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강씨의 청정산 강씨봉
일자: 3월23(토)-1
산: 강씨봉(830m 북면)
숙소: 강씨봉자연휴양림
참가자(6명): 송창기 대장, 김철 총무, 양종주, 유양수, 정성호, 채희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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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LIGHT
순례자처럼 강씨봉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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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0-8:00 조식
8:00-9:00 설거지 및 산행준비
9:05 출발
9:17 정자(휴양림에서1km지점)
9:26 오뚜기고개-도성고개 갈림길
9:38 도성고개-임도 갈림길
9:47 자작나무 군락지
10:07 도성고개
10:45-48 백호봉
***
11:07-13 강씨봉
12:00 두꺼비바위
12:15 연화소
13:37 휴양림
15:05 가평역
15:29 가평역 ITX 청춘열차 출발
16:20 옥수역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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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찌개로 아침을
아침 조깅을 좀 하며 돌아다니다 왔더니 밥이 다 차려져 있다. 어제 저녁에 먹다 남은 삼겹을 마트에서 사온 김치에 넣어 찌게를 만든것이다. 송대장의 작품. 뛰고 났으니 없는 입맛도 벌떡 일어날텐데 맛있게 조리를 했으니 더 없이 맛있다. 저녁에 먹다 남은 된장 찌개도 있고 묵도 두 접시로 나눠놨으며 남은 상치도 싱싱하다.
양수, 서울 간다고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양수는 서울에 일이 있어 아침에 나가기 위해 아예 처음부터 배낭을 짊어지지 않았다. 어제 들어오면서 휴양림 입구 굴바위산장 주인에게 물어보니 아침 8시에 시내버스가 온다기에 밥을 서둘러 먹고 나갔는데 “10시에나 있다고 한다”며 전화가 온다. 토요일에는 학교에 가는 학생들이 없어 첫 차를 10시로 했단말인가? 그러니 휴양관에 들어와 쉬었다 갈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서울에 갈 준비하는 양수
요즈음은 행주도 패션?
제주도에서 “우리자기” 처럼 나는 주특기가 없으니 설거지라도 해야 하기에 어제 저녁에 이어 아침에도 행주를 만졌다. 요즈음은 행주도 패션인가. 노랑과 분홍색이다. 거기다 거친 것을 닦는 수세미형은 붉은색으로 어제 오후 매표소에서 이쁜 아가씨로부터 받아온 것이다.
색색의 행주 건네주는 매표소의 이쁜 아가씨
‘소원을 말해봐!’ 하트 판넬에 소원이 주렁 주렁
다 마치고 배낭을 둘러매고 밖으로 나왔다. 소원을 써서 걸어두는 하트형의 “소원을 말해봐!” 판넬에는 “2013년 장가가게 해 주세요!!” “연애하게 해주세요” 등 많은 소원들이 걸려있다. 정말 이루어지길 비니 이루어질 것이다.
어제 밤 산보나와 당직자와 대화중 우리가 있는 곳이 해발 350m 고도라는 것을 알았다. 2011년 10월에 개장해서 아직 깨끗하다는 말도 그가 해준 얘기다.
눈 조각 형체 없어
가을 하늘처럼 파랗고 기온도 영상으로 뛰어오른 것 같다. 등산로 입구 계곡 건너에 만들어둔 눈 조각들이 형체를 알 수 없을 만큼 녹아내린 걸 봐도 봄은 이미 발아래 와 있다. 계곡의 수량은 너무 많아 벌써 여름처럼 소리도 요란하다.
녹아내린 눈 조각
우리가 머문 "굴참나무" 문을 꼭 닫고
송대장이 먼저 입구 시멘트 다리로 나가
물이 깊다는 얘기
상수원이 된 계곡물
낙엽송 지대를 지나며
취사하지 말라는 넓은 정자
송대장은 먼저 앞으로 달아나고 성호, 철, 종주 셋이서 얘기 꽃을 피우며 뒤따라간다. 우리밖에는 아무도 없다. 중장비가 다녀 바퀴자국이 깊고 딱딱하게 얼어붙어있다. 잎을 다 떨군 낙엽송 군락이 나온다. 죽자살자 키를 세우는 바늘잎 나무. 너무 키만 크다보니 내실이 약해 재목으로는 빈약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 바로 위로 깨끗하고 큰 정자가 있다. 마루가 넓어 취사하기 딱 좋은데 내 마음을 알고 취사금지라는 딱지를 붙여놓았다. 그냥 쉬기만 하라는 뜻인가 보다.
동자소(童子沼) -- 스토리텔링이 중요한 걸 알았나?
송대장은 길가 동자소(童子沼)라는 팻말을 보더니 멈춘다. “이 작은 소는 개구쟁이들이 물장구치는 모습이 그려지는 소이다. 태봉국을 건국했던 궁예의 부인이었던 연화(강씨부인)에게 아들이 둘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며 그 때 “그 아들들이 이 소에서 더위를 식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력까지 써 놓았다. 궁예는 태봉국의 건립자로 후고구려의 왕(901~918 재위).
에머랄드 빛이 돋는 동자소
오뚜기고개 올라가는 계곡은 비오면 위험
휴양림에서 25분 정도 평평한 산길을 걷다보니 오뚜기고개와 강씨봉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 오뚜기고개로 가는 계곡은 비가 오면 갑자기 물이 불어나 매우 위험하다는 표지판이 이정표밑에 붙어 있다. 하산시 내려오는 계곡이다.
우리는 시멘트로 길을 깔아놓은 오른쪽 임도를 따라갔다. 이제는 물소리도 봄소리로 줄어들었고 시멘트 길이 끊겼다 다시 생겨나고 잔설 깔린 길 역시 맨 당과 반복해서 나타난다.
