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중원(53·섬배정보화마을 운영위원장·춘천시농민회 부회장)씨 =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섬배마을은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각종 체험을 통해 농촌의 새로운 희망을 찾는다. 자연의 향기, 흙냄새를 맡으며 우렁이
방사,
고구마 캐기, 전통 벼타작, 디딜방아,
떡메치기 등 농촌의 자연과 전통, 또 농민들의 삶을 도시민들이 많이 체험했으면 좋겠다. 변함없이 농업 농촌은 우리의 근간이다.”
△ 최승란(45·섬배정보화마을 사무장)씨 = “3년 전부터 마을에 와서 실질적인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아이들에게 농촌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일에 보람을 느낀다. 올해는 여름에 비가 많이 오고, 가을에는 너무 더운 날씨를 보이는 등 일기 불순으로 목화의
개화 시기가 늦어지는게 안타깝다. 그래도 매년
명성이 더해져 꾸준히 도시민들이 농촌을 찾아와 배움을 느끼는 것은 큰 기쁨이다.”
△ 우춘복(52)·춘귀(46)형제 = “춘천시 소양로에서 음식점을 하다 지난해 5월 이곳에 중국집 팔봉루를 냈다. 도심보다 이곳의 영업이 오히려 낫다. 광판리 자체의 주민 인원도 있지만 무엇보다
대명리조트 등 외지 관광객으로 유동 인구가 많다. 장사가 나름 되는 데에는 도심은 배달이 대부분인데, 여기는 내방객이 80%이상이다. 소양로에서 부인이 곱창집을 하는데 몸이 안 좋아 요즘은 문을 닫고 있다. 하루빨리
건강이 좋아졌으면 좋겠다”
△ 김선기(65)·박승자(56)씨 부부 = “여기서 나고 자랐다. 대성철물을 하는데 잡화점과 같이 한다. 예전에는 장터가 커서 잡화점으로도 경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옛날에 사람들 모여들던 장터가 그립다. 다시 마을의
부활 시기를 기대한다.”
△ 최병필(46)씨 = “젊을 때부터 이곳에서 공업사를 운영한다. 배운
기술이 이것이다. 예전만큼 고객이 없는데, 그대로 신용으로 맺은 고객이 꾸준해 출장 수리가 많다. 대형 트럭의 고객들이 잊지 않고 부른다. 어릴 때처럼 장터의 북적거림이 지금도 그립다. 최근에
기업도시네 산업단지네 수년째 지속되지만 빨리 종식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보상받아 다른 동네에 가도 이만한 행복을 누릴 수 있겠는가.”
△ 김순기(77)씨 = “남편이 12년간
노인회장을 하며
동네일을 도왔지만 먼저 세상을 등졌다. 5남매를 키우며 잘 살았고 지금은 이렇게 집에서 혼자 살며 이웃들을 의지하며 살고 있다.”
△ 정재덕(44·광판리 작목반장)·이금선(40)씨 부부·아들 정명구(8)군 = “여기에서 나고 자랐고 아버지(정순섭·71)가 이장일을 맡고 있다. 할아버지가 이동식 방앗간을 하셨고, 농협의 정미소가 나왔았는데 아버지가 이를 넘겨받아 지금도 한다. 마을의 오이 토마토 가지 애호박 등 시설 및 노지의 밭작물의 작목반장을 맡고 있다. 특히 우리 마을의 오이는 백다대기 품종으로, 저장성도 좋고 아삭한 맛도 일품이다. 소양강 광판지구 이름으로 나간다. 지금은 오이 물량이 줄었지만 얼마 전만 해도 가락동 청과에서 춘천 광판에서 올라왔다면 무조건 고가에 매입할 정도였다.”
△ 이경자(72)씨 = “30여년 전 서면 두미리에서 이곳으로 왔다. 이발사인 남편과 함께 왔다. 이미 남편은 세상을 등지고 이렇게 장터길 집에서 홀로 생활하고 있다.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이다.”
△ 황옥순(84)씨 = “30여년전 이곳으로 왔는데, 나이가 들어서도 편하게 농촌마을에서 주민들과 의지하며 산다. 시내가 멀어서 목욕이나 병원 가기가 불편한 게 흠이다.”
△ 오금섭(74)씨 = “이북에서 나서 경기도 안산에서 청춘을 보냈다. 남편은 제약회사를 다니고 나는 제지회사에서 근무했다. 두 내외가 퇴직한 뒤 아들이 광판에 양어장을 해서 10여년전 애들도 돌봐줄 겸 같이 내려오게 됐다. 어릴 적 아버지의 농촌 일손을 거들던 기억이 있다. 옛날에는 땅을 파서 옥수수 씨를 뿌렸지만, 지금은
모종을 심는다. 요즘 소일 삼아서 깨 등 작물을 키우지만, 올해는 유독 불순한 일기 탓에 작황이 별로 좋지 않다.”
첫댓글 아는 얼굴들이 많이 있네요, 언제나 성실한 최중원 위원장님, ..그리고 애기 때부터 보아왔던 재덕씨네랑......
고향을 지키는 어름더운 동문님들이지요 모두가 번가운 널굴입니다 자랑 스럽습니다