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두(Fado) - 여인들의 기약 없는 기다림이 낳은 노래
대항해 시대, 바다는 동경의 대상이자 바다로 떠난 사람들을 기다리는 '그리움'이기도 했다. 이러한 그리움의 정서가 포르투갈인들의 아픔과 한을 만나 파두라는 음악으로 표현되었다. 파두에는 12현 기타가 필수로, 이 기타 소리는 구슬픈 가수의 목소리와 어우러져 경건하고 서정적인 울림을 만들어 낸다. 파두 하면 아말리아 로드리게스(Amalia Rodrigues)가 영화 <과거를 가진 애정(Les amants du Tage), 1955년 프랑스 영화, 아말리아 로드리게스 출연)>에서 열창한 '검은 돛배(Barco Negro)'가 가장 유명한데, 우리나라에서도 1980년대 방영한 MBC 드라마 <사랑과 야망>에서 여주인공의 테마곡으로 사용되며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
다. 파두는 수도이자 항구도시인 리스본 번화가에서 많이 불리는 민중적인 노래이다. 이 노래가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다듬어진 것은 19세기 전반으로 추정된다. 그 기원에 관해서도 뱃사람의 노래, 죄수의 노래, 어떤 종류의 민요에서 파생된 노래, 브라질이나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노래라는 등의 갖가지 설이 있다. 그러나 음악학적·역사적으로 보아 거의 확실한 것은 1800년 전후에 포르투갈과 브라질에서 크게 유행했던 도시풍이면서도 감상적인 노래 <모디냐(modinha)>와 경쾌한 춤 노래 <룬두(lundú)>가 이 노래의 발생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운명·숙명의 뜻을 지닌 파두는 리스본 민중의 삶을 노래한 민요로서 언제 들어도 구
슬프고 서정적이다. 특히 파두 트리스테(fado triste)와 파두 메노(fado menor)라 불리는 고전적인 곡조는 가슴속 깊이 와닿는 애조를 띤다. 2박자·4박자의 단순한 것이 대부분이며 조성(調性)은 단조가 많고, 장·단조 모두 화성 구조는 복잡하지 않다. 그러나 미묘한 싱커페이션(syncopation; 선율이 진행 중에 센박이 여린박, 여린박이 센박이 되어 셈여림의 위치가 바뀌는 일. 당김음)과 섬세한 가락으로 되어 있어 가수의 노래 솜씨에 따라 매우 풍부한 정취를 느끼게 한다. 파두의
가수들(여성이 많다)은 보통 '파두의 집(casa do fado)'으로 불리는 레스토랑을 무대로 노래 부른다. 반주는 옛날부터 포르투갈 기타 1, 스패니시 기타 1로 정해져 있으므로 극장 등에서 노래할 때에는 반주자를 더 늘린다. 포르투갈 북부의 교육도시 코임브라에서 불리는 파두는 파두 다 코임브라(Coimbra)라고 하며, 리스본의 파두와는 달리 세레나데(Serenade)와 같은 평온하고 밝은 멋을 풍긴다.
Amália Rodrigues - Amalia (아말리아, 1920 ~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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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아말리아
Amália
나는 신에게 그것이 내 이름이기를 바란다
quiz Deus que fosse o meu nome
아말리아
Amália
내 생각엔 당신이 재미있어 보이는 것 같아요
acho-lhe um jeito engraçado
글쎄 우리의 것과 인기있는
bem nosso e popular
누군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리면
quando oiço alguém gritar
아말리아
Amália
노래 불러줘 파두
canta-me o fado
아말리아
Amália
이 말이 나에게 가르쳐줬어
esta palavra ensinou-me
아말리아
Amália
인생에서 사랑해야 해
tu tens na vida que amar
주님의 명령이다
são ordens do Senhor
사랑이 없는 아말리아
Amália sem amor
상관없어, 네가 좋아해야 해
não liga, tens de gostar
그리고 어떻게 죽을까
e como até morrer
사랑한다는 것은 고통받는 것이다
amar é padecer
Amália가 노래를 부르며 울어요!
Amália chora a cantar!