시멘트 깔린 임도
도성고개와 임도의 갈림 길
그러면서 임도와 도성고개 갈림길이 나온다. 새벽 이곳에서 명지산 정상 위로 구름이 해에 붉으스름하게 비치는 장면을 잡은 곳이다.
명지산 위 구름이 동녘 햇빛 받아(6:42am) 여기 임도에서 잡아
‘닥터 지바고’의 자작나무 군락지
우리는 갈림길부터 눈이 깔려있는 길을 따라 한참 갔다. 더워 겉옷을 하나씩 벗는다. 앞에 허연 자작나무 군락지가 나온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더욱 하얗게 대비가 되는데 길 양쪽에 집단으로 심어놓은 것 같다.
종이처럼 하얀 수피가 있어 쉽게 눈에 띄지만 보통 자생 자작은 600m가 넘는 높고 추운 곳에서 자란다. “닥터 지바고”에 나오는 설원의 자작나무는 그에 대한 이미지를 최고조로 해 주었을 것이다.
그 수피에 방부제격인 큐틴질이 많아 잘썩지 않아 예날에는 종이로도 썼다고 한다.
불에 탈 때 “자작자작” 소리가 난다 해서 이름이 생겼는데 영어의 명칭 birch는 수피의 “하얀"이라는 게르만어에서 나온 것이고 보면 어떤점을 강조하냐에 따라 이름이 그렇게 달라진다.
화촉을 밝힌다고 할 때 이 화(華)자가 자작나무로 옛날에는 촛불이나 호롱불 대신 이자작나무로 밝힌 불을 썼다고 해서 나온 말이란다.
고로쇠처럼 수액을 뽑아 마시기도 한다. 요즈음은 껍질에서 자이리톨을 축출해 충치 예방에도 쓰는 것으로 알려졌다.
억새 군락지
베 젓는 노 같은 씨를 맺는 물푸레나무
조금 가다보면 말라버린 억새지역이 지나고 이어 물푸레나무 군락지가 길 왼쪽으로 펼쳐진다. 지금은 겨울 나무라 트렁크에 큰 하얀 반점을 두르고 있다. 가지나 잎이 물을 푸르게 물들인다해서 물푸레나무란다. 개나리와 사촌인데 닮은점이 별로 없어보인다.
실같은 하얀 꽃이 지고 나면 배 젓는 “노”같이 생긴 열매가 주저리주저리 달린다. 잎은 2~3쌍에다 맨 끝에 홀로 있는 게 가장 커 귀엽게 생겼다. 어느 산에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다.
물푸레나무 군락지
도성고개, 분단의 아픔을 안고 있는 한북정맥의 3구간 출발점
물푸레나무 군락을 지나면 도성고개. 631m. 280m 높이를 올라왔고 앞으로 200m 더 높이 오르면 된다. 이 능선이 한북정맥이 지나가는 길목이다. 현재 수피령에서 12구간 끝인 곡릉천까지인데 도성고개는 광덕고개에서 시작하는 제2구간의 종점이다. 북한 지역인 백두대간 식계산(추가령)에서 분기하여 남한쪽 대성산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유일한 남북 분단의 정맥이다. 서쪽으로는 포천 읍내와 주위 넓은 평야가 시야에 들어온다.
포천 읍내가 서쪽에
우리는 귤과 사과를 꺼내 입을 즐겁게 해 주었다. 우리가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니 여성 한분에 남성 4명이 올라오고 있다. 우리와 동수다. 강씨봉 자연휴양림 숲속의 집(단독주택) “노을”에서 온단다.
분단의 슬픔 안고 있는 한북정맥 제2코스 출발지점 이점표에서 한 컷
송대장도 한 컷
서쪽 포천 읍내가 한 눈에
휴양림에서 다른 한 팀 올라와
왼쪽에 잣나무
잣나무와 신갈나무가 양쪽에서 서서 사열
우리는 헬기가 앉기도 힘들 헬기장을 지나 왼쪽으로 잣나무 군락지를 끼고 간다. 전국의 40%의 잣이 생산된다는 가평이다. 올라오면서 보이지 않던 아름들이 독야청청 잣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 서 우리를 사열하고 있다. 길 오른쪽으로는 활엽수의 대표선수인 참나무의 신갈나무가 군락을 이뤄 역시 잣나무와 짝을 이루며 사열을 하고 있다.
오른쪽에 신갈나무
목계단으로 된 깔딱 고개
잔설이 보이면서 이제는 가파르다. 목계단을 설치하고 한북정맥이라서 그런지 이정표가 수시로 나온다. 다리 운동 좀 하는 거 같다. 김철 총무의 다리가 힘들지 않을까 해서 이미 송대장이 스프레이를 뿌려주었고 나는 이 깔딱을 쉽게 오르도록 무릎보호대를 하나 끌러 오른쪽 다리에 차게 했다.
백호봉에서 배낭을 잠깐
깔딱을 올라서니 평지가 나오고 이내 백호봉이다. 희미한 팻말이 나무에 걸려있고 벤치가 두 개 있어 배낭을 내려놓았다. 멀리 동쪽으로 화악산이 보인다. 용문산과 마찬가지로 정상에 군사 시설이 있어 쉽게 식별이 된다. 네 명의 기념사진 한 컷. 사방이 특 트여 시원한다. 남쪽을 보면 북쪽 기슭이라 희끗희끗 눈이 보인다.
백호봉에서 다 함께
강씨봉(왼쪽)을 향해서
--계속--
채희묵 배상
첫댓글 산에가지 않아도 산을 오르는느낌이요, 여행을 못가도 다녀온거나 진배없는 느낌이니 이무슨 造化인고? 바로 채기자의
크나큰 普施功德때문이 아니겠는가? 德不孤必有隣이라하였으니 채기자에게必有餘慶일지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