어느 정도 이해한다 쉽게 말할수는 없겠죠.
하지만 보여주신 글을 통해, 세상을 대하는 제 시야가 더 넓어진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응원합니다. 우리의 생각을 또 나누어요.
내일 만나요. 잘 읽었습니다.
팬 이예요 ^^
팬님의 시야가 조금 더 넓어지셨다니 제가 더 감사해요^^ 이번 글쓰기 기간동안 많은 생각을 나누고 저도 시야를 더 넓히고 싶어요. 참 막걸리 너무 좋아합니다. (한동안 매일 반 병씩..)
땅에 빨대 꽂는 글을 응원하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해요. 좀더 빨대로 물을 많이 퍼내야할 듯해요~ 그런 다음 좀더 단단해지길 기대해 봅니다. 물결님도 응원합니다.
서우의 자연스러운 삶을 인정하게 되셨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우주진주의 긍정적인 영향력이 글 밖에까지 미치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문단 너무 좋아요 ^^
인정 한다고선 한번씩 혼내고 훈계하는 제 모습이 싫을때가 있어요. 혼내고 자괴감에 빠지는 날도 있고 마음 아플때도 있고..좀더 제가 단단해져야겠다는 마음을 품어요.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오늘이 되자고 다짐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글 속의 많은 표현들이 와 닿았습니다. 글 속 화자의 무른 땅으로부터 흘러 나올 많은 이야기들을 기대합니다. 나아가 단단하게 다져진 땅에서 피어날 이야기들도 함께 기대합니다.
아이들이 예뻐서 시작한 일입니다. 처음에는 비교적 단순한 마음이었어요. 내 손길이 더 필요한 아이들을 살피며 덜 필요한 아이들도 놓치지 않아야하죠. 하지만 문제는 꼭 일어나요. 그럴때마다 좌절하고 울기도하고 항의하고 덤비기도 합니다. 잃어버린 아이를 찾아서 울면서 어두운 빈교실을 하나하나 뒤졌던 기억도 납니다. 그런데 슬퍼진 마음을 아이한테 다시 위로 받습니다. 이 아이가 문제를 일으켰는데 이 아이가 안아줘요. 아무일도 없었던듯이요. 빙그레 웃어주기도 하죠. 아이들은 힘이 있죠.
감히 내가 부모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못합니다. 하지만 부모가 걱정하는 그 아이가 저같은 어른을 안아주고 위로해줍니다. 일하는 동안 비정규직 근로자로 당했던 은근한 무시나 교사가 아니어서 특수교육실무사여서 그냥 저를 제끼던 학부모도 있었어요. 하지만 교실로 들어가는 순간 싹 없어지더라고요. 아이들이 저에게 물어봐주고 위로해주고 안아줍니다. 물론 그런행동조차 힘든 친구도 있겠지만 힘든 친구들은 그 친구대로 다른 역할들이 있죠. 아이들은 우리생각보다 잘 해내요. 서로를 챙기죠.
작년 어떤 학부모가 물었어요. '우리아이가 고등학교 가서도 잘할수 있을까요' 라고요. 제 대답이 바로
안나왔어요. 그게 지금까지 마음에 걸립니다.
그 아이가 잘할수 없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같이 아이의 속도를 기다려주고 이해하려는 어른들도 많구요. 잘 몰랐지만 이제부터라도 장애를 이해해보겠어 하는 어른들도 많아요, 거기까지 안가더라도 변화해 보겠어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게 선봉에서 몸을 부딪혀 싸우는 사람들도(장애인+비장애인) 있잖아요. 그리고 가장 중요한거, 이 아이가 가진 힘도 있구요. 그러니 어머니 우리 한번 걸어봅시다! 이런말을 했어야 하는데요.
감히 힘내라고도 못합니다. 얼마나 울었을지 알기때문에요. 하지만 잊지마세요. 세상을 바꿔나가려는 어른들이 친구를 차별없이 보려는 청소년들도 많아지고 있어요. 그렇게 노력하는 사람들이, 바로 서려는 사람들이 일단 이곳, 메타포라에 모였으니까요.
제가 우주진주를 여기서 만난 이유가 있었군요. 이런말을 꼭 전하려고.. 이것은 운명,데스티니~
아 ..여정과의 만남이 이리 연결되어있었던군요.
우리들의 삶은 이토록 다 연결이 되어 있는거라니..새삼 또 놀라요. 첫날 소개글에서 속상해했던여정의 마음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거 같아요. 아이들을 사랑하고 위로하고 ..또 위로 받을 수 있는 마음을 지닌 여정님 같은 분이 제 아이 곁에 또 도움이 필요한 많은 아이들 곁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쉽지 않았을 이야기 댓글로 달아줘서 정말 고마워요. 덕분에 저도 또 힘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