아말리아
Amália
누군가 나에게 다정하게 말했어
disse-me alguém com ternura
아말리아
Amália
가장 아름다운 방법으로
da mais bonita maneira
그리고 난 진심이야
e eu toda coração
그때 들은 줄 알았는데
julguei ouvir então
아말리아가 처음으로
Amália p'la vez primeira
아말리아
Amália
당신은 지금 찾고 있습니다
andas agora à procura
아말리아
Amália
그 사랑을 받았으나 믿음이 없이
daquele amor mas sem fé
누군가가 이미 나에게서 그것을 가져갔어
alguém já mo tirou
누군가가 그를 발견했어요
alguém o encontrou
다른 사람이 발 밑에 있는 거리에서
na rua com a outra ao pé
그리고 누가 나에 대해 말해주나요?
e a quem lhe fala em mim
그냥 이렇게 대답해
já só responde assim
아말리아?
Amália?
나는 그것이 누구인지 모른다!
não sei quem é!
12개의 현으로 이루어져있고 가수의 구슬픈 목소리와 잘 어울리는 소리를 낸다. 기타와 비슷하지만 훨씬 매력적인 소리를 가지고 있다.
아말리아 로드리게스(Amalia Rodrigues)
본명: 아말리아 다 피에다로 헤보르당 호드리게스
출생: 1920. 7, 포르투갈 리스본
사망: 1999. 10(79세) 포르투갈 리스본
직업: 가수, 배우
장르: 파두(Fado)
악기: 보컬, 기타
활동 시기: 1939년(19세) ~ 1999년
레이블: 발렌팅 드 카르발류(Valentim de Carvalho), EMI, 컬럼비아
포르투갈의 파두가수 겸 배우이다. 파두의 왕( Rainha do Fado)으로도 불린다. 20세기 파두의 부활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가수 활동을 하는 50년 동안 파두계에서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하나였다. 지금도 상징적 인물로서, 아말리아 로드리게스는 파두와 다른 대중음악 장르 안에서 마드르데우스, 둘스 폰투스, 마지라 등 여러 음악가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대표곡은 <검은 배>(Barco Negro)로, 1954년에 녹음되어 프랑스 영화 <과거를 가진 애정>에 등장했다. 1920년 7월 23일 리스본 페냐구 르아 마틴버스에서 태어난 아말리아는 항만청의 노무자로 일하던 아버지와 직업 안정소에 나가는 어머니, 그리고
가난한 형제들이 많은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말리아는 어린 시절 항구 선원들을 상대로 오렌지를 팔았으며, 그 당시 소심하고 용모도 볼품없었던 그녀지만 아름다운 가성이 호평을 받아 ‘꾀꼬리 아가씨’로 불렸다. 그녀가 17세 되던 6월의 어느 날, 그녀의 노래에 유심히 귀를 기울이던 이웃집 구둣방 아저씨의 권유로 샌안토니오 축제(San Antonio Festival)에 나가 노래자랑 대회에서 우승한 것이 그녀의 운명을 뒤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축제로 광장을 가득 메운 리스본 시민들 사이에 아말리아의 노랫소리가 드높이 울려 퍼졌고 그렇게 해서 리스본의 알칸타 거리는 포르투갈 최고의 파두 가수를 세상에 내놓게 된 것이다. 아말리아의 출현은
파두 음악사에 새로운 시대를 여는 사건이었고 포르투갈 국민들 사이에 그의 인기는 거의 전설적인 것이었다. 그러자 은행가, 목장주, 공무원 등에 의한 후원회가 생겼고 1940년엔 정식 가수로 데뷔했다. 스페인으로 가서 성공을 거둔 그녀는 이어 영국 런던을 방문했고, 1949년에는 처음으로 파리를 방문하여 샹젤리제 극장에서 성공리에 공연을 마쳤다. 이듬해인 1950년 포르투갈 국제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차지한 후 그녀의 이름이 널리 알려졌지만 그러나 아말리아 로드리게스라
는 이름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것은 1954년에 제작된 프랑스 애정영화 '과거를 지닌 애정(Les amants du Tage)' 이었다. 이 영화에서 그녀는 검은 드레스에 검은 숄로 몸을 감싸고 기도하듯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깊은 감정에 찬 소리로 <검은 돛배(Barco Negro)를 노래하는 장면은 이 영화를 보는 모든 이에게 감동적인 순간을 보여 주었으며, 이국적인 음악 파두에 흠뻑 젖도록 해 주었다. 이 곡은 곧 유럽에서 빅 히트 되었고 또한 세계에 알려져 아말리아는 슈퍼스타가 된 것이다.
