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6월 28일(금) 아가 3:6-11 찬송 384장
6. 몰약과 유향과 상인의 여러 가지 향품으로 향내 풍기며 연기 기둥처럼
거친 들에서 오는 자가 누구인가
7. 볼지어다 솔로몬의 가마라 이스라엘 용사 중 육십 명이 둘러쌌는데
8. 다 칼을 잡고 싸움에 익숙한 사람들이라 밤의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각기 허리에 칼을 찼느니라
9. 솔로몬 왕이 레바논 나무로 자기의 가마를 만들었는데
10. 그 기둥은 은이요 바닥은 금이요 자리는 자색 깔개라
그 안에는 예루살렘 딸들의 사랑이 엮어져 있구나
11. 시온의 딸들아 나와서 솔로몬 왕을 보라 혼인날 마음이 기쁠 때에
그의 어머니가 씌운 왕관이 그 머리에 있구나 (개역 개정)
- 두 연인의 혼인 예식을 축하하는 예루살렘 여인들의 노래 -
오늘 말씀은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이 혼인 예식을 치르고 초야(初夜)를
맞게 됨으로써 사랑으로 연합된 기쁨을 누리는 모습을
노래로 표현하고 있는 아가서 제 2부 3:6-5:1의 첫 단락이다.
이러한 본문은 이제 지고지순한 사랑을 나누던 두 연인이
마침내 온 세상의 축복 속에 올리게 된 결혼식의 장엄하고도 즐거운 정경을
예루살렘 여인들의 합창을 빌어 묘사한다.
먼저 결혼식을 위해 용사들에 둘러싸여 왕궁을 향하여 나아오는
위엄있고 영광스런 신부의 행렬이 묘사되고(6-10절)
이어 신랑 솔로몬의 면류관을 쓴 위엄있는 자태가 묘사된다.(11절)
마침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두 사람의 사랑의 절정이라 할 수 있는
결혼식을 올리게 된 신랑과 신부의 기쁨은
다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단히 큰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장엄하고도 즐거운 결혼식 장면을 통해서도
두 사람이 얻은 기쁨을 충분히 연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을 통해 육체적, 정신적으로 순결한 한 쌍의 남녀가
결혼이라는 정당한 절차를 거쳐 한 몸으로 연합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창조질서에도 합당한
실로 아름답고 복된 일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창2:24)
한편 본 단락에 묘사된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결혼식이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이루어질 그리스도와 성도의
완전한 연합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우리는 본문을 통해 종말에
그리스도와 궁극적으로 연합함으로 말미암아 지극히 영광을 얻게 될 것은 물론
혼인 예식을 올리게 될 그날까지 당신의 신부된 교회를
철저히 보호하시리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약속까지도
더욱 신뢰하고 기대할 수 있게 된다.
비록 갖가지 고난 가운데 눈물을 흘리며
오랜 시간 동안 기다려야만 한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와 성도의 완전한 연합은 반드시 실현될 것이다.(롬8:35-39)
7절) 「볼지어다 솔로몬의 가마라 이스라엘 용사 중 육십 명이 둘러쌌는데」
솔로몬의 가마를 이스라엘 용사 중 육십 인이 옹위하였다.
여기서 ‘용사’에 해당하는 원문은 ‘낍보르’로서
용맹성 뿐 아니라 전쟁을 위해 전문적 훈련을 받은 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특히 왕을 호위하던 자들이나 그에게 충성하던 자들에게 사용되는 말이다.(삼하10:7)
이들의 숫자 육십은 당시 어떤 무리나 조직의 단위였던 것 같다.
따라서 솔로몬은 신부인 술람미 여인을 예루살렘으로
안전하게 호송하기 위해 정예 군사로 조직된 호위병 가운데
특별히 선발된 자들을 조직하여 파견했음을 알 수 있다.
때문에 이를 통해 시골의 이름 없던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의 신부가 됨으로써 왕실 호위병들로부터 겹겹이 보호를 받는
그야말로 평범한 백성으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은총을 누리게 되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일들은 우리 주변에도 자주 볼 수 있다.
곧 한 여자가 한 남자로부터 사랑받고 선택받게 되면
그 순간부터 그녀는 그 남자의 각별한 관심과 보호의 대상이 된다.
그리고 이는 국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대통령 선거 때 볼 수 있듯이 어떤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평범한 국민에서 국가의 원수로 지위가 격상됨에 따라
즉각적으로 대통령 경호에 관한 법률 등이 발동되면서
본인 뿐 아니라 가족에게까지 경호차량과 경호원이 배치되며
물샐 틈 없는 국가의 보호를 받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대통령 선거때마다 개표를 통해 당선자가 확정되는 순간
당선된 사람이 앞뒤로 경호차량의 호위를 받으며 당사에 나타나는 모습 등을
TV로 보며 천양지차로 달라진 그의 위치에 부러움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러한 일들을 보며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이보다 훨씬 더한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으로 보호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진정 과장이 아닌 것은 성경을 조금만 살펴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예컨대 먼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라고 말씀하셨다.(창12:3)
그리고 실제로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때로는 꿈으로 나타나셔 아브라함을 위협하는 대적들에게 경고하시기도 하고(창20:3)
큰 재앙으로 그들을 직접 치시는가 하면(창12:17)
때로는 이방인이나(대하32:20) 심지어 동물들의 입을 여시면서까지
당신의 백성들을 지키고 보호하셨다.(민22:28)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많은 경우 하늘의 천사를 보내어
당신의 백성들을 지키고 섬기도록 하셨다.
그리하여 아람 군대가 쳐들어왔을 때에는 아람 군대보다 더 많은
불말과 불병거를 보내어 엘리사를 지키셨고(왕하 6:16.17)
다니엘과 그 친구들을 사자굴과 풀무불에서 보호하셨다.(단3:19-30; 6장)
그리고 이러한 천사들은 장성한 성도들 뿐 아니라
어린아이들 하나하나를 위해서까지도
동일한 사역을 한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다.(마18:10; 히1:14)
따라서 우리들이 받는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은
이 땅 어느 누구와도 그 차원과 규모에 있어 비교할 수 없다.
그리고 사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만왕의 왕 그리스도의 신부이자 하나님의 자녀이며
나아가 영원토록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할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생각하며
오늘 우리들이 받는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의 깊이와 크기와 넓이가
얼마나 크고 깊으며 높고 귀한 것인가를 알아
감사와 찬양을 드리기를 쉬지 말아야 한다.
또한 이처럼 확고한 보호를 받는 성도답게 어떠한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담대하고 당당하게 의를 행하며 살아가야 한다.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시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