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중독
새로운 중독
신근식
중독자라 할 때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어질러진 방에 술병들이 뒹굴고, 며칠째 씻지 않은 채로 컴퓨터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는 초췌한 모습? 식음을 전폐하고 밤새 도박 하며 점차 야위어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들은 하나같이 무기력해 보이고, 도박, 게임, 마약 등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을 즐거워한다기보다, 멈추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계속하고 있는 상태이다. 중독자들은 다른 삶의 영역들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의욕, 의지도 상실한 사람이다. 확실히 중독은 사회적으로 부정적 요인이 된다.
중독(中毒)은 보통 부정적인 의미다. 알코올, 담배, 도박, 게임 등 특정 사물이나 생각에 지나치게 빠지다 보니 일상생활을 방해하는 상황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하지 않으면 하고 싶고, 생각만 해도 흥분되고, 결국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중독된다. 부정적인 의미를 강조한 중독의 개념에서 벗어나 넓은 의미에서 보면 꼭 부정적인 요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면에 숨겨진 장점도 있다. 그것이 달리기 하려는 중독이다.
2001년도에 황영조 마라톤 열풍이 불어 마라톤을 시작하였다. 달리기를 체계적으로 배우기 위해서 대구마라톤클럽에 가입하였다. 지금은“대구마라톤협회”로 변경되었고 8개 지부가 11개 지회로 늘어났다. 생활하는 곳이 대곡단지 아파트에 살았기 때문에 대곡지부에 소속되어 활동하였다. 회원 수는 70여명으로 11개 지회 중 제일 큰 지부였다.
원래 나는 달리기 체질이 아니었던 내가 천천히 자기 몸에 맞게 달릴 수 있다는데 매력이 있었다. 주로 오후 6시에 모여 경북기계공고 운동장과 동네 안골로 번갈아 가면서 달리기를 한다. 지금 ‘안골’은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그 때는 허허벌판이라 안전하고 공기도 좋아서 달리기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회원 중에는 몸무게가 무려 100kg 넘는 L씨는 달리기는 조금하고 술은 풀코스로 마셔댔다. 나도 그랬다. 달린 후에 자기 몸을 보상하기라도 하듯 그날 당번이 준비해 온 음식과 막걸리를 한없이 먹고 마셔됐다. 운동할 때마다 무슨 원수진 것처럼 마셔대니 달리기 중독보다는 알코올 중독에 더 가까웠다.
달리기를 즐기다 보면 초반에는 숨이 차고 힘든 고비가 온다. 이 순간을 지나면 어느새 기분이 좋게 달리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더 나아가서 시 공간을 초월하고 박진감을 느껴 자신의 몸이 날아갈 것 같은 상태를 전문용어로 ‘러닝하이(Running High)’라고 부른다. 짧게는 4분에서 길게는 30분에 이르기도 한다. ‘러닝하이’ 상태가 되면 뇌 속에서는 ‘엔도르핀 호르몬’이 분비된다. 이것으로 인해 달리는데 죽기보다 힘들어도 목표한 곳까지 달리게 된다. 달리기를 통해 몸의 신체적인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이에 대항한 호르몬에 의하여 운동 후 행복감과 도취감이 높아지는 이유로 딜리기의 매력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오늘을 달리고 나면 내일은 죽어도 달리지 않겠다고 다짐해도 내일 되면 또 달리고 있으니 이것이 달리기 중독이다. 2000년도 새천년 21세기의 시작 기점으로 마라톤 붐이 일어나 지자체에서는 자기 고장 홍보를 위하여 전국 곳곳에 마라톤대회를 열었다. 나도 ‘정읍마라톤대회’ 10Km에 생전 처음으로 출전하여 완주하였다. 51분에 도착하여 생각보다 기록이 좋았다. 이때 기분은 하늘을 날아갈 듯했고 마음은 세상 무슨 일이든 다 할 것만 같은 자신감이 왔다. 그 후로 10Km만 수차례 달렸다. 지인들은 마라톤 하고 왔다고 하면, ‘너 몇 등 했느냐’고 묻는다. ‘수천 명이 달리는데 완주가 중요하지 등수가 중요하냐?’고 일깨워 주었다.
마라톤에서 10Km는 단축마라톤이고, 하프마라톤은 21.095Km, 풀코스 마라톤은 42.195Km 이다. 5년 동안 하프, 풀코스 마라톤을 번갈아 참가하여 정신없이 달렸다. 특히 새해 마라톤은 신년도 소망을 기원하기 위해서 경치 좋고 난코스인 거제 구조라 해수욕장 마라톤을 택하여 해마다 1월 초, 달리기에 미친 회원 몇 명과 같이 참가했다. 칼바람 부는 아침에 짧은 옷 입고 오들오들 떨다가 나중에 달리고 들어오면 거제도에 사는 고종 동생이 생굴과 소주 몇병을 가지고 마중 나왔다. 우리 일행은 양지바른 곳에서 선 채로 미친 듯이 마시고 먹었다. 정말 꿀맛 같은 분위기를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또 한 번은 춘천마라톤에 참가하였을 때 동우회 최고령자로 회갑이 지난 K회장(현재 80세)을 페이스메이커 해서 참가하였다. 본인은 하프를 1회 완주한 경력으로 풀코스에 도전하였다. 중간에 몇 번이고 포기하려고 했는데, 페이스 하면서 1Km를 지날 때마다 “회장님은 지금이 일생일대의 신기록입니다.”라고 외쳐주어서 5시간 30분에 완주하였다. K회장은 휴대폰에 기록 메시지가 찍혀 있는 것을 보는 사람마다 노익장을 자랑하면서 평생 그 순간을 잊지 못했다고 하였다.
세월이 지난 지금은 달리기 대신 걷기운동에 빠져 있다. 육십 중반이 넘었지만 예전의 달리기 덕분에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항상 감사하면서 삶을 살고 있다. 이제 새로운 중독이 생겼다. 한때는 주식, 도박, 알코올중독 등에 빠져보곤 했지만 다행이 모두 미수에 그쳤다. 이왕 중독될 거라면 책에 중독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큰돈이 들지 않으며, 망할 일이 없으며,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으며, 오히려 그 중독으로 주변까지 밝힐 수 있다. 늦은 해탈의 생각이다.
지금 나에게는 세 가지 중독이 있다. 첫째는걷기운동 중독이고, 둘째는 책에 대한 중독이며, 셋째는 글쓰기에 대한 중독이다. 육체에는 산책이나 걷기가 운동이라면, 책 읽기와 글쓰기는 마음의 운동이다. 돈도 명예도, 늙으면 건강도 모두 허무할 뿐이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것은 언제든지 내 곁을 떠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20230418)
첫댓글 이 번 글, 엑셀런트!
카페지기 한비수필 학교장.
교장선생님 지도에 항상 감사합니다
수필 글은 바로 자기 마음의 표현입니다.
혼란하면 혼란하게 표현, 안정되면 안정되게 표현, 안온하면 안온하게 표현됩니다.
글 쓰기는 늘 평정심을 가지고 자랑이나, 남을 해하려는 마음은 없어야 합니다.
글은 한 편으로도 가수가 노래 한 곡 잘 부르면 그것으로 평생 대중에게서 은혜를 입고 삽니다.
명품수필은 늘 자신의 평정심에서 글이 됩니다.
이 문장을 꼭 참고 하십시오.
한비수필 학교장.
명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