Amalia rodrigues - Barco negro (검은 돛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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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
아침에 나는 당신이 나를 못생겼다고 생각할까봐 얼마나 무서웠습니까!
De manhã, que medo, que me achasses feia!
나는 잠에서 깨어나, 떨면서, 모래 위에 누워 있었다
Acordei, tremendo, deitada n'areia
하지만 그때 네 눈은 아니라고 말했어
Mas logo os teus olhos disseram que não
그리고 태양이 내 마음을 관통했습니다.
E o sol penetrou no meu coração
하지만 그때 네 눈은 아니라고 말했어
Mas logo os teus olhos disseram que não
그리고 태양이 내 마음을 관통했습니다.
E o sol penetrou no meu coração
그때 나는 바위 위에 십자가를 보았습니다.
Vi depois, numa rocha, uma cruz
그리고 당신의 검은 배는 빛 속에서 춤을 추었어요
E o teu barco negro dançava na luz
이미 풀린 돛 사이로 네 팔이 흔들리는 걸 봤어
Vi teu braço acenando, entre as velas já soltas
해변의 할머니들은 당신이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말해요
Dizem as velhas da praia, que não voltas
그들은 미쳤어
São louca
그들은 미쳤어
São loucas
나도 알아 내 사랑
Eu sei, meu amor
넌 떠나지도 못했다고
Que nem chegaste a partir
왜냐하면 내 주변의 모든 것이
Pois tudo, em meu redor
항상 나와 함께 있다고 말해줘
Me diz qu'estás sempre comigo
나도 알아 내 사랑
Eu sei, meu amor
넌 떠나지도 못했다고
Que nem chegaste a partir
왜냐하면 내 주변의 모든 것이
Pois tudo, em meu redor
항상 나와 함께 있다고 말해줘
Me diz qu'estás sempre comigo
창문에 모래를 던지는 바람에
No vento que lança areia nos vidros
노래하는 물 속에서, 죽어가는 불 속에서
Na água que canta, no fogo mortiço
따뜻한 침대 속, 텅 빈 벤치 위에
No calor do leito, nos bancos vazios
내 가슴 속엔 언제나 네가 있어
Dentro do meu peito, estás sempre comigo
따뜻한 침대 속, 텅 빈 벤치 위에
No calor do leito, nos bancos vazios
내 가슴 속엔 언제나 네가 있어
Dentro do meu peito, estás sempre comigo
아 아 아
Ah ah ah
나도 알아 내 사랑
Eu sei, meu amor
넌 떠나지도 못했다고
Que nem chegaste a partir
왜냐하면 내 주변의 모든 것이
Pois tudo, em meu redor
항상 나와 함께 있다고 말해줘
Me diz qu'estás sempre comigo
나도 알아 내 사랑
Eu sei, meu amor
넌 떠나지도 못했다고
Que nem chegaste a partir
왜냐하면 내 주변의 모든 것이
Pois tudo, em meu redor
언제나 그랬다고 말해줘
Me diz qu'estás sempre
나랑
Comigo
그 후에도 아말리아 로드리게스는 많은 곡을 발표하며 파두 가수의 최고봉을 군림했으며 그 때문에 파두는 단순한 포르투갈의 민속음악이 아닌 세계인의 음악이 되었다. 아말리아 로드리게스는 1999년 10월 6일 79세로 세상을 떠났다.
Maldicao(저주 or 어두운 숙명)
자신의 운명과 숙명에 대한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의 <malacao(어두운 숙명)="">이다.</malacao(어두운> 자원이 부족한 나라 포르투갈은 땅도 메말라서 바다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옛날 해양왕국이었다. 그들에 민족적 자체를 파두로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파두인지는 모르겠지만 Maldocao는 우리나라에서 특별히 인기를 얻었던 노래이다. Maldicao 역시 김수현 작가의 <사랑과 야망>에서 흘러나오면서 <검은 돛배>와 함께 세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우수와 향수가 깊이 서려 있는 포르투갈의 전통음악 파두(Fado)
포르투갈의 전통음악 '파두'(Fado)는 슬픈 운명의 음악이다. 파두의 어원은 '숙명'과 '운명'을 뜻하는 라틴어 '파툼'(Fatum)에서 유래됐고, 파두의 밑바탕에 드리운 '사우다드'(Saudade)는 우리의 '한'(恨)과 유사한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정서다.
* 우리나라 민요 `아리랑` 과 남도의 민속 음악(살풀이)과 많이 닮아 있는 것 같다
어느 바닷가 마을에 한 부부가 가난하지만 서로 사랑하며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고기잡이 떠난 남편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 이후 아내는 매일 바닷가에 나가 아득한 수평선을 바라보며,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의 눈에 수평선 너머로 무엇인가가 보였다. 그것은 분명 남편의 배였다. 오랜 기다림에 지칠 대로 지쳐버린 아내의 눈에 눈물이 돌았다.
점점 가까워져 오는 남편의 배. 그러나 그 배에는 검은 돛이 달려 있었다. 남편의 죽음을 상징적으로 의미하는 검은 돛이...
*- 검은 돛배
파두 - 파두는 복합문화의 산물이다. 유럽적인 것, 아랍적인 것, 아프리카적인 것과 브라질적인 요소가 혼합돼 있다. 파두는 이베리아반도의 문화 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아름다운 선율을 가진 로망쎄(Romance)의 전통과 8세기부터 12세기에 걸친 무어인의 지배의 영향을 받은 아랍적인 숙명관 그리고 식민지 교류로 인해 아프리카와 브라질에서 흘러 들어온 리듬이 혼합된 음악이다. 또한 스페인의 갈리시아 지방과 더불어 포르투갈은 기원전 8세기에 도래한 켈트인의 문화가 면
면히 흐르고 있는 곳이어서 파두에는 동양적인 신비주의를 느끼게 하는 켈트적인 요소들이 내재하고 있기도 하다. 파두의 전통적인 반주 악기-'기따라' 파두의 전통적인 반주 악기는 '포르투갈 기타'로 알려져 있다. 포르투갈어로는 'Guitarra Portuguesa' 또는 'Guitarra do Fado'라고 한다. 12개의 금속현으로 된 기타로 일반적으로 여섯 줄 기타와 함께 짝을 이뤄 연주된다. 파두 기타의 정확한 기원에 대해선 거의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무어인들이 이베리아반도를 지배했던 시기에 전해진 아랍 류트로부터 발전된 악기인 것으로 추측된다.\
파두의 두 갈래 - 리스본 파두와 코잉브라 파두
파두는 리스본의 Alfama 와 Mouraria 거리의 파두와 코잉브라의 로 특징 지워진다. 리스본 파두는 보다 서민 생활의 애환을 그리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반면 코잉브라의 파두는 유럽 최고의 대학이 설립된 코잉브라의 아카데믹하며 고대 대학도시의 전통들을 반영한 사랑의 세레나데가 중심이 되고 있으며 반드시 남성 가수에 의해 불리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한 파두와 민요의 전통이 혼합된 파두의 형태도 있는데 "파퓰러 파두(Popular Fado)"라고 불리운다. 파퓰러 파두는 표현되는 정서나 혼이 한결 가벼우며 종종 즉흥적인 연주로 이루어진다. 파두 가수를 Fadista라고 한다. 파디스타는 검은 의상을 입고 청중 앞에 선다. 파디스타의 뒤로는 연주자들이 자리하는데, 대개 일반적인 악기 편성은 두 대의 파두 기타와 한 대의 여섯 줄 기타 하나로 구성된다. 때로는 한 대의 기타 반주로 노래하기도 한다.
파두는 이렇게 최강의 해양대국에서 서유럽의 최빈국으로 전락한 포르투갈의 흥망성쇠, 그 자체인 음악으로 주로 불행한 사랑, 이별의 고통, 슬픈 운명을 노래하고 있는 멜랑꼴리한 노래이다.
Amalia Rodrigues (1920 – 1999)
파두(FADO)는 프랑스의 샹송이나 이탈리아의 칸쏘네와 같은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우수와 향수가 깊이 서려있는 월드뮤직의 한 장르입니다. 파두(Fado)는 "운명" 혹은 "숙명(Fatum)"을 뜻하며 포르투칼의 서정시 또는 뱃사람들의 노래 등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하지만, 당시 포르투칼의 식민지였던 브라질로 아프리카인들이 노예로 끌려가고 그 중 일부가 리스본으로 이주하게 되면서 포르투칼의 음악은 아프리카의 리듬, 정서와 교차하면서 발전적인 진화가 시작되었다는 쪽이 보다 설득력이 있습니다. 사실 파두(Fado)의 기원을 말하기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파두가 오랜 옛날의 포르투갈 서정시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하고 또는
뱃사람들이나 상상력이 풍부하고 명상에 잠기기 좋아하는 포르투갈 사람들이 읊었던 시에 파두의 기원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은 그들의 불안정한 삶이 그들을 이상주의자로 만들었으며 이로인해 그들은 자연히 시를 짓는 재능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읊는 시는 주로 운문조였으며, 그들 대부분은 즉석에서 되는대로 쉽게 시를 지을수 있었고 그것은 바다에 나가, 자신들의 조국을 그리며, 파두의 리듬에 맞춰 노래를 부르던 뱃사람들의 영혼에 대한 결과물이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파두의 기원이 '룬둠(lundum)'에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룬둠이란, 18세기 말에서 19세
기 초, 포르투갈과 브라질에서 대유행했던 아프리카 춤을 말하는데 리스본 항에서 배를 타고 바다로 향했던 뱃사람들이 다른 민족과 접촉하면서 서서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룬둠'과 '파두'를 전했다는게 그들의 얘기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기원을 갖고 있는 파두는 리스본 항구 근처에 있던 선술집 등에서 처음으로 불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선술집은 부랑인들이 모여 그들이 가지고 있는 아픔과 그리움을 나눌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파두는 선술집 뿐만이 아니라, 무도회장에서 그 시대 귀족들에 의해 불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쎄베라(Severa)라는 유명한 Fadista(파디스따: 파두를 부르는 사람, 파두 가수)가
있었는데 비미오주(o Conde de Vimioso)라는 귀족이 그녀와 그녀가 부르던 파두에 매료되어 후에는 그녀옆에서 기타를 연주하며 그녀를 따랐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녀가 죽은 후, 그는 귀족들의 무도회장에서 그녀대신 파두를 부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각기 다른 환경을 거쳐 이렇게 알려지게 된 파두는 오늘날 대부분 희미한 불빛 아래, 슬픔에 잠겨 있는 듯 고요한 분위기의 파두집에서 불려집니다. 파디스따의 목소리는 감미로운 기타와 비올라 선율과 함께, 감상에 젖어 파두에 취한 청중들을 한층 더 고요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포르투갈은 1640년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과 1974년 무혈 쿠테타로 인한 승리의 영광을 뒤로 한채 고단한
역사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런 침략과 압제의 역사 때문에 포르투갈의 음악 파두에는 슬프고 어두운 그늘이 숨어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포르투갈의 정서를 가르켜 사우다드(Saudade)라고 부릅니다. 사우다드는 갈망, 동경, 향수, 슬픔과 외로움이 겹겹이 쌓인 포르투갈 특유의 '한'을 이야기 합니다. 파두에서 베어나는 슬픔의 근원을 바로 이 사우다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파두가 슬픔 운명이란 뜻을 지닌'Fatum'이라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것도 이와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우다드의 정서에서 우리는 포르투갈의 민중 감정을 엿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세가지 문화권의 음악적 산물이 뒤섞인 예술양식으로 파두(Fad
o)를 보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우선 리듬은 아프리카로부터 수여받고, 감수성과 시적 노랫말은 포르투갈 전통 시인들로부터, 그리고 악곡형식은 브라질 음악으로부터 습득한 형태라고 보는 게 오늘날의 일반적 이해입니다. 또한 파두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뉘어지는데, 그리스 신화의 영웅 오디세이가 세웠다는 전설의 도시 리스본을 중심으로 한 리스본 파두, 그리고 포르투갈 북부의 교육도시인 꼬임브라에서 성행한 꼬임브라 파두(Coimbra Fado). 이중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파두가 바로 서민들의 소박한 생활이 투영된 리스본 파두입니다. 포르투갈 최고의 문화유산으로 불려졌던 아말리아 로드리게스 (Amalia Rodrigues)가 바로 이 리스본 파
두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아말리아 로드리게스는 1920년 리스본에서 출생했습니다. 가족들조차 그녀의 생일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비천한 가정에서 출생한 그녀는 길거리에서 꽃을 팔거나 선창의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며 힘든 소녀시절을 보내다가, 1939년 Retiro Severa에서 실질적인 데뷔를 하고 커다란 성공을 거둡니다. 이후 1944년에는 브라질 등에서의 공연을 하고1945년 리우데자네이로에서 첫 스튜디오 레코딩을 합니다. 음악적인 성공과 함께 영화 " 검은 외투(Capas Negras)"에 출연하면서그녀는 은막의 스타로도 성공가도를 달립니다. 특히 1954년에는 배를 타고 나간 남편을 기다리다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 때문에 미쳐버린
한 여인의 테마를 다룬 영화 "타구스 강변의 여인들"에 출연하고 극중에서 그녀의 최고의 대표곡 "검은 돛배(Barco Negro)"를 불러 세계적인 스타가 됩니다. 65년 아말리아 로드리게스가 부른 이 '검은 돛배(Barco Negro)가 우리나라 연속극에 삽입되면서 알려지기 시작하여 그 당시 굉장한 인기를 누리기도 하였습니다. 검은 드레스 위에 역시 검은 숄을 걸친 채 곧게 서서 온몸으로 열창하는 파두 가수(Fadista)의 애조 띤 목소리는 심금을 울리며 전율을 느낄 정도로 애잔하여 일부 사람들은 슬픈 노래라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포루트갈 사람들은 파두를 국민가요로 생각하며 즐겨듣는다고 합니다. 이후 그녀는 자신만의 섬세하
고 애절한 발성으로 삶의 애환, 교차하는 희망과 고통 등 파두에 내재된 정서를 세계 보편적인 것으로 승화시키며 포르투칼의 파두를 세계적인 음악으로 그 위상을 격상시킵니다. 그녀는 흔한 사랑타령에 목말라 하지 않고 조국에 대한 사랑과 민중의 애환을 노래했고 그녀를 통해 우리는 파두를 만났고 파두의 그 속내깊은 사연에 마음이 흔들리곤 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서 포르투갈은 살라자르의 독재로 이 파두를 금지시키기도 하였지만 독재 정부를 무너뜨린 자유군과 시민들이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고 파두를 부르면서 행진을 했다합니다. 1999년 10월 6일 아말리아 로드리게스가 79세를 일기로 타계했을 때, 그녀의 죽음이 확인되자마자
포르투칼 정부는 즉시 3일 동안의 국가 애도기간을 공포하였습니다. 아무리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가수가 죽는다 한들 우리라면 단 하루인들 국가 애도기간을 결의하기까지야 하겠습니까? 아니 설령 정부가 그런 결정을 내린다 한들 국민들이 수긍하겠습니까? 그러나 포르투칼 국민들은 정부의 이러한 결정을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파두(Fado)라는 그들의 민속음악을 세계적인 음악으로 끌어올린 아말리아를 포르투칼 국민들은 단순히 스타라거나 가수라 부르지 않고, 'Fado의 대사' 혹은 '20세기가 낳은 포르투칼 최고의 영웅'으로 불렀고 그녀는 그 정도로 포르투칼 국민들의 절대적 사랑을 받는 여걸이었습니다.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의
뒤를 잇는 신세대 파두 가수들의 활약덕분에 파두는 아직도 생명력을 잃지 않고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후계자로 거론되며 안드레아 보첼리와도 뚜엣으로 노래할 정도로 국제적인 명성을 지니고 있는 둘쓰 폰뜨스(Dulce Pontes), 기타하(guitarra) 외에도 아코디언, 첼로, 신디사이저 등 다양한 악기를 도입해 파두를 현대적인 모습으로 발전시켜가고 있는 베빈다(Bevinda), 미샤(Misia)등이 있습니다. 전통과 현대를 잇는 아름다운 신세대 파디스타들 덕분에 영어권의 팝음악이 전세계 음악시장을 주도해 나가고 있는 지금, 빠르게 변화해가는 문화 환경속에서도 자신들 고유의 향기를 잃지 않으면서 한편으로는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껴앉으려는 노력을 통해 새로운 세대의 음악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통을 현대화하는 그들의 노력이 그들 음악의 독특한 멋과 향기를 세상에 오래 머물게 하는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겨울 그들의 감성에 한발짝 다가가보는 그런 시간을 가져보심도 좋을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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